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merican Bride in Kabul』을 읽고 있다.

 


저자 필리스 체슬러는 1940년 미국 브루클린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바드 대학 재학 시절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과 결혼해 카불에 갔다가 여권을 빼앗기고 억류되었으며, 카불에서 돌아온 후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운 이들의 뒤를 이어 2세대 페미니즘의 문을 열었다. 뉴욕 사회과학대학원을 거쳐 뉴욕 의과대학에서 신경생리학 펠로우십을 취득했으며,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후 1969년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 뉴욕시립대학 리치먼드 칼리지에 최초로 여성학 과정을 개설했다. 『여성과 광기』는 그녀의 첫 책으로, 1972년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북 리뷰> 첫 페이지에 실린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품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후 전 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페미니즘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뉴욕시립대 산하 스테튼 아일랜드 칼리지 심리학 및 여성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명예살인으로 위협받는 이슬람 여성들을 대신해 법정 진술서를 제출하고 있다. (알라딘 책소개)

 
















『여성과 광기』는 작년 12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눈 밝은 페미니즘 선배님들이 2000년에 번역해 놓았던 책이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작년 9월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읽는 내내 뜨거웠다.

 

















올 초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자료로써, 자매애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의 기록으로서 정말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여성과 광기』의 탄생과 영광에 관련된 이 부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 달쯤 지날 무렵《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표지에 실렸다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당신이 어디에 있든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때문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163)

 

 


열여덟의 체슬러는 미지의 나라에서 온 왕자님(실제로 체슬러의 첫 번째 남편은 자신이 왕자인 것처럼 행동했다)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그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 물론 그곳에서 살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유럽을 여행하는 도중에 가족들에게 인사하는 차원에서 가지게 된 일시적인 방문이었다. 하지만,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빼앗기고, 체슬러는 감옥아닌 곳에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유한 체슬러의 시아버지는 아내 셋과 자녀들과 함께 신혼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제 체슬러는 이 곳에서 Abdul-Karrem의 아내로서살아야 한다. 시아버지의 손을 잡으려고 애쓰는 가족들. 그가 바로 가부장, 그들의 리더이며, 아버지이고, 족장이다. 잘못이 없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 그들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


체슬러의 회고를 따라 읽으며 문화에 대해 생각한다. 당시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경제력 있는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이 능력 있는 남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겨졌다. 여자 혼자 외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장보기는 남자 하인의 일이었다. 피부를 보이는 모든 옷이 여자들에게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여자들은 평생을 집과 살고 있는 동네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화는 비록 그것이 강압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처럼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규제한다. 하지만 문화는 고정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은 바뀐다. 아들을 낳으면 좋아하고 딸을 낳으면 눈물 흘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딸인데 무슨 대학까지 보내려 하냐, 는 말을 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상관없이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로맨스는 이유와 상황이 어찌 되었든 불륜이라고 불린다. 아프가니스탄의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 인식, 통념, 고정 관념은 바뀔 수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법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큰 폭으로 변화했는데도 법은 사람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친딸을 성폭행하고도 10년 남짓의 처벌을 받을 뿐이고, 초범이라는 것이 양형의 이유가 되는 법 환경. 판사들은 소극적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판결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법이 우리의 인식, 상식에 수준에 맞춰질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입법 기관은 국회. 국회가 일해야 한다. 일할 수 있도록 압박을 넣어야 한다. 물론 여론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대중의 관심, 여론의 향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챕터 2까지 읽고 말이 많았다. 더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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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8-20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자북으로 읽으시는 건가요? 단발님. 저는 종이책 읽기도 벅차네요. 아 읽고 싶은데 아 읽고 싶은데 눈이 뻑뻑해서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읽지 못하겠습니다. 어글리 러브 읽느라 밤 지새웠는데 단발님의 필리스 체슬러 읽기 페이퍼를 읽으니 어글리 러브 읽느라 눈이 뻑뻑한 제가 아휴 부끄러워지네요 -_-;;;;;

단발머리 2022-08-20 20:08   좋아요 1 | URL
네, 전자북으로 읽고 있어요. 글씨 아주 크게 만들어서요 헤헤헤. 비타님 어제밤 늦게까지 달리시느라 아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어글리 러브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던가요. 저도 3일 연속으로 달려서 어글리 러브 읽었더랬죠. 행복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 시점의 다정한 마일스, 그 마일스를, 그 지점의 마일스를 저는 좋아합니다 (저도 부끄)

바람돌이 2022-08-20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 진짜 독특한 인생여정이군요. 삶이 스펙터클해지겠다는..... ㅎㅎ 용감한분이네요. 언젠가는 저도 이분의 책을 읽겠죠? 근데 요즘 워낙 여러곳에서 에이드리언 리치에 대한 언급이 나와 저는 에이드리언 리치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앗 저는 원서는 못읽으니 체슬러가 카불의 그 암담한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알려주셔야 합니다. ^^

단발머리 2022-08-21 20:46   좋아요 1 | URL
전 에이드리언 리치 책 딱 한 권 읽었는데요. 우주처럼 넓은 분이시더라구요. 앨리슨 벡델도 큰 영향을 받은듯 한게 <당신 엄마 맞아?>에서 딱 보이더라구요. 체슬러는 지금 먹는 것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초반 몇 일은 파티 음식이라 괜찮았는데 그게 끝나니 아프가니스탄 전통식을 먹어야 해서요. 탈출기도 곧 이어집니다. 기대해 주세요^^

공쟝쟝 2022-08-2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페이퍼 읽고 너무 놀랐어요. 당발님! ㅋㅋㅋㅋㅋ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제가 몇년 전에 여성 영화제에서 봤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라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가 있어요. 아마도 68이후의 낙태폐지 운동하던 시기의 유럽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연대가 주되는 골자였는 데, 거기서 막 여주인공이 암스테르담 운하 타고 낙태하러 가기도 하고 그런데.....

대빵 뜽금없이 페미니즘 시위하다 만난 남자랑 사랑에 빠져가지고 근데 그 사람이 이슬람 부자였던겨?!? 막 부르카 쓰고 그 나라 가서 애낳고, 근데 주인공은 거기서는 못살 겠고 남자가 애 데리고 가면 어떡하냐고, 그래? 그럼 하나 더 낳아줄 게 나눠 가지자 ㅋㅋㅋㅋ 막 그래서 애 하나 더 만듬... 응?!... 무튼 나중엔 돌아와서 여성의 재생산권으로서의 임신을 찬양하는 노래 만들어서 부르고 다니는 의식고양 하는 운동하면서 사세요ㅋㅋㅋ (이렇게 쓰니까 너무 혼란의 도가니인데...)

낙태권과 임신 찬양을 동시에 하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되게 무리 없이 꿰어졌어요. 심지어 유쾌함. 그때는 아, 프랑스 페미니즘은 어나더레벨인가부다 이러고 말았는데요......... 뭐여, 필리스 체슬러가 그렇게 살았네?ㅋㅋㅋ 역시 영화가 현실이고 현실이 영화네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8-21 20:51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시위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거는 이해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애 하나 더 만들어 나눠 가지자는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낙태권과 임신 찬양을 동시에 하는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그 영화를 봐야 알겠는데, 우아... 이 영화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프랑스 페미니즘은 진짜 어너더 레벨인가. 암튼 난 프랑스 쪽은 뭐든지 다 어렵더라구요.

필리스 체슬러는 나중에 탈출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박사되고 정신과와 여성학 쪽에서 일가를 이루시고 제2 페미니즘 운동의 선봉에 서시고 ㅋㅋㅋㅋㅋㅋ 막 그럽니다. 저 책 맨앞에 나오거든요. 나는 열 여덟 살, 왕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8-21 21:04   좋아요 1 | URL
저도 한번 더 보고 싶고 구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좋은 영화였어요 ㅋㅋㅋ!! 그리고 지금은 그래도 옛날보다는 똑똑해졌으니까 다시 보면 더 잘 보일 것 같고 그래요!!! 필리스 체슬러 정말 좋네요. 으하하하. 왕자... 왕자님........ 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습니다. 참, 저 파친코 듣기 시작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이탈리남과 한남의 대환장 파티 대결!

단발머리 2022-08-21 21: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제 좀 달라졌으니까 (우리는 매일매일 달라짐 ㅋㅋㅋㅋㅋㅋ) 다르게 보일거 같기는 해요. 왕자님 만나서 좋았는데 왕자는 아니었고 ㅋㅋㅋㅋ 쫌 부잣집 남자였는데 그렇게나 똑똑하고 함께 문학과 영화를 이야기하던 남자가 자기 나라/자기 집에 가니까 딴 사람 되어 버리더라는 슬프고 뻔한 이야기.
이탈리남과 한남의 대환장 파티ㅋㅋㅋㅋㅋㅋ 한수는 나름의, 뭐랄까 묘한 책임감 같은 거 있어요. 이기는 편 우리편!
아, 주워 가지 말아야지. 조나단만 챙기기도 넘 바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불의 신부 살까요? ( ˝)

단발머리 2022-08-22 09:01   좋아요 0 | URL
저 챕터 3, 2쪽 읽은 사람이라 뭐라 더하기 어렵습니다만 저는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2013년 책인데 그냥 제 생각으로는 금방 번역되지 않을 거 같고요. 그럼 원서를 구입하는게 나을 거 같기는 한데요. 하드커버는 품절이고 페이퍼백은 POD라고 하대요.
어떻게요? 제가 예~~~ 라고 답을 드려야 하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2 09:51   좋아요 0 | URL
POD 는 뭔가여.....

단발머리 2022-08-22 13:25   좋아요 0 | URL
파일로 가지고 있다가 주문 들어오면 제작하는 서비스인가봐요. 판매 많이 안 되는 원서들은 이렇게 표기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할 수 있는 이야기보다 할 수 없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141)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를 읽은 후 제일 먼저 찾아 읽은 책이 엄기호의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였다. 이어서한낮의 우울』을 반 정도 읽었고, 올해는유쾌한 우울증의 세계』를 읽었다. 우울, 고통, 호소. 이렇게 세 단어가 지난해 하반기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호소는 토로로 바꿀 수도 있겠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특히 좋았던 건 이 부분이다.




고통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도 아프게 한다. 어차피 나눌 수 없는 고통이다. 지금 나의 이 글도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경우에나 읽힐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 대신 이렇게 말한다.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지 마세요.", "안 아픈 사람을 배려하세요 (아픈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안 아픈 사람은 피해 의식에 시달리기 쉽다).", "주문(呪文)으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세요.” 몸속의 고통을 밖으로 꺼내는 일 - 소리내기 - 은 고통을 줄여준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89)




대부분의 충고는 고통당하는 사람의 곁사람에게 향한다. 더 많이 들어줘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줘라. 더 많이 사랑해줘라. 저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고통당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둔다.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지 마세요. 안 아픈 사람을 배려하세요. 감사합니다, 를 반복하세요. 선생님은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경우에나 자신의 글이 읽힐 거라 쓰셨는데, 정말 그랬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띄었다.

 

 

길지 않은 인생살이, 이 세상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나는 그랬다. 요즘에는 의리 없고 배신하고 몰인정한 인간보다 고양이, 강아지, 물고기, 화초, 토마토 모종이 선사하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이웃들의 간증을 자주 듣기는 한다.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인 인간은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살고 싶은 희망을 통째로 빼앗아 가기도 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실망감, 함께한 시간에 대한 환멸,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도 모두 다 인간이다.

















책을 펼쳐 목차를 보는데 다시 한번 눈이 띄였다. <2 : 통증의 위치>. ‘친구의 우울과 고통과 토로를 들어주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거리 때문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아니 훨씬 이전부터, 나는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실천하는 편이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적다. 적은 편이다. 기대가 적으니 호의에 마음껏 기뻐할 수 있다. 서운하다는 건 기대했다는 뜻이다. 기대하지 않으니 서운할 일도 별로 없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외로워’, ‘외로움이 밀려와’, ‘힘들어를 반복하는 친구 앞에서, 친구 옆에서, 나는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다른 친구를 만났을 때,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내 친구가 자꾸 외롭다고 그래요. 지혜로운 친구가 답했다. 인생, 원래 외로운 거예요. 사람이 많은 자리라 참기는 했지만, 그 순간 그 지혜로운 친구를 꼭 안아보고 싶었다. 인생의 비밀을 아는 그대여. 그대는 어찌 이 놀라운 인생의 비밀을 이토록 편안하게 받아들이는가.





이럴 때는 자기 말을 못 알아듣거나 그냥 아는 정도의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무심한 사람, 무심한 관계가 낫다. 어차피 인생에 해결은 없으므로, 그저 들어주며,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 걱정을 하지 않을 사람. 내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안 할 사람. 내 말을 잊어버릴 사람.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137)

 


내 말을 잊어버릴 사람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걱정하지 않을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비밀을 말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고통 앞에서도 의연하게 혼자인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있는 나를,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보다는 같이 사는 편이, 함께 살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고통을 없애는 과정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그 고통에 질식되지 않으면서도 고통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나를, 나는 아는데.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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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8-19 17: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ㅠㅠㅠㅠ 저도 실은 얼마전에 다시 그문장을 읽고 싶어서 3권을 폈어요.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지 마세요 ..
… 고통당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
안아픈 사람을 배려하세요…..

외롭죠. 외로워요… 근데 외로움은 상태잖아요? 지나가죠.. 또 괜찮아져요.. 외로울땐 또 외롭구나… 아플때는 아프구나… 나는 그런 것들로 이제 만들어지게 되었구나…..

고통 속에 있을 때 저는 누군가가 들어주거나 알아주기를 원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들어주거나 알아주지 않으셔도 되고 거리를 두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분명한 건 고통역시 상태이므로 끝나니까요. 그것은 반드시 끝나고 이후의 삶은 또 시작되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는 또 다른 고통들이 만들어지겠지만, 우리는 이제 고통의 존재를 알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그런 것 마저 잘할 필요는 사실 없으니까요. …

고통이 우울이 외로움이 그런게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것 말고는.

단발머리 2022-08-19 17:45   좋아요 6 | URL
저는, ‘우울, 고통, 호소‘가 제게 준 고통에 대해서는 하나도 쓰지 않았어요. 쓰지 못 했어요. 왜냐하면 ..... 그걸 쓰고 나면, 너무나 이기적인 내가 드러나니까요ㅠㅠㅠ 나 그런 사람이에요, 쟝쟝님 ㅠㅠㅠ

근데, 뭐랄까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의 엄기호님은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고통받는 자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없다. 옆에 있는 것도 힘들다. 고통받는 자의 ‘곁의 곁‘에 있어주자. 이렇게요. 이게 거리두기 와도 관련 있는거 같아요.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경쟁이 심하고 심각한 ‘오지랖‘ 사회여서 예전 같으면 ‘거리두기‘가 참 이해 불가했는데, 이제는 우리 다 알게 되었잖아요, 억지로.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쟝쟝님 말대로 상태니까 그것도 끝나는 때가 있다는 걸 아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옆에 있어주는, 한 사람이 되어줘야 한다는 강박이, 나한테는 있었어요. 친구는 나한테 말하고 나는 종이에 쓰고. 흐미......

건수하 2022-08-19 17: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적다. 적은 편이다.

아, 정말 단발님과 제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요.

단발머리 2022-08-19 17:59   좋아요 3 | URL
이제… 조나단만 좋아하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해요, 수하님^^

수이 2022-08-19 19:38   좋아요 3 | URL
공통점 하나 더 있어요, 수하님도 단발님도 미인이십니다.

건수하 2022-08-19 20:08   좋아요 3 | URL
앗 뭐라 달아야할지 난감…
비타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요.

그나저나 제 사진이 어딘가 남아있나봅니다. 다 없앤 줄 알았는데…?

건수하 2022-08-19 20:07   좋아요 3 | URL
/단발님 브리저튼 시즌1만 봤는데 2봐야 될까요? ㅎㅎ 요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네요 :)

수이 2022-08-19 20:09   좋아요 4 | URL
제가 수하님을 직접 만났는지 아니면 온라인상으로 알고 지냈는지 모르겠는데 🤔 익숙하더라구요. 단발님에게 조나단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인물인지라 브리저튼 2 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지나가는 1인 :)

건수하 2022-08-19 20:22   좋아요 3 | URL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아마 미투데이에서 처음 비타님을 알게 되었던 것 같네요. 언젠가 직접 뵐 기회가 있기를요 ^^

단발머리 2022-08-20 20:12   좋아요 1 | URL
수하님 / 많이 바쁘셔서 제가 강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브리저튼 시즌 1의 잔소리 대마왕 큰오빠 안소니(조나단 역)가 시즌 2에서는 대결 상대가 되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무척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전작보다 야한 장면이 적어서 흥행에는 큰 재미를 못 보았습니다만(엥?) 이른바 텐션이라는 면에서는 훨씬 고급스럽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언제 한 번 만나서, 조나단 이야기 좀 해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타님 / 수하님과 저를 이뻐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그 마음 변치 마시고 오래오래 사랑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플리즈!!

건수하 2022-08-23 12:30   좋아요 0 | URL
네 <어글리 러브>도 읽어야 하는데..
일단 브리저튼2... 틈틈이 보겠습니다 :)
전 19금보다는 본격 사귀기 전 꽁냥꽁냥하는게 더 좋더라고요 ㅎㅎ

청아 2022-08-19 19: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부분 읽으면서 택시 기사님께 고민 털어놨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출처는 기억이 안나는데 와닿더라구요. 고통을 토로하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면 내 치부를 들키는 셈이고 기타등등 그외 많은 불안요소로 삼키잖아요. 기사님은 어떤친구보다, 심리상담사보다 어쩜 얘기하기에 가장 훌륭한 상대라는둥 그런 이야기였어요.
대신 차비를 좀 두둑히 드려야하겠다고..기사님은 또 무슨죄냐고 생각했죠ㅋ

단발머리 2022-08-20 20:15   좋아요 1 | URL
택시 기사님 의견도 너무 좋네요. 제가 좋아하는 <Love Hypothesis>에서도 고통보다 고민을 택시기사님에게 털어놓는 장면이 있어요. 기사님이 용기내서 가라고 하셔서, 여주인공이 힘을 내게 되는 장면이요.
어느 경우에는, 정말 택시 기사님이 좋은 상담사가 되어주시겠지만 전 안전운전에 대한 염려가 있네요. 듣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많잖아요 ㅎㅎ

mini74 2022-08-20 1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음에 대한 부분이 좋더라고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세뇌때문이라는 문장. 에고가 공포를 가져온다.는 문장이 좋았어요.

단발머리 2022-08-20 20:16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저도 그 문장 좋았어요. 죽음을 그렇게 대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사회적 학습에 결과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고요. 꼼꼼히 읽으시는 미니님! 제가 항상 존경합니다!!

바람돌이 2022-08-20 1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인간에 대한 기대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기대해도 되는 이가 누구인가를 가리는 눈이 좀 더 생기고 선별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예전처럼 인간관계가 막막 넓어지지는 않지만 적은 수의 소중한 사람들은 여전히 생기고, 원래 알던 소중한 사람들은 더 소중해집니다.
저는 늘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서요 이번에 제가 아프면서도 두 번 정도 굉장히 우울했던 적이 있어요. 그 때는 감정이 좀 격해져서 같이 있는 가족에게 히스테릭해졌죠. 그 순간이 지나고 그냥 얘기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상태가 우울을 불러오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감정을 쏟아내버리는데 그 때 잠시만 참아달라고요. 그러면 금방 돌아오겠다고요.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서로가 도와줄 지점을 찾아가는 것, 말이 아니면 무엇으로 할까요? 지금이 너무 힘든 친구도 주변에 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냥 들어주는 거 외에는 없지만 그 들어주는 것의 힘을 저는 또한 믿어요. 생각보다 쎄더라구요. 이건 제 경험이구요. ^^

단발머리 2022-08-20 20:20   좋아요 2 | URL
적은 수의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감정을 쏟아버린 뒤에 그걸 어떤 식으로든 풀어가는 자세도 오늘 새롭게 배웠고요. 바람돌이님 말씀대로 말해야 하는 거 같아요. 말하고 기다려주고 또 들어주고..... 알려주신 귀한 지혜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바람돌이님!
 


 

이런 말 부끄럽지만, 사실이 그렇고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니까. 요즘에도 요가를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체육이 싫었다. 산책도 조깅도 별로인 걸로 봐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일주일에 겨우 2-3번 체육 시간인데도 하라는 실기 연습 안 하고 나무 밑에서 놀다가 선생님께 여러 번 걸리기도 했다. 5-6년 전쯤에 동네에서 주민 대상 무료 요가 강좌가 있었는데, 그 수업도 독서모임 언니가 접수해줘서 다녔다. 언니는 이미 인터넷으로 접수하셨는데, 접수 안 한 나를 데리고 가려고, 순수하게 나를 데리고 가려고, 언니가 대신 줄 서서 현장 접수를 해주셨다. 그렇게 2년을 다녔다. 처음에는 무료였고, 1년 후쯤 유료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3달에 만원이니까, 거의 무료 수준. 근처에 사는 친한 전업주부 중에 운동을 좋아해서 회원제로 운영되는 수영, 요가, 필라테스, 줌바댄스 클래스에 다니는 분들도 많은데, 농담 반 진담 반, 나는 누가 돈을 주면다니겠다고 말한다. 누가 대신 회비를 내어 주면이 아니고, 운동 다니는 내게 누가 돈을 준다면' 운동 다닐 의향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

 


암튼 그런 나도 3월부터 요가를 하고 있다. 집에서 한다. 아무도 돈을 안 내줘서 어쩔 수 없이. 정확히는 요가도 아니고 요가 스트레칭이지만, 아무튼 월수금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서면 거실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한다. <요가소년 421>,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개운한 스트레칭 (기초요가, 힐링 요가, 전신 스트레칭 / 러닝타임 34 30). 겸사겸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 소개해본다. 이 자세의 명칭은 따로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지어줬다. 꽃받침 자세. 사실 이 자세 때문에 <요가소년 409>에서 이리로 옮겨온 거다.

 




 


그저께 잠깐 숙였다 일어서는데 왼쪽 허리가 삐끗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원래 유연성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허리를 돌릴 때마다 살살 아파오는 거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무척 바쁜 주일 아침인데, 어쩔 수 없이 요가 매트를 꺼내서 요가소년 421, 전신 스트레칭을 했다. 그 쉬운 <고양이 자세>에서 들이마시는 쉼에 가슴을 활짝 열고 등허리 살짝 오목하게가 안 된다는 걸, 몸이 알려줬다. , 이런. 당연히 내쉬는 숨에 등허리 둥그렇게 마는것도 불가능했다. 살살 몸을 달래가며 요가 스트레칭을 이어간다. <잠자는 백조 자세>에서 오른쪽은 괜찮은데 삐끗한 왼쪽으로는 자세를 따라 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튼 그렇게 요가를 했다. 요가 중에 호흡을 조절하면서 다음 동작에 가기 전에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요가소년은 여러 말을 해 주는데, 보통은 그런 때 기도를 한다. 손 뒤로 올릴 때도, 태양경배자세할 때도, 사바사나 할 때도 기도를 한다. 내 기도는 짧고 단순하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함께해 주세요.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기도를 하려는데, 어젯밤에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가 이제 나온다.

 

 













얼마 전 나는 20여 년간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배웠던 이들과 말을 섞지 못하게 되었다. 영원히 헤어졌다. 온몸이 흔들리도록 아팠다. 내 인생 최대의 쾌락과 의미의 공동체를 잃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오래가지 못할 관계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 시간에 감사할 뿐이다. 이후 인생 전체가 사라졌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35)

 


20여 년간 함께 해온 친구와 공동체를 잃은 아픔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상실감과 슬픔, 외로움과 고통에 대해서. 나를 울린 단어는 이렇게 네 개.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네 인생사야 언제나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기는 하다. 어떤 사람은 환경을 탓한다. 보통의 경우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 나는 이 방법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한 번은 욕을 해야, 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욕이라도 해야 풀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자신을 탓한다. 나는 이것이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가장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어느 때든 그게 그 고통과 슬픔의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 속으로,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조차 닿지 않을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선생님의 방법,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가 얼마나 훌륭한 방법인지에 대해 혼자 생각한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고, 지금 나는 혼자이고,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과 슬픔 속에 있지만, 그러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쓴다는 것. 감히 혼자 상상해본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서 융합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양파를 예로 들었다.

 


내가 양파를 자주 애용하다 보니 아이들이 다른 야채는 잘 안 먹어도 양파는 잘 먹는 편이다. 싸고 보관이 편하고 어느 음식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제일 중요한 점은 흔하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싸지 않고,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야채. 하지만 양파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이건 뭐 단순한 식품 정도가 아니라 슈퍼 푸드의 반열에 오를 정도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귀한 음식이, 흔하다.

 

 

누가 나한테 돈을 줘서 유명한 요가 센터에서 득도하신 선생님에게 요가를 배우면 좋겠지만 <요가소년>도 내게는 참 좋은 선생님이다. 맛있는 거를 많이 먹고 싶고, 또 그러면서도 건강하면 좋겠지만, 올리브유에 양파만 먼저 오래 볶은 후, 미리 만들어둔 떡볶이와 잘 섞어 먹으면, 떡볶이와 어우러진 양파의 고소하고 달달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고통을 이겨내고 슬픔을 뿌리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고 또 가능하겠지만, 그냥 노트와 펜만 있어도 어느 때는, 그 상황에서의 점프가 가능하다. 노트북일 수도 있고,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일 수도 있겠다. 모든 아픔을 이렇게 이겨낼 수 있다고, 혹은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인생사 고락을 모르고 산 사람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곱게자랐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과 그 일의 어떠함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 쓸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이 네 개의 단어가 오래오래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울려나왔다.

 


 

영화 감상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아는 영화도 별로 없어서 4권을 미뤄두고 5권을 먼저 읽었다. 같이 읽는 친구는, 5권이 선생님의 독서와 공부가 폭발하는 특이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랴. 4권도 너무나 막막하게 훌륭한 것이다. 5권과 막상막하다. 68쪽까지 읽어본 바로는 그렇다. 두 책 사이에 우열을 가리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우열을 가릴 필요도 없다.

 



진정한 공부에의 참 길. 공부의 왕도, 정희진. 한번 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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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4 21: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참 외롭고 간절하고 말입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20년을 같이한 공동체와 절연한다는 것 얼마나 아플까요.
그래도가 그래서 더 혼자서 쓸것같기도 하네요. 읽고 쓰는 것의 힘을 부쩍 으끼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님 허리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병원 가서 사진은 한번 찍어보세요. 병원은 쬐끔 아플 때 가는게 몸아끼고 돈 아끼고 시간 아끼는 길이라는 걸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얄라알라 2022-08-15 00:56   좋아요 3 | URL
제 지인은 허리 강화(?)를 위해 필라테즈 수업을 듣던 중에 동작 실수로 허리를 다쳤다고 했었는데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혹시라도 확인 해보시는 것도 마음 놓이시겠네요. 어서 쾌유하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8-18 20:39   좋아요 2 | URL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는 아직도 제 마음에 울리는 아픈 문장입니다. 상상하면 할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넘 맘이 아프구요.

저의 허리 문제는... 계속 아파서 병원가야지 했는데 15일이고 해서 파스 붙였더니 낫는 거에요. 그래서, 아, 그래! 나 아직 젊어! 그랬거든요. 다시 또 아프네요. 병원에 가보겠습니다, 끄응!

난티나무 2022-08-14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자세가 안 되는 허리 아픔 ㅠㅠ 제 이야기 보는 줄. ㅎㅎㅎ 저 한 달 넘었는데도 안 낫습니다… 또르르… 저는 삐끗한 것도 모른 채 아파왔어요.^^;;;
요가소년, 괜히 반갑고요.ㅎㅎㅎ

정희진선생님의 책은 4권도 좋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

단발머리 2022-08-18 20:40   좋아요 1 | URL
요가소년 목소리 좋지 않나요? 전 다락방님이 알려줘서 알게됐는데요. 저의 진정한 요가선생님이 ㅋㅋㅋㅋㅋㅋ 요가소년입니다.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흐미 ㅠㅠㅠ

그레이스 2022-08-14 2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신념을 지키는 일은 이런 고독을 가져오기도 하나봅니다. 허리 빨리 치료하시길요.

단발머리 2022-08-18 20:41   좋아요 2 | URL
생각하면 자꾸 맘이 아프더라구요. 오래 함께한 친구들일텐데... 하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요.
그레이스님, 따뜻한 마음 감사합니다 (눈물그렁그렁)

수이 2022-08-14 2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허리 삐끗하면 오래 가요, 자주 아프고. 그러니까 얼른 치료해요. 전 이제 슬슬 시작합니다. 읽기. 정희진 쌤 글 읽으면 폰에서 정말 필요한 어플만 깔아놓고 다 삭제하고 싶은 마음 들더라구요. 하지만 오늘도 온종일 폰을 들여다보았다는;;; 잘 가늠할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 같이 한 사람들이 망에서 사라진다면 정말 인생이 허전해질 거 같아요. 그럼에도 매일 혼자서 쓰셨다는 문장은 더 저릿거리고.

단발머리 2022-08-18 20:42   좋아요 2 | URL
새로운 친구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래된 친구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이라는게 있으니까요.
그래도 매일 혼자서 썼다.
저도 맘이 저릿저릿하고 그랬어요 ㅠㅠ 히잉....

얄라알라 2022-08-15 0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고, 댓글 달기 전에 ‘고양이자세‘ 해보고 다시 책상으로 올까, 댓글 먼저 달고 해보러 책상에서 내려갈까 잠시 고민..

감사한 마음으로 기록을 이어오신 단발머리님...
그리고 ˝매일 혼자서 썼˝던 정희진 선생님.

꾸준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분들이 빛나고, 또 그 빛을 알아주는 세상이기를

단발머리 2022-08-18 20:43   좋아요 2 | URL
고양이자세는 이제 되더라구요. 근데 허리 구부릴 때 아직은 ...... ㅜㅜ

정희진 선생님이 ˝그래도 매일 혼자서 쓰셨˝기에 우리가 이 귀한 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8-15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리 중요한데...계속 통증이 지속되면 병원 함 가보세요^^ 우리 나이엔 관절이...ㅜㅜ
꽃받침 자세 요가...가장 쉬워 보이는 동작인데도 저 책 읽을 때 저 자세 많이 하거든요. 근데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하겠더라구요.ㅜㅜ
눈도 눈이지만 허리가 꼿꼿해야 책도 오래 읽을 수 있겠더라는~
그래야 오래 쓸 수도 있겠죠^^
4 권도 좋나요? 전 영화 이야기가 있나 보다~ 싶어서 5 권 먼저 읽고 1 권을 읽으려고 했었는데 4 권으로 바로 넘어가도 되겠군요.
꿀팁 고마워요^^

단발머리 2022-08-18 20:44   좋아요 3 | URL
허리 아픈게 왔다갔다 하는데 제가 또 병원을 가기 싫 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도 중요하고 허리도 중요하고 ㅋㅋㅋㅋㅋ 모두 책을 오래오래 읽기 위함입니다.
4권도 좋아요, 5권도 좋지만요. 전 4권이 더 좋아요. 5권도 좋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lummii 2022-08-15 10: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하는 요가 🧘‍♀️저랑똑같 ...공감갑니다 ^^ 꽃받침자세 저도 한번 해보고 싶군요 ^^ 요가와 함께하는 기도와 명상은 확실히 하루를 행복하게 열어주는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08-18 20:46   좋아요 3 | URL
꽃받침자세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그 자세가 끝나면 요가소년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세에서 빠져나옵니다.˝ 이건 어려운 자세 끝날 때 하는 멘트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alummii님도 요가 하시는군요. 요가, 기도, 명상 모두 좋지요^^

mini74 2022-08-15 1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 이야기인줄 ㅠㅠ 100미터 21초, 전교 꼴등, 버스도 놓치고 다음 거 타고 말지 하는 ㅎㅎㅎ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무조건 걸어다녔어요. 버스 타기위해 뛰는 게 싫어서, 다행히 학교가 30분에서 40분 사이라 ㅠㅠ 저도 이 책 구입했어요. 아직 펼쳐보진 않았습니다.~

단발머리 2022-08-18 20:47   좋아요 2 | URL
죄송합니다, 미니님! 제가 뛰는 거 안 좋아하고, 운동 못 하고, 운동 안 좋아하지만 ㅋㅋㅋㅋ 100미터 17.4에 반랭킹 3위였습니다.
다 못 해도 달리기는 잘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서어서 펼쳐보세요. 리뷰 기다릴게요!!!

꼬마요정 2022-08-15 1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남편도 운동 하다가 목 디스크 와서 열심히 병원 다니다가 이제 다시 조금씩 운동을 합니다. 몸을 많이 아끼고 사랑해야겠어요. 저랑 남편은 우스개소리로 이제 뼈 부러지면 안 붙어 이럽니다 ㅎㅎㅎ 전 허리가 과신전이라 고양이 자세 하면 허리가 평평해서 안 올라와요 ㅎㅎ

이 책 저도 담아놨어요. 공동체랑 절연하는 거 정말 아플텐데 어떻게 견딜까요.

단발머리 2022-08-18 20:48   좋아요 2 | URL
저는 고양이자세는 정말 잘했거든요. 그게 비교적 쉬운 자세라고(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프고 보니 이 세상 쉬운 자세란 없는 것이었습니다.

꼬마요정님의 리뷰도 기대됩니다. 우리 각자 서로 다른,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올거 같아요^^

2022-08-15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6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동하면서 삐끗하는 경우 생각보다 많더군요. 저도 허리가 요 근래 안 좋아지는 걸 느껴서 걷기를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른 운동은 제 몸에 잘 붙지를 않아서인지 지속하기 어렵더군요. 여러 플친님들이 말씀히시니 병원에 가보세요~ 하루 하루가 다르고 한해 한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ㅜㅜ

그리고 저 문장 저도 소름끼치게 좋아요. 매일은 아니지만 펜, 노트북을 놓지 않고 꾸준히 나의 글을 쓰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요. 또 그것이 쌓이면 나의 역사가 되니까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봅니다. 단발머리님 허리 좋아지시기길 기원합니다!

단발머리 2022-08-18 20:54   좋아요 1 | URL
저는 자세가 안 좋지만 ㅋㅋㅋㅋㅋ 그래도 허리가 괜찮았는데 이번에 좀 고생 중입니다. 모두 병원가라 하시는데.... 아, 병원은 무서버요. 그래도 가봐야겠지요? ㅠㅠㅠ

매일 아니더라도 매일의 기록을 쓰는 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돈도 거의 안 들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도 안 주고요.
특히 나에게 제일 좋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리 얼른 나을게요. 감사해요, 거리의화가님!!
 




<파리아로서 한나 아렌트>          론 펠드만




"유대인은 150년 동안 서유럽 민족들의 이웃에 속하지는 않지만이들 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은 항상 사회적 영광을 위해 정치적 고통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정치적 성공을 위해 사회적 모욕으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 P139

아렌트에 따르면, 의식적인 파리아는 숨겨진 전통이다. ‘숨겨진‘이란 말은 파리아의 지위를 인정하는, 위대하면서도 고립된 개개인-하인리히 하이네, 라헬파른하겐, 베르나르 라자르,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베냐민 - 사이에 약간의 연계는 있지만 유대인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전통이란 말은 동일한 기본적 조건이 동일한 기본적 반응을 100년 이상 획득하고 환기시켰다"는 의미다. - P140

아렌트는 자신의 유대인 유산과 유럽인 유산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이를 비판한 의식적인 파리아다. 그의 지적 계획은 전반적으로 현대 세계의 유대인성이란 문제 틀에서 형성됐다. 유대주의의 특성은 점점 더 세속화되는 세계에서 유대인성으로 바뀌었다. - P141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 아렌트의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은 분명히 유대인과 유럽인의 관심사와 역사를 의도적으로 엮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본보기다. 의식적인 파리아로서의 결실인 이 저서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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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8-11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1004쪽 / 45,600원
2. 구입 전에 이 책은 어떠한가.... 맛보기 독서 중
3. 괜찮으면 구입 예정
4. 도서관 안내 스티커에 ‘<고가 도서>(빨간 글씨)니 대출, 반납시 상태 확인 바란다‘는 메모가 있어 조심스레 펼쳐보고 있음
5. 서론격인 글에서 론 펠드만은 <전체주의의 기원>이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말함

책읽는나무 2022-08-11 22:28   좋아요 2 | URL
장점이 6 개, 단점이 2 개??
그럼 사야G 사야G 각이네요?ㅋㅋㅋ

어제 김은주 작가님의 책을 읽고 어려워도 아렌트 철학가의 책도 꼭 읽어보리라...생각했었어요.
근데 아마도 이런 분들의 책들은 빨리 못 읽으니 구입해야 할 책이겠지?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는데, 오늘 딱 단발님이 이렇게 그 중 한 권을 그것도 가격까지 친절하게 올려 주셨네요.
일단 읽어 보시고, 구입해야 할 것인지 심의를 해 주세요^^

단발머리 2022-08-11 22:59   좋아요 2 | URL
제가 아직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시리즈가 3권이라서요. 한 권은 마치고 사야지 싶은데 이 책도 참 근사하니 괜찮네요. 몇 편만 더 읽어보고 결정할게요.
근데 아무래도 사야G 각입니다. 하하하.

공쟝쟝 2022-08-12 08:33   좋아요 0 | URL
흑 너무 비싸죠 ㅠㅠㅠㅠ 좋은 책이다 ㅜㅜㅜ 저도 혁명론이랑 전체주의의 기원. … 정신의 삶 은 더 어마어마 ㅠㅠ 아렌트 파려면 부자여야함 ㅠㅠㅠ 아… 일단 아우구스티누스 먼저 읽고 생각해봐야지 ㅠㅠㅠㅠ 히힝 ㅜㅜㅜㅜ

단발머리 2022-08-12 08:36   좋아요 1 | URL
아직 결정한 건 아니구요ㅋㅋㅋㅋㅋㅋㅋ근데 잘 정리된 책이고 잘 만들어진 책인거는 확실합니다.
아렌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야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8-11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 행간이 넓어서 읽기에 편함
7. 무거워서 들고 읽기에 불편함

책읽는나무 2022-08-11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8. 벽돌책은 반납 재대출을 몇 번을 각오해야 할텐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님.
9. 독서대는 필수.
10. 가격은 좀 쎄니까 할부로??ㅋㅋ

단발머리 2022-08-11 22:03   좋아요 1 | URL
8-1. 도서관책은 줄을 칠 수 없으니 줄을 쳐야 할 정도로 사고 싶은 책인지 확인해야 함
9-1. 독서대도 힘들어함
10-1. 할부는 3개월이 적당함
 





 













종일 비가 내렸다. 월요일에는 강남 인근 지역의 집중 호우로 퇴근길이 재난 영화급이었는데, 우리 동네는 비가 많이 안 와서 그 정도인 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듣는데, 비상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도 모른 척 할 수 없는 서울 중심주의’. 다른 곳에서도 그 정도의 호우라면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무엇보다 서울이어서, 정확히는 강남이어서. 게다가 정부의 대응이라는 게 참. 욕하면 입만 아프다. 말을 말아야지.

 

화요일 오전에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도로 곳곳은 침수되었고, 국지성 집중 호우 예보가 있었는데. 바쁜 일이 없는 나는 굳이 준비를 하고 롱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도서관 말고 시내 나가야지. 멀리, 더 멀리 가야지.  

 

아이들 낳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수기 방학에 내심 즐거웠는데, 이번 주부터 휴가 쓴다 하고, 다음 주에는 학교 안 가는 날도 있어서 조용한일상은 화요일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굳이, 비를 뚫고 나갔다. 책들을 구경하고 책들 배치가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게 오늘이야? 그럼 오늘, 오시는 거야? 라는 말소리. 누가 오시나. 서점이니까 작가님이겠지. 유명한 사람이 오는 걸까, 하고 앞의 플랜카드를 쳐다본 순간. 『파친코』 출간 기념 이민진 작가 사인회. 2022 8 9일 화요일 오후 2. 일부러 맞춰 온 건 아닌데, 시간과 장소를 맞춰 왔구나.

 

싸인은 그날 책을 구입한 사람 중 선착순일 테니 나는 작가님 얼굴이나 보고 가야지.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10분 전에 사인회 장소에 도착해 어슬렁거린다. 작가님은 저쪽에서 나오신다고.

 





30. 자료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30년이 걸렸다는 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다하지 못한 이야기, 한이 서린 이야기, 역사 속에서 사실로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소설로 풀어냈다. 예일대 대학 강의실에서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듣게 된 재일 한국인 소년의 자살과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어제 들은’ 것처럼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느낄 때. 하나의 이야기에 매여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사랑하게 하고, 헤어지게 하고, 죽게 만들었던 그 30년의 시간. 상상조차 쉽지 않다. 글자로 쓰인 것 중에는 시를 최고로 여긴다고 하지만, 현대인은 트위터 할 시간은 있어도 시를 읽을 시간은 없기에 시인은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고. 그나마 이야기의 힘이 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게임을 지배하고 있다. 이야기의 힘, 소설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작가님을 마주 보고 책장 앞에 섰는데, 작가님이 이 정도 거리에 계셨다. 생각보다 아름다우시고 생각보다 젊으셔서 놀랐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시고 환히 웃어 주셨는데 눈웃음이 이효리급이어서 한 번 더 놀라고. 진짜 놀라운 건 그다음인데, 싸인을 받기 전에 이름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작가님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다 영어로. 그래, 작가님은 7살에 이민 가셨으니 당연히 영어가 편하시지요. , 그런데 원어민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여러분은누구세요?

 

그렇게 잠깐 서 있는데, 작가님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뭐라뭐라 이야기하자 작가님과 그 사람,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와하하하고 다 같이 웃는다. 잠깐만요. 저는 못 들었단 말입니다. 잠깐만요. 뭐라고요? 그제야 내 주위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영어라는 걸 알아챈 나. 책을 들고 연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작가님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젊은이들도 다 영어로 말하고 있다. , 여기는 미국인가. 한국인가. 그리고 여러분은 대체.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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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11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고려의 차원이었을까요? 독자들도 영어로 이야기하는 광경이 낯설기도 합니다. 제가 그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진짜 그분들은 누구?ㅎㅎㅎ
그나저나 인생은 타이밍이 맞나봅니다! 그 비를 뚫고 가신 보람이 있으셨네요^^ㅎㅎㅎ

단발머리 2022-08-11 13:12   좋아요 1 | URL
작가에 대한 고려 차원이었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책은 거의 <파친코> 들고 있었는데 말은 다 영어로 하더라고요. 주위의 젊은이들(20대)와 외국인들까지 해서 완전 글로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이 책 좋게 읽었고요. 주제와 소재, 인물도 그렇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작가님 직접 만나니 더욱 좋았습니다. 인생은 타이밍 맞는 것 같아요. 의도치 않은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물론 저만 기억하는 만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8-11 13: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교보문고가 아니었다면 뒤의 타이틀이 한글로 써져 있는 것만 아니면 외국으로 봐도 무방했을 현장이었겠네요. 말씀하신대로 작가님의 미소가 참 좋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경험이셨듯해요^^

단발머리 2022-08-11 13:18   좋아요 0 | URL
네, 그 시간 그 장소는 외국이었죠 ㅋㅋㅋㅋㅋㅋ 아, 안내말씀은 한국어로 하시던데요.
저는 맨 첫번째 사진의 스팟 1과 왼쪽과 오른쪽 측면에서 작가님을 샅샅이 구경하고요. 비 쏟아지니 얼른 집으로 귀가하라는 친구의 문자 지시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보람찬 하루였죠^^

저희 동네는 지금 비가 그쳤어요. 화창하지는 않은데 비만 안 와도 괜찮네요. 거리의화가님도 오늘 좋은 날 되세요!

청아 2022-08-11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앗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단발머리님! 상황이 너무 웃기고 (왜 눈물이 나려 하는가ㅋㅋㅋㅋㅋ)공감되고 아...사진까지 올려주셔서 잠시 단발머리님께 제가 빙의?된 듯한 착각까지 했습니다. 저 얼마전 극장에서 나올때 남자고등학생 3명이 옆에 있었는데 영어로 이야길 하더라구요? 발음이 원어민에 가까워서 요즘 참 잘가르치나보다 생각했어요ㅋ

단발머리 2022-08-11 18:03   좋아요 1 | URL
눈물 닦아주시고요, 미미님! 저는 제 주위의 젊은이들, 교포라고 생각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복장도 자유로웠고요. 영어도 자연스러워서요. 그렇게 생각하면 눈물 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음은 요즘 애들이 그렇게 좋다고 그러대요. 신기한 세상입니다^^

다락방 2022-08-11 14: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몇해전에 리베카 솔닛 의 작가와의 만남에 갔었거든요. 거기가 무슨 대학이었더라. 대학 강연장을 빌려서 할만큼 사람들이 많이 왔었는데요, 솔닛이 얘기하면 통역분이 그걸 저희에게 전달해주셨는데, 그 강의실 안의 많은 사람들이 솔닛이 얘기를 하면 같은 타이밍에 웃더라고요. 왜웃어? 어리둥절 하다가 통역해주시는 분의 얘길 듣고 ‘아 이 지점에서 웃었구나‘ 하게 되는데, 그 때 참 기분이.... 한국에 영어 잘 하는 사람, 정말 많은것 같아요, 단발머리 님.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학교를 나오면서 친구랑 ‘우리 빼고 솔닛이 하는 말 다 알아들은거 같지?‘ 하고 씁쓸해하며 갈빗집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습니다. 물론 안주는 갈비...


단발머리 님, 저는 다락방 입니다. 그냥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만 총총.

단발머리 2022-08-11 18:0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에 영어 잘 하는 사람 많은 거 같아요. 다락방님의 에피소드 읽다보니 그 때가 생각나네요.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던가요. 리차드 도킨스 강연 갔는데 입구에서 통역기 주는데 저랑 동행한 사람이 필요없다 해서 얼떨결에 ˝괜찮아요.˝ 이러고 들어가서 1시간 반 동안 후회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요.

그런 밤에, 소주와 갈비는 잘 어울립니다. 물론 소주와 삼겹살도, 파전도 잘 어울리겠지만요.
다락방님의 그냥 전해주신 말씀, 매우 심히 감사드립니다.

비로그인 2022-08-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ㅏㅏㅏㅏ단발머리님 진촤 웃겨효

사랑스러운 단발머리님, 저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 아른입니다. 저도 다락방님을 따라 이만 총총.

단발머리 2022-08-11 18:08   좋아요 0 | URL
아른님에게 큰 기쁨을 드렸다면 저로서는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저도 한국말에 능숙해지는게 소원이기는 합니다. 한국말 잘하면 영어도 잘한다고 하던데요 ㅋㅋㅋㅋㅋ 두 분 같이 어디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2-08-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영어(포함 외국어)를 못하는 이유가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 인 건가요오 @@ 급 슬퍼집니다….. ㅎㅎㅎ
작가님 웃는 모습 정말 환하네요! 저도 저렇게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봅니다.^^

단발머리 2022-08-11 20:32   좋아요 0 | URL
슬픔은 모두 저의 것이라서요, 난티나무님에게 돌아갈 슬픔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ㅎㅎㅎ
작가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런 환한 눈웃음 발사하셨고요! 싸인할 때는 안경 쓰시고, 셀카 요청하면 안경 벗으시고 그랬습니다. 하하하.

수이 2022-08-1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 웃는 모습 아름다워요. 꽃바구니보다 더 환하고 밝아요! 영어 너무 잘하는 이들 많아서 저는 영어를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단발머리 2022-08-11 21:18   좋아요 0 | URL
작가님 정말 넘나 환한 미소... 전 완전 팬!! 이러지는 않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얼마나 진중하게 대하시는지 팬 되어도 좋겠더라구요. 꽃바구니가 필요하더라구요. 작가 사인회는요, 명심할게요!! (충성!!)
영어를 포기하지 말..... 말아요. 말아요. 말아요.

책읽는나무 2022-08-11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효리급 미소라는 게 참말이네요?^^
어떻게 저렇게 웃으실 수 있죠?
나도 거울 보고 연습해 보고 싶어지는군요ㅋㅋㅋ
독자들이 영어로....에는 갑자기 웃음이 멈춰졌어요ㅜㅜ
아뉘......그런 건가요???
아....한국에 살아도 갑툭튀 영어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군요??
그럼 단발님도 줄 서서 작가님 앞에 서셨을 때, 멋지게???? %:._~/-^♡♡♡

단발머리 2022-08-12 08:41   좋아요 2 | URL
작가님 사진 잘 안 나오는 스탈이에요. 실제로는 훨씬 더 아름다우십니다. 글고 저 웃음은 평생 동안의 경험이 어우러진 사랑의 눈웃음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진심으로 한 명, 한 명 대해주시는게 참 좋았어요.
한국인데도 가끔 그런 상황이 발생하더라구요. 저는 그래서 책을 안 사고 줄도 안 섰던 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멀리서만 작가님 만나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웃으면서 울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