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회로 발칸유럽 들여다보기
김철민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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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발칸유럽과 개별 국가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이다. 흔한 관광안내서와 차이점은 표제에도 있듯이 볼거리, 즐길 거리가 핵심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문화, 사회 전반과 지역, 도시들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는 데 있다. 450면에 달하는 분량에 다수의 사진과 지도를 고급 용지에 담고 있어 제법 묵직한 편이다.

 

전체적 구성은 처음 3개 장에 걸쳐 발칸유럽의 개요와 역사를 소개하는데, 발칸유럽을 전반적으로 훑고 이해하기에는 자체로도 유용하다. 말미에 실린 2편의 부록도 충실하다. 하나는 20세기 말 발칸유럽의 유고 내전, 보스니아 내전 및 코소보전쟁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그 지역의 최신 현황을 새삼 알게 해준다. 또 하나는 발칸유럽의 역사 연대표로서 서두의 약사를 보다 자세하고 일목요연하게 개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본문은 발칸유럽 9개국을 각 장별로 차례대로 다루는데, 동일한 체제-일반 개요, 역사, 정치, 한국과의 관계, 경제, 문화 및 주요 지역-를 택하고 있어 상투적이지만 잘 정리된 느낌을 준다. 각 장의 내용이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 국가나 내키는 대로 펼쳐봐도 괜찮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대체로 나처럼 발칸유럽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일독을 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특정 국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얼마나 충실한 정보와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우수한 편이다.

 

틀에 박힌 형식과 서술방식으로 지겨워할까 봐 저자는 도처에 생각하기란 코너를 두어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부가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이 유고슬라비아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는?’,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출신이랍니다’, ‘한국 기업들의 크로아티아 진출 시 주의할 점은?’, ‘드라큘라는 역사속의 실존 인물?’ 등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보스니아에서 발발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설명한다. 러시아의 남진, 오스트리아의 동진, 세르비아의 팽창주의 및 발칸유럽 국가 간 영토전쟁 등의 상황이 사라예보서 폭발했던 것이다. 20세기 말 현대유럽 최악의 내전도 본질은 동일하다. 민족과 종교의 평화적 공존이 티토의 사망으로 구심점을 상실하면서 불거진 영토적 민족주의와 세르비아 중심의 유고 연방에 대한 불만, 기독교 세력에 포위당하며 차별받는 유럽 내 무슬림들의 봉기 등. 종교와 민족의 모자이크가 삽시간에 화약고로 돌변한 셈이다. 현재는 봉합되어 잠잠하지만 완치가 아니므로 상처는 언제든 덧날 수 있기에 위기와 안전 우려는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지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다. 동서 양 문명의 접점 지역인 동시에 기독교, 정교 및 이슬람교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에서 빚어내는 다채롭고 풍성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험준한 산악과 아기자기한 해안이 빚어내는 천혜의 자연풍광도 목격하고 싶다. 유럽이면서 유럽이 아닌 듯한 그곳. 처음엔 방송의 후광효과라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알게 될수록 우리가 그동안 발칸유럽을 너무나 등한시하고 간과했음을 자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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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의 공간 한무릎읽기 4
케이트 뱅크스 지음, 이선희 옮김, 황수민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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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는 혼자다.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는 언제나 바쁘시다. 같이 놀 형제도 친구도 없다. 레니는 똑똑하다. 그에게 학교 수업은 아주 쉽다.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데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를 학교 선생님들은 말 안 듣는 골치 아픈 아이로 간주한다. “학습능력에 비해 감정 조절 능력이 뒤처져 있으니”(P.14) 사방에서 좌충우돌하기 마련이다.

 

레니 같은 아이들을 그대로 두면 자칫 부적응자가 되기 마련이다. 적절한 도움의 손길이 없다면. 단체로서의 사회성을 배양하는 기능이 학교의 중요한 목적이다. 규율을 깨뜨리거나 무시한다면 학교의 안정적 운영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행하게도 레니에게는 뮤리엘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이 따랐다. 뮤리엘 선생님이 대단하거나 획기적인 해법을 처방한 것은 아니다. 책장에 레니의 공간을 만들어 준 일, 스스로 옷을 골라 입으라고 한 일, 또 참기 힘든 충동이 들 때면 크게 심호흡을 해보라는 것 등. 무엇보다도 레니의 말에 귀기울여 준다는 점이 다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단한 사건과 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내가 이해와 존중받는다는 느낌에서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로웠다. 끝없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배가 된 기분이랄까. 말할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P.37)

 

레니가 자신의 공간을 채울 물건을 찾으려면 결코 혼자여서는 불가능하다. 자신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기념이나 추억이 생겨야만 그 물건은 보관할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처럼 레니는 밴을 만났다. 그리고 공감의 의미를 발견한다. 레니의 삶에서 밴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고, 밴의 아픔이 더 이상 레니와는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의 장갑은 레니와 엄마 사이의 교감을 가로막는 존재이다. 그래서 레니는 엄마의 장갑을 싫어한다.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다. 외롭기에. 밴 또한 외로웠으리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한층 두렵기도 하고. 그때 레니가 밴에게 다가와 주었다. 레니 덕택에 밴은 흐뭇한 추억 한가지는 품고 떠날 수 있었으리라. 레니도 밴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심정으로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깨어나는 것과 같아. 깨어나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거야. 근데 우리 주위에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 (P.183)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고 삶이 순전한 행복만은 아님을 깨달을 때 철들었다고 한다. 씁쓸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고자 하면 불가피하다. 레니도 이제 그것을 알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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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0
이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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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전집 010.

481면 중 289면에서 454면까지는 한문 원본의 교주본을 수록하였다. 원본에 관심이 크거나 한문에 조예가 깊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독자는 본문과 해설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는 300면이 약간 넘는 분량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여러모로 적절한 분량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허구의 날줄과 씨줄을 교묘하게 짜올린 작품으로, 역사적 배경인 명나라 시기의 중국 전역에 대한 정확한 지리적 인식을 갖고 서사를 전개한 점이 놀랍다. 서두의 중국 지도와 비교하면 무척 흥미롭다.

 

고전소설의 구성 상 특징인 뛰어난 재주를 가진 주인공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갖은 시련을 헤친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역사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전형적 라인을 따라가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형제간의 불화와 갈등이다. 자기 자식보다 우월한 이복자식을 시기하여 계모가 구박하는 작품은 더러 있지만, 여기처럼 동생을 대놓고 학대하는 내용을 담은 고전소설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에서 형제간 불화의 전초는 화진에 대한 화욱의 편파적 애정 탓이기도 하다. 재주가 뛰어나 가문을 빛낼 동생에게 마음이 쏠릴 수 있겠지만, 형제간 우애, 집안의 장자에 대한 존중 등 가정 내 훈육 관점에서는 아버지의 처사가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계모 심씨와 형 화춘의 마음속 쌓인 앙금이 결국 화진을 향해 분출되었고, 주인공과 윤옥화, 남채봉은 참으로 백척간두의 위기를 겪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주인공들에 대한 계모의 박해는 하도 극심하여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작중에서 계모와 화춘은 악인의 전형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양자 모두 생사의 위기에 직면하여 화진의 변치 않은 효성과 우애를 깨닫고 개과천선의 미덕을 발휘한다. 악인은 따로 있으니, 화춘의 첩 조월향과 친구 범한과 장평이다. 그들은 화춘의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통정하고 재물을 훔쳐 달아난다. 여기서 화춘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화진에 대한 화춘의 태도는 주변의 재촉과 꼬드김에 마지못해 사태에 휩쓸리는 듯한 양태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결과론적으로는 분명 악인적 요소가 있지만 귀가 얇고 사려분별이 미숙한 인물로 보는 게 오히려 합당하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며, 이본에 따라 인물, 서술 및 세부묘사에서 무시 못 할 차이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 편의 판본만 보고 작품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창선감의록>의 이본들은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서술방식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 갈등구도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당대 독자들이 읽었던 <창선감의록>은 하나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중략)......다양한 <창선감의록>의 모습은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이본 중에서 어떤 텍스트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주제는 다르게 파악되며,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P.460)

 

소설의 주제는 표제에서 확연하다. ()과 의()가 그것이다. 단언하면 은 화진의 변치 않는 효성과 우애이며, ‘는 그의 굳건한 충성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이 따분하고 획일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화진의 처남 윤여옥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들이 반영되어 있고, 부정한 인물인 조월향과 범한 등은 오히려 소설에 사실미를 부여한다. 또한 청원 스님과 곽선공의 존재는 전형적 유가풍의 분위기에 불가와 도가적 색채를 불어넣어 작품을 다채롭게 꾸미는 데 일조한다.

 

개인적으로 화진의 무조건 순응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길 데 없이 학식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주인공이 계모와 이복형의 처분에 무력하게 목숨을 내맡기고 일체의 꿈틀거림도 비치지 않는 모습은 존경스럽다기보다는 무기력해 보일 따름이다.

 

작자는 그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가 현실에서도 실현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작자가 소설 <창선감의록>을 쓴 이유이다. <창선감의록>그래야만 하는당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허구적 공간이다. (P.467)

 

작품해설은 작가의 의도를 현실에 대한 당위로 받아들인다. 글쎄 그것이 당대의 추앙받는 가치관이라면 봉건사회가 무너지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단지 허구적 극단화라면 이건 교각살우(矯角殺牛)에 가깝다. 어찌 되었든 작가의 의도는 궁금하다. 속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나의 모습은 막장드라마에 심취한 애호가와 다를 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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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유럽, 발칸유럽을 읽는 키워드 - 개정판
김철민.김원회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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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발칸유럽을 소개하는 입문서가 아니다. 발칸유럽 국가마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여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 연구서다. 키워드는 저자가 나름대로 현시점에서 나라별로 주목할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범위는 정치, 역사부터 경제, 산업 및 언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1장 분량을 원칙으로 하는데, 어떤 연유인지 루마니아는 빠져있고 불가리아는 두 개의 장에 걸쳐있다. 키워드는 각 장의 부제로 제시되어 있고, 서론 앞에 한 페이지 분량의 내용 요약이 있어 요약만 일독하더라도 기본적 내용 이해가 가능하다. 여하튼 발칸유럽 기본서를 읽은 후 이 책을 펼친다면 꽤나 흥미로운 심층적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1장 슬로베니아부터 제7장 알바니아는 김철민교수가 집필했는데, 서론, 본문, 결론의 구성을 갖춘 전형적 논문 형식이다. 8장과 제9장은 불가리아로 김원회교수가 맡았다.

 

슬로베니아 편은 유로존 가입 이후 슬로베니아가 당면한 경제와 사회 현황을 기술하고 있다. 발칸유럽 국가들은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해 EU와 유로존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어려움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과 이때 어떻게 대응이 이루어질지를 통합 유럽 진입이 가장 빠른 슬로베니아를 통해 먼저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가 대폭 향상된 크로아티아의 관광산업을 짚어보는 대목도 흥미롭다. 크로아티아가 원래부터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대국임을 미처 알지 못하였는데, 저자는 크로아티아의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풍부한 문화유산, 그리고 다양한 음식 및 축제 등을 언급하면서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환경친화적 관광산업 육성정책의 지속성”(P.71)을 강조한다.

 

불가리아 편은 특별한 현안보다도 그 특유의 언어와 민속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다른 장들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 불가리아인들은 과연 자신의 언어에 자부심을 품을만하다. 끼릴과 메토디에서 비롯한 슬라브 문자-글라골리짜와 끼릴리짜 창제를 통해 고대 불가리아어가 표준이 되어 슬라브족 전체로 확산 전파되었으니. 이러한 불가리아어의 역사는 다소 전문적인 서술이지만 그 의의는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아울러 출생, 결혼, 죽음의 일생의례를 통해 본 불가리아인들의 민속은 확실히 슬라브적이면서도 아시아적 속성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나머지 국가들의 장은 정치민족의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촉발된 민족과 종교의 가면을 쓴 정치분쟁으로 연방은 산산이 쪼개졌고 분열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유럽 한복판에 커다란 무슬림 세력이 존재하게 된 연유와 그들이 오스만 터키의 퇴각 후 기독교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핍박받게 된 역사적 흐름, 그리고 알바니아가 독립과정에서 세르비아 남부와 마케도니아 서부의 무슬림 동족과 통합하지 못하면서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불씨가 잔존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여파가 코소보 전쟁과 마케도니아 내전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편과 세르비아 편, 알바니아 편이 이를 다루고 있다.

 

한편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 20세기 말의 구 유고연방 내전은 모두 세르비아과 관련되어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세르비아니즘, 즉 세르비아의 팽창 지향적 민족주의도 간과할 수 없다. 최대의 전성기였던 14세기 두샨 왕 시절의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데 우리로 치면 현시점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토 회복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세르비아니즘이 존속하는 한 주변국과의 분쟁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소보가 세르비아인에게 있어 민족 성지라는 민족 정서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면, 몬테네그로 지역은 세르비아에게 있어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P.172)

 

그럼에도 대세르비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포기 못 하고 몬테네그로에 연연하며, 마케도니아에도 끈을 놓지 못하는 연유도 다소간 이해할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가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저자의 전망처럼 양국의 내적 안정성은 발칸유럽 지역의 정세 변화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의 역사적 친연성, 몬테네그로의 독립 투표에서 찬성률이 과반을 겨우 넘겼다는 사실, 그리고 몬테네그로에 거주하는 무시 못 할 세르비아인의 숫자 등등. 마케도니아는 더욱 복잡하다.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동질성을 주장한다. 코소보와 서부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방침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요동치게 할 것이다. 민족과 영토의 일치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안은 스페인, 터키 등 EU 내 국가에도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며, 하물며 유럽 내 뿌리 깊은 반무슬림 정서는 복잡성을 한층 가중한다.

 

발칸유럽에 대알바니아 국가를 수립하려는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의 의도에 대해 발칸의 여타 국가와 민족들이 세르비아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P.228)

 

발칸유럽은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로 불린다. 민족 간, 종교 간 상호 조화가 이루어지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그것의 조화가 깨지면 세계의 화약고’-발칸유럽의 또 다른 별칭-로 전락하고 만다. 1차 세계대전이 여기서 발발하였으며, 20세기 말의 크고 작은 국제분쟁도 이곳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발칸유럽의 평화와 안정은 세르비아니즘과 알바니아 민족주의, 그리고 발칸유럽 각국의 영토적 민족주의가 균형을 이루고, 여기에 미국, 러시아 및 서방세계의 이해관계가 접점을 찾을 때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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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계월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9
조광국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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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전집 019.

조선시대 불세출의 여자 홍계월! 갇혀 있던 여성영웅서사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다’. 이렇게 책 뒤표지에 홍보문구가 적혀 있다. 봉건적인 조선 시대에 여성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억눌린 여성의 체제 내 한계 극복을 위한 분투 성과를 담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독후감은 한마디로 한풀이, 교각살우(矯角殺牛).

 

평국이 눈물을 흘리고, 남자가 되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다. (P.68)

계월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분해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P.73)

 

평국은 봉건사회의 남성우위에 극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남존여비로 지칭되는 조선 시대에 어찌 콤플렉스가 없겠는가마는 평국의 반응은 한결같이 매우 격렬하다. 또한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여성성을 낮추고 남성성을 높이는 부작용마저 드러낸다.

 

평국은 친구 겸 형제이자 남편이 된 보국을 무시한다. 개인적 능력 면에서 우월한 자신이 보국을 남편으로 높여 섬겨야 하는 게 마뜩잖은 것이다. 작품 내 지속적으로 보이는 평국의 보국 괴롭히기와 조롱하는 장면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군대 최고 지휘관으로서 남편을 부하로 부리고 군례를 받으며, 전장에서 보국의 멱통을 잡아 천자 앞에서 욕보인다. 또한 남편의 애첩을 시기하여 교만하여 예법을 어겼다고 뜬금없이 군법을 적용하여 목을 베어버린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국이 평국, 즉 계월에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함은 당연할 것이다.

 

이후부터는 예로써 남편 보국을 섬기니, 보국은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편으로 두려워했다. (P.90)

 

보국의 뛰어난 역량과 거칠 것 없는 용맹은 과연 영웅이라고 할만하다. 반면 포용력과 잔인함은 부정적 여성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국은 남편을 힘으로 꺾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부모의 원수를 갚는 대목의 지나친 잔인성은 여태까지 평국의 긍정적 이미지마저 가려버린다.

 

작품해설은 둘째 아들의 성씨를 홍으로 하여 평국의 성을 따르게 한 점을 페미니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과도한 의미부여다. 천자는 위국공을 초왕에, 여공을 오왕에 임명한다. 여공의 아들이자 위국공의 유일한 사위인 보국은 승상으로 천자를 보좌하여야 하므로 첫째 아들을 오왕의 태자로, 둘째 아들을 초왕의 태자로 보낸 것이다. 위국공이 홍씨이므로 태자의 성을 동성으로 변경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일개 사인이라면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왕실의 대통을 잇는 사안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전통소설로 자체로서 의의가 있고 내용 자체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작가의 글 쓴 의도를 존중하더라도 이 작품을 페미니즘의 긍정적 지향점으로 삼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한편 소설 자체는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다. 책의 후반부는 원본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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