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9
제임스 프렐러 지음, 김상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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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안은 국내에서도 오래전부터 대두되었다. 근래는 관리체계가 나름 정착된 탓인지 관련 이슈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근절되었다고 섣불리 단언하는 건 곤란하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라면 개인적 경험도 있고 보고 들은 이러저러한 사례와 견해가 제법 있기에 말하고자 하면 지리하게 늘어날 수 있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고 이 책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마지막으로 학교 당국으로 구성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 책에서는 그리핀과 할렌백이 해당한다. 외견상 그리핀은 매력 만점의 학생이며, 할렌백은 다른 아이들도 어울리기 싫어할 정도로 비호감의 대상이다. 그리핀 일당의 할렌백 괴롭히기에 다른 아이들이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다. 물론 그것으로 학교폭력의 정당성이 옹호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리핀의 외모와 언행을 기술하는 대목만을 보자면 그리핀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학생이다. 그의 외면과 내면의 극적인 대조는 그래서 더욱 두드러진다.

 

녀석의 미소는 깨끗하고 순수한 햇살 같았고, 긴 속눈썹은 가볍게 깜빡였으며, 볼은 투명한 핑크색을 띠고 있었다. 녀석은 완벽한 천사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P.146)

 

그리핀의 마음 한가운데는 큰 구멍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은 없었다. 그리핀은 그게 뭐든 간에 별 느낌이 없는 애였다. 차갑고 딱딱한 벽돌 같은 애였다. (P.199)

 

여기서 작가의 관심은 지켜보는 아이들, 즉 방관자에게 주어진다. 방관자는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굳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 언뜻 보면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방관자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가해자에게 승리감을, 피해자에게 패배감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누구도 말리지 않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인간관계는 뒤틀리기 마련이며,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악영향을 받는다. 방관자는 이처럼 폭력을 묵인하는 동시에 잠재적 피해자가 될 우려가 있다. 작가는 방관자의 위선적 태도를 한 꺼풀 벗기기 위해 밀그램의 실험을 소개하고, 마틴 루서 킹의 격언을 인용한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에릭은 생각했다. 그 못된 장난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할렌백을 괴롭히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고, 그 게임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에릭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그저 못 본 척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복도에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점차 그 장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건 청바지를 입은 악동들의 테러였다. (P.101)

 

그리고 방관자는 언제든 자신이 피해자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 작품 내에서는 에릭이 그리핀의 무리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그리핀은 할렌백에서 에릭으로 괴롭힘의 대상을 변경한다. 이제 주변에 에릭을 도와주는 사람은 같은 처지의 메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방관자 대다수는 자신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예감하지 못하거나 그 위험성을 염두에 두기에 더욱 몸을 사리게 되는 행동 방식을 선택한다.

 

가해자 그리핀의 왜곡된 성격, 그를 배태한 불완전한 가족관계는 이 작품에서 살짝 드러나지만 그것이 학교폭력을 변호할 수 없다. 가정환경을 탓하자면 에릭도 그리핀에 못지않게 열악한 처지이므로. 결국 당사자의 수용 방식에 따른 것이다.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할렌백과 에릭은 상반되는 대응 태도를 보인다. 할렌백은 피해자인 동시에 스스로 가해자가 되려고 한다. 폭력의 전형적인 대물림 구조이지만 폭력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는 여전히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에릭은 폭력에 저항한다. 물리적 폭력도 에릭의 정신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그리핀이 에릭을 놓아두는 것은 그를 괴롭혀봤자 자신에게 별달리 득이 될 게 없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위는 학교 당국이 가지고 있다. 학교 당국은 학교폭력의 인정과 처리에 의외로 소극적이다. 이 책에서도 그리핀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학교에 다니고 있다. 칼을 소지했다는 근거 없는 제보만으로 에릭의 사물함을 이 잡듯이 뒤지는 교사들이 어째서 에릭과 할엔 백의 폭행당한 흔적에는 둔감한지. 근거 없는 제보자에 대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 여기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이해는 된다. 학교폭력의 발생은 학교 관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관리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여차하면 향후 교사의 경력 및 승진에서도 감점 요소가 되므로 누구도 원치 않는다. 다만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 당국의 외면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핀 코넬리의 문제는 저절로 사라질 문제가 아니었다. 에릭이 뭔가 행동에 옮기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P.187)

 

학교폭력은 방치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시간의 힘은 가해자의 공격성을 강화하고 피해자의 억압과 분노를 심화시킨다. 방관자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학교 당국은 잠재적 핵폭탄을 키우고 있을 따름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핀도, 에릭도, 할렌백도 여전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화로운 중학교의 외양이다. 에릭 자신은 학교폭력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평범한 학생의 위치로 복귀하였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이지만 구조 차원에서는 달라진 바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은 근원적 해결 없이는 뿌리 뽑을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을 작가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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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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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초판 간행 이후 20년 이상 꾸준히 대표적 교양 과학서로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책으로 개정증보 2판까지 나왔다. 400면에 가까운 분량 중 커튼콜이라는 명칭으로 10년 주기의 증보 후기를 상당 부분 덧붙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본문 내용 자체를 건드리기 어려우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전한 과학지식 또는 저자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커튼콜에 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서이지만 과학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복잡한 세상을 조망한다. 자연과학에서 구축한 과학적 방법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적용하여 참신한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다방면의 최일선 현장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로써 저자는 독자의 시선도 기존의 제한적 틀을 벗어나 더 폭넓은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복잡하고 카오스적이다. 앞으로 물리학자들은 이 혼돈스러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은 질서와 법칙을 찾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 (P.299)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많고 예측도 어렵기에 자연과학자들은 인문 사회 분야에는 분석의 칼을 들이밀지 않았다. 20세기 후반부터 복잡계 과학이 대두되면서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은 세상을 일종의 복잡계로 간주하면 과학적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회법칙, 예술문화 및 사회과학 제 분야의 사례들은 그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예를 기억 차원에서 언급한다.

 

머피의 법칙은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말해주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법칙이었던 것이다. (P.47)

 

언어학에서 지프의 법칙, 경제학에서 파레토의 법칙, 베키의 법칙과 무수한 멱법칙. 이들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불평등과 불균형이다. 경제나 맥주 소비, 웹페이지 사용 빈도, 도시 인구 등 시스템은 다르지만 각 시스템은 특정한 몇몇 개체에 대부분의 숫자가 몰려 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의 역할(빈도)은 미약하다는 것이다. (P.142)

 

결국 생명체는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불규칙하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제 심장 박동은 규칙적이다라는 상식은 과감히 던져버리자. (P.156)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양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의 시대에 인정하지 않고 외면만 하는 행위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숨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바람과 인정 여부에 무관하게 이미 과학 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과학 자체를 만능으로 여기고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과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론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접근방법의 일환으로 과학적 시각과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증권시장에 뛰어든 물리학자들 덕택으로 시장은 더욱 정교화되고 규모는 팽창하였지만 동시에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가중되어 금융위기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통해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와 제약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P.89). 즉 이 책은 과학 지식 자체와 성과를 독자에게 전파하여 교양 수준을 제고하는 목적도 있지만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적인 관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다양하고 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 따라서 과학적 사고방식의 의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더욱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중요하다.

 

혁신은 엉뚱한 두 개념을 연결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과정이다. (P.350)

 

앞서 언급한 지프의 법칙 및 파레토의 법칙은 사회 체계 내 불평등과 불균형은 태생적이고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20 80의 구조가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면 자연과학은 모르더라도 개인적으로든 사회적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서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의 차이가 시작된다. 후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고착구조를 개선하거나 깨뜨리기 위한 노력과 수단의 발견 내지 발명이 요구된다. 파레토의 법칙에 좌절만 하고 있다면 롱테일 법칙은 찾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저자는 복잡계 물리학자로서 자연과학의 시선을 자연현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려볼 때 새로운 조망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인문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신성불가침한 고유한 절대 영역이 있다고 단단한 방어막을 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자연과학이 만능이라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간, 학제 간 소통과 협업이 무수한 변수들이 들어찬 복잡계로서의 세상과 사회 이해에 필요할뿐더러 그것이 연구자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윈-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은 인문·사회과학과 만나서 새로운 학문으로 거듭 태어나고, 사회과학의 주제에 자연과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접근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자연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를 전 사회적 범위로 확장해야 하며,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손에 테크놀로지의 연장을 쥐어주어야 한다. (P.313)

 

초판이 씌어진 지 오래되어 내용에 언급하거나 인용한 사례가 올드한 느낌이 있다. 젊은이들 중 O. J. 심슨 살인 사건을 아는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문화와 프랙털을 소개하는 장에서 서태지 헤어스타일을 연관시키는데 당대에서야 서태지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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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할아버지 -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2
김나무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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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음에도 의외로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하였는지 현재는 품절(절판) 상태다. 사유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린이의 흥미를 끌기에는 극적인 사건이 부재하고, 작품이 내거는 주제 의식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어린이의 감성과는 차이가 있어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부모-자식 관계가 절묘하게 병행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살던 화자 영철이는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상경하여 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가족 상봉이니 행복한 나날이 예상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영철은 생활에 급급한 부모에게서 따스한 관심을 받지 못하자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은 할아버지와 서서히 친하게 된 영철이는 오히려 그에게 일종의 가족애를 품게 된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슬픈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다. 과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자식의 주변을 맴돌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의의를 찾을 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초라한 차림에도 상관없이 친밀하게 다가오는 어린 영철은 그에게 놓쳐버린 자식과도 같은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다. 아래는 베짱이 할아버지가 장님 아저씨에게 건네는 조언이지만, 실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주제 문장이다.

 

절대로 아이들을 포기하지 마세요.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P.51)

 

대학생 딸아이에게 무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는 베짱이 할아버지를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분홍우산을 건네주며 뒤돌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졸업식 날 초라한 꽃다발을 전달할 기회를 놓쳐 기운 없어 하는 그의 모습. 그가 영철이에게 털어놓는 옛날얘기는 회한으로 점철된 자화상이리라.

 

부모의 사랑이란 건 말이다......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엄하게 꾸중하면서 혼내는 사랑도 있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랑도 있을 테고, 잘 입히고 좋은 것 멕이는 사랑도 있을 테고. 그런가 하면......아무것도 못 해 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못난 사랑도 있지. 있고말고.” (P.113)

 

가족의 사랑은 물질적 요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고난을 더불어 헤쳐나갈 때 끈끈한 유대가 생겨난다. 그것이 온갖 어려움에도 가족을 맺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바로 이것을 몰랐기에, 그저 어린 딸아이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선택의 결과가 두고두고 회한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도 그는 딸아이와 손주를 멀리서 바라보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낼 것이다, 평생토록. 늙어가는 그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므로.

 

문구점에서 편의점집 아들로 성장한 영철에게 베짱이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는 추억이다. 비록 한철이지만 영철은 그에게서 진짜 할아버지 못지않은 따스한 감정 교류를 하였으며, 영철과 부모가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영철의 친구였다. 할아버지의 비밀을 깨닫게 된 영철의 각오가 남다른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할아버지의 슬픈 눈빛이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가슴 한쪽이 더욱 아렸습니다. 그러다 차츰, 나는 깨달았습니다. 베짱이 할아버지와 난 아주 특별한 친구였다는걸...... 나는 중요한 일을 한 사람만이 갖는 뿌듯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옛 친구의 비밀을 꼭 지켜 주겠다고...... (P.197)

 

이 작품은 첫인상과 주제 의식을 볼 때 얼핏 보면 진부하고 지루하게 비쳐질 여지가 많다. 실제로는 잔잔한 전개 속에 독자의 미소를 끌어낼 장면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이것은 성인 독자의 관점이다. 주 대상이라고 할 만한 초등학생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이야깃거리를 한꺼번에 확 드러내 놓지 않고 실타래를 풀 듯 조금씩 조금씩 늘어놓는다. 이 작품을 통해 영철이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성장하듯이 어린이 독자의 내면도 나날이 영글어 가게 되기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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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비긴즈 - 인간×공간×시간의 혁명
이승환 지음 / 굿모닝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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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4차 산업혁명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최근에는 메타버스 혁명이란 용어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방안이 속속 제시되고 있는 와중에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찰나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을 통해 메타버스를 속속들이 이해하고픈 바람이다.

 

저자도 소개하고 있듯이 메타버스 개념 자체는 새롭지 않다. 용어는 다르지만 과거에도 메타버스에 해당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일정 부분 서비스로 도입되었다. 이른바 사이버 OO, 가상 OO 등이 그러하다. 당시는 사회적 수요도 적었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이었으며 기술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최근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대면 활동이 제약됨에 따라 더욱더 오프라인 같은 온라인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책이 여타 메타버스 안내서와 구별되는 특장점을 가졌는지 비교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개설서로는 매우 짜임새 있고 내용과 흥미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다. 구성과 수록된 내용으로 독자는 메타버스의 기본 기념과 혁신적 성격, 그리고 메타버스가 산업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혁명에 도태되지 않도록 기업, 정부 및 개인이 메타버스에 동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소개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메타버스가 이미 많이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켓몬고의 열풍을 기억한다. 동물의 숲 에디션을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닌텐도 스위치 구매 열풍도 있다. 확산 중인 VR 기반 서비스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게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꾸미는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게이머들도 많다. 비단 게임이 아니라도 가상인간, 가상공장, 사이버 공연은 이제 낯설지 않다. 문학과 영화 장르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다루었다. <매트릭스> 시리즈, <주만지> 시리즈 등.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중 무엇이 진정한 현실인지 헷갈릴 경우도 있다. 오래전 장자가 꾼 꿈이 이제는 고사성어에 머물지 않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메타버스를 제대로 경험하거나 동참하지 않은 상태다. 기껏해야 온라인 회의 목적으로 줌(ZOOM) 또는 구글 미트(MEET)를 사용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더욱 고도화된다면 이 책에 소개되었듯이 실제와도 같은 온라인 사무실이 기본이 될 날도 멀지 않으리라. 아바타의 시선을 통해 내가 가상 세계 속 인물과 사물을 교류하고 접촉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감이 병존하는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처럼 메타버스 혁명은 변화가 가져올 기대감과 긍정적 요소를 강조한다. 자칫 음지의 어둠이 양지의 빛을 덮어버릴 수 있다. 메타버스가 과연 혁명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속단할 수 없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변화하고 있으며 메타버스가 여기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메타버스의 지향점이 어떠하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싫든 좋든 여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동시대인에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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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글,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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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날로 유명한데 정작 그의 동화는 <만년샤쓰> 외에 달리 읽어본 기억이 없다. 이 책은 그의 탐정소설 두 편을 수록한 책이다. 중편 <동생을 찾으러>와 장편 <칠칠단의 비밀>. 두 편은 서로 비슷한 구성인데, 여동생이 납치되었고 오빠가 주위 사람의 도움을 얻어 여동생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여동생을 납치한 인신매매단이 전자는 중국인, 후자는 일본인의 차이가 있다.

 

작품의 단점을 찾자면 여럿 지적할 수 있다. 느슨한 구성, 유치한 설정, 우연성 의존 등. 특히 우연적 요소는 전자에서 창호가 순희의 납치당한 거처를 발견하는 설정, 후자에서 우연한 기회에 외삼촌의 상봉, 생면부지의 기호 학생의 헌신적 도움, 그리고 만주에서 뜻밖의 아버지 상봉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독자는 제법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데, 무엇보다 작가는 물론 독자 또한 동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오빠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 작품들의 내용이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여동생이 납치되었다. 전자는 하교길에, 후자는 어린 시절 오빠와 함께 그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혼자만 붙들린다. 인신매매단에 의한 납치는 힘 약한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다. 혼자 힘으로는 외세의 강압을 뿌리칠 수 없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순희와 순자는 조선 백성의 상징적 존재다.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민족의 앞날은 암담해지고 국권 회복은 영영 불가능하다. 힘들고 괴로워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학대받는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다. 순희가 팔려 간다. 순희가 아주 팔려 간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불쌍한 순희는 누가 구할 테냐?’ (P.43)

 

인신매매단의 국적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전자는 중국인이며, 후자는 일본인이다. 구한말에 조선을 괴롭히고 호시탐탐 차지하려고 야심을 드러냈던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그들의 강압적 위세에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백성들도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그런 관점에서 백성들에게 두 나라 사람은 악마적 존재로 간주되는 게 당연하다.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민족의 설움은 사건 해결 과정에서 공권력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동생을 찾으러>에서 경찰은 초반 수색에 게으름을 피우고 후반 수색에는 아예 불참한다. <칠칠단의 비밀>은 한술 더 떠 일본인 곡마단장 편에 가담하며, 만주의 청국 경찰은 기호의 요청에 드러내 놓고 귀찮아한다.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 스스로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자는 학교 선생님과 학우들이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마지막에는 소년회가 도움을 준다. 후자에서 칠칠단을 급습하여 그들을 제압하는 역할은 한인 동포들이다. 후자에서 특히 기호의 존재는 각별하다. 기호와 상호네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우연한 기회에 상호와 외삼촌 간 통역 역할을 했을 뿐인데 순자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금전은 물론 안전까지 돌아보지 않고 원조한다. 이것의 비현실성을 인정하더라도 결국 조선인은 조선인이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 작품들은 곳곳에서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하는 요소를 집어넣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조국과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 고양하려는 의도인데, 후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남매는 어릴 적 납치당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한 상태인데 우연히 외삼촌을 상봉하면서 각성하게 된다.

 

부모도 없고 고향조차 없으니, 두 아이는 아무 데를 가도 반가운 곳이 없었습니다. 조선에 오거나 중국에 가거나, 아무 데 가서 아무런 사람을 보아도 마음만 슬플 뿐이었습니다. (P.95)

 

아아, 자기의 근본을 알고, 나라를 찾고, 부모를 찾는 것이 우리들 평생의 소원이 아니었던가! 오늘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으니 내 부모, 내 나라를 알게 되는 것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소원이 아니었던가! (P.101-102)

 

나라 없는 국민의 가장 처참한 경우는 학대받고 설움 받더라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점이다. 핍박받는 나를 구원해 줄 권위가 없으므로 상대방을 마음 놓고 학대할 수 있다. 순희와 순자의 울음소리가 더욱 가슴에 저미는 까닭이 그러하다.

 

단결한 동포에 대한 작가의 찬미는 거룩하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흥미뿐만 아니라 각성과 단결을 기대하는 것이다.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창호는 기쁜지, 감사한지 어쩔 줄을 모르고 전신의 피가 내뻗쳐 나올 것같이 끓어오를 뿐이었습니다. (P.62)

 

<칠칠단의 비밀>은 장편이므로 <동생을 찾으러>에 비해 구성이 더 복잡하고 무대가 만주까지 스케일이 확대되었다. 더욱이 곡마단을 인신매매뿐만 아니라 아편 밀매까지 취급하는 범죄조직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의 흉악성과 함께 이 사건의 위험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가지 아쉬움은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한 각고의 여정이 드리운 작품의 전반적 내용에 비추어 범죄단 소탕과 부모 상봉의 극적인 장면이 간략하고 갑작스러운 종결로 다소 허무감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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