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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8 - 불멸의 길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불멸의 이순신'의 빛과 그림자 -
내가 이 소설을 가까이 하게 된 계기이자 한 동안 게시판에 치열한 논쟁을 유발시킨 것은 동명의 TV 드라마이다. 나처럼 기존에 이러한 소설이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던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처음에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지독하게 역사를 왜곡하려고 애쓰는구나 싶었다. 소설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초로 하므로 때로는 사실(史實)을 파고들어 비틀고 재해석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역사 자체를 곡해하면 안된다. 더구나 인쇄매체와 영상매체는 시청자 다중에게 미치는 파급효과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TV 드라마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 내가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순신이 무과에 뜻을 두고 훈련을 하는 장면부터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이순신의 언행은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배제했던 젊은 이순신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원작을 읽고 싶었다. '칼의 노래'는 이미 읽었으며, 극 전개상 후반부에나 소재로 사용될 것이다. 따라서 '불멸'을 읽을 생각으로 찾아보니, 개정판이 나왔다.
이제 오늘로써 '불멸의 이순신'을 완독하게 된다. 소설과 역사는 다르다는 점을 내내 염두에 되새기면서 책장을 넘겼다. 과연 작가가 사실을 얼마나 뒤집을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원균을 드높이기 위하여 이순신을 얼마나 깔아뭉갤까 노심초사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웃는다. 참으로 심한 과민반응이다. 작가에게 이와같은 소재의 자유가 없다면 도대체 글쓰기가 가능한 것인가. 열띤 논쟁을 벌인 사실 자체가 우습게 느껴진다.
그동안 우리는 '성웅 이순신'의 신화에 너무 짙게 물들어 있었다. 이순신은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완벽한 존재, 그것은 영웅을 뛰어넘은 성웅이었으며, 나아가 신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연유였을까. 내게 이순신은 존경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이순신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좌절하고 방황하며, 사랑으로 번뇌하고 늙고 병들어 끙끙거리는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인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문에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는 약하디 약한 존재. 그러면서도 전쟁으로 고초를 겪고 죽어가는 민초들을 구하기 위하여 밤잠을 설치고 동분서주하는 따뜻한 사람. 보다 인간답기에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나는 고백한다.
원균은 사서와는 달리 맹장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소한 겁쟁이는 아니기에 다른 신료들처럼 줄행랑을 치지 않고 천덕꾸러기 신세일지언정 끝까지 전장에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지략이 부족하여 오로지 돌격밖에 모름에도 자신을 과신했던 또하나의 평범한 인간. 그래서 더욱 괴로왔을 것이다. 원균을 재평가한다고 이순신의 위대성에 손상은 가지 않는다. 맹장 대 지장의 구도. 그러나 소설 중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는 원균의 적절한 지위는 돌격장에 불과하다고 재삼 평가하고 있다.
오히려 이 소설을 통하여 발견한 점은 임금 선조의 철저한 무능력과 비뚤어진 권력욕이다. 그는 국가를 완전한 사유물로 간주하였으며, 국가와 백성의 안위보다 권력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하는데 혈안이었다. 사서의 일반적 평가와는 다른 점이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높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선조가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하여 그렇게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을까.
이제 역사소설을 읽기가 두려워진다. 공식적인 역사만을 배우고 알고 있을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제 역사의 사건 하나하나를 쉽게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우리가 간과한 이면의 진실이 존재하는가.
소설 자체로서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용이하지 않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애썼으나 무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년과 청년 이순신, 박초희와 소은우, 최중화 등. 대하소설적 요소를 갖추려고 노력했으나 때문에 주제로의 몰입이 산만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곳곳에 허구로서의 소설이 주는 진한 대목들이 있다. 특히 이순신이 류성룡에게 유언을 남기는 대목에서는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억누를수 없었다.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홀로 깨끗하고, 세상이 모두 술에 취했는데 홀로 깨어있는 자, 그것이 이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