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전쟁에는 보편성과 고유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합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쓴 이 작품을 읽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과연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을 초래하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머금도록 하고 그로 인해 현실의 전쟁을 새로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또한 작품의 의의가 될 수 있겠다고 저자로서 생각합니다.
과거에 벌어진 전쟁의 실정을 되묻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현대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러시아에서 벌어진 과거와 현재의 전쟁에 관해 고찰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패권주의와 ‘국가가 공인한 멸시’는 당시 세계를 파국적인 비극으로 몰고 간 사상이자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되는 논리입니다.
할아버지가 오래전 제게 들려준 전쟁 체험 중 특히 인상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조선 사람들이 당당히 가슴을 펴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시대가 바뀌었음을 실감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문학, 드라마, 아이돌 등 다양한 문화가 일본에서 친근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서 언급했듯이 그러한 문화, 특히 한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국주의의 종언에 시작점을 둔 ‘전후 일본’이 계속 이어지고 한국과의 문화 교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기를, 또한 제 작품이 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1940년 5월 장작 패는 소리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새벽종처럼 작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세라피마 언니, 꼭 해치워야 해. 오빠가 그랬어. 사슴이 밭을 망쳐서 콜호스*에 작물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마을이 다른 데랑 합쳐져서 이사하게 될지도 모른대."
* 소련의 집단 농장.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공동노동으로 생산하며 소속원 각자의 노동량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는 소련의 농업경영 형태.
"양쪽 다 훌륭하네. 역시 장차 마을을 짊어질 부부라니까." "우린 그런 사이 아니에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래에 미하일과 세라피마가 결혼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당사자인 두 사람은 입맞춤은커녕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런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미하일이 다시금 진지하게 부정하려는데, 세라피마의 가슴 높이에서 엘레나가 말했다.
"그런데 곰만 걱정되는 게 아니야. ‘식인마 키라’도 나올지 모르잖아!"
가족처럼 잘 알고 친근한 사람들. 사랑해 마지않는 익숙한 마을. 이바노프스카야 마을. 이곳에서는 그 전부가 내려다보인다. 여기에 있으면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광경이 좋다. 이런 날이 분명 영원토록 이어지리라. 열여섯 살 소녀 세라피마 마르코브나 아르스카야는 그렇게 믿었다.
겨울 밤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반짝이며 별들이 내뿜는 빛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잡념이 깨끗하게 사라진 내면을 ‘노려라’라는 유일무이한 의지가 완고하게 가로질렀다. 이윽고 그 의지 또한 사라져 한없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한 순간, 소녀는 호흡까지도 지배하여 호흡 때문에 생기던 총신의 떨림을 진정시켰다. 이제 방아쇠를 조용히 당기기만 하면 되는 바로 그때.
다시 잡념을 지워버리기 위해 세라피마는 상당한 노력을 쏟아야 했다.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저 언제나 그래왔듯이 마음을 예리하게 벼렸다.
"카추샤*를 작게 부르던데? 놀랐어. 매번 그렇게 집중하면서."
* 1938년에 작곡된 러시아의 대중가요. 독소전쟁 동안 소련 인민들이 애창했고 붉은 군대에서는 군가처럼 불렀다.
"응. 그런데 얼마 전에 시내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마트베이 신부님이 그러셨어. 모스크바에 가도 공산당의 꼭두각시는 되지 말라고, 스탈린은 무자비한 독재자여서 조금만 비판해도 바로 처형한다고. 죽인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된대."
독소전쟁이 시작된 뒤로 선생님은 입지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무슨 일만 있으면 학생들에게 소련의 대독 전쟁은 자기 방위인 동시에 독일 인민을 압정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세라피마가 대학 진학을 결정하자 "혹시 모스크바에 가서 자기 이야기가 나오면, 프리드리히 선생은 모국의 해방을 위해 언제든 나치·파시스트와 싸울 각오를 했다"고 전해주지 않겠느냐며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 疏開. 공습이나 화재 따위에 대비하여 한곳에 집중된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하는 것.
* NKVD. 소련 내무인민위원부. 1934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했던 치안기관이다.
적을 죽이겠다. 그 말 한마디로 자신의 슬픔이 뭉치는 것을 느꼈다. 독일 병사를 죽이고, 그 예거라는 남자를 죽이고, 그리고 나와 엄마의 시신을 모욕한 이리나를 죽이겠다.
슬픔이 분노로, 나아가 적의로 바뀌었다.
"그래도 『프라우다』†에는 적군을 기세 좋게 밀어붙였다고 적혀 있던데요."
† 소비에트연방의 기관지. 의미는 ‘진리’이다.
"하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같은 편이니까. 물론 샤를로타도 같은 편이야. 여기에서 너는 전혀 유별나지 않아. 안심해도 돼, 세라피마. 여기에 왔으니 너는 이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본래 튀르크인이나 타타르인에서 기원한 카자크는 광대한 러시아령에 흩어져 사는 무장한 유목민이었다. 후기 제정러시아에서는 오로지 제국만을 섬기는 군사 집단으로 여겨졌기에 카자크의 촌락이나 행정구역이 군관구나 군단으로 편성되면서 특수한 사회적 지위를 지녔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연합군이 소비에트 정권의 확립을 막기 위해 반혁명군을 지원한 전쟁. 결국 실패로 끝났다.
대소간섭전쟁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연합군이 소비에트 정권의 확립을 막기 위해 반혁명군을 지원한 전쟁. 결국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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