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자키 숲의 정사 일본명작총서 2
자카마쓰 몬자에몬 지음, 최관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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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마쓰 몬자에몬.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18세기 초 일본 근세 전기의 극작가. 그는 평생 조루리와 가부키 같은 무대상연용 작품을 많이 남겼다. 신주(心中)는 정사(情死)를 의미한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절망한 연인의 동반자살.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떠올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것에 비견하기도 한다. 본문 60쪽 정도의 짧은 분량이며, 권말에 원문을 수록하고 있다.

 

서민 대상의 인형극인 조루리로 쓰여진 만큼, 영국 작가와는 인물들의 사회적 신분이 다르다. 남자는 상점 종업원, 여자는 유녀(遊女)로 아무리 좋게 보아도 결코 사회적으로 우대받는 계층은 아니다. 상업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대상을 반영하여 연인의 미래를 불행으로 만드는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 믿었던 이의 배신, 이것은 데릴사위 제안을 뿌리치고 사랑의 승리를 위해 나아가려던 도쿠베에게 치명타를 날린다.

 

일본 근세에서 유녀(遊女)의 지위는 이중적이다. 도덕적 가치 기준으로는 천시 받게 마련이지만,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보편화되다 보니 실제적으로는 일개 직업의 하나로 당당히 간주되었다. 그렇더라도 인연과 기회만 주어지면 유곽을 떠나 평범한 여인네의 삶을 간구하는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오하쓰처럼 진실한 사랑을 찾은 경우라면야.

 

작품의 기본적 갈등구조는 의리와 인정의 상충이다. 도쿠베는 의리상 데릴사위가 되어 숙부의 가게를 물려받는 게 마땅하다. 어릴 때부터 보살펴주고 키워주다시피 한 은혜와 정해진 수순을 거부하는 순간 그는 의리를 저버린 셈이 되어 더 이상 숙부의 가게에 머물 수 없다. 인정(人情)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의리를 끊고 인정을 선택했지만, 돈을 갚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오히려 죄를 뒤집어 쓸 지경에 놓이게 된 도쿠베. 의리도 인정도 불가능하게 된 순간,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정사(情死)는 우발적 사건이었던 반면, 도쿠베와 오하쓰는 상호 동의에 따라 의식적으로 감행하였다. 두 사람은 현세에서는 맺어질 대안이 없음을 절감하고, 내세의 기약을 도모한다. 신주(心中)를 먼저 결심한 이는 의외로 오하쓰다. 툇마루 밑에서 오하쓰의 발을 통해 주고받는 그들의 무언의 대화는 실로 장엄한 비극미마저 느낄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쿠베 님, 같이 죽어요! 저도 같이 죽을 거예요!”하고 발로 뜻을 전하니 툇마루 밑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끌어안고 애타게 운다. 여자도 본심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기 어렵고, 서로 말은 못하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남몰래 울고 또 울고 있다. ” (P.50)

 

사랑의 죽음,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동서양의 문학과 예술에서 막론하고 마르지 않는 테마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은 표면상 비극으로 끝나지만 내면으로는 사랑의 불멸의 힘을 재확인하는 진군의 나팔 소리가 아니겠는가. 신주(心中)는 단순한 자살 행위를 초월한다. 불가항력의 사유로 이승에서 인연이 맺어지지 못하는 연인은 죽음의 시련과 경계를 넘어서 저승에서 부부로 영원한 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즉 신주는 내세의 결혼을 서약하는 행위인 것이다. 작중에서 도쿠베와 오하쓰를 지칭하는 호칭이 신주의 실행 직전에 돌연 달라지는 까닭이 여기에서 비롯한다.

 

극작품은 대개 극 상연과 분리하여 단독으로 읽으면 온전한 제 맛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상연될 때 비로소 빛을 얻고 의미를 띠게 되는 대사나 행위, 배경 장치 등 때문이다. 이 작품을 조루리나 가부키로 실제 상연되는 장면을 보면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뛰어난 작품은 조건의 유·불리, 분량의 다소에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도 자체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바로 이 작품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된 후 청년들의 자살이 속출하였듯이 몬자에몬의 이 작품 또한 무수한 아류작과 아울러 신주를 양산하였다. 결국 당대인, 그리고 후대인들의 마음줄을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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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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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어렸을 때부터 여행기와 탐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근자에 우연히 서점가에서 훔볼트를 다룬 신간을 보는 순간 열정이 도지고 말았다. 옛 항해도를 연상케 하는 근사한 겉표지와 남아메리카의 발명자라는 자극적 부제(원저의 부제에는 없던 과도한 문구!), 올 컬러의 사진과 도판들, 더하여 고급스러운 종이의 질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탐험가라면 누구보다도 콜럼버스가 떠오른다. 정복자 피사로도 기억나고, 다윈의 항해기도 있었지. 훔볼트는 잘 모르는 인물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잊혀져 있던 훔볼트를 소개하고 있다. 19세기에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훔볼트의 삶과 남미 탐험을.

 

훔볼트와 동료 봉플랑의 19세기 초의 5년간에 걸친 남미 답사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감행한 도전이다. 수백 년에 걸친 스페인과 브라질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남미 정글의 오지는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두렵고도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다. 지배세력은 은광 등 경제적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훔볼트가 뛰어든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 차원에서 막대한 자비를 들여서 말이다.

 

훔볼트는 탐험과 모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지리학과 생물학 및 지구과학 전반에 걸쳐 방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앞서 읽은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에서 광범위한 관찰과 탐구의 증거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홈볼트의 남미 답사의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남미의 거대 하천인 오리노코 강과 아마존 강의 상류가 자연수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점이다. 오늘날 카시키아레 강으로 알려진 이 수로는 오리노코 강의 상류와 아마존 강의 지류인 네그로 강의 상류를 연결하는 희귀한 자연현상을 보여준다.

 

둘째, 침보라소 산의 등정이다. 오늘날 남미 최고봉은 해발 약 7천 미터의 아콩카구아 산이지만, 당대에는 침보라소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훔볼트와 그의 동료는 별다른 장비 없이 거의 맨몸으로 정상 부근까지 올라가는 위업(또는 만용)을 보여주었다.

 

셋째, 수천 종의 신규 생물 종을 발견하고 채집하여 생물학의 지평을 확장하였으며, 열대 지역의 식생과 지질, 자연에 대한 새로운 체계를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저자는 훔볼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간다. 출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향후 진로에 대한 부모와의 갈등. 훗날의 대탐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차곡차곡 관련 분야 지식과 경험 획득에 노력하는 그의 모습 등.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단순한 호사가적 취미로 이 여행을 구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당대 최신의 정밀 기자재를 구입하고 정확한 측정을 토대로 최신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자신의 발견과 관찰의 의미를 재구성하였다.

 

훔볼트의 탐험 의의는 당대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충격의 강도가 두드러진다. 아마존 오지를 자연 다큐를 통해 쉽사리 접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요즘으로 치자면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생명을 찾아서 낯선 별로 기약할 수 없는 탐사를 떠나 놀라운 발견을 거듭하고 무사히 귀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여행 기록을 매순간 세상에 공표하였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기록을 남기자는 취지와 함께 자신의 탐험과 발견 성과를 신속하게 드러내고자하는 의도를 지녔다. 당대는 계몽 정신으로 불타오르던 유럽, 따라서 그의 새로운 체험과 모험과 발견은 지적 갈망에 굶주려 있던 당대 지성인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남미 탐사 도중과 이후 훔볼트의 국제적 명성, 즉 나폴레옹과의 일화, 괴테와의 교유, 제퍼슨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훔볼트는 당대 인식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틀을 넘어서는 사고를 갖고 있기도 하다. 노예 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찬란한 잉카 문명을 파괴해 버린 정복자들에 대한 반감 등.

 

이 책은 훔볼트의 삶에 대한 전반적 개요를 다루고 있다. 훔볼트의 전기는 아니며, 극적인 탐험기도 아니다.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진지한 연구서도 아니다. 저자는 잊혀진 훔볼트라는 이름을,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듯하다. 저자의 서술은 대체로 평이한 편이다. 자연 다큐의 내레이터 어조에 가깝다.

 

훔볼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넉넉한 재산이 아니었다면 탐험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건강도 매우 좋았고 풍토병에조차 걸리지 않았다. 운 나쁜 모험가가 알지 못할 병에 걸려, 또는 사고로 생을 달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시절에 5년간 열대지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녔음에도 끄떡없었음은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의 열정과 집념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기회와 여건이 마련되더라도 당사자의 용기와 결단이 없다면 실행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 책이 이백 년 전 유럽의 한 학자이자 탐험가의 일생과 모험의 내용을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면 단지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훔볼트를 통해서 소중한 꿈과 열정을 잃지 말고,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노력으로 성취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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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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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연도는 2008. 저자는 2004년에 나온 전작에서 미국 정치의 심화되는 보수화 현상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 집권 시절 미국 내에는 부정부패의 정도가 극심해졌다. 엔론 사태와 서브프라임 위기 등은 순전히 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정치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어진 부패 혐의로 드러났다.

 

정치권의 부패는 어찌할 수 없는 문화적 산물인가 아니면 일각의 주장처럼 특정 개인들의 문제인가? 저자는 보수주의 속에 부패가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하며, 그럴듯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제적 현상으로서 보수주의를 연구할 것을 목표한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늘 비즈니스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비즈니스는 지난 수년간 보수주의가 대변한 다른 모든 것에 선행한다’. 이 사실을 숙지하는 것이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 조건이다.” (P.45)

 

비즈니스가 중심이 되고 지배하는 정치는 곧 금권정치가 된다. 자유방임주의적 시장에 기반한 정부, 기업 같은 정부는 고객 니즈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효율적 운영을 가져다주는 대신, 공공성의 무시와 사익의 집중 추구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워싱턴 고급주택들의 소유주가 민영화 업자와 로비스트들이라는 점이 시사적이다. 진보정치는 시민들의 풍족에 기여한 반면, 보수정치는 특정개인들만 풍족을 누리게 만들었다.

 

국가와 정부에 미국인들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적대적이다. 국가의 탄생 배경이 애당초 개인의 자유에 있던 만큼 소위 경찰국가 정도의 최소 수준이면 족하다는 게 그들의 내재된 믿음이다. 개인의 총기소유가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영역이 확대되고 수행하는 역할이 중대해질수록 개인의 사적 자치와 민간 영역, 즉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 게다가 정부와 관료조직은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부패하게 되어 있으므로 작은 정부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우파는 미국인들의 이러한 사고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새로운 우파는 기존의 중도적, 타협적 보수파가 아닌 전투적 성향을 띠는데 투쟁과 행동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은 정부와 불의에 대한 영원한 아웃사이더 내지 반군의 입장을 취한다. 보수당 정부의 실패도 정부 자체의 근원적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뿐이다. 정부란 원래 나쁘고 그릇되게 행동하기 마련이므로. 저자는 잭 아브라모프와 공화당학생회, 국제자유재단의 우파 마케팅 사례를 상세히 추적하면서 이들의 전략과 허위성을 폭로한다. 그들에게는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다. 거짓과 분노를 팔아서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약효가 없어진 반공 비즈니스에서 자유방임주의 비즈니스로 일조에 입장을 표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우파는 적으로서 좌파 민주당을 제거하기 위해서 좌파의 재원 고갈 전략을 사용한다. 돈줄을 말리고 그 돈을 우파에 지원하도록 하면 일석이조다. 기업이 원하는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에 기반한 정치로서 정치 자체가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우파에 자금을 지원해 좌파의 재원을 고갈시키는 것이 기업들에게 가장 확실한 정치 투자처로 떠오른 것이다.” (P.114)

 

이하의 제2부에서는 잡은 새로운 우파들이 어떻게 정부와 국가를 파멸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의 전지전능성은 20세기 전반기를 지배하였다. 눈부신 신화는 경제대공황과 함께 무너졌고 무제한적 방임은 위험하다는 인식하에 등장한 게 수정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시장이란 존재는 맹목적인 야수, 눈 먼 괴물이다. 적절한 통제와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

 

시장에는 신성하게 여기는 전통도, 애국주의도, 윤리도 없다. 시장은 보상만 충분하다면 자신까지도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P.154)

 

시장과 기업의 부정과 불공정을 통제하는 정부의 역할은 역으로 시장과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공무원 조직을 적으로 간주할 것인가, 그리고 민간 영역보다 멍청하고 무능하게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동양과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관()은 곧 엘리트를 의미하였다. 새로운 우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업 고객 요구에 맞춰 진행된 전면적 민영화와 아웃소싱은 정부계약업체와 로비스트, 일부 정치인들의 부를 챙기는 기회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우파 비즈니스의 비극적 결말로 카트리나 태풍 당시의 대응 미비와 지원 부실로 언급하는데, 문득 세월호 사건의 대응과 구조 미비가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정부의 고객은 국민일까 아니면 기업일까?

 

정치 비즈니스에서 로비와 로비스트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고객인 시장과 기업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 적절한 중개인의 역할이 요구된다. 거래하는 상품이 전문적이거나 당사자 간에 정보가 부족한 경우 거간꾼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로비는 보수 통치의 상징으로, 전성기 당시에는 시장의 원리를 정치에 구현한 메커니즘이었다. 로비는 돈으로 하는 정치이다.” (P.222)

 

로비는 기업체가 정부를 조종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P.233)

 

국민들이 로비 산업을 부패와 파렴치함으로 인식하고, 로비스트를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로비가 성행하는 사유는 이와 같다. 로비는 돈이 개입된다면 근본적으로 부정과 부패를 내포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커다란 스캔들 목록과 로비 산업의 주요 사건들이 일치하게 된다. 로비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로비의 성공에 따른 이익은 증가하는데, 그만큼 거액을 투자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이익에 대한 확신이 크기 때문이다.

 

로비를 통해서 비즈니스 우파는 좌파를 영구히 압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노퀴스트가 인식한 소위 ‘K 스트리트 프로젝트. 정부조직 파괴와 로비 전략으로 좌파의 세력 기반과 재정을 고갈시켜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면 영원한 집권이 가능하게 된다.

 

저자는 사이판의 사례를 분석하여 무제한적 자유시장은 곧 지옥임을 파헤친다. 자유시장과 자유방임에서 자유의 주체는 누구인가? 기업가와 자본가를 가리키지 노동자는 결코 아니다. 시장은 비용을 낮추고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운용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만약 무제한적 허용이 용인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체 메커니즘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인 99%의 국민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사이판에서와 같이.

 

여기서 잠깐! 국민은 바보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 바보다. 그들은 자신들이 1%에 해당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상위 1%에 바람직하고 유리한 정책이 자신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순진하게도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우파는 진보주의를 이기는 게 아니라 아예 제거해버리고 싶어 한다. 토론과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정부를 이용해서 진보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감세 정책은 복지국가에 대한 전면공격이다. 감세는 재정적자를 유발하고 이는 진보정부를 허물어뜨리는 유일한 길이므로.

 

진보정부와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될수록 새로운 우파는 기뻐한다.

 

한없이 무능력해도 승리하는 것이고, 마음껏 부패를 저질러도 승리하는 것이고, 실컷 낭비해도 승리하는 것이다.” (P.338)

 

저자가 깨닫고 들려주는 교훈은 자못 씁쓸하다. 민주주의와 금권정치는 동행이 불가능하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유인간 대 자유시장, 공공선(公共善) 대 돈 중에서(P.349). 새로운 우파, 즉 비즈니스 우파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우리는 그 결과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즈니스 우파는 예견된 몰락을 맛보았다. 바로 난파선의 선원과도 같이. 우리는 자유시장과 비즈니스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올바른 전통의 수호자가 아니라 파괴자라는 사실을.

 

우리 조상은 자본주의가 감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P.365)

 

이 책은 미국의 정치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와 분석의 결과이지만 미국 정치의 영향권 내에 있고 추종하는 국내 정치 현실에도 상당히 부합하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큰 정부는 나쁘고 작은 정부는 선하다는 논리는 여론을 호도하기에 딱 좋은 단면적 주장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의 사회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거나 시기상조라고 하는 주장은 전형적인 우파의 논리다. 그들이 말하는 때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다.

 

미국의 우파에 비하면 국내의 우파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시장과 기업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들 손아귀에 있다. 게다가 고정적인 지지층도 지역별, 연령별, 세대별로 견고하지 않은가. 미국 우파처럼 조급하고 소란스럽게 정치 비즈니스를 할 필요가 없다. 여론을 호도해 가면서 조금씩 알지 못하게 야금야금 해치우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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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색 매화 달력 -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62
최관 옮김 / 소명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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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세문학의 전형적인 대중소설이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대본, 아니 드라마대본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TV 멜로드라마에서 시청자는 인물의 전형성과 구성의 상투성에 불만을 표출하지만 어느새 전개에 몰입하여 주인공을 따라 울고 웃기를 거듭한다. 더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주인공의 장래는 사랑의 성취와 더불어 항상 해피엔딩이다.

 

연극 내지 드라마적 구성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전체 작품은 전 4, 12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권은 2척으로 구성된다. 연극적 용어를 빌리면 권은 막에, 척은 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은 인물간 대화로 전개되는데, 동시대의 연극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조루리의 영향이라는 평가다. 작품의 진행 동력으로서의 화자의 역할도 이색적이다. 작중 화자는 대개 작가로서 작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자와 직접적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강담(講談)과 유사한데,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리네의 판소리와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하겠다.

 

<뜬구름><금색야차> 등 일본 초기 근대문학 소설들을 읽다 보면 구성과 내용, 특히 정조 면에서 서구의 것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맛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은 작풍의 동질성과 시대적 속성의 공통 등에서 원인을 구했는데, 전통에 보다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변사로서의 화자의 역할, 명사구로 끝나는 문장 형태 등. 이 작품이 발표된 게 1832년이니 상기 작품들과는 약 40년 정도밖에 시대적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 근세문학의 여러 장르 중 이 작품은 인정본(人情本)’으로 분류된다. 영웅과 무사들이 활약하지도 않으며, 괴담과 해학적 성격과도 거리가 있다. 남녀 간의 애정, 사람들 간의 인정과 세태, 당대 사회의 풍속을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다. 여기에 유곽과 유녀가 작중 공간적 배경과 주요 인물들의 직업으로서 전면에 등장한다. 일본 근세 조닌문학의 독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며, 후에 히구치 이데요의 유명한 작품들에까지 연결된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남녀 주인공 간의 삼각관계, 주인공들의 역경과 시련이 점철되는 점은 현대와도 흡사하다. 아직 신분계급이 엄존하던 시절임은 그토록 당당하던 도베가 무사에게 바로 무릎 꿇고 절절 매는 장면을 통해서, 그리고 단지로가 무사 집안의 상속자로 일약 신분상승이 이루게 된다는 설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오초와 요네하치는 단지로를 사이에 둔 연적의 관계다. 단지로와 오초, 단지로와 요네하치 커플은 저마다 상당한 사유를 지니는데, 사실상 정혼자와 현실적 부부와도 같은 설정이 그것이다. 요네하치는 게이샤이며, 오초도 단지로를 위해 게이샤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남성을 사이에 둔 처지이니만치 두 사람의 관계가 평온할 리 없다. 연적에 대한 서로간의 질투와 시기, 단지로에 대한 사랑의 갈구는 공통이다. 여기에 고노이토와 숨겨둔 애인, 도베와 여협 간의 사랑의 부가적 플롯으로 첨가되어 작중의 애정 분위기는 제법 훈훈하다. 주인공들이 내내 행복하다면 대부분이 여성인 시청자와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없다. 눈물샘을 자극하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고난이 등장하여 주인공들을 괴롭혀야 한다. 처절하리만치 극단적인 고통으로. 이 악역을 여기에서는 유곽의 지배인 기헤와 한 통속인 마쓰베가 담당한다.

 

유곽을 배경으로 게이샤들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필 인정본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는지 궁금하다. 요네하치는 단지로에 대한 애정을 품고서 스스로 요시와라에서 쫓겨나 자유 게이샤가 되어 단지로를 구제하고 뒷바라지한다. 오초 또한 단지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게이샤의 신분을 선택하고 후에는 유녀가 될 결심마저 품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단지로에 대한 일편단심은 유혹과 위협에도 변치 않는다. 요네하치를 돕는 유녀 고노이토의 인정과 숨겨둔 애인에 대한 헌신, 오초를 구하고 돌보는 여협 오요시. 쫓겨나는 고노이토에 대한 한 가닥 마음씀씀이를 보여주는 유곽 사람들. 여염집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분상으로는 하층이라고 할 만한 유곽 사람들조차도 한구석에 진실한 정을 가지고 있다. 막부와 무사의 지배층의 엄격하고 권위적인 자세에 비하며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욱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의 황금세기에 사회 밑바닥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피카레스크 소설이 등장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대는 풍속에 대한 검열이 매우 강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작자가 이를 피하기 위해 소설의 음란성 내지 풍속 저해에 대한 방어 문구를 반복적으로 삽입하고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배경과 인물에서 시비가 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정조와 절개를 지닌 여인들의 이야기로서 외설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교훈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음란한 부녀자를 작중에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장치에 불구하고 결국 막부의 처벌을 면하지 못했으니 딱할 따름이다.

 

TV 멜로드라마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도 시대적, 지역적, 문화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제법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솔직히 책명만 보고는 읽을까말까 망설였다.

 

역자 서문에서와 같이, ‘춘색 매화는 두 가지 뜻을 함의하고 있다. 엄동설한의 시련을 견디고 핀 여린 매화 한 줄기의 암향(暗香)은 오초, 요네하치, 오요시, 고노이토 등을 상징한다. ‘춘색은 계절적으로 매화가 만개하는 봄철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라는 글자가 사춘기, 춘정, 매춘 등 성적 욕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유곽이라는 배경과도 연결된다.

 

여성 인물들에 비하면 남성 인물들, 특히 단지로는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시된다. 작중 내에서 그는 시종일관 소극적이며 현상을 타개할만한 아무런 행동도 감행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요네하치와 오초 등의 도움에 생을 의존하는 무능력한 모습만 보일뿐이다. 게다가 두 여인들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유녀 아다키치와 정을 통한다. 혼자서만 끙끙 속앓이를 하다가 광기에 들리는 <뜬구름>의 인물, 여인의 배신에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금색야차>의 인물들과 상통하는 일본 근대의 소극적인 남성상이라고 하겠다.

 

책 만듦새는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훌륭하다. 부가적 자료와 해제도 충실하다. 특히 약 30쪽에 가까운 앞부분의 컬러 도판은 당대 게이샤와 유녀들의 모습 및 복장, 생활 등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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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자연과학선집
알렉산더 폰 훔볼트 지음, 정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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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소싯적부터 여행기와 탐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찬삼의 해외 여행기를 비롯하여 리빙스턴, 슈바이처, 헤딘, 아문센 등의 탐험담을 넋을 놓고 읽기도 하였다. 우연히 서점가에서 훔볼트에 대한 신간을 보는 순간 옛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할까.

 

이 책 자체는 탐험기가 아니다. 훔볼트 자신도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다. 그는 박물학, 자연학 등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탐험을 진행한다. 훔볼트가 18세기 초 수년에 걸쳐 남미대륙을 답사한 후 보고서를 정리하기 전 일종의 요약본 형식으로 발표한 저작이다. 전자는 이론적, 후자는 사실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식물지리학 시론>은 식물지리학의 이론적 개념 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종래의 식물학을 기술식물학으로 부르며, 식물지리학은 지금으로서는 명칭만 존재하는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일반자연학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학문 분야”(P.3)라고 제기한다. 생소한 분야니만치 식물지리학의 의의에 대한 소개를 더 하고 있다.

 

식물지리학은 다양한 기후 환경 아래서 식물을 그 장소와 연관시켜 고찰한다.” (P.3)

 

식물지리학은 매우 다양한 식물 형태의 배후에 어떤 원초적 형태가 있는지, 나아가서는 종의 다양성을 진화 또는 퇴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지 같은 문제에 관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 (P.11)

 

저자는 아메리카와 유럽의 기후, 위도, 고도별 식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식물지리학이 지질학과 정치사나 문화사에 결부시켜 고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해의 심화와 확대를 꾀한다. 특히 식생의 양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민족의 취향이나 독창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지적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성격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것들의 형태가 자아내는 아름다움 속에, 그리고 그것들이 짝이 되어 자아내는 조화와 대조 속에 존재한다.” (P.25)

 

훔볼트는 다년간의 탐사 결과를 한 장의 커다란 지도로 압축, 요약, 분류하여 글자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열대 지역의 자연도>는 이 지도를 읽기 위한 해설문이다.

 

필자는 열대지역이 나타내는 자연 현상의 총체를 태평양 해면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지도에 요약하기를 시도했다.” (P.35)

 

그것은 또 필자가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P.36)

 

저자는 일반자연학의 진보는 개별적인 연구와 함께 지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나 사상들 모두를 결부시킴으로써 비로소 가능”(P.36)하다고 하여 종합적, 융합적 과학 이해를 제시하며,

자연도의 이해를 통해 상상력과 기쁨을 정신에 나누어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이어서 자연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는데, 지도의 축척비율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 최고봉 침보라소 산의 해발고도 측정치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단면도의 윤곽을 통해 지질 현상을 논하고 지도 안쪽에서는 적도 주변 지역의 식생 지리를 상세히 표현하기 위해 고도대별 식물의 형태에 대응해서 식생도에도 식물군생별 영역을 설정하여 세부적으로 논하고 있다. 특히 기나나무(cinchona)의 분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흥미롭다.

 

훔볼트의 탐사와 관찰이 이루어진 시기는 19세기 초, 우리는 각종 자연다큐를 통해 열대지방 고산, 특히 킬리만자로의 고도별 식생이 다채로움을 인지하고 있지만 당대의 시대적 인식을 염두에 두며 매우 획기적일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식생뿐만 아니라 기온, 습도 등 폭넓은 지구과학적 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적도 주변지역의 자연도의 목적은 식물지리학상의 고찰에 공헌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연도는 동시에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P.78)

 

저자는 이하에서 식물지리학 외 일반자연학의 각 분야에서 행해져 온 연구 성과를 14개 항목으로 정리하면서 이 책에서는 간단하게 개요만 언급하고 있다. 해당 항목은 다음과 같다. 기온, 기압, 습도 전기, 하늘의 청도, 빛의 감쇠, 수평굴절률, 대기의 화학조성, 중력의 감소, 비등수 온도, 지질, 설선(雪線), 해상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서식지의 고도로부터 본 동물의 다양성.

 

대기의 화학조성에서 이미 상식이 된 대기 내 질소 대 산소 비율에 대한 논의가 신기하고, 안데스 산맥의 명칭을 남미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날의 로키 산맥까지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이채롭다. 특히 인디언이 몽골계 인종이고, 아시아에서의 이동설에 대해 당대는 아직 가설단계에 있음을 알려준다.

 

해설 포함 150여 면에 불과한 소책자에서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전문적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인문 사회학에 비하여 학문적 발전이 빨리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에 있어서랴. 그럼에도 지리학과 지구과학의 학문적 초창기 단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훔볼트의 생생한 육성을 당대적 인식 틀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중간에 낯선 식물종의 이름이 여과 없이 라틴어 학명 그대로 융단 폭격 수준으로 노출되고 있어 이 방면에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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