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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1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지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4월
평점 :
미스 제인 오스틴에게,
당신이 남긴 여섯 편의 소설 중에서 어느덧 네 편째를 읽고 있군요. 남은 두 편인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사후에 발간된 작품들이니 생전에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작품으로서는 마지막입니다.
당신의 작품들은 국내 출판계에서 꽤나 인기 있는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유독 이 작품 <맨스필드 파크> 만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오히려 이상한 정도지요. 왜 그럴까요? 작품의 분량이 가장 방대한 점이 아무래도 다소간 영향을 미치겠지요. <엠마>의 경우 무리해서라도 한 권으로 수록이 가능하지만 이 작품은 두 권으로 분책이 불가피합니다.
이 작품은 여타 작품들과 전개방식과 분위기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당신의 작품들에서 기대하는 경쾌하고 발랄한 진행과 재치 있는 대사와 유머 감각 등과는 다른 뭔가 낯설고 이질적인 요인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중독자들에게는 동질감을 느끼기 어렵게 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여기서 작풍의 변화를 꾀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요?
먼저 주인공을 보면 다른 소설들에서는 중심 화자가 곧 주인공이었지요. 모든 사건은 주인공을 둘러싸고 발생하며 독자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사건의 전개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패니 프라이스가 중심 화자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주인공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작중에서 충실한 관찰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1권에서는 말이지요. 작중의 사건은 맨스필드 파크의 집안 식구들과 헨리 자매들 간에 복수적으로 발생하며 패니는 옆에서 한발 비켜난 상태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의 작품들에서 관찰의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야말로 세심하며 충실한 관찰자로 불릴만합니다. 당신의 글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영국 귀족사회와 그들의 가정생활 및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패니가 중심인물이 아니다 보니 관찰이 사건전개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지 못하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하겠지요.
소설의 초반부는 맨스필드 파크의 가족사와 패니가 이종사촌의 집에 오게 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어 어린 패니가 아가씨로 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지요. 그렇습니다. ‘성장’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역시 다른 소설들과 차이를 보이는 점입니다. 간단한 배경 설명 후 곧바로 인물과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밀고 당기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한참 후에야 등장하니 말입니다. 성장과 관찰이라는 두 요소는 소설 전개를 느슨하게 하고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됨을 부인할 수 없군요.
그러면 제인, 당신이 작품 구성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허투루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야깃거리가 부족하여 이렇게 질척거리도록 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혹시 제가 예상했던 그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만.
패니는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이니 관찰자로서는 최적입니다. 패니를 굳이 관찰자로 비중을 축소한 연유는 그녀 자신의 행위보다 타인의 행위를 관찰하는데 주력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남을 관찰하는 행위는 정확한 이해력과 판단력을 필요로 하며, 필연적으로 관찰 결과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뒤따르게 됩니다. 패니를 통해 독자들은 버트램 가를 둘러싼 인물들의 성품과 언행, 사고방식 등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으며 그들이 보여주는 미덕에는 감탄하지만 어리석음에는 탄식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이 제인, 당신이 노리는 의도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패니의 관찰자적 역량을 알 수 있는 대목을 한두 개 보도록 하지요.
“패니는 모든 장면을 시종일관 지켜보았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으므로 줄리아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것이라 생각하니 여간 측은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P.226)
“사촌들은 자기네가 선택하고 있는 희곡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그것을 판단할 만한 분별력도 없는지 의심스러워는 것이었다.” (P.227)
그럼 당신과 패니의 눈으로 살펴본 버트램 가의 인물들을 한번 확인해 보지요.
토머스 경은 대체로 여러 장점을 지닌 긍정적 인물로 소개됩니다. 다만 가정생활에서 평온함을 우선시하며, 딸들에게 애정을 겉으로 표현해주지 않음으로써 나중에 딸들이 올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데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버트램 영부인에 대해서는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없네요. 동생인 노리스 이모는 작중에서 유일하게 시종일관 패니를 구박하는 악역을 전담하고 있으며 그녀의 말과 태도를 통해 당대 사회의 신분제 질서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패니와 버트램 가는 사촌 간이지만 친척 간의 정은 신분의 격차를 넘을 수 없다는 점 말이지요. 덕분에 패니도 이를 당연히 수용하게 됩니다.
“사촌 언니들의 흥겨움에 대해서 들을 때면 몹시 부럽기도 했지만 자기는 신분이 낮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나가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특별히 자기와 관련있는 일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P.61)
““패니는 정말 은혜라곤 눈곱만치도 모르는 아이 같구나. 이모나 사촌들의 소원을 그토록 박정하게 거절하니 말이야. 정말 몰라도 너무 몰라.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는 못할 거야.” 노리스 부인이 쌀쌀맞은 태도로 말했다.” (P.242)
“패니는 이모의 말이 분명히 이치에 닿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자신은 안락함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너무나 비천한 신분이라는 것을 노리스 이모의 표현으로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P.351)
사촌오빠로는 톰과 에드먼드가 있는데, 장남인 톰은 귀족가문의 전형적인 맏아들 유형으로 유쾌하지만 경박하고 사치스러움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패니가 좋아하는 에드먼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에드먼드의 태도는 항상 조용하고 침착했다. 어쩌면 그런 진지하고 침착하고 소탈하기조차 한 올바른 성품이 그의 매력인지도 몰랐다.” (P.116)
사촌언니들인 마리아와 줄리아. 두 자매의 장점은 외모에 치중된 반면 작중에서는 점차로 그네들의 결점이 사건이 전개될수록 두드러집니다. 먼저 마리아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결혼의 조건은 시대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 세대와도 별반 차이가 없으므로 비난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그녀는 가능하다면 제임스와 결혼하는 게 당연하고도 명백한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P.67)
마리아의 허영심은 또 어떻습니까?
“사륜마차가 저택의 현관 앞 넓은 돌층계 앞에 멎었을 때, 그녀의 기분은 우월감과 허영심으로 가득 차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고 몹시도 흥분한 상태였다.” (P.143)
그녀 주체적으로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지려는 의지조차 없이 오로지 주변의 입김과 허영심을 따른 결과, 헨리와의 사랑놀음에 상처받고 홧김에 제임스와 결혼식을 서두릅니다. 여기에는 부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강렬한 욕구도 한몫 거들지요.
“마리아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집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 아버지의 속박에 대해서는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실연으로 인한 슬픔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자신이 결혼하려는 상대에 대한 경멸감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그런 일로 인해서 오히려 결혼식을 치를 마음의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P.323)
사실 마리아는 순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만과 간계를 모르는 그녀는 제대로 된 만남을 가졌다면 제법 훌륭한 귀족부인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러시워스와의 섣부른 약혼 이후 헨리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었으니까요. 마리아가 헨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대목은 그녀의 처지에 빗대어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망이라고요?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요? 그래요, 정말 눈부신 전망이 펼쳐지고 있군요. 정말 햇빛은 찬란하게 빛나고 파크는 무척 아름답군요. 하지만 불운하게도 저 철문은 굳게 닫혀 있어서 속박과 무정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군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요.” 마리아도 헨리와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진심을 털어놓은 그녀는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P.169)
동생인 줄리아는 어떨까요? 그녀도 언니와 유사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뛰어난 미모에 비해 이성적 능력의 부족함. 작중에서는 이러한 그녀의 단점이 직설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줄리아에겐 참을성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바른 배려도 부족했고,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나 원칙도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본래 그런 것들은 교육의 본질적인 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는데 줄리아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것이다.” (P.155)
또 다른 인물 축인 헨리와 메리 크로퍼드 남매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빠인 헨리는 사랑놀이를 즐기고 도덕적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한마디로 바람둥이 인물입니다. 그에게 젊은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는 하나의 심심풀이 유희에 불과합니다. 버트램 가의 두 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는 유복한 신분이면서도 본받을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분별력이 없고 자기 욕심대로만 행동하려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저 눈앞의 일밖에 보려고 하지 않았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행동하거나 계획할 줄도 몰랐다. 미인이고 영리하며 자신을 좋아하는 듯한 두 자매는 그의 가슴속에 하나의 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P.194)
에드먼드가 사랑을 품은 메리도 흠잡을 데 없는 듯하면서도 이따금씩 표현하는 언행에서 결점이 드러납니다. 특히 결혼관과 목사에 대한 인식에서 말이지요.
“인간사 중에서도 이 결혼이라는 거래에 있어서는 상대방으로부터는 최대의 것을 기대하면서 자기 자신은 가장 부정직하게 되거든요......결혼이란 밀고 당기고 하는 일종의 거래 같은 흥정이라고 생각해요.” (P.81)
“목사란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신문이나 읽고 날씨나 살피고 부부 싸움을 하는 정도밖에 하는 일이 없죠. 일은 전도사가 모두 처리해주니까요. 평생 동안 하는 일이란 식사하는 것뿐이에요.” (P.186)
메리의 결혼관은 매우 현실적이며 내밀한 사회적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결혼에서 이러한 속성이 있음을 부인하기란 어려우니까요. 특히 목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메리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당대의 일반적 견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아가 제인 당신의 인식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요?
이렇게 패니의 입장과 시각에서 등장인물들을 보면 외관상 번지르르한 우리들 개개인들이 얼마나 성격과 행동 면에서 흠결을 지닌 존재들인지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결점을 지닌 인물들의 좌충우돌이 작품을 맛깔나게 하는 양의 작용을 하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철저히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어 작중 분위기가 밝고 화사하지 않고 객관적이며 다소 냉랭함을 안겨주어 이채롭습니다.
“너나 누님이나 식구들은 최근 한 달 반 동안 그 아가씨의 인물이 매혹적이게 아름다워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더라.” (P.364)
어느덧 패니는 열여덟 살이 되어 소녀에서 아가씨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패니의 미모가 한층 빼어나게 되어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변했음을 알아차린 것은 헨리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헨리는 동생에게 패니를 유혹할 계획을 털어놓습니다.
이것으로 1권은 끝을 맺는데 2권에서는 제인 당신이 어떤 식으로 패니와 헨리의 관계를 구성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패니가 계속 관찰자의 영역에 머무를지 아니면 알을 깨고 나와서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날지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신이 이색적인 작품 분위기를 이대로 견지할지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기존의 작품들처럼 시트콤적 성향으로 복귀할지도요. 제인 당신의 행보를 주목하겠습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