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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유럽, 발칸유럽을 읽는 키워드 - 개정판
김철민.김원회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6년 2월
평점 :
이 책은 발칸유럽을 소개하는 입문서가 아니다. 발칸유럽 국가마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여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 연구서다. 키워드는 저자가 나름대로 현시점에서 나라별로 주목할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범위는 정치, 역사부터 경제, 산업 및 언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국 1장 분량을 원칙으로 하는데, 어떤 연유인지 루마니아는 빠져있고 불가리아는 두 개의 장에 걸쳐있다. 키워드는 각 장의 부제로 제시되어 있고, 서론 앞에 한 페이지 분량의 내용 요약이 있어 요약만 일독하더라도 기본적 내용 이해가 가능하다. 여하튼 발칸유럽 기본서를 읽은 후 이 책을 펼친다면 꽤나 흥미로운 심층적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제1장 슬로베니아부터 제7장 알바니아는 김철민교수가 집필했는데, 서론, 본문, 결론의 구성을 갖춘 전형적 논문 형식이다. 제8장과 제9장은 불가리아로 김원회교수가 맡았다.
슬로베니아 편은 유로존 가입 이후 슬로베니아가 당면한 경제와 사회 현황을 기술하고 있다. 발칸유럽 국가들은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해 EU와 유로존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어려움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과 이때 어떻게 대응이 이루어질지를 통합 유럽 진입이 가장 빠른 슬로베니아를 통해 먼저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가 대폭 향상된 크로아티아의 관광산업을 짚어보는 대목도 흥미롭다. 크로아티아가 원래부터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대국임을 미처 알지 못하였는데, 저자는 크로아티아의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풍부한 문화유산, 그리고 다양한 음식 및 축제 등을 언급하면서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환경친화적 관광산업 육성정책의 지속성”(P.71)을 강조한다.
불가리아 편은 특별한 현안보다도 그 특유의 언어와 민속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다른 장들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 불가리아인들은 과연 자신의 언어에 자부심을 품을만하다. 끼릴과 메토디에서 비롯한 슬라브 문자-글라골리짜와 끼릴리짜 창제를 통해 고대 불가리아어가 표준이 되어 슬라브족 전체로 확산 전파되었으니. 이러한 불가리아어의 역사는 다소 전문적인 서술이지만 그 의의는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아울러 출생, 결혼, 죽음의 일생의례를 통해 본 불가리아인들의 민속은 확실히 슬라브적이면서도 아시아적 속성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나머지 국가들의 장은 ‘정치’와 ‘민족’ 의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촉발된 민족과 종교의 가면을 쓴 정치분쟁으로 연방은 산산이 쪼개졌고 분열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유럽 한복판에 커다란 무슬림 세력이 존재하게 된 연유와 그들이 오스만 터키의 퇴각 후 기독교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핍박받게 된 역사적 흐름, 그리고 알바니아가 독립과정에서 세르비아 남부와 마케도니아 서부의 무슬림 동족과 통합하지 못하면서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불씨가 잔존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여파가 코소보 전쟁과 마케도니아 내전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편과 세르비아 편, 알바니아 편이 이를 다루고 있다.
한편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 20세기 말의 구 유고연방 내전은 모두 세르비아과 관련되어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세르비아니즘, 즉 세르비아의 팽창 지향적 민족주의도 간과할 수 없다. 최대의 전성기였던 14세기 두샨 왕 시절의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데 우리로 치면 현시점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토 회복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세르비아니즘이 존속하는 한 주변국과의 분쟁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소보가 세르비아인에게 있어 민족 성지라는 ‘민족 정서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면, 몬테네그로 지역은 세르비아에게 있어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P.172)
그럼에도 대세르비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포기 못 하고 몬테네그로에 연연하며, 마케도니아에도 끈을 놓지 못하는 연유도 다소간 이해할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가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저자의 전망처럼 양국의 내적 안정성은 발칸유럽 지역의 정세 변화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의 역사적 친연성, 몬테네그로의 독립 투표에서 찬성률이 과반을 겨우 넘겼다는 사실, 그리고 몬테네그로에 거주하는 무시 못 할 세르비아인의 숫자 등등. 마케도니아는 더욱 복잡하다.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동질성을 주장한다. 코소보와 서부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방침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요동치게 할 것이다. 민족과 영토의 일치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안은 스페인, 터키 등 EU 내 국가에도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며, 하물며 유럽 내 뿌리 깊은 반무슬림 정서는 복잡성을 한층 가중한다.
발칸유럽에 대알바니아 국가를 수립하려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의 의도에 대해 발칸의 여타 국가와 민족들이 세르비아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P.228)
발칸유럽은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로 불린다. 민족 간, 종교 간 상호 조화가 이루어지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그것의 조화가 깨지면 ‘세계의 화약고’-발칸유럽의 또 다른 별칭-로 전락하고 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여기서 발발하였으며, 20세기 말의 크고 작은 국제분쟁도 이곳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발칸유럽의 평화와 안정은 세르비아니즘과 알바니아 민족주의, 그리고 발칸유럽 각국의 영토적 민족주의가 균형을 이루고, 여기에 미국, 러시아 및 서방세계의 이해관계가 접점을 찾을 때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