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일대남
이하라 사이카쿠 지음, 손정섭 옮김 / 현실과미래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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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부터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책은 음란하지만 외설적이지 않다. 그래서 광고 문구대로 일본 성(性) 문학의 하나로 헛된 기대를 품은 사람이라면 실망하기 딱 좋다. 이 작품은 유곽과 성(性) 문화를 다룬 풍속소설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이하라 사이카쿠는 일본 근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일컬어진다. 일본 근세는 경제력을 갖춘 상인계급의 부상에 따라 그들의 관심과 취향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상인계급 출신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고 한다. 사이카쿠 역시 상인의 신분을 지녔다. 주인공 역시 상인의 아들이며 나중에 부유한 상인이 된다. 일본 문학사상 귀족과 무사들이 아닌 상인과 평민이 문학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 또한 이때부터이다.

 

구성도 독특하다. 주인공 요노스케가 7세가 되던 해부터 60세가 될 때까지 매해를 한 장으로 하여 총 54장으로 구성하고, 매해는 한 편의 대표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의 문장은 하이카이조로 씌어졌다고 하니, 운문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다. 작가 사이카쿠는 당대에 하이카이의 대가로 인정받았으며, 이 소설은 그가 산문으로 전향한 첫 작품이다.

 

작가가 처녀작을 하필 性을 제재로 삼은 연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경제적 부의 축적에 성공한 상인 계급은 엄격한 신분제도 하에서 자유를 봉쇄당하고 정치적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부(富)와 성(性)에 쏟았다. 부는 그렇다 치고 성의 자유로운 향유는 어찌 가능했을까? 그것은 당시 막부에서 정치적 억압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창구로 유곽 제도를 공인한데 따른 것이다. 독재 정부에서 3S 정책을 펼치는 것과 동일한 차원이라고 해야겠다.

 

사이카쿠가 작가적 시선을 가장 강력하며 절실한 화두에 돌렸음은 당연하다. 얼핏 일그러진 사회와 풍속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 쉽지만, 작가는 전혀 비판의 상념조차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듣고 보고 겪은 당대의 성 문화를 관찰자적 관점에서 독자에게 내보일 뿐이다. 작가의 요노스케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이며 때로는 경탄의 어조도 아끼지 않는다.

 

작품은 시종일관 요노스케가 종횡무진으로 다니며 여성과 남성을 섭렵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여자가 3724명, 남색의 상대가 725명이라고 하니 확실히 대단한 숫자다. 각각의 이야기는 요노스케가 겪은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 제한된 지면에 사건과 행위 위주로 서술하다 보니 실제적 성애 장면의 묘사는 지극히 단편적이거나 생략되기 일쑤다. 오히려 유곽의 유녀(遊女)에 대한 소개와 외모와 복장에 대한 묘사가 더욱 두드러진다.

 

요노스케는 풍류남아다. 그가 색을 밝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정 취하려고 강제로 덤비지는 않는다. 유녀로서의 자색과 태도, 품위 등을 나름 선별하여 빼어난 여인을 높이 평가한다. 한편 사정이 딱한 유녀는 거금을 주고 유곽에서 빼내주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요노스케의 일생에 걸친 모험이 아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은 몇 번만 반복되더라도 식상하기 마련이다. 구체성과 세부적 개성이 미비하니 심금에 다가서기 어렵다. 현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18세기 일본 사회의 서민 생활을 가감 없이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유곽, 사창가, 창녀촌을 찾는 이들은 결코 지배계급이 아니다. 그네들이라면 좀 더 은밀하고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유곽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밑바닥 영역에 속한다. 그들의 손님은 돈 많은 상인들에서 날품팔이에 이르기까지 신분제의 사다리에서 중간 이하에 해당한다. 게다가 성(性)의 영역은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허울을 벗겨낸다. 제아무리 잘난 체하고 젠체 해봤자 성(性) 앞에서는 평등하다.

 

일본 근세의 유곽 현황과 유녀들의 구분 및 유곽 문화에 대해 알게 되어 또한 흥미롭다. 오사카, 교토, 에도의 3대 유곽에서 최고급 유녀인 타유로 불리는 이들은 극소수이며, 그만큼 그네들의 자태와 위세는 당당하다. 유녀들이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거짓 사랑편지, 머리카락, 손톱 등을 활용하는 장면에서는 영악함에 탄복할 정도다.

 

미남자 요노스케도 나이가 드니 외모가 점차 추레해지게 된다. 이제 그의 화려한 시절은 지나가고 쓸쓸히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는 따분한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요노스케.

 

“이제 몸은 어느 새 사랑에 야위었고, 더 이상 욕망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정처도 없다. 여색, 남색에 온 정기를 빼앗겨 다리는 뽕나무 지팡이가 없으면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고 귀는 멀어 들리지 않았다.” (P.278)

 

예순 살의 요노스케는 결코 색(色)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모험은 배를 건조하여 정력에 좋은 음식과 보약 등을 잔뜩 싣고 여인들만 산다는 여호도라는 섬을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대목에 끝난다. 진정한 호색일대남이라고 할 밖에.

 

이 작품의 주인공 요노스케는 도덕적 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호색에 빠져 부모를 버리고 가출하였으며, 비구니와 유녀 등을 끝없이 탐하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일본판 피카레스크 소설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피카레스크 소설 자체가 귀족이 아닌 평민 대중을 주인공으로 삼아 사회의 법률적, 도덕적 제약과 족쇄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인물형을 만드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읽는 내내 작품의 명성의 근거는 무엇일까 고심했다. 작품 자체의 내재적 가치가 결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시대적 배경과 제재의 이색성을 함께 파악할 때 당대 독자에게 크게 어필했던 사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현대 독자에게는 표피적 흥미 외에는 그다지 다가오지 못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근세 일본과 일본문학을 이해하려면 일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번역과 체재는 새롭게 해서 원작의 분위기를 좀 더 살릴 필요가 있다. 일본 기생의 호칭과, 요정의 명칭, 유곽의 풍습, 유곽 도시를 소개한 부록은 사전 배경지식으로 유익하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이 화류계에 빠지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이해를 위한 단초를 제시한다. 이것이 수컷의 생물학적 속성 외에 유력한 설명의 근거가 될 수 있겠다.

 

“기생은 아름다운 존재. 목숨 바쳐 사랑에 빠진 손님에게는 인간의 도리 운운하며 멀리 대하고 자신과의 소문을 낸 손님에게는 즉시 그 유곽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쓰라림도 줬다. 또 으스대는 손님에게는 속세를 떠나 보도록 권하기도 했다. 유부남에게는 부인이 얼마나 원망할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고, 반면 남들이 싫어하는 남자들에게도 상냥하게 말을 걸어 주고 손도 잡아 줬다. 모두들 타유에 대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하다 어느 새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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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사메 모노가타리 일본명작총서 8
우에다 아키나리 지음, 조영렬 옮김 / 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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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피 묻은 휘장

아마쓰 오토메

해적

2세의 인연

외눈박이 신

죽은 목의 미소

스테이시마루

미야기의 무덤

노래의 명성

한카이 (/)

 

이 이야기책은 우에다 아키나리의 유작이다. 작가는 최만년에 일단 완성을 하였지만 간행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손질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후 이 작품은 몇 편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외에 오랫동안 망실된 상태에 놓였다가 1951년에 원고가 발견되어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나름 사연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생전에 발간되어 그의 명성을 높여준 <우게쓰 이야기>와 비교하면 참으로 독특한 면모를 보게 된다. 모노가타리의 우리말 번역을 이야기로 쓰는 것은 모노가타리가 이야기로서의 분명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타당성이 있다. 고전 형태의 소설로 간주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물론 우타 모노가타리처럼 이야기가 부차적 요인이 되는 유형도 존재하지만 주류는 아니다. <우게쓰 이야기>는 문학적 서사로서의 모노가타리 속성에 충실한 반면, 30년 후의 이 <하루사메 모노가타리>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옮긴이가 작품 해석을 의지한 나카무라 히로야스의 글이 세간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보겠다.

아키나리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연구 과정에서 산출된 결과물을, 학문이라는 닫혀 있는 울타리에서 추출하여 모노가타리라는 열린 구조 속에 풀어놓았다.” (책 뒤표지)

 

작가는 이야기 자체의 본질적 속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 단편들은 그의 역사 탐구와, 와카 연구와 고전 사상의 이해 도정에서 (주관적 관점에서) 의문을 품거나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당대의 주류적 사상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모노가타리 형식을 차용하였다. 작가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야기로서의 구성적 미결성과 내용적 미진성에 불만을 느끼게 됨은 당연하다.

 

 

1. <피 묻은 휘장>은 헤이안 시대에 벌어진 구스코의 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 난을 일으킨 악역을 나카나리와 구스리코 남매에 뒤집어씌우고 헤이제이 천황은 여기에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실(史實)을 곡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헤이제이 천황의 성격이 선하고 온유하며 사욕이 없고 존귀하다고 평한다. 이러한 천황의 눈과 입으로 유교와 불교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유교가 건너와, 성인의 현명한 가르침 덕에 악을 선으로 고쳤는가 보니, 도리어 사실을 왜곡하고 말을 교묘하게 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널리 퍼졌는데,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나는 책 읽는 일에 어두우니,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정사에 힘을 쏟으리라.” (P.22)

 

유가의 천()은 너무 여러 갈래이다. 불씨는 천제도 머리를 기울이고 불법을 들으셨다고들 한다. 참으로 번거롭구나.” (P.27)

 

 

2. 이 작품은 뒤의 <아마쓰 오토메>와 연계하여 이해할 때 의미 파악이 용이하고 명료해진다. 작가가 앞서 헤이제이 천황을 일부러 높이 평가한 의도는 뒤의 사가 천황과 대비하기 위함이다. 헤이제이 천황은 일본 고유의 미덕을 갖추었고, 사가 천황은 중국의 문물을 모범으로 삼고 준수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이 작가 아키나리의 사상적 견해로는 못마땅했던 듯하다. 왕희지의 진적 관련 에피소드는 작가의 풍자적 비꼼을 보여준다.

 

“......온 나라의 국토마저 중국풍으로 바뀐 듯하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P.36)

 

“......오직 유교의 예법만이 채용되었다. 그렇지만 불법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고......정사가 자연히 그들의 가르침에 이끌려 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P.39)

 

불도는 여전히 융성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유교도 아울러 행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레의 한쪽 바퀴가 얼마간 손상되어, 가는 것이 더딘 듯이도 보였다.” (P.41)

 

우키나리는 여기서 와케노 기요마로와 요시미네노 무네사다의 생의 여정을 비교하여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충직한 기요마로는 정권을 틀어쥔 요승 때문에 좌천과 유배로 점철된 삶을 보낸 반면, 무네사다는 재능과 학식이 있지만 유흥과 노래로 천황의 총애를 받다가 천황 붕어 후 도망치듯이 출가하였는데 나중에 승직의 최고위인 승정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탄식 한 줄에 작가의 내심이 절절히 드러난다.

 

불도라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헨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터이다.” (P.49)

 

 

3. <2세의 인연> 또한 불교 비판적인 논의를 견지한다. 선정(禪定)에 들어갔던 법사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칠칠치 못한 사내로 갱생하는 사건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선정이라는 지극히 선한 전생의 행위조차도 후세의 좋은 보답을 기약할 수 없다. 삿된 기대를 버리고 현세를 충실히 사는 것이 참되고 중요한 것이다.

 

어처구니없구나. 부처님께 빌어도 정토에 가는 것은 힘들구나싶다. 살아 있는 동안 힘써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몸에 붙인 가업이 아닐까.” (P.72)

 

 

4. 아키나리는 <해적>에서 관심을 사상에서 학문으로 돌린다. 이 작품은 헤이안 시대의 <도사 닛기>의 저자인 기노아손 쓰라유키를 작중 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임기를 마치고 귀경길에 오르다가 마주친 해적이 쓰라유키를 비롯한 <고킨와카슈> 편찬자들을 학문적 관점에서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반에는 대조적으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높이 평가하는 논평을 전개한다.

 

그대는 노래를 잘 읊지만, 고언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천황마저 욕되게 하였습니다.” (P.55)

 

노래는 그럴싸하게 읊어도, 칙찬집을 엮은 네 명 모두 찬가의 필법이 틀린 것은 학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P.57)

 

그대는 노래는 잘 읊지만, 한적을 많이 읽지 않아 얼핏 봐도 결점투성이다.” (P.64)

 

 

5. <외눈박이 신>도 마찬가지다. 와카의 도를 배우기 위하여 상경하던 관동 지방의 젊은이에게 신사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

 

글을 짓고 노래를 읊는 것은 제 스스로 마음으로 터득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르침대로 되겠는가. 물론 처음에는 스승을 모시는 일이 예도에 들어가는 입문 역할은 한다. 허나 깊이 들어가자면 제 스스로 만드는 길 외에 배울 방법이 있겠는가.” (P.79)

 

아마도 아키나리는 유명한 스승의 명성에만 의존하고 스스로 갈고 닦지 않는 시대의 풍조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6. 이 점에서 <노래의 명성>은 작가의 노래, 즉 와카에 대한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만요슈>에 수록된 노래들은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충실하였지, 타인의 모방이나 비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역으로 말한다면 작가 당대에는 진실한 내면보다는 외형적 기교에 신경을 썼다는 비판이기도 할 것이다.

 

옛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여, 남의 노래를 훔친다는 의식이 없었고, 자기 마음의 느낌을 정직하게 진술했다......오직 마음에 감동한 것을 솔직하게 읊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래의 참된 길이다.” (P.132~133)

 

 

7. <죽은 목의 미소>는 당대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는데, 인색한 부잣집 아들과 가난하지만 바르게 자란 집의 딸 간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어디 세상에 한두 건이겠는가 마는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시종 인색하며 무자비한 부친 고소지도 아니며, 여동생의 목을 친 모토스케와 이를 알고도 의연한 모친도 아니다.

 

작품 모두에 작가는 고소지와 대조적으로 아들 고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훌륭한 성격에 문무의 재주도 탁월하며 굳센 마음의 소유자로서 너그러우면서도 예의가 바르다고 하니 더 이상의 찬사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고조가 애정 문제에 있어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한다는데 있다.

 

여인네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를 설득하여 혼인을 치르겠다고 살살 달래다가도 막상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는 부친의 엄명에 일언반구 항변도 하지 못한다. 고조의 주저와 갈등은 외견상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리의 말마따나 고조의 마음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P.97)

 

언뜻 보면 고뇌하는 고조에게 아키나리가 동정을 품은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작가는 고조의 갈등과 고민을 담담한 어조로 뉘앙스만 풍기지 구체적이며 세부적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조의 의지박약을 내심 질타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세상의 여인네들이여, 고조 같은 남자에게 사랑을 바치지 말지어라,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도다.

 

 

8. 일본은 막부 시대 이래로 오랜 기간 무사도의 국가였다. 무사도는 명예를 중시하여 이것이 손상당할 경우 목숨을 걸고 복수하였으며, 세인들의 찬사도 뒤따랐다. 아키나리는 <스테이시마루>에서 맹목적인 복수의 타당성에 의문과 비판을 동시에 제기한다.

 

오해와 악의가 겹쳐 살인범의 신세로 쫓기는 거한이자 장사인 스테이시마루.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복수의 길에 나서는 죽은 부자의 아들 고덴지. 두 사람은 모두 그릇된 관행과 제도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이 힘을 합쳐 바위산에 터널을 뚫은 일은 사자를 위한 공양을 넘어 잘못된 세상을 향한 태산 같은 웅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9. 마지막 두 편은 전통적 모노가타리의 형식에 가깝다. <미야기의 무덤>의 미야기는 몰락한 가문의 여인으로서 속임수에 빠져 유녀 신세로 전락한다. 게다가 정인(情人) 주타베와의 관계를 질시한 촌장의 간계로 정인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탄가는 그녀를 동정하는 아키나리의 헌가이리라.

 

이 작품에서 이채로운 대목은 미야기가 세상을 버리기 전 호넨 쇼닌이라는 고승에게서 염불을 전수받는 장면이다. 시종 불교에 호의적이지 않은 작가가 유독 여기서는 후하게 서술하고 있다. 신분의 고하와 귀천에 관계없이 일체 중생에게 구제의 길을 만들어주려는 스님의 자비심에 공명하는 작가의 심중의 발로로 받아들이고 싶다.

 

10. <한카이(樊噲)>는 분량 면에서나 내용적 측면에서 이 작품집에서 제일 문제작이다. 일본 문학에서 이전에 이런 유형의 모노가타리가 없었다면 단연 일본문학 최초의 피카레스크 소설, 즉 악한소설에 해당한다. 거한이자 장사란 점에서 스테이시마루와 비슷하지만, 한카이는 도덕과 윤리의 틀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도박에 빠져 부친과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패륜적 죄를 저지르고 이후로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강도와 살인을 밥 먹듯이 자행한다. 그럼에도 한카이는 미워할 수 없는 사내이다. 재물에 활수하고, 제법 의협심이 있으며, 악기에도 재능이 뛰어나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다. 그는 번거롭다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난세라면 호걸이라는 명성을 얻어 나라를 빼앗고 적을 두렵게 했을 터인데. 참 용맹스러우신데......난세라면 영웅이 되었겠지. 허지만 치세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도적질한 죄과로 처벌을 받을 것이야.”(P.172)

 

한카이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전란의 시기는 사라졌다. 에도 막부의 통치아래 수백 년간 평화로운 시절이 이어졌다. 더 이상 세상은 한카이같은 호걸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골치덩이일뿐이다. 근세 일본은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아키나리는 사라진 옛 시절의 유물을 흥겹게 반추하고 있다.

 

한카이가 정직한 법사를 따라 세속의 연을 끊고 대화상이 된 것은 시사적이다.

 

“‘마음을 간직하면 누구라도 불심이요, 놓치면 요마라는 것은 이 한카이를 두고 한 말이리라.” (P.180)

 

 

어찌하다 보니 잡설이 길어졌다. 본디 잘 모르고 이해가 안 되면 말이나 글이 주저리주저리 늘어지게 되는 법이다. 그만큼 <하루사메 모노가타리>에 수록된 개개의 단편들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표피상의 글귀만을 좇는 것은 용이하며 그렇게 받아들여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뭔지 가슴 한켠에 묵직하게 들어앉아 심정을 답답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서 하루빨리 속을 시원하게 뚫고 싶었다.

 

옮긴이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유하자면, 풍경화라기보다는 암호와도 같은 이정표에 가깝다.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지점을 가리키는 표지 같다는 느낌을 준다......암호를 풀어 나타난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읽는 이가 제 발로 걸어가서 보아야 할 풍경일 것이다.”

 

어려운 작품의 쉽지 않은 도전이다. 조금만 더 보완했더라면 국내 초역이라는 명예와 더불어 갈채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번역문과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고, 손이 덜 간 자취가 역력하다. 작품해설과 주석에 옮긴이의 내공이 다소 딸린다는 인상을 준다. 석사논문을 다듬었다고 하는데, 옮긴이 자신의 독자적 연구보다는 나카무라 히로야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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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렬 2014-03-0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 책의 역자 조영렬입니다. 역자로서 위 평가에 100% 동의합니다. 번역하고 주석 달고 작품 해설 쓰면서 느낀 제 심리적 움직임을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분이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부족한 번역서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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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게쓰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70
우에다 아키나리 지음, 이한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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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시라미네

중양절의 약속

잡초 속의 폐가

꿈속의 잉어

불법승

기비쓰의 가마솥 점

뱀 여인의 음욕

푸른 두건

빈복론

 

일전에 이즈미 교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전통적 미학을 반영한 독특한 작품세계와 환상적 작풍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이즈미 교카가 외따로 떨어져 있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양자 모두 기담 내지 환상 문학이라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는데, 우에다 아키나리의 백수십 년을 앞선 작품들에서 명백한 근대성의 뿌리와 아울러 탁월하면서도 개성적인 작품성을 발견할 수 있음은 큰 수확이다.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들을 일관하는 공통성은 바로 환상성이다. 모든 작품들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여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수백 년 전에 한을 품고 죽은 스토쿠 상황과 도요토미 히데쓰구의 혼령,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무사의 영혼, 전란 속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병사한 아내의 영혼, 잉어로 변신한 스님,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를 하는 아내의 원혼, 평정심을 잃고 인육을 먹는 반요괴가 된 스님, 인간을 집요하게 사랑한 뱀 요괴, 황금의 정령 등이 이 작품에 등장한다.

 

혼령, 귀신, 요괴, 정령 등이 등장하는 여부는 근대 이전과 근대를 구분하는 바로미터이다. 근현대 문학에서 이들은 옛이야기나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허튼소리 또는 유치함의 표상이었다. 주류 문학에서 소외도어 연명을 거듭하던 환상적 이야기들이 환상문학이라는 독자적 장르로서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은 이십 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라고 하겠다. 18세기에 발표된 작품집이니 응당 전근대적 유치함이나 황당함이 들어있겠거니 지레짐작한다면 단연 섣부른 편견이라고 단언하련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순전한 창작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설화에서 소재와 줄거리를 상당수 차용한 일종의 번안소설이다. 글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한두 번은 읽거나 (영화 등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한 번안에 그쳤다면 곧 독자의 기억에서 잊히고 말았을 테지만 시간의 도전을 버티어낸 것은 전래의 소재에 작가가 새로이 불어넣은 예술성의 탁월함 때문이다.

 

옛 전거들은 사건의 전개에 주력하였고 교훈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아키나리는 그렇지 않다. 사실성을 불어넣기 위하여 역사적 배경을 교묘하게 설정하였다. 사실(史實)과 가공이 뒤섞인 작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을 정도다. 일례로 <시라미네>의 주된 인물은 실존하였던 사이교 법사다. 그가 산 속 스토쿠 상황의 묘소에서 맞닥뜨린 상황의 혼령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대목은 역사상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이 벌어졌던 헤이안 시대의 말기(12세기)의 역사적 상황이다. <잡초 속의 폐가>에서 장사를 하러 떠나간 남편과 아내가 재회하지 못하게 된 사유는 역시 15세기 무로마치 막부 후기에 관동 지방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전란이 배경이었다.

 

아키나리는 또한 인물과 배경의 묘사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시라미네>의 도입부에서 스님이 일본 각지를 주유하는 장면, <꿈속의 잉어>에서 병든 스님이 잉어가 되어 비와 호수의 명소를 헤엄치며 유람하는 대목 등은 간결함과 아름다움을 갖춘 자연 묘사의 빼어남을 보여준다. <중양절의 약속>의 청빈한 학자 하세베 사몬, <뱀 여인의 음욕>의 선량하면서 우유부단한 미남자 도요오와 마력적인 미모와 사랑에의 집착이 두드러지는 마나고 등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특징은 인물의 입체적 성격에 있다. 고전 문학의 인물들은 선과 악이 처음부터 구분되어 끝까지 획일적 성향이 유지되는 반면, 근대 문학에서는 인물들의 본성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 본성과 상황이 결부되어 선인이 악인이 되거나 그 반대도 가능해진다. 때로는 선악을 판단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기비쓰의 가마솥 점>에서 남편의 배신에 죽어서 원혼이 된 이소라는 생전에는 효행과 정절로 칭찬받았는데, 죽어서는 처절한 복수만을 노리는 사악한 원혼이 되고 만다. <푸른 두건>의 주지 스님은 원래 덕이 높았는데 미쳐서 식인귀가 되었다가 가이안 선사의 인도로 죽어서나마 악업에서 벗어나게 된다. 압권은 역시 <뱀 여인의 음욕>이다. 마나고는 뱀 요괴임에 분명하지만 작중에서 과연 사악한 존재인지는 미지수다. 그녀는 오로지 도요오에 대한 사랑만을 갈구하고 있다. 도요오와 마나고의 교합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단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문제 삼아 결국 뱀 여인을 죽게 한 것은 정의와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을 어렵게 한다. 뱀 여인의 마지막 외침처럼 진정 무정한 것은 요괴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장치를 더 마련하고 있다. 작품들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중세 일본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당대의 사건 외에 동시대의 여러 저작들을 인용하고 있으며 특히 다수의 와카를 많이 끌어와 삽입하고 있다. 이 와카들은 작품의 내용과 성격에 부합하게 교묘하게 배치하여 마치 등장인물들이 직접 지은 것 마냥 작품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구성과 기법, 주제의식 측면에서도 반추해볼 대목이 여럿 있다. 기본 뼈대는 옛이야기와 유사하지만 도입부에서 역사적 사실 및 사건과 결부시키는 방법이 가져오는 효과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개별 작품의 후반부에서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가의 주관적 의도가 짙게 반영되어 결말이 전달하는 종국적 인상은 상당히 다르게 다가온다. <중양절의 약속>은 정의의 복수극으로 성격이 변하였다. <기비쓰의 가마솥 점> 전반부의 바람둥이 남편과 지고지순한 아내의 순정극은 후반부에서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괴기담으로 변전하였고, 특히 결말의 암시적 묘사는 처절한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빈복론>은 재물과 부()에 대해 긍정하는 근대 자본주의적 사고가 팽배해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아키나리의 이 작품집은 단순히 번안에 그치는 게 아니다. 작가가 비록 소재와 주요 대목을 앞선 설화집에서 가져오긴 했으나 구성과 주제의식, 문체와 기법 등에서 철저하게 작가 자신의 스타일로 가공하여 완전히 재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의 결과로 얼핏 터무니없는 괴담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야기는 당당한 문학작품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하였다.

 

솔직히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심정으로 마지못해 책장을 펼쳐들었는데 읽을수록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환상소설을 작가는 이미 18세기에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 놓았다. 번역도 원작의 중세적 우미한 분위기를 잘 살려 깔끔하고, 충실한 작품 개별 해설과 종합 해설, 주석 등 별달리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편집도 완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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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쓰미추나곤 모노가타리 일본명작총서 7
유인숙.박연정.박은희.신재인 옮김 / 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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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벚꽃을 꺾는 쇼쇼

연상

벌레를 좋아하는 아가씨

어울리는 상대를 연모하네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는 곤추나곤

가이아와세

뜻하지 않게 다른 아가씨와 밤을 지낸 쇼쇼

꽃과 같은 아가씨들

그을음

부질없는 이야기

 

11~12세기 무렵 헤이안 시대 말기에 편집된 단편 모노가타리 모음집이다. 이 작품집에는 일본 최조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통상의 모노가타리는 장편에 해당하는 반면 여기 실린 모노가타리들은 단편들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모음집의 단편들은 앞서 읽은 <이세 이야기> 같은 우타 모노가타리 류가 아니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산문으로 된 이야기다. 물론 매 작품마다 와카가 몇 편씩 등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헤이안 시대에 와카가 그만큼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에게 호소하는 수단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뜻한다.

 

장편과는 단편의 특성상 짧은 분량에 핵심 되는 사건이나 인물 소개, 아니면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므로 필체는 간략하면서도 개성적인 소재를 집중력을 갖고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개별 작품들을 간략히 훑어보면 그 독자성과 주안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벚꽃을 꺾는 쇼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쌈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의 (보쌈한 여인의 실체에 대한) 반전이 묘미라고 하겠다.

 

<연상>은 세 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타 작품과는 성격이 다른 간결함이 특징이다. 뒤의 두 편은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아서 여운을 독자의 가슴에 드리운다.

 

<벌레를 좋아하는 아가씨>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끈다. 당대의 풍조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아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남성. 뒷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질 것이라며 무 자르듯 싹둑 끊어버려 결말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아쉽게 한다.

 

<어울리는 상대를 연모하네>는 젊은 남녀들 간의 짝짓기를 다룬다. 시종들과 그들의 주인들이 각각 연분을 맺게 되는데, 주인 남자의 일견 후회하는 듯한 마지막 대목이 묘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는 곤추나곤>은 단오절에 벌어지는 전통 행사인 네아와세를 배경으로 하여 그네들의 전통 축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창포 뿌리와 창포 노래 경연을 벌이는 이 행사에서 외모는 물론 출중한 실력을 선보여 뭇사람들의 찬탄을 받은 곤추나곤이 정작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으로부터는 아무런 보람이 없다.

 

<가이아와세>에서 외톨이 신세의 전처의 딸과 계모의 딸 간 조개 경연은 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이 딱하게 여겨 이길 수 있도록 몰래 도와준다.

 

<뜻하지 않게 다른 아가씨와 밤을 지낸 쇼쇼>에서 영락한 귀족 집안의 아름다운 두 딸이 각각 당당한 집안의 청년들과 정을 주고받는다. 그들의 사랑은 남자 부모의 반대로 몰래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 실수로 바뀐 연인과 같이 밤을 보낸 여인들의 망연한 심정. 두 남자는 자매 모두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의 앞날은...

 

<꽃과 같은 아가씨들>은 여인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여주인을 여러 꽃들에 비유하여 평하고 이어서 꽃을 소재로 한 와카를 서로 노래한다. 여주인의 특장과 상황을 다양한 꽃들에 절묘하게 비유하는 재치와 묘미가 뛰어나다. 후반에서는 이를 지켜본 한 호색한이 그 여인들을 품평한다.

 

<그을음>은 한 남자를 둘러싼 전처와 후처 간의 대조적 처지 변화가 슬픔과 웃음을 자아낸다. 표면상 분명히 아름답고 착한 전처의 해피엔딩에 기뻐하게 되지만, 돌이켜보면 후처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오락가락하는 남자 역시 시대와 제도의 피해자라고 하겠다.

 

<부질없는 이야기>는 한 승려가 제자인 귀족집 아가씨에게 몇 가지 물건을 달라고 요청하는 서신문 형식을 사용한다. 심산에 은거하겠다며 요구하는 품목이 꽤나 거창하지만 결국은 용두사미와 같이 하찮은 물품들이다.

 

각 작품들은 이와 같이 소재와 형식, 내용과 기법 면에서 뚜렷한 개성미를 보여준다. 가볍게 생각하면 옛 일본의 재밌는 이야기 몇 편을 흥미롭게 감상하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있어오지 않았는가.

 

이 책에는 후반부의 작품 해설 외에도 전반부에는 두 편의 해설-‘시대와 문화를 통한 헤이안 문학 되돌아보기헤이안시대의 결혼과 연애풍속도’-이 따로 붙어 있다. 이는 뒤의 모노가타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과 이해의 밑바탕을 소개하는 취지다. 전자는 일본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이른 시기인 헤이안시대의 문학이 급작스럽게 번성하게 배경을 밝히고 있다. 가나문자의 정착, 섭관정치로 정착된 귀족문화, 독특한 뇨보 문화의 전개 등이 주된 사유라고 한다.

 

한편 후자는 당대의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혼해도 동거하지 않는 쓰마도이곤문화, 남편이 저녁에 아내의 집을 방문하여 머물다가 새벽에 돌아온다. 노래나 편지를 통한 연애의 시작과 결혼 및 자연 이혼의 요건도 이색적이다. ‘기누기누 노래는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 한 다음날 남자가 감사의 편지로 보내는 노래라고 한다. 이를 보내지 않는 것은 당대의 에티켓에 매우 어긋났다고 하니... 아울러 뛰어난 여류 문학 작품을 남기게 된 뇨보(女房)의 신분과 역할도 알려준다.

 

이 해설은 내용 이해와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읽었던 <이세 이야기>의 많은 와카들에서 표면상 간과하였던 무수한 함축된 배경 중 다수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문학은 결코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 작가는 시대의 문화와 공기를 호흡하며 은연중 그 숨결을 자신의 작품 속에 깊숙이 새겨 넣는다.

 

헤이안시대의 여인을 상상해본다. 허리 아래로 늘어뜨릴 정도의 긴 머리는 미인의 필수 요건이다. 얼굴은 매우 희고, 눈썹을 뽑고 먹으로 그리며, 치아는 검게 물들인다. 그래야 흑백의 대조 효과로 흰 얼굴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네들은 집안에 칩거하면서 상대방 남자들이 와카나 편지로 접근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연분을 맺고 혼인을 치르더라도 대개의 경우 동거를 하지 않으며 남편이 방문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연달아 오지 않으면 버림받은 신세가 되는 것이므로 언제쯤 오려나 전전긍긍이다. 임금이 처첩들의 방을 밤마다 순례하는 사극이 연상된다.

 

반대로 남자는 행동이 자유로우므로 오며가며 곁눈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예로부터 일본은 성()에 관한 한 개방적인 민족이었다. 사촌과 결혼하거나 여기서처럼 두 명의 아내를 갖거나 또는 두 자매와 동시에 사랑을 해도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그래도 그녀들은 뒷세대를 바라보면 위안을 삼을 만하다. 막부와 전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여인들의 자유는 더욱 억압되었고 철저하게 남성에게 예속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헤이안시대의 찬란한 개화는 곧이어 기나긴 엄동설한에 움츠려야만 했다. 수백 년 후 근세 일본의 여류작가인 히구치 이치요는 자신의 신세가 일개 보잘 것 없는 여인임을 자탄하고 있다.

 

일본 문학을 번역할 때 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명과 지명, 관직명 등의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에서 원어 충실과 내용 충실의 갈등이 존재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인명(풍신수길 ->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과 지명(동경 -> 도쿄 등)은 얼추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애매한 경우가 관직명이다. 작중에서 쇼쇼, 주조, 추나곤, 다이나곤, 우다이쇼, 아제치는 모두 벼슬 이름으로서 한자어로 번역하면 소장, 중장, 중납언, 대납언, 우대장, 안찰사가 된다. 이중 일부는 우리 옛 관직명과도 유사하므로 귓전을 튕겨나가는 일본어보다는 훨씬 이해가 용이하다. 실제로 지금 읽고 있는 <우게쓰 이야기>의 역자는 관직명을 우리식 발음으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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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 이야기(伊勢物語)
구정호 엮음 / 인문사(도서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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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모노가타리(物語)는 형태상 쓰쿠리 모노가타리와 우타() 모노가타리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는 노래와 산문이 혼재된 형식이며, 이때 노래는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를 의미한다. 그리고 최초의 우타 모노가타리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이 9세기경의 <이세 이야기>이다.

 

우리 옛글도 아니고 세계적 고전 명작도 아닌 작품에 일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일은 거의 없다. 이 번역본은 일본고전을 연구하는 후학들을 위한 책이다. 번역문뿐만 아니라 원문도 수록하였으며, 충실한 주석을 달았고 수록된 와카를 찾아보기 쉽도록 색인도 추가하였다.

 

  

<이세 이야기>의 작품 성격은 해제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세 이야기>는 총 125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인 어떤 남자가 초단에서 성인식을 치루고 마지막 단인 125단에 이르러 세상을 하직하는 일대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헤이안 시절의 귀족의 이야기다.” (P.8)

 

주인공인 어떤 남자는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라고 하는 실존 인물을 빌려온 것으로 내용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가장 커다란 사건은 주인공과 두 여인 간의 사랑이다. 전반부에서는 니조노 이사키라는 황실의 여인과, 중반부에서는 이세신궁의 재궁으로 있는 여인-역시 황실의 여인-과 각각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나눈다. 둘 다 허구의 사건인데 당대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하여 가공의 스캔들을 삽입한 것으로 설명된다.

 

각 단의 시작은 대개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상당수가 옛날에 (, 어떤) 남자가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간략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와카로 마무리한다.

 

색인을 제외하고 해제와 본문을 합하면 270면 정도의 분량인데, 절반가량은 원문이므로 실제 가독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전체적으로 일독을 한 후의 소감은 별로 재미는 없다고 요약할 수 있다. 각 단의 내용상 핵심은 이야기가 아니라 와카인데, 운문의 특성상 번역문을 통해서는 원작만의 기법상, 정서상 미묘함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여기서도 유효하다. 더구나 와카는 정형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 유희적 기법이 자주 쓰인 점도 인상적이다.

 

시적 진미를 제쳐놓으면 천년 이전의 일본인들의 감수성은 현대인들과 그리 멀지않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이성에 한눈에 반하여 사랑을 갈망하고, 연인의 무정한 마음에 가슴 아파하며, 다투고 헤어져서는 눈물과 한숨에 젖어든다. 사랑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밖에는 빼어난 경치의 찬미 또는 권력자에 대한 경의 등을 읊조리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해제에서 언급한 일대기 형식을 염두에 둘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관된 줄거리를 갖춘 인물의 삶을 추적하는 일대기가 아니다. 중간에 주인공을 상기시키는 이야기들이 등장할 뿐 거의 대다수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 간의 사랑 관련 에피소드이며 이것을 반드시 주인공의 행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만큼 각 단의 독립성이 강하여 하나씩 따로 읽더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즉 별개의 이야기와 와카 모음집으로서.

 

당시 일본은 국가 체제가 정비되고 가나 문자가 발명되며 후지와라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신분제적 귀족정치가 안정됨에 따라 정치적 격변이 가라앉게 되었다. 정치적 안정은 자연스레 고급문화에 대한 수요와 필요를 낳았고 세련된 교양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여기서 미야비라고 불리는 풍류, 멋스러움, 세련됨 등과 같은 풍조가 유행하고 우대받게 되었다. 멋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외모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지만 그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세련된 복장과 품위 있는 언행, 그리고 와카를 자유롭게 지을 수 있는 능력 등이 열정적인 사랑과 결합되어야 진정으로 미야비를 갖춘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무수한 사랑 일화가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풍조는 그것을 예찬하고 격려하였다. 각 단의 이야기와 와카를 다소간의 지루함을 참고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당대인들의 감정과 사고에 문득 친숙하게 다가옴을 깨닫게 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의 틀을 인정하면서도 계급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려다가 좌절하고, 수도를 떠나 정처 없이 지방을 방랑하면서 마주치는 여인들과의 인연, 그리고 잊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아쉬운 탄식.

 

실존 인물의 반영과 허구의 사건 등을 도입하고, 이야기와 운문이 뒤섞인 이 작품에서 때와 곳, 문화를 달리하는 우리들이 느끼고 이해할 점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은 학술적 의의를 떠나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소구할 만하다.

 

 

참고삼아 짤막한 제3단을 소개한다.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다. 마음에 둔 여자에게, 녹미채라는 것을 보내려고,

 

사랑한다면 덩굴풀 잠자리도 나는 괜찮소

비록 이부자리로 옷소매 깔더라도

 

니조노 기사키가 아직 천황을 섬기지 않으시고 보통의 사람으로 계셨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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