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살림지식총서 187
정하미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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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과의 접촉에 있어 일본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유리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에게 낯선 경험이었던 벨테브레와 하멜이 표류당하기 오래전에 이미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과 지속적 교류를 갖고 있었음은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행운이긴 했지만, 결국 행운을 수용할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침탈 내지 재앙이 되거나 무조건적 거부현상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개방적 자세가 나올 수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소중화 사상에 젖어서 오히려 강국 청나라조차 무시하던 조선이다. 그들에게 외모가 다르고 언어가 상이한 서구인은 신기한 하등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페리제독이 일본에 오리라는 정보를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고 대비를 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만 대비라는게 진지를 구축하고 대포를 생산하는 차원이 아니라 외국어 통역관을 급히 나가사키에서 에도로 옮긴 것이라는 점. 그리고 페리제독이 그렇게 무력시위를 할 줄을 몰랐을뿐.

별사탕, 카스텔라, 단팥빵 등 민중적이며 친숙한 소재를 매개체로 일본에서 서구문명이 유입되고 수용디는 과정을 압축하여 소개하고 있다. 다이묘와 막부는 자국이 이익이 되기에 그들과의 교류를 허용했다. 물론 철저한 관리하에서. 그것이 통치에 장애요인이 되면 단속을 한다. 기독교 금교처럼.

특정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폭넓은 개방성과 긍정적으로 결부됨을 보여준다. 역으로 그것이 20세기 전반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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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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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사(神社) 살림지식총서 193
박규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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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193권이다. 문고판으로 100면 이내로 얄팍하게 나와서 부담없이 펴볼 수 있는 유익한 시리즈다.

일본의 신사하면, 으레 야스쿠니 신사가 떠오르고 자동적으로 신사참배라는 부정적 용어가 연상됨은 한국인에게 거의 순간적 반사작용이다. 그런데 신사가 뭘까? 이런 원초적 질문에는 그냥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뭔지 모르므로.

나도 전에 일본여행을 갔을때 한번 신사 앞을 지나친 적이 있지만 무관심하게 흘렸던 기억이 있다. 역시 한구석 어두운 시각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신사는 일본 고유의 문화이자 종교인 신도의 사찰이라고 한다. 일본의 신은 근대적 신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끊임없이 생산되어 수가 꽤 많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신격화된 존재가 많고 그것이 전체주의적 국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전용된 것이 지난 세기와 현재의 일본 신사의 모습이다.

우리가 절집에 들어가면 절 나름마다 고유의 양식이 있으면서도 또한 절집 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공통의 이미지가 있다. 그 점은 신사도 마찬가지다. 도리이라는 절입구의 표시는 모양은 틀릴지언정 우리와 유사하다.

신사는 신들이 머무는 곳이므로, 자연히 신들의 이야기 곧 신화가 뒤따른다. 일본의 신화는 또 우리 고대사와 밀접한 관련성을 맺는데 역시 역사왜곡이라는 기분나쁜 갈등이 존재한다. 도대체 우리와 일본은 무슨 악연이 있어서 이렇게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일까?

신화에 의하며 일본 개국신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큐슈의 '한국악'이라는 지명과 '백제'라는 단어가 도처에서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흔히들 신들의 나라라는 표현을 인도 또는 발리에 대하여 쓰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일본이 그야말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만개의 신사가 있고 무수한 신은 또 어떠한가.

한권의 문고판으로 일본의 신사가 갖는 미묘한 의미와 심층적인 역사를 깨우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맛은 보게 되었다. 적어도 자동적인 거부반응 대신 그 신사에서 섬기는 신과 그 신이 일본과 우리에게 갖는 함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는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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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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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오스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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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FM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던, 음악에 목말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진행자의 멘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얽힌 사연이 소설처럼 전개되었고 이어 글렌 굴드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골드베르크를 굴드가 연주하다니 재밌군 하고 비몽사몽에서도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그때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가 정복해야할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여겨졌다.90분짜리 테이프 한면에 다 수록이 되지못하는 50분이 넘는 연주시간. 그리고 굴드. 아직 CD가 대세를 이루지 못하던 시절, 나는 종로3가의 신나라레코드점에서 용돈을 아껴가며 LP를 몇장씩 구입하고는 했다. 전면 표지를 감사하고 후면의 해설을 탐독하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음악이 주는 순수한 기쁨에 몰입하던 때였다.

처음 구입한 것은 오로지 글렌 굴드라는 이름만으로 선택하였던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음반. 이윽고 나는 '굴드 신화'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톡톡 튀는 리듬과 역동성, 어디선가 들려오는 흥얼거림. 난 바흐 음악이 이다지도 재밌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더우기 우연히 라디오에서 녹음한 바흐의 피아노협주곡 연주-그것이 레닌그라드 실황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의 개성적인 독주와 절묘한 호흡을 맞추는 오케스트라의 균형감과 박진감. 이후 리스트편곡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음반, 힌데미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반, 거금을 투하한 평균율곡집 등 구입하는 매건마다 그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쉽게도 골드베르크는 찾지 못하였다.

군대생활을 할 때였다. 외출나와서 여느때처럼 음반가게를 거닐다가 갑자기 골드베르크가 떠올랐고 굴드가 기억에 살아왔다. 막 CD로 전향한 시점이기도 하였는데 마침 그것이 있었다. 이윽고 조심스레 듣는 그 영롱하면서도 장중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닌 아리아에 나는 매혹되었다.

그후 기회있을 때마다 굴드의 바흐 음반을 사들이곤 하였다. 프랑스모음곡, 영국모음곡, 레닌그라드 실황음반 등. 그러면서 굴드라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궁금하였다. 내지에 간단한 소개된 다분히 기인적 에피소드 말고, 진실로 그의 삶이 궁금하였다. 골드베르크로 데뷰하여 인생의 말미에 다시금 골드베르크로 돌아온 드라마틱한 역정이 아니었던가.

저자 오스왈드는 오랜 기간 글렌 굴드와 교분을 나누었던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였다'는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만남이 단절되었다는 데서 연유하는데 굴드는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다하면 냉혹하게 절교하는 삶의 태도를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유난히도 극성맞았던 그의 건강염려가 어릴적 어머니의 과도한 염려 탓인 점도. 연주회를 중단하고 순수한 음반에만 매진하였던 것도 대중앞에 나설때의 과도한 긴장을 이기지 못하였다는 점도 모두 새롭기 그지없다. 스승 게레로를 후에 무시하고 호로비츠에 대한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는 연민조차 풍긴다.

그는 언제나 남과 다른 연주를 들려주고자 하였다. 그 다름이 작품에 내재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경우 각광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수많은 비난에 직면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 자신도 아직까지는 그의 바흐에 몰두된 상태이다. 오늘날 바로크 음악은 원전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연주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정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를 옹호한다. 어쨌든 그를 통하여 바흐는 골치아픈, 접근이 어려운 서양음악사의 중요한 한 인물에서 친숙한 존재로 다가왔다. 악기의 차이를 통해서도 음악적 감동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 오십에 굴드는 세상을 떠났다. 한편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의 메모에 수많은 녹음목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연주가로서는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개체적 측면에서 때맞추어 갔을 뿐이다. 고통받는 영혼과 육신의 몸으로서의 그를 솔직히 너무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 점을 굴드도 인식하고 골드베르크의 재녹음을 감행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자신의 운명을 예지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일말의 상념이 스친다. 또 열심히 굴드의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결의도. 비록 굴드는 갔지만 그의 유산은 적지않이 주위에 남아있다.

PS. 글렌 굴드의 성씨가 원래는 '골드'였다고 한다. 나중에 부친때 와서 개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만약 그대로였다면 진짜 '골드의 골드베르크'가 되는것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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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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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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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디선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평을 본 후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주문해 버렸다. 그리고 두가지에 대하여 참 놀랍다

먼저 소설집 표지디자인. 전통있는 창비사에서도 이젠 이런 디자인도 하는구나. 물론 소설 컨셉에 맞춘것이겠지만. 분홍색 반바지에 털이 숭숭한 다리로 달밤을 뛰는 장면. 어찌보면 아동도서나 만화책에나 어울릴 듯도 하다.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이 가능한 새로운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또 작가 김애란에 대해서도. 작년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70년대 작가가 대상을 수상하여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문단도 드디어 70년대가 본격적으로 주축을 이루는 때가 왔네 하며. 한데 이제 작가의 약력을 보니 80년대다. 도대체가 뜬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흠, 이제 20대 중반일텐데.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인다.

김애란의 글을 읽으며, 타 여성작가와는 소재나 글쓰는 방식이 참으로 상이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것이 높은 평판을 얻게된 요인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생각도.

수록된 9편의 소설중에서 4편은 여성이 아닌 남성을 화자로 선택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작가들의 작품속 화자가 여성, 그것도 본인의 색채가 짙게 배인 목소리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의외라고 하겠다. 등장하는 여성은 화려한 삶을 구가하지 않는다. 편의점을 배회하는가 하면, 반지하방에서 아버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며, 지하철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동창의 수다를 감내한다. 그리고는 구조가 똑같은 자취방에서 사소한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리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소시민적 삶의 묘사가 아닌가 싶다. 눈부시고 럭셔리한 인생은 관심대상이 아니고, 궁핍함을 자아내는 때로 궁상맞기까지 한 삶, 그것이 작가에게는 더 친숙하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풍요보다는 가난과 밀접한데 연유하는지도. 그래도 김애란의 주인공은 고독하다. 그가 떠도는 일상에서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우가 부재하다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오히려 개인적 관심사를 불편해 하며 익명의 생활에서 마음 편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요즘 도시민의 삶의 태도.

또, 수록된 9편의 소설중에서 5편이 화자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접적인 소재로 하고 있다. 남성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의 의의와 비중을 내가 남성이기에 어느정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는 무엇인가? 굳이 프로이트의 장황한 사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버지와 딸은 친밀감을 느끼고 긍정하고 싶은 관계인지.

'달려라, 아비'에서 화자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고, 언제나 달리는 모습으로 공상하며, 나중에는 눈이 부실까봐 선글라스마저 착용케 한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불쑥 나타나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을 새벽까지 TV를 켜놓게 하여 괴롭히는 아버지가 불쑥 사라지자 자신의 진심이 아님을 토로할 수 없는데 대하여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사랑의 인사'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위안을 삼고 수족관에서 아버지(확실히 맞기는한지?)를 보면서 그렇게 자신을 봐달라고 몸부림치는 화자의 모습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웃사이더이다. 그저 생활비만 가져다주는 외에 바깥으로만 겉도는 존재. 자식의 탄생에 일조하지만 양육에는 무관한 타인적 존재. 그것이 20세기 우리시대의 표상이었다. 그런 아버지상은 다분히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망하고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글에서 나타나곤 하는데, 김애란은 이걸 역발상하고 노력한다. 그래, 그렇게 부정해봤자 내 마음만 아플 뿐이다. 차라리 그들을 긍정하자. 일체유심조 아닌가.

김애란 소설의 특징은 독특한 스타일에 있다. 어둡고 자칫 가라앉을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화사하지는 않지만 무겁지도 않다. 들뜨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게 소위 긍정적 사고의 힘이라고 하겠다.

20대중반에 이런 각광을 받는다면 분명히 무언가 특색이 있으리라. 그것이 반짝하는 신성에 불과한지 아니면 수십억년 우주를 밝히는 항성으로 자리잡을 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조로하지 않도록 내면을 충실하게 다듬어서 좀더 좋은 많은 글을 우리가 맛볼 수 있도록 희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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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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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1.'동물의 왕국'. 사자가 낮은 초원 풀숲을 웅크리며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돌연 전력질주하여 짧은 추격 끝에 먹이감을 낚아챈다. 이윽고 사자 일가족의 피비린내나는 식사가 벌어진다.

2.세계사 시간. 세계4대문명인 이집트문명이 짤막하게 소개된다. 그리고 파라오와 피라미드, 미라. 그후 아프리카는 없다. 소위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 사람이 희망봉을 돌았다는 내용이 나올 때까지는. 이어 제국주의의 탐욕 아래 아프리카는 갈갈이 찢긴다.

3.최근의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어 흑백화해에 노력한다. 한편 르완다의 인종 대학살 뉴스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의 처참한 장면이 뒷따른다.

이상이 내가 기억하는 아프리카의 전부다.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생각된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이 겪어온 숨가쁜 개발도상에서 저앞서있는 지향점은 서구문명, 특히 미국 자체였다. 우리의 은인이자 주인이며 모든게 찬란하게 빛나는 환상의 국가. 그래서 아직도 잠재의식 속에는 백인종에 대한 무의식적 존중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황인종과 흑인종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종족이다. 특히 흑인에 대한 암묵적 멸시와 차별은 우리사회에도 뿌리깊이 박혀있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들이 피부색이 하얗지 않다는 것 외에는.

오늘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읽는다. 아니,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역사서가 언제쯤 발간될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독일인 작가인데, 수년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순수 역사라기보다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주체적 방향에서 서술하는 첫 시도라고 하겠다. 그동안의 아프리카사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월적, 식민사관으로 뒤덮였다고 비판하면서.

처음 태어난 대륙이 아프리카이며, 인류가 처음 등장한 것도 아프리카이다. 즉 아프리카는 문명과 인류의 모태이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기억보다는 슬픔과 고통의 기억만이 가득차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인만의 잘못인가? 소위 사회진화론에 의하여 열등한 민족과 문명은 이렇게 지배받고 도태되어야 하는 것이 정당한 모습인가?

유럽인의 침략으로 빚어지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붕괴는 어째 미국의 인디언 말살과 깊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들이 상륙하기 전에는 나름의 규칙과 문화를 갖고 수많은 부족과 종족들이 큰 문제없이 조화롭게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최초로 등장한 이방인, 처음에는 겸손한 척 하면서 발붙일 공간을 얻는다. 이어 점점 수와 영역을 늘리면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이어 전면적인 지배와 학살. 차이점이라면 어쨌든 아프리카는 오늘날 살아남은 반면 아메리칸 인디언은 이류인간으로 여전히 억압에 눌려지낸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모두 남을 탓할 수도 있지만, 옛부터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하였다. 항상 끄나풀, 앞잡이 등이 있게 마련. 그들의 협력이 없다면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구한말의 오적(五賊)의 역할처럼.

여전히 아프리카는 어둡다. 수많은 부족갈등이 어떻게 원만하게 조율될지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만연한 에이즈로부터 인명을 구할 국내적,국제적 연대가 이루어질지 의심스럽기조차하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희망한다. 그 희망을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찬물을 끼얹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과연 당당한가 자문하게 된다. 유색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따가운 지적은 가슴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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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2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