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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ㅣ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글,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날로 유명한데 정작 그의 동화는 <만년샤쓰> 외에 달리 읽어본 기억이 없다. 이 책은 그의 탐정소설 두 편을 수록한 책이다. 중편 <동생을 찾으러>와 장편 <칠칠단의 비밀>. 두 편은 서로 비슷한 구성인데, 여동생이 납치되었고 오빠가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어 여동생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여동생을 납치한 인신매매단이 전자는 중국인, 후자는 일본인의 차이가 있다.
작품의 단점을 찾자면 여럿 지적할 수 있다. 느슨한 구성, 유치한 설정, 우연성 의존 등. 특히 우연적 요소는 전자에서 창호가 순희의 납치당한 거처를 발견하는 설정, 후자에서 우연한 기회에 외삼촌의 상봉, 생면부지의 기호 학생의 헌신적 도움, 그리고 만주에서 뜻밖의 아버지 상봉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독자는 제법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데, 무엇보다 작가는 물론 독자 또한 동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오빠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 작품들의 내용이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여동생이 납치되었다. 전자는 하교길에, 후자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그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혼자만 붙들린다. 인신매매단에 의한 납치는 힘 약한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다. 혼자 힘으로는 외세의 강압을 뿌리칠 수 없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순희와 순자는 조선 백성의 상징적 존재다.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민족의 앞날은 암담해지고 국권 회복은 영영 불가능하다. 힘들고 괴로워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학대받는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다. 순희가 팔려 간다. 순희가 아주 팔려 간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불쌍한 순희는 누가 구할 테냐?’ (P.43)
인신매매단의 국적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전자는 중국인이며, 후자는 일본인이다. 구한말에 조선을 괴롭히고 호시탐탐 차지하려고 야심을 드러냈던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그들의 강압적 위세에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백성들도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그런 관점에서 백성들에게 두 나라 사람은 악마적 존재로 간주되는 게 당연하다.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민족의 설움은 사건 해결 과정에서 공권력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동생을 찾으러>에서 경찰은 초반 수색에 게으름을 피우고 후반 수색에는 아예 불참한다. <칠칠단의 비밀>은 한술 더 떠 일본인 곡마단장 편에 가담하며, 만주의 청국 경찰은 기호의 요청에 드러내 놓고 귀찮아한다.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 스스로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자는 학교 선생님과 학우들이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마지막에는 소년회가 도움을 준다. 후자에서 칠칠단을 급습하여 그들을 제압하는 역할은 한인 동포들이다. 후자에서 특히 기호의 존재는 각별하다. 기호와 상호네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우연한 기회에 상호와 외삼촌 간 통역 역할을 했을 뿐인데 순자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금전은 물론 안전까지 돌아보지 않고 원조한다. 이것의 비현실성을 인정하더라도 결국 조선인은 조선인이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 작품들은 곳곳에서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하는 요소를 집어넣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조국과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 고양하려는 의도인데, 후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남매는 어릴 적 납치당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한 상태인데 우연히 외삼촌을 상봉하면서 각성하게 된다.
부모도 없고 고향조차 없으니, 두 아이는 아무 데를 가도 반가운 곳이 없었습니다. 조선에 오거나 중국에 가거나, 아무 데 가서 아무런 사람을 보아도 마음만 슬플 뿐이었습니다. (P.95)
아아, 자기의 근본을 알고, 나라를 찾고, 부모를 찾는 것이 우리들 평생의 소원이 아니었던가! 오늘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으니 내 부모, 내 나라를 알게 되는 것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소원이 아니었던가! (P.101-102)
나라 없는 국민의 가장 처참한 경우는 학대받고 설움 받더라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점이다. 핍박받는 나를 구원해 줄 권위가 없으므로 상대방을 마음 놓고 학대할 수 있다. 순희와 순자의 울음소리가 더욱 가슴에 저미는 까닭이 그러하다.
단결한 동포에 대한 작가의 찬미는 ‘거룩하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흥미뿐만 아니라 각성과 단결을 기대하는 것이다.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창호는 기쁜지, 감사한지 어쩔 줄을 모르고 전신의 피가 내뻗쳐 나올 것같이 끓어오를 뿐이었습니다. (P.62)
<칠칠단의 비밀>은 장편이므로 <동생을 찾으러>에 비해 구성이 더 복잡하고 무대가 만주까지 스케일이 확대되었다. 더욱이 곡마단을 인신매매뿐만 아니라 아편 밀매까지 취급하는 범죄조직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의 흉악성과 함께 이 사건의 위험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가지 아쉬움은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각고의 여정이 드리운 작품의 전반적 내용에 비추어 범죄단 소탕과 부모 상봉의 극적인 장면이 간략하고 갑작스러운 종결로 다소 허무감을 안겨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