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마케팅과 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책]

이 책만큼 저자의 저작의도와 출판사의 출판의도가 명백히 상이한 경우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멋진 사회심리학 책이 마케팅 내지 처세술 책으로 둔갑해 버렸다.

머리말과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소위 설득전문가들이 즐겨 써먹는 자동적 응락을 유도하는 6가지 법칙을 상술하고 독자가 현명하게 대처하여 이들에게 넘어가지 말도록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 책의 부제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이라고 하여 타인을 설득하기에 유용한 기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위 6가지의 법칙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면, 우리 모두가 익히 이해하고 있는 것들로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막연히 아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인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새삼 책의 내용을 구구하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책 자체는 쉽고 명쾌한 핵심내용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와 더불어 잘 조화되어, 과연 베스트셀러가 허명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세일즈 업종에서 적절하게 응용하면 용이하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지만, 나같은 평범한 고객의 입장에서라면 절대로 설득전문가(특히 악의적인)들이 나를 갖고 놀도록 허용하고 싶은 마음은 꿈에라도 전혀 없다.

따라서 나는 저자의 의도대로 설득전문가에게서 자기방어를 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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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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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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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개소문이 파헤치는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진실]

연개소문 하면 국사 시간을 통하여 익히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리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는 구국의 영웅이었는가 아니면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독재자에 불과한가. 저자는 그래서 연개소문전을 다시 쓸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존의 연개소문을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나 뜬구름 잡는 말..말들이 무성하다.

제목만 보고는 전기물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전기물이 아니다. 오히려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한 고-당전쟁사 내지 고구려 멸망사에 가깝다. 사실 연개소문에 관한 사료가 매우 적은 탓에 전기를 쓴다면 차라리 소설이라고 해야 할 정도니까.

여기서 기존에는 생각지 못한 몇가지 사실 내지 주장을 접할 수 있다. 먼저, 연개소문은 평양 천도 이후 등장하는 신흥 세력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영류왕 살해사건을 대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외세, 즉 당에 굴복하려는 집권층에 대한 자주파의 강력한 도전.

또한, 흔히 고-당 전쟁은 당태종의 원정과 고구려 멸망시의 전쟁으로 2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저자는 사료 속에 은폐된 2차 전쟁을 온전히 복구하고 있다. 당태종은 1차 친정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2차 전쟁을 일으켰으나 또다시 쓰라린 실패를 겪고 정복의 야욕을 거두게 된다.

만약에 연개소문의 자식간에 권력다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당고종이 감히 고구려 정벌을 꿈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시 집권기반이 미약한 쿠데타 독재자로서는 능력이 검증되지 못한 아들들에게 권력을 배분하였던 것이 치명타였던 것이다.

새삼 연개소문의 공과를 탓해서는 무엇하겠는가마는,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멸망을 보건대, 국가의 멸망에는 국론의 분열과 권력층의 내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까이 조선 왕조의 최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당과 신라의 관계를 잠깐 생각해보면, 신라는 당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당에게 이용을 당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능력에 미치지 못하면서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고 하겠다. 다행히 당은 고구려 멸망에 만족하였다. 더 이상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이(四夷)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신라의 삼국통일은 미약한 당의 한반도 지배야욕 덕택이었다. 외세의존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고구려를 그리워한다. 고구려 이후 만주는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아울러 웅혼한 대륙적 기상도 사라졌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 보도를 바라보면서 고구려를 빼앗긴다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빈약할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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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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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진실 - 패권주의 - 위대한 해방자의 정치적 초상
토머스 J. 딜로렌조 지음, 남경태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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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대한 민주주의자의 씁쓸한 가면 속 진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의 사도, 링컨 미국 대통령. 어린 시절, 위인전기집에서 링컨편을 읽으면서 무수한 감동과 환희로 영혼을 채웠던 그 인물. 비인간적인 노예해방을 극적으로 달성시킨 고매한 인품의 영웅.

이제 이런 이미지는 한권의 책에 의해서 풍선과도 같이 터져 버렸다. 남은 것은 너덜너덜한 풍선 잔해뿐... 우리가 알던 링컨은 허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왜 그럴까, 무슨 근거로.

첫째, 링컨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독재자였다. 그의 집권기간내에 극심한 언론탄압이 줄을 이었고, 인신보호영장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심지어 반대파 정치지도자를 불법감금한 후 해외로 추방하여 버렸다!

둘째, 그는 부패한 지도자였다. 개인적으로 청빈했을지는 모르나 그의 집권층은 각종 이권과 특혜로 막해한 치부를 하였다.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셋째, 링컨의 노예해방은 거창한 사기였다. 그는 결코 흑인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오죽하면 모든 흑인들을 외국에 이주시키려는 실패한 작전을 꾸몄을까. 심정적으로는 안타깝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노회한 정치인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노예해방선언은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에 불과하다. 선언의 효과는 미국 전체가 아니라, 전쟁중인 남부에만 적용되었다. 그가 진정한 노예해방을 원했다면, 왜 하필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단 말인가.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는 평화롭게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는데..

넷째,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전쟁이 아니라, 중상주의 대 자유주의간 한판 대결이었다. 링컨은 물론 중상주의 신봉자였다. 여기서 잠깐 소위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자유주의 이념을 수호하였다. 북부의 공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호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재화를 남부에서 수탈하니 남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미국 연방을 탈퇴하겠다고 하니, 탈퇴는 곧 전쟁으로 이어진다. 왜 탈퇴가 안되는가, 미국헌법은 분명 탈퇴권을 인정하는데, 그건 링컨의 자존심이 허락 안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싶은 그의 야심. 그래서 그는 남부의 도발을 유도하고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전쟁후 군사정부의 처절한 수탈이 이어진다.

링컨의 승리 이후, 연방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중앙을 통제하였고, 제국은 외부로 눈을 돌려 세계의 열강에 동참하여 그의 허기심을 영토침탈로 채웠다.

오늘날 자유로운 합중국은 사라지고 괴물같은 제국만이 남아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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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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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중단편전집 4 (양장본)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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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발견하게 되는 이문열 소설의 미학]

예전에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내 주요 문학작품을 단막극으로 제작하여 예술성 높게 보여주었는데, 그때 ‘금시조’를 처음 접하고 꽤나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와 이문열의 만남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후 난 언제나 이문열의 애독자였다.

‘사람의 아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젊은날의 초상’ 등등. 이문열은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초기에 비해서 후기로 갈수록 장편에서 그의 작품은 향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학적 영감을 모아서 다듬고 오래 묵힌 다음에 내놓지 못하고, 너무나 유명해진 탓인지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생산품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금시조’ 탓인지 난 이문열의 작가적 진면목은 여전히 그의 중단편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의 대표작이 ‘금시조’라면, 후기의 분출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이 처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통해 나왔을 때의 인상을 잊지 못한다. 비꼬는 듯하면서 한편으론 엄석대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그 가라앉은 열광. 창작력이 감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일거에 씻어낸 쾌거였다.

하지만 그것이 촛불이 사위어지기 전 마지막 타오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집에 실린 6편 중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제외하고는 낯이 설다. ‘25년 전쟁사’와 ‘장군과 박사’는 희화적 가상역사물이라고 하겠다. 그 현란한 이야기 전개는 새삼 거장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전자가 치욕적 과거사를 가상적으로나마 뒤집어 재구성하여 당당한 역사관을 드러냈다면, 후자는 광복 이후 남북의 정치체제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보여준다.

‘타오르는 추억’은 6.25를 배경으로 상처받은 영혼의 방황을 그리고 있으며, ‘과객’을 통하여는 사라져 버린 과객(過客) 문화에 대한 엷은 향수를 되새기고 있다. 하지만 '두 겹의 노래’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신화적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면서 그러나 신화 속 남신과 여신은 삭막한 현대 도시 속에서 오히려 비정함을 자아낼 뿐이다.

그의 중단편에서는 상업주의에 물든 후기의 색채가 다행히도 아직은 드리워지지 않고 있다. 새삼 이문열 소설의 미학을 재발견하게 되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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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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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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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슈바이처, 전쟁과 인간애]

근자에 들어 우연치 않게 전기물을 연속으로 접한다. 이제 머리가 굵은 탓인지 아니면 세상사에 물들었던지 전기물을 대하는 내 자세도 위인전기를 대하는 어릴적과는 확연히 다름을 새삼 느낀다. 전기물에서 인간적인 내음을 원한다고 하면 지나친 바램일까.

노먼 베쑨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그저 무슨 의사라고 하던데.. 의사라고 하니, 저절로 슈바이처가 떠오른다. 노먼 베쑨의 연표를 살펴 보니, 슈바이처와는 동시대 사람이다, 아니 그가 먼저 사망했으니 오히려 슈바이처보다 빠르다고 하겠다. 그런데 왜 슈바이처는 노벨상을 타고 유명해졌고 위인전기집에도 실려 있는데, 노먼 베쑨은 그러하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의문을 일거에 덮어버리는 사실은 그가 중국공산당을 위하여 의료행위를 하였다는데 있다. 소위 ‘중공’의 영웅이 어찌 냉혹한 냉전의 시대, 극렬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대한민국에 그의 이름이 전해진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했겠는가.

50년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 안온하고 행복하지는 못하였던 듯싶다.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못하였고,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모습은 개인적 간난을 극복하고 스페인내전과 중일전쟁에서의 인도적 의료행위를 통하여 인간애를 널리 확산시킨데 있다. 그는 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파시즘과 군국주의를 극도로 혐오하였지만, 그가 프랑코군과 일본군 병사를 개인적으로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전장터에서 거꾸러지는 모든 병사들이 모든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닌 환자였다.

캐나다와 중국에서 비록 그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많은 이들이 그를 기리고 있다고 해서 그가 위대한 것은 아니다. 그는 불같은 성미로 전장터에서 일각이라도 치료를 지체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환자를 앞에 두고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수술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목숨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바로 타고난 그의 숙명인 것을..

인간사는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전쟁영웅을 탄생시킨다. 우리들은 그들을 우러르고 신성한 존재로 떠받든다. 역사 속에서 전쟁영웅을 제외하면 얼마만한 영웅들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렇듯이 우리들은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전쟁과 영웅의 출현을 갈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파괴와 죽음의 본능이야말로 인간의 식욕과 성욕을 잇는 제3의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분노와 광기의 한복판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가 자문할 때, 비로소 슈바이처나 노먼 베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만시지탄에 빠져든다. 평상시에는 외면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인가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가 상징하는 마지막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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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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