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구호의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학교나 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무한 경쟁의 법칙, 정글의 법칙이라고 배운다. 이런 세상에서의 생존법은딱 두 가지. 이기거나 지거나, 먹거나 먹히거나다. 그러나 구호의세상은 경쟁의 장(場)이 아니었다.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었다. 세상에는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같은 사람이 어떤 때는 강자였다.
가, 다른 때에는 한없는 약자가 된다. 이렇게 얽히고설켜 있으니서로 도와야 마땅하다는 것이 구호 세상의 법칙이었다. 멋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졌다. - P11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때문이에요." - P13

그 의사의 다음 말도 떠오른다. 그는 구호 일은 어떤 교육을 받고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중요하다고 했다. 거칠게 이분화한다면 이런 게 아닐까. - P13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 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저런 초자가 어떻게 이런 현장에 왔나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니 이 일을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된 나와 20년 차베테랑을 비교하지 말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거야. - P17

앗살람 알레이쿰! (당신에게 평화를 빕니다!) - P18

: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운다. - P19

그러나 다음 순간 이런 배짱이 생겼다.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 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 P20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P21

우리 단체는 유사시, 차량으로 두세 시간 거리인 이란으로 대피 및 철수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P22

현재 우리 단체는 헤라트에서 식량 확보 및 물자 배분, 영양죽 사업, 그리고 난민촌 내 진료소와 학교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가운데 한국은 영양죽 사업, 즉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영양죽으로 살려내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 P24

이곳은 파르시라는 페르시아 말을 쓰는데, 비야는 이곳말로 ‘여보세요‘, 빨리 해요, 이리 오세요‘ 등 수십 가지의 뜻을 가진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다 - P26

헤라트는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로, 중국 인도 아랍 대상들이 만나는 경제와 문화의 교차로였다. 천 년 전 세계 지도에 로마, 바그다드, 시안(西安)과 함께 나타나는 곳도 헤라트다.
또 15세기 막강한 티무르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라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파란 타일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사원이 그때의 찬란함을 대변해준다. - P27

관계의 습관이라는 것이있다. 어떤 일 혹은 어떤 사람과 어떻게 처음을 시작하느냐에 따라설정되는 관계의 틀 말이다.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반트(Levant, 원래 ‘해가 뜨는동쪽 지방을 의미하는 말로 지중해 동부 지역을 가리킨다) - P98

이집트어에서 돛을 사용하다‘는 곧 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 P99

돛의 사용은 이집트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를 이용해 북쪽으로 내려가고 뜻을 이용해 남쪽으로 올라가는게 가능하니, 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 간 연결이 원활해져서 왕국 통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Paine, L., 40~41) - P99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블로스 또한 흥미로운 곳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이집트와 수천 년 동안 교역을 수행했다. 이 도시에서는많은 이집트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집트의 기록에는 이 도시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특히 배후 지역의 레바논삼나무 수출이 이집트에 매우 중요했다. 비블로스 상인들은 이집트로 레바논삼나무를 수출하는 대신 파피루스를 구입해 에게해연안 지역에 되팔았다. - P111

파피루스(papyrus)라는 말은 이 도시의 그리스식 이름(Byblos, Byblinos)에서 나왔으며, 성경을뜻하는 Bible 이라는 단어도 비블로스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파피루스로 만든 책이라는 의미였다. - P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나다 로키로 여행가야 하는 10가지 이유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캐나다 로키는 국립공원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일반적인 국립공원의 경우 대부분 자연이나 문화, 역사 가운데 한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캐나다 로키는 어느 하나로 말할 수 없다. 역사와 자연이 한데 어울려 여행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캐나다 로키에서 대자연의 웅장함은 기본이다. 한 달을 머물러도 다 돌아볼 수 없을 만큼 광대하다. 사람이 직접 올라설 수 있는 빙하가있고, 빙하가 녹은 물이 고여 만든 옥빛 호수가 있다. 호수를 빠져 나온 물이 폭포가 되어 대지를 진동시키며 흘러가는 강도 있다. 여행자가 찾아가는 산봉우리는 하나같이 조각칼로 다듬은 것처럼 인상적이다. 영국의 산악인 에드워드 월퍼가 스위스를 50개 합쳐 놓은 것 같다"고 찬사를 보냈을 만큼 캐나다 로키의 자연은 경이적이다.
- P16

2. 동화속 마을이 있다.
캐나다 로키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00여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 횡단 철도 CPR 공사 중에 온천이 발견되면서 캐나다 로키는 휴양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지금도 캐나다 로키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불리는 밴프 핫 스프링스 호텔Banff Hot Springs Hotel)  산증인이다. 그 후 재스와 레이크 루이스 같은 마을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이 마을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엽서에서 보던 그 풍경 그대로다. 여행자들은 캐나다 로키의 황홀한 풍경 속에 들어앉은 마을들을 거닐며 지상의 평화를 즐긴다.
이 마을들은 겨울이 오면 산타마을로 변신한다. 밤새 소복소복 내린 눈은 온 세상을 동호의 마을로 구놓는다. - P17

3. 동물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캐나다 로키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그곳에서 수수만년 살아온 동물들이다. 이들이 사는 땅에 사람들이 여행자가 되어 잠시 머무르다 가는 것이다. 캐나다 로키에는 동물이 많다. 언제 가더라도 동물의 왕국에 나올 법한 덩치 큰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사파리가 무늬만 그럴싸하고 실재로는 사자는 코빼기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캐나다 로키는 다르다. 여행자의 대부분은 사슴이나 엘크 같은동물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회색곰이나 여우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는 동물들이 도로를 따라 거닐거나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어 여행자들의 넋을 빼놓는다. 특히, 밴프의 터널 마운틴 빌리지 Tunnel Mountain Village나 재스퍼의 휘슬러Whisters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면 아침에 텐트 문을 열었을 때 사슴이 풀을 뜯다 말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18

4. 빙하의 세계와 만나다캐나다 로키의 빼어난 자연미는 빙하가 빚은 것이다. 캐나다 로키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가 있다.
이곳들은 하나같이 빙하가 있던 곳이다. 빙하가 녹은 자리에 호수가 생겼다. 이 호수들은 하나같이 옥빛으로 빛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이토 호수Peyto Lake의 물빛이나 에메랄드 호수Emerald Lake의 눈부신 푸른빛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이 호수들이 옥빛으로 빛나는 것도 역시 빙하의 침전물 때문이다. 캐나다 로키에는 거대한 빙하들이 있다. 이 가운데 컬럼비아 대빙원 Columbia lcefielde에서는 빙하 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다. 바퀴가 어른 키보다도 큰 거대한 설상차를 타고 가 2만 년 전에 형성된 빙하 위에 설 수 있다. 또 엔젤 빙하 Angel Glacier는 빙하에서 떨어진 얼음조각이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야성미를 볼 수 있다. 빙하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헬리콥터를 이용한 투어에 나서는 게 가장 좋다. - P19

5. 황홀한 액티비티가 있다.
캐나다 로키는 여행지가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원하는 모든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트레킹에서 낚시, 승마, 카약, 자전거, 래프팅, 헬리콥터 투어, 스쿠버 다이빙, 보트 크루즈, 심지어 암벽등반도 할 수 있다. 며칠간의 여정에서 적어도 한두가지 이상의 액티비티를 해봐야 캐나다 로키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스키나 설피를 신고 걷는 스노우슈잉Snowshoeing, 사슴이 끄는 마차를 타는 슬레이(Sled, 아이스하키, 스케이트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드라이 파우더로 불리는 자연설에서 즐기는 스키는 겨울 캐나다 로키의 진수로 평가받는다. - P20

6. 트레킹, 캐니디언로키의 속살을 만나다캐나다 로키는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이곳은 ‘절대비경을 제외하고는 차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적이다. 차로 갈 수 없는 곳은 걸어서 찾아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여행자들의 대부분은 트레킹을나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캐나다 로키는 어디서 보는가에 따라 그 웅장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에서 호수와 빅토리아 빙하를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지만 반대로 비토리아빙하 앞에 서서 호수와 호텔을 바라보는 것도 짜릿하다. 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즐거움도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물론,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며 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더하는풍경을 감상하는 산책 수준의 트레킹도 빼놓을 수 없다. 트레킹 코스는 짧은 곳은 10분, 긴곳은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곳도 있다. - P21

7. 캠핑의 천국이다.
캐나다 로키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캠핑이다. 캐나다 로키에는 33개의 캠핑장이 있다.
캠프 사이트만 4,596개를 헤아린다. 한 사이트에 2명만 머무른다고 해도 9,0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숙박할 수 있다. 단일지역에 이처럼 많은 캠핑 사이트를 가진 곳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 캠핑장과 캠핑장의 거리는 최대 20~30km. 인기가 높은 여행지에는 항상 캠핑장이 있어 캠핑을 하면서 캐나다 로키를 돌아볼 수 있다. 캠핑장의 시설도 수준급이다. 대형 캠핑장의 경우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을비롯해 캠퍼들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캠핑장을 설계, 캠핑이 가난한 자들의 선택이아닌 자연과 동화되기를 원하는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 되게 했다. 따라서 여름이면 캐나다 현지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캠퍼들로 캠핑장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 P22

8.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라.
캐나다 로키의 진정한 매력은 여름이다. 위도가 높은데다 서머타임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오후 10시까지도 밖이 환하다. 하늘은 맑고 쾌청한 날씨가 지속된다. 햇볕은 따갑지만 나무 그늘만 찾아들면 서늘한 기운이 휘감는다. 해발 1,500m 이상 고산지대의 쾌적한 여름은 여행을 위한 최적의 날씨를 선사한다. 그러나 두 번째 캐나다 로키 여행을 꿈꾼다면 겨울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화창한 여름은없지만 온 세상이 설국으로 변한 동화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스키를 타거나 얼어붙은 레이크 루이스호수에서 설피를 싣고 산책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또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나 샤또 레이크 루이스 호텔처럼, 돈이 있어도 못 자는 특급 호텔에서의 하룻밤도 기대할 수 있다. 캐나다 로키의 겨울은 산타의 마을을 상상한다면 딱 맞는다. - P23

9. 운전이 편하다.
외국에서 처음 운전을 하게 되면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지리도 모르고, 교통법규도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크다. 여기에는 렌터카를 빌리고 반납하는 데서 오는 언어적인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그러나 막상 캐나다에서 운전을 해보면 참 쉽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특히, 캐나다 로키에서는 앞으로 갈 줄만 알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가는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 TransCanada Highway만 타면 밴프까지는 외길이다. 또 밴프~레이크 루이스~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재스퍼로이어지는, 캐나다 로키를 관통하는 도로도 거의 외길이다.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또 대부분의 도로는굴곡 없이 곧장 뻗은 곳이 많다. 운전 중에도 시야가 탁 트여 있어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 또 캐나다인들은 운전매너 좋기로 정평이 났다. 단, 한국과 다른 캐나다의 교통법규는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 P24

10. 가장 안전한 여행지다.
위험하지 않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그 위험성 때문에 일부러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캐나다 로키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여행지다. 범죄는 주로도심에서 발생하며, 집 없이 떠도는 부랑자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들이 국립공원까지 일부러 찾아오지는 않는다. 밴프나 레이크 루이스, 재스퍼 같은 캐나다 로키의 중심이 되는 마을에서는 눈을 씻고봐도 부랑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유럽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좀도둑도 흔하지 않다. 그만큼 이곳은 대자연의 깊은 곳에 있다. 물론,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있긴 있다. 흑곰이나 짝짓기철의 엘크 같은 야생동물이다. 그러나 적당한 관찰거리만 유지하면 위험에 처할 일이 없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정표에도 없고 지도는커녕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갤러리를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돌담 늘어선 마을을 몇 바퀴째 돌다가 렌터카 백미러에 문득 손바닥만 한 문패가 들어왔다. ‘김영갑 갤러리‘ 라고 쓰여 있었다.
- P241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이름표만 걸었지요. 용케도 찾아오셨네요. 제주 토박이도 한참을 헤매는데." 갤러리 입구에 놓아둔 나무의자에서 그는나를 맞았다. 각오했던 것보다 병색이 짙었다. - P241

그는 말을 할 때마다 오른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입을 움직이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말을 하면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듣기 어려웠지만 다 알아들은 것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찾아갔을 때 김영갑은 오래전에 시한부 판정을받은 뒤였다. 모든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치유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준비하던 때였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우리에게는 루게릭병으로 더 알려진불치병이다. 10만 명 중 한두 명이 걸리고, 발병하면 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병이다. 병인을 알 수 없어 치료약도 없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온몸의 근육을 지켜보며 죽어가는 저주 같은 병이다. 지독하고 잔인한 형벌이다. - P241

김영갑은 195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육남매 중 막내였다. 월남 갔다 온 형님이 갖고 온 카메라를 갖고 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의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혼자 돌아다녔다. 제주와 처음 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었고, 제주에 정착한 것은 1985년이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건 1990년대 중반이었고, 확정 판정을 받은 건 1999년 이었다. 2002년 삼달리의 폐교를 빌렸고, 2003년 6월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 P241

"만일 처음부터 (갤러리) 완성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만, 한 주만, 한 달만, 내 힘이 닿는 데까지만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온몸의 기력이 소진해 카메라를 들기는커녕 손가락 힘이 없어 셔터조차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앞뒤로 움직일 수도 없다. 잔인한 통증 때문이다. 죽을 넘기기에도 힘에 부친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하루는 너무 더디 간다."
- P243

형님이 부탁한 에어컨은 비쌌다. 갤러리를 다 감당하려면 에어컨이 커야 했다. 나는 권혁재 선배와 상의했고 각자 돈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권선배가 그 큰돈을 혼자 부쳤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선배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 P243

"비단 치마에 몸을 감싼 여인처럼 우아한 몸맵시가 가을 하늘에 말쑥하다.
빼어난 균제미에 있어서는 구좌읍 일대에서 단연 여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 P255

"사진은 그림과 같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자신이 받은 인상을 옮기듯이, 사진작가도 자신의 느낌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물론 작업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화가는 캔버스에서 햇살과 바람을 마음껏 만들어내지만 사진은 그렇게 못하지요. 그래서 저는 기다립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내가 상상하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구름을 기다리고 햇볕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정취 있는 호젓한 길이 장차 휴양림으로 개발되는 날, 넓혀지고 계단이 놓이고 지나치게 손질이 가해져서 멋대가리 없는 신작로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걱정이 태산이다. 숲을 걱정하는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이 근심과 염려의 대상이 절물오름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절물오름은 있고 절물자연휴양림은 없던 시절, 스스로 오름 나그네라 불렀던 제주 사내는 절물오름을 에운 숲에 휴양림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영 마뜩잖았다. 김종철 선생이 돌아간이태 뒤 절물자연휴양림이 개장했다. 다행히도 선생의 걱정과 달리 절물오름 오르는 길은 여전히 호젓하다. - P154

탐방로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 "반기문 산책로‘다. 원래는 생이 소리길이었는데 이름이 바뀌었다(생이‘는 제주어로 새란 뜻이다). 충청북도 음성 출신인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절물과 무슨 인연이 있었나 알아봤더니, 2009년 휴양림을 찾은 당시 반 총장이 생이 소리길을 걷고서 "다 좋은데 길이 네무 짧다"고 한마디 했단다. 이후 777미터였던 생이소리길은 3.6킬로미터로 들어났고, 길에 유엔 사무총장 이름을 붙였단다. 음……. 큰일 하셨다. - P155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삼나무 잎은 끝이 뾰족하고 편백나무 잎은 끝이 뭉툭하다. - P156

민달팽이도 있었다. 지렁이인 줄 알았는데 대가리에 두 갈래로 나온 촉수가 있었다. 오래전 읽은 시구가 생각났다. 어느 시인이 맨몸의 민달팽이가안쓰러워 배추 잎사귀를 덮어줬다. 민달팽이가 잠시 멈칫거리는 듯싶더니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리더란다. 인간의 호의를 뿌리치는 민달팽이를 보고 시인은 놀랐다. 그리고 "치워라, 그늘!" 이라고 소리치는 시를 썼다(김신용, 「민달팽이」 부분), 등에 집을 짊어진 삶은 버거워도 아늑하고, 맨살로 세상과 부딪히는 삶은 위험하나 자유롭다. 치워라, 그늘! 나도 젊은 날에는 이 호기로운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 P158

곶자왈은, 말하자면 제주 천연림이다. 흔히 숨을 뜻하는 제주어 ‘곶(고지)‘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어 ‘자왈‘ 이 합쳐진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곶자왈은 제주 고유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도 "곶자왈이 뭐과?" 하고 되묻는 형편이다. 곶자왈은 신조어다. 제주방언을 최초로 연구한 석주명 1908~1950년 전생의 『제주도방언집에도 곶자왈이라는 낱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곳은 숲보다 산으로, 자활은자갈이 아니라 숲으로 더 많이 쓰였다. 제주도청이 1995년 발간한 『제주어사전」도 곳을 ‘한라산 아래 펼쳐진 숲‘으로, 자왈을 ‘나무와 넝쿨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곳 이라고 정의한다. - P168

곶자왈은 의외로 1990년대 이후 화산지형을 연구한 지질학에서 출발했다. 지질학에서는 곶자왈을 ‘중산간지대에 있는 투수성이 좋은 용암류지대‘ 라고 이른다. 이와 같은 지질학의 개념이 ‘용암 암괴 위에 있는 숲이나 덤불‘ 이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쉽게 풀이하면 곶자왈은 화산암이 깔린 숲이다. 딱딱한 용암지대 위에 오랜 세월 흙이 쌓이고 그 흙에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룬 지형이다. 제주 특유의 화산용암 식생지대라 정의할 수있겠다. 자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갈을 뜻하는 제주 방언은 자왈이 아니라 작지다. 저지리의 작지곶자왈은 자갈이 많은 곶자왈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작지곶자왈에는 유난히 작은 자갈이 많았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