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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랭과 아서 ㅣ 지만지 고전선집 116
로버트 웨이스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켈트 신화의 유산인 아서 왕의 전설은 이후 서양 예술과 정신에 있어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본격적으로 켈트 신화가 서양 문학에 남긴 자취를 몇 편의 작품을 통해 실제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아서 왕의 전설은 기실 원탁의 기사들로 더 유명하여 자칫하면 아서 왕의 면모를 놓치기 쉽다. 비록 신에서 영웅으로 지위가 격하되었지만 여전히 신화화된 영웅으로 서양 대중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어인 연유인지 궁금하다.
역자는 중세 프랑스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진 듯 하다.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번역에 있어서는 단연 독보적이다. 요즘 읽고 있는 셀린느 작품의 번역자이기도 하니 우연의 일치로는 기묘하다. 어쨌든 역자는 12~13세기의 로베르 웨이스의 <브루트 이야기>와, 로베르 드 보롱의 <선지자 메를랭>에서 발췌하였는데, 전체 12장에서 제1장(마귀들의 비상회의), 제2장(메를랭의 탄생), 제5장(아서 왕의 등극)은 보롱의 것이고, 나머지는 웨이스의 작품에서 취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역자가 메를랭(흔히 멀린으로 알려져 있다)과 아서의 두 인물을 표제로 편역을 시도한 것은 아서 왕과 관련된 문학과 일화에서 차지하는 두 사람의 중요성 및 그들의 삶을 알아야 이후 추종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굳이 두 인물을 한자리에 묶어둘 절대적 필요는 없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먼저 메를랭의 탄생은 매우 신화적이다. 예수의 존재로 인하여 세력이 크게 위축된 마귀들이 비상 회의를 열고 예수의 탄생과 유사한 방식을 차용하여 마귀의 자식을 세상에 낳으려고 모의를 한다. 그리고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후에 결국 순결한 처녀를 범하여 마귀 자식을 잉태시키는데 성공한다.
마귀들의 성공이 임박하였지만, 그 순결한 처녀는 결코 자신을 방기하지 않고 온갖 고난에도 진실한 신앙을 굳건히 지켜 마침내 신의 은총을 받게 된다. 그래서 뱃속의 아기는 마귀에게서 과거를 보는 능력을, 신에게서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각각 부여받고 유아시절부터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한편, 아서 왕의 삶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아서 왕은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피와 땀이 흐르는 역사적 인물로 표현된다. 그의 탄생조차도! 그는 신에게 선택된 인물로 칼뽑기(엑스깔리뷔르, 흔히 엑스칼리버로 유명하다)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마침내 왕에 등극한다.
작중에서 아서 왕의 위업과 광휘는 눈부시다. 브리튼 섬 내에 세력을 넓히던 색슨족을 몰아내고 스코틀랜드를 수복하였으며, 아일랜드와 오늘날의 스웨덴의 일부인 고틀랜드마저 점령하였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노르망디와 브르타뉴를 기반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 프랑스 지역마저 세력에 포함시켜 전성기를 구가한다. 결국 이것이 로마제국과의 갈등을 유발시켜 동남 프랑스에서 일대 결전을 벌여 로마군을 패퇴시키고 로마황제마저 전사시킨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로마제국의 정복을 위해 로마로 진군하는 것뿐.
아서 왕의 정복전쟁은 후대 켈트인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그의 불사의 삶은 켈트인들의 한을 내포한다. 아서 왕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는 서기 6세기 초에서 중반이다. 이미 유럽의 중심에서 쫓겨난 켈트인들은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프랑스 해안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와중에도 색슨족들의 끊임없는 침범으로 브리튼 섬마저 풍전등화의 신세에 놓였다. 사실 아서 왕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웨일즈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전설이 아서 왕에게 엄청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켈트인들이 고대의 영광을 수복할 꿈과 희망을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몰락시킨 색슨족을 응징하고, 유럽을 손아귀에 쥔 강국 로마제국을 정복한다는 원대한 꿈! 그것은 몰락한 명문가의 후예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기위안을 삼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것이 작품 전체에 비장한 복수의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우리들과 선조들을 위하여 복수도 할 겸, 우리가 저들에게로 가서 강탈할 차례입니다!” (P.162)
아서 왕의 혁혁한 무훈은 그가 단지 영웅이기에 용이하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와 기사들, 군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흔한 영웅담처럼 손쉬운 승전, 일방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이것이 아서 왕의 위업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음은 특기할 만하다. 그만큼 웨이스의 필치는 매우 사실적이며 별다른 과장이 없다. 무수한 병사의 죽음은 물론, 뛰어난 전사이자 충실한 왕의 기사들이 전장에서 잇달아 목숨을 빼앗겼다. 전장에서의 순간의 기세에 따라 병사들이 두려운 마음을 품기도 하였음을 놓치지 않는다(P.199). 적장을 죽이는 만큼이나 아군의 장수도 잃을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이므로 아직은 원탁의 기사가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고 있지않다. 그저 아서 왕이 뛰어난 기사들을 위해 원탁의 기사 제도를 마련하였다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후세 한강의 검룡소 구실을 할 것이다.
한편 역자도 수차 언급하였듯이 웨이스의 작가적 시선은 독특한 면모가 있다.
통상 영웅 이야기는 영웅과 그들 둘러싼 왕과 귀족, 기사들의 이야기이며, 대중과 백성은 일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근대 이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웨이스는 그렇지 않다. 중세의 초엽에 그는 작품 속에 이미 근대성의 씨앗을 감추고 있다.
아서 왕의 대관식을 준비하는 하인들과 감독관들, 마부들, 시종들의 정신없이 바쁜 풍경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며(P.140), 축제를 즐기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유랑 악사들과 광대들, 특히 도박을 하는 노름꾼들까지 계급의 층하에 구분을 두지 않고 고루 등장시킨다(P.148). 항해를 준비하는 선원들의 민첩한 동작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묘사는 말할 것도 없다(P.168~169). 게다가 로마군과의 격전에서는 백작도 왕도 아닌 평민 출신의 전사 세 명의 담대한 용기를 예찬하고 있다(P.216).
맥아더의 유명한 고별사는 아서 왕에게 더 적합하다. 공식적으로 아서 왕은 죽지 않았다. 그는 반역자 모르드레와의 내전에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기위해 아발론 섬(켈트신화에서 이는 하계(下界)를 가리킨다)으로 갔다. 그곳에서 치료를 마친 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켈트인들은 여전히 믿고 있다. 그가 돌아오는 날 켈트인은 다시 세계사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우뚝 설 것임을 고대하고 있다. 따라서 켈트인에게 그는 단순히 잊혀진 과거의 영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살아있는 구세주이다.
이것이 아서 왕에 대한 켈트인들의 정서일 것이며, 아서 왕 자체보다는 원탁의 기사와 성배에 열광하는 게르만족들과의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