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비룡소 클래식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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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추억의 모험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읽음에 그런 생생한 감정을 갖지 못하니 한편 아쉽다. 나이의 다소, 축약본과 완역본의 차이 등이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반면 완역본이 주는 풍요로운 내용의 향유, 줄거리만 쫓아가느라 놓쳤던 대목과 장면의 재발견 등은 장점에 해당한다.

 

<배의 주방장>이 원래 제목이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존 실버라는 인물의 비중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확실히 전반부를 짐 호킨스가 단독으로 끌고 간다면, 후반부는 호킨스와 실버가 공동 주연이라 하겠다. 특히 강렬한 개성의 표출이란 면에서는 실버를 당할 인물이 없다.

 

실버는 해적치고는 독특한 유형이다. 해적이 어떤 사람들인지 겪어봐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호킨스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실버를 살펴봤음에도 그에게서 전혀 해적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물며 지주와 의사 같은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오직 선장만이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데, 딱히 개인적 차원의 의심이 아니라 선장이라는 직업적 속성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나는 선장, 검둥개, 장님 퓨를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해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해적이란 내 생각에 따르자면 이런 깨끗하고 유쾌한 술집 주인과는 아주 다른 인간이었다. (P.103, )

 

, 지주님, 전체적으로 나는 지주님이 찾아낸 사람들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만, 존 실버만큼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해 두고 싶군요.” 의사가 말했다.

저 사람은 완벽하게 믿을 만하오.” 지주가 말했다. (P.113)

 

일행이 폭동의 음모를 간파하고 무사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개입 덕분이었다. 그를 나타내는 표현을 들자면, 음흉, 교묘, 영리, 그리고 잔인이라고 하겠다. 대개의 악역이 무모하고 성급한 데 비해 실버는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알면서 자신을 위장하는 데 능숙하다. 교묘한 언변으로 무지한 해적들의 충동을 억누르면서도 필요하면 냉정하고 잔인한 면모를 서슴없이 보여 준다. 해적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면 이 소설은 금방 끝이 나고야 말았으리라.

 

실버와 대비되는 인물은 선장이다. 선장은 선원들은 물론 처음부터 지주와 짐의 호의도 얻지 못하였다. 깐깐하고 고지식함에서 비롯한 오해와, 무엇보다 그들의 조심성 없음을 나무라고 특별 취급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반감일 것이다.

 

내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가는데, 선장이 의사에게 아주 큰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배에서는 누구라고 특별히 예뻐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지주와 생각이 똑같아 선장을 무척 미워했다. (P.124)

 

선장으로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승객들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기분전환 뱃놀이가 아니며, “죽느냐 사느냐의 아슬아슬한 모험”(P.117)임을 깨닫지 못하므로. 부정적 인상을 받은 선장의 진가는 예방 조치와 통나무집에서 포탄의 위협에 깃발을 내리길 거부하는 단호함에서 드러난다. 실버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실버를 공박하며 모욕적 언사를 퍼부을 정도다. 그는 세련되고 사교적인 인물이 아니지만 깊은 책임감을 지닌 옹골차며 강인한 인물이다.

 

내 깃발을 내리라고요!”

선장이 소리를 지르더니 덧붙였다.

안 됩니다. 나는 못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강인하고, 뱃사람답고, 선한 감정이었을 뿐 아니라, 적에게 우리가 그들의 포격을 우습게 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전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227)

 

짐 호킨스는 소설의 공동 주인공인 동시에 사태 해결의 열쇠를 푸는 역할이다. 작품의 커다란 굴곡점에는 항상 그가 개입한다. 보물섬 지도를 품에 넣고, 실버 일당의 음모를 엿들었으며, 벤 건을 만나고 닻줄을 끊은 히스파뇰라 호를 숨겨두는 등 작중 유일한 소년인 그가 없었다면 소설은 쓰이지 못하거나 해적 일당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가능하다. 보물섬에서 짐은 언제나 단독 행동을 감행한다. 이것이 가져온 성공적 결과는 소설이기에 가능하다고 봐야겠다. 게다가 항상 우연의 행운이 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덕택도 무시할 수 없다. 사려 깊고 심사숙고하지 못함은 그의 소년으로서의 한계인 동시에 소설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겠다. 그럼에도 결과가 항상 만사를 면죄해주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어리석은 짓으로, 앞서 내 멋대로 보트를 탔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짓이었다. 요새 안에는 성한 사람이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 역시 결국은 우리 모두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P.271)

 

배를 탄 많은 인물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무인도에 버려지는데, 악역 중에서 유일하게 실버만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다. 해적의 우두머리이자 최고의 악당인 그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은 데는 그에 대한 작가의 편애가 있어서다. 엄청난 악당이자 소름 끼치는 사기꾼이고, 무자비한 해적이자 잔인한 살인자이고 간교한 배반자. 상황을 직시하는 명확한 판단력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단력, 무엇보다 짐에 대한 일말의 호의가 그를 살린 동시에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를 미워할 수는 있되 차마 싫어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보물은 자석처럼 사람들의 탐욕과 허용을 끌어당긴다. 위험할 줄 알면서 목숨을 감수하면서도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이 작품에서도 보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 보물을 발견하면 모두가 행복할까? 그렇지 않음을 소설의 결말은 또한 우리에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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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비룡소 클래식 3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박광규 옮김 / 비룡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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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천사와 악마 그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선인은 천사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고, 악인은 악마에 더 가까울 뿐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천적 본성과 후천적 학습과 사회의 규율에 따라 악을 억누르고 선을 표방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의 모습이다. 권선징악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구호다. 우리는 악을 혐오하고 악인을 미워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발생하는 악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은 우리에게서 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증명할 뿐이다.

 

지킬 박사의 비극은 그가 제2의 파우스트 박사가 되려고 한데 있다. 절대 지식을 추구하고 선악의 극한을 탐험하는 위험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잃을 가능성이 커짐을 뜻한다. 절제되지 않는 쾌락이 탐닉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듯이 제어되지 않는 악은 타락의 덫에서 놓여나오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심신이 쇠잔해질 때까지 그리하여 인간성이 상실될 때까지 말이다. 그 끝에서 하이드 씨가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하이드 씨를 접할 때 보이는 공통적 반응은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현상을 목도함에 따른 것이다. 순수 악 또는 절대 악의 구현, 즉 악마를.

 

뭔가 불쾌하고 싫거든요. 그렇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은 평생 처음이었지만, 왜 싫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는,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P.20)

 

이 소설의 전반부가 변호사 어터슨의 시각에서 사건을 조망하는 반면, 후반부는 래니언 박사의 진술과 헨리 지킬의 참회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여 추한 모습을 하나의 실체로 구현하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이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자신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하이드에게 지배당하였다.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한발 두발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그는 사악한 탐욕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였다.

 

죄를 범하는 것은 결국 하이드였으니까 그건 하이드인 거라고 생각했지. ‘지킬은 잘못이 없다고. 다시 자기로 깨어나 보면, 선량한 본질은 상실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니 지킬 박사는 기회만 있으면 하이드가 저지른 죄를 서둘러 지워 버리고자 애쓰기도 했지. 이렇게 하는 동안 양심은 차츰 마비되어 갔지. (P.132-133)

 

지킬 박사의 참회는 결국 궤변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별개의 인물이므로 하이드가 누린 쾌락은 물론 그가 저지른 온갖 악행은 지킬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육체에 두 인간이 공존할 수 없음을 그는 알지 못하였다. 하나의 생명체라고 인정하는 즉시 하이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생명체의 본성이므로. 하이드는 지킬을 제거하고 완전한 하이드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 나는 라고 하고 있네. ‘라고는 부를 수가 없어. 이 지옥의 아들에게는 인간다운 데가 조금도 없었네. 마음속에 공포와 증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 (P.147)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라고 부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인정한다. 최초에 그의 것이자 동시에 자신의 것인 추한 얼굴에 기쁨을 느꼈던 그가 이것을 부인하고 만다. 영혼의 공존이 영혼의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는 반쪽 영혼의 소멸로 귀결된다. 남은 반쪽에 대해 지킬 박사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지킬 자신이 아닌 남인 하이드 씨이므로. 지킬은 이제 죽었다고 말하며.

 

나는 상관없네. 지금 나는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펜을 놓고 이 참회록을 봉하고 불행한 헨리 지킬의 생애를 마치고자 하네. (P.153)

 

여기서 반문한다. 이 소설에서 하이드 씨는 옴짝달싹 못 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말지만, 만약 그가 세상 속으로 활개 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그가 남긴 온갖 흔적은 정말 지킬 박사와는 무관한 것인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그는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은가. 나는 그럴 줄 몰랐어요, 애초에 의도는 순수하고 좋았어요. 그것과 나는 상관없어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면 그걸로 끝인지. 오늘날 과학연구의 순수성을 주창하는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그러하듯이.

 

부디 내게 주어진 어두운 길을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게나. 나는 지금 비할 데 없는 천벌과 위험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네. 세상에 다시없을 죄인임과 동시에 더할 수 없는 고뇌를 짊어진 인간이지. 이토록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고뇌와 두려움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네. (P.71)

 

이 글만 읽으면 우리는 글쓴이의 고뇌와 연약함에 동정을 금할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허덕이는 가련한 인간의 한계. 거짓 필적으로 하이드의 존재를 숨긴 인물은 누구인가.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하이드를 지켜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지킬 박사는 위태로운 동거의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죄악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락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결코 그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이 소설을 인간에 내재한 선과 악의 모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생생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자체로서도 빼어난 성취이지만, 작가는 제어되지 못한 지식과 욕망의 위험성을 현대판 파우스트 박사를 소환하여 다시금 일깨우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래니언 박사에게 제안하는 하이드는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닮은꼴이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식과 명예를 얻을 새로운 길을 지금 당장 이 방에서 눈앞에 열어 드리겠습니다. 악마도 놀라 당황할 정도의 기적으로 당신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드리지요. (P.118)

 

완전하고 더없이 순수하다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그것이 반드시 올바르고 좋은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 속에 내재한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본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인간적인 이유는 불완전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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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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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속편이다. 전자가 도시와 공장으로 영역이 국한되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스케일이 크게 확장되었다. 위로는 우주공간, 아래로는 땅속 깊이로. 우주에서는 왕꿈틀이라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고, 땅속에서는 마이너스 랜드를 방문한다. 이 모든 여행의 운송 수단은 바로 유리 엘리베이터. 말이 엘리베이터지 그야말로 만능이며 우주선보다도 최첨단의 기술을 탑재하고 있으니 우주비행사들이 입을 딱 벌릴 만하다.

 

이 안에 있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유리 엘리베이터는 방충격, 방수, 방폭탄, 방탄 그리고 방왕꿈틀이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안심하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P.94)

 

이 작품은 찰리네 일가족이 총출동하는데, 각자 개성이 명확하다.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3인방 노인네. 그중에서 조세핀 할머니와 조지아나 할머니는 완전 투덜이 전문이다. 웡카 씨뿐만 아니라 독자들마저 짜증 나게 할 정도로 매사에 심술궂고 언제나 투덜거리는”(P.225) 두 할머니는 웡카 씨의 독주를 제어하고 소설에 다소나마 현실성을 부여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더욱 실제에 가까우리라.

 

가족이 아닌 남을 믿지 못하고, 고령에 침대 생활만 함에도 살려 달라고 악을 써 대며 발버둥치고”(P.122) 있는 그네들. ‘젊음을 되찾아 주는 위대한 약을 앞에 두고 가족과 체면 상관없이 마구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다투는. 절대 침대를 떠나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이 백악관 초대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적적으로 몸을 일으켜 용수철처럼 달려 나가는 장면! 이 소설에서 아쉬운 건 찰리 부모인 버켓 씨 부부의 지나친 소극성과 미약한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갑자기 뒤에서 휘익담요와 침대보 들치는 소리가 나더니 용수철이 피웅 퉁기는 소리가 들렸다. 세 노인이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린 것이다. 노인들을 웡카 씨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려요! 기다리라구!”

노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넓은 초콜릿 방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P.241)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웡카 씨며, 찰리와 조 할아버지는 충실한 조력자의 구실을 한다. 웡카 씨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지만,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과시한다. 그는 무시무시한 왕꿈틀이의 정체를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왕꿈틀이와 결부시켜 유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데 흥미롭다. 게다가 우주와 정반대의 깊은 지하공간인 마이너스 랜드의 존재도 알고 있으며, 여러 번 방문한 적도 있다. 초콜릿 단계를 뛰어넘은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가 보여주는 놀라운 약효는 기절초풍할 만하며 침대 3인방이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매혹적인 생산물이 아니겠는가! 한 무제와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작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차이점은 정부 고위 관료들의 등장과 그들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다. 우주 호텔과 수송용 캡슐의 유리 엘리베이터 조우, 왕꿈틀이의 공격에 맞닥뜨린 대통령과 부통령 이하 각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조소와 냉소의 완벽한 결합이다. 온통 가짜인 정보국장, 글자 그대로 장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재무보좌관, 쾅쾅 펑펑 부수는 것만 아는 육군참모총장 등은 일차원적인 풍자에 해당하지만, 바보 대통령과 그의 유모 출신 부통령의 역할은 냉소에 가깝다. 실제 권력의 배후세력인 부통령 팁스 양에게서는 최근에 읽은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치인 풍자의 가장 압권은 부통령이 부르는 유모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지 / 아하! 이런 얼간이도 정치가가 될 수는 있을걸요. / 유모, , 유모! 정말 근사한 생각이야! / 하고 아이가 맞장구쳤지

[......]

이제 내 나이 여든아홉이니 /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네 / 전부 내 탓이지 / 저 미련한 돼지 같은 녀석이 /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야 (P.104)

 

웡카 씨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을 기꺼이 찰리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그는 위대한 약인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를 개발하였지만 이것으로 부를 축적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초콜릿과 위 두 가지 약, 그리고 유리 엘리베이터로 뭇사람들의 환상과 욕망을 실현하는 데 만족한다. 그것에 이기적인 욕심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웡카바이트를 둘러싼 침대 3인방 노인의 다툼에 웡카 씨는 뒷짐을 질 뿐이다.

 

왜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어야겠다. 보물이 눈앞에 있으면 누구나 예의를 걷어차는군. 정말 불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야.” (P.166-168)

 

사람들의 욕망과 환상 실현을 위한 웡카 씨의 활동에는 한계가 없다. 이 작품의 전반부가 우주공간, 후반부가 공장 내부와 지하세계라는 수직적 횡단을 오가는 것이 그러하다. 조지아나 할머니의 나이를 마이너스에서 메이플라워호 당시까지 극단적으로 늘려놓는 장면도 그러하다. 미국 대통령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눈가에 반짝 웃음이 스치며 예상 밖의 행동을 거침없이 벌일 수 있는 게 바로 웡카 씨다.

 

우리는 알고 있다. 웡카 씨가 설명이 곤란한 대목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는 걸. 작가가 그려내는 웡카 씨의 종횡무진한 활약에는 꼼꼼한 이성의 힘으로 파헤칠 경우 수많은 빈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작뿐 아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있을 법하지만 너무나 과장하였기에 사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그럼에도 독자는 웡카 씨의 돈키호테 같은 언행에 도리어 호감과 공감을 느끼며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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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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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알드 달의 동화는 상투적이지 않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어리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를 괴롭히는 나쁜 어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신 합당한 복수를 실행한다. 동화 속 주인공은 항상 아름답고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도식의 틀을 그는 거부한다. 이러한 의외성과 (아이의 입장에서) 반격의 쾌감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마틸다>는 나쁜 어른 vs 착한 아이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주인공 마틸다의 부모는 한마디로 최악의 부모다. 그들은 딸에게 매우 차별적이며, 마틸다의 빼어난 능력을 외면한다.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동시에 중고차 사기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도덕적 불감증도 지녔다. 마틸다를 무시하고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마틸다는 복수와 반격을 가한다. 초강력 접착제 소동, 유령 소동, 머리 염색 소동이 그것이며,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지 않았다면 소동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니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마틸다보다 한층 더한다. 부모의 사별 후 보호자가 된 이모에게 갖은 학대와 착취를 겪은 그녀는 불행하게도 마틸다만큼 강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말처럼 어렸을 때 싹이 짓밟혀 버렸기에 성인이 된 후 집을 뛰쳐나와 오두막에 초라하게 머무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던 셈이다.

 

암흑과 악몽의 유년 시절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그들이 맞닥뜨린 거대한 적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이다. 이 동화에서 트런치불 교장은 나쁜 교사로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크고 당당하며 거친 외양과 태도. 비교할 데 없이 막무가내인 언사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 등. 교육자로서 전혀 부적절한 아이들에 대한 험담과 적대감의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표출은 물론이다. 투포환 하듯이 멀리 집어던진 아만다, 머리칼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루퍼트, 두 귀를 잡고 높이 들어 올린 에릭, 한쪽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린 윌프레드. 현실로는 불가능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트런치불 교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다. 악역이지만 워낙에 개성적이며 압도적인 캐릭터이기에 강한 인상을 주는 사례에 해당한다.

 

하니 선생님이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마틸다를 데리고 간 것은 무슨 목적이었을까? 분명 의식적으로는 아니었겠지만, 마틸다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의 초능력의 목도는 혹시 그가 자기의 뒤엉킨 삶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 어른에게 고통받는 어린 시절이라는 유대감에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하니 선생님의 집 상태와 사는 모습을 알게 된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만나서 잃어버린 삶을 되찾을 수 있었고, 마틸다는 반대로 자신을 아껴주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마틸다의 부모는 끝까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기꺼이 마틸다를 던져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간다. 더는 퉁명스러운 부모에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게 된 마틸다가 하니 선생님과 함께 행복하고 정상적인 아이로 살아갔을 거라고 믿는다.

 

현실 세계에서 마틸다의 부모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 같은 어이없고 괴팍스러운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너무나 극단적인 악인의 유형이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로알드 달은 이렇게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형을 표현한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작품해설에서 읽어볼 수 있다.

 

나는 내 인물들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과장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못되고 잔인하다면 아주 못되고 잔인하게 만든다. 만일 못생겼다면 아주아주 못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있고 효과적이다.’

 

동화의 제일 미덕을 무엇으로 볼지는 의향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재미를, 혹자는 교훈성을 중시할 수 있다. 마틸다는 작중에서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작가의 의견과 동일하다. 동화를 쓰는 주체는 어른이지만, 읽는 주체는 결국 아이다. 동화에 지나치게 어른의 사고와 이념을 투영한다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마뜩잖으리라. 로알드 달 이야기의 황당함은 재미를 우선 추구하는 데서 오는 보수적인 어른들의 당혹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마틸다의 독서 목록이다. 조숙하고 영특한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혼자서 도서관을 찾아가서 펠프스 여사의 배려로 여러 책을 읽는다. 어쨌든 청소년들에게 읽혀도 괜찮을 수준의 책으로 봐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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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난드로스 희극
메난드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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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희극에서 시작한 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로마 희극을 거쳐 드디어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희극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메난드로스는 후세 영향력에 비해 고대 그리스 희곡의 4대 작가와는 달리 인지도가 매우 약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의 작품이 대부분 유실되어 온전히 남아 있는 작품이 없다는 데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작품집에 수록한 <심술쟁이> 정도가 그나마 양호한 상태라고 한다. 확실히 수록된 4편의 작품 중 이 희극만이 문학작품으로서 감상할 만한 상태일 뿐 나머지 작품은 단지 작품의 얼개와 단편적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그칠 뿐 감상하기에는 누락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메난드로스의 희극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한데, 옮긴이의 서문에서 그 의의를 인용한다.

 

메난드로스는 로마의 희극작가들인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번역.번안을 통해 르네상스 희극과 영국의 셰익스피어, 프랑스의 몰리에르, 독일의 레싱 같은 작가들의 희극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서양 근대 희극의 아버지가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P.7-8)

 

1. 심술쟁이 [염세가]

 

프롤로그를 등장인물이 아니라 판 신이 담당하는 점이 특이하다. 더구나 무려 세 면에 걸쳐 작품의 배경과 현재까지의 사건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프롤로그만 읽더라도 대충 작품이 어떻게 진행되겠구나를 알 수 있는 정도다. 게다가 판 신은 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소스트라토스에게 마술을 걸어 크네몬의 딸에게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고 친절하게 덧붙인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메난드로스 희극에서 막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코로스는 비중과 역할이 대폭 축소되어 단지 막을 구분하는 기능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락하였음도 눈에 띈다. 선배 작가들의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미를 비교하면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크네몬) 사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모든 것을 / 자기 이익을 위해 계산하는지 보고는 / 비뚤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떠나 / 서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지. / 그게 내 잘못이었어. (P.57, 4)

 

이 희극의 대표 인물인 크네몬은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타이틀도 두 개이리라. 그는 염세가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길 싫어하여 딸 하나와 함께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아간다. 자체가 크게 문제 될 거는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니까. 하지만 크네몬은 성격이 괴팍해서 맞닥뜨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 행패를 부린다. 그래서 심술쟁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요, 무서운 존재로 귀신에 씌웠다고 할 정도다. 크네몬이 극 중에서 고통을 겪고 사람들의 놀림감으로 전락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의붓아들 고르기아스에게 위임한 그가 마지막 막에서 시콘과 게타스에 당하는 것도 여전히 그가 세상과 어울리기를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소스트라토스가 소녀와 결혼에 성공하게 된 까닭, 그리고 그가 고르기아스를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시키도록 애쓴 까닭. 이건 모두 그들의 품성이 크네몬과 달리 뛰어난 까닭이다. 특히나 고르기아스는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존경할 정도로 고귀한 품성을 지니고 있어 그의 성공과 행복에 관객조차도 기뻐할 정도다.

 

2. 중재 판정

 

이 희극은 제1막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5막 끝부분도 없어졌다. 중간중간에도 손상된 대목이 제법 있다. 나머지 작품들도 대체로 공통된 형편이니 그저 메난드로스의 작품을 접해본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부정하게 태어난 아기의 유기. 주운 아기의 패물과 신분의 정체. 이것들은 고대부터 설화와 희곡의 제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내 팜필레의 부정에 실망한 남편 카리시모스는 가출하여 친구 집에서 머무른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편의 반응에 일응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곧이어 속사정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카리시모스의 위선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관건은 카리시모스의 비도덕성이다. 그는 축제 때 한 소녀를 강간해서 아기를 배게 만들었다. 그 비극의 당사자 소녀가 지금의 아내 팜필레라는 것이 작품 구성의 묘미다. 자신의 부정으로 생긴 결과를 아내의 부정으로 오해하고 극렬하게 반응하는 남편의 태도. 모든 오해와 갈등이 해소된 것으로 극은 화기애애하게 막을 내리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결과만 좋으면 중간의 잘못은 용인되는가?

 

3. 사모스의 여인 [결혼계약]

 

이 희극도 제1막과 제2막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

 

데메아스와 니케라토스의 자식인 모스키온과 플랑곤은 혼인 전에 아기를 낳고 만다. 이실직고하면 되었으련만 아무래도 혼전임신이라는 불명예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무리수를 쓰다 보니 사태는 더욱 악화하고 만다. 데메아스는 그 애가 자신의 동거녀 크뤼시스와 모스키온 사이의 아기라고 오해하고 사모스의 여인 크뤼시스를 집에서 내쫓는다.

 

(데메아스) 데메아스, 너는 지금이야말로 / 남자가 되어야 해. 그녀를 향한 그리움 따위는 잊어버리고 / 사랑도 그만둬! 일어난 일은 네 아들을 위해 / 되도록 덮어버리고, 그 사모스 출신 미인은 / 집에서 거꾸로 내던져버려. 지옥으로 말이야. (P.147, 3)

 

우리는 여기서 데메아스의 고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정을 저지른 여인과 사랑하는 아들 둘 다를 모두 버릴 수는 없는 처지에서 그는 결국 아들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아들의 착하고 순수함을 믿으며. 이를 알 리 없는 아들은 아기를 돌보기로 해준 크뤼시스를 계속 감싸고 오해는 증폭된다. 결국 아들에게 폭발하는 데메아스!

 

(데메아스) 내가 왜 고함을 지르느냐고 묻는 게냐? 이 인간쓰레기야! / 말해봐, 네가 정말 책임지겠냐? 그러고도 내 얼굴을 / 똑바로 쳐다보며,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게냐? (P.157, 4)

 

너무나 인간적이다. 메난드로스의 희극을 읽다 보면 그와 셰익스피어 간에 이천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다. 오히려 백여 년 앞선 선배들과 괴리감을 더 느끼게 된다. 이것은 그가 신화나 영웅의 발자취가 아니라 정면에서 사람과 그들이 어우러져 아웅다웅 사는 사회를 다루고 있어서다. 사람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4. 삭발당한 여인

 

옮긴이에 따르면 작품의 절반 정도만 복원되었다고 한다. 아들딸 쌍둥이의 유기, 훗날 자신의 쌍둥이 누이에게 애정을 품게 된 아들, 버려졌던 패물에 의해 밝혀지게 된 신원. 우연과 행운이 결합하고 오해가 더해져 사건이 증폭되는 구조는 여전하다.

 

프롤로그를 오해의 신이 담당하는 점은 <심술쟁이>와 비슷하다. 역시 여기의 신도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여 극의 진행에 역할을 담당한다.

 

(오해) 그는 본성이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 내가 그를 자극했느니라. 드러날 것이 다 드러나고 / 그들이 드디어 가족을 찾게 하려고. / 이를 역겹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 생각을 바꾸도록 하라. (P.184-185, 1)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삭발당한 여인 글뤼케라의 운명이다. 그녀는 폴레몬이라는 군인의 동거녀인데, 쌍둥이 모스키온과의 관계를 오해한 그에게 강제로 삭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오해가 풀리고 그녀는 폴레몬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최선의 결말인지는 의심스럽다. 일단 극 중에서 보이는 폴레몬의 성격과 행동은 주인공의 배우자감으로 썩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글뤼케라가 그의 동거녀가 된 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탓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파타이코스, 모스키온, 폴레몬에게는 분명 행복한 결말이라는 희극 정신에 충실하지만 글뤼케라만 놓고 보면 다른 짐작도 가능하다. 다만 워낙에 소실된 부분이 많은 탓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을 언급한다.

 

메난드로스의 희극과 그의 작품세계는 더 많은 파피루스가 발견되고 계속된 작품 복원이 가능해진 후 진정한 가치를 헤아릴 수 있으리라. 다만 이 책에 수록된 얼마 되지 않는 단편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그와 후대 희극작가들의 친연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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