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지 - 몽골제국이 남긴 '최초의 세계사' 라시드 앗 딘의 집사 1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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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족보를 보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으로 촉발된 이슬람 문명권에 관한 호기심이 <부족지>를 집어들게 되었다. <집사> 시리즈 중의 첫 번역본이다. 잘은 모르나 ‘몽골인이 쓴 최초의 세계사’ 등등 미디어의 평가가 굉장한 의의가 있는 저서임을 일깨운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펼쳐 들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집사> 전체 가운데 일종의 도입부분에 해당한다. 구성은 기나긴 서문과 4개로 대분류한 중앙아시아 각 유목민족들의 역사적 배경 및 주요 인물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몽골 제국사는 다음 번역본에나 등장할 것이다. 서문은 너무나 길고 지루해서 책을 덮게 만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무척 고생했다고만 밝히겠다. 4개 대종족에서 등장하는 무수한 종족 중 한번이라도 들어본 것은 서너개에 불과할 정도로 종족과 등장인물은 낯설어서,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등 판타지소설이나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용어처럼 느껴졌다. 그냥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족보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종족은 누구의 후손인데 시조가 누구이고 자식 몇 명을 두었는데, 첫째는 어떻게 자손이 퍼졌고 둘째는 누구를 낳아서 어찌어찌 되었다. 그중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누가 있는데, 일화로는 이런게 있다. 대개 이런 식이다. 그래서 아, 그냥 이렀군 하고 넘어가야지, 이게 누구의 자손이였더라 하고 괜한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다간 머리에 쥐가 나기 딱 좋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볼일없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대중적인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부족지>의 진정한 평가는 <집사>의 후속편이 발간되어 전체로서 조망이 가능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서적들이 더욱 많이 출간되어 사고의 이해와 폭을 넓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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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3.5.22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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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거짓이 빚어낸 숨기고 싶어했던 미국 역사]

표제에 ‘운디드니’라는 용어가 있어서, 인디언의 고유명사인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Wounded Knee’라는 사실을 알고 당혹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인디어식 용어를 그대로 썼더라면 내용과 표제가 더욱 일치하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책을 펼쳐들고 마지막 장에서 덮기까지 내내 분노와 슬픔과 어처구니없음이 복합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이 서양에서는 신세기의 전환점이 되었지만,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특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온 일단의 피난민들이 대륙에 정착한 이후 이주민들은 서쪽으로 무한한 팽창을 거듭하였는데, 이는 곧 소위 인디언들에게는 자신의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추방당함을 의미한다.

20대 후반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어릴 적에 서부영화를 숱하게 보고 자랐다. 이들 영화의 주요 소재는 평화로운 백인 이주민들을 거칠고 무지하며 야만스러운 인디언들이 공격하지만, 그들을 영웅적으로 격퇴한다는 것이었다. 즉 백인은 선하고 인디언은 악하다라는 기본 도식이 전제로 되어 있었고,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게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도식이 완전히 날조되었음을 이 책은 여실히 드러내준다. 만약 우리들이 사는 지역을, 우리의 땅을 타인들이 강제로 빼앗으려고 할 때, 아무도 가만히 양도해 주지는 않는다. 당연히 저항이 따르고, 종국적으로는 힘과 힘의 대결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싸움이 어린애와 어른의 싸움이라면, 활과 총 또는 화살과 대포의 싸움이라면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다. 이렇게 인디어들은 하나둘 종족이 스러져갔다. 교묘한 사기와 위협과 무력 앞에서. 그리고 오늘날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이 되어 세계를 휘두르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 대하여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미국 백인들에게 인디언은 사람이 아니었다. ‘선곰, 사람이 되다’는 장이 있다. 제목만 보고서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선곰’이라는 인디언이 사람인지 아닌지 재판을 거쳐 최초로 사람이라는 판결을 받았다는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지금부터 약 120년 정도의 사건이다. 그나마 이것도 예외적인 판결이었고 그후 대법원에서는 여전히 사람이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용에 대해서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일일이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의 독자는 옛날에 타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가볍게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불과 수십년전(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진행중이다)에도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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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3.5.30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미국 민중저항사 1 - 일월서각 61
하워드 진 지음, 조선혜 옮김 / 일월서각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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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미국의 역사인가!]

최근들어 숨겨진 역사에 관련된 서적을 연속해서 읽게 된다. 애초에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자연스런 흐름을 좇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도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가 계기가 되어 접하게 되었다. 나도 포함된 30대 이상의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도록 교육받았다. 그것은 비단 공교육 뿐만 아니라 신문, 방송 등 온갖 매체를 통해서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매체가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시절의 위인전기집이라고 한다. 여러 위인들의 삶과 업적을 접하면서 나도 그들을 본받아야지 하는 결의를 어린 마음에도 품고는 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J.F.케네디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노예해방의 선언자이자 진정한 민주주의자, 그리고 정체된 미국인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여준 젊은 지도자. 어느 한 구절을 펼쳐도 거기에는 찬란한 빛이 뿜어나왔다. 그런데 하워드 진은 그런 아름다운 기억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대지주로서 민중에 의한 지배를 막으려고 노력했던 워싱턴,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노예해방을 선언하였지만 상징적 시행에 그쳤고 인디언에 대한 탄압은 그치지 않았던 링컨, 소위 군산복합체의 틀 내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쿠바와 베트남 침공에 앞장섰던 케네디.

역사란 승자와 지배자의 것이다. 미국 역사의 지배자는 대지주에서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부유한 앵글로색슨계 백인이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인디언은 절멸되어야 했고, 흑인은 노예로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 했으며, 가난한 이주민 백인들은 값싼 노동자가 되어 나날의 생계에 급급하게 되었다. 소수 부유층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었으며, 이를 위하여 세계대전 참전과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결성이 이루어져서는 안되었다. 가만히 오늘날의 미국을 생각해 본다. 매우 높은 부의 집중화 현상, 노동조합이 무력화되고 극히 탄력적인 노동시장이 존재하는 국가. 이것이 다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이왕에 알고 있는 미국의 역사는 진정 허상에 불과했을까,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에만 예외적이라고 박박 우기고 싶다.

PS. 번역된 지 오래되었고 편집상태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원저의 개정본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같은 훌륭한 책을 하루빨리 충실하게 번역된 신간으로 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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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3.7.2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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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

미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국가에 대한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한 자부심과 충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선언서와 헌법, 그리고 투철한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누누이 드러낸다. 미국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국가라고 믿는게 아닐까.

그런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통렬한 일침을 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하워드 진과 노엄 촘스키다. 하워드는 『미국민중사』의 저자인 역사학자답게 미국제국의 감쳐진 일면, 권력자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은밀한 부위를 낱낱이 까발린다. 솔직히 이렇게 하고도 무사할까 싶을 정도다.

그의 분석은 전방위적이다. 외교와 전쟁, 사법 및 경제제도, 언론과 정치체제, 이데올로기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된다. 미국을 지배하는 세력은 백인계 남성 부유층들이다. 그들이 미국을 건국하였고 오늘날까지 자신의 이해에 맞게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방벽은 철옹성이고 민주주의는 철갑옷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소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얼마나 주모면밀하게 초기 미국의 정치사회시스템을 설계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들은 헌법을 설계하면서 자유,생명,행복의 보장 대신에 자유,생명,재산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참으로 교묘하면서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 조치였다. 이 단어 하나로써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을 영구히 고착화시키는게 가능하였다. 그리고 재산으로서의 노예를 자연스럽게 인정하여 노예제도를 합리화시켰다.

다수의 힘을 중화시키기 위하여 고안한 제도가 대의제이고, 안정된 사회를 뒤흔들려는 불순세력을 징벌하기 위하여 사법제도가 편성되었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정부의 이익에 위배되면 당연히 처벌감이다. 언론매체의 소유주가 부유한 기득권층인데, 어디 감히 체제비판이 허용되겠는가.

다시 한번 상기한다. 링컨이 선언한 것은 노예해방이었지, 인종평등은 아니었다. 법적으로 노예가 아니었을뿐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노예상태를 강요받은 결과, 여전히 다수의 흑인들은 빈민굴을 전전하고 가난과 무지를 세습하고 있다. 하물며 인디언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조차 없다.

한마디로 이 책은 미국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서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책이 자유로이 출판되고 마음껏 정부와 권력층을 비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여유. 오히려 이것이 미국의 진정한 힘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한가닥 언로를 열어놓음으로써 체제가 폭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는 섬뜩한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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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3.7.28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
 
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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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으면서도 낯설은 우리 이웃들,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다]

TV와 같은 대중매체에서 특정 책을 소개하는 것은 너무나 막강한 파급효과를 지닌다. MBC의 느낌표가 그러한 사례인데, 다행하게도 나름대로는 양서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결국은 책 선정과정에서 특정 가치관이 반영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리라.

내가 느낌표 추천도서를 집어든 경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아홉살 인생」과 「연탄길」에 뒤이어. 이중에서 후자는 첫 10여 장을 읽어본 후 조용히 덮고 말았다. 누구나 반항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한다. 즉 부모와 교사가 청소년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기어이 더욱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따뜻하며 교훈적이며 성찰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양서이므로 읽어야 한다는 압박의 측면이 강하다. 한편 한편 떼어놓고 보면 아름다운 일화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부담감이 강해진다. 나만의 삐딱한 심리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야생초 편지」는 읽기에 수월하다. 애초에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옥중에서의 느낌과 야생초 관찰을 편지형식에 기록한 것이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소곤소곤,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를 엿듣는 느낌이랄까.

새삼 저자의 파란만장한 이력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시절 무수한 대학생들이, 지식인들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이었다. 다만 저자가 옥중에서 익숙하지만 낯설었던 새로움을 깨닫고 그것을 세상과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다.

나는 비록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도시에서 지낸 탓에 나무, 풀, 꽃 등에 대하여 무지하기 짝이 없다. 사실 여기서 소개된 이름 중에서 이름을 접해본 것도 몇 개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모양을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며느리밑씻개, 닭의덩굴, 땅빈대, 중대가리풀 등 명칭 자체가 우리 서민들의 해학과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야생초라고 해서 어려울 것 없다. 그냥 잡초 내지 들풀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마당 한구석에 자라는 낯모를 풀들, 개천가에 자라는 무성한 풀들. 우리에겐 친숙한 존재다. 일부러 심혈을 기울여 갖은 노력을 들여야 자라는 관상용의 여리여리한 종류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

이런 멋진 책은 두루두루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TV의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나도 저자처럼 들풀을 관찰하고 맛을 보며 차를 마시고 자연과 우주에 충만한 기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 잔잔히 퍼져나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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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3.8.1에 쓴 글을 마이페이퍼에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