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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출판된 연도는 2008년. 저자는 2004년에 나온 전작에서 미국 정치의 심화되는 보수화 현상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 집권 시절 미국 내에는 부정부패의 정도가 극심해졌다. 엔론 사태와 서브프라임 위기 등은 순전히 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정치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어진 부패 혐의로 드러났다.
정치권의 부패는 어찌할 수 없는 문화적 산물인가 아니면 일각의 주장처럼 특정 개인들의 문제인가? 저자는 보수주의 속에 부패가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하며, 그럴듯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제적 현상으로서 보수주의를 연구할 것을 목표한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늘 비즈니스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비즈니스는 지난 수년간 보수주의가 대변한 다른 모든 것에 선행한다’. 이 사실을 숙지하는 것이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 조건이다.” (P.45)
비즈니스가 중심이 되고 지배하는 정치는 곧 금권정치가 된다. 자유방임주의적 시장에 기반한 정부, 기업 같은 정부는 고객 니즈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효율적 운영을 가져다주는 대신, 공공성의 무시와 사익의 집중 추구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워싱턴 고급주택들의 소유주가 민영화 업자와 로비스트들이라는 점이 시사적이다. 진보정치는 시민들의 풍족에 기여한 반면, 보수정치는 특정개인들만 풍족을 누리게 만들었다.
국가와 정부에 미국인들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적대적이다. 국가의 탄생 배경이 애당초 개인의 자유에 있던 만큼 소위 경찰국가 정도의 최소 수준이면 족하다는 게 그들의 내재된 믿음이다. 개인의 총기소유가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영역이 확대되고 수행하는 역할이 중대해질수록 개인의 사적 자치와 민간 영역, 즉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 게다가 정부와 관료조직은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부패하게 되어 있으므로 작은 정부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우파는 미국인들의 이러한 사고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새로운 우파는 기존의 중도적, 타협적 보수파가 아닌 전투적 성향을 띠는데 투쟁과 행동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은 정부와 불의에 대한 영원한 아웃사이더 내지 반군의 입장을 취한다. 보수당 정부의 실패도 정부 자체의 근원적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뿐이다. 정부란 원래 나쁘고 그릇되게 행동하기 마련이므로. 저자는 잭 아브라모프와 공화당학생회, 국제자유재단의 우파 마케팅 사례를 상세히 추적하면서 이들의 전략과 허위성을 폭로한다. 그들에게는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다. 거짓과 분노를 팔아서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약효가 없어진 반공 비즈니스에서 자유방임주의 비즈니스로 일조에 입장을 표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우파는 적으로서 좌파 민주당을 제거하기 위해서 좌파의 재원 고갈 전략을 사용한다. 돈줄을 말리고 그 돈을 우파에 지원하도록 하면 일석이조다. 기업이 원하는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에 기반한 정치로서 정치 자체가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우파에 자금을 지원해 좌파의 재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기업들에게 가장 확실한 정치 투자처로 떠오른 것이다.” (P.114)
이하의 제2부에서는 잡은 새로운 우파들이 어떻게 정부와 국가를 파멸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의 전지전능성은 20세기 전반기를 지배하였다. 눈부신 신화는 경제대공황과 함께 무너졌고 무제한적 방임은 위험하다는 인식하에 등장한 게 수정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시장이란 존재는 맹목적인 야수, 눈 먼 괴물이다. 적절한 통제와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시장에는 신성하게 여기는 전통도, 애국주의도, 윤리도 없다. 시장은 보상만 충분하다면 자신까지도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P.154)
시장과 기업의 부정과 불공정을 통제하는 정부의 역할은 역으로 시장과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공무원 조직을 적으로 간주할 것인가, 그리고 민간 영역보다 멍청하고 무능하게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동양과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관(官)은 곧 엘리트를 의미하였다. 새로운 우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업 고객 요구에 맞춰 진행된 전면적 민영화와 아웃소싱은 정부계약업체와 로비스트, 일부 정치인들의 부를 챙기는 기회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우파 비즈니스의 비극적 결말로 카트리나 태풍 당시의 대응 미비와 지원 부실로 언급하는데, 문득 세월호 사건의 대응과 구조 미비가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정부의 고객은 국민일까 아니면 기업일까?
정치 비즈니스에서 로비와 로비스트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고객인 시장과 기업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 적절한 중개인의 역할이 요구된다. 거래하는 상품이 전문적이거나 당사자 간에 정보가 부족한 경우 거간꾼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로비는 보수 통치의 상징으로, 전성기 당시에는 시장의 원리를 정치에 구현한 메커니즘이었다. 로비는 돈으로 하는 정치이다.” (P.222)
“로비는 기업체가 정부를 조종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P.233)
국민들이 로비 산업을 부패와 파렴치함으로 인식하고, 로비스트를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로비가 성행하는 사유는 이와 같다. 로비는 돈이 개입된다면 근본적으로 부정과 부패를 내포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커다란 스캔들 목록과 로비 산업의 주요 사건들이 일치하게 된다. 로비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로비의 성공에 따른 이익은 증가하는데, 그만큼 거액을 투자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이익에 대한 확신이 크기 때문이다.
로비를 통해서 비즈니스 우파는 좌파를 영구히 압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노퀴스트가 인식한 소위 ‘K 스트리트 프로젝트’다. 정부조직 파괴와 로비 전략으로 좌파의 세력 기반과 재정을 고갈시켜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면 영원한 집권이 가능하게 된다.
저자는 사이판의 사례를 분석하여 무제한적 자유시장은 곧 지옥임을 파헤친다. 자유시장과 자유방임에서 자유의 주체는 누구인가? 기업가와 자본가를 가리키지 노동자는 결코 아니다. 시장은 비용을 낮추고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운용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만약 무제한적 허용이 용인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체 메커니즘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인 99%의 국민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사이판에서와 같이.
여기서 잠깐! 국민은 바보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 바보다. 그들은 자신들이 1%에 해당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상위 1%에 바람직하고 유리한 정책이 자신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순진하게도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우파는 진보주의를 이기는 게 아니라 아예 제거해버리고 싶어 한다. 토론과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정부를 이용해서 진보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감세 정책은 복지국가에 대한 전면공격이다. 감세는 재정적자를 유발하고 이는 진보정부를 허물어뜨리는 유일한 길이므로.
진보정부와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될수록 새로운 우파는 기뻐한다.
“한없이 무능력해도 승리하는 것이고, 마음껏 부패를 저질러도 승리하는 것이고, 실컷 낭비해도 승리하는 것이다.” (P.338)
저자가 깨닫고 들려주는 교훈은 자못 씁쓸하다. 민주주의와 금권정치는 동행이 불가능하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인간 대 자유시장, 공공선(公共善) 대 돈 중에서(P.349). 새로운 우파, 즉 비즈니스 우파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우리는 그 결과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즈니스 우파는 예견된 몰락을 맛보았다. 바로 난파선의 선원과도 같이. 우리는 자유시장과 비즈니스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올바른 전통의 수호자가 아니라 파괴자라는 사실을.
“우리 조상은 자본주의가 감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P.365)
이 책은 미국의 정치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와 분석의 결과이지만 미국 정치의 영향권 내에 있고 추종하는 국내 정치 현실에도 상당히 부합하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큰 정부는 나쁘고 작은 정부는 선하다는 논리는 여론을 호도하기에 딱 좋은 단면적 주장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의 사회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거나 시기상조라고 하는 주장은 전형적인 우파의 논리다. 그들이 말하는 때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다.
미국의 우파에 비하면 국내의 우파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시장과 기업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들 손아귀에 있다. 게다가 고정적인 지지층도 지역별, 연령별, 세대별로 견고하지 않은가. 미국 우파처럼 조급하고 소란스럽게 정치 비즈니스를 할 필요가 없다. 여론을 호도해 가면서 조금씩 알지 못하게 야금야금 해치우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