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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돌 - 아트 라이브러리 19 ㅣ 아트 라이브러리 19
존 러스킨 지음, 박언곤 옮김 / 예경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1851년에서 1853년에 걸쳐 간행되었으니 <건축의 일곱 등불>의 후속작인 셈이다. 전작이 이상적 건축의 요건이라는 기본 이론서라면, 여전히 이론적 면모가 우세하지만 이 책은 그래도 건축의 실제적 측면에 보다 주목하고 있다.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인데, 너무 방대하다고 생각한 저자 자신이 훗날 원본을 1/4로 축소한 요약본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번역본의 저본은 요약본인데, 빠져버린 건축의 원리 부분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구성을 보면 첫 번째 책은 건축의 이론으로서 건물의 구성 요소와 장식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가 아름답고 진정한 건축의 특성과 미학에 대해 올바른 식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후반부에 시대별 건축 사조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책은 비잔틴 시대, 고딕 시대, 르네상스 시대 별로 건축의 특징과 변화를 소개하며, 산 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을 건축미학적으로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저자가 매우 높이 평가하는 고딕 건축의 본질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서양 고전 건축의 기본 요소와 명칭, 구성 원리 등을 모른 채 <건축의 일곱 등불>을 읽어나갈 때 매우 답답한 심경이었다. 막연한 뜬구름 같은 개념 인식은 진지하고 심원한 이해에 건널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이러한 심경을 알아차렸는지 전반부에서 러스킨은 차근차근 쉬운 표현을 사용하며 건축에 무지한 독자에게 감식안을 갖도록 하기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러스킨은 건축의 미덕 두 가지를 제시한다. 힘 또는 훌륭한 건설이 하나이며, 그것의 아름다움과 멋진 장식이 또 하나다. (P.29) 이를 달리 표현하면 “첫 번째는 인간이 만들어 낸 훌륭한 작품이라는 표시이며, 두 번째는 자신의 것보다 더 나은 작품에서 느끼는 인간의 기쁨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다.” (P.33) 전작에서 제시된 법칙과 유사하지만 보다 실제적 요소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제시된 미덕을 바탕으로 먼저 저자는 건축을 6가지 요소로 세분하고 있다. 벽과 지붕과 개구부(開口部)는 건물의 최소 요건이다. 벽의 내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피어와 버트레스이다. 지붕은 지붕 자체와 지붕의 토대가 되는 아치나 상인방로 구별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게 세분한 요소를 개별적으로 고찰하고 분석하는 시간이다.
벽은 토대와 벽체, 꼭대기에 해당하는 코니스로 구분된다. 벽은 공간을 내부와 외부로 나누고 안전하게 지붕을 받쳐야 한다. 벽의 모든 구조와 기법 등은 하중과 압력을 효과적으로 견디는 방안을 강구하는데서 출발한다. 회랑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는 공간 구분 기능은 불필요하므로 이때는 최소한도의 벽만으로 하중을 버티기 위한 공학적 효율성의 이해가 추구된다. 그래서 벽은 기둥이 되고, 코니스는 주두로 발전한다. 아치와 박공지붕의 설명 또한 흥미롭다. 지붕은 수직압력과 수평압력을 잘 지탱해야 하는데 이용 가능한 재료를 활용하여 안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아치 형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구조 역학적으로 튼튼하게 설계와 시공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하중을 견디기 위한 목적에서 벽을 무한정 두껍게 할 수 없으며 미학적으로 보기가 좋은 편이 아니다. 버트레스가 이런 필요성에서 등장하였다.
장식은 순수 건축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장식이 없어도 건물의 용도 수행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식은 순전히 심미적 차원이다. 러스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모든 장식은 저급하다. 확실하고도 명백한 이유가 없다면 그 장식은 진정으로 저급한 것이다. 우리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경탄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비참한 자기만족이며 가엾은 일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고귀한 장식들은 이러한 것들과 정반대로, 신의 창조물에 대해 느끼는 인간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P.91)
러스킨의 건축 비평 인식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이다. 그의 미학의 중심에는 신에의 귀의가 핵심이다. 신과 신이 만들어낸 자연을 찬양하고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상찬으로 추앙되지만, 인간에 치중하는 것은 저열하고 하급으로 치부한다. 이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자 가치관으로서 당대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예술 및 건축 비평에 대해서 과도한 관념론이라는 비판도 존재했다고 한다. 하긴 이러한 경향이 후대 사회 비평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숨은 동인(動因)일수도 있으리라.
러스킨의 글에는 문학적 향취가 자욱하다. 그의 글은 논설이나 학술서처럼 딱딱하지 않으며 기술과 공학을 다루면서도 예술적 감성이 스며들어 있다. 예술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행복한 만남을 구현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제12장 장식의 취급 말미를 보자. 그는 독자와 함께 파도바를 출발하여 여로에 오른다. 곤돌라를 타고 브렌타 강의 흐름을 좇으며 이윽고 말로 갈아타고 좁은 도로를 따라 선창에 다다라 다시 배를 타고 도시의 실체를 응시한다, 이곳 베네치아로. 독자의 눈길과 숨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러스킨만의 뛰어난 구도와 문체가 단연 빛을 발한다.
두 번째 책은 앞서 기술했듯이 시대별로 베네치아의 건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하고 많은 도시 중 하필 베네치아를 선택한 이유를 저자는 명쾌하게 밝힌다. 비잔틴 시대에서 전성기인 고딕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로 변천하는 건축의 흐름이 베네치아에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그로테스크 르네상스로 변질되고 타락하는 현장이 유일하게 역력하다는 점이다.
러스킨의 글은 일종의 건축 에세이다. 그는 건축의 좁은 시야를 고집하지 않는다. 후반부의 첫 장은 베네치아 생성의 역사를 훑어나간다. 지리학적 고찰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토르첼로 섬과 산 마르코 성당에서 이 시대의 전형을 발견한다. 러스킨 특유의 여행하는 보행자의 시선으로 멀리서 점점 다가가며 보고 발견하고 느끼는 엄숙한 감흥을 세밀하고 눈부신 색조로 묘사한다. 그 표현은 분명 시적(詩的)이지는 않지만 시적인 정서를 독자에게 안겨준다. 한 부분을 잠시 인용한다.
“......기쁨의 혼란이 한창일 때 그리스 기병의 가슴이 황금빛 힘의 웅대함 속에서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산 마르코의 사자는 별들로 뒤덮인 푸른 들판 위에 우뚝 솟고, 마침내 무아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아치의 용마루 장식들은 대리석 거품으로 부서진 채 번쩍임과 조각된 물보라의 소용돌이 안에서 푸른 하늘 저 멀리 몸을 던진다. 그것은 마치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얼어붙은, 리도 해안의 새하얀 파도 거품들을 바다의 요정들이 산호와 자수정으로 장식해 놓은 듯하다.” (P.137)
고딕 시대의 대표적 건축으로 두칼레 궁전을 분석하고 있는데, 30쪽에 걸쳐 평면도와 조감도, 그리고 각 건축의 세부 그림을 제시하여 역사적, 건축 미학적, 건축 요소별로 철저히 그 아름다움의 근원을 파헤치고 있다. 말미에 가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두칼레 궁전이 너무나 친숙하고 낯익어서 오랫동안 잘 알고 있던 건축으로 여겨질 정도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의 핵심이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고딕의 본질’ 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러스킨은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고딕 건축을 가장 높이 평가해 왔다. 이 장에서 그는 고딕의 본질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야만성과 거칠음, 변화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교란된 상상력[기괴성], 완고함[견고성], 관대함이 바로 그것이다. <건축의 일곱 등불>의 주장 최고로 부합하는 건축 양식이 바로 고딕 건축이다. 고딕 속에는 신에 대한 찬미, 자연미, 박제화된 기교보다 거친 생명력이 살아 숨쉬며,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닌 고착화된 틀을 깨는 독창성 차원의 변화가 내재되어 있다.
고딕 건축과 르네상스 건축의 차이는 완벽성에 대한 추구에 있다고 러스킨은 인식한다. 과도한 완벽성은 건축에서 정교한 기교, 숙달된 솜씨, 세련미에 대한 요구로 드러난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고딕 정신은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불명예스럽고 조악하며 타락한 최후의 양식을 그는 그로테스크 르네상스로 부른다. 그에게 더 이상의 베네치아는 의미가 없다, 건축에서도 현실에서도.
“예전에는 불굴의 의지와 헌신으로 기독교의 도시들을 추월했던 베네치아가 이제는 방종의 교묘함과 다양한 허영심으로 그 도시들을 추월했다......평원 도시의 저주, 즉 자만심, 비만의 양식, 그리고 지나친 나태함과 같은 고대의 저주가 베네치아를 덮었다.” (P.224)
러스킨이 공들여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베네치아의 건축을 연구하고 분석한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은 아니다. 그의 의도와 목적은 분명하다. 그는 고딕을 당대 유럽에, 영국에 부활시키고 싶어 한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당대 건축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건축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진정한 건축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러스킨의 고딕 건축 찬미를 그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그리스와 로마 건축이 생명력 없고 이롭지 못하며 비그리스도교적인 것처럼, 우리들의 옛 고딕은 역동적이고 쓸모 있고 신실하다. 옛 고딕은 모든 의무에 순종하고 모든 시대에 영속적이고 모든 마음에 교훈적이며 모든 직무에 고귀하고 거룩하다. 이것은 겸손함과 고귀함에 모두 적절하며, 마찬가지로 작은 집의 현관이나 큰 성의 성문에도 모두 적절하다. 일반 가정에 사용되면 친숙하고, 종교적 건물에 사용되면 경건하다. 단순하면서도 재미있기에 어린아이조차 이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힘으로 싸여있어 가장 강한 사람이라도 위압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찬양한다. 진정한 건축은 작업자의 모든 능력을 끌어내고 바라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