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해방론
다나카 미쓰 지음, 조승미 옮김 / 두번째테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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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투 투쟁이 한참이었던 때에 신좌파 운동에 함께했던 일본의 여성들은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성별 구분에 따라 남성들은 대의에, 여성들은 그 위대한(?) 대의를 위한 뒷바리지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을 강요받았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

여자들은 투쟁하는 남자들 뒤에서 투쟁 전단지를 등사기로 긁고 등사판을 밀고, 혁명가인 척하는 남자의 활동 자금을 벌고, 또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본다. 이렇게 투쟁에서도 생활에서도 책임이 중하고 부담이 무거운 일상을 담당한다. (이에 대해 조금 감사를 받았다 한들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런 것에 아무런 의문 없이 여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혁명론이나 전략, 전술을 짤 때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은 배제하는 게 신좌익 남자들이다. 그러면서 "나는 결혼을 한다면 운동은 하지 않는 여자랑 할 거야."라고 말하는 남자가 과연 우리 동지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버리고서는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주의니 뭐니 베트남 민중연대"니 뭐니 하며 뚫린 입이라고 술술 잘도 말하는 남자를 고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혁명파 내부에 있는 남녀 차별을 고발해야 한다. (268쪽)

이런 현상은 일본에만 혹은 우리나라에만, 혹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운동권에서만 나타났던 건 아니고, 노예 해방 운동을 함께하던 백인 남성들이 백인 여성들을 회의장 입구에서 출입을 가로막았다거나 소련 혁명 성공 이후에 많은 여성들이 권력에 핵심에서 축출되었던 사례들은 이런 현상이 가부장제의 전 세계적 실천임을 확인해준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심상정 의원이 떠오르는데...

가까이에서 보거나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성 중심의 운동권 문화에 반발해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았었더라는, 가히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 막막한 현실에 포기하지 않고 그 현실 너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만들어갔던 여성. 그런 여성, 그런 여성들이 있기는 하다. 저자도 바로 그런 여성들 중의 한 명이다.

같이 읽고 있는 파스텔 핑크의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에는 '공산주의'에 마음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닉은 미국 전역을 돌며 과거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수십 명을 인터뷰하며, 공산주의가 남긴 실패와 아이러니에 대해 말한다. 책 소개에는 이 기록이 "조직의 토대와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러 급진적 사회운동과도 맞닿아 있다"고 쓰여 있다. 공산주의의 '환영'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건, 90년대말 한국 대학생 기독 부흥 운동의 언저리에 있었던 경험 때문이다. 현실에 발 디딘 채로 이제 막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질주, 노력, 헌신. 나는 그에 대해 1, 그래, 1 정도는 아는 사람이라서, 그 때의 감정, 결심,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때, 아쉬움과 아련함이 동시에 일어난다.

'깨닫게 되었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기독교가 그렇고, 공산주의가 그러하다. 한없이 낭만적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자신의 변화를 주위에 알리며 그들을 '포섭'하려 하는 것도 기독교와 공산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평등에 기초한다. 따라서,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이전의 관념과 문화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인권 개념과 연관지어 실천적으로 적용된다면, 인간이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찬 존재임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공산주의야말로 완벽한 인간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미래는 핑크빛이 맞다. 그래서 그 이상향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고.

그랬던 여성들, 혁명의 동지이며 일원이었던 여성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외침에 떨치고 일어섰던 여성들은, 자신은 혁명의 일원이 아님을, 남성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녀들의 노동은 '자연적'이라고 여겨지며 그러한 노동의 지속한 수행이 여전히 여성에게'만' 강제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여자'임을 발견하는 순간. 그 부조리함에 대한 논증과 현실에 대한 비판, 그리고 거침 없는 반성이 반복해 이루어진다.

거친 면이 적잖이 보이고, 논리의 전개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으나,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맡겨진 문제에 대면하는 그녀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간신히 읽기를 마쳤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책을 다 읽지는 않더라도, 저자에 대한 짧은 글이라도 읽고 싶다면, 역사적인 문건이라 불리는 <변소로부터의 해방>이라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저자에게 박수를, 그리고 이 책을 마저 읽은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재산 보전과 상속을 목적으로 한 경제 체제는 여자의 성적 욕구를 남자와 가정에 매어 놓음으로써 순혈주의를 유지하려고 한다. 여자한테만 적용하는 일부일처제가 그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과 몸의 영위 과정에 반하는 일부일처제는 여자와 아이가 남자에게 의존하게끔 하는 경제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있다. 또 체제에 위기가 오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의 핵심에 성을 더럽고 천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경멸하는 의식 구조가 자리 잡도록 해서 지금까지 위기를 극복해 왔다. 일부일처제는 본질적으로 여자의 경제적 자립과 성적 욕구를 틀어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을 업신여기는 의식 구조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더 강하게 한다. (345쪽)

계급사회란 ‘누구하고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하는 체제‘를 말한다. 아픔을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실제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 언제까지나 자신이 빛 쪽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다. 아픔을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주문에 걸린 사람이다. - P191

여성해방이란 여자들이 힘을 모아 여자가 살기 힘든 현실을 깨부수는 것이며, 동시에 서로 갈등하고 미워해 온 여자와 여자의 관계성 속에 에로스를 되살리면서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자에게 에로스는 나의 자궁, 즉 나의 자연과 내가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나온다. 소통은 ‘여자인 것‘에서 오는 아픔과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P214

몇 차례나 되풀이하지만, 우리에게는 항상 두 가지 본심이 있다. 체제의 가치관에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나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나 이런 두 사람이 항상 공존한다. 속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체제의 가치관을 뿌리칠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겉으로는 체제의 가치관을 뿌리치는 척하고, 살아 있는 자신의 내면은 체제의 가치관에 계속 종속하게끔 내버려둔다. 이런 금욕주의는 어김없이 내 안에서 고름으로 변한다. - P277

우리는 여성의 해방 문제를 성의 해방 문제로 제기한다. 성을 부정하는의식 구조에서 자신을 해방할 것을 제기한다. 스스로 내부에 있는 발기부전(=성을 부정하는 의식 구조가 규정하는 정신적인 다양한 무기력함)을 해체하기 위해, 남자와 권력에 대한 투쟁을 결의하자. 그 결의를 호소한다.

여자에서 여자로, ‘변소‘에서 ‘변소‘로!
단결이 여자를 강하게 한다.
같이할까요? - P358

여자들은 투쟁하는 남자들 뒤에서 투쟁 전단지를 등사기로 긁고 등사판을 밀고, 혁명가인 척하는 남자의 활동 자금을 벌고, 또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본다. 이렇게 투쟁에서도 생활에서도 책임이 중하고 부담이 무거운 일상을 담당한다. (이에 대해 조금 감사를 받았다 한들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런 것에 아무런 의문 없이 여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혁명론이나 전략, 전술을 짤 때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은 배제하는 게 신좌익 남자들이다. 그러면서 "나는 결혼을한다면 운동은 하지 않는 여자랑 할 거야."라고 말하는 남자가 과연 우리동지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버리고서는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주의니 뭐니 "베트남 민중연대"니 뭐니 하며 뚫린 입이라고 술술 잘도 말하는 남자를 고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혁명파 내부에 있는 남녀 차별을 고발해야 한다. - P370

여자에게 결혼이란, 또 결혼식이란, 아내로 엄마로 암컷의 생을 살아 내기 위한 결의를 세상에 알리는 창구이다. 생각건대 공인된 포르노인 결혼은 거리에서 남녀 간 성행위 퍼포먼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욱 우스운 것은 거리를 지나며 그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이 누구도 성행위를 보지 않았다고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와 비슷하게 입모아 거짓말을 하는 꼴이다. 이렇게 결혼 포르노가 상연되어 왔다. 그러니까 모두가 결혼이 포르노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포르노라고 외친다면 이 세상의 중심 뼈대에 금이 갈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 공인된 포르노 ‘결혼‘이 계속 상영될 수 있다는 소리이다. 이런 속임수를 숨기려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왈가왈부한다. 마치 결혼 이상으로 외설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하고서 체제를 정비한다. - P63

그러나 고통은, 어둠은, 그것을 고통으로, 어둠으로 느끼는 개인에게는 항상 절대적인 것이다. 물론 이것이 아픔에 한 번 매달리게 되면그것에서 떠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둠은 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에서 자신이 벗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래서 어둠을 어둠으로 제대로 느끼고 따지며 묻는 중에 이 사회의 가치관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새로운 가치로 창조할 수 있을 터이다. 스스로 오직 어둠을 향해 달리는 가운데, 진정한 주체성이 확립된다. 이것은 관념론이 아니고, 분명 변증법적인 발전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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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02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고 완독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글을 적어주셔서도 감사드리고요.
공산주의 로맨스..는 저도 살까말까 계속 고민중인 책입니다. 제가 고닉을 좋게 읽은 경험이 없어놔서리... 그런데 공산주의 로맨스.. 너무 읽고 싶은 제목이고 말이지요. 흠흠.

단발머리 2024-12-02 16:07   좋아요 0 | URL
이렇게 또 한 권을 완독 리스트에 올리게 되네요. 엄청 뿌듯합니다.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딱 고닉 같은 책이어서요. 인터뷰 모음집, 정확히는 인터뷰 후기 같은 건데 저는 고닉 좋아해서 잘 읽어가고는 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책이 예뻐서. 파스텔 핑크!

독서괭 2024-12-03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서재 달인을 축하드립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저도 걱정했지만 되었더라고요 ㅋㅋㅋ 단발님이 얘기해주신 거죠? 감사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12-03 18:50   좋아요 1 | URL
사실 제가 아침에 메일 넣었어요. 함께한 정이 있지 않냐… 한 달 공백 정도는 봐줘라~~ 내년에 잠사모 활동도 열심히 하시라 권할테니 이번에는 좀 ㅋㅋㅋㅋㅋㅋ🤣 축하드립니다, 독서괭님!

공쟝쟝 2024-12-04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 사이 안녕하셨습니까?.... 계엄 땜에 혹시나 서재의 글을 근거로 잡혀가진 않으셨을란가 걱정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함께 윤씨를 정털려한 시간이 얼만데... 단발머리님을 잡아갈 거면 나도 잡아가라!!

단발머리 2024-12-04 08:26   좋아요 1 | URL
나를 고발하라! 도 아니고 나를 잡아가라! ㅋㅋㅋㅋ웃을 수 있어서 슬프고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촌극이 아니라 실제였는데 말이지요 ㅠㅠㅠ

공쟝쟝 2024-12-04 09:01   좋아요 0 | URL
아 잠 설쳐서 넘나 곤피허구먼요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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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술에서 '팩트'는 규정하기 어려운 단어다.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에 서술자의 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의 '선택' 역시 서술자(만)의 것이므로 보여지는 것 너머를 '상상'해야 하는데, 과거에 대한 접근은 많은 에너지를 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팩트인가. 어떤 팩트를 '선택'할 것인가. 알아야 할 일과 몰라도 될 일. 기억해야 할 일과 잊어야 할 일. 감춰야 할 일(여당 입장에서 채상병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밝혀져야 할 일(유가족 입장에서 채상병 사건과 관련된 외압).

『유대인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다. 따라 읽다보니 나는 그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일단은 내가 모르는 역사적 사건들이 주는 압박, 이를 테면 1648년 대재앙 같은 사건들.

1648년 늦은 봄, 마침내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 툴친에서는 자기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폴란드군이 유대인을 코사크인에게 넘겨주었다. 테르노필에서는 성의 수비대가 유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바르에서는 요새가 무너져 모든 유대인이 몰살당했다. (447쪽)


유대인들이, 집단으로서의 유대인이 얼마나 일관되게 '박해받았는지'에 대한 확인의 과정이 내게는 무겁고 놀라웠다. 내가 모르는 역사적 사실들, 억압과 박해와 강제 이주, 살해 위협과 대량 학살의 엄중함이 나를 저자에게 바짝 붙어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저자의 말을 완전 신뢰하기에 이르렀는데…

아,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대한 서술을 읽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되었으니, 마르크스 부분을 읽어가면서 저자 역시 인간이며(쩝, 당연한 사실을...), 인간이기에 특정 사안, 특정 인물에 대해 갖고 있을 법한 감정의 오묘함을 어렴픗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뒤쪽에서는 프로이트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는데, 가장 '유대인적인' 두 사람,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서술은 가히 대조적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적의('마르크스의 이론은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럴싸한 유대인의 미신에 불과하다', 591쪽)만큼 프로이트에 대한 호의('그는 인류에게 새로운 거울을 주었다', 704쪽)가 빨간색과 파란색처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쯤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저자 소개. 나는 그가 충실한 가톨릭 신자임을 잊었었구나. '종교적으로 보수 성향의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해방신학을 이단으로 여기고 사제 독신주의를 옹호했으나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던 폴 존스를. 기독교인이면서 빨갱이인 테일 이글턴, 그래서 더 소듕해.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다.

6부는 유대인의 전체 역사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홀로코스트, 반유대주의의 결정판과도 같은 비극의 역사를 다룬다. 프레모 레비의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나를 제일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지점, 유대인들, 독일에 살던 유대인들 중의 많은 수가 스스로를 '독일인'이라 여겼던 그 지점을 폴 존스도 반복한다.

유대인은 독일을 고향처럼 생각했다. 독일은 학자들이 존경받는 사회이고 일부 가치관은 유대인 사회의 학자 지도 체제와 일치했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이 황금기에 유대인은 예쉬바에서 독일 대학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683쪽)

그랬던 유대인들, 독일을 고향처럼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재산을 압수당하고, 출입이 제한되는 일련의 과정에 더해 급기야 이주를 '명령' 받는다.

유대인의 역사, 신학, 전통 문화, 사회, 구조,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까지도 타협하고, 값을 치르고, 애원하고, 항의하되 싸우지는 말라고 가르쳤다. (819쪽)

현재의 당면한 고난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고, 이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공통의 신념, 지나한 과거로부터 선조들을 통해 얻은 경험은 '순순히' 독일 나치당의 요구에 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홀로코스트가 히틀러라는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의 기이한 행적으로 인한 비극이 아님을 수차례 반복한다.

실제로 학살을 자행한 것은 친위대이지만, 독일의 모든 부처와 군대, 산업계, 당이 무시무시한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가 라울 힐베르크가 지적한 것처럼 조직 간에 아주 완벽한 협력이 이루어져서 모든 조직이 한 몸을 이룬 거대한 기구처럼 학살 작전을 자행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832쪽)

히틀러 정부가 독일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탄성한 합법적인 정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에 대한 모든 정치적 박해는 법에 의거한 '합법적'인 절차였다. 독일인들은 유대인 절멸에 대한 히틀러의 집념이 신앙에 가까운 정도였음을 알고 있었다. 구두로만 지시했다는 히틀러의 여러 명령들은 그의 충실한 부하들을 통해 전해졌고, '독일의 모든 부처와 군대, 산업계, 당',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범죄에 가담했다.



1933년 아렌트는 정권을 장악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독일을 떠나 프라하에서 제네바를 거쳐 파리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곳에서 중동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고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시오니즘zionism 운동에 협력했다. 유대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존재의 의미, 유대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아렌트는 시오니즘 운동과는 차츰 거리를 두지만, 유대인을 처음으로 정치적 무대에 등장시켰다고 하여 시오니즘을 높이 평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렌트가 유대인의 민족적 기치를 내걸고 연합국에 협력하는 유대군 결성에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정치 활동을 중시했던 그녀의 사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 18쪽)

1940년 6월, 프랑스가 항복하고,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던 혼란의 시기에 아렌트는 기지를 발휘해 수용소에서 '걸어서' 탈출한다. 만약 그 때 머뭇거렸다면, 다른 판단을 했더라면 그녀는 독일군에 의해 다른 수용소로 이동했을 테고, 그랬다면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비슷한 결말을 맞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사유하지 않음'으로 인한 비극적 결과에 대해 말한다. 나는 그녀의 뜻, 의도를 정확하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민족이 처한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그런 경지에까지 사고를 확장시킨것에 대해서는 무한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학교와 병원, 공터에서 축구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는 부모에 대한 '의도적' 폭격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멸절, 팔레스타인의 절멸을 유대인들은 원하고 있다. 자신의 선조들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겠다는 결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두껍고 무거운 책을 무사히 마쳤다. 가자 지구의 폭격이 계속되는 한 피로 얼룩진 유대인의 역사는 멈춰지지 않는다. 가해자인 유대인들이 멈추지 않는 한, 저주의 시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지옥을 끝낼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들, 유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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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24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껍고 무거운 책 다 읽어내심을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 2024-11-24 21:36   좋아요 0 | URL
감사감사감사링! 💗💕💖 <기독교의 역사>도 읽어볼까 해요. 폴 존슨의 책이 많더라고요.

다락방 2024-11-25 11:44   좋아요 1 | URL
아앗 저도 기독교의 역사도 읽어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의 역사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고요.

공쟝쟝 2024-11-25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저 두꺼운 걸 누가 읽느냐 했더니.... 으아... 반유대주의에 지대한 탐구중인 단발님이 읽으신다 ㅋㅋㅋㅋ 대박.. 대박!

단발머리 2024-11-27 16:13   좋아요 1 | URL
완독자의 미소를 보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 브이!

그레이스 2024-11-27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노라만 봐도 그들의 고난이 떠오릅니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은 저 두께로 두권짜리 인데... 언제 읽을까 싶습니다. 괜히 잘 있나 책장만 뒤적거렸습니다.^^

단발머리 2024-11-27 16:14   좋아요 1 | URL
근대의 탄생이..... 폴 존슨 버전이 있군요! 저 오늘 알았는데, 그레이스님 댁에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거에요?
우아, 대박입니다. 저는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를 내쳐 읽어볼까 싶은데 가능할까 모르겠어요. 그 다음은 <근대의 탄생>으로 할까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4-11-2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인용에 페이지 적혀있는데 ˝819˝라고 써 놓으니까 진짜 위풍당당 장난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11-30 15:26   좋아요 0 | URL
위풍당당 얼렁뚱땅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장난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12-01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닐라라떼 한 잔이 믹스커피 일곱 잔 보다 더 몸에 안 좋대요, 단발님, 이렇게 두꺼운 거 읽느라 바닐라라떼 필요한 건 알겠지만 그냥 라떼 마셔요. 책 이야기는 윗분들이 다 하셔서 난 패스~~~

단발머리 2024-12-02 12:48   좋아요 1 | URL
이 댓글 그대로 읽어줬어요, 식구들한테.... 옳은 말만 하는 친구라고 하던데요.
이제 라떼도 몸이 안 받아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나도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할 터인가. 나는 이제 어른이 되려고 그러는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12-02 13:31   좋아요 1 | URL
케이크 먹으면 아메리카노 마셔도 돼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12-02 13:36   좋아요 1 | URL
네에 ㅋㅋㅋㅋㅋㅋㅋ🤣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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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단은 여기다.

생물이 생존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이종 간 관계interspecies relationships에 의존한다고 본다. 즉 생물종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단위가 아니며, '순수한' 자기 성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생물종은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신체를 오염시키면서 공진화했고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종 간의, 다종 간의 관계맺음은 우연적인 사건이기에 그것의 결과 또한 일관적이지 않고 불확정적이며 다양하다. 송이버섯 곰팡이가 여러 지역으로 이동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소나무 뿐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냄새와 색깔과 모양을 가진 송이버섯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다.(518쪽)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송이버섯이 상품이 되었다가 선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문명(?)의 삶을 거부하고 채집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곰팡이가 바위를 소화해 식물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이야기에서는 묘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기후 위기를 인간에 대한 비난과 절망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공존의 삶으로 바꾸어가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유지처럼, 아니 사유지만큼 공유지 또한 인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인간들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엔 비인간,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공존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번역가 노고운님의 해제를 먼저 읽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3초간 했다. 좋은 책을 번역해주신 번역가님, 두꺼운 책을 출간해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리고, 너무도 근사한 버섯책을 여성주의 책으로 선정해주신 다락방님께도, 그리고 같이 읽어주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급, 연말 시상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정을 넘기는 늦은 시간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는 단발머리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일본 자본(그중 일부는 전후 배상금으로 한국에 전달되었다)의혜택을 받는 것에 기뻐했다. - P215

그래서 송이버섯은 장기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이상적인 선물이다. 공급업자는 송이버섯을 자신들에게 일거리를 맡기는 회사에 준다. 한 식료품업자는 어떤 종교로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지도자에게 바치기 위해송이버섯을 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이버섯은 진지한 헌신의 표시다. - P233

이 책에 담긴 나의 생각 중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 소외는 자본주의적 자산이 형성될 수 있는, 얽힘이 풀린disentanglement형태다. 자본주의 상품은 다음 단계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발판으로 사용되기 위해 생활-세계에서 제거된다. 그 결과 중 하나는무한한 필요다. 다시 말해서 투자자가 원하는 자산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다. 따라서 소외는 축적, 즉 투자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관심사다. 축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소유를 권력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와 생태계를 전복시킬 수 있다. 자본주의는 통약성commensuration이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가치 형태들은 차이의 거대한순환 회로를 가로지르면서도 번창한다. 돈은 투자 자본이 되고, 이는 더 많은 돈을 낳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 및 비인간의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생계 방식으로부터 자본을 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번역 기계다. - P245

많은 사람이 곰팡이가 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물에 더 가깝다. 곰팡이는 식물처럼 햇빛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지않는다. 동물과 같이 곰팡이는 먹을 것을 찾아야만 한다. ...물에서만이 아니라 마른 땅에서도 식물이 자라는 이유는 지구의 역사가 펼쳐지는 동안 곰팡이가 바위를 소화하면서 식물이 섭취할 영양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함께 곰팡이는 식물이 자라는 흙을 만들었다. 또한 곰팡이는 나무를 소화한다. - P252

그들은 "연구할수록 공생symbiosis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인 것 같다....자연은 개체나 게놈보다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 같다"라고 썼다." - P261

아마도 내가 이러한 붕괴 현상을 포장하려고 하거나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않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대규모의, 상호 연결된, 막을 수 없어 보이는 숲의 황폐화이고, 가장 지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독특한 숲조차도 여전히 파괴의사슬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동남아시아에서처럼 사라지는 숲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숲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우리의 모든 숲이 그러한 파괴의 바람에 뒤흔들린다면, 자본주의자가 그 숲을 원하거나 내팽개치거나 간에 우리는 흉물스럽고 불가능하게 된 상태의 그 폐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된다. - P379

진보 이야기를 빼면 세상은 무서운 곳이 된다. 폐허는 버려졌다는 공포를 담아 우리를 노려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 다행히 여전히 인간과 비인간의 일행이 함께 있다. 파괴된 우리 풍경들의 제멋대로 자란 변두리를자본주의적 규율, 확장성, 그리고자원을 생산하는 방치된 플랜테이션 대농장의 가장자리를 여전히 탐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잠복해 있는 공유지의 냄새를 그리고찾기 힘든 가을 향기를 여전히 붙잡을 수 있다. - P497

그리고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그 금전적 대가가 매우 낮다. 그런데도 한국의 출판 시장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외국 서적이 훌륭하게 번역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들, 즉 현재 우리 사회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번역을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수가 아주 많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번역은 주변자본주의적이다. - P529

나도 모르죠. 하나의 생물종은 잠재적으로 유전적 물질을 교환할 수 있는,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유기체 집단입니다. 이것은 성교를 통해 번식하는 유기체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생물 복제lone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식물에서부터 이미 생물종 개념에 문제가 생깁니다. ㆍ 척추동물에서 자포동물로, 산호로,... - P413

벌레로 이동하면, DNA 교환 방식과 집단 형성 방식이 우리와 매우 달라집니다. 곰팡이나 박테리아로 가면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이상합니다. 수명이 긴 복제 생물은 갑자기 성적sexual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큰 덩어리의 염색체 전체에 도입되는 이종 교배가 가능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다배체화 또는 염색체 복제도 이루어집니다. 다른 박테리아를 수용하는 것을 뜻하는 공생화symbiotization를 하기도 하는데, 다른 박테리아 전체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있거나 다른 박테리아의 DNA 중 일부분을 자신의 게놈으로 변환할 수 있을 때 발생합니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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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11-02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단발머리 2024-11-02 16:45   좋아요 1 | URL
😜😝🤣😍

다락방 2024-11-02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꺅 >.<

단발머리 2024-11-03 10:14   좋아요 0 | URL
😜😝🤣😍

건수하 2024-1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단발머리 2024-11-03 15:00   좋아요 0 | URL
☺️😉😜😎😍
 
유대문화론 - 사가판 私家版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인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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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문화론』을 다 읽었다. 어제 한 일은 왼쪽의 인덱스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왜 진작 사지 않아 이 일을 자초한단 말인가. 저는 읽기 전에 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에 산 책이 집에 많이도 있... 더 큰 오해를 막기 위해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합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일전에 써두었던 부분 중, 1) 한국과 일본 외교 관계의 난맥상 관련 언급과 2) 페미사이드에 대한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태도를 통해 나는 또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이 똑똑해도 모를 수 있다는 것,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의 양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통찰과 상관없이 꽉! 막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전문가가 최고다, 나는 또 그런 쪽은 아니다. 뒤에서 봐야 보이는 게 있고, 멀리서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우치다의 특장점은 어떤 논의를 대함에 있어 이런저런 가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 있다. 우리는 각자 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란 그렇게 딱 정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것'이라 할 만한 의견이 필요하고. 그 의견 자체가 조악하거나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엔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유대인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고 죄책감 부분을 연결해 논증한 부분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주장이었는데, 그것이 어떠하다는 판단 너머로(나는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 판단을 못 함) 그런 시도가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이제야 들어간다. 우치다의 사가판 유대문화론.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추적할 때, 『유대인의 역사』에서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불화가 언급된다.

유대인은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이나 몇 가지 분야에서는 그리스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문학만큼은 모든 양식에서 우월했다. 로마 제국 안에는 그리스인만큼이나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은 유대인이 더 높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문화 정책을 주도한 그리스인은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그리스인은 이집트 언어에 무관심했듯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학, 유대 종교 철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아는 거라고는 소문으로전해 들은 부정확한 지식이 전부였다. 유대 문화를 멸시하는 그리스인의 태도와 그리스 문화를 대하는 학식 있는 일부 유대인의 애증은 계속해서 긴장을 유발했다. (『유대인의 역사』, 207쪽)

서양 문화의 두 기둥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때는 그게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니 당시에 유대인을 향한 그리스인의 멸시와 질시는 유대인 지식인들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고, 그리스인들 역시 유대인들의 반응, 즉 자신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이토록 오래되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하던 유럽 사회에 『유대적 프랑스』라는 '기념비적' 반유대주의 도서가 등장한다. 제1주제는 반유대주의적 미신과 유대인에 대한 망언. 제2주제는 아리아인과 셈인 비교. 제3주제는 근대주의 비판이다.

반유대주의적 미신은 이런 식이다. 유대인은 페스트에 걸리지 않으며, 가톨릭 신자의 7배에 달하는 생식능력이 있다는 것.(117쪽) (새삼 궁금하다. 그걸 어떻게 확인했단 말인가) 인종 간 전쟁 사관은 '열정적이고, 영웅적이며, 기사도적이고, 솔직하며, 생각이 짧아 그들의 천직이라면 농부, 시인, 수도사 특히 병사'인 아리아인과는 대조적으로 '본능적인 상인으로, 동료를 속이는 데 천재적이며 남을 수탈하는 짓밖에 하지 못하는'는 것이 셈인의 특징이라 주장이다. 근대주의 비판이란 유대계 시민들을 근대화, 도시화의 원흉으로 보고 전통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는 것인데, 우치다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화를 원했던 건 그 누구보다 유럽인들 자신이었다. 변화와 진보에 대한 공포. 즉, '미래의 미래성에 대한 공포'(123쪽)가 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대인에 대한 부정의 감정으로 집적되었다는 주장이다.

<'과잉'의 유대인>이라는 챕터에서 우치다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사고 유형이란 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연하다. '유대인의 뇌', 특징으로 구별되는 '유대인의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민족 중심주의의 발전은 당연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사상은 일부 민족의 주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 집단이 행하고 있는 일이다. 우치다는 '민족적 기습'으로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사고·판단의 근거가 되는 그 사고·판단 구조 자체를 회의하고, 자신은 이미 자기 동일적으로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 동일률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태도'를 그들의 '표준적인 지성 습관'으로 수용했다(178쪽)고 보았다.

포인트는 그다음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사고 실험을 통해 '지성적'이라고 하는 하나의 표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다른 민족들이, 그것을 '지성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치다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

유대인이 특별히 지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대인에게는 표준적인 사고 경향을 우리들이 인습적으로 지성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180쪽)

아.... 문득 떠오르는 한나 아렌트의 분석.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내가 제일 굵은 밑줄을 그었던 바로 그 문장.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결국 모든 외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에서 마지막 승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증을 받았다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민족에 대한 의지박약한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451쪽)

반복해서 쓰자면, 모든 민족이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생각. 우리 민족은 각별하다는 생각. 이건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를 쓰면 책 한 권이 나온다, 는 진짜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넘어서서, 그만큼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 온 천지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던가. 이 세상 가장 한가하고 널널해 보이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이해가 가장 깊고, 나의 통찰이 가장 훌륭하며, 부족함이 없는 나의 미모를 보라. 나를 보라. 나를 존경하라. 인간 생존을 위한 가장 절절하고 솔직한 외침이다. 그런데, 유대인을 접한 민족들은 이 생각을 넘어서서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유대인을 만난 이후, 그들을 직면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내가 아니라 너일 수도 있다는 생각. 진짜 주인공은 너일 수도 있다는 생각. 진짜 똑똑한 사람은 너일수도 있다는 생각. 니가 하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확신으로 확장될 때 분노는 폭발해 버린다. 쾅쾅!

<살의와 죄책>이라는 챕터는 반유대주의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죄책감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데, 그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간이 너무 없는 관계로 이 책의 일부만을 읽어야 한다면, <제4장 끝나지 않는 반유대주의> 중에서 <'과잉'의 유대인>, <사르트르의 모험> 그리고 이 챕터 <살의와 죄책>을 권하고 싶다.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마치고 온 고3 아들의 저녁을 남편이 시키겠다고 해서 밥 차리는 시간을 아껴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기를 돌리며 머리 속으로 반을 썼다. <살의와 죄책> 부분을 더 자세히 쓰고 싶었는데, 정교하게 쓰기에 에너지가 부족해 아쉬운 대로 여기까지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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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16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세상에 제가 모르는게 너무나 많고 알고 싶은것도 너무 많은데 도대체 어떻게 영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뜬금)

단발머리 2024-10-16 15:43   좋아요 1 | URL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님의 저속노화를 ㅋㅋㅋㅋㅋㅋㅋㅋ 권합니다.
유튜브에도 많고요. 그렇게 권하는대로 먹으면 저는 인생사 재미없을 거 같기는 해요. 저는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뭐 이런 건 아닌데 다른 사람 도움 받기는 싫거든요. <요양원 늦게 가는 법> 특별 공개하더라구요ㅋㅋㅋㅋㅋ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독서괭 2024-10-16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아드님 곧 수능이군요!! 놀라워요. 단발님은 이렇게 젊으신데..(뒷모습 사진밖에 못 봤지만)
단발님이 적어주신 내용 모두 저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신기하네요. 유대인들이 그렇게나 똑똑했다고요? 유대인들이 지성이라고 정의하는 걸 우리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대인이 똑똑하게 느껴지는 건가요? 아무튼 똑똑한 건 맞나 본데.. 똑똑한 게 인종 특성이라니 뭔가 반칙 같은데.. ㅎㅎ
살의와 죄책 부분은 다음 페이퍼에서 이어집니까?

단발머리 2024-10-17 09:48   좋아요 1 | URL
제가 이렇게 젊습니다ㅋㅋㅋㅋㅋㅋ 뒷모습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유대인의 특별함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그리스인들과의 긴장 관계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결론은 아닙니다만 유대인의 ‘인종적 특성‘이라는 게 없다면(사실 없는 게 정답이고요) 유대인의 특별함은 교육에 있다는 생각을 쪼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생각은 ‘유대인,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 쪽으로 흘러가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장 마감했습니다. 살의와 죄책 ㅋㅋㅋㅋㅋㅋ 어렵더라구요. 다른 책, 다른 저자와 연결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오며~~

달자 2024-10-16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젠 책을 사셨으니 마음 놓고 땡투를 날릴 수 있겠군요!! 아 단발머리님 글은 정말이지 술술 읽히면서 읽는 내내 허벅지를 탁탁 칠 수 밖에 없네요. 진짜 주인공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 ‘너‘일 수도 있겠구나, 나보다 너가 더 잘난걸 수도 있겠구나, 거기서 오는 불안, 그 불안이 가져온 분노, 그리고 혐오. 이 레파토리의 희생자가 특히 유럽에서, 예전엔 유대인이었다면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만, 예전부터 이어져왔다는 의미에서) 지금은 중국인 것 같아요. 예전에 유대인에게 그랬듯이 오늘날 유럽에서 많이 논의되는 얘기 중 하나가 중국은 이렇다 저렇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등등. 근데 자세히 보면 그 적대감 뒤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숨어져 있더라구요.

공쟝쟝 2024-10-17 07:01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서구의 유대인 중국…! 달자님의 통찰에 더 무릎을 칩니다. 거친 일반화를 조심히 하며 이야기를 건네면, 저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일종의 거울단계라고 생각하고… (라캉읽는 중 ㅋㅋ 중얼중얼) 그래서 우치다 결론이 ‘어른이 되어라‘인게 정희진의 말 ‘피해자 정체성’을 넘어서라 와 일맥 상통한다 생각해요. 일베의 거울 메갈. (여긴 그 출발이 대 놓고 미러링이죠ㅋㅋ) 둘의 시작은 다를테지만 (어떻게 그리스인의 유대인혐오와 백인의 흑인혐오가 같겠습니까. ) 어떻게 하면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지 저 스스로를 살피면서 계속 고민 중예요! 여성주의적 전략이 공략이 아닌 낙후시키라는 제안에 다시한번 곰곰해 지고요. 일단은 우리 공부를 이어나가도록 합시다. 저는 달자님께 ‘친밀한 적‘ 추천드려요!!!

단발님… 이 글이 너므 멋지고, 4장이 넘나 궁금해서 가슴이 설렙니다. 결혼두번 가능하십니까? 폴리아모리 해주세요!!

단발머리 2024-10-17 09:51   좋아요 0 | URL
달자님 / 달자님~~ 달자님 댓글 읽으면서... 어머, 어머, 진짜진짜 나는 왜 중국인을 생각 못한 거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달자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딱 알 것 같고, 한국에서도 제주도 관광객부터 시작해서 중국인들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퍼져나가는 양상이기는 합니다.

똑똑한 상대를 알아보고 그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이 분노와 혐오로 이어지는 과정은 개인에게도 또 민족 전체적으로도 결국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오늘도 달자님 댓글에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되네요. 감사드려요, 달자님!

단발머리 2024-10-17 10:00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 달자님의 통찰에 무릎 치는 사람 저예요. 제가 먼저 무릎 쳤어요 ㅋㅋㅋㅋㅋㅋ 이걸 너무 크게, 아니면 엉성하게 설명하는게 조심스럽기는 한데.... 저는 정체성의 정치와 전략적 본질주의를 어떻게 통합해 갈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더 가까운 말로 하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전업주부가 이해할만한 페미니즘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혹은 설득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요. 권력의 작동이 양방향에서 이루어지죠. 무조건 니 책임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고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상황에서 제일 강력한 대응 방법이 뭔지에 대해서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곧 답은 정치입니다로 갈 예정ㅋㅋㅋ) 공부는 계속 이어져야 하겠죠?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결혼.... 두 번은 좀 어려워요. 은오님의 플러팅에는 설레임이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쟝님의 댓글은 뭐랄까. 심심하다고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4-10-17 10:00   좋아요 1 | URL
진심이 없엇기 때문입니다. 본심 결혼생각 없습니다! (밥상 엎기)

단발머리 2024-10-17 10:02   좋아요 1 | URL
😳🫣😜🤣🤪😏
 
교만의 요새 - 성폭력, 책임, 화해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박선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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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도 그렇겠지만, 기득권의 자리에서, 그러니까 학계에서 인정받는 자리에서 '여성'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공정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여성은 신뢰받기 어려우니 말이다. 남성이 그 말을 할 때는 크게 칭찬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기도 하다. 여러 군데 줄을 치고 인덱스를 붙였지만, 오늘의 픽은 매키넌이다. 다른 이들에게 공을 돌리는 사람, 오랜 기간 그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사람, 불편하고 불공정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았던 캐서린 A. 매키넌에게 박수를 보낸다. 


  


매키넌이 황야에서 홀로 울부짖는 고독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21 그녀는 거대한 법조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의 일원이었고,그 중에서도 '타이틀 세븐'을 성희롱에서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 중 하나였다. 매키넌은 이론적으로 가장 창의적이고 분석적인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많은 공을 돌렸다. 이 일이 매키넌의 어마어마한 통찰력과 변호사로서의 기술을 앗아가지는 않았으나 역사적인 저서를 발간한 후에도 몇 년이 지나도록 법학계에서 정교수 직책을 받지도 못하고 관련 직업을 갖지도 못했던 것을 보면, 법학계에서 외면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67쪽) 



혐오의 형성은 유형마다 미묘하게 다르다.44 하지만 모든 사회에서 여성만큼은 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고 남성들이 스스로를 초월적 존재로 정의하는 동안 여성들은 줄곧 가차없이 출생, 성애, 죽음에 연관되었다. 여성의 월경, 수유, 성적 체액, 단순한 분비물과 같이 이미 알려져 있는 혐오의 대상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여성들을 저희의 공간에 가두는 방식들 중 하나였다. - P83

도널드 트럼프는 특히 이러한 비유를 선호했다. 45 투사적 혐오는 학습된 것이라 할지언정 실재하고, 여성의 신체에 진심으로 혐오(종종 욕망과 뒤섞인 유의 혐오)를 느끼는 이들에게는 여성을(직장과 정치에서) 종속시키고 분리시켜야 할 또 하나의 추가적인 이유가 됐다. - P84

투사적 혐오는 교만의 나르시시스트적 사촌이다. 스스로를 초월적이고 청결하고 순수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인간 집단을 비인간,동물, 혐오적인 것으로 재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모두 동물이지만 나는 동물이 아니고 당신은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적 거짓이다. - P84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종속을 가능케 하는 만국 공통의 전략이다. 이는 교만한 자들이 손쉽게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허구를 만들도록 하며, 피종자들이그들의 종속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그들이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하다는 이유를 드는 것이다. 식민 지배는 피지배 국민이 아이들과 같아서 단호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정당화‘되었다. - P96

이러한 추론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해 오직 두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저항할정도로 순결한 여성이거나 아니면 뭐든지 허락하는 ‘창녀‘이거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우리가 특정 사건을 보는, 혹은 잘못 보는 방식에 편견을 갖게 한다. - P129

이러한 추론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해 오직 두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저항할정도로 순결한 여성이거나 아니면 뭐든지 허락하는 ‘창녀‘이거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우리가 특정 사건을 보는, 혹은 잘못 보는 방식에 편견을 갖게 한다. - P141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강도 피해자라면 법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 재산을 되찾는다거나 적합한 보상을 얻는 등 확실한 이득이 있다. 반면 강간 피해자가 얻게 되는 개인적 이득이라고는 스트레스와 온통 모호한 것들뿐이다. - P150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흑인들이 백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백인들이 흑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대칭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그반대로 차별적이며 평등 보호 조항을 위반한다. 이는 부정에 대한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완전히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인종 간에 결혼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부당한 인종차별로부터 독립적이고 타당한 우선적 목표 같은 것은 없고"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므로, 마찬가지로 여성 고용인들을 남성들의 잠재적인 성적 장난감으로 배치하고,
남성에게 중속되는 방식으로 고용하는 것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있지 않을뿐더러 여러 해에 걸쳐 젠더화된 권력의 위계 구조를 유지할 뿐이라고 매키넌은 주장한다. - P177

의해 확장된 권력 남용의 형태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성학대가 일차적으로는 권력과 권력 남용의 문제이고 성별은 부차적인 것이라주장해 왔다. 동의한다. 진짜 문제는 타인에게 동등한 인간 존재로서 완전한 존중을 표하지 않는 교만과 대상화이다. 이러한 결함은남성이라는 성별과 문화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만연한 권력 구조속에서 남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27

이런 군비 경쟁에서 특히 내가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은선수들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범죄 수사나 형사 기소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시도다. 운동선수들은 불법 약물의 사용이나 판매, 절도, 다른 재산 범죄 및 음주 운전 등 잠재적 형사 범죄들을 많이 저지른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은 열 살쯤부터 자신들은 피 끓는 남성성의 아이콘이기 때문에법은 자기들보다 못한 남성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여기며 자랐다. 그러니 많은 선수들이 성폭행, 성희롱, 스토킹 등 성범죄를저지르는 것이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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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10-14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캐서린 매키넌 넘나 대단하신 분. 한국 출판계는 얼른 매키넌의 책들을 새로 번역해서 내놓아라!!

읽느라 고생하셨고 다 읽으신 점에 대해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

단발머리 2024-10-14 08:47   좋아요 0 | URL
네네, 맞아요~~ 한국 출판계는 매키넌님 책 번역에 박차를 가하라!! 한강 특수 땜에 많이 바쁜 출판사들은 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생 많았습니다, 진짜 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박수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버섯책 읽으러 갑니다. 바빠요, 바빠!

햇살과함께 2024-10-14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한강 작가님 챙기시기로 바쁜 와중에서도 ㅎㅎ

단발머리 2024-10-14 09:33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 글게요. 작가님과 동문수학 자랑하느라 목이 타고 막 그랬습니다. 감사해요, 햇살과함께님!

건수하 2024-10-14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완독 축하드려요!!

단발머리 2024-10-14 09:34   좋아요 1 | URL
완독 축하 감사드려요, 건수하님~~ 제가 마사 누스바움을 좋아합니다. 헤헤...

독서괭 2024-10-14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4-10-14 09:34   좋아요 2 | URL
이런 엄지척은 제가 잘 갈무리해서 ㅋㅋㅋㅋㅋ 축하인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