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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평점 :
데뷔작부터 주요 장편을 세 권 읽었음에도 토로하자면 정유정은 내 취향에 썩 부합하는 작가는 아니다. 극단적인 설정과 처절한 전개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작가의 역량을 십분 인정함에도 자연스러운 맛이 부족하다. 그래서일까. 최신작인 <28>을 굳이 펼쳐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면 작가의 성향이 한층 심화된 듯싶다. 이 책을 서가에서 무심히 꺼내든 것은 항상 흥미를 잃지 않는 여행기라는 점과 더구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기여한 바가 크다.
작가만의 미덕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술술 잘 읽히는 문장. 허세와 허식을 사양하는 솔직하며 털털한 문체. 예상치 못하게 불현 듯 끼어드는 해학 코드 등. 게다가 에세이라는 특성상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인공적 부자연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다. 여행기를 읽는 주된 목적이 독자가 겪어보지 못한 낯선 풍토와 풍물에 대한 대리체험이라고 할 때, 이 책은 그야말로 제격이다. 독자 자신이 트레킹을 하는 듯할 정도로 실감나는 상황 묘사와 심리 기술이 일자별로 매우 친절하고 세세하다. 도대체 이 작가는 트레킹을 하러 히말라야에 간 건지 아니면 여행기를 쓰기 위해 트레킹이라는 활동에 도전한 건지 때로는 의아스러울 정도다.
누구나 길을 떠나면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된다는 떠도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행(관광이 아닌)은 자신을 내면과 회상에 연결시키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일상에서 탈피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평생 해외라고는 나가본 적 없는 작가가 불현 듯 무모하게도 히말라야에 덤벼든 것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던 삶의 에너지가 순간 고갈되었음을 깨달아서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슬럼프와는 증세 자체가 달랐다. 암반에 갇힌 불길이 아니라 불씨까지 타버린 잿더미였다.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P.16)
작가가 안나푸르나에서 기대한 것은 대다수의 여행자들과 동일하다. 재충전. 또 다시 세상과 한판 치열한 싸움을 벌여볼 수 있도록 잃어버린 싸움꾼의 투지를 되살리는 것. 여정 도중 회상하는 그녀의 과거사는 자신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함과 동시에 작가가 아닌 인간 정유정의 진솔한 면모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에세이를 통해 독자는 작가에게 인간미와 친근미를 갖게 된다. 더구나 여정 초반에 그녀가 내내 힘들어하는 음식과 용변 문제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유람 코스가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은 절대 극한의 한계상황에 다다르는 자신을 요구한다. 가벼운 고산병을 넘어 피로와 악천후에 따른 죽음마저도 감내할 정도로. 국외자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 길을 굳이 왜 가려고 하는가?
“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두려웠다. 어둠 속에 고꾸라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봐.” (P.172)
“이 힘든 길을 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으면, 머릿속 목소리는 입 닥치라고 대꾸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며 가지 않으면 끝낼 길이 없다고.” (P.174)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쉽사리 변화시킬 수 없다. 정유정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싸움꾼이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왜냐면 그게 정유정임을 구성하는 본질적 속성이므로. 작가는 항상 가드를 올리고 주먹을 내뻗을 자세를 갖춘 채 링 위에 서 있다.
“안나푸르나에 오면서, 링이 아닌 놀이터에 나를 부려놓으리라. 결심했다. 죽기 살기로 몰아붙이는 습성을 버리고 가겠노라, 마음먹었다......본래 목적은 잊어버린 채 안나푸르나를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P.133)
그래서 그녀는 환상종주를 마치고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 보내는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무위와 방기는 정유정에 어울리지 않는 용어다.
“휴식이 주는 건 편안함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해괴한 죄책감이었다. 이렇게 놀아도 되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짜 괜찮은 건가?” (P.286)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따분함이 아니라 목적 없는 시간이었다.” (P.287)
그래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수첩의 두서없는 메모를 끄적거리기 시작한 게 이 여행기로 이어졌다고 하니 인간적으로는 딱하지만 독자 입장으로서는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나저나 작가는 히말라야에서 해답을 얻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환상종주를 마친 후 다시 훌쩍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고 하니 말이다. 확실한 건 그녀도 여행의 묘미를 알아차렸다는 것, 그리고 자칫 역마살에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단계에 입문했다는 점이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P.288)
작가답게 여러 작가와 작품들을 곳곳에 소개하거나 인용하고 있다. 특히 ‘나의 신’으로 일컫는 스티븐 킹과 소설가 조용호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끝대목에 언급된 <럼두들 등반기>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정유정의 환상방황을 가능케 하였던 후배 작가 김혜나의 글을. 정유정의 눈에 프리즘 되지 않은 온전히 스스로의 글을 통해서.
십여 년 전에 지인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보려던 꿈을 품은 적이 있다. 지금도 서가 한켠에는 네팔 가이드북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하고 있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꿈으로만 그치고 말았지만. 일상에 이리저리 치이는 범인으로서는 작가의 용기가 무진장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