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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헛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미예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셰익스피어의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작품으로 언어유희, 재담, 익살이 풍부한 희극이다. 이것이 과하여 한바탕 웃고 끝나는 유형의 가벼운 소극(笑劇)으로 볼 여지도 있다. 무대는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대의 나바라 왕국이다.
나바라의 왕 페르디난드는 극 중에서 덕망을 지닌 인물로 회자되는데, 학문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향점이 매우 드높음을 알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왕국 자체가 타의 모범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삼 년간 철저한 금욕, 절제, 근면을 맹세하는데,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인 세 명의 신하와 함께 맹세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베로네) 아, 이런 것들은 소득도 없는데 지키기는 무척 힘든 일들입니다. / 여자도 만나지 마라, 학문만 해라, 금욕하고 잠도 자지 마라. (P.9, 제1막 제1장)
인간의 자연스러운 신체적, 정신적 욕망은 막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막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억지로 막는다면 다른 배출구를 찾아 분출하려고 하게 마련이다.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욕망을 일부 억제할 수 있으나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그것도 자발적 의사에 따라 가능할 뿐 타인에게 강요하여 실행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베로네가 반발하는 건 당연하며 그의 주장은 현실적이며 이치에도 부합한다.
(베로네) 학문이란 하늘에 빛나는 태양과 같아서/ 무모하게 찾는다고 다 찾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P.11, 제1막 제1장)
(베로네) 저야 기꺼이 제 머리를 내놓을 겁니다만, / 이 맹세와 법령은 무의미한 조롱거리가 될 겁니다. (P.25-26, 제1막 제1장)
아름다운 프랑스 공주의 방문으로 네 사람의 맹세는 순식간에 금이 가버리며, 각자 정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쓴 채 프랑스 공주와 시녀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본성을 거역하는 말과 행동의 허망함을 적나라하게 관객에게 보여주는 셈이다. 그들 모두가 맹세를 어겼음이 드러나는 순간 베로네는 다시금 맹세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며 맹세를 포기할 것을 주장한다. 작가가 이처럼 베로네의 입을 빌려 맹세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하는 까닭은 그것이 갖는 비합리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리라.
(베로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이치를 우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 그러니 하나같이 맹세를 깰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P.117, 제4막 제3장)
(베로네)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맹세를 버립시다. / 맹세를 지키려 들다 우리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이오. (P.126, 제4막 제3장)
왕과 신하들의 금욕 맹세는 다른 등장인물이 벌이는 언어유희, 재담, 해학적 대화와 행동 등으로 비현실성과 터무니없음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경묘한 소극(笑劇)에서 그들의 진지함이란 처음부터 당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익살꾼 아르마도는 대사 자체가 과장되고 현학적이며, 시동 모트 또한 어린 나이에 주인을 능가할 정도로 꾀쟁이다. 코스타르드는 광대답게 천방지축이다. 나타니엘 목사와 올로페르네스 교장은 올바른 영어 발음법에 관한 대화에서 그들의 현학성과 무지 및 허세를 한눈에 나타낸다. 이러한 재담은 세 신하는 물론 공주를 포함한 시종과 시녀들도 마찬가지다. 즉 이 희극은 등장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진지한 대사보다는 재치와 풍자, 익살과 유희 등이 넘실넘실하는 작품이다. 어처구니없는 말꼬리 잡기에 기반한 언어유희의 한 사례다. 극중극으로 벌이는 ‘아홉 영웅 놀이’는 이 모든 익살과 유희로 점철된 난장판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올로페르네스) 무안해할 얼굴이 아닙니다.
(베로네) 얼굴 통이 없단 말씀.
(올로페르네스) 이건 무슨 뜻?
(부아예) 탄금 대갈통인 게지.
(두마인) 머리핀 통인가.
(베로네) 반지에 붙은 해골 통이야. (P.189, 제5막 제2장)
왕과 세 신하는 자신들의 맹세를 저버리면서까지 프랑스 공주 일행의 사랑을 얻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저버린 맹세의 가벼움에 공주 일행이 오히려 미더움과 성실성을 의심하게 되어서다. 한바탕 떠들썩한 희극으로 막을 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인지 작가는 돌연 공주 일행의 입을 빌어 구혼자들의 성실성을 시험하는 조건을 내세운다. 일 년간 세속적 욕망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면 구혼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베로네는 한 가지 조건을 더 부여받는데, 워낙 재기발랄하기로 유명한 그였기에 그 습성을 버리라는 것이다.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결말이다.
통상적인 희극은 주인공이 얽힌 사건과 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걸로 끝나기 마련이다. 연인이라면 응당 혼사를 치르거나 결혼을 약속하는 등. 하지만 이 작품은 결말이 다소 다르다. 물론 조건부로 구혼을 받아주므로 외양상 해피 엔딩이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적, 시험의 통과라는 물리적 장애물이 엄연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확신을 갖고 미래의 행복을 단언하지는 못한다. 베로네가 지적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베로네) 우리 구혼의 결말은 옛날 극과는 다르군요. / ‘갑돌이와 갑순이는 결혼하지 않았대요.’ 이렇게 돼 버렸습니다. / 아가씨들의 호의만이 우리 장난을 희극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페르디난드) 이것 봐, 열두 달하고 하루가 지나면, / 희극으로 끝날 거요.
(베로네) 극이 되기에는 너무 긴데요. (P.208, 제5막 제2장)
이 결말 부분을 근거로 셰익스피어가 모종의 진지함을 부여하였는지 아니면 진지함을 가장한 일관된 희극성을 의도하였는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