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불멸의 편지
루드비히 판 베토벤 지음, 김주영 옮김 / 예담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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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거치지 않은 베토벤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다행하게도 베토벤은 난청의 덕분으로 많은 편지와 메모를 남겼으며, 이 책에 수록된 것은 선별한 편지 모음집이다. 누구에게나 있어 개인적인 영역은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베토벤이 후대 독자를 의식하여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만치 여기에는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보다는 꾸미지 않은 인간 베토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 베겔러! 어떠한 일도 어떠한 폭풍우도 그 단단하고 영원한 주춧돌, 우리의 우정, 용서, 쓰러져가는 우정의 부활을 흔들지는 못하리라. , 신이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자네에게 다가가 그 품에 나를 던지며 간청하고 싶다네. (P.31, 베겔러에게)

 

평생의 친구였던 베겔러와 엘레오노레에게 보낸 편지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그의 솔직한 심정과 고민, 부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너무 가깝기에 빚어진 오해와 행동에 대한 사죄와 우정을 향한 열렬한 간구도. 특히 베겔러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서 난청으로 생긴 괴로움과 답답함을 하소연하면서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베겔러의 우정에 필적할 만큼 베토벤이 그에게 충실했는지는 의문스럽다. 베토벤도 계면쩍었던지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P.127)이라고 자세를 낮춘다. 슈테판 브로이닝과 다툰 후 그를 맹비난하는 적나라한 면모도 볼 수 있다.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와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수록하였다. 사업상의 목적을 제외하면 여기에 실린 많은 편지는 여인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 엘레오노레, 요제피네, 테레제, 베티나 브렌타노, 에르되디 백작부인, 불멸의 연인 등. 베토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여러 여인과 교제하고 청혼하였지만 거절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나를 사랑해주시오. 오늘도, 내일도, 그대, 그대, 그대를 향한 눈물겨운 동경, 내 생명, 내 모든 것이여, 안녕. 오 제발 나를 계속 사랑해줘요. 내 진심을 잊지 말아요. (P.62, 불멸의 연인에게)

 

당신의 사랑을 얻게 되는 것, , 내가 얼마나 그것을 열망하는지. 내 능력은 다시 커질 거요. 나는 확신하오. 당신을 얻을 때까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훌륭하게 되어서 보여주겠소. , 당신의 사랑으로 내 행복이 이루어지기를... (P.92, 요제피네에게)

 

편지의 내용을 읽다 보면 베토벤이 너무 치근대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는 상대 여인에게 흠뻑 빠졌다가 얼마 후 다른 여성에게 다시금 애정 고백을 한다. 노총각의 처지로서는 마음이 한시바삐 급하였을 테지만 여성 처지에서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그의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 중에는 단순히 신분상의 차이 외에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부녀를 유혹하는 것처럼 오해받아 사과와 해명에 급급한 편지(P.108, 마리와 비고트에게)도 남긴다.

 

베토벤의 후반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조카에 대한 양육권 분쟁이다. 그가 제수씨와 법정 소송을 불사하면서까지 조카에 집착한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죽은 동생 대신의 후견인에 만족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는 카를을 단순히 조카가 아닌 자신의 아들로 간주하였다. 그는 모자 관계를 끊기 위해서 제수씨에 대한 모욕적인, 즉 그녀가 돈에 몸을 판다고 하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인생 중 가장 커다란 오점이리라. 여기에서도 그런 주장을 담은 편지를 소개한다.

 

내 동생의 죽음으로 나는 여러 가지 아주 힘든 일을 겪고 있어.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는 여자의 손에서 그 죄 없는 어린아이를 지킨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네. (P.177, 리스에게)

 

, 세상에, 정말 끔찍한 일이오. 그런 여자에게 단 한순간일지라도 우리의 둘도 없는 보석을 맡길 수가 있겠소? 어림도 없지요. (P.183, 지아나타지오 델 리오에게)

 

출판사와 악보출판 관련 편지도 여러 통 담고 있는데, 음악가도 생활을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관여할 수밖에 없음과, 그가 제법 능숙하게 이를 조율하고 있음도 보게 된다. <장엄미사> 후원을 받기 위해 괴테와 케루비니에게 각각 바이마르 대공과 프랑스 국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 내용도 확인할 수 있는데, 수년 전 괴테와 원만하지 않게 헤어진 후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는 베토벤이나 이를 외면하고 답장하지 않는 괴테나 다른 의미에서 매우 인간적이다. 베토벤으로서는 오로지 숭고한 예술에만 몰입하기를 원하겠지만, 대지에 두 다리로 서 있는 존재로서 생활의 요소를 외면할 수는 없는 법. 특히 만년에 들어 생활고를 호소하는 그의 절실함이 여실하다.

 

오래 전부터 작품을 쓰지 못했으니, 말하기 민망하게도 생활필수품을 충족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네. 자네는 런던에서 교유관계도 넓고 필하모니협회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니, 협회가 전에 한 제안을 다시 한 번 고려하고 실행에 옮기게끔 최선을 다해주게. (P.242, 모셸레스에게)

 

난청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근근이 버텨내던 그가 좀만 더 생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그의 명곡을 만날 수 있었으리라. 한동안 침체기를 겪던 그가 걸작을 쏟아내던 때였으므로 매우 아쉽다. 그도 아직은 창작욕과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음을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아폴로와 뮤즈는 나를 아직은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을 듯하오.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들려줘야 할 것이 많다오. 엘리시움으로 가기 전에 내 영혼이 나를 일깨우며 완성을 재촉하는 일을 끝내야 하오. 여태까지 한 일은 내게는 음표 몇 개를 긁적인 것밖에 되지 않아요. (P.219, 출판사에)

 

이제 대작을 몇 개 더 세상에 내놓고 나면, 늙은 어린이가 되어 선량한 사람들 틈에서 살다가 지상의 볼일을 마쳐야지. (P.235, 베겔러에게)

 

예술과 예술가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은 사실이지만, 양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베토벤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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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희곡선 범우문고 169
세네카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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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세네카 희곡을 읽는다. 그래봤자 서점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달랑 2권뿐이다. <테렌티우스 희곡선>과 마찬가지로 옮긴이의 약력을 보건대 일본어 중역판으로 추정된다. 문고판이 싫다면, 아리스토파네스와 테렌티우스의 희극을 포함하여 작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동일한 번역자에 의해 재출간된 통상적인 판형이 있음을 적어둔다.

 

<아가멤논>은 아이스킬로스 작 동명 원작의 모작이다. <힙폴뤼토스>는 에우리피데스 작 동명의 모작인데, ‘히폴리투스’, ‘힙폴리투스라는 표기도 있다. <힙폴뤼토스><파이드라>라는 다른 표제명도 있는데,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극 중 역할의 중요도와 비중을 고려하면 후자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은 오래전에 <그리스 비극>이라는 단권의 책을 읽은 기억만이 있어 원작과 세네카의 모작과의 비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다. <일리아스> 속 그의 모습은 영웅답지 않지만 어쨌든 십 년에 걸친 원정을 성공리에 끝내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이다. 문제는 그의 부재중 아내 클루타임네스트라가 외도를 하였다는 점이다. 아가멤논의 개선 소식이 들려오자 그녀는 어쩔 줄 모르다가 정부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지만, 아이기스토스는 오히려 그녀를 부추겨 아가멤논을 살해하도록 유도한다. 두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아가멤논은 남편으로서도 국왕으로서도 평이 썩 좋지는 않다. 클루타임네스트라는 자신에 대한 무심함과 여러 여성을 후처로 들이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말한다. 아이기스토스는 왕의 자질을 평한다.

 

(아이기스토스) 트로이가 아직 건재했을 때에도 동포들에게 무례했던 그가 그 나라의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교만해졌는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소. 그는 미케네의 왕이었소. 그러나 앞으로는 미케네의 폭군이 될 것이오. 그의 공로가 영혼을 취하게 만든 것이오. (P.31, 2)

 

전쟁영웅 아가멤논은 초라하게 귀국한다. 폭풍우에 표류하여 승리자가 아닌 패전자의 모습과도 같다. 이는 로마 제국이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인식에 따른다. 로마인에게 있어 그리스는 조상의 나라를 무너뜨린 적국인 셈이다. 따라서 빛나는 영광을 그들에게 비춰줄 필요가 없다.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영웅이되 영웅이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아내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포로로 잡힌 카산드라는 이를 예감하고 운명을 예언한다.

 

(카산드라) 한 국왕이 추방자의 손에 의해 죽을 거예요. 남편이 아내를 유혹한 자에게 피살될 거예요. 모든 일은 언제나 운명대로 이루어져요. (P.69, 5)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신에 예속당한다. 트로이의 멸망도, 아가멤논의 죽음도 모두 신이 정해놓은 운명이며, 일개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클루타임네스트라 역시 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셈이다.

 

(코러스1) , 거짓된 운명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 왕들만을 따라다니느뇨./ 그대가 그들을 권력의 정상에 올려놓은 것은 / 끝내 절벽 위에서 지옥의 심연으로 / 떨어뜨리기 위함인가. (P.17, 1)

 

<힙폴뤼토스>는 전처소생의 자식과 계모 간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저승으로 모험을 떠나고 수년간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계모 파이드라는 힙폴리투스를 향한 사랑을 참을 수 없다. 사냥과 숲속 생활을 좋아하며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덕망 높은 미소년인 힙폴리투스를.

 

(코러스) 그는 우리들의 혈관 속에 사랑의 불을 질러요. / 그리하여 그 열기로 우리의 몸을 망쳐 놓죠. / 그는 밖으로 드러나게 큰 상처를 / 입히지 않아요. / 그러나 그 열기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 깊이 스며들어 온통 마음을 휘저어 놓아요. (P.97, 1)

 

인간의 마음, 특히 사랑이 자유의사가 아님을 신화는 에로스의 화살로 형상화한다. 그 화살에 맞는 순간 제우스조차도 저항할 수 없는데 파이드라에게 모자지간이라는 윤리는 방패막이 되기엔 너무 연약하다. 불꽃 같은 애정을 힙폴리투스에게 고백하지만 정작 그는 화살에 맞지 않았으니 순결한 힙폴리투스가 단호하게 거부함은 자명한 이치.

 

뜨거운 사랑과 차디찬 증오는 원래 한 끗 차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미움도 큰 법이다.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의 구애를 거부한 데 복수하기 위해서 이제 사랑하는 이는 제거할 이가 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원작과 모작이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원작은 파이드라가 유서를 남긴다고 하는데, 세네카는 파이드라가 직접 무고하도록 변형한다. 테세우스의 저주로 힙폴리투스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파이드라는 복수에 성공하지만 연인의 시신 옆에서 자살하고 만다. 힙폴리투스가 없는 세상은 그녀에게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파이드라) 나는 그리운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나는 사랑에 미친 연인이에요. 나는 스틱스의 파도 위까지, 타르타로스의 심연까지라도 당신을 따라갈 거예요. 그래서 먼저 죽은 당신의 영혼을 위로해 드리겠어요. (P.153, 5)

 

<아가멤논><힙폴뤼토스>의 모든 등장인물은 가련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율 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들과 전혀 무관한 신이 정해놓은 무정한 운명에 좌우되는 것이다. 피해자인 아가멤논과 힙폴리투스, 가해자인 클루타임네스트라와 파이드라가 모두 결국은 운명의 희생자이다. 코러스는 불륜에 빠져 힙폴리투스를 죽게 만드는 파이드라의 죄악을 맹렬하게 비난하지만, 나약한 인간인 파이드라에게 차마 돌을 던질 만한 무모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세네카는 인간 운명을 지배하는 신의 의지의 강력함과 이에 굴복할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의 숙명을 원작보다 한층 두드러지게 개작하였다. 인간의 의사와 관계없이 악을 자행하도록 만드는 게 신의 의지라면, 우리는 그 신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불행의 신, 죄악의 신 그것은 악()을 지칭함이다. 강력하고 무자비한 악이 인간사에 어떻게 존재하고 그것인 인간 존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네카는 그리스 비극 모작을 통해 탐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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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 로마편 4 델피시리즈 4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이현우 옮김 / 동인(이성모)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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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는 키케로와 더불어 로마제국 초기의 유명한 철학자이다. 이런 그가 희곡을 여러 편 썼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비극만 9편을 남겼는데, 모두 그리스 비극을 모작하였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실제 상연용이 아니라 낭독용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선 무대 재현에 적합하지 않은 표현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점인데 이런 점은 기술적으로 극복하기에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더 곤란한 점은 세네카의 박학다식한 그리스 신화 지식에 기인한다. 그리스 비극 작가와 달리 세네카의 자신의 비극에서 수많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언급하거나 인용한다. 따라서 어지간히 수준 높은 관객이 아니라면 무대에서 일회성으로 내뱉는 대사를 단번에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세네카의 비극은 자체의 문학적 가치보다는 후대 극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일컫는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르네상스 시대 극작가들, 즉 키드, 말로우, 셰익스피어, 웹스터, 코르네유, 라신느 등의 유명한 극작가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우선 세네카의 문명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유명한 문장가였으므로 그의 라틴어 저작이 교습용으로 많이 보급되었을 것이다. 또한 희랍어로 쓰여진 그리스 비극의 라틴어 번역을 직접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네카의 극은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었으리라. 세네카의 비극적 특징 중 하나는 이전과는 달리 잔혹한 장면의 직접적 노출인데,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비롯한 후대 복수극에 등장하는 잔혹한 장면은 이의 영향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과 동일한 제재를 사용한다. 원작의 구성과 표현이 워낙 강렬하므로 자칫하면 평범한 모방으로 그치기에 십상인데, 세네카는 독자적 작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원작에 변용을 가하였다. 세네카는 친부모와 양부모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고, 오이디푸스의 인간성을 한층 존경받을 만한 인격으로 만들어 그가 나중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관객에게 주는 충격을 한층 강화한다. 볼거리를 요구하는 사회적 수요에 맞추어 희생 제물의 적나라하고 잔혹한 상태 묘사(2), 오이디푸스의 끔찍한 자해 묘사(5)와 역시 이오카스타의 자살 장면(5)이 무대에서 행해지도록 구성한다.

 

(오이디푸스) 내가 너희로부터 사라질 때, 나는 / 이 땅을 집어삼킨 모든 역병을 함께 데려갈 것이다. / 오너라, 가혹한 운명의 여신들아, / 오너라, 모든 질병의 음침한 혼령들아, 검은 역병아, / 부패야, 미친 절망아! / 나와 함께 가자! / 너희 같은 길잡이들과 동행한다면, / 더 할 수 없이 즐겁겠구나! (P.89-90, 5)

 

무엇보다 세네카의 오이디푸스가 소포클레스의 주인공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점은 구세주로서의 의연함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할 저주를 회피하지 않는다. 자신의 희생으로 나라가 정상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저주와 고통을 감내하리라는 당당함은 관객의 눈물보다는 오히려 박수를 끌어낼 만큼 영웅적이다. 그에게서 세상의 모든 악의 대속, 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주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이다. 오이디푸스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숙명은 그에게 친부를 죽이고 친모와 결혼하도록 몰고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을 피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예언의 굴레에 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 운명 앞에서 어떤 영웅도, 어떤 노력도 소용없이 신의 의지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 그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 겪은 회피할 수 없는 비극의 가혹함과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감내할 수 없는 슬픔을 중화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이리라.

 

(코러스) 내 마음대로 내 운명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 있다면, / 내 인생의 항해, 부드러운 바람 타게 하리, / 내 배의 돛대 흔들리지 않게 질풍과는 맞서지 않으리. [......]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때마다 / 인간은 언제나 위험의 경계선에 서게 된다네. (P.79, 4)

 

한두 가지 인상적인 대목을 추가로 언급하련다. 4막에서 노인은 오이디푸스에게 출생에 대해 깊숙하게 파헤치지 말도록 경고한다. 비밀이 밝혀졌을 때 드러나게 될 후폭풍이 자칫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며. 이때 오이디푸스는 위험에도 진실을 추구한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세상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그것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출생 비밀은 더는 개인적 영역의 차원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오이디푸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는 그냥 놔두는 것이 옳다. / 허나, 절박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따져봐야 하는 것이며 / 그렇다고 해가 될 일은 없다. (P.76, 4)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성인이 된 네로 황제는 폭정을 행하는 데 있어 세네카의 존재가 눈에 거슬렸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에게 조언하지만 그는 결국 자살을 명령받는다. 3막에서 예언자에 의해 역병의 원인이 밝혀지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크레온과 티레시우스가 왕권을 노리고 음모를 꾸민 것으로 오해한다. 이때 크레온은 이렇게 외친다. 사실 훗날 세네카가 네로 황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크레온) 그러나 폭정을 휘두르는 왕은 / 두려움에 떠는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 두려움이란 말이 그 저자의 머릿속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P.66, 3)

 

소포클레스의 원작의 인기에 비해 극작가 세네카의 명성은 미미하여 존재감조차 없다. 구성과 표현의 예술성 면에서 원작보다 못하고 여러 요인으로 상연하기가 어렵다는 후대의 비판도 있다. 막상 이 작품을 읽어보니 비판받은 부정적 요소는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수용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무대 관람이 어렵다면 최소한 희극 자체로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세네카의 <오이디푸스>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는 의미에서 원작과는 다른 극적 긴장감과 구성적 역동성을 가지며, 혼돈과 극단의 상황을 노정하는 오늘의 시대 상황에 보다 근접할 수 있는 현대성을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P.94, 역자 후기)

 

테렌티우스의 희극과 마찬가지로 델피시리즈의 하나다. 작가 소개, 세네카 극작품의 주요한 특징, 소포클레스의 원작과의 비교를 통한 장면별 내용분석, 작품 이해를 위한 예제 및 모범답안 등이 특징적이다. 역시 영문판의 중역본이지만, 편집과 교정은 비교적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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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티우스 희곡선 범우문고 170
테렌티우스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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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형제들>(이 책은 <형제>라고 표기함)은 앞서 읽었으므로 생략하고, <포르미오>에 대해서만 다룬다. 해설에 따르면 이 희극은 그리스의 아폴로도로스가 쓴 <고발자>를 번안한 작품이라고 한다. 사촌 형제 사이인 페드리아와 안티포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각각 좋아하는 여인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줄거리 자체는 너무나 익숙하여 특별하지 않은데 작가는 상대 여인의 처지와 신분을 범상하지 않게 설정하고 부자간에 처리 의사를 달리하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도록 하고 있다.

 

포르미오는 작품의 표제이자 주인공으로 식객이다. 1막에서 게타는 그를 거만하다고 평하며, 신이 그를 왜 빨리 죽여버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처럼 그에 대한 평판은 처음에 썩 좋지 않게 퍼진 듯하지만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의 올바른 면모를 확연히 알 수 있다. 4막에 가면 게타가 그에게 감탄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다.

 

(포르미오)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걱정할 것 없어. 이런 일이 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발을 내디딘 곳이 어딘지 모르는 바도 아니야. 너도 봐온 것처럼 나는 여기저기서 이와 비슷한 일들을 많이 처리해 왔어. 내 솜씨를 아직도 모르나. 너도 누가 나한테 불평하는 말을 어디서든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을 거야. (P.120, 2막 제2)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른데다 용기 있고, 세속적이면서도 경제적 이해관계에 초연한 신사다운 면모도 갖추고 있다. 위의 본인 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퍽 강한 인물이다. 이러한 포르미오는 두 젊은이가 소망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때 데미포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주장할 수 있는 당당함과 그가 보여준 절묘한 계책이 이 작품의 압권이다.

 

(데미포) 농담할 때가 아냐. 자네는 우리 집에서 그 계집을 내쫓을 준비나 하게. 아니면 내가 밖으로 쫓아낼까. 포르미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야.

(포르미오) 그 여자에 대해 자유 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신다면, 저는 재판을 끝없이 끌고 갈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에요, 데미포님. (P.128, 2막 제3)

 

페드리아와 안티포는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 페드리아는 데미포에게 안티포를 변호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 이후에는 노예 판피라를 구해낼 방안을 찾지 못해 쩔쩔맨다. 그래도 안티포에 비하며 훨씬 낫다. 안티포는 비겁하고 무능한 인물이다. 안티포는 파니움과의 비밀결혼을 아버지 데미포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자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후회하며 자신의 신상에 관한 사안인데 오히려 사촌 형과 게타에게 처리를 맡기고 내뺄 정도다. 뒤 대목에서는 페드리아의 문제 해결을 위해 게타에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재촉하기에 바쁘다.

 

(안티포) 나는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 (페드리아와 게타에게) 두 사람에게 파니움과 내 목숨을 부탁해. (도망친다) (P.111, 1막 제4)

 

(안티포) 게타, 부탁이야. 형을 위해 뭐 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게타) 도움을요? 어떤 도움인데요?

(안티포) 제발, 궁리 좀 해봐. 형이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게 해서 안 되잖아? (P.140-141, 3막 제3)

 

고전 희극의 특징 중 하나는 배배 꼬인 사건이 우연적 요인에 의해 원만하게 술술 풀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숨겨놓은 자기 딸을 조카와 결혼시키려고 했던 클레메스는 우연의 일치로 이미 안티포가 파니움과 결혼하였음을 알게 된다. 클레메스가 외도할 때 스틸포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포르미오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음도 드러난다.

 

안티포의 아버지는 아들 못지않게 쫀쫀하고 치사한 성격의 보유자다. 아들의 비밀결혼을 깨뜨리려고 포르미오에게 준 돈이 클레메스의 비밀이 밝혀지며 불필요해지자 아깝게 여겨져 그에게 돌려달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면서 클레메스로서는 원치 않던 결과, 즉 부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고 만다.

 

마지막 장은 노예 판피라의 진짜 신분이 밝혀지며 페드리아와 포르미오가 상호 덕담을 주고받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 희극에서 즐겁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 인물은 노예상인과 부인에게 면목이 없게 된 클레메스, 그리고 포르미오에게 건네준 돈이 아까운 데미포뿐이다. 두 젊은이와 그들의 여인, 그리고 포르미오는 즐거운 심정이다.

 

이제 책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문고 판형에 두 편의 희극을 싣다 보니 빽빽하게 수록한 감이 없지 않다. 옮긴이의 약력을 보건대 일본어 중역판으로 추정된다.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와 작품인데 첫머리에 이 책을 읽는 분에게라고 해서 작품 개요를 두 면에 걸쳐 소개한 게 전부다. 작가 소개조차 없다. 그래도 <포르미오>는 국내 유일의 번역본이므로 불평하기 미안하다. 작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기왕에 동일한 번역자에 의해 문고판으로 간행된 아리스토파네스와 세네카의 희극을 포함하여 통상적인 판형으로 재출간되었음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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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베토벤 순례 거장이 만난 거장 8
리하르트 바그너 지음, 홍은정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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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바그너가 베토벤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모두 5편을 수록하였는데, <베토벤 순례>와 마지막의 <베토벤>이 핵심적이며, 나머지 세 편은 음악회 프로그램 해설문 성격에 가깝다. 바그너가 베토벤을 얼마만큼 숭배하였는지와, 자신의 음악을 베토벤과 어떻게 결부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베토벤 순례

연령상의 차이로 인해 바그너는 실제 베토벤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역사적 대가를 방문하는 내용의 글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쓴다. 예술적 가치로서는 뛰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제법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도중에 마주친 영국인 때문에 여정과 방문이 꼬여버리는 설정과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라는 현실 자각 등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두드러진 점은 바그너가 이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깊은 함의 때문이다.

 

기악 작곡가로서의 압도적 성공에 비해 오페라 작곡가로서 베토벤은 <피델리오> 한 편을 거듭된 실패를 겪은 후 겨우 인정을 받게 된다. 바그너는 전무후무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는데 자신의 오페라를 악극이라고 칭한다.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하였다는 걸 강조하는데, 이것의 기원을 베토벤에게서 찾고 있다.

 

이제 이 세상에는 내가 다시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게 만드는 극본이 없네요! 만약 내가 정말로 원하는 오페라를 만든다면, 아마 사람들은 모두 도망칠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아리아, 이중창, 삼중창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처럼 오페라를 구성하는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요. [......] 진정한 음악 드라마를 쓴 사람은 바보로 여겨질 테고. (P.41)

 

베토벤은 진정한 음악 드라마를 쓸만한 대본이 없으므로 더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대신 합창이 들어간 교향곡을 작곡하였다고 바그너에게 말한다. 성악과 기악의 일치를 추구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앞으로 스스로 대본을 집필하게 될 바그너가 자신의 정통성을 베토벤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1846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보고서

저자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9번 연주를 거행하게 된 경과를 전반부에 기술하고 있고, 후반부는 이 곡에 대한 악장별 해설이다. 예산 부족과 청중 반응의 문제로 난항을 거듭하면서도 뚝심 있게 연주회를 밀어붙이고 대성공을 거둔 바그너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특히 프로그램 해설은 더없이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표현과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바그너 개인 및 당시 시대상의 성향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앞의 글과 연계하여 이 교향곡의 기악적 및 성악적 요소 간의 관계를 다룬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 같은 시작으로 베토벤 음악의 결정적 특징이 분명히 드러났다. 앞선 세 악장에서 지켜오던 특성, 무한하고 불확실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수 기악의 특성을 벗어던진 것이다. 이제 음악 작품이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P.70)

 

3.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4.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5. 베토벤

이 책의 분량 절반을 차지하는 이 글은 베토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바그너가 베토벤 음악의 미학적 위대성을 탐구한 일종의 논문이다. 앞에 실린 글들과는 의도와 형식이 다르며, 내용도 난삽하고 두서없어 저자의 논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베토벤 순례>에서 제시한 바 있는 음악 드라마에 관한 본인의 주장을 한층 강화 발전시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바그너는 음악의 미학적 본질을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받아들여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음악은 인간의 꿈과 같은 근원적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여 현상 세계에 인식하도록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 형태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당대 음악이 본연의 숭고하고 순수한 상태”(P.127)라는 본질을 놓치고 표피적인 현상에 매몰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오직 유일하게 베토벤만이 바흐의 뒤를 이어 음악의 본질을 꿋꿋이 추구하고 있음을 밝힌다.

 

음악을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내면적인 꿈 이미지의 발현이라고 부른다면, 셰익스피어는 깨어 있으면서 계속 꿈을 꾸는 베토벤으로 간주할 수 있다. (P.169)

 

바그너는 셰익스피어를 높이 평가하면서 베토벤과 나란한 위상을 부여한다. 기악과 성악, 음악과 드라마를 결합하여 보다 고도의 예술 미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그너가 보기에 베토벤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사례가 9번 교향곡이다. 이 곡에 대한 그의 평은 숭배와도 같다. 물론 베토벤을 계승하여 이를 완성한 것은 바로 바그너 자신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베토벤의 음악 미학을 쓴 글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의 정당성과 위대성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의도도 지니고 있다.

 

한편 1870년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통일 독일 제국의 탄생을 목전에 둔 시기에 바그너의 애국주의적 내지 국수주의적 감정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바흐와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숭고하고 진실한 음악이 우월한 독일 정신의 반향이자 산물이라고 시종일관 반복하는 대목은 어째서 그가 훗날 히틀러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는지 짐작케 한다.

 

음악가의 탄생뿐 아니라 독일 민족의 재탄생도 기념하라. 독일 군대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으로 베토벤의 의미를 채워보라. 베토벤 음악에 감동한 마음의 에너지로 독일 민족이 행한 업적의 힘을 느껴보라. 그러면 이 둘의 의미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민족의 업적과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의 행위가 진정한 독일 제국의 작품들을 확립하게 하라. 그러면 위대한 베토벤의 작품들이 독일 정신의 고귀한 업적을 이끌어 갈 것이다. (P.200)

 

이 글은 최근에 다른 번역본 - <베토벤 음악철학의 시도>(원당희 역) -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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