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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평을 본 후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주문해 버렸다. 그리고 두가지에 대하여 참 놀랍다
먼저 소설집 표지디자인. 전통있는 창비사에서도 이젠 이런 디자인도 하는구나. 물론 소설 컨셉에 맞춘것이겠지만. 분홍색 반바지에 털이 숭숭한 다리로 달밤을 뛰는 장면. 어찌보면 아동도서나 만화책에나 어울릴 듯도 하다.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이 가능한 새로운 시대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또 작가 김애란에 대해서도. 작년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70년대 작가가 대상을 수상하여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문단도 드디어 70년대가 본격적으로 주축을 이루는 때가 왔네 하며. 한데 이제 작가의 약력을 보니 80년대다. 도대체가 뜬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흠, 이제 20대 중반일텐데.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인다.
김애란의 글을 읽으며, 타 여성작가와는 소재나 글쓰는 방식이 참으로 상이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것이 높은 평판을 얻게된 요인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생각도.
수록된 9편의 소설중에서 4편은 여성이 아닌 남성을 화자로 선택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작가들의 작품속 화자가 여성, 그것도 본인의 색채가 짙게 배인 목소리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의외라고 하겠다. 등장하는 여성은 화려한 삶을 구가하지 않는다. 편의점을 배회하는가 하면, 반지하방에서 아버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며, 지하철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동창의 수다를 감내한다. 그리고는 구조가 똑같은 자취방에서 사소한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리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소시민적 삶의 묘사가 아닌가 싶다. 눈부시고 럭셔리한 인생은 관심대상이 아니고, 궁핍함을 자아내는 때로 궁상맞기까지 한 삶, 그것이 작가에게는 더 친숙하다. 어쩌면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풍요보다는 가난과 밀접한데 연유하는지도. 그래도 김애란의 주인공은 고독하다. 그가 떠도는 일상에서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우가 부재하다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오히려 개인적 관심사를 불편해 하며 익명의 생활에서 마음 편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요즘 도시민의 삶의 태도.
또, 수록된 9편의 소설중에서 5편이 화자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접적인 소재로 하고 있다. 남성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의 의의와 비중을 내가 남성이기에 어느정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는 무엇인가? 굳이 프로이트의 장황한 사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버지와 딸은 친밀감을 느끼고 긍정하고 싶은 관계인지.
'달려라, 아비'에서 화자는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고, 언제나 달리는 모습으로 공상하며, 나중에는 눈이 부실까봐 선글라스마저 착용케 한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불쑥 나타나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을 새벽까지 TV를 켜놓게 하여 괴롭히는 아버지가 불쑥 사라지자 자신의 진심이 아님을 토로할 수 없는데 대하여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사랑의 인사'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위안을 삼고 수족관에서 아버지(확실히 맞기는한지?)를 보면서 그렇게 자신을 봐달라고 몸부림치는 화자의 모습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웃사이더이다. 그저 생활비만 가져다주는 외에 바깥으로만 겉도는 존재. 자식의 탄생에 일조하지만 양육에는 무관한 타인적 존재. 그것이 20세기 우리시대의 표상이었다. 그런 아버지상은 다분히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망하고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글에서 나타나곤 하는데, 김애란은 이걸 역발상하고 노력한다. 그래, 그렇게 부정해봤자 내 마음만 아플 뿐이다. 차라리 그들을 긍정하자. 일체유심조 아닌가.
김애란 소설의 특징은 독특한 스타일에 있다. 어둡고 자칫 가라앉을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화사하지는 않지만 무겁지도 않다. 들뜨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게 소위 긍정적 사고의 힘이라고 하겠다.
20대중반에 이런 각광을 받는다면 분명히 무언가 특색이 있으리라. 그것이 반짝하는 신성에 불과한지 아니면 수십억년 우주를 밝히는 항성으로 자리잡을 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조로하지 않도록 내면을 충실하게 다듬어서 좀더 좋은 많은 글을 우리가 맛볼 수 있도록 희망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