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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지 : 현대어본 ㅣ 조선 왕실의 소설 2
임치균.배영환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1월
평점 :
<삼국지연의> 애독자라면 유비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사하고 제갈공명이 신출귀몰한 책략을 발휘했음에도 북벌에 실패한 것에 애통함을 지닐 것이다. 글 솜씨가 좋은 이라면 유비와 제갈공명을 각색하여 자신만의 ‘삼국지연의’를 써보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도 그러하였음에 틀림없다.
작품의 전반부는 임성 일행이 바다에 표류하면서 온갖 요괴를 물리치는 반복되는 이야기다. 이무기, 쥐, 원숭이, 여우, 바다의 잡괴 등이 천년을 살거나 사람의 진액을 빼앗아 흉악무도한 요괴가 되었다. 종황의 기지와 도술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요괴를 무찌르는 과정은 임성 일행이 시련을 통해 천명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웅변한다. 바다 가운데서 옥새를 얻고, 서해 용왕이 이를 빼앗으려다 오히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소인이 알아뵙지 못하고 하늘이 정한 일을 범하였으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다 할 것입니다. (P.114)
후반부는 임성 무리가 미지의 태원 땅에 도착하여 서안국을 시발로 태원 전체를 통일하는 장대한 위업을 기술하고 있다. 중원에서는 자신의 땅이 천하의 중심이지만 태원에서는 태원이 곧 천하의 가운데다.
참으로 괴이하도다. 천하에 다만 태원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인데, 또다시 중원이라는 곳이 있다니요? (P.142)
임성이 서안국을 평정하고 대흥왕에 즉위하는 장면은 촉의 제위에 오르는 유비를 연상시키는데, 이 작품의 주요 대목은 <삼국지연의>를 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더불어 본문에서 유비와 제갈공명 등을 되풀이 언급한다. 귀신의 섬에서 두 요괴를 무찌르기 위해 태극진을 펼치는 종황은 제갈공명에 다름 아니며, 서강대전은 적벽대전의 판박이다. 종황과 안정국의 진법 대결은 공명과 중달의 그것과 마찬가지며, 명라성 밖 골짜기의 전투는 제갈량이 호로곡과 반사곡에서 사마중달을 화약으로 폭사시키려던 계책과 동일하다. 곧 이 작품에서 임성은 유비, 종황은 제갈량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태원 통일의 위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면 시시할 것이다. 따라서 굉장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금국 장수 조충과 안정국이 대단히 뛰어난 인물임을 종황의 입을 빌어 드러낸다. 이로써 이들을 무너뜨린 종황의 공훈이 한층 두드러지는 의도도 있다. 명라성 밖 골짜기 전투에서 안정국과 금국 병사 3만 명을 폭사시킨 종황은 제갈공명처럼 탄식한다.
비록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일이지만 크게 음덕이 상하였으니, 나는 천명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오. (P.265)
연의에서 제갈공명은 천명을 누리지 못하지만 여기에서 종황은 탄식과는 무관하게 천명을 누리는 게 차이점일 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쌍고검을 휘두르던 유비의 존재감은 연의 중반부 이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도 초반에 임성이 대단한 능력의 인물이라고 소개되지만, 작품 내내 임성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유비와는 달리 임성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종 천명을 받은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실질적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종황이다.
금국을 평정하고 최후 정벌을 위한 수백만 대군이 출정하는데 처음 서안국 출정을 위한 초라한 군세와 엄청난 대조를 보인다. 나머지 4국은 아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선언한다. 이미 태원의 운세는 쇠하고 천명은 임성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이들의 항복 논리다. 현명한 동시에 무성의하기조차 하다.
하늘이 임성에게 천명을 준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천명을 받은 사람에게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에 응하고 인심을 따라 무죄한 백성을 전쟁에 빠뜨리지 않는 길입니다. (P.274)
이 책에서 ‘천명’은 중요한 화두다. 임성 일행이 중원에서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한 것은 원나라 오랑캐의 천명이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임성 일행이 태원을 빼앗은 것은 자신들에게는 천명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하겠으나 태원 사람들에게는 웬 날도적한테 나라를 빼앗긴 꼴이다. 천명의 무상함이 드러난다.
슬프다! 이 같은 충의지사가 무도한 때를 만나 힘을 다하여 임금을 섬겼지만, 하늘의 명을 어쩌지 못하고 마침내 절개를 세우고 의를 위하여 죽었구나. 어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P.268)
앞서 읽은 <영이록>과 마찬가지로 주석의 미비함이 깊은 이해를 저해하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예컨대 종황이 금국과 대결하기 위해 출정할 때 내린 일곱 가지 군령은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하나는 경, 둘은 만, 셋은 대, 넷은 패, 다섯은 배, 여섯은 난, 일곱은 의이다. 이 일곱 가지는 군대의 한결같은 법이니, 만약 이를 어기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모든 병사들은 명심하도록 하라. (P.206)
작품 초반에 중원에서 피신하려는 임성 일행은 조선에 가고자 하는데, 이상국가 조선에 대한 예찬이 그득하다.
저는 일찍이 동방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수가 아름답고 뛰어난 인물이 많아 예악과 법도는 요순시대의 태평한 시절을 본받았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나라를 ‘하늘이 보배롭게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날이 새도록 배를 타고 가서 그 어질고 착한 나라에 도착하면 차후에 능히 마음에 품은 뜻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4~25)
이 작품이 중국 소설이 아니라 조선 소설로 판단하는 유력한 근거가 위 대목이다. 중국인이라면 이 정도로 조선을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대 상 고증의 오류가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원나라 지정 연간은 우리역사에서는 고려 말에 해당한다. 그네들이 역사를 꿰뚫는 혜안이 있지 않는 이상 교류가 활발한 고려를 모른 채 조선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험소설이자 군담소설을 좋아하면 비교적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고, <삼국지연의> 애호가라면 차이점과 유사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깊은 감명과 장대한 드라마는 부족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