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재현함으로써 우마번성을 기원한다. 한라산을 지켜주는 하로산또는 하늘과땅 사이의 기후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수렵 목축의 신이기 때문이다. 하로산또는 사농바치(사냥꾼)를 상징한다. 사농바치라는 한라산신계 수렵목축신은 삼천병마 일만 초깃발‘을 날리며 달리는 장수신으로 표현된다. 궤네깃당 본풀이를 보자. - P249

소천국과 백주또가 결혼해 아이들을 낳은 후, 백주또는 사냥만으로는 살기힘드니 농사를 짓자고 소천국에게 제안한다. 소천국은 국과 밥을 아홉 동이씩가지고 밭에 나가 일하게 되는데 중이 와서 밥을 청하기에 권했더니 모두 먹어 버린다. 그래서 소천국은 밭을 가는 소를 잡아먹는데. 이 때문에 백주또는화가 나 부부가 헤어지게 된다. 그 후 소천국은 예전처럼 사냥해 노루 · 사슴돼지를 잡아먹고 살았다. - P249

소천국과 백주또의 갈등은 미식파와 육식파의 갈등이다. - P249

문화사적 발전과정을 볼 수 있다고 보았다. 미식파와 육식파의 갈등, 대단히 흥미로운 관점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한때 육식파가 이기다가 다시금 미식파에게 열광하는 시대가 아닐까. - P250

제주에 남은 몽골의 흔적 - P250

원 탐라총관부는 사실상 목장 경영을 위한 식민부서였다. - P250

몽골제국의 세계경영 차원에서 본다면 탐라의 훌륭한 초지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다. 맹수 없는 초원인데다가 격리된 섬이라 가축이 도망치지 못하니 이만한 목장터가아시아에 또 있을까. - P250

초원 내부의 역사는 최상의 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여러 투르크 몽골 집단들의 역사이자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한 복지에서 다른 목지로끊임없이 옮겨 다닌 그들의 이동의 역사이기도 했다.
-르네 크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 P250

최영 장군이 목호를 토벌할 때,
최후까지 저항한 목호가 3,000여 명에 이르렀음은 순수 몽골인뿐 아니라 몽골의 피를 받은 제주사람도 섞여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목호 토벌은 목축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일시에 사라지는 결과를 빚었다. 제주 말이 왜소해지기 시작한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P251

대몽골제국의 말은 제주도에만 남아 - P252

두 바퀴 마차에 210Kg의 짐을 싣고 4시간에 16km를 걸을 수 있는 괴력을 지녔다. 매일 32㎞씩 22일간연일 행군해도 견딜만큼 굽이 치밀하고 견고하다. 1901년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s. Genthe)는 제주마의 지구력을 높게 평가했다. - P254

열심히 키웠으면 내놓아라
원이 물러가자 마필은 고려에 귀속된다. - P255

되살려야할 검은쉐
제주 신화에서 검은 암쉐생산력과 주술력이 뛰어난 소로 간주된다 - P259

공동체성의 전범인 추렴과 몸국
제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축은 사실 도새기(돼지)다. - P264

환경 리사이클링의 전범인 돗통시
제주도 돼지문화의 으뜸은 역시 돗통시(똥돼지다. 통시(변소)에 보리짚을 깔고돼지가 똥을 누면 그 짚은 썩혀서 화산재 날리는 보리밭에 뿌렸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생성된 변을 돼지가 먹고, 거름으로 변한 보리짚은 보리밭에 뿌리고, 다시금 사람이 그 보리를 먹는 생태순환이 이루어졌다. - P269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으로서 1909년 중국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찍이 유기농업을 주목했던 프랭클린 히람 킹(Franklin Hiram King)이 남긴말을 떠올려본다.
동아시아에서 땅은 먹을거리와 연료, 옷감을 생산하는 데 남김없이 쓰인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가축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거나 입을 수 없는모든 것은 연료로 쓰인다. 사람의 몸과 연료, 옷감에서 나온 배설물과 쓰레기는 모두 땅으로 되돌아간다.
- 4천 년의 농부 - P274

구제역에서 인드라망을 생각하며 - P274

구제역 파동으로 수많은 소와 돼지를 산채로 구덩이에 쓸어 넣는다. 공장식축산이 불러온 문명사적 패배다. 불가의 연기론을 생각하고 인드라망(網)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덩이에 쓸어 넣는 만행에 나서는 중이다. 자연을벗삼아 뛰놀며 마소를 돌보던 옛 테우리를 생각하면서, 21세기형 테우리정신을정립해야할 순간이 아닐까. - P276

표류의 섬
조선시대에 베트남에 간 사연은 - P277

일기 청명하고 서풍이 솔솔 불어오면 순루로 돛을 달아 1일 내에도 가겠삽고, 중류에서 불..
행하여 초풍을 만나오면 안남 · 면턴 표박하여 구미에 가기도 쉽사오며, 만일 다시 불행하면 쪽박 없는 물도 먹고 고기 배에 이사도 하나다.
- 판소리 배비장전 - P277

표류기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실뿐 - P278

험난하기만 한 제주도 물목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배를 댈 만한 곳이 없었으므로 강풍이 불면 표류가 다반사였다. 세계 항해사 측면에서 볼 때 남해안은 좁은 물목에 불과했으나 조금한심한 항해술에 의지해야 했던 당대 사람들은 늘 두려움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며 항해했다. - P281

당신이 새라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요
표류의 국제성은 서양인 선박의 출현으로 보다 세계화된다. 인조 5년(1627) 9월에 네덜란드 선원 벨테부레(Weltevree, J. J)가 제주에 상륙했다. - P300

1688년 7월에 네덜란드로 귀환함으로써 13년간의 억류생활을 끝낸다. 하멜이제주 해안에 당도하여 심문을 받았을 때, 본국으로 보내달라는 표류민의 탄원을듣고서 박연의 통역을 통해 우리의 고관이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요. 그러나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않소. 그 대신 당신들을 보살펴 주고 식량과 의복도 지급해 줄 것이니, 이 나라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할거요.
- P300

신들의 섬
에게해에는 올림포스
제주도에는 본향당 - P305

이제 들으니 후임자가 도임한 다음날 크게 굿을 했다. 또 무당들이 빨리 신당을 복구하도록 하고 의생을 파했다. 백성들이 낙담하여 등소장으로 정지할 것을 청했으나,
오히려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또 무녀안을 만들어 전과 같이 편모를 거두고, 무당들은 재력을 내어 이미 폐했던 신당을 세웠다고 한다. 가히 한심스럽다.
이형상, 《남환박물》

굿당이되 굿당이 아니고, 절이 있되 절 아니다 - P306

풍속은 음사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은 언덕이나 낮은 언덕, 물가와평지,나무와 돌 따위를 모두 신으로 섬겨 제사를 베푼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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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톡, 파트너 - P490

2대 건문제(1398~1402)를 쿠데타를 통해서 전복하고 3대영락제(1402~1424)가 제위를 차지했다. 내정에서는 홍무제의 방침을 거의 대부분 계승하면서 황권을 강화하였다. 권력에대한 황제의 강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건문제가영락제의 정변으로 축출됐을 때 건문제의 스승 방효유는 끝까지 항거하다가 능지처참당했고, 그의 가족, 친구, 제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847명이 몰살당했다.(브룩, 183~184) 영락제는 방효유의 친족, 외족, 처족을 비롯한 구족 그리고 여기에 더해 문인, 동지, 그의 서적을 탐독한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고, 집안 여성들은 노비나 첩, 기녀로 보냈다. ‘십족을 멸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 P503

나는 이곳 사람들보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이들이 하는 노래는 목구멍에서 끄집어내는툴툴거리는 소음인데,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개 소리보다도 더 짐승 같다.
(Graham-Campbell, 81~83) - P550

그러므로 바이킹이라는 말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유의 삶의 방식을가리키는 말이었다. 꼭 북유럽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떠돌아다니며 약탈 공격을 하거나 혹은 다른 지배자의 용병 역할을 하는 등 삶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적 방식을 사용하는 인간들‘을 뜻한다. 따라서 북유럽 내에서도 일부 용맹한 모험가들만 바이킹일 뿐이다. 해외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은사람들은 농사와 목축에 전념했으며, 이들은 바이킹과는 거리가 멀었다. - P552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어릴 때 날이면 날마다 청어가 올라와 불평을 하자 그의 아버지가 "청어에 대해 함부로말하지 말아라. 청어가 없었다면 우리 유대인도 살아남지 못했어" 하고 말했던 사실을 소개한다.(민츠, 21~22) -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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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속신앙에서 동자는 생명의 상징이었다. 육지의 무덤에 문인과 군인권력을 상징하는 문관과 무관을 세워놓고 살아생전의 권력을 죽어서도 재현하는 풍경과 달리 제주도 무덤은동자가 지킨다. 제주도 동자석은 제주의 혼이 깃든 돌 미학의 압권이다.
- P217

바람처럼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표징 동자석 - P214

비승비속의 마을로 간돌미륵 - P217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신 전통 - P220

제주도 마스코트와 홍보책자 겉옷도 으레 돌하르방이 점령하기 마련이다. 고리바쵸프가 제주도에서 30억 달러 원조 약속을 거머쥐고 모스크바로 되돌아 갈때, 비행기에 동승한 주인공도 돌하르방이었다. 이래저래 국제 명물이 되었다.
제주에서는 꿀단지조차도 돌하르방 모양새다. - P220

하르방은 할아버지라는 뜻이므로 돌하르방은 ‘돌 할아버지‘다. 조선시대, 아니면 고려시대, 그것도 아니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졌을까. 정답은 일반상식을 뒤엎는다. 돌하르방의 공식화는 물과 수 십년 안짝, 해방 이전만 해도 돌하르방이란 말은 없었다. 1971년 8월 20일, 제주도 문화재위원회에서 민속자료제2호로 지정할 때 ‘돌하르방을 갑론을박 끝에 문화재 공식명칭으로 쓰면서부터다. - P220

문화적 풍향계인 마을상징물 돌탑 - P224

색이 다르고 질감이 다르면 돌챙이의 손맛도 다르다 - P230

판에 박은 가짜문화에서 전통의 법고창신으로 - P233

테우리의 섬
조랑말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다. - P237

목호들은 말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말의 걸음걸이나 식사까지도 조절하면서 다루었다. 목호들은 양마법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몽골말의 순종을 보존하기위해 과하마와의 상란(亂)을 금지했다. 원나라가 물러난 뒤에 제주도의 말은 모두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양마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며, 멤찮은 말이라면 모두 육지로 공출해갔으며, 심지어 과하마와 상란한 결과에서 초래된 일이다.
- 이익, 《성호사설》 - P237

한라산 목동 테우리 - P238

카우보이 모자와 정동벌립 - P243

육식파와 미식파의 대결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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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델
콜라(촐라)의 영토라는 의미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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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수를 저장했다가 쓰고, 해안마을에서는 통물을 이용했다. 용천수는 일부가 어승생, 영실 같은 산악지대에서도 용출되지만 제주 마을이 해변가에 집중된 이유도 알고보면 물 때문이다.  - P150

제주도에서 물은 성지의 물이며 신들의 좌정처가 된다. 풍수신앙에서 말하는 생수가 있는 물혈(穴)이기도 하다. - P150

용천수를 가능케 하는 곶자왈은 그 자체로 거대 물탱크다. 마을사람들은 용천수가 솟는 샘을 물통이라 부른다. 물통은 나름의 관리시스템을 지닌다. - P150

빗물 저장 방식 중에 춤이 재미있다. 머리카락처럼 엮은 띠를 뒤뜰나무에 묶어 항아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한 장치인데 괌을 여행하다가 원주민 차모로족이 동일 방식으로 쓰고 있어 놀라웠던 적이 있다. 세계 대부분의 화산섬은 물문제를 안고 있다. 차모로족이나 옛 탐라인이나 춤은 선사 고대 이래의 오랜 풍습이었을 것이다. - P151

손쉽게 넓은 땅을 확보하려는 탐욕은 계속된다. 시애틀 추장의 말대로 먼데서 들리던 포크레인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고 곳곳에서 숲이 절단난다. 성스러운 숲이 인간의 냄새로 꽉찰 때 더 이상 잔목숲을 찾을 수 없으리라. - P153

이쯤에서 숲의 멸망이 결국 인류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 서문에 덧붙인 레스터 브라운(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의 문명사적 경고 - P153

잠녀의 섬
해녀 한명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 P161

고기 그물에 걸려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정신 없이 친구를 업고 묻까지 헤엄쳐 와서물을 토하게 한 후 도로로 올라가 차를 세워서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잠수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바다는 그녀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비정한 바다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같이 웃고 같이 일하던 친구를 한 순간에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 《바다를 건넌 조선의 해녀들》 - P151

본디는 해녀가 아니라 잠녀 잠수
하도리 해녀박물관을 들어서면 벽면에 해녀를 둘러싼 속담들을 써놓았다. 속담을 찬찬히 읽어보면 해녀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투혼이 엿보인다. - P162

해녀의 잠수굿에서는 반드시 사람을 일일이 호칭하는 ‘열명‘을 행한다. 굿하는 도중에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호명된 사람이 물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끔 신에게 기원한다. 김녕리 잠수굿을 연구한 강소전에 의하면, ‘열명이야말로 잠수굿을 주최하는 주민들이 누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라고 했다. - P170

바다가 집이요, 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 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 장한 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위대함을 예찬하면서 해녀 노동에 대한일상적 착취를 감추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P173

분노의 불길이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는 지금까지 해녀의 역사로 남았다. 해녀 항쟁은 세계에 유래 없는 것으로 세계해양사 및 여성운동사, 사회운동사 등의 서술에서 일맥을 당당하게 차지해야 한다. - P177

해녀들의 휴게소, 불턱 - P177

불턱은 제주여성을 강하게 만들어내는 교육장이다. 한 마을의 여성들이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험한 물질을 하고, 휴식시간에는 불턱모여 수다도 떨면서 온갖 세상의 소문을 수집 평가하는 공개 포럼이 일상적으로 열렸다. 한 두해도 아니고 일생을 함께 하면서 불턱에서 쌓아올린 여성만의 공동체적 의식이야말로 제주 여성이 길러지는 기반이다. - P179

해녀는 살아있는 해양문화박물관 - P179

제주해녀에게도 우리식의 ‘바다의 서사시‘를 헌정할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야말로 인류문화사에 남을 ‘바다의 장인‘, ‘자연의장인‘ 이기 때문이다.
- P189

흑조의 섬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들 - P191

옛 사람이 생각한 바다 개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 주위에 남아있다. 바다는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육지 간의 무역은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만 가능하다. 육지 위로 부는 바람 조차도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자라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신비스러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생명의 희미한 기원을포함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많은 변환 끝에 같은 생명의 죽은 껍질을 받아 들인다.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결국에는 바다, 즉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돌아가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우리를 둘러싼 바다》 - P191

폰페이 무태장어에서 천지연 무태장어까지 - P193

태평양민족지 적도의 침묵 (2007)을 펴낸 적이 있다. 조사를 위해 미크로네시아 폰페이섬(Ponpei)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귀포 천지연에 살고 있는 무태장어와 똑같이 생긴 놈을 만났다.
폰페이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하구에는 으레 장어가 살고 있다. 원주민은 뱀장어를 먹지 않는다. - P193

서귀포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는 적도 뱀장어와 같은 열대성 물고기다.
서귀포는 일본 나가사키와 함께 무태장어가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난류따라 북상해 오기 때문에 천지연에 웅크린 무태장어가 서해나 동해로 올라오는경우는 없다. - P194

적도에서 만난 똑같은 무태장어를 제주도까지 밀어붙인 힘은 두말할 것 없이 쿠로시오의 힘이다.
- P194

쿠로시오 난류니 대마 난류니 하는 학술용어는 모두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여 인정받은 명칭이다. 학술명칭으로 전 세계가 쓰나미를 씀과 같은 이치다. 
- P194

쿠로시오 원류는 북적도(赤道) 해류다. 
타이완 동측에서 오키나와 열도, 아마미 제도로 북상하여 가고시마(鹿兒島) 아래에서 동한난류와 갈라진다. 
아랫가닥은 동측으로 향하여 시코쿠(四國)로 향하며, 
윗 가닥은 제주도와 남해안은 물론이고 서해 · 동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 앞바다의 대륙붕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올라간 쿠로시오 해류는 오호츠크해와 베링해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오야시오 한류와 만나 대륙에서 멀어진다. - P194

다네가시마 바닷가 모래밭에서 문주란을 만났다. 동일한 문주란이 제주도까지 흘러와서 뿌리를 내렸다. 해류는 이처럼 조총 같은 문명이나 문주란 같은 생물체를 부지런히 실어보낸 것이다. 
- P195

온난하며 습기를 머금은 이들 쿠로시오야 말로 남방으로부터의 문명교류 루트이자 배를 떠밀어 내는 동력의 근원이었다. 바람이 대양 횡단의 동력이라면, 해류는 또다른 동력이었다. - P195

쿠로시오가 흘러 흘러 만들어낸 바닷길
세상에는 길도 많다. 길은 육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 P195

제주도에 막중한 영향을 미친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을 쿠로시오 로드‘라 명명해본다. - P197

로드1. 문주란과 선인장
제주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쿠로시오 흔적 중의 하나가 문주란이다. - P197

로드2. 방어와 고래, 거북이, 각저귀
모슬포는 방어로 유명하다. 해마다 12월이면 모슬포항에서는 방어축제가 한창이다. 쿠로시오를 따라서 올라온 방어가 한 달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 방어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북쪽으로, 가을에서 겨울에는 남쪽으로 남북회유를 거듭한다.  - P198

로드3. 돼지와 검정쉐
돼지고기도 남방문화다. 혹자는 순대를 예로 들어 몽골지배기에 몽골문화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오래된 도시의붓(Ubud)에서 돼지창자에 돼지피를 버무려 넣은 순대를 먹어본 적이 있다. 오키나와의 돼지고기를 얹어주는 국수와 제주도 국수, 나아가 돼지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똥돼지로 지칭되는 돗통시문화 전체가 남방문화의 소산이다. - P202

제주도도 돼지고기 문화권이다. 제주사람이 즐겨 먹는 돔베국수와 오키나와 국수에 똑같이 돼지고기가 올라간다. 미크로네시아에서 부터 북마리아나 제도, 오키나와 제도,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는 광대한 태평양문화권이 돼지고기문화권이다. 환태평양에 드넓게 퍼져있던 돼지고기문화의 강력한 보루 중의 하나가 제주도인 것이다. - P202

돼지와 더불어 검정쉐(흑우)도 중요하다. 검정가 사라져서 종축장의 번식용만 정책적으로 사육되고 있으나 예전에는 검정쉐가 제주도에서 상당수 있었다. 검정쉐국가적 제사에 쓰던 의례용이기도 했다. 검정는 두말할 것 없이 남방의 소다.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대마난류의 영향권인일본 서부 오키(被) 제도에도 흑우가 특산물이다. 이 역시 쿠로시오 문화의 한가닥이다. - P202

로드4. 해녀
제주문화를 상징하는 해녀도 원래 쿠로시오 문화다. - P204

로드5. 뱀신앙
제주도 뱀신앙도 남쪽에서 왔다. 제주에서는 뱀을 조상신, 당신, 일반신으로 두루 모신다. 뱀신은 안칠성, 밧칠성 등으로 모셔진다. 김정은 이런 기록을남겼다. - P204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탐라기행》에서 ‘고대에는 고대의 다이너미즘이 있었다‘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일본 극우주의자의 칭송을 받는 국민작가인지라불편하기는 하지만, 그의 이 지적은 경청할만하다고 본다. 제주 해녀가 일본 해녀에게 잠수어법을 가르쳤다는 식의 문화전파론적 우월적 발언보다, 아시아인상호 간에 고대적 마음의 넓이를 좀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것일까라는, 저자의 질문법에 동의한다. - P204

쿠로시오 로드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은 인종의 전파다. 두말할 것 없이 제주도민은 북방계열로 알려진다. 그러나 남방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인 DNA 분석에서 북방계, 남방계가 혼재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P206

한국인의 지역 및 역사 인식은 주로 북방 사고의 틀에 종속되어 있다. - P209

더군다나 타이완과 오키나와를 예로 든다면, 이들 섬은쿠로시오 해류권의 아열대성 해양문화를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제주도 역시 이들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권이다. 쿠로시오 해류권역이라 했을 때, 이는 국민국가 차원이 아니라 타이완, 남중국, 오키나와, 일본 남서부는 물론이고 필리핀 등서태평양 일원의 해류권역을 포괄한다. - P211

제주도는 쿠로시오 문화권의 북방한계선이다. 제주문화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본토의 북방문화, 남쪽 오키나와와 일본의 아마미오시마 등에서 올라오는 남방문화가 결합된 상태다. 우리들 북방적 사고에 남방의 사고를 결합한다면, 제주도가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 P211

돌챙이의 섬
제주의 혼이 깃든
미학의 압권은 돌문화 - P213

옹중석(石)은 제주읍의 성 동서남(東西南) 삼문(門)  밖에 있었고, 영조 30년에 목사 김몽규(金夢奎)가  창건했으나, 삼문이 헐림으로 인해, 2좌는 관덕정 앞에, 2좌는 삼성사입구로 옮겼다.
담수계(淡水), 《증보탐라지(誌)》 - P213

바람처럼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표징 동자석
육지에 석수쟁이가 있다면 제주에는 돌챙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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