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기의 영웅들 - 켈트 신화 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 3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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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의 한 권으로 판형이 매우 크다. 282*240이므로 통상적인 신국판보다 훨씬 더 큰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시리즈의 특성상 오로지 글이 아니라 상당한 수의 사진과 도판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 시각적 인지효과를 높이고 있다.

 

앞표지 사진의 강렬함이 우선 눈길을 끈다. “패배에 반항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켈트족 족장이 제 가슴에 칼을 찔러넣고”(P.6) 있는 기원전 225년경의 조각품이라고 한다.

 

켈트족은 기원전에 이미 전성기를 누렸고 로마 제국의 발흥과 더불어 세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소멸되어 갔다. 8면의 켈트 강역도를 보면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서로는 아일랜드에서 남으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북부, 동으로는 다뉴브 강을 따라 오늘날의 터키 중부까지 뻗어있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터키의 갈라티아, 프랑스의 갈리아 등의 지명에 그 흔적이 여실하다.

 

하지만 켈트 문명은 로마 제국과 중세 기독교 세계를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었고, 오늘날 아일랜드와 웨일즈 일부에 명운을 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도 거의가 이들 아일랜드와 웨일즈의 신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 브리튼과 브르타뉴의 아서 왕 전설이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켈트 문명과 신화에 대한 전반적 개요이며, 이어서 아일랜드의 켈트 신화와 웨일즈의 켈트 신화가 소개된다. 마지막 부분은 아서 왕전설이다.

 

아일랜드의 것은 투아하 데 다난과 피르볼그 족과의 전투, 그리고 다난 족과 인간인 밀레투스 족과의 전투, 이어서 인간 세계의 전설적 영웅인 쿠쿨린과 핀 및 기타 신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웨일즈 신화는 마비노기온의 네 지편이 중심이 되어, 축복받은 브란과 위대한 영웅 쿨루크 등이 등장한다. 사실 이 내용들은 앞선 책들을 통해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접한지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매우 큰데, 산만한 신화의 내용을 솜씨 좋게 요약하고 있으며, 사진자료 및 참고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초심자의 이해를 제고하는데 유익하다.

 

아서 왕의 전설은 요즘 내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장르이다. 아서 왕은 신화와 영웅담이 혼재되어 있을뿐더러 각 지역별(브리튼, 브르타뉴, 독일)로 동일 인물에 대한 명칭도 다를 뿐만 아니라 파생된 독자적 외전이 존재하여 일목요연하게 전체 체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는 아서 왕의 역사와 전설을 대조하며, 주요 등장인물인 멀린, 가웨인, 란슬롯,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의 열전과 아울러 성배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기분이 좋다.

 

켈트 문명과 신화는 내적으로는 사제인 드루이드들이 문자기록을 하지 않고 암송으로 문명의 핵심을 전수하는 방법의 한계와, 외적으로는 중세 기독교의 종교적 침입과 탄압으로 상당 부분이 소실된 상태다. 하지만 유럽 문화에는 여전히 켈트족의 자취가 역력하니, 마법과 환상, 요정과 유령 등이 살아 숨 쉬는 그 세계는 분명 예수와 이성이 지배하는 정통 유럽의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과장하면 기독교 문명이 양지를 지배한다면 켈트 문명은 서양인의 음지를 지배한다고 할 정도다.

 

재언한다면, 이 책은 켈트 신화에 대한 교과서적 입문서다. 하지만 여기서 포괄하는 내용이 기실 켈트 신화의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장점인 동시에 잔존한 켈트 신화의 빈약함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한편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세계10대문명 시리즈로 나온 <켈트>라는 책이 있는데, 역시 커다란 판형을 자랑한다. 몇 장 들추어 본 결과 고고학과 역사학적 관점에서 켈트 문명을 다루고 있어 이것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만 신화 외에 문명으로서 켈트를 알고 싶으면 꽤나 유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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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기담문학 고딕총서 9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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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 편의 <세계의 환상소설>에서 ‘치카모가’가 소개된 앰브로스 비어스의 단편집이다. ‘기담문학 고딕총서’의 일환으로 출판된 것이니 역시 구분하자면 환상소설 범주에 해당된다. 비어스는 이외에도 <악마의 사전> 등 주로 냉소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꼬집는 글들로 당대에 유명하였다고 한다.

 

표제작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을 포함하여 수록된 17편의 소설들은 짧은 분량에서도 환상소설이 그 생경함과 기이함을 잃지 않고 잘 보여줄 수 있는지 여실히 입증한다. 총칭하여 환상소설이지만 순전한 판타지의 영역에서부터 공포문학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비어스는 공포와 살인에 유독 관심이 많은 듯하다. 수록작 모두 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시대적 배경으로는 미국 남북전쟁 전후와 서부 개척기를 주로 다룬다. 괴기 공포물은 모두 인간의 두려움을 자양분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대규모 인명 살상은 소위 말하는 유령과 악령이 판치기 좋은 사건이다. 납량물에서 공동묘지와 폐가가 자주 다루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인적이 드문 미지의 외진 곳, 맹수와 정체모를 위협적 존재가 돌아다니는 깊은 숲 등에서 인간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분량의 제약 상 비어스는 사건과 인물, 배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건너뛰고 특징적인 요소만 강조한다. 그림으로 치면 소묘나 캐리커처 정도라고 할 정도인데,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의 효과를 준다. 그리고 끝에는 강렬한 반전! 읽는이는 결말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되새김을 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짤막한 감탄과 동의의 표현(예, 아하!)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여름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번갈아 가며 소위 귀신 이야기를 주고받은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으리라. 개중에는 즉각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도 있지만, 잠시 음미해야 공포가 밀려오는 부류도 있다. 비어스의 이 작품들을 읽다보면 문득 제재와 배경은 이와 다르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 심리의 본질적 요소는 유사한데 연유할 것이다.

 

수록작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이한 초자연적 체험을 다룬 유형(핼핀 프레이저의 죽음, 카르코사의 주민, 요물, 심리적인 난파), 인간 심리에 미치는 공포의 영향을 다룬 것들(시체를 지키는 사람, 인간과 뱀, 표범의 눈), 죽은 영혼이 등장하는 작품들(매커저 협곡의 비밀, 덩굴, 이방인, 오른발 가운뎃발가락), 기이한 죽음 자체를 다룬 소설들(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개기름, 막힌 창, 막슨의 걸작, 내가 좋아하는 살인, 말 탄 자 허공에 있도다)이다.

 

이들 작품에서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순수한 스토리가 주는 재미와 환상적 요소의 효과(두려움, 기이함, 생경함, 의아함 등)를 즐기면 충분할 것이다. 작가 자체도 이를 의도했으리라 본다.

 

공포와 살인이 주가 되면 효과 극대화를 위해 잔혹함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잔혹함은 흔히 피와 살이 튀기는 수단을 취한다. 따라서 과거는 물론 현재도 환상소설은 통상 B급 장르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과거 문학의 대가들, 모파상,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호손, 포 등이 환상문학의 대가였다는 사실과, 소설의 제재가 시대적, 장소적 배경의 구체성이라는 제약 조건을 뛰어넘어 작가의 순전한 창작을 발휘할 수 있는 점, 그리고 인간 내면의 은밀한 비이성적 영역의 존재라는 측면을 고려하며 여전히 환상문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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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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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P.58)

 

작중 화자인 윤영의 상념이다. 또한 김이설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나의 상념이기도 하다. 처음 이 작품을 읽는 이라면 김이설의 화법과 표현 수위에 강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선정적 효과만 노린 것 외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세태에 대한 처절한 고발임도 알게 되어 높은 평가를 보내리라.

 

이 소설의 가족 관계 역시 범상하지 않다. 애당초 가족 관계란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해체되는 가족 관계에서 과감히 해체하지도 못하고 해체를 막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온몸으로 세찬 풍파를 감내해야 하는 존재, 그것이 김이설의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의 몫이다.

 

“참을 만큼 참고도 더 참아야 하는 건 가족이었다.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P.46)

 

작가는 전작과의 차별성을 성(性)에 부여한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여성들이 경제적 궁핍에서 손쉽게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방면에 매우 관대한 편이며, 암암리에 만연해 있다. 성적 경계선을 넘나드는 작중 화자의 일탈을 묘사하며 작가는 사회와 개인의 모럴과 생존의 모럴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녀의 선택은 생존을 위해 절박한 것이며, 생존은 반드시 도덕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구나 성적 행위는 반드시 제공받는 타자를 요구하며, 이때 타자는 지위와 돈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는 갑에 해당한다.

 

김이설 소설의 주인공은 환경과 운명의 폭압에 의연히 맞설 만큼 꿋꿋하지 못하다. 좌절과 분노와 체념을 동반하는 그네들의 모습은 지극히 연약하기에 차라리 인간적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밝은 장밋빛이 아니다. 가슴속에 품은 작지만 소박한 믿음이 끝끝내 그들로 하여금 땅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어 내게끔 하고 있다. 그것은 절망이 주는 희망의 역설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나는 남편과 함께라면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현재보다 더 나쁜 경우는 없었다.” (P.47)

 

“모든 일은 한꺼번에 터지곤 한다. 어떤 일이 더 생겨야 최악이 되는 걸까...최악을 생각해보니 지금의 상황이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P.154~155)

 

<나쁜 피>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윤영도 주저앉지 않는다. 자신이 손가락질하고 마뜩찮아 하던 가족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다는 결의이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결코 외적 환경에 종속시키지 않겠다는 주체성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것은 눈물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다.

 

“엄마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이제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P.171)

 

“집까지의 거리가 내 일생의 모든 밤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멈췄다 움직이기를 몇 번을 더 해야 끝이 날까. 끝이, 있기는 할까. 나는 남편의 허벅지를 세게 붙잡아 내 등에 바짝 붙였다.” (P.188)

 

“왕백숙집으로 출근하던 첫날 아침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P.193)

 

자극은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더 큰 자극이 아니면 유사 수준의 자극은 무심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더 강하고 더 짙은 자극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과 <나쁜 피>를 연달아 읽은 나도 김이설의 자극과 충격 요법에 쉽사리 익숙해져 버렸다.

 

의도 여부를 불문하고 김이설의 작품은 자극과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일정 부분 대중적 관심은 기실 그것에 대한 관음증적 기대감이라고 하겠다. 꿈꾸지만 행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은밀한 훔쳐보기. 이는 곧 한계에 봉착한다. 자극과 욕망 충족은 주기가 매우 짧다. 현명한 작가라면 이의 함정을 건너뛰어야 한다. 작가는 전작의 한계를 성(性) 요소의 도입으로 이번에 회피하는데 성공하였다. 다음의 행보는 작가 김이설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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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의 여명 -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 펭귄클래식 44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서혜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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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신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예이츠의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하지만 켈트 신화와 전설에 목마른 독자들이여, 이 책을 보지 말지어다. 이 책은 순진한 기대를 찬연히 배반한다. 예이츠는 신비하고 웅대한 켈트 신화가 아닌, 왜소하게 전락한 요정과 유령의 잔영만을 쫓고 있다.

 

켈트 신화를 돌아본다. 피르볼그 족을 밀어내고 아일랜드를 차지한 투아하 데 다난 족은 포모르 족의 도전마저 물리쳐 확고한 지배기반을 구축한다. 여기까지가 신들의 전쟁이다. 알지 못한 시간이 흐른 후 인간인 밀레시안 족이 아일랜드에 들어오고 인간과 신의 대결에서 신은 패배하고 아일랜드와 지상을 인간에게 넘겨주고 자신들은 지하의 세상으로 물러난다. 이후 신족은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서서히 신성을 상실하고 왜소화되어 드디어 후대에는 요정으로 바뀌게 된다.

 

이 작품에서 예이츠가 기록한 켈트의 민담은 대부분 요정의 흔적을 다룬다. 일부는 유령과 연관되는데, 기실 이 책에서 요정과 유령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요정의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쁠 것이며, 하물며 위대한 선조들이 이를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부언하자면 표제와는 달리 예이츠가 자신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요정과 유령 등에 얽힌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채록하였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19세기 후반의 아일랜드 시골에 기독교의 길고도 광범한 세례에도 불구하고 오랜 이교도적 정신세계가 소실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럽과 유럽인이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기독교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일랜드의 시골은 점차 소멸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켈트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예이츠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이츠의 시에 드리워진 깊은 신비주의는 켈트적 특성과 맥을 같이하는 게 아닐까. 더욱이 예이츠는 자연의 신비를 상실해가는 근대 문명의 도시적 기계적 측면에 거부감을 가지고 이의 대안으로 켈트를 추구한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순진함도 지혜도 없는 우리만이 그들을 거부해 왔을 뿐, 모든 시대의 순진한 사람들과 고대의 현자들은 그들을 본 적이 있고, 심지어 그들과 대화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신성한 종족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순진하고 열정적인 본성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죽어서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P.87)

 

이것이 예이츠의 사고관이며, 작품세계의 기본정신일 것이다. 또한 아래는 순수한 옛적에 대한 향수와 동경의 표출을 통한 근대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한계를 모르는 증오와 순수한 사랑을 알았고, ‘예’와 ‘아니요’로 자신들을 지치게 하거나 ‘아마’와 ‘어쩌면’으로 된 변명의 그물로 자신들의 발을 얽매지 않았기 때문이다.” (P.105)

 

예이츠가 켈트 전승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민속예술은 실로 최고의 생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사소한 것, 단순히 재주를 피운 것이나 예쁜 것을 저속하고 불성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확연히 거부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속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여러 세대의 생각을 모으기 때문에 모든 위대한 예술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P.177)

 

결론적으로 켈트의 신화와 전설 면에서는 기대에 부합하지 않지만, 예이츠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이 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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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피어스의 꿈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465
윌리엄 랭글런드 지음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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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 고전선집은 다른 출판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국내 초역본에 큰 미덕을 갖는다. 지만지가 아니었다면 비록 발췌일망정 이 작품의 번역본을 읽어볼 기회는 언감생심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낯선 작품이니만치 인용구로써 소개하는 게 나을 듯하다.

“윌리엄 랭글런드의 <농부 피어스의 꿈>은 중세 영문학의 걸작으로 동시대 작가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14세기 영국 평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고, 종교적·사회적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작품해설에서)

“<캔터베리 이야기>를 제외하고 중고 영어로 씌어진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14세기 후반에 창작된 <농부 피어즈의 환상>이다. 작자는 하급의 성직자 랭랜드라고 하나 분명하지는 않다. 내용은 중세 문학 특유의 우의적인 꿈 이야기로서 참된 믿음의 길을 설명한 두운의 장시이다.” (<세계문학사작은사전>(김희보편저/가람기획))

 

발췌 번역의 한계(7247줄을 1000줄로 줄였다고 한다!) 상, 원작의 다채로움과 깊은 함의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작품의 기본적 특징과 의미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표현상의 수법을 대강이나마 조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종교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명명은 작가가 염두에 둔 것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우선 주인공은 윌(Will)이다. 그밖에 진리, 성교회, 양심, 인내, 참회, 평화, 자비, 이성, 은총, 믿음, 자연 등은 물론 허위, 거짓, 아첨, 기만, 탐욕, 분노, 불안, 불친절, 질투 등 인간과 사회 내 존재하는 인성의 모든 속성을 전부 의인화시키고 있다.

 

작품의 전개는 윌이 꾸는 꿈의 형태로 전개된다. 양의 동과 서를 막론하고 현실을 비판하거나 초월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꿈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여기에도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윌은 꿈속에서 작중 의인화된 인물들이 참된 진리를 구하고 올바른 교인의 삶을 찾기 위하여 방황하고 순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윌이 꿈속에서 마주치고 겪는 인물들은 왕후장상이나 고귀한 기사 등의 상위계층이 아니다. 이 점이 당대의 일반적 작품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농부 피어스가 있다. 그의 존재는 이채롭다. 그는 순례자이면서 방화하는 무리들을 이끄는 진리의 사도이기도 하다. 정의와 진리가 흔들릴 때마다 인물들은 농부 피어스를 언급하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그는 베드로인 그리스도(P.97)이며, 십자가의 그리스도이며 기독교의 정복자(P.120)이다. 작중에서 농부 피어스는 기독교 이념의 완벽한 구현 모델로 그려진다.

 

꿈은 이중적 의미다. 윌은 실제로 꿈을 꾼다. 농부 피어스는 진리의 세상을 꿈꾼다. 윌이 농부 피어스처럼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두웰(Dowell), 두베터(Dobetter), 두베스트(Dobest)가 그것인데, 이는 배우고, 가르치고, 적을 사랑하는 자세를 지칭한다.

 

피어스가 농부로 불리는 연유는 일곱 번째 꿈에서 나온다. 은총은 피어스에게 인간의 영혼에 뿌릴 씨앗을 나눠주고 경작하도록 하며, 네 마리의 황소(누가, 마가, 마태, 요한)와 수소(아우구스티누스, 암브로스, 그레고리우스, 히에로니무스)를 주고 두 개의 써레(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준다. 은총이 나눠준 씨앗은 기본 덕목으로서 각각 신중함의 정신, 중용의 정신, 강인함의 정신, 정의의 정신이다. 피어스는 곡식을 저장할 집, 통합 또는 성교회를 짓는다.

 

마지막에 통합 또는 성교회는 적그리스도와 나쁜 속성들에게 무너지고 만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데, 인간이란 존재 자체의 불완전성과, 올바른 속성들 간의 긴밀한 협심과 겸손이 지속되지 못할 경우 진정한 통합의 불가능성을 암시한다. 적그리스도의 기수가 자만심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작가는 참다운 종교의 덕목과 자세를 제시하고 찾으라고 권고하는 한편, 당세의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계급에 비판적이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만 세속적으로 향유하려고 애쓸 뿐 예수의 올바른 가르침을 행하고 가르치는데 소홀하다.

 

한편 이 작품은 세속적인 의의도 갖는 것으로 평가받는데, 사실 발췌 번역본으로는 명확히 인식하기 어렵다. 단절과 생략이 과도한 탓에 전체적 작품 구도를 이해하는 것조차도 어려울 지경이다. 하루바삐 완역본이 나와야 작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전망이 가능할 것이다.

 

* 이 책은 원작의 첫 번째 꿈에서 프롤로그와 1, 2장, 두 번째 꿈에서 5장, 네 번째 꿈에서 13, 14장, 다섯 번째 꿈에서 15장, 여섯 번째 꿈의 18장, 일곱 번째 꿈의 19장, 여덟 번째 꿈의 20장을 번역하였다고 옮긴이는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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