"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후나야마 신지 일본 약과대학 교수 - P5
만약 그때 그 약이 없었더라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살면서 한두 번 이 말을 들어보거나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역사에서 ‘만약‘을 허용하면 안 되는 걸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순도 백 퍼센트의 역사라는 물을 더럽히는 불순물 같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기억에남아 있고 기록으로 보존된,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서의 ‘역사‘를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물론 필요하다. - P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한발 더 나아가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만약‘은 역사를 훼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좀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활력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P8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의 만약‘ 중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칼의 말이다. 이 짧은 한문장은 세월을 뛰어넘어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P9
원숭이와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고? 현재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83세 (2015년 기준 남성 80.75세, 여성86.99세 -옮긴이)를 넘어섰다. 오늘날 마흔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백 년 전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당시의 일본인 평균수명은 오늘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정도로 짧았다(참고로, 1921~1925년 평균수명은 남성 42.06세, 여성 43.20세였다). 신생아 예닐곱 명 중 한 명은 세 살이 되기도 전에 요람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직행하던 참혹한 시대였다. - P19
예를 들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BC 4000년경부터 3000년경 기간 동안 점토판에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빼곡히 기록해 놓았다. 그 의약품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누구나 자기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다. 소똥과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의 귀지 등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약은커녕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온갖 더러운 물질들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 - P24
그들은 질병이란 악마가 몸속에 침투하여만들어내는 나쁜 현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몸속 악마를 쫓아내려면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심지어 돼지의 귀지 같은 악마가 싫어하는더러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 P26
11세기 스코틀랜드 왕을 모델로 한 작품이자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뱀고기와 도마뱀 눈알, 상어 위장 등을 가마솥에 넣고 부글부글 끓여만든 ‘미약‘이 등장한다. - P27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보일의 법칙을 정립해 ‘화학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린 로버트 보일 (1627~1691)은 질병 치료에 ‘벌레, 말똥, 인분, 시신의 두개골에서 자란 이끼를 섞은 물질‘ 등을사용할 것을 권했다. - P27
그뿐만이 아니다. 18세기 초, 영국 런던의 『약전』(의약품의 품질 규격서)에는 사형수의 두개골이 ‘의약품‘으로 버젓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쓰레기 약‘의 전통은 인류역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 P27
그중에서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의약품은 『서유기』 등에도 나오는 ‘금단‘이라 불리는 불로불사약이다. - P29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찾게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천하를 제뜻대로 주무를 수 있는 최고 권력자가 마지막으로 탐한 대상은 결국 ‘영원한 생명‘이었던 셈이다. - P29
그들은 수은을 연고로 만들어 살갗에 바르거나증기로 찌는 방식으로 흡입했다. 그 밖에도 그들은 염화수은 수용액을 먹는 등다양한 방식으로 몸속에 수은을 투여했다. - P32
이렇듯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셀 수없이 많다. 세계적인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그들의 직접적 사인이 바로 매독 치료에 사용한 수은 중독이라는 주장이 단순한 주장을 넘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33
대중에 잘 알려진 용어로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것이있다. 효과가 전혀 없는 엉터리 약을 질병 치료에 잘 듣는다고 착각하고 믿어버리는 심리 및 습성을 일컫는 용어다. - P34
대항해 시대에 바다사나이들이풍랑이나 해적보다 두려워한 것은? "비타민C가 의약품인 줄 아셨어요?" 이 질문에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었죠!"라고 대답하는 사람은뜻밖에도 많지 않다. 대다수 사람이 질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바라보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정말이냐고 되묻는다. - P39
대항해 시대에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페스트도 결핵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그 이름조차 듣기 힘든 ‘괴혈병‘이라는 질병이었다. 이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은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며 차츰 쇠약해졌다. 손가락으로 살갗을 누르면 쑥 들어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탄력을 상실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흘렀고,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천천히 죽어갔다. - P41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종식시킨 영웅, 제임스 린드 18세기 후반,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끝낸 영웅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1794), 영국 해군 소속군의관이었다. 린드는 어떻게 그토록 무시무시한 질병인 괴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1747년 제임스 린드는 효과적인 괴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1. 열두 명의 괴혈병 환자를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매일 같은 식단을 제공한다. 2. 환자를 두 명씩 여섯 조로 나누어, 각각의 조에 사과 과즙과 황산염 용액, 식초, 바닷물, 마늘 등으로 만든 반죽과 오렌지 두 개, 레몬한 개를 먹인다. - P46
영국이 19세기에 거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전 세계를 주름잡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괴혈병 정복‘이라는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50
‘인간은 당류와 단백질 등의 주요 영양소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특정 미량화합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20세기초에 인류가 발견한 두 가지 사실이다. 비타민은 이 미량화합물 중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터라, 비타민을 찾는 일이 20세기 초반생화학에 부여된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 P52
1937년, 노벨상 위원회는 결국 센트죄르지에게 ‘비타민C 발견‘ 공적을 인정하여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논란은끊이지 않았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가 유럽인에게 가산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킹을 비타민C 최초 발견자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타민B1의 최초 발견자로 스즈키 우메타로 박사를 꼽는 일본인이 많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 P54
폴링은 1954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전 세계 화학자들을 이끌고 원자 및 수소폭탄 금지 운동에 열정적으로 나섰고, 그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평생 노벨상을 두 번이나 단독으로 받은 일은 라이너스 폴링의사례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폴링 이외에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례로마리 퀴리가 있지만, 퀴리는 첫 번째 노벨상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공동으로 받았고, 두 번째 노벨상을 단독으로 받았다. 옮긴이). 더욱 놀라운 것은, 라이너스 폴링은 또 한 번 노벨상을 받을 뻔한 절호의 기회를다른 학자에게 과감히 양보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DNA 구조 결정 경쟁에서 정치적인 이유까지 얽히게 되면서 그는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과 프랜시스크릭 (Francis Harry Compton Crick)에 노벨상 수상의 기회를 양보했다. 이 통 큰 양보가 없었더라면 노벨 생리학·의학상도 그의 몫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자역학, 화학, 생물학을 아우르는 폴링의 업적은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즐비한 과학사에서도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 P56
비타민C의 속성이 밝혀지고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일반인에게 좀 더 원활히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비타민C가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한 물질 이외에도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P57
결국, 비타민C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폴링의 아내 에바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전립선암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렇기는 하나 폴링 자신은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으니적어도 비타민C 다량 섭취가 몸에 그다지 큰 해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P59
의학계에 의해 정식 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비타민C는수용성이 높아 필요이상으로 섭취해도 몸 밖으로 배출되기에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건강식품회사들은 폴링을 지금도 신처럼 떠받들며, 광고에 보란 듯이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천재가 실천했던 건강 이론!"이라는 카피를활용하여 요란하게 홍보한다. - P60
삼도천(三途川: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큰 내 -옮긴이) 강가를 거닐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강희제의 목숨을 구한 특효약이 바로 이번 장의 주인공인 ‘퀴닌‘이다. 말라리아에서 회복한 강희제는 이후 서양 학문에 경도되었다. 그런터라, 그는 퀴닌을 바친 선교사들에게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웅장한 가톨릭 성당 짓는 일을 허가했다. 퀴닌의 놀라운 효능이 황제의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 P67
말라리아는 현재진행형인 질병이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매년 무려 3억~5억 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는데, 이중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이 수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감소하는 추세지만, 지금도 에이즈 · 결핵과 함께 ‘세계 3대 감염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실로 무서운 병이다.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절반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을 정도다. - P68
훈족의 위협으로부터 서로마제국을 구한 일등공신, 말라리아 - P69
그러나 퀴닌의 구조는 너무도 복잡해서 당시의 화학 수준으로는인공 합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마침내 1942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적을 둔 젊은 학자가 이 어려운 과제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2년여 동안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얻어낸 그의 눈부신 성공은 오늘날까지 전설처럼 전해진다. 사상 최초로 퀴닌 인공 합성에 성공한 이 학자의 이름은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로, 당시스물일곱 살의 풋풋한 청년이었다. 우드워드의 이름은 ‘콜타르에서 마법의 약을 만들어낸 젊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 P80
고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오디세이아』에도 슬픔을 잊게 해주는 약이 등장한다. "이 약을 섞은 술을 마신 자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도 한나절은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위의 문장은 아편의도취작용을 묘사한 구절로 추측된다. 고대인들도 약의 힘을 빌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달랬던것일까? - P93
그 무렵, 순수한 모르핀 성분을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1803년, 스무 살의 젊은 약제사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제르튀르너(Friedrich Wilhelm Sertürner)는 아편에 산과 염기를 순차적으로 더해불순물을 제거하고 유효 성분만 결정으로 추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그는 이 성분에 그리스신화의 잠의 신인 모르페우스에서 따와모르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95
이 새로운 화합물은 가래를 제거하는 진해 효과가 탁월한 데다출시 당시에는 중독성이 없다고 여겨졌다. 바이엘은 이 신약 샘플을 의사들에게 보내 뛰어난 효력을 광고했다. 그러나 광고 내용은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중독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르핀보다도 훨씬 강력해졌다. 아무튼, 이 신약이 바로 ‘헤로인‘이다. 헤로인은 ‘이 약을 먹으면 영웅적 (heroic)인 기분이 된다‘라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 P106
1874년, 영국인 화학자 라이트가모르핀에 아세틸기(CH3CO)라는원자단을 결합한 물질을 개발했다. 이 신약이 바로 ‘헤로인‘이다. - P107
심지어 환자의 경동맥을 압박하여 실신시킨 뒤 수술을 진행하는 기상천외한 방법과 좀 더 극단적으로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엽기적인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게다가 그렇듯 위험천만한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수술 중에 환자가깨어날 가능성이 컸으므로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은 수술 내내가슴을 졸여야 했다. - P115
일시적으로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여통각을 사라지게 하는 약을 찾기 위해인류는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 P116
쓰센산 주원료인 투구꽃에는스코폴라민, 히오시아민 등의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적정량을 넘으면 독이 되지만 잘만 사용하면통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약이 될 수도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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