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심경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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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과 사람의 따스한 연결고리를 복원하는 것]

요즘은 통상 편지 또는 서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전달수단을 옛적에는 참으로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였음을 알고 저으기 놀랐다. 간찰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용어조차 낯선 척독은 또한 뭔지.

각설하고 이메일로 대치되어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수기 편지는 이메일과는 다른 묘한 뒷맛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추신이란 것도 수기 편지에서나 필요하지 이메일에서는 언제라도 삽입과 삭제가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편지를 써본지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군입대시 의무적 제출을 빼면 중고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다. 강제적 위문편지의 폐해는 그렇게 심대하였다. 마치 초등학생의 방학숙제였던 일기쓰기가 일기에 대한 조기 환멸을 불러왔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있고 깊은 여운이 감도는 그런 글쓰기를 망치는 교육은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며칠전 수시1학기 시험감독을 하였다. 논술고사 하나에 목매는 수험생도 애처롭지만 그들이 논술연마를 통하여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선인들은 얼핏 꼬장꼬장한 선비적 삶의 자세를 견지하였던 인물이라 할지라도 간찰과 같은 의외로 비공식적 부분에서는 대단히 유연하고 격의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엄숙성에 대한 선입견을 지닌 내게는 매우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이규보로부터 조선말 황현에 이르기까지 24명의 간찰을 선택하여 게재한 후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기술하여 더욱 그 간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역사속 인물인 정몽주와 이황, 이이 등의 개인적 말투가 간찰 속에서 새록새록 친밀감을 자아내는 묘미는 역시 간찰이라는 특수한 형식이 주는 장점일 것이다.

간찰에는 기본적 형식요건이 준비되어 있다. 받는이, 안부인사, 본문, 맺음말, 작별인사 등. 요즘 편지도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물며 서양의 소위 레터(letter)도 형식면에서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간찰에는 옛사람의 인간적 풍모가 물씬 배어난다. 당대의 학자들 간에 교제를 주고받기도 하며, 우정어린 조언을 교환하기도 하며, 스승이 제자의 안부를 걱정하며, 친구간에 격의없는 농을 주고받기도 한다. 또한 우국충정의 강렬한 염원을 담아 시국을 토로하는 간찰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간찰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없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 부모자식간에 안부를 주고받는 따뜻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제 간찰의 문화는 사라졌다. 우체국은 이제 금융기관으로 변모중이며, 편지와 엽서를 배달하기에 정신없던 우체부는 택배물품과 쓰레기광고지를 전달하느라고 여전히 바쁘기 그지없다.

간찰이 쇠퇴한 연유를 반추해 본다. 현대사회의 스피드는 간찰이 지닌 느림의 미학을 인내하기에는 부족할 듯 싶다. 보내고 받는데 짧게는 수 일, 길게는 수 개월이 걸리는 편지를 선호하는 자는 없다. 그러기에 내용과 안부를 신속히 전달하는데 편지는 부적합하게 되었다. 그러면 간찰은 영원히 사라질 운명일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다. 디지털시대를 맞이하여 소멸될 운명에 처해졌던 아날로그음반들이 다시금 조용히 세를 확장하고 있다. 보다 빠르고 세련된 사회로 변모할 수록 사람들은 땀냄새나고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싶어한다. 인간 자체는 결코 디지털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편지의 실용적 목적은 포기하자. 그리고 비실용적 목적을 부활시키자. 상호간에 인간미를 되살리고 쿨(Cool)한 마음을 웜(Warm)하게 덥혀주는 그런 간찰은 삭막한 인간관계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윤택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아내에게 간찰을 보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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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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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서전 - 뮈토스의 세계에서 질박한 한국인을 만나다
김열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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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의 전통적인 삶과 정신을 돌아본다]

일개인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역정을 밟는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치는 과거의 흔적들을 자서전이라는 기록물 형태로 남긴다. 개개인의 인생 행로는 환경과 선택에 의하여 다양한 굴곡을 겪는다. 그러기에 개인사는 책 한두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하지 않던가.

자서전이 어디 개인에 국한하랴. 제각각인 삶도 개인의 집합체인 민족 단위에서 바라볼때 일정한 틀을 가지고 대체적으로 평균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정규분포에 수렴된다. 그러기에 타민족과 구별되는 고유성을 지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어떠한 삶의 역정을 따르는지 역시 탄생에서 죽음까지 그 길을 추적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 저자는 보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많이 조명한다. 그것은 저자가 민속학을 전공한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은 크게 7부로 대별된다. (탄생에 앞서 선존하는) 어머니, 탄생, 자라고 크고, 사랑, 결혼, 세상살이, 죽음 이렇게 소제목만 일별해도 대강의 흐름이 짐작된다.

흘러간 과거는 아름답다고 흔히들 주절거린다. 옛적의 아픈 상처와 체험도 시간의 작용으로 아련해지고 어느덧 환한 웃음으로 회상하게 된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점이 이렇게 편리한 법.

하지만 삶이 결코 즐겁고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기에 저자는 우리네 삶을 맵고 짭다는 의미에서 맵짠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땀범벅인 짠지 인생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여기에는 장미빛으로 채색된 그런 환상을 없는 것이다.

저자가 파고드는 소재는 우리민족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이다. 물어머니와 산어머니의 존재, 그리고 웅녀의 슬픔에서 시작하여 혼불과 오구굿판에 이르는 다종다기한 설화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리 풍부했던가 새삼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고단한 인생살이를 연상하면 자꾸만 우리네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과거 여성의 생은 '한'으로 점철되었던 탓일까. 저자가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런 측면에서 극히 자연스레 나타난다.

'신방에 앉은채 돌이 된 신부'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한맺혀서 죽어도 죽지 못하는 그런 아픔을 짠하게 보여준다. 그 가슴속 슬픔이 얼마나 크고 아팠던 것인지. 일제시대와 빨치산을 배경으로 한 '아비와 자식의 핏줄을 잘라 낸 이야기'는 또 천륜마저 무너질 수 밖에 없던 우리의 굴곡깊은 역사가 새삼 상처가 된다.

그럼에도 "생명은 그만큼 무서운 것, 늠렬한 것! 옷깃 여미고 또 여미고, 간수하고 다듬어야 하는 것!"을 '상복 입은 산모'는 침묵 속에 절규한다. 그리고 "죽음은 단지 소멸이 아니다. 미완의 삶을 억척같이 완성하는 자가 다름 아닌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죽음의 꿈'에서는 알려준다. 이렇게 인생은 삶 곁에 죽음을 동반하고, 죽음과 삶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어우러지는 연극이기도 하다. 이 무대 한복판에서 각자가 맵짠 삶을 꾸려 나가며 개인의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며 동시에 한국인의 자서전도 그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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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8.1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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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음식 자체만의 맛은 아니다]

음식에 관한 산문집이다. 음식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음식에 얽힌 추억, 회상, 그리움 등 음식과 사람사이에 대한 아스라한 정서를 정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 그때는 그런게 있었어 하는 동감과 아울러 이런 음식도 있네! 한번 맛보고 싶다는 자극을 준다.

전체적으로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별한 구성 기준은 따로 없는듯 하다. 대체로 요란스럽고 값비싼 요리보다는 소박한 우리네 밥상, 먹을거리를 많이 언급한다. 저자 자신이 말했듯이 경상북도 내륙 깊숙한 곳에서 태어나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탓도 있을테지만, 아직은 소박한 정서를 잃지 않은 연유가 크게 느껴진다. 도시생활에 젖어도 세월에 물들어도 마음 한구석 따뜻함을 지켜내는 저력은 세파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시민과는 또다른 차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8월 중순경. 나는 뜻밖에 입병으로 한창 고생을 겪었다. 피곤할때 종종 입안에 나는 것과 같은게 입안과 혀, 입천장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시간이 경과하자 잇몸까지 부어서 치아가 흔들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태 살면서 이런 당혹스러움은 처음이다. 게다가 그때 마침 휴가를 내서 부산의 장인 생신에 참석하게끔 되어 있었다. 결국 처가식구들의 걱정만 잔뜩 안겨드린채 미역국과 콩나물국(희한하게 물 외에는 어떤 것도 입안을 자극하여 먹기 곤란하였는데, 이 두가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사실!) 만을 먹으며 며칠을 보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는데, 소염제나 처방할 뿐 원인은 오리무중. 단지 피곤이 누적된게 아니냐는 의견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며칠전에 먹은 킹크랩에 아무래도 몸이 탈난듯하다. 팔자에 없는 킹크랩을 먹어보겠다고 와싸다닷컴에서 열심히 이벤트에 참여하여 우리집 식구들이 킹크랩 파티를 벌였다. 이때 딱딱한 킹크랩 껍질과 다리를 발라먹는 과정에서 자극을 받은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데 나만 그런 이유는? 글쎄, 아무래도 내가 그다지 킹크랩이니 게를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게와 나의 궁합에 연관이 있을거라는 억지스러운 추측뿐.

물경 이주일이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면 조금이나마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 매운 음식에 대하여 입이 매우 민감하게 변해버렸다. 남들은 딱 좋을 정도로 매콤함이 내게는 입안을 얼얼하게 자극시키고 있으니. 이러다 영영 매운 음식을 못먹는게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와같이 음식도 제대로 먹지못하는 가운데 음식에 관한 글을 읽게 되는 그 심정은 얼마나 절절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김밥, 닭개장, 냉면, 국시, 부대찌개 등 절로 군침이 돌게 마련이다. 평소 좋아했건 아니건 절실한 상황에서 개개의 음식 이름은 새로운 존재감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때는 무슨 음식을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회한과 다짐뿐.

이제 입병도 99.9% 치료되었다. 몇 주가 경과하였는데 그때 그 다짐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 사람 살아가면서 날마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이가 몇이나 될까. 평범한 밥상을 눈앞에 놓아두고 그저 천하진미려니 하며 수저를 드는게 우리네 일상. 무슨 음식을 먹었냐는 사실보다는 누구와 함께 어떤 순간에 식사를 하였는지가 우리네 추억에 더깊이 각인된다. 마음이 불편하면 산해진미도 그저 화장실에 가도록 만드는 원인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 어서 빨리 식사가 끝났으면 하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이는 순간을 나는 몇번 가져본 적 있다. 그때는 값비싼 요리도 밥 한그릇과 김치 한 접시에 미치지 못한다.

성석제가 이 책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것이다. 낯선 지역에서 우연히 맛본 음식, 너무나도 기억에 남아서 훗날 물어물어 다시 그 곳을 찾아가 본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듯이 그 자리에 식당은 의연하건만 왠일인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맛은 음식 자체에서만 배어나오는게 아니다. 음식과 음식점 분위기, 음식적 아주머니, 식당이 자리잡은 배경과 그 순간 나의 상태, 동반자와의 관계 등이 어울려져야 천하일미를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발생한다. 역시 사람이 먹고 산다는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게 음식마저도 하나의 좋합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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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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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천국 갈라파고스 -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탄생시킨 갈라파고스의 숨겨진 이야기들
마이클 도르소 지음, 이한중 옮김 / 꿈꾸는돌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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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의 인구가 4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이 책을 쓴 2001년도 자료 기준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라파고스를 유영하는가 상상이 안된다. 혹시나 하고 네이버 백과사전을 조회하니 인구가 1만명(1990년 자료)이란다.

요즘같은 세상에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면적에 4만명이 뭐 그리 많다고 법석인가 하고 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건 그만큼 갈라파고스가 우리에게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저 머나먼 오지의 동물 왕국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뜻한다. 유명한 다윈에서 시작하여 이따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보여주는 신비롭기조차한 영상물에서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거칠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것이 갈라파고스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많은이들이 복잡한 사회를 탈출하여 갈라파고스로 가는 것을 꿈구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지상낙원이 그곳에 있다.

역설적으로 저자는 갈라파고스에 호텔이 있고 사람이 산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저자 역시 갈라파고스는 무인도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구경하고 오겠다고 출발했는데 결국 3년간 수차례에 걸쳐 장기체류하였다.

외관상 보이는 갈라파고스는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이 지상천국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접하게 되는 그곳의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특히 화산지대의 살인적인 암석('아아' 용암이라고 한다)은 그야말로 사람잡기 딱 좋겠다. 게다가 무슨 풀인지는 가시가 날카롭기 그지없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오랜동안 인간의 정착을 방해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존력은 막강하지 않은가? 전에는 서서히 그리고 오늘날에는 폭발적으로 갈라파고스의 인구는 늘어만 간다. 인간이 정주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면 누가 그것을 저지할 수 있으리오. 사람만이 문제가 아니라 산양과 멧돼지가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모두 인간이 뿌린 씨앗이다. 그결과 자연보존을 위하여 자연요소를 도살하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목그대로 갈라파고스는 잃어버린 천국이 되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히 천국을 잃어버린 데 그치지 않고 갈라파고스 자체를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에쿠아도르는 갈라파고스가 창출하는 단기적 이익에만 관심있지 보존에는 무관심하다. 또 그렇게 하기에는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극심하고 정권 자체가 불안정하다. 국민들도 자신들의 생계 유지에 급급하니 보존정책은 더더욱 어렵다.

갈라파고스, 적도를 가로지르는 생태계의 살아있는 실험실. 이제 단순한 관광의 대상으로 전락하도다. 인간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이 아니었던가. 그 손길이 스치는 곳에 나무는 베어지고, 땅은 파헤쳐지며 강과 호수는 시커멓게 멍들어간다. 그리고 인간은 썩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썩은 자손을 낳는다. 그리고 하늘을 원망한다. 일종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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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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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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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권력이동> 이후 오랜만의 신간이다. 물론 중간에 몇편 있지만, 유명한 삼부작의 뒤를 잇는 수준은 이 책이라고 한다. 예전에 삼부작을 읽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던 나는 진작부터 예약주문을 걸어놓고 이제나 저제나 학수고대하였다.

오며 가며 통근 지하철 안에서 짤막짤막 책장을 넘기는게 아쉽지만 다행히 이번 저서는 전작들에 비하면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하여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아니 그동안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내 지적 수준이 그만큼 레벨업 된 것인지도.

토플러는 부(wealth)의 토대를 형성하는 심층기반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세가지 심층기반을 소개하고 있다. 즉 시간, 공간, 지식이다. 제3물결은 심층기반에 근본적인 변동을 초래하여 부 창출 시스템이 오늘날 요동치고 있으며 여기에 잘 올라탄 국가 사회는 보다 앞서나가고 있음을 무수한 사례로 보여준다. 이미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출간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수많은 서평을 참조하면 충분할 것이다.

과연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혜안과 예측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토플러만큼 뛰어나지 못하다. 확실히 그는 일반인들과 정치인들도 헤아리지 못한 깊숙한 메카니즘을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사항은 그의 미래사회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사실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이러한 인사는 쉽사리 나오기 어렵다.

인상깊은 부분은 제6부의 프로슈밍을 다룬 영역이다. 프로슈밍은 생산과 소비를 함께하는 경제를 일컫는 조어다. 화폐경제에서는 배제하고 있기도 하다. 토플러는 프로슈밍의 영역이 점점더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프로슈머들의 등장에 오히려 큰 환영을 아끼지 않는다. 아울러 기존의 경제학이 화폐경제와 아울러 비화폐경제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토플러는 서구사회의 과학기술에 토대를 둔 긍정적인 미래관을 지니고 있다. 곳곳에 그 흔적이 엿보인다. 그것은 그가 무용지식의 함정을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진실을 가려내는 방법 중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아끼지 않는데서 알 수 있다. 그는 과학에 대한 옹호를 펼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에 대한 비판과 반대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가 변호하는 과학이 순수하게 테크니컬한 과학 그 자체라기 보다는 소위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옹호임이 명확하지만, 자신이 종종 혼용하여 사용한다는 데서 시비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토플러의 저서는 따분한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발굴한 흥미진진한 사례와 인터뷰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가설과 이론의 언명은 제아무리 그럴듯 하여도 멀리 떨어져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제10부 지각변동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일본, 유럽, 미국에 대한 지역적 분석을 하면서 짤막한 장을 한반도에도 할애하고 있다. 남북한의 문제는 시간이라는 심층기반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의 전망이 다소 추상적이고 표피적으로 보일지라도 한번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우리 자신이 아닌 외부인이 바라본 우리의 현실이다.

<부의 미래>는 과거 그의 저서들이 안겨다 준 충격과 파급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너무나 복잡다기하게 변모하였으며 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판단의 잣대를 정리하여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토플러는 일독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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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9.1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헬로우세븐 2014-07-0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수많은 현장 사례, 인터뷰, 각종 통계자료에 매료되어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