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무늬의 넥타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착각도 아니다. 분명히 그 무늬다. 쪽빛 천에 손으로 그린 붉은 동백.
하지만 우리는 괜찮은 짝. 흩뿌려진 퍼즐에서 옆에 놓여야 하는 올바른 조각.
지각을 해도 웃으며 용서해 줄 사람을 기다리게 한 여자들만의 특권. 그녀들은 웃는 낯으로 혼잡한 인파를 밀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저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어서요─.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곳은 분명 심장이리라. ‘행복’한 일을 만날 때마다 심장은 쿵쾅거린다. 애인과 단둘이 있을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이유는 상대의 손이 그 행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는 나를 죽여 놓고서 "잘 지내"라고 손을 흔들며 헤어질 생각인 거야.
‘어머니가 끝내 반대하셔서.’ ‘이대로는 너도 불행해질 뿐이고.’ ‘잘해 나갈 자신이 없어졌어.’
‘그때 나타난 그녀에게 끌리고 말았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미안,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를 사랑해. 거짓말 못하겠어. 미안, 정말 미안.’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공허한 말. 알맹이를 잃은 병 속에서 울리는 배신의 목소리. 미쓰루는 그걸 봉인해 버리는 대신 번쩍 치켜들어 아사코를 쳤다.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약혼과 결혼 준비에 든 돈. 일실 이익逸失利益. 사내 연애였기 때문에 아사코는 약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대기업이었으니 그대로 다녔다면 괜찮은 월급을 계속 받을 수 있었으리라. 그걸 일실 이익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위자료.
"여자에게는 일과 사생활이 이상한 식으로 불리하게 엮이는 일이 잦죠."
"사장 비서." "멋지네요." "겸 내연녀. 그쪽이 끝나서 잘렸어."
택시 운전사나 아사코 같은 웨이트리스, 신칸센에서 옆에 앉았을 뿐인 처음 본 승객─그런 낯선 이에게 속내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뒤탈 없이 흘려들어 주겠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당연히 했지. 소용없었어. 부인은 내 일부터 시작해서 전부 알고 있더라고. ‘여자 놀음은 남편의 병이에요. 죽을 때까지 낫지 않을 테죠’라던데? 내 꼴만 우스워졌지."
"계속 지하에 있으면 비가 내려도, 줄곧 내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별생각 없이 옆 사람을 보니 젖은 우산을 들었어. 아, 비가 내리는구나, 그때 비로소 알지. 그러기 전까지 지상은 당연히 화창하리라고 굳게 믿었던 거야. 내 머리 위에 비가 내릴 리가 없다고."
‘나도 사실은 웃는 게 아니야’라는 비웃음일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나는 웃어 주겠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웃고 웃고 웃으면서 역 승강장에서 뛰어내리는 꼴이 되기 십상이니까.
"돈 문제가 아니야. 나는 남겨지고 싶지 않아. 세상이 나만 따돌리는 걸 허락하고 싶지 않아. 다들 잘하고 있잖아. 왜 나만 안 되지?"
아사코와 그녀, 조금 전 ‘모리이 요코’라고 이름을 밝힌 여자는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우뚝 섰다. 서로 이름을 들은 순간 천적이었음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요코는 핸드백을 열고 아쓰시의 명함을 안에 쓱 집어넣더니 소리 내서 닫았다. 손놀림이 꼭 ‘붙잡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사코, 비슷한 재난을 당한 사람이 둘 있으면 말이야. 너만 먼저 빠져나가게 할까 보냐 하는 기분이 드는 법이야. 누구든 그래."
"넥타이를 주는 건 ‘나는 당신에게 목맸다’라는 뜻이야."
요코는 그렇게 말하고 웃더니 날카롭게 찌르는 것처럼 아사코를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배신하면 이걸로 목을 졸라 버리겠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쥐 죽은 듯 조용한 늦은 밤의 도시는 그 자체가 부드러운 사람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알과 비슷한, 어디로도 깰 수 없고 침입할 길이 없는 하나의 물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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