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스터 칩스 에버그린북스 6
제임스 힐튼 지음, 김기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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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노교사의 삶을 통해 진정한 교육의 가치와 견해, 그리고 교육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이 작품의 정조(情調)는 대체로 회고조의 애상미가 전편에 은은히 넘쳐난다. 그 독특한 조용히 곱씹는 듯한 문체와 나직한 어조, 질박한 표현은 고지식하고 구태세적이며 촌스럽기조차 한 칩스 노교사의 은근한 삶을 조명하는데 과부족 함이 없다.

솔직히 그렇게 기대하고 읽은 작품은 아닌데 뜻하지 아니한 감동은 배가 되는 법인가. 눌변의 능변, 무기교의 기교라는 찬사는 우리 고전미에 대한 찬미에만 쓰는 어구는 아니리라. 호손의 <큰 바위 얼굴>과 주제 정신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과욕을 삼가고 일상에 충실하는 주인공의 공통적 미덕이 한층 크게 우러러보이게 한다.

칩스는 빅토리아 여왕 시기의 대영제국의 문화적 배경을 살아간 인물이다. 그에게서는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최전성기에서 서서히 쇠잔의 기미가 엿보이는 장중한 서글픔이 문득 배어있다.

칩스의 삶에서 변모의 계기는 캐서린과의 만남과 짧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이었다. 그녀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태도는 온건한 보수주의자인 칩스를 바꿔놓았다. 결혼 전 무미건조한 어느 정도 존경받을만한 교사에서 생기가 감돌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자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교사가 학생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만큼이나, 인생의 반려자가 배우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좋은 교사 못지않게 훌륭한 배필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캐서린과의 사별 후 칩스는 다시 외견상 고리타분한 노인네가 되었지만, 더 이상 과거의 칩스가 아니었다. 그녀로 말미암아 그의 내면은 깊이 있는 ‘지대하고도 완전무결한 자기 완성’(P.62)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후임 교장 랠스턴과의 언쟁에서 명확해진다. 그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시험을 치르고 증서를 수여하는 것으로는 테스트 할 수 없는 균형잡힌 중용의 사고를 배양’(P.82)하는 데 있다.

이는 칩스는 물론 작가 자신의 바램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불길하고 어두운 전쟁의 전조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와 방향을 상실하였다. 이것이 문학상 소위 ‘길잃은 세대’이다. 제임스 힐튼 역시 이들 세대의 일원이다. 그에게 당대는 고상한 전통의 미덕을 상실하고 균형을 잃은 채 제멋대로 비틀거리고 있다.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P.101)

그렇다면 작가가 찾고자 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교사의 삶에서 잃어버린 옛 가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욕심을 권하고 성공을 꿈꾸는 사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변함없이 자기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미친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는 위엄과 관용의 사상을.” (P.102)
칩스가 브룩필드 사람들에 존경받고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농담은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그는 삶에 진실하였고 그 안에서 성숙해졌다. 앞서 말했지만 캐서린이 그를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동양 사상을 통해 서구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제 그가 재발견한 것은 비물질적 가치, 즉 칩스의 사상으로 대변되는 과거 서구의 뛰어난 전통적인 정신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다. 이는 한낱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인간 세상을 더 근사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부족하므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다.

이 작품은 짤막한 중편이지만 깊이에 있어서는 대하소설을 능가한다. 그 점에서 의미를 반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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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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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 작은사전>(김희보 편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아편의 꿈의 공포를 묘사한 화려한 문장으로 낭만주의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켰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표현상 문체의 화려함이 두드러지며, 여기에 내용상 아편 중독의 증상이 주는 호기심 충족이 덧붙여진다.

기실 이 작품에 무슨 교훈적 의미를 찾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작가 본인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 이 측면을 중시하지만.

“나는 이 글이 단순히 흥미로운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상당히 유익하고 교훈적인 글도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이 글을 쓴 것도 바로 그런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P.9)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독자들의 관심이 맴도는 진짜 중심은 아편쟁이가 아니라 아편이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쾌락을 가져오든 고통을 가져오든,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이 글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 (P.164)

전 2부로 구성된 작품에서 제1부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회고담이다. 가출 이후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며 방랑하던 소년 시절, 이로 인하여 후일 육체적 질병의 계기가 되었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아편 복용이 단순히 쾌락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음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흥미로움과 지루함의 반응이 모두 가능하다.

제2부는 본격적으로 아편의 쾌락과 고통을 다룬다. 일단 당시는 아편이 금지약물이 아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날의 마약과는 입장이 다르다. 누구나 약국에서 약을 사듯이 아편을 구입하여 복용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일단 아편의 기능을 소개하면서 이를 포도주에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아편이 복용자에게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한다. 게다가 “어떤 분량의 아편도 중독을 일으키지 않으며, 일으킬 수도 없다.”(P.89)고 단언한다.

그의 아편 찬미는 한없다.
“그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P.106)

이러한 예찬은 곧이어 고통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 작별이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행복과도 오랫동안 작별이다! 미소와도 웃음과도 작별이다! 마음의 평화와도 작별이다! 희망과도 평온한 꿈과도 축복받은 잠의 위안과도 작별이다!” (P.130)

아편과 같은 약물 중독을 다룬 이 책은 내게 전에 읽었던 책을 상기시킨다. <해시시 클럽>에서 네르발, 고티에, 보들레르 같은 이들은 나름 약물의 효과에 대하여 긍정적, 부정적 글을 쓰고 있다. 나아가 네르발의 <실비>와 <오렐리아>는 정신착란에 의한 것이므로 약물과는 다소 다르지만, 환상과 몽상을 담고 있는 점에서 기본 정신은 유사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호수와 넓게 펼쳐진 은빛 수면의 꿈에서 오렐리아를 연상시킨다. 드 퀸시는 네르발의 선구자인가? 아니다. 네르발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진실로 초현실주의라고 할 만하지만, 드 퀸시는 현실과 꿈이 날카롭게 대립되어 이것이 작가의 정신에 혼란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드 퀸시는 왜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신을 고백하고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소리 내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 기분에 따르는 것이다...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모든 역사의 기록을 갖고 싶어서, 내가 지금 쏟을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여 최대한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P.133)

작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아편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대인들에게는 미지와 금지의 약물인 아편의 효과가 어떠한지 드 퀸시의 글을 통해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은 더 이상 아편의 효과에 별로 관심 없다. 오히려 아편쟁이로서 드 퀸시의 개인사가 궁금할 따름이다.

드 퀸시가 아편쟁이의 삶을 얼마나 화려한 문장으로 고백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후대 작가들에게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환상과 꿈을 양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보들레르가 남긴 말이 드 퀸시에 대한 진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아편쟁이가 인류에게 실제적인 봉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그의 책이 ‘아름답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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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진실 - 하 즐거운 지식 50
김준봉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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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은 한국전쟁 발발과 낙동강 방어선 전투, 인천상륙작전을 다루고 있으며, 하권은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전세 변화와 휴전회담, 그리고 전쟁의 영향을 기술하고 있다.

책의 기술 순서에 따라, 그리고 전쟁의 전개에 따라 내용을 살펴본다.

파죽지세로 북진을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조만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다다를 것이며, 이것으로 전쟁은 종결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였다. 실제로 맥아더는 휘하 장병들에게 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지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이때까지가 맥아더의 경력에 있어 최고의 절정기였으며, 이후 그는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의 중대한 과실은 바로 중공군의 개입가능성을 무시하고 전력을 과소평가한 데 있다. 중공군이 설사 개입하더라도 곧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역시 호언하였다. 하지만 중공군의 실제 위력은 폭풍과도 같은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1차 공세에서 유엔군에 경고를 날렸으며, 2차 공세에서 전체 전선에서 유엔군을 패주시키고 일부 부대는 궤멸시키는 가공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3차 공세에서 유엔군은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된다.

북한군과 유엔군은 동일한 실수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목전의 진격에만 급급하여 상대방의 역습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유엔군의 진격은 중공군의 유인책에 말려든 꼴이었다.

“중공군은 유엔군을 더 북쪽으로 깊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맥아더의 성격을 분석하여 ‘거만하고 완고’하다고 판정하고 그럴수록 좋다고 결론지었다...모택동이 쳐 놓은 덫 속으로 유엔군이 맹렬하게 진군하는 형태가 될 것이었다.” (P.44~45)

당시 미8군 사령관 워커는 “38선 넘어 북으로 160km 정도 진격 후 평양~원산 선을 확보한 후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P.45)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워커의 판단은 병력과 편제를 재정비하고, 병참 보급선을 확고히 한 후 차근차근 상대편을 옥죄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이루어졌을 경우 중공군의 대규모 역습은 불가능하고 설사 격퇴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선이 중부지방이 아니라 평양 이북에서 고착되어 향후 전쟁의 결과는 오늘날과 상이하였을 것이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그를 빛나게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지나친 성공은 그를 눈멀게 하였다. 그의 오판을 견제하기에는 그의 성공의 후광이 너무나 컸다.

중공군의 2차 공세에서 서부전선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동부전선에서 유명한 미해병 1사단의 유명한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전개되었다. 중공군의 공세에 대한 방어선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워커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한다.

“워커는 한국전쟁에서 많은 업적을 세웠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다...워커는 전사상 가장 뛰어난 기동방어를 성공시켰지만 그에 맞는 명예를 얻지 못했다. 리지웨이는 워커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를 가운데 하나를 밝혔다. 그것은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하던 맥아더가 워커의 업적을 가로챘고, 자기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워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116~117)

워커의 후임인 리지웨이는 전임자와 달리 전쟁 지휘의 실권을 확보하였다. 그리하여 미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추어 과도한 작전은 지양하고, 전쟁 이전의 수준을 되찾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는 비겁과 소심의 반영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아쉽지만 당시의 유엔군과 중공군의 역량을 철저히 비교하여 내린 전략적 판단이다.

“그는 인천상륙잔전 후 경주하듯이 북진한 데서 온 중공군의 침투, 매복, 역습의 경험과 중공군의 전투방식을 감안하였다. 그리고 유엔군은 횡적전선을 긴밀하게 유지하여 차근차근 전진해 나가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P.141)

그는 영토 확보는 부차적이라고 선언하며, 중공군의 전투 역량의 상실, 즉 최대한 중공군을 사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방침의 결과가 중공군 4차 공세의 원주 전투와 지평리 전투의 승리다. 이로 인해 중공군의 개입 이후 계속되던 중공군 불패의 신화를 깨뜨렸고, 유엔군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전투의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전쟁에서는 지역을 탈취하거나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승리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인명손실을 끼치는 것이야말로 이기거나 중공이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관건임이 확실해졌다.” (P.172)

장진호전투와 지평리전투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장에서 탁월한 지휘관의 능력과 판단은 휘하의 수많은 병력을 보전하고 패전을 승전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그런 면에서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미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 미2사당 23연대장 프리만 대령에 대해서는 아무리 상찬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

“위관급 간부에게 육체적 용기가 요구되듯, 고급 간부에게는 도덕적 용기가 요구된다.” (P.281)

중공군은 최후의 일대 공세를 결심한다. “이 공격에서 성공하면 중공의 위신은 세워질 것이나 실패할 경우, 협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P.209)

약 30만명이 동원된 이 공세를 홀로 저지한 것은 영국군 29여단으로서 이들의 임진강 전투는 <마지막 한 발>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쨌든 영국군의 분투는 서울로 진격하는 중공군의 대병력을 나흘간 저지하여 유엔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6차 공세를 성공적으로 분쇄한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동부전선에서 역습을 가하기 위하여 고저상륙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승인받지 못하였다. 고저는 금강산을 지나 원산 동남쪽의 장소로 작전을 통해 동해안의 적군을 섬멸하고 북위 39도선까지 진출하려는 의도였는데, 무산되니 역시 아쉽기 그지없다. 이로써 유엔군과 미국정부의 의도는 명확해졌다. 즉 현 전선에서 더 이상의 확전을 금한다는 것.

전선의 고착에 따라 필연적으로 정전협상 논의가 등장하는데, 협상이 2년여가 경과할 만큼 지지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스탈린의 개입이었다. 스탈린은 섣부른 정전을 원치 않았다. 그는 아직 중공군이 더 싸울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모택동과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이로써 후일 전쟁 원인론 중에 소련 음모론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후일 소련과 중국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 원인(遠因)으로 작용한다. 결국 스탈린 사후에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휴전협상 도중 공산군은 전선에 거대한 지하요새를 구축하였다고 한다. 총 길이 4,000km의 소위 지하 만리장성의 구축은 이후 전투가 대규모 인명살상에도 불구하고 영토점령에는 성과를 보이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나아가 이후 양군의 전력소모는 막대하게 되었다. 이것이 1952년 10월의 저격능선 전투와 삼각고지 전투이다.

“휴전 회담이 시작되고부터 승리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휴전 회담 기간 중에 있었던 많은 국지 소모적 전투는 휴전회담의 큰 게임 가운데 작은 부분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산 측은 협상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견딜 만한 힘이 남아 있다는 것과 희생의 자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소모적인 전투를 치렀다.” (P.366~367)

우여곡절 끝에 휴전은 성립되었다. 이는 정전이지 종전이 아니다. 휴전의 성격과 한계는 다음과 같다.

“인명과 자원, 시간과 노력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공식 평화조약은 달성하지 못하였다. 90일간 유효토록 설정한 휴전 조약이 90일 이내에 정치회담을 통해 평화조약 도출은 시도하지도 못한 채, 57년째가 되는 201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P.366)

마지막으로 아래의 내용을 인용하며 맺는다. 이것이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가 갖게 된 세계에 대한 책무이다.

“한국전쟁에서 3성 장군이면서 대대를 지휘하였던 몽클라 장군의 딸 파비엔 뒤프르는 그를 찾아간 기자에게 “한국의 발전과 평화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어진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 내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해 주세요.”라고 말하였다.” (P.281~282)


※ 이 책은 한국전쟁의 전개과정의 면모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지만 핵심적인 진술을 담고 있으며 저자 나름의 군사지식에 기반한 적절한 코멘트도 인상적이다. 다만 저자의 경력에 기인한 정치적 촌평은 아쉽기 그지없다. 물론 저자도 나름대로의 정치적 식견과 견해는 지니고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여과없이 배출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뛰어난 저서와 개인적 출판물의 경계를 구분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책의 말미에서 소위 친북 좌파 정권에 대한 매도는 부적절하며, 이것이 저자의 노고를 깎아먹는다. 친북 좌파 정권에 대한 비난은 그런 정권을 지지하고 만들어 준 당시 다수의 국민을 좌파로 몰아붙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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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진실 - 상 즐거운 지식 49
김준봉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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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관한 국내 주요 저작은 대체로 원인론에 치우쳐 있다. 원인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논란이 치열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기념비적 저작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원인에 관한 논쟁은 일단락되었으므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전쟁의 다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은 편이다. 한국전쟁은 기습 남침과 낙동강 방어선, 인천상륙작전과 일사후퇴 그리고 휴전협정의 단순한 전개만이 아니다. 도대체 3년 동안 전쟁이 어떤 국면과 전환을 거듭했는지 아는 이도 적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전쟁은 원인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사선을 넘나들고 엄청난 물자가 소진되는 현장이다. 전쟁의 전개와 전투에 대해서는 전쟁사가 또는 군사(軍史)의 몫이라고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상기 목적에 부합하는 유형의 저작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직업군인 출신으로 사단장 즉, 소장까지 지냈으면서 육군대학 총장 등 학계에도 오랫동안 몸 담았다. 군 출신답게 시각은 보수적이며,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한 평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승만은 유능하고 탁월한 정치력과 외교력으로 전대미문의 위기를 잘 넘긴 정치인인 반면, 김일성은 외세의 도움으로 권력을 손아귀에 쥔 억세게 운 좋은 순전히 무뢰한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전쟁의 원인에 대한 지리한 논의를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서술방식은 사실 중심적이며 사실의 나열 속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전쟁 흐름을 파악해간다. 비록 그의 시각과 필치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론이 아닌 전쟁의 실제 전개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한다.

전쟁 초반의 파죽지세로 밀린 전세를 저자는 병력 운용의 기본개념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이해한다. 역으로 말하면 조금만 평시 대비를 잘했다면 충분히 강력한 저항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초전에서 가장 큰 과오는 군사력 운용에 대한 기본계획 내지는 기본개념이 없었던 것에 연유하였다고 본다. 후방지역에 있던 예비사단인 2, 3, 5사단을 김홍일 소장이 제안한 한강선 방어에 투입하였거나 한강대교 폭파를 전방사단 철수 이후로 조정하였다면 초기 전투에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P.59)

일반국민은 물론 전체 병력의 절반이 한강 이북에 있었는데도 지레 겁먹고 한강교량을 끊어서 제풀에 역량을 상실하였으니 자해행위를 한 셈이다. 이것이 북진통일을 구호로 삼은 당대 정권과 군대의 실상이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명성은 드높아서 인천 월미도에 그의 동상이 오래전부터 세워져 있다. 반면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야전 총사령관 워커 중장에 대해서는 그의 공적이 너무나 무시되고 있다. 워커의 명확한 전세 판단 및 불굴의 전투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구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며 진작에 한반도는 북한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을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공간을 내주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감제고지는 가능한 한 오래 확보해야 한다. 방어는 종심 깊게 해야 한다. 예비대는 반드시 확보해야 측방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고 포병을 보호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통신과 병참선을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결전을 피하라.” (P.113)
워커 자신의 말이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의 가장 큰 실책은 중공군의 개입가능성을 외면하고 맹렬한 북진을 지휘한 데 있다. 하지만 사실 전장의 워커를 개인적 편견으로 불신하고 충분한 지원을 제공해 주지 않았으며, 종국에는 지휘권을 분할한 것이 더 크다. 자신이 문제를 자초해 놓고 책임을 워커에게 묻고 있으니 워커의 입장에서는 손과 발을 다 묶어 놓고 재주부리라는 격이니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8군을 지원해야 할 위치의 참모장이 8군과 경쟁체제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탄약, 도하장비 등 보급의 우선권을 자신이 지휘하는 10군단에 두었을 것임은 더 논할 필요도 없다.” (P.256)

전쟁에서 후세에 기억되는 것은 전투에서의 커다란 승리다. 임진왜란 하면 육전에서 진주성 전투, 행주대첩 등이 떠오르며,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위업이 두드러진다. 한국전쟁에서도 어찌 일방적으로 패전만 했겠는가? 비록 초전에서는 대세가 불리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겨야 할 승전의 소식을 빼먹으면 안 될 것이다. 1950년 7월 17일부터 일주일간 국군 17연대가 벌인 화령장 전투와, 8월 중순 1사단의 다부동 전투가 그것이다.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로 맥아더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을 이루어냈다. 책을 통해 당시 미국 정부와 워커 사령관은 상륙작전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장소는 인천보다 군산의 전략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실 인천이나 군산 모두 선택만 하면 성공가능성은 높은 편이었다. 미군이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군사적으로는 군산이 타당하다. 상륙작전은 상륙 자체에 목적이 아니라 이후 협공을 통해 적군을 무력화 내지 궤멸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인천보다는 군산이 워커의 8군과 협력을 통해 일대 공세로 전환하기에 용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맥아더는 정치적 상징성을 중시하였다. 인천을 통해 서울을 점령한다면 그것이 갖는 심리적 효과는 심대할 것이다. 게다가 수도 탈환이라는 상징성도 매우 크다.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군산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면 이후 전쟁의 흐름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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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피카레스크소설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433
김춘진 지음 / 아르케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대우학술총서 433
 
피카레스크 소설의 발상지가 스페인임은 이의의 여지가 없다. 다만 장르의 본격적 시초를 <라사리요 토르메스>(1554)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구스만 데 알파라체>(1599)로 인정할 지의 여부는 다소 논란이 있다.

이 저작은 세 작품 – 라사리요 토르메스, 구스만 데 알파라체, 사기꾼 –을 중심으로 스페인의 피카레스크 소설의 발생과 전개 및 장르의 특성 등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초보적 저술”에 불과하다고 겸양하고 있으나, 실제 다루는 내용은 상당히 깊이 있는 분석이어서 작품을 읽었거나 읽을 독자에게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중세와 근대 문학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맡고 있다. 근대 문학의 적자인 소설 장르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에 미친 피카레스크 소설의 지대한 영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돈 키호테>는 피카레스크 소설과 함께 로망스 소설에 대한 반발을 공유하며, 피카레스크 소설의 영향과 극복의 노력이라는 두 가지 가닥에서 이해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상주의적 로망스 소설이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거부하고 있었다면, 피카레스크 소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오히려 부각시키고 있다.” (P.60)

“『돈 키호테』는 피카레스크 소설이 개척한 토양 위에서 맺어진 문학적 결실이기 때문이다.” (P.14)

피카레스크 소설의 발생은 16~17세기 스페인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한다. 피카레스크는 근대 도시의 부조리와 불균형을 폭로하고 있다(P.32). 근세 도시화의 물결은 당대 유럽 사회 도처에서 발생한 경향인데, 유독 스페인에서만 피카레스크 소설이란 독특한 문학 장르를 탄생시킨 연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신대륙으로부터의 부의 유입 규모의 거대성에 있다. 당시 스페인에 흘러들어온 재화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는 스페인의 근대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P.43) 그대로 국외로 유출되어 서유럽 국가로 넘어갔다. 부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소수 지배층의 호화 사치는 극에 달했지만, 그 이상으로 하류 계급의 빈곤은 심화되었다. 전성기에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자 사회적 모순이 노정되고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이 스페인만의 종교적, 정치적, 인종적 갈등과 결부하여 유독 혈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조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피카레스크 소설과 주인공은 이중적 성향을 갖고 있다. 사회 밑바닥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직시를 통한 리얼리즘 인식과, 명예를 갈구하여 명예의 노예가 되는 억제할 수 없는 성향이다. 피카로는 결코 기득권층에 합류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결과는 언제나 좌절과 절망이다(P.91).

피카레스크 소설이 스페인의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떨어져 발생한 것은 아님을 저자는 지적한다.

“루치아노 식의 변신소설과 잡문, 기행 문학 등은 모두 리얼리즘 문학의 출현에 필요한 사실적 관찰과 구체적 현실 제시를 위한 서사 양식을 발전시켜 온 장르들이었다.” (P.82)

작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라사로 출세기>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기원인 동시에 세르반테스의 모태로 평가받는다(P.76). 이 작품은 해학적 리얼리즘이 두드러진다. 슬프되 슬퍼하지 않고,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역설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경지. 이는 돈 키호테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와 매우 유사하다.

저자는 작품의 형식에서 자서전체와 서간체, 대화체 등 피카레스크 소설의 형식적 요건이 모두 구비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즉 장르의 출발이지만 매우 완성도가 충실하다는 것이다. 작품의 의의도 남다르다. 르네상스기 인본주의 정신을 내적 원동력으로 삼아 여러 형식 요소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구조적 통합에서 얻어낸 서사적 구성 원리(P.124)를 발휘하고 있다.

<구스만 데 알파라체의 참회>는 직접 읽어본 작품이 아니므로 순전히 저자의 의견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작품은 희극적 리얼리즘과 실존주의적 고뇌가 결부된 이색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피카로들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않는다. 항상 방랑한다. 구스만과 같은 이들의 방랑은 현실 도피와 체념을 모두 갖고 있다.

“방랑은 단순히 핍박을 벗어나는 해방이나 신분적 도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운명에 대한 체념의 의미를 내포한다.” (P.134)

구스만의 좌절은 이중적 분열의 결과이다.

“구스만의 좌절은 신분적 상승 노력의 좌절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좌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선과 악, 진실과 허위, 혈통의 순수성과 비순수성의 양극적 대립은 심리적 불안정을 일으킨다. 그 갈등은 계율적이고 규범적인 가치와 생존적 욕구 사이의 현실적 괴리를 말하는 것이다.” (P.135)

라사리요 토르메스의 비교적 단순한 사고관념과 구스만 데 알파라체의 의식은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이 점이 라사리요의 현실 타협과 구스만의 현실 부적응, 즉 실패를 예감케 한다(P.146).

구스만은 반종교개혁 시기의 내면적 갈등을 반영한다. 구스만은 피카로답게 반사회적 인물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구원의 문제를 되짚고 있다는 점(P.141)에서 구별된다. 종교적 계율과 곤궁한 현실 사이에서 구스만의 이성과 본능은 끊임없이 갈등을 벌이고(P.136) 있다.

구스만의 참회는 단순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외관상 종교의 승리로 비쳐지는 결말과 달리 문맥적 의미를 반추해 볼 때, 단순히 신학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과 삶의 실존적 상황이라는 철학적 문제 인식이 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P.144).

일전에 <사기꾼>을 읽으면서 개개의 일화는 흥미롭지만 하나의 작품 전체로서 쭉 읽어나가기에는 별로 재미없다는 느낌을 지녔다. 이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잘못된 시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기꾼>은 통상 피카레스크 소설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지만, 의외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일화들의 단순 나열로써 인과적 교직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견해다. 게다가 자전적 형식을 패러디하고 있어 주인공의 성격 발달이 불가능하여 작품구조 및 인물묘사가 입체적이 아니라 평면적 한계가 두드러진다.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인물의 반응 양식이 발달해 가는 인과적 교직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일화들의 염주식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인간적 생동감은 살아나지 않는다. 희화적으로 묘사된 광대의 모습만이 남는 것이다.” (P.152)

이는 작가인 케베도의 출신이 귀족계급이라는 점에 연유한다. 그는 라사리요와 구스만의 창조자와는 달리 피카로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 그에게 피카로와 같은 반사회적 존재는 사회 안정과 계급이익에 위험한 요소이다. 따라서 그는 철저히 피카로를 희화화하고 농락한다. 독자는 라사리요와 구스만에 대해서처럼 파블로스에게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완전하고 철저한 광대의 배역,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파블로스에게 오히려 역설적으로 측은함을 느끼게 할 정도다.

“께베도의 분노에 찬 응징에도 불구하고 억압적 응징의 목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빠블로스가 희화적이 되면 될수록, 더 강도 높게 그의 꼭두각시 놀음은 인간적 몸짓으로 바뀌어 보인다.” (P.187)

<사기꾼>에게서 진정한 피카레스크의 미덕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이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저자는 언어미학의 탁월성을 지적한다.

“그의 소설은 언어적 굴절의 극치가 이룬 미학이며 현실 표현의 농축도를 높일 수 있었던 피카레스크 미학의 진일보를 의미한다.” (P.154)

즉, 작품의 내적 의미가 아니라 언어 표현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번역본이라는 필요악을 거쳐야 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의 결함 내지 부정적 측면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피카레스크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이미 서두에 언급하였지만 그렇다면 인간적 측면에서는 무엇인지 저자의 말로 살펴본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근대 사회에서 개인이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와의 갈등과 그 갈등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개인의 주체적 의식을 보여 준다.” (P.192)

“피카레스크 소설의 해학은 소외를 극복하고 휴머니즘을 향해 나가는 전진이며, 사회적 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하는 희망이며, 인습의 허울을 벗고 개인의 진정성을 지향하는 인문주의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의 결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P.254)

마지막 장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정전과 아류를 다루고 있다. 여성 피카로를 내세운 <안달루시아 여인 로산나>와 <피카라 후스띠나>를 소개하고 있으며, <속 라사로 출세기>와 기타 작품들도 살펴본다.

저자는 피카레스크 소설은 스페인 중심에서 인식한다. 피카레스크는 스페인에서 탄생하고 짧은 절정기를 누린 후 쇠퇴한다. 유럽 각국에 미친 피카레스크의 영향을 분명히 긍정하지만 이들이 예술적 완성도와 문학사적 중요도에서 결코 스페인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였으며 이류 장르로 몰락하였음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이러한 견해는 피카레스크를 매우 엄격한 범주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시대적, 형식적 요건을 완비하는 작품은 사실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피카레스크와 피카레스크 적인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실익은 무엇인가? 사실 넓게 보면 <돈 키호테>를 피카레스크 장르에 넣어도 큰 잘못은 아니다. 더구나 피카레스크가 야기한 근대 소설의 리얼리즘과 다양한 분화는 그의 정전을 명확히 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찌 보면 귀족계급이 아닌 평범한 중하류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지지고 볶는 모든 유형의 작품은 결국 피카레스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피카로와 피카라의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차이점은 우리는 사회규범과 도덕에 순응하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떨치고 일어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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