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생명
팀 플래너리 지음, 이한음 옮김, 피터 샤우텐 그림 / 지호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자연의 빈자리>에 이은 팀 플래너리와 피터 샤우텐 콤비의 후속작이다. 옮긴이와 출판사도 전작과 동일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또한 큼지막한 판형의 풀 컬러와 고급지로 제작되어 있다. 역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사에 가까운 멋진 실물의 동물 그림을 옆에 나란히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서 팀 플래너리와 피터 샤우텐이 주목하는 것은 현존하는 생명체의 경이로울 정도로 기이한 다양성과 아름다움이다. 서두의 짧은 생명 연대기를 통해 생명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조망한 후, 생명의 경이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6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수직으로 본 세계, 이동 전문가들, 먹이와 섭식, 형태를 바꾸는 동물들, 특이한 서식지에 사는 동물들, 얕고 깊은 바다. 일반 독자라면 굳이 유형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제각각 신기하고 놀라움과 찬탄을 불러올 만한 개별 생명체를 보는데 매혹되면 족하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여러 풍조류의 호화찬란함을 뒤로 한 채, 흰 우아카리(P.82)가 눈길을 끈다. 과음하여 불그스레해진 영국인을 연상시킨다는데 과연 흡사하다. 두크원숭이(P.96)는 산을 바라보는 고독한 인간을 닮았다. 부갠빌원숭이얼굴박쥐(P.106)는 최근에 발견되어 지구의 생명 다양성을 입증하고 있다. 긴입바늘두더지, 갈색키위, 새부리코끼리고기(P.109)는 포유류, 조류, 어류라는 서로 다른 동물군임에도 벌레라는 먹이의 공통점으로 외형상 유사성을 지닌다. 카메룬카멜레온(P.165)은 과시행동이 기이한 형태와 어우러지니 이 세상 동물 같지 않다. 올름(P.173)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도롱뇽 종류는 어둠 속에서 거의 먹지도 않고 백년을 산다고 하는데, 생존과 망각(멸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인더스강돌고래(P.174) 또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잠도 못 자고 시력도 거의 상실했다고 하니 찬탄과 탄식의 경계 즈음에 해당한다. 갑자기 양자강돌고래는 어떨지 궁금하다.

 

심해 생물은 하나같이 상식을 넘어선다. 자연다큐 또는 영화를 통해 접하는 그들의 모습은 낯설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데, 이 책에서도 여러 동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글자 그대로 부채 같은 부채어(P.185), 과연 물고기인지 의심되는 쥐덫고기(P.195), 거울배통안어(P.206)와 유리얼굴통안어(P.207)의 현저한 대비. 특히 후자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고양이 눈과 닮았다. 그 외 나무수염아귀(P.212)와 늑대덫아귀(P.216) 등도 외모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 늑대덫아귀는 진정한 낚시꾼의 전형이다.

 

바늘방석아귀(P.222)와 심해장어류(P.211)는 외모만큼이나 그네들의 삶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전자의 수컷은 암컷의 몸에 머리 전체를 파고들어 사는 완전한 기생생물이다. 후자는 짝짓기 후 자신의 이빨과 턱을 녹여 알을 만들 에너지를 만든다고 한다.

 

이 책은 심오한 학문상의 이론을 전개하지 않으며, 압도당할 만한 글자 수의 설명을 덧붙여 지루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글은 그림 속 생물의 존재와 특성을 알려줄 뿐이다. 큼지막한 실사 그림을 마음껏 즐기며, 표제와 같이 생명의 경이를 깨달으면 소기의 목적을 다한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부시선 - 수정증보
김학주 지음 / 명문당 / 200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언급했듯이 시중에 나와 있는 악부 시선집은 이 책과, <악부민가>(문이재), <악부시집>(지만지)이다. 세 권 중에서 질과 양적 측면에서 이 책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수록 작품이 가장 많다.

 

악부시는 송대 곽무천이 편집한 <악부시집>이 기본 텍스트다. 편역자(책에서는 저자로 표기하고 있지만, 편역이 올바르다고 본다)<악부시집> 중 한대, 남북조 시대의 대표적인 악부시 100편 이상을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서두에 이해를 돕기 위해 악부시에 대한 해제를 붙이고 있으며, 매편마다 원문과 번역문을 수록하고 상세한 주를 더한 외에 특히 원문에 일일이 한글 독음을 달아주어서 초심자도 쉽게 원문을 가까이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역시 시대순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위악부에는 기왕에 널리 알려진 노래가 많이 등장한다. ‘성 남쪽에서 싸우다’, ‘하나님’, ‘동문행’, ‘부병행’, ‘고아행’, ‘밭둔덕의 뽕나무’, ‘열다섯 살에 군대 따라 출정하다등 전쟁, 가난과 같이 민중의 참담한 실상을 반영하는 외에 사랑의 맹세도 다짐하고 있다. 다른 책에 없는 작품 중 공무도하는 과거 교과서에서 고조선의 노래라고 배웠던 노래이며, ‘상봉행은 호화로운 귀족층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어 이채롭다. ‘산으로 약초 캐러 가다초중경처는 당대의 억압된 혼인제도와 사회관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조악부는 흔히 한두 수 정도만 맛보기로 소개하던, ‘자야가12, ‘자야사시가23, ‘독곡가6수를 싣고 있어 작품의 온전한 면모를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그 외 자야변가’, ‘상성가’, ‘환문변가’, ‘전계가‘, ’단선랑‘, ’석성악‘, 그리고 막수악등 간과되기 쉬운 남조의 악부시를 다량으로 수록하여 흥미롭다. 양자강 이남의 한족 왕조 체제인 남조는 주로 사랑을 노래한 서정적 성격으로 부드럽고 아기자기하여 여성적 시풍을 띠고 있다.

 

반면 흔히 중원으로 일컬어지는 양자강 이북과 황화 유역을 차지한 유목민족의 북조 국가에서는 굳세고 대범한 남성적 시풍을 지니고 있어 대조적이다. 여러 국가 간 치열한 영토싸움을 벌이다보니 자연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을 수밖에 없다. ‘목란사’, ‘기유가’, ‘낭야왕가등 유명한 노래 외에 자류마가’, ‘지구악가사’, ‘작로리가사’, ‘격곡가’, ‘착닉가농두가사등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들도 여럿 담고 있다.

 

시문학의 경우 직접 읽고 음미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이해를 갖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유명한 노래 위주로 해서 번역문을 통해서나마 읽어나가 보면 금시 노래가 뜻하는 바를 알게 된다. 악부시의 장점은 명료하고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지나친 시적 기교를 구하여 모호하고 난해하게 되는 폐해가 없다. 민중들의 노래에서 출발하였기에 건강한 정서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위의 <악부시>는 껍질만 남고 알맹이는 없어져 가는 전통 문학의 조류에 꾸준히 새로운 형식에 싱싱한 알맹이를 담아 문단에 공급했던 것이다. (P.25)

 

편역자는 해제에서 악부시의 의의를 위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 훗날 백거이 등이 신악부운동을 전개한 까닭도 결국 민중에 기반을 둔 악부시의 건강성과 우수성을 당대에 되살리고자 하는 의도라고 하겠다.

 

<시경> 공부 도중 잠깐의 외도라고 하겠지만, 시대적 간극이 주는 친밀성의 정도는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직접적이고 현대적이며 인간적이라고 할까. 이제 다시 <시경>의 세계로 돌아가야겠지만 악부시를 알게 된 것은 신선한 자극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악부민가>(문이재),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에 수록된 악부시의 편명과 작품수를 확인하여 비교표를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 아동문학책에서 소개되었길 때 호기심에 읽게 되었는데, 솔직히 난감했다. 작품 자체는 꽤나 흡인력을 지니고 있으며, 시사점도 제법 깊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과연 이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느냐는 고민이 필요하다. 창녀의 자식, 소위 엉덩이로 벌어먹는 여인들의 구역을 배경으로 하며, 게다가 여장남자마저 등장한다. 결말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감추고 옆에 머물러 있는 아이의 행동. 개방적, 포용적 문화의 프랑스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린이를 독자로 도저히 볼 수 없다.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창녀의 아들이란 곧 뚜쟁이, 포주, 범죄행위, 청소년 범죄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우리 창녀의 자식들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아주 좋지 않은 평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P.163)

 

작중 인물은 하나같이 변두리 인간들이다. 주류 프랑스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슬럼가에 사는 아프리카계 이주민들, 창녀들, 그리고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유대인. 창녀의 아이인 모하메드, 즉 모모는 부모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양육비를 받고 아이를 대신 길러주는 전직 창녀 로자 아줌마가 모모의 유일한 의지처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아이들과 달리 모모와 아줌마는 비록 티격태격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무슬림인 모모와 유대인인 로자 아줌마.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지켜야 했다.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P.257~258)

 

모모는 어리지만 생각은 어리지 않다. 자칭 철학자라고 하며,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다.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며 시니컬한 구석도 있다. 그런 모모에게 생부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로자 아줌마는 언제나 걱정한다. 솔직히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를 문득 비싸게 팔아버리고 그 돈을 하수도에 처넣는 행위, 꿈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암사자를 불러내는 대목에서 누군들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모모는 혼자다. 로자 아줌마 외에 친절하던 하밀 할아버지도 노쇠하여 기억이 깜빡깜빡한다. 의사인 카츠 선생님은 결국 프랑스 사람이다. 불안정한 신분의 그들에게 프랑스는 친절하지 않다. 그에겐 자움 씨네 형제와 왈룸바 씨 일행은 더 친근하다. 그에게 사심 없는 동정과 친절을 베푸는 이는 여장남자인 롤라 아줌마로 모모의 눈엔 그가 더없이 좋은 사람이다.

 

불로뉴 숲에서 몸을 팔아서 먹고사는 롤라 아줌마는 여장 남자인데, 그녀가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다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녀만 같으면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고 불행한 사람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도 말했다. (P.278)

 

그럭저럭 버티어 가던 그들에게 난관이 닥친 것은 로자 아줌마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부터다. 점점 줄어들던 양육비는 끝내 끊겨버리고 아줌마는 정신을 놓기 일쑤다.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권고를 외면한 채 두 사람은 지하 은신처에서 아줌마의 최후를 같이 맞이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은 마지막 악장에서 삶을 거꾸러뜨리는 해머의 타격이 등장한다. 로자 아줌마는 나치 대학살의 아가리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으나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다. 일평생을 매춘부로서, 전직 창녀로서, 엄습한 충격으로 심신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에게 무슨 커다란 잘못이 있었던가? 운명은 평범한 여인을 헤어날 길 없는 고통의 심연에 던져버렸다. 모모가 보기에 그건 너무나 불공평하다.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그 작자는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낯짝도 안 보여요. (P.295)

 

모모는 자신의 삶을, 앞날을 궁금해 한다. 자신은 결코 엉덩이로 벌어먹는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변두리, 밑바닥 삶을 경험한 그는 나이에 비해 인생에 조숙하다. 그에게 라몽과 나딘은 산다는 것의 본질을 아직 모르는 순진한 어른에 불과하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잔뜩 찡그려가며 생각했다. 이런 모습일까? (P.173)

 

에밀 아자르는 자신의 삶을 은폐하고 로맹 가리라는 새로운 가면의 삶을 살았던 연유가 궁금하다. 그 역시 작가로서 기존의 한계를 무너뜨릴 필요를 느꼈던 것인가. 그래서 에밀 아자르로서는 꿈도 꿀 수 없던 생소하면서도 과감한 문학세계를 창조하고 싶었을 수도 있으리라.

 

이 작품의 메시지가 사랑이라 하더라도 주인공 모모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소위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를 둘러싼 사랑은 절름발이고 상처투성이였다. 새살이 돋아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

사랑해야 한다. (P.3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부시집
곽천무 지음, 강필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악부 시선집은 모두 세 종류다. <악부시선>(명문당), <악부민가>(문이재), 그리고 이 책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악부시집>의 원전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점에서 독특하다. 악부시는 송대 곽무천이 편집한 <악부시집>이 근원적인 텍스트다. 이 책은 원전에서 약 1%를 발췌해 번역했다고 편집자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다. 원전이 워낙 방대해서 그렇지 이 책에 수록된 편수도 45편이므로 시선집치고 적은 편은 아니다. 구성은 서두의 <악부시집> 해설에 이어 각 작품의 번역문과 원문, 그리고 작품별 해제를 추가하고 있다. 원문의 독음은 붙이지 않았지만, 주석을 비교적 상세히 달아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악부시 중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민가에 해당하는 유형이다. 악부의 유래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한 민가의 수집에 있었다고 볼 때, 악부시의 진면모는 민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시경>의 핵심이 국풍이라고 해서 소아’, ‘대아을 외면해서는 <시경>의 전모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민가에 해당하는 상화가사청상가사만 편중하여 곽무천이 구분한 12분류를 무시한다면 <악부시집>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악부의 기능 중 하나가 왕실에서 연회와 제사 등에 사용할 노래를 창작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원전의 분류 체계에 따라 작품을 골고루 수록하여 비단 민가로서의 대중적인 악부시외에 <악부시집>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여타 시선집에 등장하지 않는 민가 외의 작품이 20여 편이나 들어있는 점은 참신하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두보, 이백, 백거이 등의 악부시도 포함되어 있다.

 

일단 고취곡사, 상화가사와 청상곡사에 실린 노래들은 성 남쪽에서 싸우다하늘이시여’, ‘강남’, ‘길가의 뽕나무’, ‘서문행’, ‘동문행’, ‘병든 아내의 노래자야가등 비교적 친숙한 노래들이다. ‘목란의 노래는 횡취곡사에 들어가 있다. 당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영역인 전쟁, 가난 및 사랑이 가감없이 반영되어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병든 아내의 노래의 가난, ‘백두음의 사랑, 그리고 병졸 아낙의 슬픔의 전쟁이 유달리 인상적이다.

 

한고조의 큰바람이 일다와 조식의 백마편은 역사 속 인물이 먼지 낀 박제에서 벗어나 되살아난 듯 반가움이 앞선다. 채염의 호가십팔박역시 삼국지와 관련 있는 여성 인물로서 자신의 기구한 삶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13번째 곡만 수록하고 있다. 그 사연이 너무나 애처로워서 인터넷을 통해 나머지 전곡도 다 찾아볼 수밖에 없을 정도다.

 

악부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시경>과 당시(唐詩)를 잇는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형식에서는 <시경>의 사언시에서 벗어나 후대 시의 전형인 오언시의 선구자가 되었다. 내용에서는 시적 기교에 매몰되어 참다운 시 정신을 잃어버린 당시(唐詩)를 일신하기 위한 백거이 등의 신악부 운동으로 드러났다. 귀족들의 우미하고 세련된 정형화된 소재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과 대중들의 적나라한 삶을 소재로 삼아 시적 역동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채시관-앞 시대의 멸망 원인을 살펴보다를 보면 백거이가 건강한 악부시의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있다.

 

교묘의 제사곡들을 임금을 찬미하고

악부의 농염한 가사는 임금을 기쁘게 했을 뿐,

암시하고 건의하고 풍자하는 말은

천 편 만 구 중 한 자도 없었다네.

......

임금님, 임금님, 이 말씀을 들으소서.

가려진 귀와 눈을 열어 민심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노래를 들어 풍자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P.179~180)

 

 

<악부민가>(문이재),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에 수록된 악부시의 편명과 작품수를 확인하여 비교표를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부민가 - 당전편 203 중국시인총서(문이재) 203
김상호 엮음 / 문이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시경>을 연간계획으로 천천히 공부해 나가는 도중, 우연찮게 K-MOOC수업에서 중국 악부시를 접하게 되었다. <시경> ‘국풍편과 일맥상통하는 정서를 담고 있는 악부시에 흥미를 느껴 악부 시선집을 펼쳐든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악부 시선집은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 그리고 이 책이다. 세 권이 각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은 악부시 중에서 민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악부의 유래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민가의 수집에 있었다고 볼 때, 악부시의 진면모는 민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악부시는 송대 곽무천이 편집한 <악부시집>이 일차 텍스트다. 편역자(책에서는 편저라고 되어 있지만, 편역이 올바르다고 본다)<악부시집> 중 한대, 남북조 시대의 민가에 해당하는 30편 가량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구성은 번역문과 원문에 이어 작품별 해설을 추가하고 있는데, 해설은 편역자의 감상평 내지 소회의 성격이 강하다.

 

민중에 불리던 노래이니만치, 당대인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다. 전쟁, 가난, 사랑과 배신, 불합리한 사회제도 등이 그러하다. ‘성 남쪽에서 싸우다열 다섯에 출정하였다가는 전쟁의 고통과 무상함을 서늘하게 묘사하여 그들이 받은 고통을 되새기게 한다. ‘동문을 나서며고아의 노래는 사회 기층민들이 겪는 가난과 생활의 뼈저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시절에나 사랑은 노래되는 법. ‘하늘이시여원망의 노래는 사랑의 슬픔과 굳셈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한대와는 달리 남조와 북조의 악부는 성격에 차이가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남조 악부는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여성적 느낌인 반면, 북조 악부는 좀 더 굳건하고 세련되지 않은 대범한 남성성이 느껴진다. 남조는 한족, 북조는 유목민족이 지배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기유가낭야왕의 노래에서 죽음을 항상 옆에 두고 살아가는 유목민족의 처연함이 드러난다. ‘칙륵의 노래는 북방 초원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한대 초중경의 아내와 북조 목란의 노래. 양자는 중국 시문학에서 보기 드문 장편 서사시에 해당한다. 특히 전자는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라는 편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엄중한 유가적 사회질서, 부모에 대한 효와 아내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 가부장적 틀에서 억눌림을 당하는 여성의 지위. 이 모든 것들이 처연히 혼재하여 시대의 모순과 사람들의 고뇌를 일시에 보여준다.

 

후자는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으로 더 유명하다.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았는데, 원작을 어설프게 흉내만 냈을 뿐이다. 부모에 대한 효성, 남장여인의 영웅성, 전쟁으로 점철된 당대의 현실 등이 담담하지만 꿋꿋하게 노래된다.

 

편역자는 말미에 악부시 전반을 소개하는 해설을 수록하고 있다. 개략적으로 악부시의 연혁과 구성, 의의를 기술하는데, 기교주의에 매몰된 훗날 신악부운동이 벌어진 연유도 결국 민중에 기반을 둔 악부시의 건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악부시 중에서 민가적 성격의 주요 작품만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음이 최대의 장점이다. 따라서 이 한 권만으로 악부시의 요체를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원시는 몇몇 어휘 설명을 제외하면 독음도 없이 달랑 원문만 실어 놓아 아쉽다.


 

<악부민가>(문이재),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에 수록된 악부시의 편명과 작품수를 확인하여 비교표를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