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마법의 서 - 티베트의 밀교와 주술 세계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지음, 김은주 옮김 / 르네상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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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의 저자가 티벳의 문화와 관습, 종교생활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1920년대나 지금이나 티벳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높은 고원,산악지대. 그리고 달라이 라마. 여전히 티벳은 우리에게 멀리 있다. 하물며 그 당시 서구인에게는 티벳은 완전히 미지의 별세계였으리라. 온갖 신비스럽고 괴기한 주술과 마법이 횡행하는 야만인이 사는 땅, 딱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저자인 다비드 넬은 서구인으로는 최초로 티벳의 중심지인 라싸로 방문한 학자로서, 티벳어와 티벳문화, 종교에 정통하였다. 이런 그녀는 티벳과 티벳을 (일반적 서구인과는 달리) 낮추어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상대론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티벳불교는 너무나도 속되고 무속의 오염이 강하였던 듯.

내용만 보면 19세기 인류학자들이 원시사회에 들어가서 그들을 관찰하는 부족지 마냥 느껴져 도저히 현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티벳에서는 지극한 신성과 지극한 타락이 무리없이 병행할 수 있었는지. 우리나라의 불교와 토속신앙의 결합은 상대도 안 될 듯 싶다. 요즘도 티벳인들이 악마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시체를 야외에 방치하여 들짐승들이 먹도로 두는지 궁금하다. 80여년 동안 사회주의 지배체제하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한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저자가 일본에서 중국을 지나는 길에 당시 식민치하의 우리나라를 경유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일전에 TV 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읊조리던 "옴 마니 팟메 홈"이 티벳 불교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염불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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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6.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미다스 휴먼북스 3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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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서 인간으로 거듭난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는 三重苦의 역경을 극복하고 당당히 위인전기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헬렌 켈러. 우물가에서 손바닥에 쏟아지는 물살의 전율에서 불현듯 깨달음을 얻는 장면. 애석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헬렌의 모습은 이게 전부다.

헬렌이 특별한 예술적 과학적 업적을 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위대한 인문학자나 정치가도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진정한 위대성은 정상인만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장애인은 비인간적 취급을 받았던 사회풍조에 파문을 던지며 각성의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있다고 본다.

겉에서 보는 헬렌은 언제나 천사였다. 그리고 어렸을때부터 헬렌은 신화가 되었고 오늘날 전설로 남아있다.

그런데 과연 헬렌이 꿈꾸었던 것은 전설이었을까? 그녀가 장애없는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삶의 역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헬렌은 인간이기를 진실로 소망했던게 아닐까.

헬렌은 결코 혼자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언제나 설리번 선생님이 그녀의 그림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어서는 폴리 톰슨이라는 여성이. 헬렌을 돌보는 그들의 인생이 행복했을까. 그녀들 덕택에 헬렌은 역사에 길이 남겨지는 위인이 되었고, 그녀들 자신도 더불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헬렌에 대한 집착으로 그들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헬렌 또한 철저한 감시와 강요속에 독신을 고수했다. 그들 모두는 후대에 이름을 남겼지만,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인생에는 실패한 셈이다.

오늘날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뿌리깊다. 아직도 장애인은 집밖으로 나서기가 힘들 정도다. 헬렌 켈러의 노력만으로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었던 듯.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특히나 후천적 장애의 발생가능성이 높은 시대다. 장애인은 그저 약간 불편을 겪는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언제나 깨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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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7.2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빅토리 - 불패의 영웅들로부터 배우는 12가지 성공법칙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이성엽.김동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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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동전의 양면]

이미 손에서 놓은지 달포가 지난 듯 싶다. 강렬한 열망에 의하여 펼쳐든 것도 아닌데다 아주 호기심을 끌만한 내용도 아니고, 가슴깊이 여운을 남기는 뒷맛도 아닌 탓에, 방치되고 말았다.

군대조직이 경영조직론에 끼친 영향이 심대하듯이, 전쟁활동도 경영활동에 엄청난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전쟁이 생존을 담보로 한 적과의 경쟁이라면, 경영도 생존을 담보로한 상대기업과의 경쟁이다. 목적이 승리이고 생존인데서 공통점이 합치한다.

'빅토리, 승리'라는 대담한 제목에서처럼 저자는 과거의 전쟁사를 파헤쳐서 현대의 경영수행에 귀감이 될 지침 1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법칙이라는 이름을 달고.

명확한 목표설정, 핵심에 대한 집중, 정보의 중요성, 협동, 명령체계 등 일견 군대적 용어인 동시에 경영용어에서 낯선 듯한 참신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째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오히려 기존 경영학 이론과 전쟁사례가 어떻게 부합되는가를 지켜보는게 더 흥미롭다.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유형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력추천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흥미로운 동시에 서글프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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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8.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1
박재희 지음 / 문예당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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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과 현대적 변용]

사이버강의 교재겸 참고도서로 증정받았다. 하긴 나같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돈주고 사보지는 않을 것이다. 내용자체가 소위 후지다는 측면이 아니라, 차라리 원전을 보겠다는 말이다.

<손자병법>을 현대 경영활동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가 이 책의 주안점이다. 전에 읽은 <빅토리>와도 연계된다고 하겠다. '손자병법'을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설로도 윤색되어 화제작이 되었던 화려한 전력이 있는 동양의 고전이며, 동시에 서양에서도 열렬히 환호받은 군사교재이다.

1권에서는 전체 중 시계편, 작전편, 모공편, 군형편, 병세편을 다루고 있다. 손자는 결코 호전론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을 문제해결의 우선수단이 아니라 최후수단으로 간주했다는 것. 그리고 싸우지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는 점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전쟁을 준비하고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치밀하고도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경영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철저히 계산하고 준비하며, 치밀한 전략의 바탕에 조직을 편제하고, 조직원의 사기를 진작하라는 손자의 주의는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유효적절하다.

조직의 리더라면 감정에 휩싸여서 전략없이 무질서하게 조직원과 유리된채 독단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리더들이 그리함을 볼 때, 당위론의 한계가 엿보인다. 즉 따르고 안 따르고는 마음대로이다.

동양고전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대부분 처세와 경영적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게 위험스러울 뿐이다. <손자병법>의 태생상 어찌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논어><노자> 등에서 편리한 부분을 발췌하여 재구성한다면, 과연 원전을 모르는 사람들은 참으로 고전으로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될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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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8.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등대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서원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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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내 귀에 다가왔던 기억은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후 몇년이 지나서 교과서에 실린 수필에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간만에 서가를 훑어보던 중 발견한 이 책은 그 시절의 감흥을 상기시킨다. 새삼스레 책에 대해 미안한 감정마저 생긴다. 벌써 십여년 동안이나 방치했으니까.

버지니아 울프란 작가를 나는 오해했다. 그저 섬세한 필치로 신변잡기적인 소재로 독자의 낭만적 감정에 호소하는 유형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읽고난 소감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소위 의식의 흐름 기법의 명작이라는데, 줄거리도 없고 썩 재미있지도 않다.

대하소설이나 극적인 사건 전개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몇 장 넘기지 않고 곧바로 덮고 말 것이다. 등대여행을 가려다가 못 간 날로부터 십년 후에 비록 일부가 빠졌지만 등대로 간다. 이게 스토리의 전부니까.

'등대'는 현실상의 등대 자체를 가리킬 뿐더러 미묘한 암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등대 불빛이 어둔 바다를 비쳐주듯이 등대로 가고자 하는 바램과 집념은 뿔뿔이 흩이지고 파편화되어 갈등을 겪고 있는 가족간에 밝은 빛을 던져주고자 하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의의와 역할에 대해 많은 변화가 있다. 전에는 가장으로서 지고의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자식들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었고,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작품속의 램지 교수도 그러했듯이. 하지만 자식들은 경외와 동시에 완고함과 억압에 명렬한 적개심을 품는다. 더구나 아버지와 자식간에는 자연스런 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 십년이란 시간동안 램지씨 일가에서는 부인이 죽고, 장녀도 출산중에 사망하고, 장남인 앤드루도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돌아온 별장에서는 늙은 램지씨가 딸 캠, 막내아들 제임스를 억지로 끌고 등대로 향한다.

나룻배 안에서 램지씨와 딸, 아들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의 벽이 가로막혀 있다. 그리고 배가 점차 등대로 다가가면서 비로소 점차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그들간에 불화와 단절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때마침 릴리도 램지부인과 화해하고 그림을 완성한다.

가족간, 사람간 이해와 배려와 존중의 결여와 부족때문에 얼마나 많은 갈등과 오해와 충돌이 빚어지는지 모른다. 따뜻하고 진실된 이해를 통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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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4.8.1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