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밥)은 루시가 메인에서 새로 사귄 친구다. 여기는 할리우드 스타일이라, 전남친, 전아내 다들 사이좋게 잘도 지내는데, 밥의 첫 번째 아내는 팸이다. 팸은 루시의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이랑 여러 해에 걸쳐 바람을 피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사람이다. 나중에 팸은 윌리엄과도 멀어지고(그래도 생파 초대하는 친구 사이), 밥이랑 이혼 후에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지만, 밥과도 윌리엄과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 밥은 윌리엄과 루시가 마인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밥은 루시와의 산책을 즐거워하고, 루시도 밥과의 대화가 즐겁다. 오늘 날씨 어때요? 이런 이야기 말고 두 사람은 진짜 이야기, 자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 읽은 대목에서 밥은 팸에 대해 이야기한다. 팸이 자신을 떠났을 때, 그리고 지금 곁에 없는 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진실을 말하면, 나는 팸이 영영 떠나지 않기를 바라요. 오 루시, 나는 팸이 나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기를 바라요. 팸이 그리워요. 팸도 여전히 나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해요."(320쪽)

"To tell you the absolute truth, I wish Pam had never left. Oh Lucy, I wish she could have had her kids with me. I miss her, and I think she still misses me."(247p)

밥은 이런 사람이다. 떠난 팸을 아직도 생각하는. 아직도 그리워하는. I miss her.



밖에서 할 수 없는 말이어서 가족들 앞에서만 자주 하는 말인데(근데 알라딘에는 쓴다ㅋㅋㅋㅋㅋㅋㅋㅋ), 외출하고 돌아오면 식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 대학교 동창 친구들이 나를 너무 좋아해. 내가 입만 열면 다들 빵빵 터져. 교수님도 나를 좋아하셔. 모임 마무리 기도, 꼭 나 시키셔. 다들 나를 좋아해. 지난주에는 A집사님이 예배 마치고 인사 나누는데 내 손을 잡고 안 놔. 커피숍에서 B집사님이 나 커피 사 준다고 따라다녔어. 막 이런 이야기를 한다. 둘은 듣지 않고, 믿지 않는다. 살아남을려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살아남을려고 '듣는 척'을 한다. 엄마랑 이모만, 엄마랑 이모만 진심으로 믿는다, 내 말을. 그래, 너 인기 많잖아, 그러면서.


이차 저차 올해 근무하는 학교가 바뀌었다. 나는 그 학교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내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아무튼 걱정스레 새로운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건 아이들. 만날 아이들이 아니라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많았다. 다정하고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 내내 눈에 밟혔다. 아이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에게 내 맘을 말했다. 얘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금방 다 잊어버린다고, 친구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애달프던 마음이 일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금방 잊을 테고, 그 학교에도 좋은 선생님 오시겠지. 그래그래.

그렇게. 나는, 나를 좋아하던 아이들에게서 잘 떠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침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꿈을 꾸지 않는다. 잠자기만 해도 엄청 바빠서 그러련 한다. 결혼하고 한참 지나서도 꿈을 꾸면, 첫사랑이 나왔다. 그냥 시무룩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나서는 별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왜, 무슨 일이야?를 물으면서 꿈에서 깨곤 했다. 며칠이나 우울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꿈 없는 잠을 계속해 왔는데...


세상에, 꿈을 꿨다. 꿈에는 아이들이 여러 명 나왔는데, 가장 정확하게 기억나는 아이는 H였다. 색종이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주던 아이, 엄마가 전화해서 우리 H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말했던 그 아이였다. 아니, H야! 너 여기에 왔어? 네, 선생님. 저, 여기로 전학 왔어요. 꿈 속에서도 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란다. 아, 다행이다. 아이들이 이 학교로 전학을 왔네. 다행이다, 진짜.


아이들은 잊을 테고, 잊어버릴 테고, 그리고 잘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이런다. 나는 생각하고, 꿈을 꾸고, 그리고 안타까워한다. 내 선택을, 내 현재를.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중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다들 병적이다. 히스클리프, 로체스터. 드라마 주인공 중에 찾자면 <시크릿가든>의 현빈. 광적인 집착남을, 미친 사랑을 나는 좋아하는가. 그런 사랑을 바라는가. 그런 사랑을 원하는가.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받는 캐서린, 로체스터의 안식처인 제인, 현빈의 집착의 대상인 하지원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나는, 그냥 히스클리프이고, 로체스터이고, 현빈이다.

맨날 사람들이 나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더 좋아하는 사람.

집착의 아이콘, 미친 사랑쟁이.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미친 짝사랑의 화신이다. 이런 순.



그래서 빵을 샀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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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4-1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돼지 ㅋㅋㅋㅋㅋㅋ 💋

단발머리 2025-04-10 18:59   좋아요 1 | URL
빵야빵야! 🥖🍞🥯🥪🥨

수이 2025-04-10 19:11   좋아요 0 | URL
그거 떠올랐습니다 죄송합니다 👀🫦🙏🫵💋🧠✍️🥵

단발머리 2025-04-10 19:17   좋아요 1 | URL
빅뱅의 뱅뱅뱅ㅋㅋㅋㅋㅋ 생각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빵야빵야빵야!!! 🥖

수이 2025-04-10 20:18   좋아요 1 | URL
그나저나 요즘 너무 다독하시는 거 아닙니까? 분발하겠습니다 빵돼지는 오늘 디저트로 에그타르트 먹었습니다.

건수하 2025-04-10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을 좋아합니다😍

다들 그렇게 좋아하면 누군가 시기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런데 단발머리님을 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

다락방 2025-04-11 08:05   좋아요 0 | URL
오 정말 그래요!
다들 좋아하면 누구나 시기 질투 음해하곤 하는데 단발머리 님은 그런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4-11 10:57   좋아요 0 | URL
건수하님 / 저 어제 자기 전에 건수하님 이 댓글 보고 너무 좋아서.... 핸드폰을 안고 잤습니다. (증인 있음)
저는 건수하님 좋아합니다😘😍🥰
예전부터 한결같이요. 그리고... 제 글에 따르면... 제가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제가 건수하님 더 좋아합니다.

다락방님 / 두 분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제가 더 좋아하는 ㅋㅋㅋㅋㅋㅋ 그런 형국입니다. 미친 사랑쟁이의 사랑을 두 분 다 모른척 하지 말아주세요~~~ 😎

2025-04-11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1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아오는가 싶다. 나 말고 알라딘.

최근 알라딘의 접속자 수가 이상했다. 예전에도 그런 적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번 있는 일이었고. 그러니깐, 갑자기 오늘의 방문자 수가 800명이라고 나올 때, 그다음 날엔 어김없이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오늘의 방문자 수 40명. 이런 식으로. 그런데 연말부터 수상하더니 들쑥날쑥하고서는 지난주에는 이런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이웃님들 방에 들어가 보니 내 서재만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러니깐. 지금, 이 알라딘의 시스템이, 알라딘 서재 시스템이 이렇게 불안정한 이유가 뭐야? 혹시, 이러다가 갑자기?

나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의 비공개에다가 알라딘 글을 몇 개 옮겨 놓은 것이 전부이고, 페북을 안 하고, 트위터를 안 하고, 인스타를 안 한다. 내게는 알라딘이 블로그고, 페북이고, 트위터고, 인스타다. 그러니깐 만약 알라딘 서재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작년의 '공장 초기화' 패닉이 다시 한번 휘몰아치는 상황일 텐데, 사진은 여기저기 구걸하고, 네이버 박스에 저장된 것을 모아오기도 했지만, 글은.... 글은 다시 회복시킬 수가 없다.

에버노트를 무료로 이용하면서 3-4년 치 글을 저장만 해두었는데, 노트북이 상태가 안 좋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로그인이 안 되어서ㅠㅠㅠ 다른 노트북으로 들어가 유료회원이 되었더니 다행히 그 글을 찾아내기는 했다. 만세에 길이 남을 글은 아니지만, 내게는 소중한 글이고, 아끼는 재산인지라, 철없고 힘없는 얘네들의 운명이 자꾸 걱정되기는 한다.


전체적인 모양이나 편집 상태가 마음에 안 들어도 나는 알라딘이 좋다. 알라딘에는 다정한 이웃님들이 계시니깐. 스토리를 아시는 분들이 계시니깐. 진짜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깐. 근데 요즘에 자꾸 이래저래 불안하기는 하다. 네이버 블로그에 2024년 글 몇 개 옮겨 놓았던 것에 더해 몇 개 더 옮겨놓기는 했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그런저런 고민의 와중에 알라딘은, 알라딘 서재 시스템은 다시 안정을 찾았던가.



오늘 아침 방문자는 22명.

제정신 돌아오나 보다. 방문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 제정신 안 돌아왔는가. 퇴근길에 빵 쇼핑을 멈출 수가 없다. 다행히 어제는 빵 안 샀다. 어제는 와플 샀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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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4-1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모두 제자리를 찾기를 소망합니다. 평온한 일상과 자신의 삶으로~

단발머리 2025-04-10 15:23   좋아요 1 | URL
네네,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지요. 저는 대선이 잘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안심할 거 같아요.
아직도 불안불안합니다.

다락방 2025-04-10 1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단발머리 님의 루시 바이 더 시는 저런 표지이군요! 저 원서 읽다 말았는데.. (먼 산)

알라딘 요즘 진짜 방문자수 이상해요. 계속 몇 천대가 나오더라고요 ㅠㅠ 저도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다른데에 옮기려고 해도 귀찮아서 못옮기는데, 이렇게 글 쓰는 곳은 알라딘 밖에 없는데 이러다 알라딘 먹통되면 어쩌나 걱정됩니다. 그러니 다른데에도 옮겨둬야 할텐데.. ㅠㅠ

저도 알라딘이 좋습니다.
알라딘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글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정한 방문객들이 있고, 그리고 단발머리 님이 계시니까요. 저는 지금 소중한 사람들중 아주 많은 분을 알라딘을 통해 만났습니다. 알라딘, 다정한 친구를 주고 인생사랑도 줬습니다. ㅋㅋ 알라딘이여, 영원하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잠자냥 2025-04-10 11:00   좋아요 2 | URL
칠봉아~!!

다락방 2025-04-10 12:04   좋아요 3 | URL
아니 이 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10 15: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 저, 저 책 두 권이에요. 다락방님책 노란 표지죠? 저 번갈아가며 읽어요. 푸하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방문자수도 저 확인했어요. 저의 바로미터 ㅋㅋㅋㅋㅋ 어제부터 제대로 돌아온 거 같기는해요.

알라딘 먹통 되지 않겠죠. 저는...... 그럴 일은 없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요즘에 뉴페이스 유입도 잘 안 되고 그래서 암튼... 걱정되기는 합니다.
저 역시 지금 소중한 많은 사람들을 여기 알라딘에서 만나서요. 그래서, 알라딘 영원하라!는 저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알라딘이여, 영원하라!

잠자냥님 / 칠봉씨는 응답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4-10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메뉴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의 커피는 아이스가 아닐까 싶은 느낌적 느낌, 제가 말씀드렸지만 빵살은 뱃살......... (메롱)

단발머리 2025-04-10 15:27   좋아요 1 | URL
오늘 아이스 마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근 전에 사옴요. 근데 춥네요.
내일은 다시 핫으로. 빵은 포기 못 해요! 퇴근길을 기대해주세요~~

수이 2025-04-10 18:45   좋아요 1 | URL
잡탕밥 사진 보내드릴까요? 다 먹고 돼지로 변신했어요. 그리고 빵을 먹으러 이동중 ㅋㅋㅋ

단발머리 2025-04-11 09:58   좋아요 1 | URL
잡탕밥 사진 아직 안 왔다고 합니다. 빵도 ㅋㅋㅋㅋㅋㅋㅋ 빵은 사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4-11 11:51   좋아요 1 | URL
맛있는 걸 보면 같이 먹고 싶은 게 사랑이네.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나중에 같이 먹어야지 이것도 사랑이고. 그러니까 반대로 맛있는 걸 먹어도 더 이상 그 사람 생각이 안 나면 사랑이 끝난 거네. 잘 먹고 잘 살아라. 이건 그냥 응원이고 사랑이 아닌 거고.

독서괭 2025-04-10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방문자수가 이상했군요? 몰랐어요. 오늘은 북플에 들어오니 업데이트 하라고 해서 오 웬일.. 했네요 ㅋㅋ 알라딘서재 오래오래 가면 좋겠습니다. 단발님의 글도 오래오래 남기를!!

단발머리 2025-04-10 15:29   좋아요 1 | URL
저도 북플 업데이트 하기는 했는데.... 암튼 이래저래 불안했는데, 좀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독서괭님은 서재글을 어떻게 정리하시는지/혹은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요.
담에 살짝쿵 알려주세요~~

독서괭 2025-04-10 15:38   좋아요 1 | URL
제 서재글은 오로지 서재에만 있으며, 따라서 서재가 폭파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단발머리 2025-04-10 20:57   좋아요 0 | URL
아.... 독서괭님도 알라딘 뿐이시군요~~~ 아......
서재는 폭파되지 않을 테지만.... 저는 추호도 의심치 않습니다만..... 어디든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예전에는 제 노트북에 저장을 해두었습니다만 이제 노트북이 가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려는지 모르겠지만, 가려고....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Vol 2. 문명의 기둥』를 읽고 사람들이 제일 많이 말하는 대목은 여기가 아닐까 한다. '인간이 밀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재배했다, 혹은 지배했다.' 인간은 '밀'의 지배 아래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호모 데우스』에서 사람들이 어느 지점을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요기다. 진화론의 일정 부분, 이를테면 공통 조상설에 대해 긍정하는 기독교인으로서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부분.

뱀은 우리의 시조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거역하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존재이다. 애니미즘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도 동물일 뿐이라고 생각한 반면, 성경은 인간이 특별한 창조물이며 우리 안의 동물성을 인정하는 것은 곧 신의 권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실제로 파충류에서 진화했음을 알았을 때, 근대 인류는 신을 거역하고 신의 말에 더는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신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았다.(『호모 데우스』, 115쪽)










그리고, 지구의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 같은 이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더란다.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472쪽)

인간 존재가 유기체임을, 물질임을, 그렇게나 강조하던 사람이, 종교의 해악에 대해 '객관적'인 어조로 '과학적' 태도로 비판하던 사람이 결론처럼 하는 바로 이런 말. 고통의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 동양적인 사고방식, 불교에 근거한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한 동양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깨달음이 그의 삶을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유발 하라리는 매일 명상할 뿐만 아니라, 1년에 몇 개월 이상 휴가를 내어 명상 공동체에 들어간다. 명상하기 위해서. 정신 패턴의 일정 부분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물질만능주의의 이 시대에 그는 그 누구보다 '형이상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넥서스는 99쪽까지 읽었다.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중요한 이야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정리해두고 싶어서 일단 적어본다.

그러니까, 이런 주장. 많은 정보가 곧 진실은 아니라는 주장은 옳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의 부자 중 한 명이며 대통령인 트럼프는 그 누구보다 거짓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이거다. "페이크 뉴스가 가장 큰 문제이다."




최근에 공개된 영상에서는 휴머노이드인 아메카가 거울을 보며 자기 인식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이 실리콘 의식의 반영인지, 아니면 거울을 보았을 때 사람의 반응, 정확히는 거울을 처음 본 아기의 반응과 비슷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이제 정보의 발달은, 컴퓨터의 발달은, AI의 혁신은 여기까지 도달했다.

인간과 지구, 세계에 대한 인공지능의 정보는 이미 축적된 인류 역사의 '사실들'에 바탕을 둔다. 그럴 경우, 그 인공지능은 여성 혐오적, 인종 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인류 역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일부의, 극소수의 '위대한(?)' 사람들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타락의 지점에서 인간의 효용을 '생산성'에 둘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한가. 인간의 가치는 '생산성'에 있는가.

인간은 유기체이다. 인간은 새것이었다가 나중에는 고장 난다. 우리는 유기체다. 우리는 동물이다. 존재하기 위해 영양분이 필요하고, 이후에 배설해야 한다. 먹어야 하고, 똥 싸야 한다. 새것이었던 우리는 헌 것이 된다. 젊은 육체는 쇠약해지고, 어린 시절의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돌봄과 케어가 필요하다.

그런 우리, 유기체인 우리, 금방 헌 것이 되어 버리는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카프카의 『변신』은 흉측한 벌레가 되어 방 안에 갇혀 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이제 돈을 벌 수 없는 그, 누구에게 무엇도 될 수 없는 그.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가족들을 위해 일하던, 돈 벌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모든 책을 육아서로 읽었던 때를 지나,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모든 이야기를 '부모-자식'의 이야기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출발이 이 소설이다. '나이 든 부모'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일 수 있으며,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의 물음.

나는 아이를 둘 낳았는데, 둘만 낳기 잘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 살을 나눈, 내 맘을 절절히 나눌 사람은 둘이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사실은 둘도 많아서,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기곤 한다.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키운다. 살을 내주고, 마음을 내주어서 키운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키워줬던 부모는 '아이'가 된다. 서울대학 병원 진료실, 집 앞 내과 의사의 말을 전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고 있던 의사가 나를 쳐다본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하지만 나도 답해줄 수가 없다. 나는 이미 진료실 앞 의자에서 엄마가 의사에게 하려는 말을 전해 들으며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며, 이 메모지가 아닌 검사 결과지를 가져왔어야 한다며, 그 중요한 말을 열흘 동안 매일 만난 나에게 왜 하지 않았느냐며 조곤히 따져 물었다. 의사는 내게 설명을 요구한다. 내가 답해야 한다. 나는 내 부모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민족 신화의 근간은 토템 신앙이다. 신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존재로서의 동물, 부족의 안위를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동물, 인간과 대화가 가능했던 동물이 '있었다'. 하지만, 동물인 인간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화하기 원했고, 이는 동물을 '말 못 하는 짐승'으로 격하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인간만의 특이성, 말하고 만들고 협동하고 창조하는 인간만의 특이성이 동물 지배를 정당화했다.

AI, 인류의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AI는 곧 녹슬지 않을, 강력하고 유연한 '신체'를 갖게 될 것이다. 똑똑하고 건강한 휴먼 로봇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주 먹어야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고, 배설해야 하고, 밤에는 취침해야 하는, 그리고 결국에는 늙어서 병약해질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우리 존재의 쓸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 삶의 쓸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랜 시간 인간의 친구였던 동물은 역시나 오랜 시간 같이 땀 흘리며 일하는 동료였고, 지금은 스테이크와 달걀로 소비된다. 인간은 동물을 배제함으로써 이 푸른별의 주인으로 등극했다. 나이 든 부모, 이제는 '쓸모없는', 힘이 없으되 여전히 나를 억압할 힘을 가진 늙으신 부모님들을, 인간들은 어떻게 대우하는가. '젊음'에 미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늙음의 상징은 어느 것 하나 환영받지 못한다.

자기 존재 증명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쓸모 아닌 나의 쓸모를, AI에게, 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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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4-07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아이가 되어가고 그래서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인데 그러나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과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다르죠. 저는 늙으신 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내고 또 즑은 부모를 돌보는 일의 고단함에 대한 글들을 읽다보면, 확실히 인간은 젊음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수차례 하곤 했는데요,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만약 나의 부모에게 치매가 온다면 그럴 땐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나,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24시간 붙어있을 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요. 이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불쑥 그런 생각이 또 끼어듭니다. 그런데 그게 반대라면, 만약 내가 치매라면 우리 엄마는 나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원에 보낼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마도 아닐 것이다‘ 라는 대답이 나와요. 엄마는 어떻게든 엄마의 삶을 살면서 나에 대한 돌봄을 같이 하려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면 또 갑자기 아무것도 답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단발머리 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 일을 읽노라니 참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인간의 돌봄 없이 살 수 없잖아요. 어쨌든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돌봄이 필요하잖아요.

단발머리 님의 사피에스 인용 페이퍼를 볼 때마다 저 그래픽 사피엔스 내가 산다 꼭 사고 만다, 이렇게 다짐하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습니다. 사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4-07 19:06   좋아요 1 | URL
저도 늙으신 부모님께 잔소리를 쏘아대는 딸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반성과 후회를 매일 반복합니다만... 잘 고쳐지지 않구요. 그래도, 고치려고. 고쳐볼려고 노력합니다. 매번이요 ㅠㅠㅠ

부모님은, 엄마는 우리를 그렇게 키워냈죠. 예전에 육아에 대한 책 읽으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전폭적인 1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아이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그리고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사람도 그렇죠. 부모는 우리를 돌보는데, 돌봐주셨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요. 복잡한 마음이 한없이 이어집니다. 다락방님 댓글 읽다보니 엄마와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담에 글로 써봐야겠어요. 그거 읽으신 분들이 ‘단발이 효녀인가...‘ 하실 것 같아 쓰지 않았거든요. 효녀 아닌데 제가 효녀 되어버린 에피소드. 엄마는 나를 효녀로 만들어 줍니다. 불효녀를 효녀로 만드는 에피소드 ㅠㅠㅠㅠㅠㅠㅠ

하라리 워낙 유명하고 책도 잘 팔려서 팔아주기 싫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하라리 이야기가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어요.
그래픽 히스토리는 그림에 호불호 있을거 같아요. 저는 불호 쪽입니다만 2권까지 구입했다는 슬픈 이야기 ㅋㅋㅋㅋㅋ
 



기쁜 날이다.

오늘부터 맘 편히 잘 수 있겠다.

윤석열 탄핵 때보다는 윤석열 파면 때 더 기쁘다.

체포는 한 번 더 남았다.



우리 모두 고생 많았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지만, 탄핵도 우리가 시켰다.

야무지고, 발랄하고. 울면서 웃는 이 사람들.

나랏일이 곧 내 일인 이 사람들이 자랑스럽다.

나도 그들의 하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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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4-04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책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단발머리 2025-04-04 23:04   좋아요 1 | URL
이제 마음 편안히~~~~~~~~~~~~ 우리 책 많이 읽어요!! 망고님, 축하합니다!! 🤗

감은빛 2025-04-05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말씀에 다 동의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인 것도 사실입니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에 권력을 주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 것인지. 다른 대안을 과연 만들 수 있을지. 결국 윤석열이라는 인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문재인이라는 무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25-04-05 10:1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모든 말씀에 다 동의합니다.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말씀도 완전 이해되구요.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중도 보수라고 명시적으로 말했죠. 민주당은 보수 정당 맞습니다. 다만, 남북이 적대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빨갱이당으로 오해받아왔구요. 민주당이 오른쪽으로 가는만큼 더 개혁적이고 서민적인 정당들이 왼쪽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런 역량이 있구요. 그 자리를 차지할만한 실력이 있음을, 이제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이라는 인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문재인이 아니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다만, 감은빛님 문장 뒷부분에 일면 동의합니다. 이제 문재인 없는, 윤석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겠죠.

책읽는나무 2025-04-05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라고 어젠 분명 좋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정치가 올바르게 진행되어 위태한 경제도 빨리 잡혔음 좋겠어요.
그러려면 분열이 아닌 한 곳으로 집중이 잘 되어야 할텐데…늘 걱정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혼자서 좀 불안하기도 하네요.^^

단발머리 2025-04-06 08:25   좋아요 1 | URL
솔직히 책나무님의 걱정은 모두의 걱정 아닐까 싶어요. 촛불 혁명 뒤에도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고요.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 건 맞는 것 같고, 그래야만 경제 위기를 포함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극복될 거 같기는 해요.
저희 아파트 근처에 세워진 야심찬 주상복합 아파트, 발 밑이 지하철역과 연결되는 상가가 1년 내내 텅텅 비어있어요. 사실 물가도 많이 올랐구요 ㅠㅠㅠ 경제 상황이 제일 먼저 나아지기를....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막 담배 피우고 그러던 시절의 일이다. 영어 이름이 필요했다. 완전 발음하기 쉬운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가능하면 영어 이름을 지어오라 했다. 영어 이름이라…

떠오르는 건 톰과 제인. 철수와 영희. 그 외에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아… 어쩌나. 이제야 생각하면 내 이름의 음차를 생각하면 ‘제인’이 좋은 선택이기는 하다. 아, 제인이라니. 제인... 뭔가, 무언가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싶던 나로서 ‘제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고. 그땐 '제니'라는 이름을 모를 때여서 ‘제니’를 쓸 수도 없었다. 알든 모르든 제니는 쓸 수 없다, 이제는. 제니는, 이제 이 지구상의 제니는, 오직 이 제니뿐이고.





외고 나온 친구들은 샤넌이라니, 이사벨라니, 부르기 쉽고 세련되고 예쁜 이름으로 속속 등장하는데, 시간은 흐르고 떠오르는 이름은 없고. 그때 갑자기 떠오른 사람이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이 사람. 강하고 쎈 인상의 기자, 클락 켄트의 직장 동료, 슈퍼맨의 그녀. 그래, 그 이름으로 하자, 그 이름으로 해야겠어. Lois.



로이스로 정했다. 로이스로 하자, 내 이름을. 근데 내가 정하면 뭐 할까, 누구든 내 이름을 불러줘야 되는데… 아무도 안 불러줘, 내 이름을. 이름 정해오라던 교수는 내내 발음하기도 어려운 내 이름을, 이상한 발음으로 불러댔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를 많이 부르지는 않았다는 것. 로이스라 불리지 않은 채로 그렇게, 졸업을...













심사숙고해 고르고 고른 이름이었으나 불리지 못했던 내 이름 Lois가 <바닷가의 루시>에 나온다. 물론 전작(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오, 윌리엄!>)에도 나온다. 유일한 아이라 생각하고 자랐던 윌리엄은 70이 다 된 나이에, 누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평생 동안 알지 못했던 어머니 캐서린의 비밀. 캐서린은 윌리엄의 아버지를 만나기 전, 동네의 농부와 결혼한 상태였다. 전쟁 포로로 캐서린의 동네에 잠시 머물게 된 윌리엄의 아버지에게 반해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가 떠난 것은 감자밭을 일구던 남편만이 아니라, 그와의 사이에서 낳았던 두 살 된 갓난 아기, 그녀의 딸아이 Lois였다. <오, 윌리엄!>에서 생전의 캐서린을, 그리고 남겨진 윌리엄을 만나길 거부했던 로이스는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윌리엄을 만난다. 코로나 상황의 그를, 자신의 동생을 걱정한다. 행복한 만남이, 따뜻한 재회의 시간이 이어졌다. 로이스는 동생을 끌어안고, 마침내 윌리엄은 누나를 발견했다.

지난주 토요일에 집회에 나가기는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짧게 찍고만 왔다. 매서운 바람을 모른 체하며, 차가운 바닥에 줄 맞추어 앉아 계신 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거리에 나가면, "윤석열을! 파면하라!"을 몇 번이나 크게 외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깐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아침을 맞으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고. 밤의 기도는 아침에도 이어졌다.


선고 날짜가 잡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제 아무도 나를 로이스라 부르지 않을 테지만, 이제 나는 로이스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루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크리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윌리엄이. 나는 윌리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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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01 2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흔치않은 이름이라 좋은데요..Lois~~
윌리엄누나 이름이었단건 까맣게 몰랐네요. 사실 관심이 없었어요.
루시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금요일엔... 꼭!
모두가 염원하는 결과가 나오길 저도 간절히 간절히 🙏 기도하고 싶네요. 저의 신이 없지만요!

단발머리 2025-04-01 21:06   좋아요 3 | URL
그럼 ㅋㅋㅋㅋㅋㅋ 은하수님께서 저를 ㅋㅋㅋㅋㅋㅋ 로이스로 좀 불러주시고 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저 요즘에 이 책 다시 읽고 있는데, 참 좋네요. 스트라우트 정말 최고에요.

금요일에는.... 우리가 다 아는대로, 염원하는대로
좋은 결과 나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신에게, 계속 기도할게요!

서곡 2025-04-0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로이스님 설마 오늘 만우절 장난으로 선고 기일 발표한 건 아니겠지요??? (만우절 농담이고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좀 편히 자고 싶습니다 ㄷㄷㄷ

단발머리 2025-04-01 22:28   좋아요 1 | URL
설마하니 헌재가 만우절 장난을 ㅋㅋㅋㅋㅋㅋ 그러진 않겠지만, 사실 처음에는 속보 보고 저도 눈을 의심했다는.....

오늘밤은 편히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진정한 평화는 금요일 11시 20분에 누릴 수 있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1 22:45   좋아요 1 | URL
로이스 호명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

복있는사람들 2025-04-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에는 찬물 마시고
속 풀고 잘 예정...
도대체 50년을 후퇴시킨 이들은 부끄러움을 알까...

유부만두 2025-04-02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제가 알던 로이스는 더 기버 작가 하나였는데 이제 두 명이 되었어요!

단발머리 2025-04-03 12:14   좋아요 0 | URL
크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로이스 로리 떠올리는 분은 유부만두님 뿐인가 하노라 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로이스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네요. 두 명 중 하나가 저 맞지요? ㅋㅋㅋㅋㅋㅋ

2025-04-03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03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03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5-04-03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어 이름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 같은데 아직 영어 이름이 없습니다. 내심 그런 날이 온다면 ‘에미‘ 로 하자, 고 하고 있긴 합니다만... ‘올리브‘ 로 할까요? 갑자기 올리브가 좋게 느껴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식의 흐름: 흠, 영어 이름 지어야 하는 순간이면 걍 에미로 하자 -(단발머리 님 글을 읽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의 소설 속에 등장한 이름이었구나, 음, 그랬지, 음,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좋으니까 그러면 엘리자베스는 어떨까, 음, 너무 길어, 올리브, 올리브로 하자!

이렇게 된건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루시‘ 로 할까, 하는 생각이 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3 12:27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영어 이름 꼭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시간 많이 드니깐요 ㅋㅋㅋㅋㅋ 심사숙고하시기를 바라오며.
한글 이름처럼 영어 이름도 자기한테 어울리는 이름이 있는거 같아요. 저는... 제 이름이 중성적이어서(사실은 남성적) 참 좋거든요. 여성적인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생겼잖아요, 제가 ㅋㅋㅋㅋㅋㅋ 근데 영어 이름도 나름? 중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찜했던 이름 중에 ‘레이첼‘이 있는데, 미드에서도 그렇고, 성경에서도 레이첼이 예쁜 여자 이름의 상징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못 썼거든요. 요청하지 않으셨지만 추천 이름 놓고 갑니다.

1. 에미 : 저는 이 이름이 좋아요. 특이하고, 다락방님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여기에 3표 드리고요.
2. 엘리자베스 : 베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냥저냥.
3. 올리브 : 올리브도 괜찮은데, 그... 제가 좋아하는 애덤 나오는 소설에서 여주 이름이 올리브구요. 친구들은 ‘올‘이라고 부릅니다. 올리브에 2표.
4. 루시 : 뭐랄까... 약간 소극적인 느낌? 이 이름도 0표이구요.
5. 수잔, 레이첼, 수지, 벨라, 샐리.... : 등등이 지금 생각나는 이름입니다.

다락방 2025-04-03 12:36   좋아요 1 | URL
저 안그래도 올리브가 키터리지 말고 또 있었는데 하다가, 아 그 로맨스!! 교수랑 사랑한다!! 그러면 이거 할까, 나도 교수랑 사랑 한 번 해보게? 이런 의식의 흐름까지 이어졌더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3 12:55   좋아요 1 | URL
그 로맨스 ㅋㅋㅋㅋㅋㅋㅋ 교수랑 사랑합니다! 애덤이랑 올리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님이 교수랑 사랑하는 거 절대 찬성하기는 하는데요. 아.... 교수가, 그니깐 애덤이 7살 연상이에요.

당신에겐! 연하를 권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4-03 17:12   좋아요 1 | URL
에미 어울릴 것 같아요 다락방님.
저는 Karen 입니다. 불려보지 못한 이름이여..ㅋㅋㅋ

psyche 2025-04-04 02:25   좋아요 0 | URL
음... 영어이름을 정할 때는 제일 중요한게 발음이 아닐까 합니다.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듣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사는 동양 사람들과 그 아이들의 이름이 비슷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엘리자베스 이런 이름은 어렵고요. 올리브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뽀빠이의 여친을 떠올리게 되지 않나 싶고 (물론 우리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리지만요) 요즘 흔하기는 하지만 올리브 보다는 올리비아가 낫지 않나 싶어요. 발음으로 보면 에미나 루시가 좋아요.

다락방 2025-04-04 08:50   좋아요 1 | URL
저 오래전에 김윤진 배우가 토크쇼에 나와서 영어 이름 정하는 얘기를 한 게 기억이 나는데요,
그 때 그 배우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람들이 내 이름을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야겠다‘ 라고 하자 듣고 있던 분이 ‘윤진, 네 이름을 쉽게 하려고 하지마, 네가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네 이름이 어려워도 발음하게 될거야‘ 라고 하셨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윤진 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는데 정말 사람들은 윤진이란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대요. 그게 저는 안봤는데 아마도 <로스트>란 미드를 찍고나서였던것 같아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납니다. ㅎㅎ

저는 에미.. 로 확정할 생각이지만, 사실 ‘파멜라‘ 라는 이름도 좀 끌리긴 합니다. 그런데 프시케 님 말씀처럼 이건 또 나이 있는 사람들한테 육체파 배우 떠올리게 할 것 같아서... 역시 에미가 낫겠네요. 하하하하하.

다락방 2025-04-04 08:50   좋아요 1 | URL
오, 독서괭 님! 카렌 이란 이름도 너무 좋은데요?!

단발머리 2025-04-05 10:1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 근자에 듣는 이름 중에 젤 이뻐요. 카렌~~~
카렌님~~ 카렌님~~ 이름이 너무 이뻐서 자꾸 부르고 싶어요, 카렌님~~~

단발머리 2025-04-05 10:17   좋아요 0 | URL
프시케님 / 올리비아~~ 너무 좋네요. 역시 프시케님은 현지에 사시니까 그 이름의 느낌까지도 정확합니다!!

다락방님 / 우리 사이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ㅋㅋㅋㅋ 파멜라의 파멜라는, 제게 찰스의 파멜라라서.... 강력 반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미 좋구요. 에미 좋아요!!

수이 2025-04-0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제니라는 이름보다는 로이스가 훨씬 잘 어울립니다. 저도 지금 초콜릿을 까먹으며 이 댓글을 쓰고 있지만 말입니다 저 라떼에 초코케이크라니...... 가서 말려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해버렸습니다. 확연하게 아이스 커피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군요. 아이스 라떼 쪽쪽 빨면서 곁에서 수다 떨고 싶습니다 단발 아니 로이스님 곁에서. (나 욕해도 돼?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5 10:19   좋아요 0 | URL
로이스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며칠 사이에 여러 이웃님들 댓글 받다가 특히 프시케님의 올리비아....에 쪼금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리비아~~ 근데 안 되겠어요. 올리비아는.... 올리비아 핫세의 올리비아.......
수이님은 영어 이름 뭐에요? 수이님은 수이,라고 하시면 될 것 같기는 하네요. 미래를 내다보시는 분이신가요, 수이님? ㅋㅋㅋㅋ

psyche 2025-04-04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ㅎ
집회 다녀오셨군요. 수고하셨어요. 멀리서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보냅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밤에 제대로 잘 수 있겠죠? 제발 그렇게 되기를!!

단발머리 2025-04-05 10:19   좋아요 0 | URL
멀리서 보내주시는 귀한 마음에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막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뉴스 보셨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시간이 왔네요. 너무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입니다!

다락방 2025-04-04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제니 진짜 멋지지 않나요? 독보적인..

자, 우리 오늘 축하의 메세지를 서로 띄울 수 있기를 기도해봅시다!

독서괭 2025-04-04 08:55   좋아요 1 | URL
일찍 출근했는데 일이 손에 안 잡혀요~~🥹🥹🥹

단발머리 2025-04-04 08:59   좋아요 1 | URL
네네~~~ 우리 오늘 종일, 아니 일주일 동안 축하의 메시지 띄워봅시다.

그릇 5개 씻는데 계속 시계만 보고 있네요. 11시야~~ 우리 모두 기다린다. 얼른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