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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0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손현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월
평점 :
수년 전 상영된 스필버그 감독의 동명의 영화 원작이다. 이제는 너무나 식상한 인류 대 외계인의 전쟁이라는 제재. 하지만 120년 전 홀연히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의 참신성과 충격은 남달랐을 것이다. 후에 모 방송국에서 뉴스 형식을 빌어 화성인의 침공을 라디오로 중계했을 때 일대 소요가 발생한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그러고 보니 팀 버튼 감독의 <화성 침공>도 이 컨셉에서 멀지 않다.
우주에 인류를 제외한 또 다른 지능을 가진 존재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들은 인류 문명보다 수준이 낮을 수도 있으며,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인류를 개미 수준으로 하찮게 여길 정도의 압도적인 역량을 지닐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든다면. 단순히 유희가 아니라 생존의 목적으로.
그들의 눈에는 인간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도 자기들보다 덜 발달한 생명체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원숭이를 그렇게 보듯이 말이다.
화성인들로서는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태양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가야 했다. 그래서 생명체로 가득한 지구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런 화성인을 무조건 잔인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P.11)
작가의 문제의식은 첫 번째 장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우리는 오늘날 화성 탐사의 결과로 화성에 우리를 위협할만한 지적 존재가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협은 다른 태양계 또는 은하계에서 올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영화 스토리마냥 화성인의 대학살과 주인공의 무조건 도망치는 장면이 내내 이어진다. 다른 대항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인류의 절멸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군대와 화성인 간 치열한 교전과 이어지는 전멸, 생사를 넘나들며 강행하는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 런던 침공에 따른 시민들의 일대 혼란과 소요. 런던을 간신히 탈출하는 주인공의 동생. 화성인의 침공을 두 곳의 다른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 모든 극적인 전개는 독자의 눈을 책에 뗄 수 없도록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전적으로 작가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다.
문명의 패배요, 인류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P.93)
이 끔찍한 순간에 온갖 욕을 화성인에게 퍼부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작가는 인류와 화성인의 행동양식을 비교한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에 저지르는 것과 화성인의 그것이 다를 바 없다고 하며. 당하는 처지로서는 오십보백보이리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소나 돼지, 토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고기를 먹는 관습 역시 얼마나 혐오스럽게 여겨질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P.114)
인간의 피를 뽑아 먹는 화성인에 대한 한 설명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화성인의 지배를 받는 보잘것없는 동물에 불과했다. 다른 동물들이 인간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적들을 살피고 도망가고 숨는 신세가 되었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은 이제 끝이 났다. (P.130)
인간의 참모습은 한계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더 이상 이성과 위선의 가면을 쓸 필요도 이유도 없어서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공포에 내내 휩싸이는 와중에 주인공이 만난 두 유형의 인간이 대표적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목사와 정신이 돌아버린 몽상가 군인.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못한다.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들도 그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누구도 갖지 못하므로.
자연의 힘으로 위기는 극복되었지만,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제 지구는 인간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다. 언제 갑자기 우주 어딘가에서 어떤 존재가 우리를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선한 존재이든 악한 존재이든 간에 말이다. (P.166)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화성인들은 다시 이곳을 지배할 수도 있다. 미래는 그들에게 달린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P.167)
이 작품이 외계인을 등장시킨 일개 오락물에 불과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기저에는 철저한 문명비판이 드리워져 있다. 인류의 오만성과 비인간성. 최첨단 과학기술의 남용과 오용에 따른 인류 멸절의 위험성.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은 원작에서 상당부분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청소년용으로 기획된 만큼 부적절한 대목은 빼버린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