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의 크리스마스
아츠코 모로즈미 그림, 모 프라이스 글, 한강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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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연중 가장 고대하는 날은 자기 생일,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다른 날들이야 그렇다 치고 크리스천도 아닌데 크리스마스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오로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주고 갈 선물에 대한 기대감 탓이다. 그렇다, 산타클로스. 이 존재를 부분적으로라도 믿는가 아닌가에 따라 유아와 어린이가 구별된다는 전언도 있으니. 부모로서는 아이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산타클로스의 파트너는 유명한 루돌프다. 캐럴에서도 나오는 빨간 코의 사슴. 물론 썰매를 끄는 동물이 사슴이 아닌 순록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겠지만 아이들에게 사슴과 순록의 차이를 굳이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고 많은 동물들 중에서 하필 순록이 썰매를 끌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품을 수 있게 마련이니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 마음에 떠오르는 호기심은 재빨리 충족시켜 주어야 부모가 편안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가 늘고 선물을 줄 아이들의 수도 늘어남에 따라 종래 두 발로 이동하여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도 더 이상 힘에 부치게 되었다.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산타 마을의 요정들이 썰매를 고안하였고 이를 끌 동물들을 공모하였지만 적합한 동물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계곡에서 다리를 다친 순록을 구하기 위해 친구 순록들이 썰매를 끌어서 산타는 무사히 다친 순록을 구조할 수 있었고 이후로는 순록이 계속 산타의 썰매를 끌게 되었다는 간략하지만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

 

유아 대상의 동화책이니만치 이야기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 글밥의 비중은 최대한 줄이고 시각적으로 상상력과 영감에 호소할 수 있는 큼지막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그림책이라고 해야 맞겠다. 말 그대로 동화풍의 인물과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아있는 듯한 삽화들은 독서에 관심 없는 아이들의 관심을 쏠리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유명 작가인 한강이다. 그는 동시대의 작가로서는 드물게 동화를 직접 쓰거나 번역한 경우가 제법 있다. 짤막한 동화 번역 책에서 그의 인간적 내음을 접하게 되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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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귄트 밀레니엄 북스 66
헨릭 입센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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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의 전기와 중기, 후기의 작품시기별로 한 작품씩 수록한 모음집이다. 선곡이 절묘하다. 이 책과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 이렇게 두 권만 있으면 어지간한 입센의 주요 희곡은 모두 포괄한다.

 

1. 페르 귄트

 

오랜만에 <페르 귄트>를 다시 읽는다. 중학생 시절에 헌책방에서 구해 읽은 삼성출판사 문학전집에 들어 있던 희곡집.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하고도 웅대한 스케일의 대작이었다는 점 하나뿐이다. 여전히 이 희곡은 섣부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내 삶의 세월은 작품에 대한 안계(眼界)를 넓히는 데 도움은 된 듯하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가와 인물들이 작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페르 귄트>는 역설이지만 국내에서 비인기 작이다. 번역본도 달랑 이 책 한 편이다. 그의 이후 사회극들의 조명에 비춘다면. 반면 그리그의 덕택에 음악계에서는 인기목록에 들어가는 편이다. 입센의 여타 극작품 중에서 음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인 페르 귄트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할지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외부적으로 표상되는 그는 응당 나쁜 인물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가 과연 사악한 인물일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는 북구적인 인물이다. 커다란 체구에 거칠면서도 현실보다 상상과 모험에 치중한다. 좌충우돌하지만 의외로 과단성은 부족(21장에서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젊은이를 숨어서 지켜보는 페르를 보라!)하다. 세속의 도덕적 허울은 가볍게 무시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모성과 신성에 호소하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인다. 생의 기쁨과 젊음의 활력을 사랑하고 갈구하는 페르(48). 반면 쉽게 속임을 당하는 어수룩함 역시 천진함과 아이 같음에 근접한다.

 

이 작품은 현실과 설화가 위화감 없이 혼재되어 있다. 페르가 지어낸 수사슴을 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허풍(11), 도브레 왕에서 벌어진 트롤 소동(16)도 론데 산을 중심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의 북구적 전승과 연결되어 있다. 트롤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등 현대의 가장 인기 있는 판타지의 출연진이 아닌가.

 

특색 중 하나인 장대한 스케일은 주로 페르가 해외에서 떠돌이를 하는 과정을 알려준다. 영국에서의 노예무역, 모로코에서 배를 털리고 뜻하지 않게 예언자 행세를 하다가 아니트라에게 남은 보석마저 털려버린 페르. 이집트에서 정신병자들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는 귄트. 마지막에 나이든 페르 귄트는 귀향선이 난파하여 겨우 목숨을 구한다.

 

솔베이지는 페르에게 스쳐지나가는 여인이지만, 그녀의 도덕적인 청순미는 페르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페르는 그녀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이전에 저지른 죄악은 불가능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 늙은 페르와 솔베이지의 상면과 페르의 죽음은 앞서서 페르와 단추공 간의 실갱이 대목과 맞물려 종교적 참회와 반성을 유도한다. 단추공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페르 같은 인물이라면 악마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귀향선에서, 그리고 난파선에서 악마는 선객을 가장하여 그에게 제안을 던진다. 페르는 비종교적 인물로 비치지만 의외로 그는 참종교적이다. 그는 당대에 진실한 신앙과 기독교가 퇴락했음을 탄식(51)한다. 그리고 장례식 장면에서 참신앙의 존재를 찾고 자기의 길을 걷기로 결심(53)한다. 그리고 페르는 악마를 골탕 먹이기조차 한다(510).

 

단추공이 페르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페르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 그는 항상 페르였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57). 도브레 왕은 1막 이후 페르의 삶이 인간이 아닌 충실한 트롤의 삶이었음을 선언한다(58). 페르를 구제한 것은 솔베이지의 신앙과 사랑의 힘 덕택이었으니 어머니, 아내의 모성과 순결성이 그를 지켜준 것이다(510).

 

입센은 이 작품을 운문으로 창작하였다. 즉 작품에 시적인 정서를 불어넣으려고 하여 여기서 후대의 사회극과 같은 현실적, 사회적 요소의 직접적 표출을 삼갔다. 작가가 묘사하고자 한 노르웨이인의 부정적 속성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전형적인 긍정적 성격이 찬양받게 되었다. 작가의 오단인가 아니면 작품 자체의 고유한 생명력이 현대에 맞게 변용한 것인지 궁금하다.

 

2. 헤다 가블레르

 

입센 작품의 주된 무대는 가정과 가족이다. 가정은 자아가 타아와 마주치는 접점인 동시에 사회관계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입센이 무엇보다 중시한 진실성의 문제는 도처에 편재하지만 개인과 가정에서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회에서야 논의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른바 중기의 사회극은 기본적으로 가정 내에서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노력이며, 이 작품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정의 출발은 낯선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으로 성립한다. 결혼의 의미가 육체적, 물리적 결합을 넘어선 정신적 교감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입센 당대는 물론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결혼은 도피처이며, 사회와 관습의 많은 제약을 감내해야 하는 (사랑과는 별도의) 관계 형성이다.

 

주인공 헤다 가블레르는 방금 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테스만의 아내다. 독자는 그녀가 장군의 딸이자 과거 사교계의 총아로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자기중심적이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성격, 불안한 예감대로 그녀와 남편의 대화는 엇박자를 보인다.

 

(헤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단 한 사람과 그것도 늘 같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다는 사실이에요.

(헤다) 전 그 당시 완전히 지쳐 있었던 거예요. 제 시대는 이미 끝났었죠. (P.378~379)

 

그녀는 애정 없이 결혼 하였고, 결혼생활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남편이 자기의 명예를 빛내줄 것을 기대했으나 예상보다 지연되어 실망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자신의 내심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블랙)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요.

(헤다) 따분하다고 했잖아요.

(헤다) 죽도록 따분한 것, 아시겠어요?

(헤다) 애정?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P.384~400)

 

헤다의 남편에 대한 태도는 경멸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작가는 이를 대화에 앞선 지문으로 표현한다. 대화가 싫증난 듯이, 경멸하듯이, 싸늘한 눈초리로, 흥미 없다는 듯이 등등. 우리라는 표현에서 자기를 빼달라는 대사나 남편 가족의 일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대사를 통해 독자는 헤다의 성격과 사랑 부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헤다와 로브보르크는 과거에 한때 연인이었다. 그와 테스만은 둘 다 문화사학자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테스만은 중세 가내수공업 연구라는 과거지향적인 반면 로브보르크는 미래학에 가까운 미래지향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들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헤다의 내면은 로브보르크를 향해 있어 자신의 임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그와 엘브스테트 부인 간의 아이(잃어버린 원고)를 불태워버린다.

 

(로브보르크) 자식을 죽이는 것은 아비로서 최대의 죄악은 아니야......그만 어린애를 잃어버리고 말았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P.439)

(헤다) 자아, 테아, 당신의 아이를 태워줄게요. 당신의 아이, 그리고 에일레르트 로브보르크의 아이. 불태워 줄게요. (P.441)

 

헤다는 이십대 초반인 만큼 아직 세상의 간교와 술책에 미숙하다. 그녀의 닭장 속 단 한 마리의 수컷인 블랙에게 위협을 받자 견딜 수 없다. 애정 부재의 결혼, 인내하기 어려운 평범한 남편과 뱃속의 아기,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그리고 타의에 의해 강요받게 되는 불륜 등.

 

(헤다) 어쨌든 당신 손아귀에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당신 뜻대로 해야 한다면 그건 마치 노예와 같은 거죠. 정말이에요.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싫어요.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싫어요. (P.465)

 

유례가 드문 단호한 결단으로 막이 내리지만, 여운은 씁쓸하다. 입센의 전작에서는 불행의 원인을 귀인하기가 용이하였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남편 테스만에게 비난할 점을 찾기 어렵다. 정직하고 범상한 성격의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나름 노력하는 소심한 남편. 종래의 독단적이고 권위적 남편상과도 다르다.

 

헤다는 나쁜 여성으로 키워졌다. 부모 없이 재산마저 없고 생계가 막막한 혼기가 다가온 젊은 여성. 화려했던 과거 시절은 한때의 꿈으로 간직해야 한다. 차라리 독신이 그녀에게 어울리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성에게는 현대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작중에 헤다와 로브보르크 간에 수차에 걸쳐 반복적으로 형상화되는 머리에 포도잎사귀를 장식하고라는 구절의 의미를 살펴본다. 그것은 디오니스소 또는 바커스 신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두 사람 관계의 실체인 삶에 대한 열정”(P.404)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헤다의 표현에 따르면 열정과 광기의 질탕한 축제에서 자신을 방기하지 않고 당당히 돌아오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 경우 보다 성숙한 자아를 발현시킬 수 있지만, 로브보르크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헤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예요. 이제부터 평생 동안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P.413)

(헤다) 그 사람한테는 인생의 향연에서 벗어나려는 힘과 의지가 있었어요. (P.458)

 

3. 아기 에욜프

 

극중에서 아기 에욜프는 1막에서 잠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내 물에 빠져 익사한다. 극의 실제 주인공은 아기 에욜프의 엄마인 리타이다. 아기 에욜프는 불쌍한 에욜프이기도 하다. 어릴 적 테이블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면서부터. 아기 에욜프 외에 또 다른 작은 에욜프가 있는데 고모인 애스터의 어릴 적 애칭이다. 오빠인 앨마스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에욜프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여동생의 애칭을 자신의 어린 아들의 이름으로 명명한 이유도.

 

작품 속 미스터리는 하나 더 있다. 난데없이 등장한 쥐 할머니와 에욜프의 죽음 사이의 연관성. 피리부는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쥐 할머니는 쥐들을 유인하여 물에 빠뜨려 죽인다. 두 인물 사이에 어떤 설화적 유사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쥐 할머니가 에욜프의 죽음을 초래한 이유도 확연하지 않다.

 

리타는 피가 뜨거운 여성으로 남편에 대한 열정적 애정을 품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독점할 수 없는 것이 불만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차지하고 싶어 하며, 남편이 여동생 애스터, 아기 에욜프 그리고 저술활동에 주의를 분산하는 걸 못견뎌한다. 한마디로 남편 욕심이 많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에게 열렬하지 않으면 밖으로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는다.

 

(리타) 저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당신 한 사람과만. 저는 에욜프의 엄마만으론 살아갈 수가 없어요.......저는 완전히 당신 것이고 싶은 거예요. 당신 한 사람만의 것이요, 알프레드! (P.252)

 

에욜프의 죽음으로 리타와 앨마스, 앨마스와 에스터의 관계는 변화의 법칙에 지배를 받게 된다. 리타와 앨마스는 부부 관계를 비탄과 비판의 시각에서 되돌아보며 자성하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비난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한다.

 

(앨마스)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보며) 이제부터 우리 두 사람 사이엔 벽이 존재하게 될 거야. (P.290)

 

앨마스와 애스터의 관계도 전환점에 처한다. 앨마스는 리타와 헤어지고 애스터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순수하고 신성한 혈연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절로. 그에게 있어 이때가 아름다운 시절로 결혼 생활은 오히려 타락한 시절일 뿐이다.

 

(앨마스) 애스터, 내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곳은 바로 너한테야.

(앨마스) 좋아, 그렇다면 나는 네게로 돌아갈 거야. 그리운 내 동생에게로. 너에게로 돌아가서 결혼 생활의 때를 씻고 나 자신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돼... (P.295)

 

앨마스의 순수하고 신성한 남매 간 사랑에 대하여 애스터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이 혈연적 남매 간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들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하고 신성할 수 없다는 점을. 앨마스의 긍정적 부인에 대하여 그녀는 변화의 법칙을 언급한다. 그들 사이를 막아주었던 혈연의 방패가 사라진 지금, 애스터는 근친상간적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의 사랑이 깊고 컸던 만큼 두려움 또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기 에욜프를 대신해서 작은 에욜프가 돼 달라는 리타와 앨마스의 요청을 거부하고 그녀가 도망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앨마스) (긴장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왜 그러는 거냐, 애스터. 마치 도망치는 것 같구나.

(애스터) (고뇌를 억누르며) 그래요, 알프레드! 도망치는 거예요.

(앨마스) 도망치는 거라고? 나한테서?

(애스터) (속삭이는 목소리로) 당신과 나 자신한테서.

(앨마스) (뒤로 주춤 물러서며) 아아! (P.313)

 

아기 에욜프는 죽고, 작은 에욜프는 떠났다. 앨마스마저 떠나려고 한다. 리타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토록 거부하던 변화의 법칙에 순응하기로 한다. 이기적이며 독점적인 사랑을 갈구하던 리타는 욕심 부리지 않고 책임 의식과 (에욜프와) 화해를 위하여 자선 사업을 할 결심을 품는다.

 

(앨마스) 당신이 그만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에욜프가 태어난 것도 무의미한 일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군.

(리타) 그 아이의 죽음 역시 무의미한 일만은 아닐 거예요. (P.325)

 

앨마스는 아내의 진심을 이해하고, 떠나기를 그만두고 리타를 돕기로 한다. 입센은 평범한 가정 비극을 인류애로 승화시킨다. 리타의 이타적 변모를 통해서. 앨마스의 고통스런 자각을 통해서. 이기적 사랑과 욕망은 사라지고 인류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 남는다. 두 에욜프의 떠남을 계기로. 작품의 끝대목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리타) 우린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까요?

(앨마스) (그윽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물론 위쪽이지. 산꼭대기, 별이 있는 쪽. 그리고 깊은 침묵이 흐르는 쪽.

(리타) (손을 내밀며) 고마워요!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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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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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내한테 이 작품을 읽어봤냐고 물었다가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자신은 학창 시절에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하면서. 본시 안티 기질이 다분하여 남들이 많이 읽은 책은 일부러 외면하던 스타일이라 호기심과 무관심의 경계선에 오랫동안 올려두었던 책을 홧김과 오기로 읽는다.

 

제제의 영상에 어릴 적의 나, 오늘날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독자들치고 제제에게 양가적 감정을 갖지 못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의 꼬마 악마적인 장난에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거나 다소 심하지만 너털웃음으로 넘기는 반면 가혹한 매를 맞고 버림받은 아이마냥 방치되는 장면에는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 고백하건대 통근 전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찔끔거리는 눈물을 삼키느라고 창밖 멀리 응시한 적이 두어 번 정도 있다.

 

제제에 대한 주변의 평은 양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을 포함한 이웃들에게 그는 극도의 장난꾸러기일 뿐이다. 제제에게 호의적인 이해를 갖는 인물들도 있다. 빠임 선생님은 제제를 황금 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이”(P.119)라고 부른다. 뽀르뚜가가 제제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 연유도 단순한 동정과 연민의 차원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제제의 집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았다면 제제와 그의 장난에 대응하는 태도가 좀 더 너그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글로리아 누나 외에는 자신을 감싸고 포용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 가족의 모습. 심한 장난으로, 밖으로만 떠도는 외에 제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달리 없다. 비록 남달리 영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지만 겨우 다섯 살,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였으므로. 제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어릴 때에 꽤 많은 매를 맞고 자랐다. 심한 장난도 있었고, 대개는 말을 안 들어서다.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해버리는. 그래서인지 제제가 끔찍한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마치 자신인 마냥 슬픈 추억이 물밀 듯 몰려옴을 느낀다. 자신의 말대로 제제는 정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었던가.

 

작고 못생긴 라임오렌지나무가 처음부터 제제의 맘에 들었을 리 없지만, 나무는 제제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의 말을 싫증내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악연으로 시작한 뽀르뚜가와의 만남은 역으로 더없이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제제는 뽀르뚜가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뽀르뚜가에게 매달리는 제제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동년배의 또래와 우정을 갖게 되고, 부모 형제에게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애정을 품는 법인데 제제는 그러하지 못하다.

 

아이가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에드문두 아저씨의 말처럼 생각이 자라고 커서 우리 머리와 마음을 모두 돌보게 돼. 생각은 우리 눈과 인생의 모든 것에 길들게 돼.”(P.100)는 현상이지만, 또한 현실을 깨달음을 뜻한다. 현실이 마법세계가 아니며 행복과 기쁨보다는 불행과 슬픔을 마주치는 경우가 더 많음을. 인생은 고()라고 하는 거창한 설법이 아니더라도 제제는 가장 소중한 존재의 상실을 통해 뼈저리고 적나라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시는 꽃이 아니라 물 위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수많은 이파리들과 같은 것이었다.” (P.244)

 

이제는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P.270)

 

제제에게 있어 부성(父性)의 존재와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실직한 아빠를 대신해서 생계를 위하여 밤늦도록 일하는 엄마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그를 대신하는 글로리아 누나를 통해 제제는 모성(母性)의 향수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아빠의 실직은 집안 전체에 어둠을 가져왔다. 제제가 이를 뼈저리게 절감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가라앉은 분위기와 선물의 부재를 통해서다. 가난뱅이 아빠, 무능한 아빠, 폭력적인 아빠의 대척점을 제제는 뽀르뚜가에서 찾는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P.202)

 

뽀르뚜가를 잃었음에도 제제는 자신의 아빠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뭣 때문에 날 무릎에 앉혔을까?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냐. 내 아빤 돌아가셨어. 망가라치바가 내 아빠를 죽였어.” (P.290)

 

밍기뉴가 첫 번째로 피운 작고 흰 꽃 한 송이로 제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였듯이 제제는 뽀르뚜가의 상실과 생사를 오간 열병으로 유년 시절에 작별을 전한다. 그들은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P.285).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을 밝고 즐겁게 끝맺지 못하였다.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제와 밍기뉴, 뽀르뚜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여운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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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품>

1. 왕표는 어떻게 구원되었나

2. 마르코의 미소

3. 죽음의 젖

4. 겐지 왕자의 마지막 사랑

5. 네레이데스를 사랑한 남자

6. 제비들의 노트르담

7. 과부 아프로디시아

8. 목잘린 칼리

9. 마르코 크랄리에비치의 최후

10. 코르넬리우스 베르그의 슬픔

 

이 작가의 이름을 최초로 알게 된 것은 창비세계문학 중 프랑스 편에 수록된 <어떻게 왕부는 구원받았는가>를 읽으면서부터다. 물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라는 작품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묘한 분위기의 이 단편을 읽고 수록된 작품집이 일찍이 번역 출간된 적이 있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중고서점을 수소문해서 겨우 구하게 된 나름 사연이 깃든 책이다.

 

유르스나르가 밝히는 동양은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지역적 개념과 아울러 문화적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역적으로는 발칸반도 이동에서 인도를 거쳐 일본까지를 포괄하며, 문화적으로는 비 정통기독교 문명지역을 가리킨다. 정교와 힌두교, 불교와 같은. 구체적으로 보면 <왕표는 어떻게 구원되었나>는 중국, <겐지 왕자의 마지막 사랑>은 일본, 그리고 <목잘린 칼리>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그리스와 발칸 지역의 전설과 민담들을 연원으로 삼는다. 마지막의 <코르넬리우스 베르그의 슬픔>만은 암스테르담이 배경이지만 기본 정서는 여타 단편들과 유사하다.

 

동방을 다룬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와 작품들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먼저 이국적 정서다. 서구 주류문화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상이한 타국의 낯선 인물과 문물을 소재로 다루었으니 생경함이 주는 이국적 흥미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국적 요소는 신비함 내지 기이함과도 결부된다.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사물과 현상들을 대할 때 우리들 가슴 속에는 낮선 두려움이 뭉실거린다. 두려움과 호기심은 신비함의 필수 구성요소다.

 

이 작가는 순전한 창작보다는 역사적 제재를 도구로 글쓰기를 행한다. 대표작은 물론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들도 전설, 민담과 민요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자술하고 있듯이. 역사 이야기는 사실(史實)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서 독자들이 허구마저 사실인 마냥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가는 엄선한 사실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가 꾸며놓은 허구를 갖고 자신의 메시지에 역사의 권위를 더할 수 있다.

 

한편의 책으로 섣부른 판단은 곤란하지만, 유르스나르는 반전의 기교와 아이러니, 조소(차라리 암소(暗笑)라고 해도 좋을)적 태도를 선호하는 듯 보인다.

 

마르코를 주인공으로 한 두 단편의 경우 전자에서 이교도들의 온갖 수단에도 완벽하게 시체처럼 위장하여 탈출에 성공한 마르코가 후자에서는 작은 노인과의 충돌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역사적 에피소드인 동시에 삶과 죽음에 관한 우의적 이야기다. 겐지 왕자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花散里 여인의 울부짖음은 그녀의 헌신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며, 네레이데스를 사랑한 남자가 대가로 이성을 상실했음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한다. 과부 아프로디시아의 사랑의 죽음은 숭고함보다는 희극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집이 발표된 해는 1938. 당시 유럽 정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목전에 두고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 서구문명의 종말과 반성을 요구하는 여러 사상과 저작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작품집도 서구문명의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올바른 자신의 이해는 타인의 시각에서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림에 비교할 때 추악한 현실을 인식한 황제의 추상같은 질책. 현실을 초월하여 물아일체가 되어버린 왕표의 사라짐. 예술의 절대성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모색이 깃들여있다. 님프들을 사악한 존재로 여겨서 절멸시키려고 하는 수도사와 동정과 자비의 마음을 일깨우는 마리아, 순수한 인드라의 여신인 칼리가 추악한 창녀의 몸뚱이를 빌어 환생하여 영과 육의 갈등으로 고뇌하는 대목은 당대 유럽의 불안정하고 대립적인 정세와 이의 해소를 위한 작가의 나름대로의 해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은 위대한 화가며, 우주의 화가라는 말을 듣고 코르넬리우스 베르그는 씁쓸히 낮은 목소리로읊조린다.

 

얼마나 불행인가요, 신딕씨, 신이 풍경화로 그치지 못한 것은.” (P.129)

 

 

 

*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어 이제 독자들이 쉽게 구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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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축사 솔 네즈 - 헨릭입센 희곡전집 1
헨리 입센 지음, 이주상 옮김 / 예니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입센의 작품세계를 거칠게 구분하여 볼 때, 대중적으로 유명한 희곡들은 중기 사실주의에 속한다. 가정과 사회에 만연한 왜곡과 부조리, 이의 개혁을 위해 과감하게 가정을 뛰쳐나가고 사회와 정면으로 대결을 벌이는 인물들에 우리는 갈채를 보내고 통쾌한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다.

 

입센의 후기 작품들은 상징주의로 분류된다. 이 말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작중 인물의 대사나 행동, 배경 등에 교묘히 숨겨져 암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극의 구성도 결말을 향해 직선으로 향해 있지 않고 살짝살짝 변죽만 울리면서 독자를 감질나게 하며 갈짓자 행보를 거듭한다. 별 수 없다. 독자는 보물찾기를 하듯이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고 이따금 멈춰 서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할 수밖에.

 

<대건축사 솔네즈>는 독특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입센 자신의 개인생활과 육성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의 나이 이미 육십 대 중반.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입센이지만 서서히 육체적, 정신적 쇠약의 기미를 절감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의 만남. 이것은 작중에서 힐다 봔겔과 솔네즈의 관계로 설정된다.

 

입센에게서 결혼 생활의 의미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바다에서 온 여인>에서 겨우 희망의 싹을 발견하지만, 대체로 불평등과 억압과, 소통 단절로 형식적 관계 유지 차원에만 머물고 있다. 의례적이 상투적인 대화만 거듭할 뿐 진실과 교감이 없는 부부 관계는 기실 남남이나 진배없다. 극중의 솔네즈와 그의 부인 알렌처럼.

 

작가는 여기에서 비로소 온전히 개인에 몰두한다. 솔네즈를 둘러싸고 위협을 가하는 존재는 종전처럼 사회와 관습이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다. 대건축사로 성공한 솔네즈, 그의 화려한 성공은 이면의 어둠과 함께한다. 그는 성공을 위해 주위의 인간관계를 계산적으로 관리한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여직원 카쟈의 순정을 교묘히 이용할 줄도 안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소외의 길을 구한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이해와 공감을 거부한다. 솔네즈에게 아내는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마음의 병을 갖게 된 환자일 따름이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솔네즈에게 유일한 두려움은 젊은이다. 그는 자신보다 유능한 젊은 세대가 곧바로 등장하여 자신을 몰아낼 것에 대한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체계화되고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 벌써 입센은 인물의 이상 심리에 초점을 맞춘 극작품을 발표하였다. 오로지 성공만을 쫓으며 살아온 중년 세대. 이제 겨우 안정을 찾을 만한 시기에 자신의 명성과 지위를 노리며 무섭게 다가서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 입센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볼 수도 있다. 기존 입센 작품에서 세대 간 갈등은 이념 갈등의 형태로 표출된 반면 이 작품에서는 직설적인 세대 간 이해 갈등으로 여과 없이 그려지고 있다.

 

솔네즈: 결국 그랬었군요. 할바드 솔네즈!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어라! 가장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라!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라! 기회를! 기회를!” (P.24)

 

솔네즈: 젊은 세대들이 날 노려보고 있습니다......언젠가 젊은 세대들이 절 찾아와 기회를 달라고 소리치며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때는 할바드 솔네즈, 건축사는 끝장이오.” (P.34)

 

솔네즈: 날더러 문을 열어주라고?......안돼. 그건 그럴 수 없어. 젊은 세대! 그건 새로운 변화요...내 삶의 한계는 젊은이들 때문이오. 그건 하늘이 내린 최후의 심판이기도 하오.” (P.46)

 

힐다 봔겔의 극중 역할은 다층적이다. 그녀는 솔네즈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한편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도록 무모함을 감수하게끔 충동한다. 높은 탑 위의 솔네즈를 본 소녀시절의 환상에 젖어 있는 그녀의 행동은 솔네즈의 이상을 고취하는 동시에 자신의 실현 불가능한 이상의 실현에 집착하는 병리적 속성을 보인다.

 

솔네즈의 아내 알렌은 어떠한가? 그녀의 정신적 외상은 혼란스럽다. 힐다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화재로 인한 아이들의 죽음은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애지중지하던 인형들의 상실이다. 그녀는 회상하며 눈물마저 흘린다.

 

알렌: (눈물을 흘리며) 내가 아끼던 예쁜 인형들......, 가엾은 것들! 그걸 구해냈어야 하는 건데! 생각만 해도 가엾어서 견디질 못하겠어요.” (P.80)

 

솔네즈의 최후는 운명적이다. 삶의 진실을 내면에서도 가정에서도 세상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영혼. 그의 빈 마음을 이상에 대한 허상과 야망을 향한 과욕으로 대체시키는 역할을 바로 힐다가 맡는다. 힐다와 솔네즈는 이상의 갈구자라는 면에서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 존재들이다. 반면 그것이 참다운 현실의 삶에 근거하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음은 그네들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솔네즈가 세우고 오르고자 하는 탑은 인간을 영역을 넘는 신의 영역이다. 구약성서에서 바벨탑을 자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신이 인식하듯이. 인간이 사는 집에는 높은 탑이 필요 없다. 오직 신이 거처하는 곳에 높은 탑이 존재한다. 솔네즈는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인가 아니면 금기를 깨뜨리려는 영웅인가. 힐다는 망상을 부추겨 파멸로 이끌고 가는 인물인가 아니면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힘을 불어넣는 존재인가. 그런 의미에서 추락한 솔네즈를 두고 내뱉는 힐다의 마지막 대사는 작품의 말미를 장식하게 충분하다.

 

힐다: 하지만 그분은 해내셨어요. 나의 위대한 건축사! 솔네즈! ...” (P.98)

 

입센은 이 작품에서 사건 전개와 같은 구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 여러 가지 암시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대사는 의미 자체가 아니라 앞뒤 문맥과 인물들의 행동, 어조, 조명 등의 무대 등과 같은 요소들의 영향을 통해 전혀 다른 뉘앙스를 지니게 되며, 그것이 작품 전체에 모호성과 신비성 내지 기이함을 배가시키고 있다.

 

힐다: (분간할 수 없는 어조로 그러나 냉정하게) 대건축사 솔네즈의 새 집에 꽃을 달아요.

솔네즈: 그래, 인간들이 사는 집이 될 수 없는 새 집에...... (솔네즈는 정원문으로 퇴장)

힐다: (이상한 표정으로 창틀 옆에 선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신기한 일이지......대건축사 솔네즈......”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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