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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동양 신화, 그중에서도 중국 신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머릿속에 중국 신화란, 삼황오제 정도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며, 그것도 신화인지 역사인지 모호하게 드리워져 있어 도대체 중국에 일반적 의미에서의 신화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 1>을 보면, ‘개벽편’에서 ‘하은편’까지 시대순으로 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 마치 역사책을 읽는 마냥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나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중국 신화를 이전에는 왜 미처 몰랐을까 할 정도로. 그것은 전적으로 중국 신화학계의 대부라고 할 저자 위앤커의 공로가 크다. 단편적이고 산재되어 있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 흥미롭고 다채로운 신화 세계를 재창조하였다.
중국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세계 창조와 인류 창조를 다룬 ‘개벽편’과 황제(黃帝)가 최고신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염제(炎帝)와 그 후손들과 벌이는 신들의 전쟁을 포함하는 ‘황염편’이라고 하겠다. 중국 신화 역시 혼돈에서 출발함은 다른 지역의 신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고(盤古)는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데, 그 사체에서 지구의 갖가지 현상과 사물, 그리고 인류가 비롯해서다. 여와(女媧)도 인류 창조라는 면에서 반고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도적 기능을 맡는데, 양자의 공존은 상이한 지역적 배경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신은 아득히 높은 구름 위에 존재하면서 인간들이 바치는 희생물과 제사를 받았지만, 인류는 고통과 재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신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인간들은 그저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P.91)
저자는 유독 전욱(顓頊)을 부정적으로 기술하는데, 인간의 관점에서 신과 인간의 세계를 단절시킨 천신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비록 지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소통과 교류가 가능했던 두 세계가 특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머나먼 세계가 되었고, 인간은 신들의 전횡에 고통을 겪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사회주의적 인식에서 비롯한 짙은 감정이 투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전욱에게 도전했던 공공(共工)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황제는 중국인들의 자신들의 시조로 여기는 천신이다. 요즘은 역사 공정의 차원에서 황제와 염제를 동급으로 취급한다고 하는데, 염제와 공공, 치우(蚩尤)는 모두 동이족 계열로 인정받고 있어서다. 황제는 염제와 대결에서 승리하여 중앙 천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에 반발한 공공, 치우, 형천(刑天) 등의 도전도 모두 물리쳐 명실상부한 제일인자가 되었다. 특히나 치우와의 전쟁이 매우 격렬하여 황제가 상당히 고전 끝에 간신히 제압했음을 신화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형천의 처절한 도전이 심금을 울린다. 저자 역시 같은 의미에서 그를 예찬한다.
그[형천]는 결코 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음모의 칼날에 우연히 머리가 잘려진 것뿐이었다. 그는 절대로 지지 않았다. [......] 좌절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영웅이 끊임없이 분투하는 정신에 대해 쓴 그 내용이 과찬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P.212)
불운한 영웅의 사례는 천신 예(羿)에서 극대화된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와도 같은 존재다. 세상을 불태우는 열 개의 태양 중 하나만을 남기고 쏘아 떨어뜨렸으며, 인간들을 괴롭히는 여러 괴물을 차례차례 제거하여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크나큰 공덕을 쌓았다. 그럼에도 천제의 미움을 받아 하늘에 오르지 못하였고, 아내의 배신으로 불사의 몸도 얻지 못하게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참으로 비극적 영웅의 전형이다.
예에 못지않은 슬픈 천신이 곤(鯀)이다. 그는 하 왕조의 개창자이자 유명한 우(禹) 임금의 아버지다. 중국 정사와 고전은 곤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흉(四凶)이라고 대표적인 악인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신화는 그것이 위정자의 조작임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그는 중국의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 신들의 관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 배신자였듯이, 곤도 인간 세상을 대홍수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식양(息壤)이라는 신들의 물건을 훔쳤다가 처참한 말로에 이르게 되었다. 정사 기록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끈질긴 구비문학 전통이 오늘날 곤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한 셈이다.
역사 시대 이전의 많은 영웅들, 즉 황제와 싸운 치우라든지 천제의 흙을 훔쳐다가 지상의 홍수를 막은 곤, 그리고 공공이나 예 같은 인물들은 위대한 천신들이었거나 혹은 한 부족의 훌륭한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후대의 문헌 속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포악하고 못된 인물들로만 그려져 있다. 이것은 통치의 정통성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고쳤을 가능성이 크다. (P.535)
<작품 해설>에서도 이 점이 명확히 언급되어 있다. 역사 기록과 마찬가지로 신화 역시 지배세력의 입맛에 맞게 변형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이다. 그래야만 기록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까.
중국 신화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기존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중국 역사의 숨겨진 단면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데 이로써 중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태평성대의 대명사였던 요순(堯舜)시대의 요 임금 시절을 보면 과연 태평성대가 맞는 것일지 의심스럽다. 임금은 인덕이 훌륭할지라도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는 괴변과 곧이어 대홍수에 이르기까지 민초들의 삶은 매우 퍽퍽하였으리라. 게다가 양위와 관련하여 부자간 대립이 있었고 마침내 아들 단주(丹朱)의 반란과 죽음이라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자신의 뛰어난 궁술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후예(后羿)는 자만심이 영웅을 몰락시키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어디 신화에서뿐이랴, 오늘날도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니 통탄할 뿐이다. 역사상 폭군의 대명사는 걸주(桀紂)인데, 그들 역시 개인적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고 하니 뛰어난 인물은 더더욱 근신해야 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 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 구정(九鼎)의 실질적 의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후대에 단순히 제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표피 상으로 이해하는 역사상의 사례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다.
그 존경심이라는 것이 어찌 그 몇 근의 구리가 상징하는 <왕권>이라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랴. 정을 얻었다는 것과 잃었다는 신화 전설은 그야말로 몇몇 독재자들의 시끌벅적한 헛된 짓거리에 불과할 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우임금과는 근본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일 뿐이다. (P.384)
저자의 견해 중에서 유독 동의하기 힘든 대목이 하나 있는데, 요와 순의 관계 설정이다. 순 임금이 요 임금의 사위라는 데는 역사와 신화가 모두 일치한다. 기록에 따르면 요는 제곡(帝嚳)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제곡과 제준(帝俊), 순을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순임금이 요임금의 사위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제곡은 또 요임금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순과 제곡은 본래 동일인인데 이렇게 한 인물이 갑자기 아버지도 되고 또 사위가 되기도 하니,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역사로 변화할 때 생겨난 복잡함이 바로 이와 같았다. (P.235)
저자가 제시하는 몇몇 근거만을 가지고 이렇게 삼자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소위 족보가 꼬이는 문제를 해명하기 어렵다고 볼 때 개인적으로 과잉해석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신화와 전설에서는 이야기의 분화 또는 복사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참고로 걸과 주의 이야기를 동일한 전설로 평가하는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 있는 견해다.
중국 신화의 이해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영웅을 역사상의 실존 인물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구 신화와 마찬가지로 신화와 역사는 혼재될 수밖에 없지만 중국 신화는 그 정도가 유달리 심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자는 사서의 기록을 사실(史實)로써 맹신해서도 곤란하고,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를 중시하거나 외면하는 일방적 접근도 곤란하다. 작품 해설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중국 신화의 신화성과 역사성의 중심을 찾는 노력과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중국 신화와 전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추천할 만하다. 다만 무엇보다도 시대적 한계도 명확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저가 출간된 해가 1984년이고, 한국어 번역본은 1999년에 발간되었다. 당시로써는 최신의 중국 신화 관련 문헌이었을 테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원서는 거의 40년 전의 것이다. 그동안 이루어진 중국 신화 연구의 많은 발견과 발전이 이 책에는 구조적으로 반영될 수 없는 요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에 연연하지 않고 중국 신화의 더욱 새로운 지평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