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후 독일방송에서 우승자 손기정은 일본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때 방송국에 찾아가 손기정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정정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안봉근이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일본 선수단이 여는 축하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조선인들끼리 몰래 축하모임 가졌다. 이날 모임을 준비한 사람도 베를린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하던안봉근이었다. 후에 손기정은 <동아일보> 1964년 1월 4일자 인터뷰에서 "교포집에서 첫 축승회가 있었는데, 안봉근씨라고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어요, 독일부인이 쌀밥에 두부,
닭고기국을 끓여주어서 잘 먹었어요."라고 회고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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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과 땅콩 몇 알에 하루하루를 지냈다"는 안경근은 장흥으로 이사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1978년 12월 9일에 눈을 감았다. 평생을 사촌형 안중근과 김구의 유지를 따라 조국 독립과 통일운동에몸을 바쳤지만 친일파가 득세하는 조국 하늘 아래에서 그는 제대로평가받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마쳤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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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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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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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단합론으로 불리는 이 글은 일종의 독자투고 같은 것이었다. 당시 연해주 한인사회의 갈등과 불화가 오죽 심각했으면 그가 이런 글을 썼을까. 도입부와 말미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슬프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 참혹한 지경에 이른 것은 다름이아니라 불합병(不合病)이 깊이 든 연고로다. 불합병의 근원은 교오병(病)이니 교만은 만악의 뿌리다.… 여보시오. 우리 동포 지금이후 시작하여 불합(不合) 이자(二字) 파괴하고 단합 두 자 급성(急成)하여 유치자질(子) 교육하고 노인들은 뒷배 보며 청년형제 결사하여 우리 국권 어서 빨리 회복하고 태극기 높이 단 후에처자권속 거느리고 독립관에 재회하여 대한제국 만만세를 육대부주 혼동하게 일심단체 불러보세.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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