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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 완도편 - 孤島의 일상과 역사에 관한 서사 ㅣ 섬문화 답사기 시리즈 3
김준 지음 / 보누스 / 2014년 12월
평점 :
섬은 독특한 공간이다. 바다로 인해 육지와 갈라져 바로 눈앞에 빤히 보이건만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곳. 섬만의 고유한 풍경과 식생, 문화는 분명 육지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섬은 3천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무인도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수백 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네들은 이리도 불편한 섬에서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섬이라고 하면 대부분 제주도를 떠올린다. 머나먼 울릉도와 독도도 있다. 아니면 연륙교가 가로놓인 강화도, 안면도, 진도, 완도, 남해도 및 거제도도 있다. 강화도 깊숙이 들어가면 널찍이 펼쳐진 논으로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진도와 남해도의 골은 무척 깊다. 이런 섬은 오히려 예외적이다. 바다 가운데 놓인 섬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고 인적이 드물기는커녕 사람들로 넘쳐나 그나마의 고유문화마저 퇴색되는 곳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섬사람과 섬문화를 알아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만났다. 넘쳐나는 관광안내서가 아닌.
이 책을 쓴 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지니고 이 방대한 저서를 내놓았는지 궁금하다. 600면에 달하는 두툼하며 상업성이라고는 전무에 가까운 책을. 정말로 출판지원사업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또 저자의 지극한 섬 사랑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으리라.
섬 많은 곳 하면 전남 신안군을 떠올리지만 완도군도 제법 섬이 많다. 섬으로만 이루어진 행정단위. 650여 개의 큰 섬과 작은 섬, 육지와 가까운 섬과 멀리 외떨어진 섬, 평지가 있는 섬과 산지로만 이루어진 섬. 섬의 조건에 따라 섬사람의 생활 모습과 문화가 제각각 차이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지와 양지가 뒤바뀌는 곳도 빈번하다. 섬을 바라보는 저자의 심경은 한마디로 애틋함과 안타까움의 상존이다.
섬의 숨겨진 역사
가리포해전(1605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그러면 계미민란(1883년)은? 전자는 임진왜란 이후 소규모로 침입해오던 왜구들 함선 30여척을 가리포첨사 최강이 섬멸시킨 일대 승전이다. 후자는 동학농민전쟁보다 10년이나 앞서 발생한 민중봉기라고 한다. 둘 다 완도의 숨은 역사적 사실이다.
완도 옆 장도는 장보고의 청해진 근거지로 추정된다. 오늘날에야 해신으로 추앙받지만 이렇게 신분이 복원된 지 오래지 않았다고 한다. 지배층은 민중의 정치권력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했던 해신 장보고는 이후 고려와 조선은 물론 해방 이후에도 정치권력에 의해 ‘역신’으로 낙인찍혀 기록은 물론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반역의 땅으로 동토가 된 후 재평가를 받는 데 천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P.85)
항일운동의 치열한 흔적을 간직한 ‘저항의 섬’ 신지도와 소안도. 신지도의 항일운동기념탑은 가본 적이 있다. 소안도의 항일운동사는 별도 항목으로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P.418~424)
쌀과 소금, 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고금도였다. 충무공이 고금도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였을 것이다. (P.130)
명량대첩 이후 충무공이 고금도를 근거지로 선택한 이유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추사 가 존경하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에서 장기 유배생활을 했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된다. 신지도가 유배의 섬이었음을.
섬과 섬사람의 사연들
저자의 기록에 따르면 완도는 상황봉을 기준으로 동쪽은 대부분 갯벌이었다고 한다. 즉 지금의 평야지대와 시가지는 모두 갯벌을 매립한 땅이라는 것인데, 의외의 사실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완도가 본디 척박한 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해남과 완도를 잇는 섬인 달도의 다리가 세 개인 사유는 어처구니없으며 서글프기조차 하다. 다리를 놓는데 급급하여 제방 형태로 바닷길을 막아버렸다고 하니 김 양식을 망친 어민은 물론 흐름이 가로막힌 바다는 어떻겠는가.
금당도를 비롯해 완도 사람들에게 당시 김 양식은 단순히 경제행위가 아니었다. 생활이고 삶 자체였다. (P.183)
완도 일대는 과거부터 김의 주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인간의 과욕으로 김 양식이 쇠퇴한 이후 다시마, 전복으로 주력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리석기 그지없다. 한편 매생이와 김의 처지가 역전된 내용은 익히 알고 있지만 최대 산지인 약산도 편에서 소개하니 새삼스레 다가온다.
과거 ‘소목포’라고 불리며 번성하던 노화도가 보길도의 유명세에 밀리게 된 상황, 편안한 바다인 소안도가 제주도와의 중간 지점인 까닭에 오히려 소안도 주민들의 삶은 편안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섬 고유의 문화
섬은 생과 사가 한순간에 교차하는 곳이다. 바다는 풍요롭지만 매몰차기 그지없어 인정사정 두지 않는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다다를 때 보다 높은 존재에게 기대면서 종교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관점에서는 미신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의 섬김이다. 생일도와 덕우도에서는 마을 모두가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자연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섬마을은 농촌에 비해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가 발달했다. 할머니당이나 할아버지당이 대표적이다. 소나무나 느티나무 등을 신목으로 모시거나 당집에 돌, 철마, 신위 등을 신체로 모시기도 한다. (P.105, <백일도>)
청산도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저자의 시선은 그곳 사람들의 고유 장례풍습인 초분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여러 섬과 육지에서 성행하던 풍속이 거의 소멸되고 이곳을 포함한 일부에서만 명맥을 유지한다. 초분의 세부 절차와 의미에 대해서는 책 내용을 참조하면 되겠지만, 논밭 옆 일상 속에 무덤이 함께 한다는 점이 생경하면서 터무니없지는 않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에 초분이 있다. 초분을 하는 이유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모두 산 자를 위한 죽음의 굿이다. 죽어서라도 자식들을 돌보고자 하는 애틋한 부모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P.357)
섬마을 중 으뜸이라고 저자가 일컬은 돌담을 보기 위해 소모도에 가보고 싶다. 개발시대,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의 유산을 퇴행적으로 간주하고 뒤엎는 게 미덕이었던 시절. 상전벽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멘트담보다 돌담이 은은한 정서를 자아낸다. 쌀 한 톨이라도 생산하기 위해 바다를 막고 간척하던 게 미덕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요즘은 갯벌의 환경적, 경제적 가치가 연신 상한가를 경신하고 있다.
연륙교가 잇달아 개통되고 있다. 불편한 뱃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므로 생활면에서는 편리함이 월등하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섬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쇠퇴한다. 접근이 용이해지니 관광객이 증가하고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발 붐이 일어난다.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지 팔 수 있고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이제 당신은 불필요해진다.
완도 정도리에 구계등이라는 몽돌해변이 참 좋다. 아직 때가 덜 묻어서 힘들게 찾아갔지만 좀 더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이 해변과 배후의 숲이 하마터면 사라질 뻔 했는데 마을주민들이 단합하여 살렸다고 한다.
돈에 눈이 멀어 몽돌을 팔아 돈을 챙기려는 것을 막은 것도 마을공동체였다. 국가가 나서기 전에 마을의 전통과 문화가 숲과 몽돌을 지켜냈다. 숱한 태풍에도 마을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몽돌과 마을 숲 때문이었다.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모난 돌은 몽돌이 되고 나무는 영글어갔다. (P.35)
농어촌의 자연적 변이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농어촌에 노인들만 남게 되는 현상은 안타깝지만 젊은이는 여러 사유로 도회지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마을은 유지될 수 없고 고유의 문화와 전통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단지 보전을 위한 전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문화 자체가 삶의 연장이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지속가능한 전통문화는 행사를 위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삶의 지속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P.502, <넙도>)
공유수면으로서의 어장과 갯벌의 가치
토지는 개인 소유가 인정되지만, 바다는 그러하지 않다. 어장은 특정 개인이 아닌 마을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유수면이다. 어촌계 위주의 어장 정책은 타당성이 있지만 작은 섬 주민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되풀이하여 지적한다.
작은 섬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단지 정주 환경만 개선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섬에 머무는 사람들이 갯바위와 인근 어장을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육지와 달리 바다에서 해 먹을 것이 없다면 섬에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P.251, <우도>)
가치로 본다면 섬 면적의 경제적 가치보다는 섬 주변 어장의 가치가 훨씬 크다......땅보다 높아진 바다의 가치는 환영하지만 ‘공유수면’이라는 바다의 특성이 사라질까 우려스럽다. (P.119, <양도>)
갯벌의 성격 역시 마찬가지다. 갯벌은 어촌 주민들의 텃밭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래서 ‘갱번’이라고 불리는 분배의 원칙이 자치규율로 내려왔던 것이다. 특히 작은 섬 마을이 되살아나고 섬사람들이 정착하게 할 수 있기 위해 마을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작은 섬살이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큰 섬의 횡포였다......
갯바위의 해초들은 마을어업에 속한다. 마을어장인 것이다.
예로부터 해당 섬 주민들이 논밭처럼 가꾸며 살았다. 그래서 법에 앞서 관행어업으로 인정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은 섬에 주민들이 자꾸 줄어들면서 인근의 큰 섬에서 마을어업 면허권을 앞세워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있다. (P.528, <죽굴도>)
작은 섬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 부족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작은 섬에 대한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섬에서는 뱃길이 없으면 코앞에 있어도 다가갈 수 없는데 연락선 등 운송수단은 한정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행정구역과 생활구역이 상이하여 불편을 겪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육지와 가까워 좋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해남과 완도의 경계에 있으면서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섬이다. (P.64, <토도>)
작은 섬은 아무리 가까워도 쉽게 갈 수 없다. 뱃길이 없기 때문이다. (P.444, <구도>)
남획과 과용으로 황폐화되는 어장, 상업주의와 이기주의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람들의 탐욕을 경계한다.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다 보니 바다를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뿌리 끝까지 뽑아 쓰다 버리면 그뿐이라는 시각. 인간은 역사를 중시하지만 꼭 필요한 때에는 오히려 외면하기 일쑤다. 김 양식의 실패를 전복 양식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기를 저자는 기원한다.
김 양식으로 호황을 누릴 때 너도나도 김발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바다는 오염되고 윤기가 잘잘 흐르던 김은 상품가치가 떨어졌다. 결국 그것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노화도 김 양식 쇠퇴 이후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 과욕불급이다. 김 양식 시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벌써 노화도에 전복 양식을 하던 주민들이 새로운 양식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 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P.488, <노화도>)
땅끝 전망대에 올라 삼면 바다를 휘돌아보면 올망졸망한 섬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자연적 존재인 섬 자체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멋진 풍경을 보듯이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섬과 섬사람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 동행하는 동안 그네들의 생활과 역사, 아픔과 바램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게 된다. 여기에 소개된 섬들 중 작은 섬의 경우는 제 아무리 지도책을 봐도 위치와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네이버지도를 최대한 확대해야 겨우 위치와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섬들이다. 새삼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