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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 4 ㅣ 시튼 동물기 4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육체적 능력의 한계를 지력과 도구의 힘으로 뛰어넘어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자리 잡게 되었다. 초식동물은 물론 사나운 맹수조차 인간의 위세에 굴복하여 쇠락과 멸종의 길을 걷게 될 정도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부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가질 수도 없다. 야생동물은 자신의 야생성, 즉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며, 종내에는 자유를 목숨과도 맞바꿀 각오를 품고 있다.
여기 세 편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종 분투하였다. 성공의 끝자락에서 실패로 귀결된 사례도 있지만 어찌 그들의 실패를 탓하겠는가. 오히려 그들을 기어코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야만성이 두드러질 뿐이다.
<야생마 페이서의 최후>
갈기를 휘날리며 드넓은 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몽골 초원에 가면 볼 수 있으려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야생마의 생활상과 개척민들 간의 갈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잡기도 힘들뿐더러 잡아봤자 길들이기도 어려운 야생마. 가만히 내버려두면 방목하던 말들의 잠자던 야생성을 일깨우기에 눈에 띄는 즉시 사살의 위험에 빠지는 야생마. 여기서 자연은 단지 경제적 효용성으로만 재단된다.
압권은 인간들의 잇따른 야생마 페이서 추격전의 과정과 실패에 대한 생생한 기술이다. 갖은 꾀와 술수를 총동원하지만 페이서는 언제나 예측을 뛰어넘어 생존을 연장한다. 명성이 드높은 야생마를 잡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과 자연이 부여한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페이서의 본성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삼손을 생포한 것은 델릴라 덕택이었고 늑대왕 로보도 짝 블랑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페이서를 잡기 위한 인간의 선택 또한 암말을 이용한 치졸하며 반자연적 수법이다. 페이서는 자연의 순수한 본능을 좆았기에 자유를 박탈당하였다. 여기서 야생마가 사로잡혀 길들여졌다면 시튼은 페이서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리라. 그가 찬미한 것은 정복당하지 않는 야생의 정신이었으니까.
생명은 끊어지고 육체는 처참히 부서졌지만 결국 야생마는 자유의 품에 안긴 것이다. (P.53)
<위대한 늑대 빌리의 승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늑대의 존재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고 위협적이었던 듯싶다. 동물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동물은 늑대와 개로 추정되는데 야생동물로 한정짓는다면 단연 늑대이리라.
전반부는 고아가 된 빌리가 새 어미를 만나서 당당한 늑대로 성장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어미 늑대는 세상살이와 위험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새끼 늑대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늑대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늑대가 냄새로 상황을 분석하고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보여주어 인간만이 고등 동물로 자부할 수 없음을 일깨운다.
두려움이나 경계심 또는 의심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영리함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검은 목털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힘 못지 않은 신중함 덕분이었다. (P.86)
자연은 무자비하다. 단 한 번 실수의 대가는 목숨의 상실로 이어진다. 홀로서기에 내몰린 늑대 빌리는 일대 목장주들에게 악마와도 같은 존재로 낙인찍힌다. 피해를 감당 못한 그들은 대대적인 늑대 추격전을 벌이는데 이야기 후반부는 전적으로 이에 관한 내용으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어 한편의 스릴 넘치는 어드벤처다.
지독한 추격전 끝에 좁은 벼랑 끝에 빌리를 몰아넣는데 성공한 십여 마리의 사냥개들. 비록 사냥꾼들은 멀리 떨어져 도울 수 없는 처지에 있지만 이제 늑대의 운명은 경각에 달렸다. 시튼은 미리 당부하는데, 그것은 전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책을 덮는 게 좋다......늑대는 바위 옆에 굳게 버티고 서 있었다. 싸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고 남은 것은 늑대뿐이었다. (P.106)
영화의 한 장면을 상기시키는 결과에 대해 우리는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늑대, 사냥개 그리고 인간. 그들은 자기네 관점에서 모두 최선을 다하였다. 단지 빌리가 이겼고 그는 위대한 늑대가 되었을 뿐. 동물 영웅이라 불릴만하다.
<솜꼬리토끼 래길럭의 모험>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쳐 다녀야 하는 걸까? 근근이 목숨만 부지할 뿐인 이 삶은 그 얼마나 비참한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증오스러운 놈한테 최고의 먹이터와 아늑한 은신처, 고생고생해서 닦아 놓은 길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P.147)
힘 약한 초식동물의 비애라고 할까. 한탄이 절로 나올만하다. 실제로 솜꼬리토끼의 적을 쭉 나열하면 이러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개, 여우, 고양이, 스컹크, 너구리, 족제비, 밍크, 뱀, 매, 올빼미, 사람, 심지어 곤충(P.138)마저도.
이 편은 솜꼬리토끼의 모험이라기보다 생존 기법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하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 꼼짝 않기, 들장미덤불의 비밀, 철조망 수법, 개울 등등. 사방에 온통 적들뿐이니 위기탈출 방법도 다양하다. 이 모든 걸 알려주는 이는 래길럭의 어미 몰리다. 이야기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차라리 몰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솜꼬리토끼 모자는 낯선 수토끼의 역경은 헤쳐 나갔지만, 늙은 여우의 습격에는 온전하지 못하였다.
가엾은 솜꼬리토끼 몰리! 몰리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은 몰리 같은 토끼들은 수없이 많다. (P.158)
늙어 죽는 야생 동물은 없다고 시튼은 단언한다. 비극적인 최후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의 차이만 있을 뿐 그네들의 운명이다. 그런 면에서 빌리와 래길럭도 이야기에서는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후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물의 삶이 고통과 비극의 연속만은 아닐 것이다. 천적들의 희생자는 한마디로 병약한 개체라고 한다. 개체는 슬픈 운명을 맞이할 수 있지만 종 자체의 건강성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무자비하고 무모한 개입만 없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