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 -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아시시의 성자 즐거운 지식여행 19
마크 갈리 지음, 이은재 옮김 / 예경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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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성 프란체스코와 관련하여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그의 삶과 행적, 그리고 신앙에 대해 대강이나마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프란체스코라고 불리는 인물(또는 성자)에 대한 객관적이며 종합적인 면모를 파악하는데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빠트린 점을 메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프란체스코의 아버지는 프란체스코의 초기 전기 작가들이 묘사한 것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피에트로 베르나도네는 돈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아시시 상인들처럼 대중의 존경을 원했으며,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갈망했다. (P.29)

 

프란체스코의 가족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돈만 밝히고 자식의 영적인 각성과 소명에 대해서는 무지한 욕심쟁이로 기술될 정도다. 저자는 프란체스코의 아버지는 당대의 가치관과 윤리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변호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존경받는 시민이 된 사람이었다. 프란체스코의 행위가 당대에 일탈로 비춰질 정도이므로 어떤 부모라도 기꺼이 동의와 지지를 보내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후대는 프란체스코의 성인으로서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와 아버지를 더욱 대비시키고 말았다.

 

프란체스코는 소위 갑툭튀가 아니다. 부패와 타성에 물든 교회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자 한 일련의 흐름이 그에 선행하였다. 리옹의 빈자, 겸손회, 카타리 등은 교회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반교회의 죄명으로 탄압받고 도륙되었다. 프란체스코가 교회의 틀을 그토록 강조했던 배경이 여기에 기인하였을 수도 있다.

 

프란체스코처럼 개혁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려준 교훈은 분명했다.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교회의 가르침과 성직자의 권위의 한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P.57)

 

가난과 무소유, 묵상과 전도를 근본으로 삼는 그의 신념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켜 그에게 몰려들게 하였지만 그로 인해 그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벤처기업의 출발은 한두 명의 탁월한 인재에서 시작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조직과 관리부문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이 단계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벤처신화는 단명에 그치고 만다.

 

[프란체스코]는 수사들이 연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 더 높은 수준의 기도와 예배를 게을리 할 것을 염려했다. 더 훌륭한 설교를 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P.143)

 

우골리노와 엘리아스는 자꾸만 더 많은 학식을 요구했다. 그들은 영혼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수도회의 장기적 성공을 위해서는 학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P.143)

 

이처럼 프란체스코와 그의 계승자들 간의 견해가 갈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수도회 역시 많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공간과 비용, 관리체계를 필요로 한다. 더욱이 입회한 이들의 성격과 태도, 관심 역시 다양하므로 획일적 규율이 쉽지 않다. 모든 이가 프란체스코처럼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지 못하므로 성서 연구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프란체스코의 신념과 배치되므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분열은 그의 생전에 이미 배태되었다.

 

우리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아무것도 원하지 말자.

어떤 것도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지 말자. (P.103)

 

프란체스코의 수도 방식은 극단적이다. 그의 철저한 가난, 순결, 복종, 기도, 충성 등의 규율은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과 세속적 가치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세에 대한 내세의 우위,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 이는 악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육체를 미워합시다.”(P.102)라는 구호로 이어졌다. 매질과 단식으로 육체를 학대할수록 정신은 고양할 수 있으리라는 미망에서 프란체스코 역시 자유롭지 못하였다. 예수와 부처가 득도할 때도 이러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의 일생 내내 이러한 모순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방황을 계속되었다.....프란체스코는 진실로 성인이었지만, 성격적 결함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성인이었다. (P.52)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코는 서양 문화와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개혁이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묵상과 겸손과 복종을 핵심가치로 삼는 수도회의 존재는 종교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민중의 지지와 존경을 유도하는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크지 않은 판형에 고급 모조지, 다수의 칼라 도판, 시의적절한 참고사항 소개 등 이 책의 미덕은 다양하다. 안개 속에서 모호한 윤곽만 드러나던 프란체스코가 비로소 뚜렷이 눈앞에 다가왔다. 저자 역시 종교인이니만치 프란체스코의 말과 행적이 갖는 종교적 의미와 그것이 당대는 물론 현대의 종교계와 사회에 미치는 영적 자극과 각성의 영향도 선명히 밝힌 점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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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66
스노리 스툴루손 지음, 이민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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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에 비하면 북유럽 신화는 근년 들어서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편이다. 순수 문화적 관심보다는 PC게임과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존재가 각인되었다. 북유럽 신화가 켈트 신화와 마찬가지로 서양 문명의 적통을 잇지 못하였고 전승도 상대적으로 미약한 탓이리라. 스톨루손의 이 산문 에다는 13세기에 기록되었으며, 운문 에다가 시기가 다소 앞선다고 하지만 주류 신화에 비하여 전승역사가 비교적 짧다. 어쨌든 국내에 산문 에다의 번역본은 처음 출간이다.

 

이 책은 북유럽 신화의 원전으로서 정통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반면 체계가 잘 잡혀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 한 권으로 북유럽 신화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는 힘들고 다른 해설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도입부는 세상의 탄생과 아스 신족의 연원을 다루고 있는데, 당대의 종교와 지리 지식이 반영되어 고색창연한 신화의 전개를 예상한다면 다소 당혹스럽다. 반면 서리 거인 위미르와 태초의 암소 아우둠라, 세계수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과 신들의 궁전 아스가르드는 흥미롭다. 오딘, 토르, 로키. 이들은 영화 <토르>의 주된 인물로서 친숙한데, 북유럽 신화의 주신들로서 아스 신족에 속한다.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딘은 모든 신과 인간 그리고 그와 그의 힘이 창조한 모든 것의 아버지이므로 모든 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P.35)

 

그리스 신화의 열두 신과 대응하여 오딘을 정점으로 여러 신들이 존재하는데, 유명한 토르를 제외하면 로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로키는 아스 신족이 아니면서 일족으로 간주되는 독특한 지위를 지니는데, 신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역을 전담하고 있다.

 

아스 신들 중 하나로 간주되는 자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아스 신들의 중상모략가’, ‘음모의 원흉’,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은 로키 혹은 로프트이며, 거인 파르바우티의 아들이다......로키는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외모지만, 성격이 사악하고 행동이 변덕스럽다. 그는 교활함에 있어 모든 이를 능가하며, 속이지 않는 것이 없다. (P.66~67)

 

로키는 세 괴물 자식들인 늑대 펜리르, 외르문간드(미드가르드 뱀), 헬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신들의 적이다. 훗날 라그나뢰크가 도래했을 때 이들은 오딘과 토르와 목숨을 맞바꾼다. 로키 자신도 발드르의 죽임을 사주하여 신들의 세상에 균열이 생기게끔 하는데 일조한다. 신화에서는 발드르의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모든 신들이 발드르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하나 로키의 방해로 실패하는 과정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신들과 인간들은 엄청난 슬픔과 고통에 잠겼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오딘이었으니, 그는 발드르의 죽음이 아스 신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고 상실인지를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P.111)

 

모든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족들은 그토록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동료 신마저 죽게 만든 로키를 왜 죽이지 않아 결국 라그나뢰크를 겪게 된 것인지. 신성한 장소에 피를 흘리기를 꺼려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상에 악의 존재는 불가피하고 결코 떨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상징적 해석이 오히려 가능하다.

 

거인 족과의 최후의 전쟁에서 아스가르드는 무너지고 신들의 세계는 종말을 맞이한다. 그것이 라그나뢰크다. 세계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선형적 전개를 이루는 점이 서양 문명의 특성답다. 그럼에도 신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선언한다.

 

이상이 제1<귈피의 흘림>에 담긴 내용이다. 북유럽 신화의 개요를 충실하게 수록하고 있다. 2<스칼드의 시 창작법>은 음유시인들이 신화 내용을 시로 창작하거나 노래할 때 갖추어야 할 기본적 신화 지식을 소개한다. 앞편이 줄거리 중심이라면 여기서는 신의 이름, 사물, 사건 등이 유래한 내역을 알 수 있어 두 편을 함께 연결시켜야 씨줄과 날줄처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오딘이 외눈박이가 된 사연, 토르의 망치가 생겨난 배경과 손잡이가 짧은 이유 등이 흥미로운데, 무엇보다도 시 창작의 언어 중 케닝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방식은 우리가 오딘, 토르, 튀르 혹은 어떤 아스 신이나 엘프를 우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저는 아스 신들의 특성이나 그들의 업적 중 하나를 이름으로 덧붙입니다. 이에 따라 원래의 이름이 아닌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P.147)

 

오딘의 케닝은 승리-튀르, 교수형을 당했던 튀르, 운송물의 튀르, 전차-튀르 등이며, 수달의 배상금, 아스 신들의 배상금, 분쟁의 광물 등은 금의 케닝에 해당한다. 금의 케닝 편에서 시구르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훗날 <니벨룽겐의 노래> 원형에 해당한다. 예수의 케닝은 이질적이지만 이해할 만하다.

 

스톨루손은 기독교의 득세로 점차 소멸되는 전통 문화 보존과 함께 아이슬란드의 고유성 보전을 의도하였다. 산문 에다가 기록된 시기는 이미 아이슬란드가 기독교화 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시점.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의 영향이 사회와 문화 전체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흔적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저자 덕택에 우리는 남유럽 못지않은 풍요로운 이야기와 상징체계가 북유럽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으니 문화의 다양성 인식에 크나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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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지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2
임치균.배영환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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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애독자라면 유비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사하고 제갈공명이 신출귀몰한 책략을 발휘했음에도 북벌에 실패한 것에 애통함을 지닐 것이다. 글 솜씨가 좋은 이라면 유비와 제갈공명을 각색하여 자신만의 삼국지연의를 써보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도 그러하였음에 틀림없다.

 

작품의 전반부는 임성 일행이 바다에 표류하면서 온갖 요괴를 물리치는 반복되는 이야기다. 이무기, , 원숭이, 여우, 바다의 잡괴 등이 천년을 살거나 사람의 진액을 빼앗아 흉악무도한 요괴가 되었다. 종황의 기지와 도술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요괴를 무찌르는 과정은 임성 일행이 시련을 통해 천명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웅변한다. 바다 가운데서 옥새를 얻고, 서해 용왕이 이를 빼앗으려다 오히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소인이 알아뵙지 못하고 하늘이 정한 일을 범하였으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다 할 것입니다. (P.114)

 

후반부는 임성 무리가 미지의 태원 땅에 도착하여 서안국을 시발로 태원 전체를 통일하는 장대한 위업을 기술하고 있다. 중원에서는 자신의 땅이 천하의 중심이지만 태원에서는 태원이 곧 천하의 가운데다.

 

참으로 괴이하도다. 천하에 다만 태원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인데, 또다시 중원이라는 곳이 있다니요? (P.142)

 

임성이 서안국을 평정하고 대흥왕에 즉위하는 장면은 촉의 제위에 오르는 유비를 연상시키는데, 이 작품의 주요 대목은 <삼국지연의>를 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더불어 본문에서 유비와 제갈공명 등을 되풀이 언급한다. 귀신의 섬에서 두 요괴를 무찌르기 위해 태극진을 펼치는 종황은 제갈공명에 다름 아니며, 서강대전은 적벽대전의 판박이다. 종황과 안정국의 진법 대결은 공명과 중달의 그것과 마찬가지며, 명라성 밖 골짜기의 전투는 제갈량이 호로곡과 반사곡에서 사마중달을 화약으로 폭사시키려던 계책과 동일하다. 곧 이 작품에서 임성은 유비, 종황은 제갈량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태원 통일의 위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면 시시할 것이다. 따라서 굉장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금국 장수 조충과 안정국이 대단히 뛰어난 인물임을 종황의 입을 빌어 드러낸다. 이로써 이들을 무너뜨린 종황의 공훈이 한층 두드러지는 의도도 있다. 명라성 밖 골짜기 전투에서 안정국과 금국 병사 3만 명을 폭사시킨 종황은 제갈공명처럼 탄식한다.

 

비록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일이지만 크게 음덕이 상하였으니, 나는 천명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오. (P.265)

 

연의에서 제갈공명은 천명을 누리지 못하지만 여기에서 종황은 탄식과는 무관하게 천명을 누리는 게 차이점일 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쌍고검을 휘두르던 유비의 존재감은 연의 중반부 이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도 초반에 임성이 대단한 능력의 인물이라고 소개되지만, 작품 내내 임성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유비와는 달리 임성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종 천명을 받은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실질적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종황이다.

 

금국을 평정하고 최후 정벌을 위한 수백만 대군이 출정하는데 처음 서안국 출정을 위한 초라한 군세와 엄청난 대조를 보인다. 나머지 4국은 아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선언한다. 이미 태원의 운세는 쇠하고 천명은 임성에게 돌아갔다는 것이 이들의 항복 논리다. 현명한 동시에 무성의하기조차 하다.

 

하늘이 임성에게 천명을 준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천명을 받은 사람에게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에 응하고 인심을 따라 무죄한 백성을 전쟁에 빠뜨리지 않는 길입니다. (P.274)

 

이 책에서 천명은 중요한 화두다. 임성 일행이 중원에서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못한 것은 원나라 오랑캐의 천명이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임성 일행이 태원을 빼앗은 것은 자신들에게는 천명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하겠으나 태원 사람들에게는 웬 날도적한테 나라를 빼앗긴 꼴이다. 천명의 무상함이 드러난다.

 

슬프다! 이 같은 충의지사가 무도한 때를 만나 힘을 다하여 임금을 섬겼지만, 하늘의 명을 어쩌지 못하고 마침내 절개를 세우고 의를 위하여 죽었구나. 어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P.268)

 

앞서 읽은 <영이록>과 마찬가지로 주석의 미비함이 깊은 이해를 저해하는 것은 여전히 아쉽다. 예컨대 종황이 금국과 대결하기 위해 출정할 때 내린 일곱 가지 군령은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하나는 경, 둘은 만, 셋은 대, 넷은 패, 다섯은 배, 여섯은 난, 일곱은 의이다. 이 일곱 가지는 군대의 한결같은 법이니, 만약 이를 어기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모든 병사들은 명심하도록 하라. (P.206)

 

작품 초반에 중원에서 피신하려는 임성 일행은 조선에 가고자 하는데, 이상국가 조선에 대한 예찬이 그득하다.

 

저는 일찍이 동방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수가 아름답고 뛰어난 인물이 많아 예악과 법도는 요순시대의 태평한 시절을 본받았다고 합니다.....그래서 그 나라를 하늘이 보배롭게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날이 새도록 배를 타고 가서 그 어질고 착한 나라에 도착하면 차후에 능히 마음에 품은 뜻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4~25)

 

이 작품이 중국 소설이 아니라 조선 소설로 판단하는 유력한 근거가 위 대목이다. 중국인이라면 이 정도로 조선을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대 상 고증의 오류가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원나라 지정 연간은 우리역사에서는 고려 말에 해당한다. 그네들이 역사를 꿰뚫는 혜안이 있지 않는 이상 교류가 활발한 고려를 모른 채 조선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험소설이자 군담소설을 좋아하면 비교적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고, <삼국지연의> 애호가라면 차이점과 유사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깊은 감명과 장대한 드라마는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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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3
임치균.이래호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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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어로 옮겨 조선 왕실의 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하고 있다. 목록을 보니 익히 들어보지 못한 작품들이어서 기대된다.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를 배경으로 손기라는 영웅적 인물의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위인의 탄생은 불쑥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경할만한 부모, 천상의 간택, 신비한 태몽, 그리고 앞날의 예언 등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 독자가 마땅히 그러할 수밖에 없음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손기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손기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초라한 외모와 어리숙한 언행이 그것이다. 손아랫동서인 소운성의 총명과 활달한 언행과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소운성의 희롱으로 수모를 당한 손기가 가출하여 단기간에 신선의 도를 깨우치는 과정은 간략하게 기술되는데, 신이한 자질이 그에게 내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도교의 배경이 두드러진다. 옥황대제, 숭산 북궁, 옥허관 여도사 등은 모두 손기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다. 손기가 동서에게 신선의 도를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소설의 작가가 도교에 정통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손기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업룡을 격퇴하고 천사(天師)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훗날의 장면도 신통력과 도술이라는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소운성 일행이 천사부를 방문할 때 겪게 되는 그 위엄과 웅장함은 비록 과장되었지만 임금의 스승으로 일인지하의 자리에 있는 고귀한 지위를 현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영웅은 시대와 나라가 역경에 처할 때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는 법. 손기도 이에 다르지 않다. 궁중에 뿌리 깃든 요괴인 업룡의 출현과 임금의 와병. 초월적 존재이므로 세속의 수법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하다. 결국 도술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데 당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안록산과 주전충을 낳게 할 정도로 사악함으로 가득 찬 정령이므로 범상한 도사의 능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손기가 다섯 마리의 용을 소환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과정은 장엄함이란 측면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기 위하여 단을 쌓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업룡의 머리를 베지 못하여 그 해가 백년 후 동북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P.128)

 

업룡은 물리쳤지만 화근을 제거하지는 못하였고, 손기는 예언한다. 훗날 여진족의 금나라로 인해 송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게 됨을 암시.

 

언뜻 보기에도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제재와 전개가 시종일관인 소설. 여기서 당대 사람들은 무슨 의미와 가치를 추구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재미였을까. 현대인들도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비루한 현실을 초월하는 환상 속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대하소설인 <소현성록>의 등장인물과 사건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파생작이라고 한다. 원작이 당대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원작에서 아쉬움과 동정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환골탈태시키고자 하는 독자의 바램을 짐작케 한다.

 

무엇보다도 농후한 도가적 색채가 인상 깊다.

 

신선의 도는 멀고 깊어 천지와 하나이니 어찌 평범한 사관이 붓을 들어 전부를 기록할 수 있으리오? 신선의 도는 천지의 글자도 옥에 새기고 금으로 잠가 명산대천에 깊이 감추어 신령이 삼가 지키고 있다네. (P.98)

 

하늘에는 신선이 있고 인간 세상에는 재상이 있으니 천상천하의 그 귀한 것이 다를 바가 없는 법이네. (P.101)

 

미소개 소설의 대중화에 초점을 두었기에 주석이 거의 없음에도 전체적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시대적, 문화적 지식이 요구되는 대목은 깊은 독해를 위하여 부가적 설명이 뒤따랐으면 한층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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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합본) 다림 청소년 문학
이미륵 지음, 윤문영 그림, 정규화 옮김 / 다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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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신의 독일 작가가 모국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작품이다. 일찍이 범우사에서 반복하여 소개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게 뭐지, 하며 가벼이 넘겼는데 문득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적당한 책도 찾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펼쳐들었다.

 

구한말 황해도 해주 출신의 작가는 경성으로 유학 왔으나 삼일운동에 가담한 후 체포를 피해 유럽으로 도피한다. 독일에 정착한 작가는 현지인들에게 낯선 자신의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소개를 겸하여 자전적인 작품을 독일어로 집필한다. 이 소설은 당대 가장 빼어난 독일어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아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대략적인 작품 소개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의 독일 사람에게 있어 작가는 낯선 나라의 일개 동양인에 불과했을 것이며, 한국, 혹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인식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식민지는 찰나에 불과하다고 강변해봤자 그들에게 먹혀들 리 없을 터이니 작가는 차라리 모국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경치와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와 사람들을 글로써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이 예술인이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며 흥이 나서 조용한 밤을 향해 타령을 계속 불어 대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말소리 또한 내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새 일본인 거리 남쪽에서는 수많은 불빛이 반짝거렸고, 북쪽의 옛 한국인 지역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삼각산 위에는 벨벳처럼 검은 밤하늘이 펼쳐졌고, 옛 창덕궁은 과거 속으로 잠겨 들었다. (P.164)

 

번역본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글인데, 빼어난 독일어 원문으로 표현된 문장을 접한 이국인들의 감회는 어떨지 궁금함을 자아낼 정도다.

 

모국을 떠나온 지 약 이십 년이 지나버린 시점.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머나먼 조국에 대한 한 가닥 인연과 추억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으리라. 나이 들수록 선연해지는 향수와 어린 시절의 갖가지 추억은 그에게 가슴 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글로 형상화하여 주변에 공유하길 요구하지 않았을까.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을 비록 현실에서는 재회하지 못하더라도 문장 속에서나마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으리라.

 

이 작품은 또한 성장소설에 해당한다. 일개 철부지였던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구한말 시골의 정서, 건강 악화로 인한 요양 생활과 일제 지배가 시작된 후 변질되는 사회 세태, 부모와 속 깊게 교감하던 장면들, 그리고 유학생활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과 전환되는 인식. 일경의 단속을 피해 불안과 초조에 숨어 지내던 체험, 그리고 목숨과 일생을 건 출국 시도. 연대기 순에 따른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어린이에서 소년을 거쳐 타지에 홀로 남게 된 당당한 청년에 이르는 성장은 개인과 시대를 함께 아우른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기에 이르기까지 아직 때 묻지 않은 옛날의 우리네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정서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충분할 것이다. 두드러지거나 대단한 게 아님에도 문득 회상하면 정겨움이 배어나오는 그 아련함. 우리 아이들이 과연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이미 백 년도 훌쩍 경과한 첨단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한편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딱하고 불쌍함마저 드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작가 이미륵의 독일에서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혼란과 나치의 대두, 그리고 히틀러 치하의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 그런 그가 꿋꿋이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잊지 못할 모국과 고향,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작가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지병으로 세상을 뜬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하겠다. 비록 갓 오십을 넘은 이른 나이지만, 가뜩이나 별 볼일 없는 신생 국가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목도한다면 가슴은 찢어지고 말았을 테니.

 

표제는 작가가 중국으로 탈출하며 바라본 압록강의 풍경에서 가져왔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모국. 국경선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강줄기는 처연함마저 안겨준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렀다. 이쪽은 모든 것이 크고 어둡고 진지했으나, 저쪽은 모든 것이 작고 맑게 보였다. 초가집들이 언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벌써 저녁 연기가 이 집 저 집의 굴뚝에서 솟아올랐다. 저 멀리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 산들이 잇달아 늘어서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나고 있었고,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노을 속으로 잠겨 갔다. (P.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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