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에도 시대 삼백 년 동안 죄인들이 거주했던 이 섬에 긴다이치 코스케가 건너온 건 귀환선 안에서 죽은 전우 기토 치마다의 유언때문이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세 누이동생들이 살해당할 거야…………….
긴다이치 군. 나 대신・・・・・・ 나 대신에 옥문도에 가 주게.
세토 내해에 위치한 작은 섬에서 선주로 군림하는 기토 가를 방문한긴다이치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심상치 않은 세 자매를 만난다.
낯설고 불쾌한 섬의 분위기, 긴다이치 코스케는 서서히 퍼져가는살인의 조짐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윽고 전우의 유언처럼, 악몽과 같은 살인사건이 하나씩 일어난다.

<옥문도>는 출간 이후, 40여 년 넘게 일본 역대 추리소설 1위를 지켜 온 작품으로,
수수께끼 위주의 추리소설을 뜻하는 본격(格) 미스터리의 걸작으로 추앙받는다.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본의 국민 탐정이며, 만화 속 소년 탐정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빗추카사오카(備中笠岡)로부터 남쪽으로 7리1), 세토 내해의 대략 중간 지점에 있는 그곳은 정확히 오카야마(岡山)현과 히로시마현과 가가와(香川)현, 세 개의 현의 경계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둘레가 2리 정도 되는 작은 섬이 있어 그 이름을 옥문도라고 한다.

옥문도(獄門島) 혹은 고쿠몬토.

"제가 있던 섬은 인구 천 명 정도였지만, 그게 이중삼중, 심하게는 오중육중으로 혈연을 맺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섬 전체가 하나의 대가족 같은 건데 그런 곳에 타지 출신 순경이 들어올 경우에 뭘 할 수 있겠어요. 뭔가 사건이 일어나면 섬 전체가 일치단결해서 대응하니까 타 지역 순경도 손 쓸 도리가 없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 예를 들면 물건이 없어졌다든가 돈을 도둑맞았다는 신고가 있어봤자 타지 순경이 조사해서 겨우 범인을 지목할 때는 이미 저쪽에선 제대로 합의가 성립되어 있어, 아니, 그것은 도둑맞은 게 아니라 장롱 안에 넣어 놓고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상황이니, 태평하다면 태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또 경우에 따라선 이 만큼 성가신 일이 없어요."

그것도, 아아, 그것도 너무나 무서운 사건이었다. 정체 모를 악몽과 같은 살인, 요사스런 기운과 간사한 지혜로 가득 찬 계획된 일련의 살인사건, 참으로 그야말로 옥문도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왠지 섬뜩한, 그리고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만큼 오싹한 사건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다른 청년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전쟁에 끌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간을 공백 상태로 보냈던 것이다.

옥문도란 코스케 씨, 그곳은 불쾌한 섬이야. 무서운 섬일세. 코스케 씨, 자네는 거기에 무얼 하러 가는 건가.

여러분이 혹시 이런 섬에 들어왔다면 승려의 세력이란 게 얼마나 강대한 것인지 알고 틀림없이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배 밑 널빤지 한 장 아래는 지옥12)인 어부들에게 있어 신앙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그 신앙을 지배하는 승려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섬에서는 촌장조차 절의 주지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소학교 교장과 같은 경우에는 자주 주지의 호오(好惡)에 의해 임면되는 것이었다.

12) 배 밑 널빤지 한 장 아래는 지옥(板子一枚下は地獄): 뱃사람에게 위험이 많음을 가리키는 속담.

그 남자는 철 테 안경을 쓰고 미꾸라지수염과 염소수염이 깔끔치 못하게 구부러져 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보이는 소매 없는 외투 안에는 가문(家紋)을 넣은 하오리(羽織)13)와 하카마를 입은 듯했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세 누이동생들이 살해당할 거야……. 하지만…… 하지만……, 난 이제 글렀네. 긴다이치 군, 나 대신에…… 나 대신에 옥문도에 가 주게.……언젠가 건네준 초대장……, 긴다이치 군, 나는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지만 훨씬 전부터 자네가 누군지 알고 있었네……. 혼징 살인사건…… 나는 신문에서 읽었다네……. 옥문도…… 가 주게, 나 대신에…… 세 누이동생…… 오오, 사촌이, …… 내 사촌이……."

(쓴) 여뀌를 먹는 벌레도 제 좋아 먹는다: 사람의 기호는 제각각이란 뜻. 우리 속담으로 치자면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 혹은 ‘갓 쓰고 박치기해도 제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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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를 죽인 쌍둥이 두 사람이 또 그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품는 것은 누님으로서는 무리가 아닐지도 모르고, 게다가 저런 고령에 이른 노파란 사람들은 어딘가 인간을 초탈한 데가 있어서 생각하는 법도 상식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누님은 그걸 겁내고 있는 것이다.

그 시체는 시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시체가 물기가 많은 곳에 매장된 경우, 시체의 지방이 분해되어 지방산을 만들고 그 지방산이 물속의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결합하면 물에 불용해성 지방산 칼슘 및 지방 마그네슘, 즉 비누로 변한다는 것이다. 즉 시체는 비누가 되어버려 오랫동안 원형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을 시랍이라고 한다고 한다. 물론 아무나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 타고나길 지방이 많은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매장한 장소가 칼슘이나 마그네슘이 풍부한 수분이 많은 곳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은 세로로 5촌(15센티미터), 가로로 3촌(9센티미터) 정도의 네 모서리를 깎은 타원형의 금속으로 손에 쥐자 묵직하게 중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 면에는 나뭇결 같은 흔적이 있고, 한 면은 까칠까칠한 접쇠무늬28)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그것을 손바닥에 놓은 채 응시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쏴 하고 등골을 뚫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아아, 이것은 황금 판자, 즉 금화가 아닌가.

아아, 나는 이제 와서야 어머니의 자비로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왜 그 지도를 내 복주머니에 넣어두셨는지, 그리고 또 왜 그 지도를 그처럼 소중히 하라는 말씀을 남겼는지, 나는 이제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지방에 남아 있는 전설이라든가 구전 같은 것을 바보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들은 기억이 있다. 정량정질(定量定質)의 금화를 최초로 주조했던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 그 전에는 그저 금괴를 망치로 두들겨 펴서 낙인도 찍지 않고 묵화도 없이 필요하면 저울에 달아 조각내어 썼다고 한다. 내가 아까 본 황금은 그런 판금(板金)의 일종은 아닐까. 아마코 가문이 멸망한 에이로쿠 9년은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의 패권을 주장하기 전의 일이고, 이 무렵 천하는 군웅이 할거해 금은에 대해서도 분란이 일었던 시대로, 각지에 여러 가지 판금이 있었다고 한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근심이 이어져 끊임없음을 비유한 말로 오랫동안 쌓인 수심 때문에 덧없이 늙어 백발이 3천장이나 길어졌다는 뜻.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에 나오는 글귀임.

부처님의 보물 산에 들어간 사람은 용의 턱의 무서움을 알리라

흑옥 같은 어둠보다 검은 백팔 개의 여우 굴에서 헤매지 마라

푸지 마라 도깨비불 연못의 귀청수30) 혹 몸을 태우는 갈증에 미칠지라도
30) 귀청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가리킴.

그렇다고 해서 비밀을 털어놓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보물을 찾는 것은 한 사람으로 족하다. 비밀로 해야만 재미있는 것이다. 결국 그 날은 결국 말을 꺼낼 기회를 놓쳐버렸다.

마 잎이 흩날리는 길의 일리총(一里塚)31)

비구니가 앉아 있는 텐구의 코에서 쉬게 되면 메아리의 십자로에 귀 기울이라

육도(六道)32)의 도깨비와 부처의 갈림길이여 메아리의 십자로를 주의하라

31) 일리총(一里塚): 이치리즈카. 강호시대 전국 가도에 1리마다 흙을 쌓아올리고 소나무나 삼나무 따위를 심어 이정표로 삼았던 것.

32) 육도(六道): 일체 중생이 선악의 업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르는 여섯 가지의 미계(迷界).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도깨비불 연못’에 떠있던 코우메 할머님의 시체를 절벽 위로 끌어올리자 바로 두 사람의 형사가 밖으로 끌어냈고 한 사람은 외지 출신의 의사 아라이 선생을, 한 사람은 초롱이니 휴대용 램프 등 여러 가지 조명 도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도깨비불 연못’은 천지개벽 이래 가장 많은 조명을 받고 그 빛 아래에서 검시나 현장조사 등이 행해졌던 것이다.

나는 망연해졌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내 가슴은 요동치고 머리는 착란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는 겨우 알아차렸다. 사진의 주인공은 나를 빼닮았다. 본인인 나 자신이 잘못 봤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눈가, 입언저리, 뺨이 부푼 정도. 쏙 빼닮았지만 어딘가 나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게다가 이 사진은 낡았다. 이건 이 년이나 삼 년 전에 찍은 건 아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나는 사진을 뒤집어보았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글씨가 춤추듯 내 망막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가메이 요이치(27세)
다이쇼 10년(1922년) 촬영

이렇게 나는 고뇌하고 번민하며 한밤중까지도 잠들 수가 없었는데, 세상에는 어떤 일이 행운이 될지 모르는 법이다. 그 덕분에 나는 무서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마음을 어둡게 한 것은 아까 들은 미야코의 소문이었다. 어떤 이유로 미야코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그 만큼 나를 믿고 나를 격려해주었던 미야코이기에, 그 예상치 못한 변심은 새삼스레 사람 마음의 미덥지 못함을 일깨워주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앞뒤 분간이 되지 않는 어둠속에서 이야기상대도 없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아실런지. 사실 나는 어쩌면 그때 무서운 근심의 씨앗이 없었다면 정신이 이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결코 미친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오늘밤 스와 변호사를 이 자리에 모신 것도 이 일에 대해 부탁하고 싶어서입니다. 묻혀 있던 재물을 발견했을 경우 그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지, 또 어떤 법적수속을 밟으면 되는지, 저는 조금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일 일체를 스와 씨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계속해서 여기서 발표하겠습니다만, 저는 노리코와 결혼했습니다. 저 동굴 속에서……. 자, 노리코, 여러분께 그 황금을 보여드려……."

노리코가 일어서서 도코노마 옆에 있는 벽장을 열고 거기서 엄청난 금화를 꺼냈을 때 어떤 환성과 박수의 폭풍이 일어났는지 그것은 새삼 설명할 것도 없다.

"이 마을에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근대적인 기술을 몸에 익힌 인간이 모여들게 되면 마을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달라지겠지. 그것 밖에는 이 부아가 치미는, 미신을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교정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 그런 의미로도 나는 이 사업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타츠야 군, 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을 거네. 그것은 미야코에 대한 의리 같은 게 아니라, 나 같은 경험을 한 남자가 여성에 대해 회의적이 되고 겁쟁이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러니 너희들, 너와 노리코는 많이 아이를 낳아줘. 너희들 사이에 태어난 두 번째 남자아이를 나는 입양해 다지미 가의 상속인으로 하고 싶네. 그렇게 함으로써 불행했던 너의 어머니에게도 의리를 지키고 또 너를 이 집의 상속인으로 하려던 히사야 군의 뜻에도 부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타츠야 군, 이 일만은 지금 약속해주게."

나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명의 첫 숨결이 어머님의 태내에 싹튼 것은 저 동굴 속에서였음이 틀림없다고. 같은 일이 노리코의 태내에 일어난 것이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되풀이되는 세포의 역사는 집요하다.

나는 강하게 노리코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곧 태어날 이 새 생명에게는 결코 자신이 맛본 것 같은 비참한 반생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마지막으로 《팔묘촌》 속의 긴다이치 코스케에 대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대한 일본의 국민 탐정은 사실 가장 무능한 탐정이라는 오명도 동시에 갖고 있는데, 후세의 연구자들로부터 제법 심한 말도 많이 들었다. ‘모두 죽지 않고서는 범인을 말하지 않는다’라든지 ‘사건을 떠나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기 때문에 살인이 일어난다’라든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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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왠지 저 사람이 무섭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가는25) 영리함이 제게는 뭣보다 두려운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시골사람들이 질투하는 걸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생각되어도 할 수 없지만 무서운 건 역시 무섭다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사토무라 신타로 씨 같은 사람도…….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간다(眼から鼻へ拔ける): 나라시대, 대불전의 완성이 임박했을 즈음, 대불상의 한쪽 눈이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공 하나가 불상의 안쪽에서 눈을 붙이고 나서 콧구멍으로 빠져나온 것을, 아래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 ‘영리하고 기지가 풍부하다’는 의미.

"그래요, 그렇다면 저도 기쁘지만……. 어쨌든 사람은 겉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니 이제 앞으로는 서로 조심하기로 해요."

사람이란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있을 때는 좀처럼 속에 있는 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지만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평소 속에 감춰두고 있던 것이 무심코 얼굴에 나오는 법이다. 그때 신타로가 그러했다. 게다가 그런 신타로의 얼굴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어떻게 구제할 길이 없을 만큼 어둡고 참혹하고 흉포한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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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 인간 특유의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면서 미야코 앞에 앉은 것은 나이 오십 전후의, 얼굴도 몸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마치 요전에 돌아가신 조부와 비슷한 체구의 남자였다. 필경 이 부근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리라. 복장까지 조부와 닮아 있다.

시골사람은 대개 의리가 두텁지만, 바보 취급당하는 것보다는 겉치레 말 한 마디 쪽에 끌리는 게 인정상 당연하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디를 가도 그렇게 의리만 따지고 있을 수 없는 풍조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엉덩이가 무거운 의사보다도 바지런히 움직여주는 의사 쪽이 고마운 건 무리가 아니다.

마소거간꾼의 마구간 선점이든 의사의 환자쟁탈전이든 시골마을이란 신천지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나는 그때 적잖은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말입죠, 구노 선생의 아라이 선생에 대한 증오란 건 엔간한 정도가 아닙니다요. 어두운 곳에선 도무지 듣고 있기가 힘든 말을 했다니까요. 그래, 저도 생각했던 건데요, 이카와 할아버님에게 독을 먹인 건 구노 선생이 아닐까 하고……."

팔묘촌……. 그것은 마치 양념절구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 듯한 모습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들은 2리(약 8백 미터) 남짓, 각 방향으로 꽤 위쪽까지 경작되어 있었는데 기슭부터 양념절구 바닥에 걸쳐서 논도 볼 수 있었다. 그 논들은 문자 그대로 고양이 이마만큼 작은 면적이었는데 이상한 점은 어떤 논이건 주위에 울짱을 치고 있었다.

소를 쳐서 먹고사는 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목장인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소는 마을길에 이르는 곳에서 멋대로 자고 있다. 그리고 그 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논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친 거라고 한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돌아가라, 돌아가거라. 여덟무덤신께서 노하실 것이야. 네 놈이 오면 마을은 다시금 피로 더럽혀질 터. 여덟무덤신께서 여덟 명의 제물을 구하실 터. 이놈, 이노옴, 오지 말라는데……. 네놈은 네놈의 아비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느냐. 그것이 첫 번째 제물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둘, 셋, 넷, 다섯……. 이제 곧 여덟 사람이 죽을 것이야. 이놈, 이놈, 이노옴……."

어슴푸레한 황혼녘의 넓은 방에서 두 마리 원숭이 같은 노파가 소리 높여 웃었을 때, 나는 사악 등골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그 만큼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는 지금까지의 온화한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악함과 음험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마침내 이 산속의, 오래된 전설과 생생한 참극의 기억이 떠나지 않는 집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조부인 우시마츠와 형인 히사야의 죽음을 타살로 치고(그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으나), 그것과 내가 마을에 돌아온 것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즉 내가 마을로 돌아왔기 때문에, 혹은 돌아올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혹시 내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니, 발견되었다고 해도 마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끝나지는 않았을까.

다지미 가는 약한 사람, 한 사람 몫을 못하는 사람의 집합체니까 한 사람 몫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위압감을 느끼는 거예요. 하물며 신타로 씨 같은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거지요. 즉 고모할머님이나 오빠가 신타로 씨를 미워하는 것은 모두 열등한 사람이 우월한 사람에 대해 갖는 비틀린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인간이 긴장과 흥분에 버티는 힘에는 자연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초월하면 긴장의 실은 툭 끊어지고 흥분의 주머니는 한껏 부풀어터진다. 이런 상태를 쓸개 빠진 상태라고 한다. 나는 그날 밤 쓸개 빠진 상태였다.

나는 그처럼 무서운 아버지를 갖고 있다. 아버지의 체내에 흐르는 저 흉악한 피는 내 체내에도 흐르고 있고 그것은 형태를 바꿔 불처럼 시뻘겋게 타오르는 대신 창백하게 가라앉아 그것이 독살광의 본성을 빚어낸 건 아닐까.

아아, 나는 고독하다.

아무도 내편이 되어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이는 없다. ……고독의 상념이 뼈저리고 안타깝게 가슴에 넘쳐흘렀을 때 갑자기 내 상념을 꿰뚫어본 것처럼,

남자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왠지 저 사람이 무섭게 생각되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눈으로 들어와 코로 빠져나가는25) 영리함이 제게는 뭣보다 두려운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시골사람들이 질투하는 걸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생각되어도 할 수 없지만 무서운 건 역시 무섭다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사토무라 신타로 씨 같은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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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의 어머니! 나는 지금까지도 눈을 감을 때마다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머니만큼 아름다운 부인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손도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작았는데 그 작은 손으로 어머니는 항상 남에게 부탁받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나는 이제서야 어머니가 발작한 원인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가엾은 어머니! 그처럼 무서운 과거를 지닌 어머니에게는 때때로 그렇게 무서운 악마가 덮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무렵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양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금에야 생각하니 후에 의견충돌이 있어 양아버지 집에서 뛰쳐나오고 결국 화해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뭐라 해도 피를 나누지 않은 부모자식 사이에는 결여된 것이 있었다. 말하자면 보기에는 별로 다르지 않은 요리지만 먹어보면 중요한 조미료가 빠져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게다가 새어머니가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도 왠지 나를 서먹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을 터였다.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상업학교에 갔던 해에 나는 양아버지와 큰 충돌을 일으키고 집을 뛰쳐나와 친구 집에 들어갔다.

나는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금니에 뭔가 낀 듯한, 먹이를 눈앞에 두고 기다려야 하는 개처럼 묘하게 답답한 기분이 드는 동안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갔지만 변호사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러나 변호사가 이 문제를 그대로 내팽개친 건 아니라는 사실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차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 편지는 마치 변소 화장지처럼 거무죽죽한 색을 한, 조악한 싸구려 종이봉투로, 적어도 닛토빌딩 4층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가 쓸 물건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신자명을 쓴 글씨도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몹시 서툴고, 인사말에도 군데군데 뚝뚝 잉크가 번져 있다. 뒷면을 보니 발신자의 이름도 없었다.

팔묘촌에 돌아오면 안 된다. 네가 돌아와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덟무덤신이 분노하실 것이야. 네가 마을에 돌아오게 되면, 오오, 피! 피! 피다! 26년 전의 대 참사가 다시 되풀이되고, 팔묘촌은 피바다가 될 것이야.

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과장을 뒤에 남겨두고 몽유병자처럼 비틀비틀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포와 전율의 세계로 한걸음 내디뎠던 것이다.

미야코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입으로는 일단 신타로를 위해서 변호해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점차 혼란스러워져 가는 걸 보니, 그녀 또한 뭔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이성으로는 부정할 수 있어도 어쩐지 그 밑바닥에 감정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은 언제까지고 내 가슴에 의혹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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