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미를 차차 무관심적 심리 상태에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이론에 기울었던 영국 학자들을 취미론자라고 부른다. 이는 그들이 인간에게는 세상을 지각하는 시각, 청각 등의 오감 외에도 ‘취미taste’라고 부르는 미를 전담하는 감각 기관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각이 빛을 지각하듯 취미는 대상이 가진 특별한 속성, 예컨대 다양함과 통일성의 조화를 지각하고, 그 결과 그것이 나의 이해와 욕구의 충족과 무관함에도 내 마음에 감동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1) 내가 제작한 위작을 페르메이르와 같은 수준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했던 평론가들은, 그것이 위작으로 밝혀진 뒤에는 자신의 칭찬을 철회하든가, 아니면 그래도 계속 유지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2) 철회한다면 이는 그들의 감식안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것이다.
3) 유지한다면 나는 페르메이르와 같은 수준의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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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해 구전되어오는 농담 중에 “철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농담인 이유는 이어지는 비교들 때문일 텐데, 그 내용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거기 없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고, “신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거기 없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찾았다!’를 외치는 것”이라고 한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 이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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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
20세기 초부터 영미권의 주류로 자리 잡은 철학 연구 스타일이다. 형식 논리학과 언어 분석을 중심으로 태동했으며 개념에 대한 명료한 분석과 합리적 논증에 의한 증명 등을 지향한다.

메타(meta)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것의 범위나 경계를 초월하거나 아우르는 것을 뜻한다. 철학에서 사용하는 성찰적이고 반성적인 사유의 방식으로, 예를 들어 ‘이것은 아름다운가’가 아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미적인 것(the aesthetics)
미학이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로 무관심성의 개념과 함께 등장했다. 대상의 감각적 차원에 대한 인간의 독특한 반응과 관련된 영역으로, 전형적인 예는 ‘아름다움’이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판단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미적’ 판단, 실용적 태도와 구분되는 ‘미적’ 태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때의 ‘미적’ 경험 등의 개념으로 활용된다. 흔히 예술작품이 갖는 비실용적인 고유한 가치를 ‘미적’ 가치로 칭한다.

예술적 가치
일상적 용법이 아닌 전문 용어로서 예술적 가치란 작품을 작품으로 대할 때 발견할 수 있는 가치를 의미한다. 특히 예술품의 순수한 형식적 가치라고 할 미적 가치와 구별되는 예술 고유의 가치를 지칭하기 위해 동원된다. 당연히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도구적인 가치와는 구별된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학자도 있다.

재현(representation)
실제 대상이 아닌,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나타남을 의미한다. 텍스트나 기호로도 가능하므로 대상과 닮은 모사된 그림을 가리킬 때는 ‘회화적 재현’이라는 말을 써 구분하기도 한다. 회화적 재현은 모방과 유사하고 추상과 반대된다. 사유를 위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나 기호도 같은 성격을 지니며 이때는 우리말로 ‘표상’이라 한다.

타입(type)과 토큰(token)
타입은 ‘유형’이며 토큰은 그 유형이 구체적인 개별자로 예시된 ‘사례’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태극기’는 ‘성조기’와 구별되는 하나의 유형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크기와 재질이 다른 수많은 실제 태극기의 토큰들이 포함되어 있다.

명제적/비명제적 지식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다’와 같은 참인 명제를 정당한 이유에 근거해서 믿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명제의 내용을 안다고 한다. 이것이 명제적 지식이다. 반면 ‘자전거를 탈 줄 안다’거나 ‘실연의 아픔을 안다’와 같이 언어로 표현될 수는 없지만 ‘안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비명제적 지식이라 부를 수 있다.

패러독스(paradox)
역설. 일반적으로 두 개의 상반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진술을 말한다. 수사적 표현으로서의 역설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해결책이 요청되며, 그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음식을 재료와 조리법으로 설명하듯이, 학문은 그것이 관장하는 문제의 영역과 그 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틀로 본다면 미학은 ‘미와 예술이라는 문제를 철학이라는 방법으로 다루는 학문’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위작, 포르노그래피, 농담(그중에서도 도덕적 문제가 있는 질 나쁜 농담), 그리고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로 대표되는 B급 장르의 대중예술인 공포물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공부해온 철학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해 구전되어오는 농담 중에 "철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농담인 이유는 이어지는 비교들 때문일 텐데, 그 내용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거기 없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고, "신학이란 달 없는 그믐밤에 연탄 광에 들어가 거기 없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찾았다!’를 외치는 것"이라고 한다.

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 이해완 저

1) 우리는 위작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각만으로는 진품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똑같아 보이는 위작이 있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는 논의의 출발을 위한 가정이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 그런데 우리가 이 두 작품을 통해 같은 지각을 경험한다면 두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의 가치란 보는 이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하지만 우리가 가진 또 다른 상식에 따르면 위작은 진품보다 예술적으로 열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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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해 버린 인간의 본능 중에서 딱 하나, 아직 남아 있는 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과 작별해야 한다는, 죽기보다 더 무서운 사실을 인식하는 코드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과거를 바꾸면 큰일 난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있지? 그건 역사적인 큰 사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야. 개인 인생의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름대로 배열이 정해져 있어. 그걸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움직여서는 안 돼. 그런 짓을 하면 나중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왜곡이 발생하거든……."

소리를 질러 외치고 싶었다. 기다려요. 나도 같이 갈래. 혼자 가면 안 돼요.

당신은 이십 년 전에 이곳에서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이곳에 돌아오기를 시간의 신이―아니, 신이 아니야, 시간의 규율, 시간의 법칙, 타협도 없고 용서도 없는 그 규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자유라고 리에코는 생각한다.

그것은 그때, 영혼이 하늘에 떠 있었을 때, 차원의 틈을 넘고 시간 축을 건너 세계를 바라보고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바로 먼 미래, 이십 년 후 다시 만나게 될, 더없이 소중한 오직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죽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인간이라는 말을 그녀처럼 멋들어지게 입증해 주는 작가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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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죠?"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들었다. 카운터 건너편에서 점원이 웃고 있다. 퉁퉁한 체격의 중년 남자.

"역시. 간토 지방 말씨라서 금방 알아봤어요. 도시 분들은 화초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요."

점원은 즐거운 듯 웃었다. 나 역시 예의상 조금 웃어 보였다.

솔직히 좀 놀랐다. 나야 고급 요정 같은 곳엔 갈 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최고급만 따지는 곳이 이런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면서도 재미있다.

구원의 저수지―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무거운 것이 내려앉았다. 구사기조메의 붉은빛마저 일순 퇴색되어 보일 정도로.

아아, 그쪽이란 말인가.

십 년 전, 그 구원의 저수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오늘은 오빠의 기일.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도 오빠의 목숨을 집어삼킨 구원의 저수지에 꽃이라도 바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사고를 만나면 ‘하느님, 살려 주세요’ 하고 구원을 비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소송이란 원고와 피고의 싸움이 아니다. 서로 세월과 다투는 싸움에 불과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기도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까지의 고생이 다 물거품이 된다―지난 십 년간 우리 가족을 지탱해 온 건 오직 이 한마디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위험한 도로일수록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악녀는 으레 미녀인 것과 비슷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꽃잎의 빨간색에 마음이 쏠려 문득 생각이 났다.

만주사화의 별명이 ‘저승화’라는 사실이.

"혼자만 살아남아 뻔뻔스럽게 돌아갈 용기가 없었어."

오빠는 조금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광객들을 물색해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사고’를 연출한다. 그중에 살아남은 한 사람, 두 사람을 교묘한 말로 속여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어…….

그렇게 마을을 유지해 왔던 거다.

‘구원의 저수지’가 누구를 위한 구원인지, 진짜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나는 회식 자리의 분위기 메이커거든. 내가 없으면 여자들이 전부 심심해한단 말이야. 근데 회식이 끝나고 단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상대는 누구냐 하면 너라는 거야. 세상 참 불공평하다니까."

"맞아, 맞아. 여자들이란 그런 걸 보기보다 상당히 확실하게 계산한단 말이지.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도 우리 같은 아저씨들에겐 결국 경제력을 바라거든. 조심하는 편이 좋아, 사장님."

기묘한 건,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도 도바를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났다’고 표현하는 그녀의 언어 감각이었다.

알 마음이 없으면 후지산이 분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 구미코와 실없는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소문도 하나의 정보거든요. 이쪽이 얻을 생각이 없으면 귀에 안 들어오고, 얻는다 해도 알고 싶은 형태로밖에 들어오지 않아요."

"어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신기하다면 또 신기하지 않니? 지폐가 말을 하다니!"

크림소다에서 체리를 끄집어내며 마사코가 말했다.

"응. 그 게임, 언뜻 봐서는 흰 돌이 우세해 보여도 어느 한구석에 검은 돌을 두면 한순간에 다 뒤집혀 버리는 경우가 있잖아?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제정신인 것과 미치는 것도 아주 작은 일로 뒤집히는 거지."

이마데가와 씨는 뛰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기대에 차 있었다. 옴쭉달싹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가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무슨 속삭임을 들었는지, ‘그놈들’이 어떻게 하라고 부추겼는지 깨달았다. 그 순간 마사코가 근무하는 은행 쪽에서 예리한 총성이 한 발 울려 퍼졌다.

"설명해 줄게요. 그러니까 잠시 입 다물고 있어요. 둘이서 동시에 말하려고 하면 혀 깨물리거든요. 당신 혀니까 나하고는 상관없지만요."

"형들 여자친구들이 오늘 하룻밤만 당신 몸을 빌릴게요 같은 말을 하는 걸 들었을 땐 항상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미인이 ‘나의 연인이 되어 주어 고마워요’라고 속삭여 주었다. 머리칼을 만지고, 손을 잡고, 두 눈을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그때 마코토를 만졌던 손은 마코토 자신의 것이었지만 기미에의 손이기도 했다.

공주님, 부디 행복하게 지내. 마코토는 사진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 반대예요. 제가 당신을 ‘가와노 씨’라고 인식하고 난 후부터 당신은 가와노 씨가 된 거예요. 깊은 산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무가 쓰러졌을 때 나는 소리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뭐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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