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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녀가 창녀라니
존 퍼드 지음, 임도현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0년 11월
평점 :
표제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므로 바로잡고 간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whore’라는 단어는 그 당시에는 매춘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 아니라 혼외 성관계를 가진 여성을 가리켰다고 한다.”(P.212). 즉 ‘창녀’라기 보다는 ‘간음녀’로 보는 게 더 정확한 의미다. 참고로 <네덜란드 매춘부>의 경우 ‘courtesan’을 사용한다.
이 작품은 남매간의 근친상간을 제재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센세이셔널하다. 지오바니는 여동생에 대한 사랑에 고뇌하고 수사에게 조언도 구하지만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지오바니는 아나벨라를 사랑하는 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깨닫고 기필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이루리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지오바니와 아나벨라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육체관계를 맺는다.
아나벨라의 법적인 남편 소렌조는 아나벨라의 간음에 극도로 분노한다. 그는 아내를 창녀, 매춘부라고 욕하며 자신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하겠다고 펄펄 뛴다. 이런 그의 태도는 매우 모순적이다. 그와 히폴리타 간의 부도덕한 관계가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폭로되는 장면을 목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히폴리타가 그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며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그에게 목숨을 건 복수를 감행하는 대목을 보라. 남녀 불평등 인식에 근거하든 또는 순전히 이기심의 발로이든 그는 자신의 일은 가볍게 넘기며 그와 하인 바스케스는 끝내 히폴리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바스케스) 연민이 당신을 배반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근친상간과 서방질에 대해 생각하세요.
(소렌조) 복수가 내가 갈망하는 모든 야망이다. 그것으로 올라가든지 떨어지든지 할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구나. [제5막 제2장]
소렌조의 하인 바스케스는 통상적 하인의 역할을 뛰어넘는다. 그는 주인을 섬길 뿐만 아니라 주인을 이끌고 독려하며 주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주인을 대신하여 그리말디와 결투를 벌이며, 히폴리타와 푸타나의 건은 독자적으로 처리한 후 사후에 보고하는 형식을 취한다. 게다가 그의 처리 방식은 무자비하며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는 오로지 폭력적으로 감행한다. 그에 비하면 소렌조는 수동적이며 존재감이 약하다.
지오바니와 아나벨라가 사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작가는 추기경을 통해 노골적으로 부정의를 폭로한다. 살인죄를 저지른 그리말디를 추기경은 대놓고 비호한다. 이유는 단지 그가 귀족 태생이라는 것. 신분질서 앞에서 도덕과 법질서는 무력하다. 자식을 잃은 도나도는 절규하지만 무력하기 그지없다.
지오바니와 아나벨라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수사의 설득과 종교적 두려움으로 아나벨라는 지오바니와 관계 유지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지오바니가 헤어져야 한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받아들인다. 여기서 양자의 인식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지오바니의 칼에 쓰러지며 아나벨라는 오빠를 무정하다고 지칭하며 그를 용서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한다. 이어 아나벨라의 심장을 칼끝에 꽂고 무대에 등장하는 지오바니를 보면 과연 지오바니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지오바니) 소렌조, 너는 이로써 목적을 잃었다! 나는 이제 다가오는 너의 음모를 막고, 하나의 사랑을 죽였다, 나의 심장을 저당 잡힌 그 각각의 핏방울을 위해서. 사랑스러운 아나벨라, 너는 상처를 입고도 얼마나 과하게 영광스러운지, 불명예와 증오를 이겨 내면서! [제5막 제5장]
지오바니의 아나벨라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정욕의 반영이다. 그는 소렌조와 결혼으로 아나벨라가 변심했을까 질투 섞인 비난을 한다. 그는 소렌조의 복수를 막고 아나벨라를 자신에게서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목숨을 빼앗고 심장을 꺼낸다. 독자는 그의 행동에서 일종의 광기를 발견할 뿐이다. 광기의 지오바니!
작품해설은 남매간의 근친상간적 사랑과 외형적으로 도덕적인 사회의 부정의를 대비하며 오히려 전자의 고결한 순수성을 강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랑이 정말로 고귀하고 순수하여 상찬 받을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특히 오빠인 지오바니를 보면 아나벨라에 대한 사랑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가 여동생을 죽이고 칼끝에 꽂은 심장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나벨라는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는 세상을 향한 선언? 그 결과로 부친의 목숨마저 빼앗는 결과를 빚은 그의 행동은 정당하고 고결한 것인지 계속 의문이 생긴다.
나로서는 이 작품에서 근친상간적 사랑의 비극적 결과와 아울러 당대 사회의 만연한 부도덕을 동시에 폭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로밖에 도저히 인식되지 않는다. 사회를 지탱하던 윤리적 규범이 철저히 무너지고 있는 현상의 사실적 반영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