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마음은 태양
E. R. 브레이스 웨이트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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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내 독서 위시리스트에 무슨 까닭으로 포함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 흑인 교사가 무너져가는 교육 현장을 힘겹게 재건한다는 내용이 관심을 끌었을 수도 있겠다.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도 학교 현장을 내게 남의 일은 아니므로.

 

영화를 통해 이 작품을 접한 사람(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은 이 작품의 한쪽 측면만 보았을 뿐이다. 교사 브레이스웨이트가 변두리에 위치한 열악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브레이스웨이트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힘겨운 여정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얼마나 고통을 겪고 괴로워하는지를 생생하게 보게 된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하던 것이 피부색의 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가능하고 불인정 받는 당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장면들을. 이 작품이 출간된 게 1959년인데,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도 차별이 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짙게 반영되어 있어 주인공이자 화자는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영국 식민지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활약했으며, 전후에는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그가 고등학교 교사가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기회였다. 당초 그의 계획대로 전문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면 전혀 꿈도 꾸지 않았으리라. 이 모든 게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하였다.

 

나는 흑인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면접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내 굳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리고 인종이나 종교와는 무관하게 내 자격에 걸맞는 직업을 선택해서 일할 자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그럴듯한 이야기도 이제는 헛소리 같이 여겨졌다. (P.63)

 

피부색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그가 일자리를 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하숙집을 찾고, 신문의 흥미로운 취재 대상이 되며, 레스토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끝내는 그가 일생의 반려자를 구하는 데도 중대한 장애 요인이 된다. 오늘날에도 간간이 유럽과 미국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뉴스로 부각될 정도이니 당대로서는 차별이 보편화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역지사지라고, 나 자신이 부당한 차별 대상이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 모멸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 등등. 끝내는 증오만이 남았을 것이다. 여기 화자도 그러하다. 다만 그는 더 현명하여 이를 자기 극복의 계기로 삼았고, 학생들에게 차별이 옳지 않음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실즈의 모친상에 조문을 꺼리는 학생들의 태도에 좌절을 느끼는 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수 개월간의 교육 덕택에 아이들이 편견을 벗어던졌을 거로 생각했던 자신의 믿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므로.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가르침도, 토론도, 모범도, 인내도, 걱정조차도, 그 모두가 거짓이었다. 이 아이들도 결국, 버스나 기차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오로지 피부색으로 판단할 뿐이었다. 결코 그 피부 속의 사람자체를 보지는 못했다. (P.267)

 

오늘날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도 받아야 하고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화자가 아무런 경력과 자격 없이 덜컥 교사, 그것도 우리로 치면 고3 교사가 된 걸 보면 당대에는 요구 조건이 느슨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초보 교사로서 그가 맞닥뜨린 교실 현장은 녹록지 않다. 제아무리 교육관과 교육철학이 훌륭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초보 교사 릭도 실패를 거듭하다 어렵사리 길을 찾았으니 학생들을 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대우하는 방식에서였다. 학생이든, 자식이든 아이로 취급하는 순간 수직구조가 생성되고 지시-복종 관행이 발생하기 쉽다.

 

나는 이제부터 여러분을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 남자와 여자로 대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끼리도 서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이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지금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품행을 요구받게 마련이므로...” (P.113)

 

상대가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예우한다면, 내가 상대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교사를 무시하고 대들며 규칙을 위반하던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한 건 자신이 선생님으로부터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존중받는 자각에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그렇게 하는데 학생끼리 종전의 막무가내처럼 행동하기는 더 어렵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진정과 신뢰가 바탕에 놓일 때 가능하다. 릭이 안정된 틀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전에 때때로 직면할 때가 있지만 현명하게 대처한 덕분에 그와 학생들 사이에 믿음과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

 

선생님이 저희한테 말씀하시는 방식이 저희는 무척이나 좋았어요. 그러니까 애들한테 말하듯 하는 게 아니라, 꼭 어른을 대하듯 하시는 거 있잖아요. 선생님은 저희한테 정말 잘해주셨어요.” (P.299)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릭이 학생들의 존중과 신뢰를 얻음에 따라서 학생 개개인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커진다. 파멜라와 패트릭은 개인적 사안으로 교사가 자신의 사적 영역에 개입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른다. 학교와 교실에서라면 교사의 조언과 지도는 당연하겠지만, 가정사에도 관여하는 게 바람직한지 그리고 가능한지 화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생각할 여지가 많다. 학교는 교사가, 가정은 부모가 담당하는 게 원론적으로 마땅하지만, 그렇게 공과 사가 물 베듯 명쾌하게 갈라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학생의 사생활은 외면하는 게 타당한지 화자는 당혹해한다.

 

작가는 인종차별의 사안을 한 축으로, 교육 현장의 사안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작품을 전개한다. 양자는 나란히 또는 교차로 전개되면서 갈등과 해소를 거듭한다. 독자는 끝내 알아차린다, 양자의 본질이 결국은 동일함을. 즉 중요한 건 사람자체라는 점을. 갈등은 실즈의 모친상을 계기로 해소되고 화자와 학생들은 극적인 화합을 이룬다. 주인공 개인으로서는 질리언과의 결혼 약속으로 나타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결혼 이후의 삶도 결코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릭은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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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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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이네 가족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내 가족이라면 참 답답하고 속 터져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의외로 세상엔 수림이네 가족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며, 쥐뿔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자신들이 우월하고 잘난 줄 아는 족속들 말이다. 철저하게 위선의 허울을 뒤집어쓴.

 

수림이가 자기 식구들을 1군이라고 부르며, 비교적 객관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보일 수 있는 연유는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따로 살았던 데 있다. 그들의 속물적 근성에 물들지 않고 거북 마을 사람들의 서민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습관을 체득한 것이다. 가족의 눈에 수림이는 이방인이며 자신들의 고귀한 혈통에 어울리지 않는 덜떨어진 아이일 뿐이다. 반면 수림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가족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외할아버지의 아파트를 무단 점거해서 쫓아내다시피 하고, 조금의 생활 능력도 없어 늙은 할아버지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면서도 당연하게 여기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므로.

 

이 사람들은 내 친척이다, 친척이다. 사고를 친 건 먼 친척 짓이다. 친척 짓이다.’

1군들에게 열받을 때면 되뇌는 말로 마음을 다스렸다. 뭐가 부끄러운지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부모라면 더욱. (P.27)

 

수림이가 그네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은 단 하나,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못나고 마음에 안 들고 한심해도, 부모가 자신을 낳아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림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 목숨 걸고 낳아 준 은혜”(P.114)로 인해 수림이는 가족과 끊어질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에 자신과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1군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말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작가는 원더 그랜디움과 거북마을이라는 대비되는 동네 풍경과, 수림이네 가족과 순례 빌라 주민들이라는 대조적인 삶의 방식을 부정과 긍정의 이분법적 형태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몰락한 수림이네 가족이 그렇게 괄시하던 거북 마을의 순례 빌라로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는 모습을 묘사한다.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이지만 때로는 하도 한심하여 동정심마저 품은 듯한 작가의 붓끝에는 억누를 수 없는 조소와 분개가 서려 있기도 하다. 길동 씨의 함정에 빠져 순례 빌라를 물려받을 헛된 기대감에 순례 씨와 수림이에게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수림이 부모의 태도 변화가 압권이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P.53)

 

높은 학력을 지니고 잘난 체하며, 외할아버지와 고모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빛 좋은 개살구처럼 살아가는 수림이 부모가 참다운 의미에서 어른이 아님을 순례 씨와 수림이는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그런 면에서 1군들보다 수림이가 더욱더 어른임을 알 수 있다. 비록 학교 공부는 언니에 비해 못하지만 생각과 인격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성숙한. 수림이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긍정한다.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라 소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서므로 빌라 사람들이 수림이를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수림이가 건물주의 최측근이라는 프리미엄도 다소간 작용하겠지만.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P.226)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1군들이 온실 밖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순례 씨의 조치는 먼저 수림이 엄마에게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여전히 속물근성이 남아있지만 마을 곳곳을 쑤시고 다닌다거나, 길동 씨의 속임수가 드러났음에도 김밥집 일을 그만두지 않으며, 무조건적 가족 봉사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에서 변화의 싹을 확인할 수 있다.

 

신선했다. 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 집의 낯선 불화가. 십육 년을 헤매다 찾은 줄자 끄트머리처럼,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 (P.243)

 

수림이로서는 참신하면서도 반가운 조짐이다. 1군들이 조만간 위선의 탈을 벗고 진실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림이와 1군들, 그리고 순례 주택의 주민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드러내 놓지 않는다. 수림이 아빠와 언니는 계속 허공에 붕 떠 있을 것인지. 엄마의 변화는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1군들과 순례 주택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 무엇보다 수림이가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작가는 일부러 열린 결말을 의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림이, 1군들과 순례 주택 사람들의 앞날과 관계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전적으로 그네들의 선택과 행동에 달린 사안이다. 우리들 독자로서는 그저 지켜보며 수림이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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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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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 책이 만화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둘째 아이 학교의 권장도서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표제를 보고는 아, 청년층의 고민과 현실비판이 담긴 책이라고만 생각하였다.

 

누구나 꿈과 직업이 일치하는 미래를 이상으로 삼기 마련이지만, 그런 행복한 삶을 갖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꿈을 가슴속 깊이 집어넣고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숨겨둔 꿈을 꺼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도, 어떻게든 중간에 꿈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삶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백수는 차츰 집안에 은거하게 된다. 친구도 친척도 대하기에는 위축감이 들고 그들의 관심과 뒷담화가 부담스럽다. 마냥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되기에 십상이다. 어른이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가 여타 동년배와 차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작가는 20대의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를 좇아 청소일에 뛰어든다. 작가라고 결정에 이르기까지 고민이 없었겠는가. 사회적 시선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그래서 전 이김보단 견딤을 택했어요. /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선택을. / 하지만 이기질 못한다면 /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가지고 견뎌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P.124)

 

작가는 솔직하다. 생활을 위해 청소 일을 시작하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에도 자존감과 외부의 시선에 초연하지 못하다. 어쩌면 작가가 중간에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청소 일의 가치와 실용성은 결국 자기 위안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청소 일을 쓱쓱 하다 불현듯 흑흑흑 흐느끼는 장면(P.157)은 가장 압축적이고 상징적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진부하면서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작가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어쨌든 작가는 현실에 주저앉지 않았다. 청소 일을 하는 틈틈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양립하려 노력하였다. 청소 일이 자아실현의 욕구마저 충족시키지는 못하므로.

 

청소 일이 하기 싫었을 때 / 4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닌가 고민이 들 때 / 남들과 다른 게 무서울 때 /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 내가 필요해서 시작했고 좋은 것들도 결국 얻었다. / 확실한 건 4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P.65)

 

작가가 부끄러움과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청소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만화책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가장 서글프고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삶의 모습이. 경제적 자립이 없으면 인격으로서 자존감 수립은 불가능하다.

 

청소일을 하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드러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자신의 체험을 비로소 작품 제재로 그려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을 때 작가는 비로소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 결론적으로 청소 일도 하고 / 그림도 그리는, /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죠. (P.32)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구구절절하게 글로 썼다면 이토록 호응을 얻지 못하였으리라. 많은 청년층이 공유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만화라는 부담스럽지 않고 상대적으로 친숙한 형식을 통해 풀어놓는다. 여기에 청소일을 하는 20대 여성 작가라는 독특함도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으리라.

 

작가가 언제까지 청소일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말마따나 이 책 한 권의 출간으로 인생이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성공을 거두고 안정적 기반을 다질 수 있을 때까진 여전히 작가는 청소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작가의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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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는 자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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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견상 루시오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 희곡은 의외로 셰익스피어의 보기 드문 문제극으로 분류된다. 이 극의 어떠한 요소가 문제극으로 자리 잡는데 기여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표제의 번역명이 분분하다. 이 책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는 자에는 자로로 번역하지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말을 말로 되는 되로’, ‘법에는 법으로’, ‘푼수대로 받는 보응등으로 번역하는 사례도 제법 있다. 속뜻은 동일하다. 주는 대로 받는 법이니 타인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다.

 

(공작) 백성들에게 방종의 여지를 줬던 것은 / 내 잘못이었소. 방종을 가만두고 보면서 / 그걸 이유로 그들을 때려잡고 / 처벌하는 것은 폭정일 것이오. / 그동안 악행을 묵과하고 / 처벌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조장한 것이나 /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9, 13)

 

이 작품에서 경고의 대상은 앤젤로 경이다. 공작 대리로서 느슨해진 시민 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시범사례로 연인에게 혼전임신을 시킨 클로디오에게 사형판결을 내린다. 오랜 기간 사문화된 법령을 부활하여 적용한 그의 행위에 대해 지나치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앤젤로의 공명정대하고 이성과 절제의 평소 인품 자체는 모두가 인정한다. 이사벨라의 탄원에도 그는 단호하다. 이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작은 파문으로 종결되었을 테고, 수사로 변장하여 지켜보던 공작도 그의 처분에 만족감을 품었으리라.

 

(앤젤로) 내가 그런 죄를 범했다면 당신도 / 그 죄를 경감해 줄 수 없을 것이오. / 하지만 말해 주시오. 그에게 벌을 내린 내가 / 같은 죄를 범할 경우에는, / 나에게 이 재판의 예를 적용하여 / 사형선고를 내리겠다고... (P.43, 21)

 

(공작) 그분의 삶이 / 그 엄한 조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좋겠지요. /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면 앤젤로 경은 / 자기 자신에게 선고를 내린 셈이랍니다. (P.132, 32)

 

클로디오의 죄목이 성도덕 위반이라면, 앤젤로가 더더욱 자신의 성도덕 준수에 엄격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상식은 말한다.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면 자신도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앤젤로는 이사벨라에게 어두운 제안을 한다. 오빠를 구하려면 자신에게 몸을 바치라는. 나중에 스스로도 자책하는 이 하나의 언사로 그는 통치자로서 자신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이후 그의 행동은 부정한 욕망 달성을 위한 후속 조치일 따름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흔히 자행하는 권력형 부정의 모습이다.

 

앤젤로의 몰락을 초래한 이사벨라와 마리아나의 베드 트릭과 클로디오의 목 바꿔치기는 수사로 변장한 공작이 기획한 작전이다. 공작은 앤젤로에게 권력을 맡겨서 자신의 부재 동안 그가 나라의 기강을 확립해 주길 기대하였다. 자비롭고 현명한 공작이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을 테니. 한편 공작은 앤젤로를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한시적이지만 권력을 손아귀에 움켜쥔 앤젤로가 권력의 맛에 취해 변하지 않을까 유심히 지켜본다. 일찍이 앤젤로가 사생활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알면서도.

 

(공작) 하지만 나는 보고 싶소. /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하고 /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 어떻게 변하는지를... (P.30, 13)

 

이 작품의 전반적 사건 전개와 진행은 결국 공작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그는 교묘한 책략으로 앤젤로의 위선과 부정을 폭로하고, 이사벨라와 클로디오를 구하려고 한다. 앤젤로를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그는 유능한 수하이므로 목숨을 살려주고 마리아나와 짝지어준다면 세인에게 칭송받고 당사자의 절대적 충성을 끌어낼 수 있으므로. 이를 위해 공작은 극 중에서 종횡무진 활약한다. 수사로 변장하여 이사벨라에게 조언하며, 공개 재판에서는 수사와 공작의 이중 배역을 연기한다.

 

공작은 이 연극의 주연배우이자 총연출가이므로 독자에게 신과 같은공작의 능력과 자비로움, 그리고 앤젤로의 부정한 권력과 대비되는 정의로운 권력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보여 준다. 이 작품이 문제극인 까닭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군주를 미화하고 있음에도 독자는 금방 알아차린다. 군주와 권력의 자의성과 부정 취약성을.

 

(이사벨라) , 선한 공작님께서 앤젤로 경에게 속았어! / 그분이 돌아오셔서 그분께 말씀드릴 수 있다면, / 앤젤로의 행동을 폭로하겠어요. /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P.109, 31)

 

(공작) 자신도 저지를 수 있는 죄를 두고 / 남을 잔인하게 정죄하는 자에게 치욕이 있으리라! /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앤젤로, / 세상의 죄를 제거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 스스로 죄의 씨앗을 가꾸다니! / , 겉으로는 천사처럼 보이지만 / 그 뱃속에 뭘 숨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P.133, 32)

 

공작의 이중성은 루시오와 이사벨라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루시오를 향한 공작의 반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는 수사로 변한 공작 앞에서 공작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과 거짓 사실을 유포하며, 나중에는 공작 앞에서 수사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는다. 앤젤로는 물론 옥중의 사형수마저 풀어주는 마당에 공작은 루시오를 용서하겠다고 하면서도 일구이언으로 그에게 창녀와의 결혼을 끝까지 명령한다.

 

(공작) 나에 대한 비방은 용서하겠다. / 네놈에 대한 다른 처벌로 면제해 주겠다.

[......]

(공작) 군주를 비방한 대가로 당연한 벌이다. (P.217, 51)

 

앤젤로의 타락은 그가 이사벨라에게 흑심을 품어서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수세에 몰린 처녀의 정조를 유린하고자 하는. 이사벨라는 수녀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다가 오빠를 구하기 위해 부랴부랴 수녀원에서 나왔다. 사랑과 결혼의 세속적 욕망보다는 신앙에 대한 간구의 정도가 크다고 봐야 한다. 오빠의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니 그녀는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다.

 

(공작) 아름다운 그대 때문에 이러는 것이니 / 손을 이리 주고 내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 그럼 클로디오는 이제 내 처남이오. (P.215-216, 51)

 

(공작) 이사벨라, 그대가 / 귀를 기울여 기꺼이 들어준다면, / 그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 하나를 제안하겠소. / 나의 것은 당신 것, 당신 것은 / 내 것이 될 것이오. (P.218, 51)

 

공작은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과의 결혼을 요청하는. 절대권력을 틀어쥐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신과 같은 인물인 공작, 조금 전 자신의 수치와 오빠의 사형을 직전에서 구해준 은인인 공작. 공작의 요청은 이사벨라의 의사와 관계없이 거부할 수 없는 지상과제의 명령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렇다면 앤젤로와 공작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는 이사벨라의 대답을 굳이 기술하지 않았다. 결론이 너무나 자명하므로.

 

마지막으로 <작품 해설>에서 공작 평가 부분을 인용한다.

 

공작은 사실 이 작품에서 마음대로 자신을 은폐하고 가장하며, 또한 적절한 시기가 오면 본모습을 드러내 전지전능한 힘을 과시하는 신과 같은인물이다. 오직 그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상황을 독점한다. 공작은 때가 되면 모든 사건의 종결자로서 사면을 통해 권력의 자비로운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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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셰익스피어 전집 34
윌리엄 셰익스피어, 신정옥 / 전예원 / 201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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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소위 문제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으로 작품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희곡은 희극에도 비극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랑에 배반당하는 트로일러스, 아킬레스에게 살해당하는 헥토르를 보면 비극적 색채가 강하지만, 트로일러스는 침몰하지 않으며 헥토르의 죽음은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작품은 참다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개를 보이고 있는 동시에 뚜렷한 주인공이 부재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표제 그대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를 주인공으로 보기에는 작품 내 분량과 비중 면에서 취약하다. 헥토르, 율리시즈, 아킬레스, 아가멤논 등 전쟁의 주역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앙상블 희곡에 가깝다.

 

(율리시즈) 대 아킬레스 장군입니다, 장군이야말로 / 우리 군의 원동력이요, 귀감이라고 받들어 모시고 있으나, / 그 허황된 명성에 지나치게 도취하여 / 자만심으로, 군막 안에서 우리의 작전을 / 비웃고 있습니다. (P.46, 13)

 

이 작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전쟁과 사랑이다. 독자가 흔히 기대하는 트로이 전쟁의 신화화된 전사와 영웅의 이미지는 여기에 없다. 아킬레스는 오만함의 극치이며, 아이잭스, 즉 아이아스는 단순하고 멍청하다. 헥토르는 전쟁에 탐탁해하지 않지만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싸움에 나선다. 작가는 아킬레스의 영웅성을 약화시키려고 유명한 서사시의 내용을 수정한다. 아킬레스는 헥토르와 정당한 대결을 벌여 쓰러뜨리지 않는다. 무장을 벗고 쉬고 있는 헥토르를 무참히 살해한다.

 

(헥토르) 나는 무장을 풀고 있다, 그런데도 네 멋대로 하느냐, 그리스 놈아.

(아킬레스) 내리쳐라, 이 사람들아, 내리쳐. 내가 찾던 그놈이다. / (헥토르를 살해한다) / , 다음엔 일리움 성, 네가 쓰러질 차례다. 트로이여, 망해라. / 여기 너의 심장이, 너의 근육이, 너의 뼈가 누워 있다. (P.213-214, 59)

 

광대 서사이테스는 그의 특권을 활용하여 등장인물을 마음껏 희롱하고 조롱한다. 광대의 재담 속엔 진실이 숨어 있는 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이다. 그의 주된 목소리를 귀기울여 보면 전쟁에 대한 강력한 환멸과 비난, 냉소를 알아차릴 수 있다. 여자 하나 때문에 발발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전쟁.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도, 위용을 자랑하는 영웅도 부재하고, 음모와 비열함, 어리석음이 주도하는 전쟁은 누구도 찬성하지 않으리라. 이렇듯이 반전 메시지로 해석하는 게 충분히 타당한 작품이다.

 

(서사이테스) (방백) 온통 속임수, 사기, 협잡투성이다. 모든 문제가 화냥녀과 오쟁이꾼에서 일어난 일이다-다툰다고 파당을 짓고, 피를 흘리며 죽기 살기를 마다하지 않고 아주 알맞은 명분이군. , 그런 명분에 농가진(膿痂疹)이나 걸려라, 전쟁과 색욕으로 모두가 작살나는 거다! (P.82, 23)

 

연인의 만남과 밀당, 그리고 약속에 이르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도 유쾌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은 현실과 상충하여 금방 깨어지기 일쑤다. 크레시다의 마음은 얼마나 절실하고 자신만만했던가.

 

(크레시다) 하늘이 두 조각나도, 가지 않겠어요. 숙부님. / 전 육친의 정 같은 건 없어요. / 제겐 친척이니, 애정이니, 혈족이니, 영혼도, 사랑하는 / 트로일러스님 만큼 소중한 건 없어요. , 신성한 신들이시여. / 제가 트로일러스님을 떠난다면, 크레시다의 이름을 모든 부정한 것의 / 끝장으로 삼아주십시오! (P.143, 42)

 

연인의 변심은 누구도 원치 않지만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법이다. 트로일러스는 크레시다의 배신에 치를 떨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으리라. 트로이에서 그리스로 신원이 이관된 마당에 적국의 왕자를 계속 사랑한다는 건 더 이상 현명한 행동은 아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이 그녀의 변심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다만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예상보다 빨랐던 점이 그녀에 대한 한가닥 아쉬움이라고 할까. 트로일러스가 준 정표를 새 애인을 유혹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도 부정적 평가를 더한다.

 

(율리시즈) 아니, 못써요, 저런 여잔! / 눈으로도 말을 하고, 뺨도 입술도 그렇고, / 아니, 발마저도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음탕한 기질이 / 그 여자의 사지 몸통에 곳곳에 배여 있어요. / 저렇게 어중간한 여잔 입심 좋고, / 상대방보다 먼저 자기가 꼬리를 치고 / 호색적인 자에게는 음탕한 생각에 / 가슴속을 열어 보이고 달려드니 / 기회만 있으면 몸을 내놓고 / 기꺼이 노리갯감이 되는 음탕한 계집들이요. (P.158-159, 45)

 

이러한 점 때문에 크레시다는 극중에서 매춘부 또는 화냥년 취급을 받는다. 율리시즈는 대놓고 크레시다를 폄하하는데, 이전까지 그녀에 대한 묘사나 대화에서 일체의 언질도 없는 마당에 갑작스럽게 박한 평가는 편견일지 예지일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두 연인을 연결시켜 준 판다러스는 무슨 죄인가? 양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였던 정사가 졸지에 어그러지고, 끝내는 뚜쟁이 취급마저 당한 그의 회한은 처절한 울림을 남겨준다. 이래서 중매는 함부로 서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랄까?

 

(판다러스) 유곽의 문간을 지키는 뚜쟁이 형제자매들, 지금부터 두 달만 기다려라, 내 유언장을 써줄 것이니.

지금 만들어줄 수도 있지만, 이런 골칫거리가 있으니, 윈체스터의 매독에 걸린 창녀들이 왁왁 대면 말이지. 그때까지는 나도 땀을 빼며 매독치료나 하면서 쉬어야겠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나의 병이나 유산으로 주리다. (P.219, 511)

 

이 작품을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4대 비극을 포함한 걸작을 연달아 집필한다. 이 시기에 그가 집중적으로 묻고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인간성의 본원적 모습이다. 인간의 내면은 획일적이지 않으며, 고귀함과 저열함, 순수함과 더러움, 사랑과 증오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결과에 무관하게 의도의 선함만을 중시할 수 없으며, 의도는 외면하고 결과가 인정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작가는 아킬레스를 낮추고 헥토르를 띄우며, 크레시다를 본래부터 화냥끼가 있는 여자로 격하시키는 듯하지만 그것이 결코 그들의 참모습이 아님을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복잡다단한 존재이며, 인간사는 정해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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