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의 지정 쓰레기장을 청소하고 돌아와 보니 사무소 겸 자택으로 빌린 고가古家 앞에 여자 두 명이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야나기 약국’의 사모님, 또 한 사람은 가끔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동년배 부인이다.

38살인 나도 어엿한 ‘아저씨’지만, 그런 내가 봐도 ‘아줌마’인 두 사람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던져 온다.

도쿄 도 기타 구의 북동부, 스미다가와 강 상류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오가미초. 이곳에 자리를 잡고 지금의 일을 시작한 뒤 두 종류의 명함을 갖게 되었다.

하나에는 ‘조사원·스기무라 사부로’, 다른 하나에는 ‘스기무라 탐정 사무소·스기무라 사부로’라고 인쇄되어 있다.

나는 야마나시 현의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뒤 대학생 때부터 도쿄에서 살았다. 졸업 후에는 아동서 출판사에 취직했고, 편집자로 일했을 때 만난 여성과 결혼하는 동시에 그녀의 아버지가 이끄는 ‘이마다 콘체른’이라는 거대 그룹 기업의 사원으로 전직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지만, 결혼 십일 년 만에 이혼해 이혼 경력을 가진 독신자로 돌아왔고 ‘이마다 콘체른’도 그만두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실은) 살아 있었다면 유령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면 이는 비과학적인 현상이거나, 아니면 허풍이다.

―계속 여기에 있는 것도 질렸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길까. 스기무라 씨네 근처로 가 줄까요? 내 핫샌드위치, 먹고 싶죠?

반 이상은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사무소를 열었다고 알리자 정말로 근처에 가게를 내겠다고 하더니 물건을 찾아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5월 초에는 ‘와비스케’를 개점했다.

"미쿠모 가쓰에라는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올봄 3월 중순이었나, 돌아가셨어요."

102호실은 일단 비었다가 지금은 다른 입소자가 살고 있다. 그러나 바로 지난주 목요일, 모리타 씨는 외출했다가 미쿠모 가쓰에 씨를 꼭 닮은 여성을 발견했다. 당사자는 휠체어를 탔고, 밀고 있는 젊은 여성과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 사람, 사립탐정이니까.

"저는 쇼와 28년 5월생이에요."
1953년생. 2010년 11월 현재, 57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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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처럼 둥글둥글해지고 개처럼 길들여진 나는 사회로 돌아가더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내게 될 것이다. 마치 폐인처럼.

처음에 문윤은 ‘청원서’를 보내 심의회 출석을 요구한다. 그때 출석을 거부한 자, 혹은 ‘청원서’를 무시한 자에게는 ‘소환장’을 보낸다. 소환장의 안내대로 C역에 도착하면 시치후쿠진하마 요양소로 연행된다.

요양소에서는 자유를 빼앗기고 작가의 존엄도 침해받고 수치스러운 전향을 강요당한다. ‘갱생’에 굴복하지 않되 과감하게 반항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은밀하게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여 미치게 유도한다. 나약한 인간은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싶어질 게 뻔하다. 자살을 택하는 것은 문윤이 원하는 바이다. 그것은 나약한 작가가 스스로 택한 거니까.

그래서 거울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거울은 말하자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 충동을 실현시켜 주는 물건이니까. 그것은 사회성으로 통한다. 이 병실에서 평생을 보낼 인간에게 사회성은 필요 없다.

중식을 거른 탓인지 석식이 조금 빨리 나왔다. 나는 안도하며 복잡한 심정으로 미카미를 맞았다. 늘 굶주린 나는 식사를 가져오는 미카미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싫었다.

미래의 희망이 생겨나면 사람은 아무래도 과거를 반추하게 되는 모양이다. 경험칙이 곧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걸까?

"콘텐츠가 아냐. 작품이지. 내가 피와 땀과 눈물로 쓴 작품이야. 그걸 콘텐츠라고 말하지 마. 당신들은 그래도 콘텐츠니까 그건 안 된다 이건 안 된다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잘못된 거야. 누군가가 쓴 작품에는 경중도 없고 선악도 없어. 멋대로 차별하지 말란 말이야."

"뭐라고 떠드는 거야.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 뭐든지 해도 좋다는 건 있을 수 없어. 그게 사회의 상식 아닌가."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희망 따위도 애당초 없는 편이 나았을 텐데. ‘전향할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라고 소마 따위에게 애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전향. 얼마나 고풍스러운 단어인가.

‘전향이라니, 고바야시 다키지 시대도 아니고, 그런 고리타분한 얘기는 하지 마세요. 누가 들을까 겁나네.’

하지만 나는 전향했다. 변절했다. 상상력을 멋대로 구사해서 작품을 쓰면 안 된다는 말에, 예, 그리 할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 라고 굴복했다. 오로지 이 구속복이 무서워서.

"부디 당신의 불타는 능력을 밝은 세계에서는 쓰지 마시기를. 밝은 세계는 밝은 세계. 어차피 어둠 쪽에 있는 사람과는 인연이 없는 세계입니다."

2020년에 출간된 『일몰』은 작가 자신을 닮은 소설가와 권력의 대립을 다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퇴행하는 일본 사회에 경고를 던지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랄 수 있는데, 일본 사회라고 한정할 일은 아니겠다. 신자유주의의 기승 아래 정치권력과 문화에 반동의 기운이 세계적으로 팽배하고 있는 만큼 어느 나라에서나 나름 현실성 있는 풍자로 읽힐 수 있다.

시골 바닷가 외딴 곳에 있는 ‘요양소’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밥’으로 길들이며 올바른 작품을 쓰라고 강요하는 주체는 소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지만, 그들 뒤에는 무자비한 시장과 다양성을 거부하는 대중이 있다.

소설에도 ‘공모죄’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2017년에 성립한 공모죄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방지를 위해 도입된 법안이다. 다만 권력의 의지에 따라서는 반反원전 활동 등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악용될 수 있거니와, 범죄를 실행하지 않았지만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배틀 로얄』처럼 유혈과 살인이 난무하는 작품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있었고, 이에 따라 작가들이 잔인한 장면을 삼가자는 자숙의 분위기가 생겨났다. 기리노 나쓰오처럼 거침없이 소설을 써 왔던 작가에게는 이런 자기검열의 분위기처럼 커다란 위협은 없었을 것이다.

마쓰 유메이의 입을 빌어 작가는 이렇게 토로한다.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토를 달 수 없는 정론. 그런 선의의 정론이 전 세계에 만연해 있어서 참으로 숨이 막혔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대중은 지도자에게 열광하거나 국가니 정의니 하는 도그마로 도피한다. 그들은 대세에 추종하고 침묵의 동조를 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공격하는 것이다.

"위험한 테마는 좋은 얼굴을 하지 않는다"

"아사하라가 내세운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픽션이었다. 그러나 픽션에 익숙하지 않은 신자들은 아사하라가 제시한 픽션을 사실과 뒤죽박죽 섞어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픽션이 본래적으로 발휘하는 작용에 대한 면역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잡문집』)라고 진단했다.

"누구나 논란을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거슬리지 않는 말만 하게 되죠. 거기서 미디어는 의견이 있는 사람에게 대변시켜서 어떻게든 양쪽 의견을 병기해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만, 대론(對論)조차 되지 않는, 한쪽의 단순한 트집일 경우에도 양론(兩論)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트집이 당당히 세상에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머지않아 소설가의 표현물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리노 나쓰오는 말한다.

언젠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쁜 일은 눈에 잘 띄지만 좋은 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이 전부 나빠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잠 못 드는 밤을 위로해 주는 작품을 쓰는 것입니다."

반면 기리노 나쓰오는 어떤가. "꿈이나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픽션에서까지 그런 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꿈을 향해 달려가라든지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굳이 정의하자면 전자는 휴머니즘, 후자는 니힐리즘 정도가 될까.

"다들 너무나 능숙하고 잘 쓰지만 한편으로 ‘이걸 쓰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내면화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는 작가가 던진 마지막 한 마디는 "다양한 비난이나 장벽에 부딪칠지언정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 그 기개가 없어지면 끝장이죠"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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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세 달만 지나면 당신도 죽고 싶어질 겁니다. 여기에서는 벌써 열 명 이상이 뛰어내려 죽었어요."

"위험하니까 시도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도 오늘은 이만 방으로 돌아갈 겁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죽을 마음이 사라졌어요."

나는 누군가와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식당에는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아무 말도 없이 열심히 식사만 하는 풍경은 기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논리 비약은 내가 이미 정상적 사고를 못하게 되었다는 증거가 틀림없다. 정상적이라는 자신감이 흔들린다.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하고는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요, 사회는. 그러니 당신들 쪽에서 적응해야 합니다."

아직도 무인도나 야간 인구일정한 지역에 주소를 두고 늘 거주하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휴대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바라키 현 안에서 그럴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점수를 얻지 못한 채 A45만 무거운 벌을 받고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원한을 산 내가 A45에게 밀고 당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공모죄는 밀고의 온상임을 깨달은 나는 더욱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배반의 윤회에 가담하는 것은 허망하고 위험하다.

그래도 지루함을 면하려고 머리에 떠오른 제목을 적어보았다. ‘린가와 요니힌두교 용어로 남성기와 여성기를 뜻한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단어에 웃음이 나왔다. 지워 버리자 생각했지만 지우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선을 몇 줄 그어서 지웠다. 이 흔적도 검열되겠지 생각하니 진저리가 났다.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침대 위를 뒹굴었다.

그러나 소설가는 대개 특권계급은커녕 인간실격자이다. 허구를 상상하고 부풀려서 글을 쓰다 보면 실생활 쪽으로는 소홀해진다. 실생활이 허구에 흡수되어 점점 메마르고 텅 비게 되므로 주위 사람들도 질려서 떠나 버린다. 고독해진 작가는 더욱 허구로 도피한다. 자기가 만든 허구 속에 완전하게 들어가 사는 것도 나름 행복하겠지만 실생활에서는 폐인이나 다름없다.

아니,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얼음은 문명이야"라고 말한 것은 <모스키토 코스트1986년에 발표된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부친이었나?

"아뇨, 별로. 얌전히 생활해서 빨리 나가자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거야 다들 생각하지만, 그럼 왜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거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듣고 보니 그랬다. ‘형기’를 마친 사람들은 왜 이 요양소의 실태를 고발해 주지 않을까.

굿바이(다자이 오사무 스타일로『굿바이』는 다자이 오사무의 미완의 유작. 바람둥이 주인공이 새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연인들에게 ‘굿바이’를 고하는 과정을 그린 익살스러운 단편이다).

‘처음부터 문제아였지만 이런 지경까지 올 줄이야.’
‘졸지에 7점이나 감점되었으니까요. 최근 들어 얌전해졌다 싶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절벽에서 뛰어내려 주는 게 제일 편하지만, 하는 수 없지. 소마 씨가 원한다면 줘버려.’
‘이 여자, 곧 문제가 될 겁니다.’
‘알고 있어.’
저 목소리는 A45 아닌가? 절벽 턱밑에 숨어 있던 초로의 남자.

아무래도 A45는 나에게 절망과 거기서 벗어날 방법을, 결국은 자살을 부추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니 모든 게 절망의 심연으로 인도하기 위해 장치된 함정이었던 것 같다. 아닐까? 내가 겪은 일들이 꿈인지 생시인지도 알 수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망상일까. 나는 죽음으로 향하는 중환자처럼 의식이 깨어났다 사라졌다 하며 며칠을 보냈다. 어쩌면 몇 주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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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컴퓨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인터넷이 자꾸 끊기곤 해서 상태가 불안정해졌구나 싶었는데 결국 완전히 먹통이 되고 말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일에 흥미가 없다. 절망한 탓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자가 남자를, 혹은 동성끼리 몸을 섞는 야한 장면만 그린다. 젊은 여자의 격한 욕망과 여자가 꿈꾸는 온갖 섹스를 거침없이 묘사한다. 나는 기메타 아리에의 열렬한 팬이다.

프리터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프리랜서와 아르바이터의 약칭

만약 소환장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벌칙은 적혀 있지 않지만 모종의 페널티, 아니 응징이 있으리라는 것을 넌지시 비치는 점이 섬뜩했다.

가네가사키라는 별난 이름을 갖고 있어서 "돈이 우선입니다"라고 한 손을 내밀며 우습지도 않은 개그를 날리는 명랑한 남자였다

‘가네가사키’는 ‘돈이 우선’이란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문득 ‘아타고야마愛宕山’라는 만담이 떠올랐다. 소식이 끊긴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은 깜깜한 밤중에 벼랑에서 술잔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술잔들이 어디서 산산이 깨어져 흩어지는지도 모르면서 감히 던질 수 없을진대

<아타고야마>는 유명한 전통 만담으로, 그 내용에 술잔 던지기가 등장한다. 술잔 던지기는 전국시대 무장이 필승을 기원하며 술잔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출진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액운을 막거나 소원을 빌며 높은 장소에서 질그릇을 던지는 서민들의 놀이가 되었다.

분노하라. 불합리한 일에 분노하라. 나는 자신을 고무하기 위해 분노를 들깨우려고 했지만 그다지 잘 되지 않았다.

"감정이 넘쳐나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건 분명히 범죄입니다. 감정 폭발이 너무 격해서 억누를 수 없다면 갱생이라는 대책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보통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 아닌가요?"

"표현은 자유지만 모든 게 다 자유인 건 아니죠. 그게 아니라면 이 사회의 모든 것이 제멋대로가 되고 맙니다. 요즘 범죄가 빈발하고 성범죄도 늘어나고 있어요. 게다가 악질화되고 저연령화되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인한 살인이나 자살도 늘었어요. 이런 것들의 원인은 고삐 풀린 만화나 소설이 아니냐 하는 말도 있습니다."

헤이트스피치법이 제정되는 것은 좋지만 작품 활동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걱정한 작가는 몇 명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확대 해석될 줄은 몰랐다. 권력은 하나를 타협하면 덫을 하나 놓는다. 명백한 탄압이고 자유의 후퇴였다.

공무원은 밀고를 ‘니즈’라고 부르나 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밀고를 근거로 ‘조사기관’인지 뭔지에 맡기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니, 전혀 몰랐다. 심의회에 출석하라고 요구하는 문서가 왔을 때 좀 더 진지하게 대응했어야 했던 걸까.

"썼다고 긍정한 게 아닙니다. 소설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야 하는데 특정 부분 특정 단어만 끄집어 내서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문맥으로 읽어 준다면 그런 남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은 일단 발표되고 나면 독자의 것이니까요."
"아뇨, 독자의 것만은 아닙니다. 내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제야 헤이트스피치와 소설이 똑같은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것은 양자를 똑같은 ‘표현물’로서 공평하게 포장한 국가권력의 횡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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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맡긴다?
그럼 파쿠 씨가 실패하면, 맡긴 목숨은 돌아오지 않나? 신의 목숨도, 시로타의 목숨도? 이건 옳게 이해한 걸까.
―여기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걸까.

"에모토는 분명히 뱀 같아요. 사람을 잘 이용하고, 속이고, 삼켜 버리죠."

"나는 그 여자애를 알아. 어디 사는 누군지 알아."
마음 깊은 곳에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파쿠 씨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잊지 않아.
"그 여자애는 십 년 전 8월에, 이 현실 세계에서 행방불명되었어."

감주甘酒일본의 전통적인 감미음료 중 하나. 혼탁한 흰색을 띠고 있다. 술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알코올은 거의 함유되어 있지 않아 시판되는 상품은 소프트드링크로 분류될 때가 많다

"나는 멋대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고, 어머니와 했던 단 하나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어."

그것보다 더 잘못인 것은, 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가미카쿠시神隱し예로부터 사람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지면 덴구(天狗)나 산신(山神)이 한 일이라고 여겨 이렇게 불렀다’다. 마치 신이 소매로 숨겨 버린 것처럼 어린아이나 젊은 여성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는 현상은 옛날부터 존재했다. 또한 그렇게 모습을 감춘 사람이 몇 년 후에 돌아오는 일도 있고,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고 사라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이온은 신의 소매 그늘로 초대받아 간 것이 아닐까. 생판 남의 감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뿐이겠지만, 하야시다 노인의 다정한 바람이 전해져 온다. 사건의 진상이 항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를. 어머니도 아이도, 모두 구원받기를.

"학교에 있으면서 ‘사라진’ 경우에는 일일이 연필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지는 않아. 머릿속으로 그렸을 거야. 그런 적, 나도 있으니까."

이제부터 그리려고 하는 세계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깊이 집중하면 주위의 현실이 사라지고 자신의 머릿속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또는 의도하지 않아도 들어가버린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일념 덕이야. 그런 점에서도 이온이랑 닮았다고 생각해."

보호받고 있는 거지―.
"어른이 된 이온 씨는 그 성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였던 시절의 자신을 지키고 있어."
―계속 여기에서 살자.
"여기라면 더 이상 아무한테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 어머니한테 혼나거나, 어머니의 남자한테 걷어차이거나, 배고프거나, 춥거나, 쓸쓸할 일도 없어."
―여기 있으면 계속 행복할 거야.
파쿠 씨가 페트병에 든 차를 마시더니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 성의 세계는 이온 씨 자신이야."
열아홉 살인 그녀의 아바타다.

그때 깨달았다. 세계유산이란, 요컨대 유적이지. 현역 건물이 아니다. 보존되어 있지만, 살아 있는 건물은 아니다.

그것은 동결된 죽음이다.

별안간 가슴을 쿡 찔린 것처럼, 신은 깨달았다.
그런가. 이 둘은 현재가―.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불행한 것이다.

그들에 섞여, 신은 외쳤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너무나도 가엾고, 애처롭고, 슬퍼서.

―그런 걸로 자기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저는 뻔뻔스러웠어요.

"그건 말이지, 너희 학교 선생님 중에도 조금은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있을 뿐인 거야. 이전의 세계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되었을걸."

"고마운 교훈이야. 나는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나절도 지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신의 가슴을 쳤다. 한때의 밝은 상상을 날려 보내는, 차가운 현실의 바람. 시로타가 솔직하게 입에 담은, 가장 무거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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