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병사는 언제 어느 때든 ‘프리츠’*라고 부를 것.

* 독일군을 비하하기 위해 연합군이 사용하던 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독특한 형태의 철모를 말하며, 독일 남자들 사이에 많은 이름 ‘프리드리히’에서 유래했다.

마찬가지로 적의 저격병은 ‘쿠쿠’라고 부를 것.

이리나는 샤를로타를 소련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노동 영웅에 빗대 ‘우리 학교의 스타하노프’*라고 불렀는데, 샤를로타는 노골적으로 비꼬는 줄도 모르고 좋아했다.

* 광부 출신의 노동 영웅 알렉세이 스타하노프는 스탈린이 표방한 ‘새로운 인민’의 표상이 된 프로파간다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리나의 말에 따르면 "침략자를 무찌르자"나 "파시스트를 제거하자" 같은 동기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점에 해당하는 동기다. 전장에 나갈 때까지 개인의 마음속에 품어두라고 했다.

"실제로 전장에 나아가 적을 쏠 때, 너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아무것도 떠올리지 마. ……생각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안 돼. 그저 단순히 기술에 몸을 맡기고, 그 무엇도 느끼지 말고 적을 쏴라. 그런 다음에 기점으로 다시 돌아와라. 침략자를 무찌르고 파시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싸운다는 그 의식으로."

"소비에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아니? 몇 번이나 기근에 시달렸는데도 식량을 끝없이 빼앗겨서 수백만 명이나 죽었어. 고작 20년 전 일이야. 그 결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대두하니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어를 러시아어에 편입하려고 했어. 소련에게 우크라이나가 어떤 의미인지 아니? 그저 약탈할 농지일 뿐이야."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게 그 말이었어. 우리는 진실을 말하면 죽는 나라에서 살고 있어. 얘, 세라피마. 지금 내가 한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말할 거니?"

"콜호스는 해체되지 않았어. 독일인은 슬라브 민족을 노예로 삼으려고 콜호스를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의 지배자가 됐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세라피마? 콜호스는 우크라이나인을 노예로 삼는 수단이야. 독일에도, 소련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전부 노예로 삼으려는 독일이 지배하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노예일 뿐이야. ‘나치와 함께 소련을 쓰러뜨린다’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소련과 함께 나치를 타도한다’는 건 가능하지. 붉은 군대에 속해 우크라이나를 승리로 이끌고 카자크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어. 소련의 일부로 있는 한, 그 안에서 우크라이나는 강대해져. 독일과 소련은 이념이 달라. 소련이 자화자찬하는 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부정하지 못해. 그 안에서 카자크는 다시 영광을 되찾는 거야."

고향 이바노프스카야의 사람들은 독일군의 손에 몰살당했고, 붉은 군대의 손에 모든 것이 불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부터가 나치 저격수와 이리나를 죽임으로써 그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다.

"나는 프리츠를 쓰러뜨리고 엄마의 원수를 갚으면, 마지막으로 이리나를 죽일 거야."

일부러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올가의 신뢰를 얻지 못할 테니까.

경기가 아니므로 딱히 점수가 발표되진 않았으나, 각자가 지닌 기량의 차이가 저절로 드러났다. 특출한 아야, 맹추격하는 샤를로타, 세라피마와 야나가 조금 뒤처져 그 뒤를 쫓고, 올가는 중간 정도 성적. 다른 생도들은 간신히 따라오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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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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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연대기, 고려무사의 후예로서 이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의문을 가져보지만 알아야 이긴다. 재미있게 읽어보자. 우리는 북에서 내려왔다. 시베리아, 바이칼.

펀딩 100자평 쓰니 ˝읽었어요˝가 되네ㅠ
읽지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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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전쟁에는 보편성과 고유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합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쓴 이 작품을 읽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과연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을 초래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머금도록 하고 그로 인해 현실의 전쟁을 새로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또한 작품의 의의가 될 수 있겠다고 저자로서 생각합니다.

과거에 벌어진 전쟁의 실정을 되묻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현대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러시아에서 벌어진 과거와 현재의 전쟁에 관해 고찰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패권주의와 ‘국가가 공인한 멸시’는 당시 세계를 파국적인 비극으로 몰고 간 사상이자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되는 논리입니다.

할아버지가 오래전 제게 들려준 전쟁 체험 중 특히 인상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조선 사람들이 당당히 가슴을 펴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시대가 바뀌었음을 실감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문학, 드라마, 아이돌 등 다양한 문화가 일본에서 친근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서 언급했듯이 그러한 문화, 특히 한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국주의의 종언에 시작점을 둔 ‘전후 일본’이 계속 이어지고 한국과의 문화 교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기를, 또한 제 작품이 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1940년 5월
장작 패는 소리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새벽종처럼 작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세라피마 언니, 꼭 해치워야 해. 오빠가 그랬어. 사슴이 밭을 망쳐서 콜호스*에 작물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마을이 다른 데랑 합쳐져서 이사하게 될지도 모른대."

* 소련의 집단 농장.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공동노동으로 생산하며 소속원 각자의 노동량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는 소련의 농업경영 형태.

"양쪽 다 훌륭하네. 역시 장차 마을을 짊어질 부부라니까."
"우린 그런 사이 아니에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래에 미하일과 세라피마가 결혼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당사자인 두 사람은 입맞춤은커녕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런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미하일이 다시금 진지하게 부정하려는데, 세라피마의 가슴 높이에서 엘레나가 말했다.

"그런데 곰만 걱정되는 게 아니야. ‘식인마 키라’도 나올지 모르잖아!"

가족처럼 잘 알고 친근한 사람들. 사랑해 마지않는 익숙한 마을. 이바노프스카야 마을.
이곳에서는 그 전부가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있으면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광경이 좋다.
이런 날이 분명 영원토록 이어지리라.
열여섯 살 소녀 세라피마 마르코브나 아르스카야는 그렇게 믿었다.

겨울 밤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반짝이며 별들이 내뿜는 빛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잡념이 깨끗하게 사라진 내면을 ‘노려라’라는 유일무이한 의지가 완고하게 가로질렀다. 이윽고 그 의지 또한 사라져 한없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한 순간, 소녀는 호흡까지도 지배하여 호흡 때문에 생기던 총신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이제 방아쇠를 조용히 당기기만 하면 되는 바로 그때.

다시 잡념을 지워버리기 위해 세라피마는 상당한 노력을 쏟아야 했다.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저 언제나 그래왔듯이 마음을 예리하게 벼렸다.

"카추샤*를 작게 부르던데? 놀랐어. 매번 그렇게 집중하면서."

* 1938년에 작곡된 러시아의 대중가요. 독소전쟁 동안 소련 인민들이 애창했고 붉은 군대에서는 군가처럼 불렀다.

"응. 그런데 얼마 전에 시내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마트베이 신부님이 그러셨어. 모스크바에 가도 공산당의 꼭두각시는 되지 말라고, 스탈린은 무자비한 독재자여서 조금만 비판해도 바로 처형한다고. 죽인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된대."

독소전쟁이 시작된 뒤로 선생님은 입지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무슨 일만 있으면 학생들에게 소련의 대독 전쟁은 자기 방위인 동시에 독일 인민을 압정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세라피마가 대학 진학을 결정하자 "혹시 모스크바에 가서 자기 이야기가 나오면, 프리드리히 선생은 모국의 해방을 위해 언제든 나치·파시스트와 싸울 각오를 했다"고 전해주지 않겠느냐며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 疏開. 공습이나 화재 따위에 대비하여 한곳에 집중된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하는 것.

* NKVD. 소련 내무인민위원부. 1934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했던 치안기관이다.

적을 죽이겠다. 그 말 한마디로 자신의 슬픔이 뭉치는 것을 느꼈다. 독일 병사를 죽이고, 그 예거라는 남자를 죽이고, 그리고 나와 엄마의 시신을 모욕한 이리나를 죽이겠다.

슬픔이 분노로, 나아가 적의로 바뀌었다.

"그래도 『프라우다』†에는 적군을 기세 좋게 밀어붙였다고 적혀 있던데요."

† 소비에트연방의 기관지. 의미는 ‘진리’이다.

"하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같은 편이니까. 물론 샤를로타도 같은 편이야. 여기에서 너는 전혀 유별나지 않아. 안심해도 돼, 세라피마. 여기에 왔으니 너는 이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본래 튀르크인이나 타타르인에서 기원한 카자크는 광대한 러시아령에 흩어져 사는 무장한 유목민이었다. 후기 제정러시아에서는 오로지 제국만을 섬기는 군사 집단으로 여겨졌기에 카자크의 촌락이나 행정구역이 군관구나 군단으로 편성되면서 특수한 사회적 지위를 지녔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연합군이 소비에트 정권의 확립을 막기 위해 반혁명군을 지원한 전쟁. 결국 실패로 끝났다.

대소간섭전쟁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연합군이 소비에트 정권의 확립을 막기 위해 반혁명군을 지원한 전쟁. 결국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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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컹컹대는 소리가 들렸다. 요사이 어디서 들어와 동네에 자리를 잡았는지 떠돌이 개들이 사람을 대신해서 동네를 활보하고 있었다. 저번에 옥상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떠돌이 개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개들의 그것과 달랐다. 불안감과 적개심이 공존하는 섬뜩한 눈빛이었다. 나는 혹시 물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골목과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잖아. 그래서 언제나 눈을 뜨고 부정한 기운이나 화재로부터 절을 지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야. 또 한 가지,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말고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부지런히 수행을 하라는 뜻이 있단다. 어때, 듣고 나니 풍경이 새롭게 보이지?

이 세상엔 없어져야 할 인간들이 너무 많다. 인간이란 진정한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존재이다.

세상은 정화가 필요하다.

‘초자연 편’의 경우에는 《괴이한 미스터리》 시리즈의 작품들 중 ‘환상성’을 갖춘 작품들입니다. 괴이하고 미스터리한 소재 속에 몽환적인 분위기와 인간의 인지 범위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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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떠날 필요가 없었다. 월영시든 회사든.

어떤 때는 혼잣말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친구와 논다고 하고, 또 어떤 때는 집안을 엉망으로 어질러놓고는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고 둘러댔다.

‘…도로공사 현장에서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사체가 나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폭우로 무너져 내린 강원도의 한 도로공사 현장입니다. 오늘 새벽 이곳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이….’

나는 미용사다. 낮에는 이승의 손님을 받고 밤에는 죽은 자들을 상대한다. 망자들은 두고 떠난 자들의 꿈속에 가기 전에 혹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영 떠나기 전에 미용실에 들러 단장을 한다.

산 사람들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지며 속 이야길 털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나서듯 망자도 기구한 사연을 나에게 털어놓고 간다.

미용실이라는 곳이 원래 머리만 손질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챠밍 미용실이다.

노인네가 살아 있을 적에도 시끄럽더니 여전히 시끄럽다. 저 목청이면 성악을 해도 대성했을 텐데 욕하는 일에만 쓰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량한 건 누가 내 밥그릇에 손을 대지 않았을 때나 허용되는 가치라고. 누가 내 밥그릇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바로 물어뜯을 자세부터 취하는 게 사람이야.

여자가 슬프게 웃었다. 가슴이 조금 쓰렸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다. 여자는 당장의 복수를 위해 영원의 고통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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