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진흙을 매개로 한 화학 반응들이 있다는 설명이 화성에 생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아니다. 우리가 현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화성의 미생물학적 존재를받아들여야 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 라는 것이다. - P25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닌과 리시폰의 연구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생명 활동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화학적 현상들의 일부를 생물 없이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길이토양화학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 P259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광합성 및 호흡 작용과 비슷한 화학 반응들이 이미 지구의 토양에서 존재하고 있다가 일단 생명이 등장하자 생물 체계 속으로 편입되지 않았나 싶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몬모릴로나이트 종류의 점토가 아미노산을 결합시켜 단백질 분자와 비슷한 긴 사슬 형태의 분자를 만드는 데아주 유력한 촉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259

그렇다면 원시 지구에서는 각종  진흙들이 생명 창출의 대장간이나 거푸집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화성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들은 지구생명의 기원과 지구 생명의 초기 역사를 규명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259

만약 화성에 생명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면 지구 생명 형태의 보편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리고 지구와 상당히 비슷한 행성인 화성에생명이 없다면, 왜 없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화성에 생명이 없다면 비시니액이 생전에 강조한 것처럼 처리군(생명이 있는 지구)과 대조군(생명이 없는 화성)이 대비되는 고전적 의미의 실험 체계가 우리 손 안에 그대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 P261

나 칼 세이건은 물, 칼슘 그리고 각종 유기 분자들로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거의 동일한 분자들로 구성된 집합체이면서, 단지 나와 이름만 다를뿐이다.  - P262

그러나 이것을 전부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이상하다. 분자가 나의 전부란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을해친다고 언짢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우주가 분자들로 구성된하나의 기계를 인간과 같이 복잡 미묘한 존재로 진화하게끔 허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고양된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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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2호의 착륙 후보지의 위도는 긴 과정을 거쳐 결국 북위 44도로 결정됐다. 착륙 1순위 지역은 카이도니아 Cydonia라는 장소였는데,
이 장소를 선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1년 중 적어도 특정 기간 동안에는 그곳에 소량의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확률이 상당히크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P244

커다란 동식물들이 육지를 점령한 것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미생물들은 지구 전역에서 무려 30억 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살아왔다. 그렇다면 화성에서 생명을찾으려면 세균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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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 —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나는 조심성 많은 초식동물처럼 누구와도 단짝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네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안에서 모두와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멀게 지내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우 관계였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는 버스에서 연달아 같은 친구의 옆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고, 한 친구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깊어질 조짐이 보이면 슬며시 발을 뺐다. 적어놓고 보니 뭐 이런 성격 파탄자가 다 있나 싶지만 그때의 내게는 본능적인 자기방어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작가에게 바라는 것 — 『양을 쫓는 모험』

생각해보면 1982년에 나온 소설이잖아. ‘82년생 양쫓모’네? (웃음) 그게 진짜 신기한 거지. 어쨌거나 하루키는 운동권 시대의 작가인데, 그 시대에 이런 식의 묘사를 했다는 게 정말 센세이셔널했을 것 같아. 밥 먹고 섹스하고 그런 내용을 거리낌 없이 막 쓰고. 물론 나중에 나오는, 양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뭔가를 점령당하고 빼앗기는 얘기에서 하루키가 자신의 운동권 세대로서의 의식을 녹여서 넣긴 넣잖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하루키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

돌핀호텔에서 관찰하는 건너편 회사의 ‘가슴이 커다란 여사원’이 내가 가진 판본에는 ‘큰 유방을 가진 여직원’이라고 되어 있어. (일동 폭소)

현실적이면서 평범한 사람, 비현실적이면서 평범한 사람

전쟁이 싫어서 도망 다녔다고 했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있을 법한 사람인 것 같아. 전쟁을 피해 어딘가에 틀어박혔는데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있는 사람. 해외 토픽 같은 데서 나오잖아.

쥐도 평범했기 때문에 양을 자기 안에 가둔 채로 자살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니까.

그 말랑말랑함이 예전엔 좋았지

남성 작가들이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비평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그래서 여성 작가에 비해서는 더 새로울 필요가 없는 면도 있는 것 같아.

난 휘둘리지 않아, 난 상처받지 않아

주인공 스미레가 말이 너무 많더라. (일동 폭소)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수다를 다 듣는 게 힘들더라고. 스미레가 이제 나한테 언니가 아니잖아. 옛날에는 뭔가를 많이 알고 자유분방한 언니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말 많은 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러시더라고. 하루키 팬인 아내분이 "하루키는 젊을 때 읽어야 한다. 나이 들어서 읽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고. 그러면서 편집자님이 왜 청춘일 때 하루키를 읽어야 되느냐고 나한테 물어보셨는데 나는 그때 제대로 대답을 못 했어.

『아무튼, 하루키』가 너의 대답이라고 해. (일동 폭소) 『데미안』도 그렇잖아.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릴 때만큼 좋지가 않지.

난 연애든 섹스든 죽음을 대하는 태도든,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상황이나 사물을 직접 경험하기 전인 미숙한 나이에 읽음으로써 그것들을 대하는 주인공의 자세나 시각을 자기 세계관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게 하루키 팬들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그게 자신의 세계를 확립하는 툴이 된 거니까.

훨씬 뒤에 가서야 겨우 그게 연결되는 거야

『양을 쫓는 모험』은 다시 읽어보니까 웃긴 부분이 많더라. 비싼 프랑스 요리 먹고 "식비가 응축된 맛이 났다"*고 한다든가 "러시아인은 가끔 아주 재치 있는 말을 한다. 겨울 동안에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라든가.

"세상에는 그런 타입의 돈이 존재한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고, 쓰고 나면 비참한 기분이 되고, 다 써버렸을 때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자기혐오에 빠지면 돈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땐 돈이 없다. 구원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 『양을 쫓는 모험』(하), 신태영 옮김, 문학사상, 2009, 237쪽.

올해도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라고들 했던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다. <하루키는 왜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는가?>라는 일본의 신문기사 아래로 "하루키스트들이 멋대로 소란을 피우는 것뿐이야" "(노벨상은 후보를 발표하지 않으니) 애초에 하루키가 후보에 올랐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을 봤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냅니다.

아무튼,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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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쳐 가고 우리는 어른이 되고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아무튼, 하루키 | 이지수

어떤 책을 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삶의 곳곳에서 그 책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 될 때가 있으신지. 내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바로 그런 책이다.
*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 2006.

나는 중학생의 현실 도피에 유용한 도구는 술이나 담배보다 하루키의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리포트가 잘 안 써지면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을 곧잘 떠올렸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 문장이 나를 데려간 곳 — 『노르웨이의 숲』

나는 서른일곱 살이었고 그때 보잉 747기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거대한 비행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하려는 참이었다. 11월의 쌀쌀한 비가 대지를 어둡게 물들여 비옷을 입은 정비공들과 밋밋한 공항 건물 위에 서 있는 깃발, BMW 광고판과 같은 모든 것을 플랑드르파의 음울한 그림 배경처럼 보이게 했다. 이런, 또 독일이군. 나는 생각했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참담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늘 마음에 달라붙어 있었다. 언어를 자유롭게 알아듣고 쓰지를 못하니 나라는 인간 자체의 능력이 몹시 저하된 것 같았다.

맥락을 따라잡지 못해서,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모르는 단어가 섞여 있어서 애매한 미소로 알아들은 척 흘려보내고는 했던 일본 친구들과의 대화와는 달리 하루키의 문장은 언제까지고 나를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충직한 개처럼, 끈기 있는 스승처럼, 배신하지 않는 연인처럼.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 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져갔다. 나날이 낯설어져갔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안됐다면 안됐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운 이방인 생활 —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미국 생활에 관해 쓴 에세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외국어를 말하는 작업에는 많든 적든 ‘안됐다면 안됐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는데 나의 외국 생활에도 그런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의 하나는 자기가 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 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혹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한데 나에게서 모국어와 모국의 문화를 제거했더니,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남의 집 현관에서 신발도 제대로 정리 못 할 정도로 순발력 떨어지고 예상치 못한 배려에 곧잘 당황하는 어설픈 인간이었다.

한밤중에 내게로 오는 자전거 소리 — 「한밤중의 기적에 대하여, 혹은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 애가 내게 오며 만드는 모든 소리가 ‘한밤의 기적 소리’였다.

팬심은 무엇을 어디까지 참게 하는가 — 『기사단장 죽이기』

어째서 육아는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여태 없었을까. 분명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엠바고 같은 거겠지. 아니면 육아에 뒤따르는 희생을 모성과 부성으로 승화시키려 하는 사회 분위기상 갖은 고생담은 경험자들끼리만 쉬쉬하며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키는 피츠제럴드의 소문난 팬이며, 이 소설에서 멘시키가 골짜기 건너편 집을 바라보는 설정과 캐릭터 조형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따왔다고 스스로 밝혔다(『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2018, 194쪽).

그러나 내게는 손목 통증을 참아가며, 귀중한 자유 시간을 바쳐가며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유감스러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유명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띠지나 뒤표지의 광고 문구에 꼭 들어가는 ‘집대성’이니 ‘최고작’이니 하는 단어를 독서가 끝난 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하루키는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했고, 어쩌면 나 역시 하루키를 편파적으로 사랑해서 그의 신간이라면 무조건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가 이름만으로 책을 파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일본 문학에 열광했던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끔 쓸쓸하게 느껴진다. 같은 쓸쓸함을 하루키에게서만은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오랜 팬으로서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파스타를 만들고 재즈를 듣는 남자들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팀 플레이가 필요한 운동은 아무리 해도 좋아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점수를 놓고 겨루는 경기도 싫었다. 내가 좋아한 운동은 오로지 혼자서 묵묵히 하는 수영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데이트의 세계로부터 진작 멀어졌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들에게라도 스니커즈를 사 주고 파스타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뿐이다. 아들이 요리하는 파스타를 얻어먹을 나 자신을 위해, 혹은 미래에 아들의 연인이 될 누군가를 위해.

반환점에서 기다리는 것은 — 「풀사이드」

앙코르와트를 무너뜨리고 인도의 숲을 태우는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 — 『스푸트니크의 연인』

직업으로서의 번역가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대체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정말이지 옳은 말이다.

나 역시 하루키를 본보기 삼아 그간 준체육인이 되려는 시도를 소심하게나마 해왔다. 시간이 남아돌던 번역 초창기에는 자전거로 30분을 달려 수영장에 가 한두 시간 헤엄친 뒤 다시 자전거로 30분 되돌아오는 강도 높은 유산소운동을 거의 매일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운동만으로 너무 기진맥진해서 나머지 시간은 시체처럼 누워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를 뛰어 넘는 소설’은 있어도 ‘시대를 뛰어 넘는(=견디는) 번역’은 웬만해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가령 1989년에 번역 출간된 『상실의 시대』에서는 나오코(여성)가 동갑인 와타나베(남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1993년에 번역 출간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원서는 둘 다 반말).*

* 두 책 다 최근 펴낸 개정판에는 반말로 수정되어 있다.

번역은 정말로 시대를 탄다.

하루키도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처음부터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이류이며, 번역의 참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 『1973년의 핀볼』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그 여행에서 내내 떠올렸던 문장이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난 이런 글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거든 — 『무라카미 라디오』 1, 2, 3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 도중 ‘오이처럼 서늘한(침착한)’이 실은 영어 숙어 ‘cool as a cucumber’를 그대로 옮긴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키 오리지널 표현이 아니었다니, 덕후로서 못내 아쉽지만 오이처럼 침착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 오늘 저녁은 오이냉국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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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우유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든 입으로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 건 지독한 맛은 나지 않으니까요. 아무 맛도 나지 않거든요. 다른 건, 필요한 에너지를 섭취하기 위해서 결사적인 각오로 먹지요. 그밖에 링거를 맞으며 영양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을 마음으로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요. 안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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