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코네는 끄덕였다. 무슨 일에서나 순위를 중시하는 일본인은 어떤 축전을 읽고 어느 것을 읽지 않았나 하는 사소한 일에도 까다롭다.

신서의 비밀
편지, 문서 또는 우편물 등 개인적인 통신의 비밀. 국가나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헌법상의 기본적 자유 중 하나로, 일본의 신헌법에서는 ‘통신의 비밀’ 조항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 쪽 일은 여성은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내심 그렇게 덧붙였다.

"그렇네요. 남자분들은 놀이 상대인 여성과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을 구별해서 사귀는 모양이니까요."

"피로연에는 신랑 신부와 가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세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한자리에 모이잖아요? 파고들어 보자면, 피로연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신랑 신부의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죠? 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는 눈앞이 아찔해질 만한 행운이에요. 다카하시 씨가 미치요 씨를 죽여서라도 에리코 씨와의 결혼을 지키려 한 일도, 그의 약점을 쥔 사타케 씨가 비열한 협박을 꾀한 일도 뿌리는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해요."

"질투, 선망, 미움. 모두 극히 가까이 있는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이니까요. 처음부터 멀찍이 떨어진 사람들 사이라면 새삼 뭐가 어떻다 할 것도 없죠."

"그들은 사타케 씨 몸의, 어떤 부분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거기만 잘라 내서는 금방 그걸 들켜 버릴 테니, 필요 없는 다른 부분도 토막을 낸 거예요."

그렇게 된 사연이라, 이후 히코네 형사는 축전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내 결혼식에 축전을 치는 녀석이 있으면, 그 녀석과는 평생 절교다" 하고 선언한 것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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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선생님의 꿈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술이다. 말 그대로다. 유일무이한 술이었다.

‘통신의 비밀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 일본국 헌법 제21조

허나, 하지만. 형사도 남자다. 상대가 자기 취향인 젊은 여성이어서야 그렇게 냉담해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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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명 아이들의 스물여섯 개 책상 위에는 각각 하나씩, 미야자키 선생이 ‘그것’이라고 내뱉었던 물건이 조용히 버티고 앉아 있다.

조용한 까닭은 그것이 식물이기 때문이고, 버티고 앉아 있는 까닭은 화분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약간 길쭉하고 독특한 잎은 가시가 나 있고 짙은 녹색을 띠고 있다. 꽃은 피어 있지 않다.

이나가와 신이치. 교감이 기억하기로는 6학년 1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이고, 또한 결석 일수가 가장 많은 학생이기도 했다.

딱히 병약하지는 않다. 결석 이유를 물어보면 "어젯밤부터 읽은 책이 무척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고 싶었다"라든가, "등교하려고 걷고 있었는데 너무 날씨가 좋아서 교실에 있기 아깝다고 생각해 버렸다" 같은 대답을 한다.

‘폭풍’ 정도가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일어난 소동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가리키는 티벳 말)를 보고 다카오 산(도쿄 하치오지 시에 있는 높이 599미터의 산)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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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 어딘가에 생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그러나 생명의 존재 여부는 보다 주의 깊은증거의 축적과 평가를 통해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결국 금성에는생물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 P198

사실 헬륨은 지구에서 발견되기 전에 태양에서 먼저 발견된 원소다. 과학자들은 그리스의 태양신 헬리오스 Helios의 이름을 따서 그 원소의 이름을 지었다. - P200

세상을 통째로 태워 버릴 듯 맹렬한 더위, 모든 것을 뭉개 버릴 듯한 높은 압력, 각종 맹독성 기체, 게다가 사위는 등골 오싹한 붉은 기운을 띠고 있어서 금성은 사랑의 여신이 웃음 짓는 낙원이 아니라 지옥의 상황이 그대로 구현된 저주의 현장이라고 하겠다. - P208

우리의 이웃 세상이 무시무시하고 불유쾌한 장소인 것으로 판명이났다. 그렇지만 금성 문제는 좀 더 다루어야 한다. 금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많은 영웅들도 저마다 지옥에 가 보고 오겠노라 요란하게 시도하지않던가? 상대적으로 천국인 우리의 행성을 금성이라는 지옥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P210

우리의 아름답고 푸른 행성 지구는 인류가 아는 유일한 삶의 보금자리이다. 금성은 너무 덥고 화성은 너무 춥지만 지구의 기후는 적당하다. 인류에게 지구야말로 낙원인 듯하다.  - P214

결국 우리는 이곳에서 진화해 왔다. 지구의 현재 기후 여건이 실은 불안정한 평형 상태일 가능성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들을 동원하여 지구의 연약한 환경을 더욱 교란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초래할 심각한 결과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 P214

우리는 지구 기후의 장기 변화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하다. 인류는 자신의 무지를 망각한 채대기를 오염시키고 숲을 제거함으로써 지표면의 반사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 P215

우리의 지능과 기술이 기후와 같은 자연 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무지와 자기만족의 만행을 계속 묵인할 것인가? 지구의 전체적 번영보다 단기적이고 국지적인 이득을 더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녀와 손자손녀를 위한 걱정과 함께, 미묘하고 복잡하게작용하는 생명 유지의 전 지구적 메커니즘을 올바로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인가?  - P215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존재인 것이다. - P215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신들의 과수원에서 그는 운하들을 감시한다.
-수메르 신화 <에누마 엘리시>, 
기원전 2500년경 - P217

사람들이 눈의 기능을 크게 확장하여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우리 곁에 오고야 말 것이다. 
-크리스토퍼 렌, 그레샴 대학교에서 행한 취임사, 1657년 - P218

허버트 조지 웰스 Herbert George Wells는 그의 1897년 작품인 ‘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의 첫 장을 이렇게 열고 있다. 웰스의 『우주 전쟁은 공상과학 소설의 전범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글은 우리에게 긴 여운으로 다가온다.‘ 지구 이외의 세상에생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같이 생명이 존재했으면 하는 회망이 인류의 전 역사를 관류했다. 그리고 외계 생명의 징후를 찾는 데있어 우리는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붉은 점 하나에 특히 주목해 왔다.
그러니까 『우주 전쟁」이 출판되기 꼭  3년 전이었다. - P221

2. 아이작 뉴턴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망원경의 제작 이론을 완전하고 상세하게 적용시켜 한 대의 망원경을만들었다고 해도, 그 망원경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려면 별빛이우선 대기를 통과해야 하는데, 작은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지구 대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천문대 자리를 대기가 극도로 잔잔하고 조용한 곳에 잡는 것이다. 거대한 구름층 위로 솟아오른 높은 산의 정상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 P223

그럼 화성 운하의 정체는? 좋지 않은 시상 조건에서 인간의 손과눈과 뇌가 잘못 작동한 종합 결과인 듯싶다. 최소한 일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 P229

워싱턴, 뉴욕, 보스턴, 모스크바,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와 베이징 같은 곳에서도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지구에 지성을 가진 생물이 분명히 살고 있지만, 우리 지구인들이 지형을 아직 그렇게 심하게 변화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 바깥에서 킬로미터 단위의 해상도로 관찰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하학적 형태의 구조물들을 아직 지구상에서 찾아보기어렵다. - P234

그러나 더 접근하여 선형 해상도가 10배로 향상되어 크기 100미터정도의 작은 형태들도 보이기 시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구상의 많은 장소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사각형과직사각형, 직선과 원의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들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이것들이야말로 지성을 가진 존재가 구축한 공학적 구조물인 것이다. 예를 들면 도로, 고속도로, 운하, 농장, 도심의 거리 같은 인공 구조물들 말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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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침내 자력 구제에 나선 것은 유월 중순의 일이다.

내 이름은 미타무라 마코토. 중학교 1학년이다. 성적도 키도 중간 정도인데 성적은 뒤에서부터, 키는 앞에서부터 세는 편이 빠르다.

나는 주택 정보지를 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나오고 게다가 어느 물건이나 사려는 사람이 나선다는 사실에 소박하게 놀랐다.

다만 우리 남매를 키우며 회사를 운영하고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늘 과부하 상태인 부모님과, 평일 밤이나 때로는 토요일 오후 매번 비슷한 시간에 대형 벤츠를 스윽 타고 와서는 애인과 즐기기 위해 문 너머로 유유히 사라지는, 배가 나오기 시작한 아저씨를 비교하며 내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것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따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하룻밤 묵으러 왔던 할머니는 실로 솔직하게 "옆집의 빌어먹을 개새끼"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

동물은 ‘움직이는動 것物’이라고 쓰는 만큼 운동이 필요하단 말이지.

도모코는 지금도 이층 방 침대에 누워 있다. 병약한 아이란, 부모에게 어리광만 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굉장히 면목 없어하는 데가 있는 법이다.

"아버지도 나도 벌써 몇 번이나 했어." 나는 대답했다.

"어머니도 슬리퍼를 확 던지거나 하지만. 요전에는 막 사 온 달걀 박스를 던져 버려서 말이야."

삼촌은 천장을 보며 웃었다.

"누나는 열이 확 오르는 타입이니까 말이야."

있어야 하는 것도 없이 만들어 버렸다니 말이지. 어른이란 여러 가지 일을 하는군.

"우선, 이런 종류의 범죄에 여자를 가담시키면 위험하거든. 수다스러우니까 말이야."

"그럼 아버지는?"

"음…… 매형은 말이지……. 저래 봬도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니까. 어디까지나 정공법으로 이웃의 상식에 호소하는 방법이라면 찬성할 테지만, 이런 식의 자력 구제 얘기를 꺼내 봤자 아마 반대할 거야. 게다가 지금은 안 그래도 바빠서 큰일이잖아?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쓰게 할 필요는 없지."

그날, 나는 이곳으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밀리의 소음이 아닌 다른 일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냈다.

"남한테 실컷 폐를 끼쳐 놓고 모르는 척하는 주제에 이렇게 비밀 계좌를 만들어 탈세하고 있단 말이야, 이웃분께서는. 억울하지 않아?"

"무슨 일이니? 누구한테 온 전화야?"

정말이지, 어머니 귀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그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은 일만 쫑긋하고 반응하는 안테나는 거의 스파이 위성급이다.

삼촌은 이제 너무 웃어서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도 비슷했다. 도모코가 가장 침착해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순간을 지켜보려는 듯이 기대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다.

만 엔짜리 지폐가 다섯 줄 늘어 놓여 있다―하지만 그것은 ‘늘어 놓여 있는 듯 보인다’를 잘못 본 것이었다. 맨 위의 다섯 장을 빼고는, 나머지는 전부 지폐 크기로 자른 신문지다.

그날 밤, 두 손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첫 손님은 뇌우였다.

데루테루보즈
처마에 걸어 놓으면 다음 날 날씨가 맑아진다는 일본의 인형

그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체격이 좋아 보인 이유는,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은 채 그 위로 코트를 입었기 때문이다.

"예, 삿포로니까요."

대답하고 나서, 이 사람 대체 뭐지, 나도 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 거지, 하고 뒤늦게나마 생각했다.

"끝까지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판에 와서 겁먹어 버리다니 계산 착오야. 안 돼. 못 견디겠어."

격렬하게 고개를 젓고 반쯤 우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전부 거짓말이야."

"나는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아이예요. 그것도 AID, 비非배우자간이죠. 아버지는 아이를 만들 수 없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와 의논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유전적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걸 알게 된 건 다리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깨기 시작하면서 꾸벅거리고 있을 때였어요. 그럴 땐 주위의 이야기 소리가 제법 들리는 법이거든요."

요도 호 하이재킹 사건
일본에서 일본 공산주의 동맹 적군파 아홉 명이 하네다 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도주한 사건. 일본 최초의 항공기 공중 납치 사건으로, 범인들은 북한에 도착했으며 한국과 북한 정부의 도움을 받아 희생자는 없었다.

"그만두게 해 주십시오."

젊은 교사는 쭈욱 어깨를 펴고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강요했다. 관자놀이가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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