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이펜제의 태수 부클래식 Boo Classics 57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오청자 옮김 / 부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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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프리트 켈러가 1877년에 발간한 <취리히 단편집>에 수록된 5편의 노벨레 중 한 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었다. 수 년 전 그의 <초록의 하인리히>와 몇 편의 <젤트빌라 사람들>을 읽은 후 일종의 이삭줍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살로몬 란돌트는 실제 그라이펜제의 태수를 지낸 실존인물이다. 즉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 외 세부사항까지 사실에 기반을 두었는지 아니면 순전한 창작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은 좀 당황스러운데, 주인공이 자신이 한때 결혼하고자 하였던 여성 다섯 명을 모두 한 자리에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이다. 목차를 보면 각 장의 이름이 주로 새의 이름인데, 이는 란돌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별칭이다. 살로메는 오색방울새, 피구라는 어릿광대, 벤델가르트는 함장, 바바라는 종달새, 아글라야는 지빠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 바로 결혼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결혼의 현실성은 무시할 수 없다. 예술에서 순수한 사랑과 결혼을 그토록 찬미하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무척이나 드문 경우임을 추론할 수 있다. 우선 상대방의 집안과 경제적 조건이 눈에 띈다. 건강 상태도 신경 써야 하고 취미랄까 취향이 맞는지도 고려 요소다. 무엇보다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조건이 좋거나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곤란할 테니.

 

사랑하는 짝을 얻고자 할 때의 양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별 차이가 없다. 동물 프로그램을 보면 자신의 힘과 건강을 과시하거나 멋지게 치장한 모습으로 보무당당하게 주위를 배회한다. 불확실은 확실로, 애매함은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과장됨의 미학도 용인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결코 시험해서는 안 된다. 그 실수를 란돌트는 살로메에게 했다.

 

자기의 출신과 미래의 전망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미심쩍게 묘사함으로써 그녀의 애정이 확고한가를 시험해 보려는 호기심이 그를 자극했다. (P.29~30)

 

다섯 명의 여성 중 란돌트와 가장 잘 어울렸을 걸로 추정되는 인물은 피구라다. 그녀의 밝은 성격과 지적, 정신적 면모 등은 란돌트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을 테니. 피구라와 란돌트는 결단성이 부족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확실치 않은 가족병력을 우려해서 결혼을 포기하지는 않아야하지 않겠는가.

 

그가 피구라와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함장과의 관계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변인물 중에는 당사자를 도우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두 사람의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못하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결함이 아니라면 시간과 노력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순간의 인상과 판단에만 의존하여 미래에 눈감는다. 피구라와 그의 오빠처럼. 그들은 오직 란돌트를 위하는 마음에서 함장과 그를 떼어놓았다. 그것이 잘한 행위였는지는 훗날이 알려준다.

 

그는 예술애호가로서 자주성에서나, 근원적으로 풍부한 사고에서,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직접적이며 독창적 이해에서 현저하게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과 방식으로 과감하고도 신선한 창작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이 창작활동은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원한 사랑의 열기로 충만해 있었다. (P.104)

 

란돌트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예술적 취향과 삶의 지향을 공감하지 못한 여성과 결혼한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불행해질 것인가. 예술을 포기한다면 종달새와 결혼을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임시방편이며 본성을 속이는 선택임을 란돌트는 너무나 잘 깨달았다.

 

아글라야와의 만남은 차라리 이해될 수 있다. 그녀가 란돌트를 속인 짓도 너그러이 용서된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며, 란돌트의 도움을 간구했던 것이었다.

 

주인공은 매우 마음이 너그럽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간 여성들이 괘씸하고 미울 텐데 한결같이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 물론 그녀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깜짝쇼를 벌이지만 악의를 품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가 다섯 여인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발상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란돌트가 결혼에 대한 일말의 상념도 품지 않고 있어서 가능하였으리라. 그는 이제 과거의 미래가 불분명한 처지가 아니라 성공한 고위 관리로서 존경받는 지위에 있다. 란돌트의 가슴 속에 과거의 아릿한 사랑은 이제 흐뭇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부담 없는 상황일 때 마음 편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거친 현실의 입김에 의해서도 흐려지지 않은 추억을 다섯 번 들여다보는 거울을 소유하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지금 사랑의 신들이 다섯 개의 돌들을 포개어 놓은 우정의 탑에 살고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진정 시간이 체념의 대가로 내게 가져다준 장미들이오. 하지만 그 장미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영원한가요! (P.146)

 

켈러가 그라이펜제의 독특한 태수를 주인공으로 노벨레를 쓴 연유는 무엇일까. 작품집의 표제처럼 고국의 역사와 인물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도 분명 가졌을 것이다.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교차시키면서 인물의 행동과 삶을 통해 인간사의 복잡다기함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부분적으로 지녔으리라. 무엇보다도 그것이 선과 악의 대립, 탐욕과 증오 같은 격렬한 감정과 행위의 분출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관용의 느긋한 미학과 결부되어 독자에게 흥미와 기쁨을 주고 있는 점이 특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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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펭귄클래식 123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송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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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에서 옮긴이는 이 두 작품을 유혹과 열정의 주제’(P.265)로 파악한다. <카르멘>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콜롱바>가 여기에 해당될지는 조심스럽다. 나로서는 차라리 문명과 야성 또는 이성과 비이성의 주제로 이해하고 싶다.

 

그것은 기이하고도 야만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처음 보고는 놀라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특히 눈은 사나우면서도 관능적인 표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나는 그 어떤 인간의 시선에서도 그런 표현을 본 적이 없다. (P.28)

 

<카르멘>에서 초반부의 돈 호세는 이성과 합법의 옹호자다. 카르멘의 유혹에 끌리면서 그는 점차로 비이성과 불법의 영역으로 빠져든다. 이성보다 감성, 합리보다 열정이 주류가 되면서 그는 파괴적 사랑에 함몰된다. 사랑이 상호에게 이익과 발전이 되지 못하고 서로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불행한 사랑. 통상 만나서는 안 될 관계라고 치부되는. 사랑과 소유를 위해 법의 울타리를 안중에도 없으며, 밀수, 강도와 살인마저 낯설지 않다.

 

당신은 악마를 만났어. 그래, 악마. 악마가 언제나 검은색인 건 아니야. 당신 목을 비틀지도 않았어. 나는 양모로 된 옷을 입었어. 하지만 내가 양인 건 아니잖아. (P.49)

 

여기서 돈 호세를 비이성의 세계로 유혹한 것은 카르멘의 치명적 매력이다. 팜므 파탈의 하나의 전형으로서 그녀는 세속의 잣대와 이해를 초월한다. 그녀에게는 법률과 도덕은 남의 세상일이다. 순수한 야성. 오직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기에 그녀는 더욱 매혹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를 가까이 하는 남성은 모두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당신은 남편으로서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하지만 카르멘은 언제나 자유로울 거야. 보헤미안으로 태어나서 보헤미안으로 죽을 거야. (P.77)

 

중편인 <카르멘>에 비해 <콜롱바>는 분량 상 장편에 가깝다. 따라서 작품 속 인물의 다중성, 대립과 갈등의 폭과 범위가 한층 심화된다. 작가는 오빠 오르소가 아닌 여동생 콜롱바를 타이틀 롤로 내세웠다. 오르소는 프랑스 문화를, 콜롱바는 코르시카 문화를 대표한다. 근대와 봉건, 이성과 관습을 각각 상징한다. 오르소는 어릴 적부터 육지에서 교육받았기에 이성과 도덕의 가치를 존중하고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콜롱바는 순진한 시골처녀인 동시에 코르시카 전통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발라타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무녀적 속성마저 두드러진다.

 

콜롱바의 눈이 지금까지 그녀가 보지 못했던 영악한 기쁨으로 빛났다. 야만적 명예의 관념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이 키 크고 강인한 여인은 이마에 가득한 오만, 그리고 입술을 구부린 냉소적 미소와 함께 무장한 청년을 마치 불길한 원정에라도 데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디아 양에게 오르소의 두려움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악령이 그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P.147)

 

여기서 독자는 코르시카의 독특한 관습인 방데타가 갖는 깊은 문화적 함의에 놀랄 수밖에 없다. 친족의 살해에 대한 복수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불가피성을 인정받는다. 다만 방식에 있어 코르시카는 정면 대결이 아닌 암살과 기습을 허용한다는 데서 제한적 정당성을 지닐 뿐이다. 여기서 법적 판단은 개입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믿는 바대로 행하면 그뿐이다. 공식 사회에서는 매장되지만 산적이 되어 암암리의 영웅이자 권력자로 자리 잡는 모순적 지위를 누린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 오르소의 바램과는 달리 사태는 일로 악화되며, 복수의 대결은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알게 된다. 사태 전개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주도하며 심지어 조작마저 서슴지 않는 냉혹한 인물로서의 어린 아가씨 콜롱바. 그에 비하면 오르소는 덩치 큰 애기에 불과하다. 콜롱바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무대 위에서 쫓기듯이 어설프게 연기하는 풋내기 배우.

 

카르멘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인 반면 콜롱바는 차가운 열정의 체현자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결코 따뜻할 수 없다. 카르멘은 돈 호세에게 죽임을 당한다. 콜롱바는 복수를 성공리에 마치고 흐뭇해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작가와 세인들의 눈초리는 차갑기 그지없다.

 

저기 저 예쁜 아가씨 보이지.” 그녀가 자기 딸에게 말했다. “흉안(凶眼)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해.” (P.263)

 

<카르멘><콜롱바> 모두 지식을만드는지식 판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다. 다만 <콜롱바>는 첫 번째가 축약본이어서 아쉬웠는데 펭귄클래식 판은 완역본임을 알게 되어 수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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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미하일 레르몬토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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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이 작품의 발췌본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후 동일한 번역자에 의한 완역본이 나왔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미완성작이지만. 과거 발췌본에 대한 단상에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영웅>과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주인공의 이름, 그의 첫사랑 여인의 이름. 그리고 주인공의 성격 등. 그럼에도 선입관에 매몰되지 않고 순전한 시각으로 이 소설을 바라본다면 나름대로 재미와 독자성을 지니고 있음을 곧 발견할 수 있다.

 

페초린은 전형적인 귀족 가문이다. 외모는 내세울 게 없지만 예리한 지성으로 신랄한 언변을 구사할 줄 안다. 작가가 곳곳에 설정한 인물평에 따르면 확실히 그는 보통 이상으로 탁월한 지적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우연한 계기로 페초린과 결부되어 필생의 적이 되는 하급관리 크라신스키는 여러모로 페초린과 대조적 인물이다. 그는 한미한 가문과 궁핍한 생활에 힘겨워하며 어떻게든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의 두드러지는 외모와 적절한 언변은 귀족 못지않지만 출신의 한계에 좌절한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페초린은 자신을 배신한 첫사랑 베라, 즉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잊지 못한다. 반면 사교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네구로바를 교묘히 이용한다. 페초린과 크라신스키, 페초린과 네구로바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페초린이 결코 선량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선과 악의 심성을 모두 지닌, 어쩌면 가장 전형적인 보통의 성격이 아니겠는가.

 

소설은 크라신스키에게서 페초린, 네구로바, 그리고 베라 등으로 화자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의 초점이 이동하는 구조를 따르고 있다. 화자는 각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 과거사를 샅샅이 훑으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때로는 자신이 인물을 잘 모른다는 식으로 시치미를 뚝 떼기도 한다. 한마디로 불성실한 관찰자에서 전지적 시점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작가는 페초린과 인물들의 관계에만 치중하지 않고 러시아 귀족사회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극장의 오페라 관람과 무도회, 만찬 장면을 통해 독자는 당대 귀족들의 일상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더구나 네구로바와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통해 귀족사회에서 사교계의 역할과 비중의 중요성,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창구로서의 무도회에 임하는 젊은 여성들의 필사적 노력 등.

 

나는 크라신스키에 깊은 동정과 공감을 품는다. 하마터면 마차에 치여 죽을 뻔하고 낯선 귀족들 무리에서 익명의 모욕을 당하면 누구라도 분노와 적개심을 품지 않겠는가. 그런 그를 페초린이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사고와 행동의 준거는 귀족 사회의 전형성과는 유를 달리하므로. 페초린이 알지 못한 채 크라신스키의 집을 찾아가서 그와 맞닥뜨리는 대목은 이 작품의 매우 극적인 장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네구로바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외모나 지성 등에서 빼어나지는 않지만 중간 이상이며 처신에 있어서도 지탄받을 점이 없는 어느 모로 보나 표준적인 귀족 여성이다. 작가는 러시아 귀족처녀가 어린 나이에서 사교계에 등장하여 노처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날카롭게 제시한다. 제때 제값을 받고 결혼을 하지 못하면 페초린 같은 이의 악의적 놀림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불쌍한 네구로바,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타이틀인 리곱스카야 공작부인, 즉 베라 자신의 이야기는 제한적으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녀가 페초린을 기다리지 않고 떠난 이유와 공작부인이 된 현재, 페초린에 대한 감정 등은 일체 언급이 없다. 다만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할뿐이다.

 

저는 당신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더구나 세상에 모든 것이 잊히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있어요. 특히 슬픔은요.” 공작부인이 말했다. (P.122)

 

작중의 인물은 모두 행복하지 않다. 페초린도, 네구로바도, 공작부인도, 그리고 크라신스키도. 자신의 내면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현실에 타협하는 대가는 내적 불만감이다. 물론 크라신스키는 현실을 부정하고 타개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내면은 한층 갈등과 모순에 젖어든다.

 

우리는 레르몬토프의 창작 동기와 전개 의도를 알지 못한다. 작품은 본격적인 전개 단계에서 문득 중단되는데, 무수한 할 말들이 자리 잡을 곳을 몰라 방황하는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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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곱스카야 공작부인 / 우리 시대의 영웅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미하일 레르몬토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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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은 레르몬토프의 미완성 소설이다. 국내 초역인데 완역은 아니며, 전체 9개 장을 50%~80% 발췌 번역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하기는 발간해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더 이상 무슨 투정을 부리겠는가.

 

내용을 보면 무척 흥미로운데, <우리 시대의 영웅>의 전편 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이름도 페초린으로 동일하며, 페초린의 첫사랑 베라가 등장하며, 리곱스카야 공작부인도 등장한다. 물론 전작과 후작의 인물이 동일한 캐릭터는 아니며, 다만 유사성이 높아서 두 작품 사이에 친연성(親緣性)이 깊다고 염두에 두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작가는 먼저 페초린을 주인공으로 하여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을 집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중에 작품 전개 또는 인물 설정이 본인의 의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중단한 것이 아닐까. 이는 <우리 시대의 영웅>에 등장하는 페초린과 미완성작의 페초린을 비교하여 보면 유사성보다 대비점이 두드러지는 특성을 보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작가의 본론보다는 서론적인 연애담이 장황하게 전개되어 작품의 초점이 흐려지는 문제점도 노정되어 있다.

 

그래도 레르몬토프의 대표작에서 과도한 생략으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페초린과 베라의 관계를 이 작품에서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은 크나큰 소득이다.

 

또한 하급 관리 크라신스키를 등장시켜 페초린과 갈등 관계에 놓고 페초린 주위에 베라와 네구로바의 삼각관계를 설정하는 등 나름대로 후작과는 차별되는 작품 구도를 가진 점도 흥미롭다. 후작이 페초린을 중심으로 하지만 다소 연결성이 느슨한 단편소설 모음의 형식을 취한 것과는 작품 전체의 통일성에서 보다 강화되어 있다.

 

소설은 본격적인 사건과 갈등이 전개되기 직전에 펜이 멈추어졌다. 따라서 작품의 진면모를 우리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미완성작을 완성작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이 점을 유념하고 먼저 일독 후 <우리 시대의 영웅>을 펼친다면 훨씬 매끄럽고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영웅>은 원전의 약 80%를 발췌 번역하였는데, 이미 국내에도 완역본이 있으므로 민음사본과 문학동네본 중에서 취사선택하기를 권하고 싶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단상을 밝힌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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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8-02-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에 쓴 단상이다. 새판이 나오면서 구판이 절판되어 리뷰가 사라졌기에 여기에 복구한다.
 
시튼 동물기 5 시튼 동물기 5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 논장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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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충직한 양치기 개 울리>

울리의 묘한 성격을 작가는 모두에서 일종의 종 특성으로서 일차적으로 환기시키고 있으며 중간에도 괴팍함을 잊지 않고 언급한다. 헌신적인 사랑과 충성을 바쳤던 주인에게 배신당한 점은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이었음을 인정하자. 그럼에도 버림받은 동물들이 새 주인을 만나 고통스런 나날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절을 누리는 사례도 상당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배반감과 분노에 일시적으로 본성을 잃을 수 있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뒤바뀜으로 나타나 의도적이고 교묘한 살육과 속임수로 점철되었다면 개체의 예외성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주야로 표변하는 충직한 개와 미친 여우간의 이중성은 자기가 설정한 경계선 내의 가축에 대한 헌신과 경계선 밖에 대한 냉혹함과 함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자 새 주인 가족을 향한 맹렬한 공격 행위는 새삼 모공을 서늘케 한다.

 

시튼의 글 중에서 가장 기막힌 반전을 가진 이야기로 생각되는데, 더구나 동물 본성의 순수성이 두드러진 동물기 중에서는 드물게 보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총명하고 사납고 믿음직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배반을 꿈꾸었던 사례는 비단 울리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인간 울리가 득시글거린다.

 

<빈민가의 도둑고양이>

야생의 세계에서만 동물을 찾아볼 수 있는 건 더 이상 아니다. 인간 거주 영역이 팽창하면서 도시 생태계에도 여러 동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반려동물을 제외한 대부분은 인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지만. 우리 아파트 단지 내도 주인 없는 고양이 서너 마리가 돌아다닌 지 꽤 됐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키티의 어린 삶도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형제를 모두 잃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지만 어미마저 졸지에 사라져 고아가 된 처지. 겨우겨우 연명하여 자라나 낳은 새끼들로 인한 행복도 찰나에 불과한 도둑고양이.

 

새옹지마는 인생뿐만 아니라 묘생에도 적용되는 원리인 듯. 뜻밖에 왕족 고양이가 되어 상류층의 고급 생활을 누리며 호화 별장에도 머물게 된 키티. 그에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찬란한 삶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너무나 행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의외로 키티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굶주리고 지저분하지만 빈민가의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철이 덜 들었던지 아니면 고생에 찌들어서 행복의 판단 능력이 모호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배부른 낭만주의자의 헛된 망상은 아닐까. 어쨌든 엄마 찾아 삼만 리처럼 빈민가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장도에 오른 키티.

 

그의 선택에 대한 정당화는 아마도 배부른 돼지에 대한 거부감 또는 통 속의 디오게네스와의 유사성에 가깝다고 하겠다.

 

키티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언제까지나 지저분한 빈민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도둑고양이로 살아갈 것이다. (P.105)

 

<목도리들꿩 레드러프의 비극>

야생 동물들한테는 도덕도, 권리도 없단 말인가? 말을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자기와 같은 동물들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끔찍한 고통을 주어도 괜찮단 말인가? (P.159)

 

작가의 어조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선열한 분개마저 담겨 있다. 목도리들꿩 모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심정에 무조건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던가, 아니면 인간이 그들을 멸족시킬 절박한 생존의 위협에 처해 있던가. 그들이 질병과 천적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겠다. 단지 재미 삼아서 아니면 탐욕만으로 그들을 최후의 일각까지 추격하는 인간의 행태를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편은 목도리들꿩의 낯설면서도 이국적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생태를 잘 묘사한 글이다. 수컷 들꿩이 요란하게 북소리를 내는 대목과 광기의 달에 방랑 본능에 사로잡히는 장면 등은 신기하기조차 하다. 무엇보다도 월령에 따른 목도리들꿩의 삶을 흥미로운 카툰(P.132)과 함께 소개한 점은 시튼의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눈썰미를 짐작케 한다.

 

어미 목도리들꿩은 12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천적과 기생충, 방랑(광기의 달)과 사냥꾼 커디 영감에 의해 레드러프만 남기고 모두 잃었다. 레드러프는 더 혹심하다. 아내와 새끼 10마리 중 5마리가 커디 영감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심지어 자신마저 커디 영감의 올가미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목도리들꿩만을 추격하는 커디 영감에게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레드러프의 고통을 끝내 준 부엉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됨은 작가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물들은 대개 본능에 충실하므로 행동이 예측 가능하다. 따뜻하게 대해주면 선의로 보답하고 학대하면 적대적이 된다. 시튼의 동물기에 수록된 이야기들 면면을 보더라도 야생 여부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가끔은 예외도 생기는 법인데, 양치기 개 울리와 도둑고양이 키티의 최종 선택은 인간의 판단기준으로서는 전혀 의외라고 할 만하다. 전자를 과도한 종 특성과 개체적 예외가 특이하게 결합된 드문 사례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모르겠다. 반면 후자는 키티의 선택이 전혀 의외가 아님에 끄덕거리게 되는데 인간도 마찬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음에 동의해서다.

 

목도리들꿩 레드러프의 경우는 인간 본성의 끝자락을 경험한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이다. 보기 드물게 작가의 분노를 느낄 수 있는 편이기도 하다. 독자는 쉽사리 커디 영감을 비난하겠지만 기실 그는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 자신도 개인적 욕심을 좇는 와중에 대상과 주변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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