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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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스라엘과 이란이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수년째 전쟁 중이다. 21세기를 전후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유혈 분쟁의 사유로 종교, 이념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핵심은 국경, 즉 영토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영토로 전쟁을 벌이는가 의아해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이다.

 

세계지도는 단순한 그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선 한 줄, 아니 점선 한 줄이라도 얻어내기 위한 대가는 녹록치 않다. 특히 저자가 언급하였듯이 미국과 EU, UN은 현 국가 체제 유지를 선호한다. 어지간한 분쟁은 국가 체제 내에서 수용하여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도 변경을 요구하는 집단의 본뜻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분리와 인정은 나라를 나라로 정의해주는 두 가지 요소다. 요컨대 국가를 국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상호 합의 아래 규정된 세계지도상의 장소성인 셈이다. (P.24)

 

구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 과거에는 그루지야라고 불렸는데, 지도를 자세히 보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국경 내에 점선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조지아 영토이지만, 실질적으로 별도의 독자적 국가로 운영되는 이른바 미승인국이다. 소말릴란드, 언뜻 들으면 소말리아와 동일시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무정부체제인 소말리아와 구별되는 과거 영국령에 기반한 비교적 안정된 미승인국이다. 압하지야와 소말릴란드는 국제 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그곳 주민 처지에서는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만스럽기 마련이다. 쿠르디스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무분별한 영토 확장을 도모하여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면, 요즘은 다르다. 이미 비할 수 없이 많이 생겨난 국가들로도 모자라 독립 국가 건설을 모토로 하는 갈등이 여전하다. 민족자결주의에 바탕을 둔 민족국가들은 국경 유지와 영토 보존을 신성시한다. 문제는 단일 민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국가든지 자국 영토 내에 소수의 타 민족, 문화, 종교 집단이 있기 마련이며,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강조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과 불안감, 피해의식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결국 양파 껍질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계속 쪼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법인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 아크웨사스네는 독특한 성격의 지역이다. 이로쿼이 인디언의 자치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곳인 동시에 엄연히 국경선에 따른 관할권의 차이가 중첩된다. 이는 법과 행정 측면에서 바람직한 건 아니다. 관할권의 충돌과 모호함은 자칫 부재 상태를 낳고 이는 악의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지정학적 블랙홀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에 대한 종래의 사고방식이 통용되지 않는 장소다. 이런 지역의 법적 관할 여부는 논쟁거리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는 밀거래망이 번성한다. (P.116-117)

 

몰타기사단,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은 실체 없는 국가 정체성의 한 사례라고 하겠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특히 후자의 실효성을 단기간 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된 키리바시는 물론 몰디브, 투발루 같은 여러 섬나라는 실제로 국가 소멸의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전자와는 다른 의미에서 국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국토가 없는 국가는 존재하는가? 비록 다른 나라에서 땅을 내주어서 이전하더라도 그것을 별개의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지칭해야 하겠는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해안 저지대의 침수 우려도 높아만 간다. 당장은 일부 섬나라 국가의 사안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조만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키리바시는 세계지도를 재편하는 다음번 주요 물결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정치적 경계뿐 아니라 물리적 경계라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뿐더러 국가의 탄생이 아닌 소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P.258)

 

오늘날 민족국가 체제는 민족과 국경이 불일치하는 많은 사례와 충돌한다. 민족자결이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면,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민족국가는 산산이 쪼개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갈등을 야기하는 소수 집단을 청소하는 방안도 있다. 신성한 우리 국토 내에서 이질적인 집단을 제거하는 방안, 그것이 곧 인종청소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지도 변경을 수반하는 정치적 변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고착화된 국경선과 변함없는 세계지도는 만족과 불만의 양가성을 지닌다. 압하지야, 소말릴란드, 쿠르디스탄은 불만일 테고, 미국을 위시한 체제 안정을 희망하는 나라들과 해당 국가는 비교적 만족스러울 것이다. 민족국가 체제의 강화가 반드시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다만 국가 수립과 지도 변경은 절대불변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차치하더라도 남수단, 동티모르는 독립이 허용되고 이 책에 언급되는 지역은 인정 안 되는 기준은 불분명하다. 어쩌면 일종의 운이 작용하는 것도 있다.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자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경을 유지하는 것과 변경하는 것, 아니면 저자의 제언처럼 현재의 엄격한 국가 주권을 유연화는 방안 등 어느 것이 해법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아래에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세계지도를 만들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악의적인 동기를 가진 주체들이 우리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재의 지도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P.316)


 

지리와 지도를 핵심적 내용으로 다루는 책에서 의외로 방위, 통계, 지명의 오류가 많다. 귀책이 원서이든, 편집이든 사소한 오류가 신뢰성을 떨어뜨려 양서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면 안타깝게 마련이다.

 

· 트빌리시는 주그디디라는 음침한 국경 소도시에서 322킬로미터 서쪽에 위치한 도시다. (P.35)

· 1900년 무렵 경함을 벌이던 5개국 그리고 야심만만한 개인이던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 대륙의 90퍼센트를 식민지화했고, 1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향인 16,100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자기들끼리 분할해 가졌다. (P.61)

· 2015316,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도 지도에서 거의 사라질 뻔했다. 대서양에서 기록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이클론 팸(Pam)이 코네티컷 규모의 면적을 가진 이 작은 군도를 덮친 것이다. (P.270-271)

· 물론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분리론자들이 러시아 동부 지역을 쪼개기 전의 일이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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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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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분량에, 산문적 글쓰기가 과연 작가 초기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솔직히 좀 읽는 데 지친다. 무엇보다 이십 대 후반의 여성 작가가 문학적 형상화를 더위잡기에는 좀 버거운 주제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과감하게 도전한 작가의 속내가 궁금하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렇게 깊고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이밀 각오를 하게 되었을까. 이런 연유로 소설을 읽고 난 지 한참이 지났어도 섣불리 감상평을 끄적이길 주저하였다.

 

화자 인영, 명윤, 의선, 그리고 장.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다. 한결같이 트라우마를 지니며 평범하지 않은 내면세계를 지닌 사람들이다. 인영과 의선, 명윤과 의선, 장의 삶을 각각의 작품으로 구현하였어도 제법 분량이 나올만한 사연을 모두가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이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이 소설은 작가가 아낌없이 재료를 쏟아부은 느낌이 진하게 든다.

 

겉보기에 이 장편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직장에서 알게 된 인영과 의선. 광기에 사로잡힌 의선을 사랑하게 되는 인영의 후배 명윤. 의선의 갑작스러운 행방불명. 의선을 찾으려고 길을 떠나는 인영과 명윤. 탄광촌에서 사진작가 장과의 만남. 의선의 고향을 찾아갔으나 허탕 치고 돌아오는 길에 철도사고를 당하는 인영.

 

독자는 처음에 의선을 기묘하지만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상처받고 가여운 처지에 놓인 어린 사슴. 그녀의 걷잡을 수 없는 광기의 연원은 무엇일까. 세상과 불필요한 관계를 단절한 인영은 무슨 까닭으로 의선을 받아주었는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의선에게 명윤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연유는 무엇이며 그녀의 행방을 찾아 막무가내로 찾아 헤맬 정도로 집착하게 되었는가.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먼 수면 저편의 세상을 보듯이 나는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았다. 혼자임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떤 가까운 관계도 원치 않았다.

의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나는 그녀를 내 방에 받아들였던 것일까. (P.330)

 

작가는 인영과 명윤의 각자 자기 회고를 통해 그네들의 삶이 범상치 않았음을 슬며시 드러낸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버린 언니와 그로 인해 파탄 난 그녀의 가정. 이후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의 삶에 안주하는 인영. 그녀의 삶은 고독하지만 마음 편한 삶이기도 하다. 다만 현관 앞에 출몰하는 버려진 늙은 개는 그것이 바람직한 삶이 아님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명윤은 어떠한가. 연탄 공장 인근의 가난한 서민 가정. 아버지가 사고로 가장 노릇을 못 하게 되어 풍비박산 난 집안. 가난을 못 견뎌 가출한 여동생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명윤. 의선을 찾아 헤매는 명윤의 모습은 여동생을 찾아다니던 모습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윤은 의선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여성 이상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은 사진작가 장이다. 그는 땀에 절고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사진을 찍기 위해 제 발로 탄광촌에 들어왔다. 어렵사리 사진 촬영을 허락받기 위해 광부와 마찬가지로 막장을 드나들다 그는 광부처럼 탄가루에 몸과 정신이 황폐해지고 만다. 사택촌의 화재로 허름한 집과 함께 사진들을 홀라당 태워 먹고 아내마저 떠나버려 점차 인간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그의 모습은 참혹하기조차 하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한 정신 나간 여성의 자취를 쫓아서 가장 어둡고 힘겨우며 삶의 마지막 현장이라 불리는 탄광촌을 정면으로 주시하는가. 요즘은 석탄산업 자체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탄광업이 거의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시대까지만 해도 석탄은 중요한 연료원이었다. 당시는 안전 의식이 지금보다 경시되던 시절이니만치 탄광 사고가 심심찮게 뉴스거리가 되었다. 갱도가 무너져 수십 명의 광부가 갇히고, 며칠 만에 간신히 구조에 성공했으나 이미 여러 명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등등이 반복되는. 이 소설에서도 이 같은 장면이 묘사된다.

 

서서히, 놀랍게도, 명윤은 저 낮고 더러운 건물들과 인적 없는 시가지의 어떤 부분이 기묘하게 의선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진작 망가지고 무너졌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마치 산 채로 버림받은 짐승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이 도시에서, (P.122)

 

작가 한강은 탄광촌의 실상에 대한 고발적 의도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고발보다는 그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을 더 주시한다. 장이 사진을 찍도록 처음 허락한 사람, 탄광 사고에서 장과 함께 견디고 결국 목숨을 구해준 사람, 그가 회상하는 인물이 의선의 아버지였음을 독자는 결국에 깨닫고 만다. 어린 의선 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난 아내를 찾아 헤매며 역시 집을 떠난 남자. 그에게 아내는, 자식은 어떤 의미를 지녔던 걸까.

 

이 소설을 첫 대목부터 마지막 단락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어둡고 답답하며, 때로는 더럽고 냄새나며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자욱하다. 의선이 나신으로 시내를 활보하다가 경찰을 피해 달리는 장면조차도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지 못한다. 압권은 인영과 명윤이 마주하게 되는 겨울 탄광촌의 칠흑 같은 어둠이리라. 가뜩이나 폐광으로 쇠락하고 있는 도시가 술집과 나이트클럽의 장면과 뒤섞여 영락의 현실을 가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생사를 걸고 연골까지 의선의 행적을 좇았으나 끝내 찾지 못한 채 병에 걸린 명윤을 간신히 끌고 돌아오는 대목에서 끝맺음하였으면 어떤가 하는 데 있다. 폐광된 갱도가 갖는 위험성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세상으로부터 고립하려고 하는 인영의 삶이 결코 그러할 수 없음을 나타내려고 했음인지. 자신의 과거와 의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명윤이 현실 세계로 복귀하도록 하는 장치였을까. 어찌 되었든 싱크홀과 열차 사고는 개연성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다.

 

이 모든 어둠을 거치면서도 작가는 끝내 빛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빈집에 놓인 사진 한 장으로 생사불명의 상태였던 의선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그녀의 삶이 어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녀는 연골로 갔다가 도시로 되돌아왔다. 인영과 명윤도 달라질 것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인영 일행을 만나면서 장도 포기했던 사진의 열정이 다시 생겼다고 하니 역시 이후 행로가 궁금하다.

 

......그때부터 이 짐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 컴컴한 암반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다니며 흐느껴 웁니다. 마지막으로 숨이 넘어갈 때쯤 되면 이 짐승의 살과 뼈는 검은 피와 눈물로 다 빠져나가, 들쥐 새끼만하게 쭈그러들어 있다지요. (P.191-192)

 

검은 사슴은 연약한 짐승 사슴과 어울리지 않는 어둠의 이미지가 결합한 동물이다. 그것이 실재이든 상상이든 지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무참히 뺏긴 검은 사슴의 생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비참하며 불쌍한 그것이다. 여기서 검은 사슴은 인물 한두 명을 가리키지 않는다. 의선, 의선의 아버지 임, 의선의 어머니 모두가 검은 사슴이다. 명윤, 명윤의 여동생, 명윤의 가족 모두가 검은 사슴이다. 장과 그의 아내도 검은 사슴이다. 인영 자신도 검은 사슴이다.

 

모두가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품고 고통 속에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며, 끝끝내 삶의 미련 한 자락을 부여잡고 세상의 끈을 놓지 않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명윤은 허탈한 어조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어찌 됐든 살아 있다는 건 좋군요.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그는 이어 물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나 같은 놈도? (P.434)

 

펴낸날이 1998910일이다. 12쇄본이다. 2017년에 새로운 판형으로 다시 나왔다. 20년 만에 작가가 이 작품을 다시 읽을 때 느끼는 감회는 어떠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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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 - 20세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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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권을 읽고 나서 연달아 2권도 읽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어쨌든 2권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소개를 해주는 게 마땅한 도리다. 도서 정보가 기록된 뒷면을 보니 2011년 발행이며 23쇄라고 한다. 1차 개정판인 셈이다. 2012년과 2019년에 개정이 더 이루어졌다. 초판과 2판은 모두 노무현 정부의 출범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개정판은 최현대가 추가되어 문재인 정부 내용도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은 1권과 대동소이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1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본문 학습 외에 저도 저요’, ‘나도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코너가 있다. 또한 특별 꼭지가 있는데, ‘여성과 역사10, ‘역사의 현장9, ‘청소년의 삶과 꿈’ 9편이다. 1권과의 차이가 보이는 대목은 문화재를 찾아서역사의 현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권이 고대에서 조선 후기까지를 다룬 데 반해, 2권은 조선말 대원군의 등장과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시작한다. 대체로 우리 민족의 수난기와 암흑기, 투쟁의 시기를 관통한다. 기억에 남는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일본이 궁지에 몰리자 왕실은 친러 정권을 수립하여 일본에 맞서려고 하였다.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친청, 친러 정책을 유연하게 구사하였던 명성 황후가 이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었다. (P.48)

 

이 책에서는 명성 황후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동명의 뮤지컬도 나올 정도로 여장부, 여성 영웅으로 승격화하는 경향의 연장선상이겠지만 과연 명성 황후의 역할이 조선의 멸망에서 무관할까 의구심이 크다.

 

정변이 성공한 것은 그들이 내세운 반공, 친미, 경제 재건이 군부의 뜻을 잘 반영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민주당의 잘못된 정치 운영과 경제 정책의 실패에 따른 민중들의 실망도 한몫하였다. (P.213)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평가도 의외로 긍정적이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실망이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하지 않게 했다는 의미인지? 소수이지만 강력한 무력으로 정권을 쟁취할 때 힘없는 민초의 저항은 한계가 있음은 훗날 서울의 봄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윤봉길 의거를 다룰 때 던진 게 도시락 폭탄이 아님은 역사적으로 명확히 밝혀졌는데, 이 책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윤봉길 의사가 투척한 것은 물통 폭탄이다. 좀 더 정확한 검수가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의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는 생존권 투쟁이자 사회주의 운동의 맹아라는 점도 과거에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던 부분인데 확실히 요즘 한국사는 노동운동과 노조 활동에 대한 비중이 훨씬 늘어났다. 이 책에서도 전태일 분신 사건의 의미를 크게 두고 있다. 이번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를 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와 이 점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일각에서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운 게 이승만이라는 주장이다. 남북 분단이 80년에 이른 현재의 대한민국을 놓고 보면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1945년에서 1948년 이르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도 단독 정부 수립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남북한이 각자의 정부를 세운다면 훗날 이들이 쉽게 통일에 합의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그런 면에서 정치꾼이 되길 거부하고 끝내 민족의 독립지사로 남은 백범 김구를 떠올린다.

 

한민당과 이승만 쪽에서는 김구가 북한에 이용만 당하였다고 비판하면서 단독 정부 수립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민족의 분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김구의 신념은 투철하였고, 그 신념은 민족의 장래에 대한 긴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구는 분단이 더 큰 민족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P.175)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진전되는 남북 관계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전망으로 부풀어 있다. 이후 전개되는 정치 상황과 남북 관계의 단절을 당시에 어찌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최신 개정판에서 이후 대목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고대사도 마찬가지지만 근현대사는 독자 본인과 부모, 친척 등과도 얽혀있는 사안일 수도 있어 민감한 반응과 편향적 시각을 갖기 쉬운 영역이다. 그만큼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평가, 그리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볼 것인가는 참으로 예민한 문제다. 역사서를 쓰는 그 누구도 편향성에서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이 나올 당시의 국정교과서든 아니면 요즘의 검정교과서든 어느 한 책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시각의 역사서를 경험해야 역사에 대한 종합적, 다면적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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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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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제7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응시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독서를 진행하였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가볍게 훑고 지나갈 목적으로 집어 들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사 초심자를 위한 한 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요약 가능하다. 일단은 조선 왕조만을 다룬다. 1대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순종까지 모두 대상으로 삼는다. 개론과 부록을 포함하여 500면 정도의 책으로 다루어야 하므로 임금 개인별 분량은 많지 않다. 개중에 업적이 풍부한 임금은 좀 더 내용이 많고, 단명한 임금은 소략하다.

 

구성은 군주마다 동일하다. 한 면으로 해당 군주에 대한 개략적 소개를 한다. 이어서 세자 시절부터 재위 기간 굵직굵직한 시기를 구분하여 개인사와 업적, 일화 등을 풀어놓는다. 마지막에는 마인드맵을 통해 시각적으로 깔끔하게 압축 정리한다. 본문은 독자가 흥미를 갖도록 해야 하므로 되도록 쉽고 간략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무엇보다 조선의 임금을 모두 호랑이에 비유하여 각자 특징적인 약칭을 부여하는 게 이채로우며 재밌다. , 태종은 진짜 호랑이, 세종은 위대한 호랑이, 연산군은 미친 호랑이, 선조는 도망간 호랑이, 영조는 최장수 호랑이 등으로 표현한다. 작명하기도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뽑아냈다.

 

한국사를 교과서 중심으로 배우다 보면 아무래도 공적이고 업적 위주로만 알게 되는 이 책에서는 사적 생활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요즘에야 여러 방송매체에서 다루는 교양 역사 채널이 대개 이런 경향을 따르지만 이 책이 나온 시점에서는 신선한 접근이었으리라.

 

세종은 한마디로 신하들 입장에서는 악덕 사장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당시에도 노조란 게 있었다면, 신하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단식투쟁을 했을지도 몰라요. (P.113)

 

세종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임금이지만, 그만큼 신하들의 역량을 최대한도로 부려 먹은 임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문종 부인의 동성애 사건은 흥미 차원에서 넣었다고 보면 된다. 단종 임금이 왕위를 빼앗길 수밖에 없던 배경에 대한 분석은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숙종이나 순조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단종과는 다른 처지였다.

 

10년 동안 조선 왕실에서는 소헌왕후, 세종, 문종의 줄초상이 이어진 것이지요. 단종의 입장에선 자신을 지켜주던 큰 기둥 3개가 한꺼번에 쓰러진 거예요. (P.155)

 

조광조와 중종의 어긋난 관계, 최악의 군주인 선조와 인조, 그리고 정조의 성과를 단번에 물거품으로 만든 정순왕후를 향한 매서운 비판은 단순히 사실 나열과 흥미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님을 웅변한다. 물론 일부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혜경궁 홍씨와 특히 고종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폐비 윤씨에 대한 성종의 증오는 워낙 역사소설과 사극에서 익숙해서인지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까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간과하였던 역사적 사실도 짚고 있는데, 측우기의 발명자가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라는 것이다. 임금으로서는 짧게 재위했지만, 세자 시절만 30년을 보내고 세종 후년에는 실질적으로 정사를 이끌었던 비운의 임금.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우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종이 사실은 허수아비 같은 허약하지 않고 무인 기질이 있는 인물인 점도 의외다. 한편 경복궁 이름의 뜻풀이에서 오류가 있는 점은 옥에 티라고 하겠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사극 속 문종은 언제나 병약하고 아들 걱정만 하는 아들 바보로 그려지고 있어요. 조선의 왕들 중 행적이 가장 과소평가 된 임금이 바로 문종이라고 봅니다. (P.144)

 

조선 왕조는 이씨의 국가였다. 성군이든 폭군이든 아니면 혼군이든 명군이든 모든 임금은 어쨌든 이씨 성을 가진 인물들이다. 백성은 오로지 성군이 나오기만을 하늘에 기댈 뿐이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이론상으로는 특정 최고 지도자의 자질을 운에 맡길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고 지도자의 자질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시점의 저자 심정이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을 당시 내 심정도 마찬가지다.

 

그건 바로 우리 모두가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세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연산군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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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 색으로 물들인 조선 풍경 예술가들이 사는 마을 17
김소연 지음, 오세정 / 다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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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에 대해 더 읽고 싶어 이 책을 골랐다. 역시 아동 대상 도서인데, 앞서 읽은 책보다는 대상 연령층이 더 낮다. 글쓴이의 문장도 아이들에게 말하듯 더 쉬운 어휘와 구어체를 사용한다. 내용도 조금 더 친절하고 차근차근 설명함으로써 학습 의도가 강하다. 무엇보다 각 장마다 미술놀이를 배치하여 흥미와 동시에 혜원의 그림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한다.

 

부제 색으로 물들인 조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중의적 문구로 다가오는데, 한자 색()의 원뜻에 부합하는 색깔의 의미가 우선적이겠지만, 색정과 정욕의 숨은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야 혜원 그림 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으므로.

 

이 책은 당연히 혜원의 풍속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그의 특색과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당대의 다른 화가는 물론 서양 화가의 작품과 작법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고흐와 호퍼, 보티첼리, 프라고나르 등에 대한 비교 해설은 혜원의 그림을 조선이라는 시대적, 지역적 한계를 넘어 거시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상적인 대목은 혜원이 밤의 풍경을 그렸다는 점을 강조한 데 있다. 이것을 고흐와 호퍼의 밤 그림과 비교한다.

 

신윤복은 조선 시대 그 어떤 화가도 그릴 생각조차 못한 밤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렸어. 그리고 아마도 그 솔직함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거겠지. (P.24)

 

이 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을 미술놀이가 차지한다. 화첩에 그림 그리기, 풍속화 재해석하기, 빛 그림 그리기, 슬라임 만들기, 종이 인형 옷 만들기, 주스로 표현하기, 사계절 카드 만들기, 풍속화 패러디, 동물 도장 만들기가 제법 큰 비중으로 수록되어 있다. 혜원의 풍속화를 통한 어린이 미술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 자취가 역력하다.

 

혜원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성인 독자에게는 무리겠지만, 눈높이를 낮춰서 어린 독자들에게 혜원의 그림을 소개하고 재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꽤 괜찮은 책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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