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콜니코프는 광장으로 나섰다.
영혼 속에서 하나의 불꽃이 타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불길이 되어 그를 휘감았다.
마음속에 있던 것이 모두 한꺼번에 잦아들더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는 광장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까지 몸을 숙여 절을 하고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이급 징역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소냐가 있었다.
그녀의 사랑과 그가 귀 기울이는 자기 내면의 소리 덕분에 어렴풋이 자신의 죄를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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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의식과 심오한 마음에
고통은 늘 필연적인 거야.
내 생각에 진정 위대한 사람은
이 세상의 위대한 슬픔을 느껴야 해.

몹시 무더운 칠월 초 해 질 녘 무렵, 라스콜니코프는 세 들어 사는 골방에서 나와 망설이듯 천천히 K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밀린 하숙비 때문에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충격을 받아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사람 손에 달려 있는데, 겁먹은 탓에 모든 걸 그르친다.
과연 그 일을 해낼 것인가. 정말 그 일을 하려는 것인가!’

‘남에게 해만 끼치는 한 사람의 목숨으로 백 명의 생명을 맞바꿀 수 있다면?
한 번의 작은 죄를 수천 가지 선행으로 씻을 수는 없을까.’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사람은 선과 악의 경계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벌레에 지나지 않는가, 진정한 인간인가.
선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하는가.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길을 나섰다.

라스콜니코프는 외투 안에 감춘 도끼를 꺼내 노파의 머리를 내리쳤다.
노파가 가는 비명을 지르며 푹 주저앉았다.
‘그저 벌레를 죽였을 뿐이다. 아무 쓸모도 없고 더럽고 해롭기만 한 벌레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와 마주쳤다.
라스콜니코프는 겁에 질린 그녀에게도 도끼를 휘둘렀다.

그는 관짝 같은 방 안에서 열병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가족을 위해 몸을 팔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소냐의 품속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숨졌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의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건넸다.

소냐는 그에게 그가 더럽힌 땅 위에 입을 맞춘 뒤, 온 세상을 향해 절을 하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그의 죄를 고백하라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다시 생명을 보내 주실 거라고.
소냐는 말없이 성호를 긋고 라스콜니코프에게 삼나무 십자가를 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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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에게는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었다. 몸소 행하면서 공손했고, 윗사람을 섬기면서 공경스러웠고, 백성을 양육하면서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리면서 의로웠다."

자산이야말로 군자인 신하가 갖춰야 하는 덕목을 모두 갖췄다는 칭송에 해당한다. 행기이공行己以恭, 사상이경事上以敬, 양민이혜養民以惠, 사민이의使民以義가 그것이다.

"정나라는 외교사령外交辭令을 만들 때 먼저 비심裨諶이 초안을 만들고, 유길游吉이 그 내용을 검토하고, 자우子羽가 이를 다듬고, 마지막으로 동리東里에 사는 자산이 윤색을 하여 완성시켰다."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귀신이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만물의 이치를 꿰지 않고는 그 뜻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벼이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힐난했다.

"사람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자로도 물러서지 않았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공자가 거듭 책망했다.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주희가 점복을 맹신하며 괴력난신을 완전히 뒤집어 해석할 때 이미 그런 불길한 조짐이 드러났다. 성리학은 윤리・도덕은 물론 귀신과 관련한 괴력난신과 사후의 세계까지도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이를 실학實學이라고 불렀다.

이는 내심 괴력난신을 꺼린 공자의 학문을 허학虛學으로 간주한 결과다. 주희가 실학 내지 이학 및 도학 등으로 칭한 성리학이야말로 동서고금의 사상사를 통틀어 허학의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비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덕을 닦느니만 못하다."

하나는 맹자가 주장한 이른바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이다. 하늘의 이치를 뜻하는 천도가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뜻하는 윤리・도덕적인 인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순자가 얘기한 이른바 ‘천인상분설天人相分說’이다. 만물이 순환하며 운행하는 천도의 이치는 자연의 법칙이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치란 등의 순환 이치는 인간 자신의 현우賢愚와 근만勤慢 등에 따른 것으로 천도와 인도는 서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천인합일설은 진리의 절대성을 전제로 한 도덕철학의 입장이고, 천인상분설은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매우 과학적인 접근임을 알 수 있다.

관중을 비롯해 공자와 순자가 바로 이런 입장에 서 있었다. 인간의 이지理智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결과다. 이들은 동서를 통틀어 인간학 내지 인문학의 효시에 해당한다.

중국이 아편전쟁을 계기로 반식민지의 길로 치닫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도 천인상분설의 과학 정신을 이단시한 후과로 볼 수 있다.

묵자는 원래 유가를 공부하다가 도중에 독립해 묵가를 완성한 인물이다. 공자의 ‘인’에 ‘의’를 접목시킨 것은 그의 창견이다. ‘인의’가 『논어』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는 데 반해 『묵자』에 29번이나 나오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맹자는 불의한 군주는 일개 사내에 불가하므로 보위를 뒤엎고 주살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사상 최초의 폭군방벌론이다. 묵자는 천지를 거스른 나라와 백성에게 천화가 떨어지는 근거로 의를 들먹였다. 겁나는 얘기다. 제후들이 볼 때 천화가 반드시 제후의 머리 위에만 떨어지는 게 아닌 만큼 일면 여유를 보일 여지가 있다.

우리 자제를 자산이 잘 가르쳐 줬네 我有子弟, 子産誨之
우리 농토를 자산이 크게 늘려 줬네 我有田疇, 子産殖之
자산이 죽으면 누가 그 뒤를 이을까 子産而死, 誰其嗣之

"누가 자산을 죽이면 기꺼이 도와주리라"며 원성을 퍼붓던 정나라 백성들은 3년 후 자신의 자식들을 잘 이끌고 재산을 크게 불려 준 자산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으며 그의 사후를 염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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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맹자』 「진심 하」 편에서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귀민경군貴民輕君’ 사상이다. 안영의 행보와 닮아 있다.

"어진 사람의 말은 그 이로움이 얼마나 광대한가. 안자의 한마디 말에 제경공이 형벌을 줄였다."

"오직 예禮만이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예에 부합하면 사적으로 베푸는 은혜는 국가 단위에서 베푸는 은혜만 못합니다. 그리되면 백성들은 함부로 이주하지 않고, 농민은 땅을 떠나지 않고, 상공인은 하는 일을 고치지 않고, 선비는 도의를 벗어나지 않고, 관원은 직무를 태만히 하지 않고, 대부는 공가公家의 이익을 사적으로 취하지 않게 됩니다."

"자산에게는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었다. 몸소 행하면서 공손했고, 윗사람을 섬기면서 공경스러웠고, 백성을 양육하면서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리면서 의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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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비롯한 유가는 명신을 얻어 덕정을 베풀면 군주는 베개를 높이 베고 자는 고침이와高枕而臥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는 상과 벌을 제대로 사용해야 고침이와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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