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한 시대를 넘을 정치 비평의 품격!
우리가 묻고 싶었던 것, 그리고 유시민의 답윤석열은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임기를 마치게 해도 대한민국 괜찮을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역사는 나쁜 때가 지나면 좋은 때가 온다.
그 격려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본질을 드러내는 분석과 전망
지난 2년의 시간이 일깨운 것

시민들은 서로 묻는다. 집권당이 역사적인 총선 참패를 당했는데도대통령은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한다. 윤석열은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임기를 마치게 해도 대한민국 괜찮을까? 그 질문에 대답해 보려고 책을썼다.

민주주의가 배격하는 것은 극단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을 폭력으로공격하고 말살하려는 독선과 불관용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상관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폭력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총선이 끝난 후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책과 국정에 임하는 태도를 바꿀지, 바꾼다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바꿀지지켜보았다. 두 달이 지났고 22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달라진 건전혀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긴 했는데, 무엇 때문에 만나자고 먼저 전화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바꾸었고, 국무총리도 교체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참모와국무총리를 바꾼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는 ‘윤석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5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코끼리의 잘못이 아니다. 거기 들어가게 한 사람들이 잘못했다. 국민의힘 정치인과 당원, 윤석열을 공정과 상식의 화신인 양 찬양했던 언론 종사자, 거짓 기사에 속아 표를 준 유권자들은 남들보다 큰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 P7

그의 운명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괜찮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윤석열의 시간도 지나간다. 그가 어떻게 되든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역사는 나쁜 때가 지나면 좋은 때가 온다고 말한다. 그 격려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 희망은 힘이 세다. - P9

J정치가는 수모를 잘 참지 못한다.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확신이 강하면 더 그렇다.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정치판에서 오래 생존해야 하기때문에 수모를 견디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어떤 수모를 얼마나 오래 겪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문재인도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뒤 민주당 대표를 하는동안 국힘당뿐 아니라 안철수를 비롯한 내부의 반대파한테도숱한 모욕을 당했다. 그런데도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참았다. - P199

윤석열과 국힘당은 그러는 게 당연하다. 비판해봤자 소용없다. 그러나 정의당과 민주당 비주류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재명을 제거해서 그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무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가 합당한 수사권 행사인지 묻지 않았다. ‘이재명사법 리스크‘라는 말로 검찰 수사를 정당화하거나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이재명의 불체포특권 행사를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을 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단테의 경고를 몰랐던 듯하다. - P207

복수와 응징
윤석열은 어떻게 조국을 죽였는가? 완벽하게 선하지 못했다는 약점을 들추어 위선자로 단죄하는 방식으로 죽였다.
조국은 어떻게 윤석열을 죽일 수 있는가? 그가 선한 척조차할 마음이 없는 악당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위선이 싫다고 위선조차 떨지 않는 자에게 권력을주었다. 그 선택을 되돌리고 싶은 유권자가 있었기 때문에 조국혁신당은 약진했고 민주당이 압승했다. 윤석열이 권력을 무도하게 휘두를수록 조국혁신당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윤석열이 모든 것을 잃고 오욕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져야 조국의전쟁은 끝이 난다. - P220

조국의 법고전 산책』(오마이북, 2022)과 『디케의 눈물』(다산북스,2023)에서 조국은 법치가 ‘법으로 다스리는 것(ruleby law)‘이 아니라 ‘법이 다스리는 것(rule of law)‘임을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은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면서 법으로 남을 다스리려 한다. 조국은 검찰총장 윤석열이 자신에게 적용했던법률을 대통령 윤석열과 수족들에게 똑같이 적용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 목표를 성취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존재의 자격을 확인하려고 한다. - P221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21세기 문명의 표준이 된 것은 그 장점 때문이다. - P23

진보 정치는 더 큰 위험이 따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을 생각해 보라. 노무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내놓았다. 나는 어느 시민의 블로그에서 본 문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이해석이 노무현의 선택을 모든 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나는 받아들였다. - P34

조국의 법대 친구들이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국아, 저들은 ‘공소권 없음‘ 결정을 원한다는 걸잊지 마." 조국을 볼 때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었다. 검찰은 노무현과 노회찬에 대한 수사를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종결했다. - P38

예전에는 저널리즘을 신문사와 방송사와 통신사가 독점했다. 표현의 자유는 만인의 것이니 논리적 법률적으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기술적 제약이었다.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데 큰 비용이 들었다. 스튜디오와 전파 송출설비가 없으면 방송을 제작 송출할 수 없었다. 자본 없이는 언론기관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국가와 부자만 언론기관을만들 수 있었다. 그런 언론에 대항하려고 「한겨레」를 창간했는데, 「한겨레」가 제 몫을 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정치인은 언론에 의존했다. 언론인에게 잘 보이려 했다. 언론에 굴복하고굴종했다. 그것을 거부하고 대결한 정치인은 노무현이 처음이었다. 결국 언론이 검찰과 손잡고 그를 죽였다. - P116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더닝-크루거 효과‘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운명이 그를 덮친다. 자신에게 왜 그런 운명이 닥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P254

오래전 읽은 책에서 본 이론을 소개한다. 지금은 서점에없는 책이라 제목은 말하지는 않겠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직후 영국 노동당 대표였던 해롤드 라스키다. 폭력혁명을 옹호한다고 비난받을 정도로 급진적인 지식인이었지만 사회혁명에 대한 통찰은 지금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라스키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사회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 첫째, 대중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집권세력이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셋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 P268

2천여 년 전 사마천은 『사기』의 「백이숙제열전」에서 하늘의 도‘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이숙제와 같은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러나 도척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도당을 모아 천하를 더럽혔는데도 천수를 누렸다. 나는 의심한다. 하늘의 도는 과연 있는가." 중국 춘추 시대 강도 도척과.
고결하게 산 백이 숙제를 비교해 세상의 부조리를 개탄한 것이다. - P270

도는 하늘에 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에, 사람의 관계에, 사람의 본성에 있다. 윤석열의 권력은 국민이 주었다. 그 권력을 국민이 다시 빼앗을 수 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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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는 사학에서 투명하게 경영하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이 나라 망할 일이라는 말인가? 21세기 벽두에 거리를 방황하는 유신공주를 보며, 40여 년 전에 사립학교법을 처음 제정하여 사학을 법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 박정희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혀를 차지 않았을까?

새만금 사업 등은 나라가 들썩일 만큼 규모가 큰 사업이다. 하지만 국방부가 벌이는 사업을 보면 하나하나가 새만금보다 규모가 크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해야만 한다. 국방은 군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국방의 의무가 있다. 시민들은 관심과 감시로 국방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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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국가 대한민국
아직도 대한민국은 병영국가다
아니, 더 강화된 병영국가다.

병역준비역

뭐 이런 개뼉다귀 같은게 생겼나

우리때도 없었던 병역준비역이란게 있다.
첨 들어봤다.
고3. 아들놈에게 통지서가 왔다.
깜짝놀랐다.
이런게 있었나. 아! ㅆ ㅂ
고3. 수험생들에게 심난하게 이런걸 보내고 싶은가
병무청 열일한다.

아내는 나보고 대신 다녀오란다.

그래, 다시 한번 삽질해보자.

나, 삽질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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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넘게 해오던 연재를 그만두는데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인터넷 서평을 통해서건 직접 만나서 들은 이야기건 『대한민국史』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에서 가장 흔하게 접한 것은 분노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 읽은 어떤 시인의 말처럼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산다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는 일제의 강점, 분단, 전쟁, 그리고 독재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망의 역사가 아닌 희망의 역사이다.

미국 유학 시절, 한 미국인 사회주의자와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을 피해 군대에 입대했고 한국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꾸어놓는 사건을 만났다. 꿈꾸듯 그는 말했다. "너 그거 아니? 전쟁이 끝나고 겨우 7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7년. 길거리에는 아직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거든. 그런데 청년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세상을 바꿔버렸어." 그 경이로움! 그는 갓 스물, 자신이 한국에서 목도한 민중의 힘이 30년 뒤 쉰 살이 넘은 자신으로 하여금 시애틀의 구석에서 유인물을 돌리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가 갖고 있는 이 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한국전쟁의 학살에서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5ㆍ16군사반란과 유신의 동토를 녹이고, 광주학살의 절망과 슬픔을 딛고 여기까지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더 어렵던 시절을 돌이키며 신발을 고쳐 신는다.

2006년 11월
한홍구
대한민국사 4 | 한홍구

김옥균이 "대원군을 곧 모셔오도록 할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 이광린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김옥균 등은 "대원군이야말로 쇄국에 대한 생각만 바꾸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옥균 등을 키워낸 박규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고종의 리더십에 실망한 박규수는 고종이 군주로서 갖춰야 할 리더십을 키우는 것보다 쇄국과 개화에 대한 대원군의 견해를 바꾸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울 때의 평양감사가 바로 박규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박규수는 쇄국정책에서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그의 사랑방은 개화파들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했다.

『성경』, 『노자도덕경』, 『수호지』, 『코란』, 『신곡』, 『데카메론』, 『군주론』, 『유토피아』, 『천로역정』, 『법의 정신』, 『에밀』, 『상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적과 흑』, 『종의 기원』, 『죄와 벌』, 『톰 아저씨의 오두막』, 『곤충기』, 『인형의 집』, 『아큐정전』, 『의사 지바고』, 『무기여 잘 있거라』, 『수용소군도』…….
너무나 유명한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명 대학의 신입생 권장도서 목록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책들?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들의 진짜 공통점은 한때 어떤 이유로든 금서의 목록에 올랐다는 점이다.

역사의 진보란 늘 기성의 권위에 대한 비판과 도전에서 비롯됐다. 세상을 바꾼 책들이란 대개 한 번쯤 금서의 반열에 올랐다가 이제는 고전이 된 책들이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금서는 역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인데, 이 책은 처음에는 판매금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위하다 잡혀온 학생들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눈을 뜨게 되었다고 진술한 덕에, 1979년에 뒤늦게 판매금지 도서가 되었다.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고통이 피해자가 당한 고통보다 크지는 않다. 지금 고백이 필요한 정말 중요한 이유는 고백이 치료약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통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당신이 하는 고백은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다. 억만금을 보상금으로 준다고 해도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가해자의 고백으로 치유될 수 있다.

고백하면 바보가 되고 고백을 거부한 자는 떵떵거리고 사는 이 땅에 윤동주라는 청년이 잠깐 다녀갔다. 그의 절절한 시 한 수.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지금 이 땅에서 고백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윤동주의 ‘참회록’을 고백을 하지 말라는 말로 잘못 읽은 것은 아닐까? 늘 떨리고, 늘 서투를 수밖에 없는 고백. 그러나 나는 지난 시기의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기 당대의 부정적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길은 스스로 고백하는 것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최초로 학술논문에서 한국의 국립묘지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고찰한 김종엽에 따르면, "전몰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들을 기념하는 전몰자 숭배를 조직함으로써 국가는 국가의 토대가 바로 군대이며 희생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전파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계속해서 요구될 동원과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상징적 지배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수십 명의 인명을 희생하는 것도, 국가가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신화를 만드는 작업이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이 멀리 한국이나 베트남의 전장에서 수십 년 전에 희생된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하는 데 열심인 것은, 미국이 앞으로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심란한 모습이기도 하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변하고 있다. 1875년에 태어난 이승만이 장기 집권을 하더니, 그 최고 권력이 40년을 뛰어넘어 1917년생 육군소장 박정희에게 갔다. 박정희가 18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하더니, 그 권력을 다시 1931년, 1932년생 육군소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고는 거꾸로 1927년생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더니, 1926년생 김대중이 그 자리를 이었다. 그리고 20년을 뛰어 1946년생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

군사독재 30년이 지속되고 거기에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맞선 양 김씨의 시대가 그만큼 오래가더니, 2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뒤엎은 4·19세대를 건너뛴 것이다.

유시민 군을 남겨두고 통금이 다 되어 집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뉴스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현실에서건 역사에서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을 보게 될 때면, 광주학살의 전야에 그 넓은 관악캠퍼스의 불 꺼진 학생회관에 홀로 남은 유시민을 떠올렸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의 그는 다가오는 캐터필러의 굉음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역사가 무서운 것은, 역사를 이끌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뒤에 처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즐겁게 힘을 보태어 뒤에서 수레를 밀고 가면 원로가 될 수 있고, 자기가 계속 끌겠다고 앞에서 막아서면 수레에 깔릴 뿐이다.

지금, 그 시절에 꿈꾸던 좋은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때 차마 꿈꾸지 못하던 무언가가 돼버린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때 같이 싸우던 사람들과 함께 꾸던 꿈은 어디로 간 것일까? 20대의 꿈을 그대로 실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차지하게 된 자리의 힘을 동원해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 5부 |
왜곡된 역사의 고리를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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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1일 칠레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향해 "두 나라 정치 관계가 정체와 곤란을 겪게 된 최대 장애 요인은 일본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야스쿠니에서 죽음은 슬픔이나 상실감의 대상이 아니다.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여러 시간에 걸친 초혼식을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까지 한 것은 이런 의식이 군국 일본의 전쟁 동원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지하에서 천황의 은혜를 경건히 떠받들고, 유족은 자신의 아들이나 형제를 야스쿠니에서 신으로 모셔주는 천황의 은혜를 입은 광영에 감읍하여 부형의 전사를 기뻐하고, 일반 국민은 또 다른 전쟁에 천황과 제국 일본을 위해 죽기를 기약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야스쿠니신사를 통해 제국 일본의 지도자들이 끌어내려 한 분위기였다.

침략국가가 일으킨 잘못된 전쟁에 가해자로 동원돼 죽음을 강요당한 전사자들을 ‘영령’으로 칭송하는 일은,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헌 아시아소송 원고단 단장 스가하라 류겐이 잘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사자를 이용하는 일로서 전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곳에서 신이 되어버린 죽음은 자연스럽지 않다. 슬픔도 상실감도,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다짐도 ‘죽음을 죽여버린 공간’인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이라도 한데서 새워본 적이 없는 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단 한 번도 발품을 팔아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의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샌 투사들을 모욕하게 할 수는 없다. 항일투사 김일성에 대한 폄하는 곧 1930년대 후반 이래의 우리의 항일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폄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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