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단순한 사랑이란 없다. 사랑이 단순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그건 욕망에 더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뉴욕이 좋다고 확신할수 있었던 시절의 나는 뉴욕을 사랑하기보다는 욕망했던 걸까?
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 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그 대상에 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신현호
미국 뉴욕에서 10년 넘게 거주 중인 회사원. 실용적 낙관주의자이자 산책 애호가. 주 40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음식과 여행에 관한 글을 쓰거나 요리를 한다. 뉴욕의 겨울을 싫어한다. /

자기 스스로를 100퍼센트 사랑할 수 있을까? 만약 스스로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면 자신이 사는 도시를 100퍼센트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즐거움, 밥벌이의 고단함 등등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잠시 스쳐 가듯 여행하는 사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둔 산뜻한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좋은 것을 사랑하는 동시에 끔찍한 것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사실 꼭 100퍼센트일 필요도 없다.

한때 서울은 나에게 명백한 오답이었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울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도 다른 버전의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친구, 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것이라네(Best way to get around the city is to get lost in the city, son)."

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1부 뉴욕에서 길 잃기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도입부에 나오는 클라이슬러빌딩도 옆에 있었다. 그랜드센트럴은 뉴욕의 첫인상 그 자체였다. 이 역은 맨해튼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지금의 너를 이 자리에 데리고 온 건 큰 성공들이 아니라 작은 실패들이었다"라는 위로의 문자를 받았다. 정말 그랬다.

생각해보면 원하는 곳에는 모두 떨어졌지만 거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플랜A가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 문은 닫혔지만 다른 쪽에서 새로운 문이 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플랜B로 잘 채워진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미래완료형은 자기실현적 예언의 시제이다. (자기개발서 같은 결론이지만) 예언은 그 자체로 예언을 이루어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일은 종종 오래된 미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떤 개인을 망가뜨릴 수도, 행운이 따르기만 한다면 성취감을 줄 수도 있다. 스스로 이런 행운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뉴욕에 와야 한다.*

* E. B. White, 『Here is New York』, Little Bookroom, 2000.

지인들이 인사말처럼 ‘언제 한번 갈게’라고 했지만 실제 여행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행을 하기에 뉴욕은 썩 좋은 도시는 아닐지 모른다. 물가는 살인적이고 하루 종일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서는 마리화나와 불쾌한 노상 방뇨 냄새가 난다. 같은 시간과 비용이라면 훨씬 더 쾌적한 선택지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들에게도 뉴욕은 기회의 땅이다. 마치 외계인들은 모두 지구정복 가이드북 같은 걸 읽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 뉴욕이 소개되어 있고 그래서 다들 일단 뉴욕부터 침공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변호사의 마지막 인사말은 ‘우리가 운이 좋(아 뉴욕에서 생존한)다면 다른 공연에서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외관적으로 포위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 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트럼프는 공식 석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고 불렀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의 분노를 특정 인종에게 돌려 더 많은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표현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뒤 뉴욕에서는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하는 증오 범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차별과 혐오는 사실은 공기 같은 것이다. 막상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기압처럼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일정한 압력을 만들어내는 무언가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특정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듯, 프룬을 생각하면 한가로운 주말 오전 뉴욕에 여행 온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들, 지독한 숙취의 기억과 블러디메리 두 잔에 적당히 취해 이스트빌리지 거리로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살 같은, 팬데믹 이전의 어떤 뉴욕을 떠올릴 수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특정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듯, 프룬을 생각하면 한가로운 주말 오전 뉴욕에 여행 온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들, 지독한 숙취의 기억과 블러디메리 두 잔에 적당히 취해 이스트빌리지 거리로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살 같은, 팬데믹 이전의 어떤 뉴욕을 떠올릴 수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는 내 감정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국어에도 역시 내 마음과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낯선 외국에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말이란 그렇게 착착 준비되어 있다가 척척 잽싸게 나오는 것이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 최윤영 옮김, 을유문화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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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황 여사님은 생각하는 게 어쩜 그리 저이하고 똑같으지요? 저이도 박태준 회장님은 참 아까운 대통령감이었다고,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안타까워하고는 해요. 보수이면서도 진보도 잘 이해하고 존중했던 폭넓은 분이었다고요."

"아아, 광양 재첩국 맛은 언제나 기가 막힙니다." 이태하가 먼저 감탄을 터뜨렸고, "어머나, 이 맛! 서울 재첩국은 재첩국이 아니에요." 황연주가 잇따라 감탄했다.

"상큼하고, 알싸하고, 풋풋하고, 은은하고, 그러면서 깊고, 진하고……, 참 맛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게 특이하고 묘해요. 이 국물 색깔도 푸르스름한 게 아주 곱기까지 하구요."

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돈이 생겨난 이후 5천여 년에 걸쳐서 줄곧 돈의 노예였소. 그런데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스스로 몰락하면서 자본주의가 독불장군으로 세계 지배력을 장악하게 되고, 그 세월이 30년이 넘으면서 이 나라 청소년과 젊은이 들까지 돈의 마력에 완전히 휘말리게 되고 말았소.

개보다 못한 사람

‘군중 속의 고독…….’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1학년 교양 국어 시간에 교수가 그 말을 설명하면서 바로 이런 건널목을 예로 들었던 것이다.

‘미친것들, 개 새끼한테 영어를 가르쳐? 미국이 그렇게도 좋으냐? 웃기고 자빠졌네.’ 너무 역겨워 이렇게 욕을 해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 회장님. 저도 개를 좋아합니다. 해피가 해피하도록 잘 하고,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나 회장이 원하는 것이고, 회장의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전진혜는 해피를 해피하지 않은 마음으로 회장이 만족할 수 있도록 목욕시켰다.

"어쩌겠어. 돈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한때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들에게, 병들어 보험 애걸을 하고 다니며 거절을 당하는 처지니 이보다 리얼한 실존이 어디 있고, 이보다 리얼한 부조리가 어디 있겠나. 그게 돈이라는 흉물이 부리는 괴력일 거야."

"회사에서 퇴직금 정산한 것으로 모든 관계를 끝낸 것 아닐까?"

이태하는 사무실을 나섰다. 드높은 빌딩들만 치솟아 하늘이 좁아질 대로 좁아진 도심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넓은 거리에는 숨 가쁘게 돌아친 도시의 일과에 지친 사람들이 가득 걸어가고 있었다. 이태하도 복잡한 생각이 뒤엉킨 채 그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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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직시하게 하는
조정래 문학의 힘!
태백산맥으로 분단의 비극을 관통하고
정글만리로 세계 경제를 진단하고
천년의 질문으로 정치권력의 실상을 마주하고
황금종이로 냉혹한 돈의 총체성을 직면하다!

-황금종이 책 띠지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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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다!
종교도, 권력도, 핏줄도, 도덕도 그 앞에선 소용없다인간의 생사여탈을 쥐고 흔들며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돈

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력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비극적 연극의 주인공으로출연하는 것일까.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직시하게 하는 조정래 문학의 힘!
태백산맥으로 분단의 비극을 관통하고 정글만리로 세계 경제를 진단하고 천년의 질문으로 정치 권력의 실상을 마주하고 황금종이로 냉혹한 돈의 총체성을 직면하다!

자본주의 세상 유일신‘이 되어버린 돈을 향한인간의 질긴 욕망과 갈등을 파헤치다.
중요한 생존 수단이나, 오히려 그것이 생존을 위협하는아이러니 속에서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비극의 향연.
황금만능주의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며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를 뼈아프게 직면시키는 조정래 소설.
돈의 위력과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얼핏 배운 것 있잖아. 소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시라고. 아마 작가는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그 답은 역사에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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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교수는 개론에 어울리도록 여러 철학자들이 정의한 짤막짤막한 인생론들을 소개하고 있었어. 그게 성인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대학 1학년생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잖아. ‘인생은 원인의 철학도 아니고 결과의 철학도 아니고 경과의 철학이다.’ 칸트. ‘인연을 맺지 말라. 원수는 만나서 괴롭고, 그리운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로우니라.’ 석가모니.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은 빨리 죽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절망의 반대편에서 삶은 시작된다.’ 사르트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일절 구속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참 나가 될 수 있다.’ 노자.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니체. ‘명성을 남기려고 급급하지 말라. 그대가 앞선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리니.’ 아우렐리우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알아내는 일이다.’ 탈레스. 이렇게 열댓 가지 적어 나가면서 부연 설명을 끝냈는데 한 학생이 불쑥 손을 들었어.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교수님 강의와 직접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아주 돌발적이었고, 신선했어. 학생들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쏠리면서 강의실은 조용해졌어. 그런데 교수님이 멈칫 당황하는 것도 같고 긴장하는 것도 같은 기색으로 아무 말이 없었어. 그러니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교수에게로 쏠렸어. 교수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대답을 한다면 아주 멋들어질 것이냐, 아니면 보잘것없이 시시할 것이냐,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는 교수를 향해 이런 평가 함정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어. 그 나이 때 으레껏 갖는 짓궂음 있잖아. 그런데 교수는 분필 든 손등을 입에 댄 채 고개를 숙이고는 교단을 끝에서 끝으로 뚜벅뚜벅 걸었어. 그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구두가 교단을 울리는 소리만 조용한 강의실에 퍼지고 있었어. 그런데 교수는 또 교단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어.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눈짓들을 하기 시작했어. 그 눈짓들이 하는 말이 뭐였겠어. ‘저 교수 나리 실력 꽝이잖아.’ ‘머리 텅 빈 엉터리잖아.’ 이런 평가를 내리기 바빴지. 그런데 교수는 또 교단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어.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눈짓들을 하기 시작했어. 그 눈짓들이 하는 말이 뭐였겠어. ‘저 교수 나리 실력 꽝이잖아.’ ‘머리 텅 빈 엉터리잖아.’ 이런 평가를 내리기 바빴지. 그런데 교단 끝에서 휙 돌아선 교수가 칠판 빈 데다 쓰기 시작했어. ‘돈은 인간에게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이렇게 쓴 교수가 돌아서더니 ‘오늘 강의는 끝!’ 하고는 강의실을 나갔어. 다른 것들과 달리 아무 부연 설명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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