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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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2. 로저 맬빈의 매장

3. 젊은 굿맨 브라운

4. 웨이크필드

5. 야망이 큰 손님

6.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7. 목사의 검은 베일

8. 반점

9. 천국행 철도

10.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11. 라파치니의 딸

12. 이선 브랜드

 

<큰 바위 얼굴><주홍 글자>로 유명한 호손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호손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새삼 모호성, 상징성, 환상성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그의 기법의 전형인 알레고리에 기인한다. <라파치니의 딸>에서 스스로 자신의 작품 성향을 알레고리에 대한 고질적 선호”(P.251)라고 술회하는 점에서 보듯이 그의 단편 작품들에는 양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알레고리적 특성이 다소간 반영되어 있다. 알레고리에 대한 선호는 그의 작품 특질을 정신적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한편, 당대의 종교, 특히 죄와 선악에 대한 관념,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와 결부하여 작품에 음울한 판타지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의 모호성은 젊은이의 핵심적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으며, 작가 또한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증폭되며,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여 기괴한 연상을 독자와 젊은이에게 불러일으킨다.

 

호손은 특히 엄격한 청교도주의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애초에 신앙의 자유를 구하기 위해 신대륙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앙만을 추구하는 독선적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완고하고 독단적인 믿음은 타협과 관용을 불허하며 비인간적으로 흐르게 되기 쉽다. 호손은 인간 사회에서 악의 존재는 불가피함을 깊이 인식하고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는 종교의 과오를 우회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젊은 굿맨 브라운>,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목사의 검은 베일>, <천국행 철도>, <이선 브랜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젊은 굿맨 브라운>에서 굿맨 브라운의 혼란은 선악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전도되는 데 기인한다. 정직하고 독실한 선조는 사실 사악한 짓을 자행하였으며, 주변의 선한 사람들과 아내조차 악마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인간 내부의 악마적 속성은 본성과 운명”(P.83)이며, “악은 인간의 본성”(P.85)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굿맨 브라운처럼 세상과 단절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서도 이러한 갈등은 이어진다. ‘오월제자체가 기독교 이전의 이교적 요소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호손은 메리 마운트 주민을 타락한 것으로, 이웃 청교도 주민을 경건하다고 표현하는데,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역설적 문구임을 알게 된다. 메리 마운트 주민은 즐겁고 쾌활한 반면, 청교도 주민은 음울하고 불행한 모습”(P.126) 또는 엄격하고 냉혹”(P.127)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연의 자태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 후퍼 목사의 검은 베일 한 조각이 던져주는 의미 역시 인간에게 드리어진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이다. 단순한 검은 베일로 사람들은 목사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며 두려워하고 꺼린다. 베일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 전개의 추동력이다. 검은 베일은 실체적으로는 어둠과 단절을 가리키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의 죄악과 악마성을 의미한다.

 

사람의 눈으로 이 베일이 걷히는 것을 보지는 못할 것이오. 이 음산한 베일은 나와 이 세계를 떼어놓아야만 하오.” (P.147)

 

후퍼 목사는 베일의 숙명적 속성을 선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검은 베일은 목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보시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습니까!” (P.156)

 

<천국행 철도>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차용한 현대적 알레고리다. 과거와 현대, 허영의 도시 대 천국의 도시, 열차 순례자 대 도보 순례자의 대비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천국행으로의 순례를 수월하게 하는 철도가 있는데, 흙먼지와 땀에 지저분하고 힘들게 도보를 하는 두 순례자(옳은 일 고수하기, 천국 향해 걷기)는 시종 조롱과 폭소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의 반전이 극적인데, 천국행은 안락과 쾌락으로는 닿을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석회 구이 <이선 브랜드>를 사로잡은 관념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집착이다. 하늘이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유일한 죄악, 즉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탐구와 실행은 곧 신에 대한 도전에 다름 아니다. ‘용서받지 못할 대죄가 기독교에서 존재할까?

 

인간에 대한 우애와 신에 대한 존경의 염을 물리쳐 이기고 자신의 강력한 요구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그런 지적 죄악이 바로 그것이오. 영원한 고뇌의 응보를 받아 마땅한 유일한 죄악이지!” (P.308)

 

호손은 인간의 지적 오만을 경고한다. 지식과 과학의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신뢰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한다. 신이 사라진 마당에 신에게서 용서받거나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을 판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선 브랜드는 악마가 되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그의 주제 의식은 과학과 예술에 대한 의미 추구로 확대된다. <반점>,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라파치니의 딸>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군이다.

 

<반점>은 계몽주의와 근대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무비판적 과학 추종에 대한 경종이자 과학적 낙관주의와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에일머는 과학자로서 아내의 뺨에 아로새겨진 진홍빛 손 모양의 반점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상징하므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신의 손길이 없어도 완벽과 완전을 구현할 수 있다. 에일머의 실패와 아내의 죽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부인하지 말고 자체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호손이 뜻하는 좀더 깊은 지혜”(P.184)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일머의 조수인 아미나다브가 오히려 현명하다.

 

<라파치니의 딸>의 비극적 결말도 과학적 기술의 실패에 결부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과학의 추구가 가져오는 참혹한 교훈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깨달은 바 있다. 과학적 실험을 위해 인간 희생을 거리끼지 않는 라파치니 박사. 희대의 독녀가 된 그의 딸. 베아트리체의 절규와 탄식. 그의 아버지는 자식이 과학적 대상을 뛰어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인간이 부재한 과학의 무의미성도.

 

상기 작품에 비하면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주인공 오웬은 행복한 인물이다. 그는 기술자로 머물기보다 예술가를 지향한다. 예술가의 작업은 아름다움의 정신 바로 그것을 형태로 만들어 움직이게 하려는 것”(P.218)이다. 오웬과 댄포스는 작중에서 각기 정신 대 육체, 예술 대 기술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세상은 예술과 예술품은 찬미하지만 예술가와 예술 행위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정신은 높지만 그들의 주위는 아무도 없다. 늙은 시계 제조공과 그의 딸 애니조차도.

 

오웬의 실패와 방황, 재도전은 예술가의 고뇌를 표상한다. 오웬의 나비는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지력과 상상력과 감성과 영혼의 구현”(P.243) 결과다. 회의적인 아기의 손에 소멸당하는 나비의 운명은 차라리 상징적이다. 예술적 상징물은 유한하지만 예술과 창조의 정신은 영속적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모든 고아한 정신적 행위의 보상이란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오직 그 자체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P.245)을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로저 맬빈의 매장>, <웨이크필드>, <야망이 큰 손님>은 인간 운명의 초자연적 불가해성에 대한 탐구의 산물이다. 합리와 이성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압도된다. 앞의 두 작품에서는 초기 개척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이교도적, 미신적 요소가 발견된다. 특히 후자에서 로이벤의 선택은 불가피한 경우이지만 저주를 받게 되고 피갚음의 희생을 요구하는 초자연적 현상이 개입하게 된다.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단순한 혈육의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P.107)

 

이렇게 암시적 성향을 <야망이 큰 손님>은 작품 내내 드러낸다.

 

높고 추상적인 야망”(P.107)을 품고 있는 젊은이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과 이름 모를 죽음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예언적 운명의 결과는 그래서 은근한 조소와 냉소마저 느낄 수 있다. 죽음의 운명을 언제나 삶의 주변을 맴돈다. 죽음은 맹목적이며 개인의 소소한 희구를 유념하지 않는다는 것.

 

<웨이크필드>는 문제적 인물이다. 립 밴 윙클이 타의에 의해 이십년간을 세상과 떨어진 반면 웨이크필드는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여 사라져버리고, 죽은 사람들 틈에 끼지도 못하면서 산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의 위치나 그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모두 포기해 버리려 한 것이었다.”(P.100). 그의 존재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이 자신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겉도는 상태를 우리는 인간소외라고 부른다. 소외는 실존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 면에서 호손은 시대를 앞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호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마냥 외면만 할 수 없어서 이번 기회에 그의 대표작들을 섭렵하려고 한 첫 번째 시도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섣부른 선입견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알레고리 기법,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대변되는 분위기, 초자연적 요소, 종교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 과학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제기 등이 한데 어울려 호손을 우울한 예언자로 만들고 있다. 또한 경쾌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차분하고 나직한 문체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단번에 확 이끌리는 재미는 없지만 은근하게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묘미를 지닌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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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일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8
미치쓰나의 어머니 지음, 정순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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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헤이안시대 일본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후대의 일기문학과는 달리 작가가 뇨보가 아닌 가정집 여인으로서 보통의 귀족 여성의 삶을 재현하였다고 하여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부여받고도 있다.

 

이상과 같은 평가를 보면 굉장히 대단한 고전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한 여인네의 평범한 삶을 일기형식을 빌어서 쓴 회상록이다. 작자는 10세기 전반기 당대 세력가의 부인으로서 아들 후지와라노 미치쓰나의 어머니라고만 전한다.

 

작자가 신변잡기와도 같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연유는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면 그 생활이 어떨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한테도 하나의 본이 되고 싶었다.” (P.34)

 

즉 상위 귀족과의 결혼 생활의 애환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전편을 통해서 당대 일반적 여인들의 곤고한 삶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도대체 권세가의 부인으로서 작자의 삶이 어떠했기에 이러한 토로를 하는지 궁금하다.

 

중류 귀족의 딸로서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 유력 집안이 후지와라노 가에이에의 아내가 된 그녀. 일기 내내 작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남편에게만 쏠려 있다. 남편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체념하여 무덤덤한 듯 하다가도 종내 끈을 놓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처럼 남편 가네이에는 작자에게 소홀하고 박정한 형편없는 남편이었던가. 여러 아내를 거느렸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그러하지만 당대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결혼생활을 하였다. 게다가 작자의 한탄과는 달리 애정이 식은 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방적 매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네이에의 구혼 편지의 불성실함에 대한 비난과 결혼 초 남편에 대해 여전히 마을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아”(P.45)라고 표현한 대목은 훗날 작자의 불행을 암시하고 있다.

 

작자의 불행을 초래하고 남편과의 사이를 소원하게 만든 원인은 바로 남편의 또 다른 결혼이다. 헤이안시대의 결혼 풍습을 감안하면 남편의 행위는 비난받을 여지가 없다. 작자 자신 역시 두 번째 부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오직 남자만을 바라보고 일생을 살아야 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사랑의 경쟁자인 시앗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기는 참으로 힘들 것이다. 작자의 경우 무로마치 골목길 여자에 대한 질투 표출은 적대적이어서 훗날 그 여자가 남편을 총애를 잃게 되자 적나라한 감정을 표현할 정도다.

 

더할 나위 없이 하찮은 여자다. 단지 그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니까 자기 주제도 모르고 기고만장했던 것이다......내가 겪은 고통보다 조금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P.65)

 

또 다른 남편의 여인 오미에 대한 적개심도 뒤지지 않는다. 그 여자의 집을 일컬어 내가 싫어하는 곳이라든지 밉살스런 여자네 집이라고 대놓고 기술할 정도다. 자신도 여러 부인 중 하나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 작자의 편협성은 이처럼 다른 여인에 대한 질투와 증오를 보여줄 뿐이다. 일부다처제에서 남자는 여러 부인에게 비교적 균등한 대우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정 부인에게만 관심과 애정이 쏠리면 가정불화를 야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작자는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길 갈구한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이 자주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내는 신세였다.” (P.125)

 

작자의 남편에 대한 감정과 태도는 모순적이다. 그녀는 당대 통상적 여성들처럼 남편에게 고분고분한 면은 부족했던 듯하다. 부부 사이의 소원과 해소가 반복되는 와중에 간혹 남편이 찾아오는 날에 오히려 퉁명스럽고 냉대하다시피 응대하여 남편을 떠밀다시피 해놓고는 다시금 원망의 신세한탄을 되풀이한다.

 

정말 밉살스럽기 그지없어서 목석과 같이 딱딱하게 굳은 채 밤을 새우고 말았다.” (P.170)

“......아무 말 없이 무뚝뚝하게 있자......” (P.207)

아 어쩌나, 그에 비하면 나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풀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옷은 너무 오래 입어 흐느적거리는 낡은 것이었고 거울을 보니 얼굴 또한 늙고 볼품없었다. 이번에도 내게 정나미가 떨어졌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P.248)

 

그리고 하쓰세 참배, 나루타키 한냐지 등 외유를 감행하여 가네이에의 태도에 일희일비한다. 이는 본인의 답답한 심경을 해소하고 신불에게 기원하는 동시에 남편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지닌 외유다. 대상회 재계에 대한 작자의 태도가 하쓰세 참배 사건 이후 극적으로 변모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실소하게 된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어서....” (P.113)

“......알았다고 하고 혼이 빠지도록 일을 했다......나도 왠지 경사스러운 의식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들떴다.” (P.120)

 

남편과의 관계가 서서히 소원해지면서 일기에는 중권 이후 작자의 비탄과 탄식, 체념의 문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작자는 이 글을 자신의 신세 한탄의 용도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애당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무의미하고 아무런 재미조차 느낄 수 없는 쓸쓸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P.208)

정말 애정이 다 말라버렸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해도 정말 너무하다. 이럴 수가 있나 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P.234)

이렇게 소원해진 채 지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면서도......” (P.241)

 

그나마 띄엄띄엄 있던 남편의 방문도 작자가 교외로 이사를 하면서 완전히 단절되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방문이 물리적으로 불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사를 통해 작자와 정리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이 작품이 하나의 문학으로서 무슨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되새겨본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글은 온통 작자와 남편과의 관계 불화에서 비롯된 한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사회적 현안과 사건에 대한 인식도 매우 취약하다. 작자를 변호하자면 작자는 헤이안시대의 타 여류 문인들과는 달리 세간 경험이 없으므로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작자와 남편에 대한 개인적 과오의 비판은 당대의 시대적 사회구조적 제약을 고려하면 금물이다.

 

그들은 모두 제도의 피해자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음미하면 어떨까. 시대적 제도적 덫에 걸린 일개 여인인 작자가 자신의 처지와 불행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개인적 체험과 회상을 넘어 당대 여인들의 일반적 삶을 대변하고 있어 천여 년이 경과한 오늘날 독자에게도 당대를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 이외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이며 사실적인 슬픔 표현이 인상적이다. 노리아키라 친왕과의 와카 증답은 부부 간 사이가 좋았던 시절의 즐겁고 흥미진진한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아들 미치쓰나와 수양딸의 각각의 구애와 청혼담을 바라보는 작자의 내밀한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당대는 와카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자 역시 와카의 명수였고 해서 과장하자면 수많은 와카의 증답이 일기 전체를 도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일본 옛 시절의 독특한 정서와 미감의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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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워싱턴 어빙 지음, 박경서 옮김 / 문학수첩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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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앞서 읽은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과 이 책을 읽으면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북>에 수록된 주요 작품들은 대충 훑어보는 셈이다. 여기에는 모두 20편의 단편 및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으며 절반가까이는 앞서 읽은 책과 중복된다. 여기서는 중복되지 않은 글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언급한다.

 

<립 밴 윙클><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중요 작품이니만치 약간 첨언한다. <립 밴 윙클>의 주인공이 돌아온 마을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이렇게 외친다.

 

모르겠어요!......나는 내 자신이 아니오. 나는 다른 사람이오. 저기 저 사람이 나요. 아니, 저 사람은 내 자리에 들어간 다른 사람이오......나는 내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소.” (P.27)

 

가엾은 립.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이 어디 당신뿐이겠는가? 20년이 흐르지 않더라도 매분 매시마다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하는 게 바로 오늘날의 자화상이다.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구성미가 탁월함을 새삼 깨닫는다. 슬리피 할로우에 대한 소개 후 이커보드에 대한 소개가 역시 이어지고 카트리나를 향한 이커보드의 장밋빛 몽상이 시작된다. 저녁파티에 가는 길의 행복한 심경은 돌아올 때 불행하고 불안한 심정과 대비를 이룬다. 목 없는 기사와의 대치 후 이커보드의 행방불명은 초반과 맞물려 전설 하나를 추가한다.

 

어빙은 자신의 방랑벽을 고백한다. 그는 낯선 장소와 인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단순한 엑조티시즘 차원이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보다는 신생 미국에는 없는 오래된 역사적, 문화적 자취와 체취를 맡고 싶어 했다. 유물과 유적에 결부된 수백 년 동안 전해진 반쯤은 역사이고 절반은 전설과 설화가 되어버린 옛사람들의 흔적. 기원을 알 수 없는 오랜 옛적부터 내려온 소박하고 예스러운 관습과 풍습 등. 그것은 한편으로는 시적이고 낭만적인 취향의 반영인 동시에 또한 일천한 미국인들의 정신 체계에서 결여된 영역이며, 일종의 문화적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작가가 영국 체류 시 런던과 같은 대도시를 피하고 올드 타운이나 또는 시골에 시선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시골에서는 아직 근대화와 도시화에 물들지 않은 영국인의 전통적 정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점은 세계 어디나 공통적인 사례다. 영국인은 전원생활을 더욱 선호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목가적 작가들은 자연을 이따금 방문해 자연의 일반적 매력만 관조하지만, 영국의 시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즐긴다. 그들은 자연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그것의 가장 세밀한 변덕까지 관찰한다.” (P.102)

 

작가는 영국 풍광의 가장 큰 매력은 고유한 미덕과 전원에 대한 애정을 계속 유지하는 그들의 도덕적 감정이며, 소박하고 아름다운 가정 풍경에서 드러나는 잔잔한 애정이 핵심 되는 모체라고 찬미한다.

 

어빙은 특히 시골 교회를 주목한다. 낯선 지역에 가면 가장 먼저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외진 마을에서 들은 슬픈 사랑에 걸음을 멈추고>, <저 세상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곁으로> .

 

영국 사람들의 성격을 관찰하는 데 영국 시골 교회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P.106, <시골 교회와 영국 신사의 풋풋한 교감>)

 

나의 경우 시골 교회의 아름다운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 있다.” (P.149, <저 세상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곁으로>)

 

작가의 옛것에 대한 호기심은 런던 시내의 옛 수도원 유적에 대한 뜻밖의 탐사 장면을 잃어버린 미지의 문명의 사적을 발굴하는 듯한 과장된 드라마틱함으로 장식한다(<런던의 유물이 내는 신비의 소리들>). 리틀 브리튼에 대한 소개 문구는 어떠한가?

 

리틀 브리튼은 런던의 심장부, 다시 말해 영국인 기질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사람들과 유행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의 전성기 시절처럼 지금도 런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P.190, <런던의 중심부 리틀 브리튼의 옛 영광들>)

 

여기에는 옛 놀이와 관습이 잘 지켜지고 있으며, 불가사의한 물건이나 명소들이 많으며, 현인들과 위인들이 많다. 약종상 스크림, 부유한 치즈장수, 선술집 주인 바그스탭 등. 두 개의 연례행사 성 바돌로매 장과 런던 시장 취임일은 어떻고.

 

나는 이곳을 국민성이 황폐해지고 타락했을 때, 마치 종자벼처럼 저장되어 있던 강인한 영국인 기질의 원리가 되살아나 국민성을 부흥시킨 훌륭한 지역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나는 또한 이곳에 고루 퍼져 있는 일반적인 화합 정신에 감명을 받았다.” (P.198)

 

다소간의 과장과 유머와 예찬이 혼효된 작가의 리틀 브리튼 찬미는 곧이어 다가오는 변화와 몰락의 운기를 예감하기에 장엄한 회상미마저 풍긴다.

 

오래된 관습과 전통에 매혹되는 작가의 지적이며 정서적인 호기심은 브레이스브리지 가문의 저택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절정에 달한다. “옛날의 축제 풍습과 시골의 놀이에 유달리 큰 관심을 지녔던 작가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문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축일이므로 축제의 규모와 화려함도 단연 으뜸일 테니까.

 

하지만 모든 옛 축제 중에서 크리스마스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가장 가슴이 뛰는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엄숙하고 신성한 느낌을 주는데, 흥겨움에 섞여 우리의 정신을 신성하고 고귀한 즐거움의 상태까지 끌어올려 준다.” (P.220, <옛 크리스마스는 사라진 것일까?>)

 

근대화에 따라 예부터의 진심어린 축제 관습이 소멸되는 현상을 관찰하며 작자는 탄식을 금할 수 없다. 따라서 즐거움과 흥분이 가족적인 감정과 더불어 여전한 행복한 풍경을 보면서 뭉클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작가는 놀라고 설레며 흥분되는 심정으로 브레이스브리지 가문에서 크리스마스이브와 축일 만찬을 함께 한다. 그것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영국 시골의 전통적 크리스마스 파티와 놀이 풍습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 작가의 심경이 어떠했을지 짐작 가는 일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옛 영국식”(P.255)으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올드 스타일의 문화라고 하겠다.

 

국외자의 시각으로는 낯설고 이색적이며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운 노신사 가문의 관습과 문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적지 않다. 훌륭한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보수주의의 참된 사례로 이해될 수 있는 반면 사회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옛것에 집착하는 묵수주의적 전형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작자 또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보편적이 될 수 없음을,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덧없는 관습들이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집이 어쩌면 영국에서 이런 관습들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유일한 가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283, <영국 노신사의 환대와 에피소드 3>)

 

어빙의 따뜻한 인간미는 유럽과 앵글로 색슨계 인종 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읽은 책의 <포카노켓의 필립>과 마찬가지로 여기-<정열과 평원을 빼앗긴 한 늙은 인디언의 고백>-에서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불행한 운명을 동정한다. 인디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과 박해를 솔직 과감하게 비판하며, 피쿼트 족의 운명과 최후를 기술하면서 그들의 고귀함과 숭고함을 고양한다. 어빙의 예상과는 달리 인디언들은 멸종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하지만 정열과 평원을 빼앗긴 인디언을 더 이상 인디언으로 부르는 게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빙은 자신의 스케치북에 엉성하고 시시한 메모만 들어있을 걸 우려하고 양해를 구하지만, 실은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보석들이 잔뜩 숨어있다. 게다가 각 소품들은 작가가 대충 쓱쓱 그린 게 아니라 크레용(crayon)으로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그린 가작으로서 전체가 수미일관하는 교묘하고 정교한 짜임새로 엮여있어 가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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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 쓰라유키 산문집 지만지 고전선집 615
기노 쓰라유키 지음, 강용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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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록 작품>

1. 고금와카집 가나 서문 (古今和歌集假名序)

2. 도사 일기 (土佐日記)

 

기노 쓰라유키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인에 속한다. 10세기 초 헤이안 시대 전기에 칙찬 와카집인 <고금와카집>의 주 편찬자로서 가나 운문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도사 일기>를 써서 가나 산문문학, 특히 일기문학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

 

기노 쓰라유키는 <고금와카집>의 편찬자로서 뿐만 아니라, 가나 서문(이것도 일본 최초의 가나 산문이라고 한다.)에서 와카에 대한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가나 서문은 와카의 본질과 효용, 기원, 표현 형식, 역사와 편찬 경과로 구성되는데, 논리적으로 배열된 체계만 보더라도 치밀한 이론적 분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와카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견해다.

 

야마토 노래, 즉 와카는 사람의 마음을 씨앗으로 해서, 무수한 말이 잎이 된다......본 것이나 들은 것으로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한 것이 노래다.” (P.37)

 

그는 서문 서두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는 와카의 본질인 동시에, 보편적인 시와 노래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여섯 가지 표현 형식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해와 공감이 들지 않으며, 오히려 기원과 역사가 보다 흥미롭다. 만엽집 시기인 나라 시대의 히토마루와 아카히토를 거쳐 소위 당대의 6가선의 작품 특성에 대해 형식과 내용, 기법 등의 관점에서 명료하게 비평을 가하고 있다.

 

노래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물의 참된 의의를 분별하고 있는 사람은 넓은 하늘의 달을 보는 것처럼 노래가 처음 흥륭했던 옛날을 우러러보며, 이 책이 편찬된 지금 세상을 반드시 그리워할 것이다.” (P.61)

 

저자는 위의 문장으로 서문을 끝맺는다. 자신이 이룩한 과업에 당당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아울러 저자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도사 일기><고금와카집>이 편찬된 후 거의 삼십 년 후에 저자가 도사(현재의 시코쿠 남부) 지방관 임기를 마치고 수도 교토로 돌아가는 두 달 간의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역자의 해설처럼 일기(日記)는 기존에 기록 내지 실록의 성격이 강하였는데, 기노 쓰라유키는 문학으로서 일기 장르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특이하게 여성 저자임을 가장하고 있는데, 남성으로서 가나 글을 쓰는 데 대한 은폐와 아울러 제삼자적 시각을 통해 관찰과 묘사에 있어 상대적 자유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당대의 바닷길 여행이 험난했음을 곳곳에서 알 수 있다. 불순한 날씨 때문에 출항을 못하고 오미나토에서 열흘을, 무로쓰에서는 일주일이나 항구에서 대기하였으며, 오미나토에서 나하까지는 밤새워 노를 저었다고 하므로 항해술과 장비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서 뱃길 여행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저자와 그의 아내는 도사에서 사망한 딸에 대한 애틋함과 슬픔의 감정을 항해 중 도처에서 드러낸다.

 

수도로 돌아가게 되나 다만 딸아이가 없는 것이 슬플 뿐이고 한없이 그리워진다.” (P.68)

 

모두 다 생각나고 어느 것이나 전부 정겹고 그립게 생각되는 중에 이 집에서 태어난 여자애가 함께 돌아오지 못한 것이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P.114)

 

작중 인물들은 많은 와카를 읊는데, 작자에 남녀와 노소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대에는 와카 짓기가 일상화되어 기본적 소양으로 여겨진 듯하다. 기쁨과 슬픔도, 두려움과 안도의 심경을, 멋진 경치를, 내면의 상념을 노래로 주고받는 장면은 급박한 상황마저도 아취와 운치 있게 변화시킨다.

 

수년 만에 돌아온 집은 관리인의 소홀로 퇴락한 자취가 역력하다. 저자는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도사 일기>에서 저자는 종래 기록의 성격을 뛰어넘어 개인의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로써 여류 문인에 의한 후대 일기 문학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니 비록 길지 않은 글이지만 그 의의는 제법 묵직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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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대장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25
이하라 사이카쿠 지음, 정형 옮김 / 소명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기 어려운 책이다.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우선 책을 찾기가 만만찮다. 대형서점에 가더라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게다가 명색이 고전소설이지만 문학 서가가 아니라 인문학 서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인터넷서점 이용이 훨씬 용이하다. 책 자체는 어떠한가? 학술서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단단한 양장본에 574쪽의 두께, 다소간의 관심 있는 독자의 지갑마저 망설이게 만드는 가격(현재는 50% 할인행사 중이므로 사정이 낫다). 책장을 슬쩍 넘겨보면 빽빽한 조판과 세세한 각주는 역시 소설보다는 학술서를 상기시킨다. 본문은 330쪽까지이며, 이후는 원문 영인본을 수록하였다. 역시 일반 독자보다는 연구자를 위한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각설하고 <호색일대남>과 <사이카쿠가 남긴 선물>에서 이하라 사이카쿠는 근세 조닌 계층의 호색과 유곽 풍습을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조닌 계층의 문화를 일부 이해하게 되었지만 조닌은 무엇보다 상인이다. 조닌의 본령을 알려면 장사와 거래와 관련된 상인으로서의 성공과 실패, 애환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일본영대장>은 독특하면서도 의의가 큰 작품이다. 옮긴이는 이 작품을 일본 최초의 본격 경제소설(P.3)로 칭하면서 “상인의 입신출세담이나 파멸담을 통해 금은만능의 조닌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날카롭게 묘사”(P.6)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소설은 전체 6권인데, 각 권마다 5편씩이니 총 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은 대체로 전반부에 일반론적 교훈이나 설교, 후반부에 실제 사례 형식으로 구성된다. 각 편에 한 명에서 여러 명의 상인들의 일화나 일대기가 소개되어 있으므로 등장하는 조닌들의 수는 수십여 명에 해당한다. 이들의 상업적 스토리는 지역적으로 일본 전체를 포괄하며, 성공과 출세, 실패 후 재기, 성공 후 실패, 당대 성공 후대 실패 등 다종다양한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다.

 

사이카쿠의 특징은 매우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그의 인물은 순전한 허구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을 살짝 변용한 경우가 대다수이며 따라서 일화도 실제 발생하였던 사례다. 인물의 대화는 현실에서 상인들 간에 주고받거나 충분히 발언했음직한 내용이다. 상업거래의 화폐 단위와 금액도 당대 시세를 반영하여 꼼꼼하게 계산하고 있다. 이로써 독자는 작중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고 믿게 되며, 인물과 일화의 사실성은 흥미를 유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다양한 업종에 여러 노력과 수단으로 부자, 즉 장자(長子)가 될 수 있지만, 부자들의 공통점은 분명 존재한다.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라고 하겠지만. 게다가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하듯이 부를 쌓기는 어려워도 낭비하는 길은 쉬운 법이니 경계해야 할 타산지석의 사례도 여럿 볼 수 있다.

 

- 정당하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요행은 반복되지 않으며, 어긋난 마음가짐은 사필귀정으로 이어진다.
  : 권3-3, 권3-4, 권4-4 등

 

- 적절한 사업 아이템 발굴이 중요하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하찮은 기회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
  : 권1-1, 권1-5, 권2-3, 권2-4, 권3-1 등

 

-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다고 반드시 사업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부자는 운도 따라야 한다. 거부는 어찌 보면 하늘이 내린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거부가 될 수는 없으니 소부라도 되려면 그래도 본인의 능력을 믿고 게으름 없이 노력할 수밖에.
  : 권2-2, 권3-4, 권5-1, 권6-2 등

 

-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자세가 중요하다. 성실과 정직은 장사뿐만 아니라 세상사의 필수 요건이다. 허상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현실과 처지를 직시해라.
  : 권2-5, 권3-4, 권4-2, 권4-3, 권4-4, 권6-3, 권6-4 등

 

- 사업에 실패해도 실의에 빠져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업하는 사람치고 위기와 실패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 권4-2 등

 

- 작은 돈도 소중히 여기고 근검절약해야 한다. 사치는 나라도 기울게 한다. 구두쇠를 인색하다고 비웃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오히려 합리적 소비관을 지녔다.
  : 권2-1, 권3-1, 권3-2, 권4-5, 권6-1, 권6-4 등

 

- 자식 교육에 힘쓰지 않으면 부는 2대를 넘기지 못한다. 창업주의 각고노력을 자식은 알지 못한다. 더구나 장사에 전념하다보면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데는 소홀하기 마련이다.
  : 권1-2, 권5-3, 권5-5, 권6-1 등

 

상업이 급속도로 발전한 근세 일본 사회는 부의 축적과 아울러 자본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따라서 현세에서 부자가 된다면 후세의 지옥도 꺼리지 않을 정도로 조닌의 금전욕은 불타올랐다(권3-5). 제아무리 뛰어난 예능인이라도 궁핍하다면 상인의 가치관에서는 무능력자에 불과하다(권6-2). 존중할 만한 장자도 있는 반면 비양심적, 천박한 졸부의 폐해도 많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고의파산 사례가 전형적이다(권3-4, 권6-4).

 

진정한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제대로 일을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다(권4-1, 권6-4). 돈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도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건강하면서 자기 분수에 맞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집이 번창해도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거나 부부가 헤어지게 되면 잘 안 풀리게 되는 데 이런 것이 세상사이다.” (P.288)

 

마지막 편의 세 부부 가족 사례(권6-6)는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자와 조닌의 모습으로 판단된다.

 

이 책은 통속소설이다. 내용도 근세 일본의 조닌들의 실제적 치부와 파산 사례를 담고 있어 제법 흥미롭다. 반면 저자와 출판사는 이 책을 고전 저작으로 접근하고 있다. 편집 자체도 딱딱하여 학술서적에 가까운데 상세한 각주는 오히려 가독성을 저하시킨다. 국내에 최초 소개되는 작품이니만치 학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소설작품은 소설다운 느낌이 나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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