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5년 6월 17일(화) 19:30

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 : 이호찬 (첼로), 송영민 (피아노)

프로그램

  - 포레, 첼로 소나타 1번 D단조 Op.109

  - 포레, 첼로 소나타 2번 G단조 Op.117

  - 풀랑크, 사랑의 길, FP 106

  - 풀랑크, 첼로 소나타,FP 143


* 세줄평

포레는 낭만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첼로 소나타가 말끔히 지워버린다. 그가 과연 20세기 작곡가임을 깨닫게 된다. 소나타 2번의 강렬하면서 고독한 첼로 음향이 뇌리를 울린다. 풀랑크의 첼로 소나타는 역시 풀랑크다운 재치와 현대음악 서법이 결부된 곡이다. 이 곡도 확실히 진지하게 감상할 레퍼토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스라엘과 이란이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수년째 전쟁 중이다. 21세기를 전후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유혈 분쟁의 사유로 종교, 이념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핵심은 국경, 즉 영토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영토로 전쟁을 벌이는가 의아해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이다.

 

세계지도는 단순한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선 한 줄, 아니 점선 한 줄이라도 얻어내기 위한 대가는 녹록치 않다. 특히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미국과 EU, UN은 현 국가 체제 유지를 선호한다. 어지간한 분쟁은 국가 체제 내에서 수용하여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도 변경을 요구하는 집단의 본뜻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분리와 인정은 나라를 나라로 정의해주는 두 가지 요소다. 요컨대 국가를 국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상호 합의 아래 규정된 세계지도상의 장소성인 셈이다. (P.24)

 

구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 과거에는 그루지야라고 불렸는데, 지도를 자세히 보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국경 내에 점선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조지아 영토이지만, 실질적으로 별도의 독자적 국가로 운영되는 이른바 미승인국이다. 소말릴란드, 언뜻 들으면 소말리아와 동일시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무정부체제인 소말리아와 구별되는 과거 영국령에 기반한 비교적 안정된 미승인국이다. 압하지야와 소말릴란드는 국제 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그곳 주민 처지에서는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만스럽기 마련이다. 쿠르디스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무분별한 영토 확장을 도모하여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면, 요즘은 다르다. 이미 비할 수 없이 많이 생겨난 국가들로도 모자라 독립 국가 건설을 모토로 하는 갈등이 여전하다. 민족자결주의에 바탕을 둔 민족국가들은 국경 유지와 영토 보존을 신성시한다. 문제는 단일 민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국가든지 자국 영토 내에 소수의 타 민족, 문화, 종교 집단이 있기 마련이며,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강조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과 불안감, 피해의식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결국 양파 껍질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계속 쪼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법인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 아크웨사스네는 독특한 성격의 지역이다. 이로쿼이 인디언의 자치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곳인 동시에 엄연히 국경선에 따른 관할권의 차이가 중첩된다. 이는 법과 행정 측면에서 바람직한 건 아니다. 관할권의 충돌과 모호함은 자칫 부재 상태를 낳고 이는 악의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지정학적 블랙홀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에 대한 종래의 사고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장소다. 이런 지역의 법적 관할 여부는 논쟁거리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는 밀거래망이 번성한다. (P.116-117)

 

몰타기사단,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은 실체 없는 국가 정체성의 한 사례라고 하겠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특히 후자의 실효성을 단기간 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된 키리바시는 물론 몰디브, 투발루 같은 여러 섬나라는 실제로 국가 소멸의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전자와는 다른 의미에서 국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국토가 없는 국가는 존재하는가? 비록 다른 나라에서 땅을 내주어서 이전하더라도 그것을 별개의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지칭해야 하겠는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해안 저지대의 침수 우려도 높아만 간다. 당장은 일부 섬나라 국가의 사안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조만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키리바시는 세계지도를 재편하는 다음번 주요 물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치적 경계뿐 아니라 물리적 경계라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뿐더러 국가의 탄생이 아닌 소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P.258)

 

오늘날 민족국가 체제는 민족과 국경이 불일치하는 많은 사례와 충돌한다. 민족자결이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면,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민족국가는 산산이 쪼개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갈등을 야기하는 소수 집단을 청소하는 방안도 있다. 신성한 우리 국토 내에서 이질적인 집단을 제거하는 방안, 그것이 곧 인종청소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지도 변경을 수반하는 정치적 변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고착화된 국경선과 변함없는 세계지도는 만족과 불만의 양가성을 지닌다. 압하지야,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은 불만일 테고, 미국을 위시한 체제 안정을 희망하는 나라들과 해당 국가는 비교적 만족스러울 것이다. 민족국가 체제의 강화가 반드시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다만 국가 수립과 지도 변경은 절대불변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차치하더라도 남수단, 동티모르는 독립이 허용되고 이 책에 언급되는 지역은 인정 안 되는 기준은 불분명하다. 어쩌면 일종의 운이 작용하는 것도 있다.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자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경을 유지하는 것과 변경하는 것, 아니면 저자의 제언처럼 현재의 엄격한 국가 주권을 유연화는 방안 등 어느 것이 해법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아래에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세계지도를 만들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악의적인 동기를 가진 주체들이 우리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재의 지도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P.316)


 

지리와 지도를 핵심적 내용으로 다루는 책에서 의외로 방위, 통계, 지명의 오류가 많다. 귀책이 원서이든, 편집이든 사소한 오류가 신뢰성을 떨어뜨려 양서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면 안타깝게 마련이다.

 

· 트빌리시는 주그디디라는 음침한 국경 소도시에서 322킬로미터 서쪽에 위치한 도시다. (P.35)

· 1900년 무렵 경함을 벌이던 5개국 그리고 야심만만한 개인이던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 대륙의 90퍼센트를 식민지화했고, 1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향인 16,100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자기들끼리 분할해 가졌다. (P.61)

· 2015316,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도 지도에서 거의 사라질 뻔했다. 대서양에서 기록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이클론 팸(Pam)이 코네티컷 규모의 면적을 가진 이 작은 군도를 덮친 것이다. (P.270-271)

· 물론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분리론자들이 러시아 동부 지역을 쪼개기 전의 일이다.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시 : 2025년 6월 15일(일) 15:00

장소 :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연주 : 정수인 (창), 정준호 (고수)

프로그램

  - 동초제 흥보가 (놀보 심술 ~ 놀보 제비몰러 나감)


* 세줄평

오랜만에 참석하는 판소리 공연이다. 소리가 전혀 낯설고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오는 점이 의외다. 풍류사랑방도 아담하게 국악 공연하기 적합한 무대다. 성음이 좋고 무대와 자유롭게 소통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발음이 명료하여 가사 전달에 뛰어나다. 개인적 피곤함을 제외하면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클래식음악 공연과 달리 자유로운 객석 환경의 적응은 여전히 만만치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일시 : 2025년 6월 11일(수) 19:30

장소 : 영산아트홀

프로그램 및 연주

  -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56b  (피아노 : 최혜빈, 신민철)

  - R.베넷, 4곡의 소품 모음곡  (피아노 : 서명현, 김성현)

  - G.앤더슨, 카르멘 환상곡  (피아노 : 이수정, 정혜은)

  - 라벨, 라 발스  (피아노 : 한도경, 김보람)

  - 리스트, 노르마의 회상 S.655  (피아노 : 최용석, 이대우)


* 세줄평

2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브람스 곡은 차곡차곡 쌓아올리다 피날레에서 고양감이 대단하다. 라벨의 곡도 특유의 음산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베넷과 앤더슨의 곡은 처음인데 베넷은 좀 더 대중음악적 요소가 짙다. 카르멘 환상곡의 마지막 대목의 휘몰아치는 장면은 기억에 각인될 정도다. 리스트의 곡이 더 자주 연주되길 바란다. 제1 피아노 연주자가 잘 보이는 좌석 위치이어서 연주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젊은 연주자들이 연주를 마친 후 긴장이 풀려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풋풋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한강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분량에, 산문적 글쓰기가 과연 작가 초기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솔직히 좀 읽는 데 지친다. 무엇보다 이십 대 후반의 여성 작가가 문학적 형상화를 더위잡기에는 좀 버거운 주제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과감하게 도전한 작가의 속내가 궁금하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렇게 깊고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밀 각오를 하게 되었을까. 이런 연유로 소설을 읽고 난 지 한참이 지났어도 섣불리 감상평을 끄적이길 주저하였다.

 

화자 인영, 명윤, 의선, 그리고 장.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다. 한결같이 트라우마를 지니며 평범하지 않은 내면세계를 지닌 사람들이다. 인영과 의선, 명윤과 의선, 장의 삶을 각각의 작품으로 구현하였어도 제법 분량이 나올만한 사연을 모두가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이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이 소설은 작가가 아낌없이 재료를 쏟아부은 느낌이 진하게 든다.

 

겉보기에 이 장편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직장에서 알게 된 인영과 의선. 광기에 사로잡힌 의선을 사랑하게 되는 인영의 후배 명윤. 의선의 갑작스러운 행방불명. 의선을 찾으려고 길을 떠나는 인영과 명윤. 탄광촌에서 사진작가 장과의 만남. 의선의 고향을 찾아갔으나 허탕 치고 돌아오는 길에 철도사고를 당하는 인영.

 

독자는 처음에 의선을 기묘하지만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상처받고 가여운 처지에 놓인 어린 사슴. 그녀의 걷잡을 수 없는 광기의 연원은 무엇일까. 세상과 불필요한 관계를 단절한 인영은 무슨 까닭으로 의선을 받아주었는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의선에게 명윤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연유는 무엇이며 그녀의 행방을 찾아 막무가내로 찾아 헤맬 정도로 집착하게 되었는가.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먼 수면 저편의 세상을 보듯이 나는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았다. 혼자임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떤 가까운 관계도 원치 않았다.

의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나는 그녀를 내 방에 받아들였던 것일까. (P.330)

 

작가는 인영과 명윤의 각자 자기 회고를 통해 그네들의 삶이 범상치 않았음을 슬며시 드러낸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버린 언니와 그로 인해 파탄 난 그녀의 가정. 이후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의 삶에 안주하는 인영. 그녀의 삶은 고독하지만 마음 편한 삶이기도 하다. 다만 현관 앞에 출몰하는 버려진 늙은 개는 그것이 바람직한 삶이 아님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명윤은 어떠한가. 연탄 공장 인근의 가난한 서민 가정. 아버지가 사고로 가장 노릇을 못 하게 되어 풍비박산 난 집안. 가난을 못 견뎌 가출한 여동생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명윤. 의선을 찾아 헤매는 명윤의 모습은 여동생을 찾아다니던 모습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윤은 의선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여성 이상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은 사진작가 장이다. 그는 땀에 절고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사진을 찍기 위해 제 발로 탄광촌에 들어왔다. 어렵사리 사진 촬영을 허락받기 위해 광부와 마찬가지로 막장을 드나들다 그는 광부처럼 탄가루에 몸과 정신이 황폐해지고 만다. 사택촌의 화재로 허름한 집과 함께 사진들을 홀라당 태워 먹고 아내마저 떠나버려 점차 인간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그의 모습은 참혹하기조차 하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한 정신 나간 여성의 자취를 쫓아서 가장 어둡고 힘겨우며 삶의 마지막 현장이라 불리는 탄광촌을 정면으로 주시하는가. 요즘은 석탄산업 자체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탄광업이 거의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시대까지만 해도 석탄은 중요한 연료원이었다. 당시는 안전 의식이 지금보다 경시되던 시절이니만치 탄광 사고가 심심찮게 뉴스거리가 되었다. 갱도가 무너져 수십 명의 광부가 갇히고, 며칠 만에 간신히 구조에 성공했으나 이미 여러 명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등등이 반복되는. 이 소설에서도 이 같은 장면이 묘사된다.

 

서서히, 놀랍게도, 명윤은 저 낮고 더러운 건물들과 인적 없는 시가지의 어떤 부분이 기묘하게 의선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진작 망가지고 무너졌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마치 산 채로 버림받은 짐승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이 도시에서, (P.122)

 

작가 한강은 탄광촌의 실상에 대한 고발적 의도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고발보다는 그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을 더 주시한다. 장이 사진을 찍도록 처음 허락한 사람, 탄광 사고에서 장과 함께 견디고 결국 목숨을 구해준 사람, 그가 회상하는 인물이 의선의 아버지였음을 독자는 결국에 깨닫고 만다. 어린 의선 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난 아내를 찾아 헤매며 역시 집을 떠난 남자. 그에게 아내는, 자식은 어떤 의미를 지녔던 걸까.

 

이 소설을 첫 대목부터 마지막 단락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어둡고 답답하며, 때로는 더럽고 냄새나며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자욱하다. 의선이 나신으로 시내를 활보하다가 경찰을 피해 달리는 장면조차도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지 못한다. 압권은 인영과 명윤이 마주하게 되는 겨울 탄광촌의 칠흑 같은 어둠이리라. 가뜩이나 폐광으로 쇠락하고 있는 도시가 술집과 나이트클럽의 장면과 뒤섞여 영락의 현실을 가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생사를 걸고 연골까지 의선의 행적을 좇았으나 끝내 찾지 못한 채 병에 걸린 명윤을 간신히 끌고 돌아오는 대목에서 끝맺음하였으면 어떤가 하는 데 있다. 폐광된 갱도가 갖는 위험성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세상으로부터 고립하려고 하는 인영의 삶이 결코 그러할 수 없음을 나타내려고 했음인지. 자신의 과거와 의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명윤이 현실 세계로 복귀하도록 하는 장치였을까. 어찌 되었든 싱크홀과 열차 사고는 개연성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다.

 

이 모든 어둠을 거치면서도 작가는 끝내 빛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빈집에 놓인 사진 한 장으로 생사불명의 상태였던 의선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그녀의 삶이 어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녀는 연골로 갔다가 도시로 되돌아왔다. 인영과 명윤도 달라질 것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인영 일행을 만나면서 장도 포기했던 사진의 열정이 다시 생겼다고 하니 역시 이후 행로가 궁금하다.

 

......그때부터 이 짐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 컴컴한 암반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다니며 흐느껴 웁니다. 마지막으로 숨이 넘어갈 때쯤 되면 이 짐승의 살과 뼈는 검은 피와 눈물로 다 빠져나가, 들쥐 새끼만하게 쭈그러들어 있다지요. (P.191-192)

 

검은 사슴은 연약한 짐승 사슴과 어울리지 않는 어둠의 이미지가 결합한 동물이다. 그것이 실재이든 상상이든 지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무참히 뺏긴 검은 사슴의 생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비참하며 불쌍한 그것이다. 여기서 검은 사슴은 인물 한두 명을 가리키지 않는다. 의선, 의선의 아버지 임, 의선의 어머니 모두가 검은 사슴이다. 명윤, 명윤의 여동생, 명윤의 가족 모두가 검은 사슴이다. 장과 그의 아내도 검은 사슴이다. 인영 자신도 검은 사슴이다.

 

모두가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품고 고통 속에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며, 끝끝내 삶의 미련 한 자락을 부여잡고 세상의 끈을 놓지 않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명윤은 허탈한 어조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어찌 됐든 살아 있다는 건 좋군요.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그는 이어 물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나 같은 놈도? (P.434)

 

펴낸날이 1998910일이다. 12쇄본이다. 2017년에 새로운 판형으로 다시 나왔다. 20년 만에 작가가 이 작품을 다시 읽을 때 느끼는 감회는 어떠할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