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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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은 남성들에게 거리는 즐거움과 유혹의 장소이다. 좌우를 둘러보자. 혹독한 겨울바람에 여성들은 그들의 늘씬한 다리를 레깅스를 이용하여 한껏 드러내고 있다. 감추지만 감추지 않는 미덕. 한여름은 어떤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 치마길이는 그저 미니스커트라고 부르기가 멋적다. 초미니스커트로 싱싱한 매력을 뿜어내는 맨 다리를 드러낸다. 불과 십수년 전과 비교해도 혁명적인 변화이다. 더구나 봉긋한 가슴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의상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노출의 강도는 해마다 더해간다. 이제 살짝 노출은 자연스럽게 여길 정도다.

이러한 패션이 여성들의 단순한 자기표현 내지 자기만족이라고 여기는 시각은 너무 안이하고 순진하다. 비록 여성들은 부인하겠지만 이는 암묵적으로 남성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향락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은 죽는 날까지 영원히  관능을 자극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여성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렇게 행동할 뿐이고, 이른바 교양있는 여성들도 자신이 어떤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이 추구하는 효능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P.281)

저자에 따르면 "지극히 잘 계산된 여성적 교태의 형태로는 우선 '위에서 아래로'든 '아래에서 위로'든 방향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노출을 들 수 있다...여성들 대부분은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므로 다리의 장점을 잘 드러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P.281~283)

무엇보다도 20세기초에 이러한 선구적인 저작이 나올 수 있었다는게 놀랍다. 패션의 사회사든가 하는 영역은 과문이지만 아직 국내에서 심도있게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던터이다. 과연 <풍속의 역사> 저자다운 안목과 관록이다.

'캐리커처'는 지금도 비주류의 표현 방식이다. 신문 한구석에 한 컷짜리 만평으로 아니면 길거리 화가들의 용돈벌이 수단일 뿐, 이것이 서양 근대사에서 대대적으로 제작되어 왔고 저자 푹스는 혜안을 가지고 이의 가치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캐리커처는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다. "진실은 평범함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에 놓여 있다. 극단적으로 과장해야만 사물의 본질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P.736) 여기에 캐리커처의 본질과 가치가 위치한다.

캐리커처의 본격적인 등장은 봉건시대가 끝나고 시민계급의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탁월한 캐리커처 작가들은 근대 시민계급이 넘치는 힘을 이에 상응하는 형태로 마음껏 밯뤼하는 시기가 도래해서야 등장한다."(P.325) 종교의 영향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 캐리커처의 표현방식은 불손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비꼬고자 하는 대상이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교회 아니면 신의 국가? 그래서 인간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사상이 호흡을 비교적 자유로이 내뿜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해서야 캐리커처도 햇볕을 쬐기 시작한 것이다.

푹스는 특히 이곳에서는 캐리커처를 통해 여성 풍속의 변천을 살피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여성 풍속의 변화는 단순한 취향과 변덕의 산물이 아니다. 즉 여성 사회사(P.737)라고 지칭해도 무방하다.

위에서 언급한 노출과 교태로 돌아가자.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태가 결코 부도덕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야 한다. 교태는 성생활에서 여성이 지닌 수동적인 역할 때문에 필요불가결"(P.305)하다고 오히려 도덕적 타당성을 옹호한다. "여성의 교태는 타고날 때부터 지닌 수동성 때문이므로, 대부분의 여성이 교태도 타고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자."(P.271)

저자의 인식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보부아르라면 펄펄 뛰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런데 푹스는 오히려 역공을 편다. 초기 여성해방운동의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여성의 완벽한 정신적인 해방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남성들에게는 능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창조적이고 지적인 능력이, 여성들에게는 수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깊은 감정이 날 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자연적인 이분법을 인정함으로써 이상적인 인류 발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P.715~716)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자, 근래 많이 회자되는 슬로건의 본의를 푹스는 일찍이 외쳤다. 그의 선구적 시각은 아리스토텔레스, 스펜서, 쇼펜하우어 등을 비판하는 장면(P.536~537)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위에 내재하는 것은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계급 통치일 뿐이라는 사실"(P.537)을 그는 반복하여 주장한다. 

피지배계급인 여성에게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럴듯한 '바지'를 잡는 것이다. 그래서 '바지전쟁'이라는 캐리커처가 나왔다. 야한 수영복을 입은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에게, 자신은 지참금이 이것 밖에 없다고 해명하는 캐리커처 역시 이를 반영한다. 여류작가의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이성과 감성>은 어떤가? 당시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의 모든 관심이 잘난 신랑감을 잡는데 집중되어 있음을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에 목매다는 여성을 한심해 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다. 독자적인 생활수단이 전무한 그들에게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과 자본주의의 관계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여권의 신장이 언제나 사유재산과 생산양식의 변화와 보조를 맞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 계급들이 차례로 자영업과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현상은 자본주의와 대기업이 발달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엘렌 케이)"(P.713)

이상을 감안하면 여성 풍속의 변화, 모드(패션)는 의미를 갖게 된다. 코르셋, 데콜테, 허리받이 치마, 굴렁쇠 치마, 크리놀린, 퐁탕쥬 등 용어도 생소한 모드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모드를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도록 강요한다...의복은 교태의주요 형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대이다"(P.421) 따라서 모드(패션)은 속성상 항상 새로움을 지향한다.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조화로움이 아니라,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두드러져 보이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의복, 그중에서도 새로운 의복이다. 그러므로 '늘 새롭게!'가 표어가 된다. 모드는 매일 자신의 형태를 바꾸고, 여성들은 언제나 새로운 모드를 통해 자신의 매력, 육체와 정신과 물질의 소유 상태를 온 세상에 보임으로써 이 표어를 충실히 따른다."(P.421~422)

그렇다면, 캐리커처로 보는 여성 풍속사(사회사)의 의의는 무엇일까, 하필이면 캐리커처를 통해 여성사를 파악할 이유가 존재하는가? 저자의 답변은 서론에 나와있다.

"여성의 캐리커처는 인류 양심의 한 부분이라는 것, 이것이 비밀스러운 반어법이다. 풍자적인 점층법을 통해 여성의 모습을 지독하게 추하고 부자연스럽게 그리는 모든 미학적, 도덕적인 탈선은, 기본적으로는 신이 만든 아름다운 피조물의 모습이 그냥 사라지게 둘 수 없으며, 반대로 이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찾게 해주자는 욕구, 즉 이것이 언젠가는 자신의 원래 성향대로 완전한 것이 되도록 하게 하자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캐리커처가 보여주는 의식적인 추함만큼이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조용하게 장려하는 것도 없다."(P.48~49)

언뜻 말초적 흥미만을 자아내기 쉬운 소재로 저자는 묵직한 저작을 만들어냈다. 1세기전이라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구자적 혜안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물론 저자를 비판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의 여성관,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비판 등. 하지만 옮긴이 말마따나 요즘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모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자. 남성이든 여성이든. 레깅스와 미니스커트, 클리비지 룩, 시스루 룩, <미녀는 아름다워>가 보여준 성형 광풍 등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저자의 분석이 유효함을 입증하는 바로미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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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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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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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납치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늘어난 듯 싶지만, 논의의 초점은 인질들의 현지 활동과 종교단체의 편협한 신학관에 집중되어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문화(종교를 포함한) 상대주의를 존중하는 한계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논픽션을 픽션의 형식을 빌어 구현한 것 뿐이다. 이를데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가 담겨 있다.

더불어 작금의 아프간 사태의 시대적 배경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강추하련다. 소련의 침공과 저항전, 소련의 철수와 저항군의 카불 입성. 저항군의 분열과 내전. 난민들 사이에서 세력을 키운 골수 이슬람원리주의자 탈레반의 등장과 현상까지 일목요연하게 사태를 꿰뚫어보게끔 도와준다. 이 점이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된 연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소설이니만큼 문학적 매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마리암. 불가항력적인 라시드와의 결혼. 몇 번의 유산으로 완전히 라시드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로켓포 폭격으로 일가족을 잃은 라일라. 살기 위하여 라시드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마리암과는 달리 신식 교육을 받았으므로 내심은 굴복하지 않는다. 심해지는 라시드의 학대와 마리암의 살인. 이렇게 소설은 70년대부터 지금 이순간까지의 두 여인의 삶을 시대 상황과 결합하여 비교적 담담하게 그린다. 너무 비참해서 눈물을 뚝뚝 흘려야 할 순간임에도 오히려 작가는 독자를 다독이는 듯 때로는 무심하기조차하다.

아프간에서도 일상적인 삶이 영위되었다는 것이 놀랍게 다가왔다. 희노애락이 존재하고 가족끼리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 보장되는 사회. 내가 본 아프간은 언제나 전투의 참상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프간 여성들은 물론 가장 큰 피해자이다. 그들이 탈레반 치하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 책에서도 잘 나와있다. 여성을 이등 인간으로 간주하는 편향적 시각. 이는 반대로 남성에게는 거의 무한한 자유를 제공한다.

"남자가 자기 집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우리는 규칙상 개인적인 가정사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남자한테 유리할 때만 그렇겠죠." (P.360)
 
이것은 라시드에게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버스 터미널에서 잡힌(단지 동승하는 남자없이 여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라일라와 경찰의 대화다.

문득 라시드가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여겨진다. 그에게 다른 아프간 남성들보다 심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 충실하였다. 단지 성격이 조금더 괴팍하였을 뿐. 중간중간의 정세 분석을 보면 그는 결코 막무가내의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외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가치관과 태도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도 체제의 희생자이다.

나는 문화상대주의자(문화다원론자)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종교가 타인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싶지 않다. 가급적이면 일방적인 시각을 벗어나 당사자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으레 오해와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나의 일방적인 주관과 의사를 타방에 강요하는 것은 커다란 폭력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한계는 설정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의사결정을 통해 선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 선택을 억압한다면 제 아무리 고상하고 훌륭한 가치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하다.

탈레반이 국제 사회에서 비난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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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12.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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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목의 책이 떠오른다. 유고 내전을 파헤친 일종의 현장 다큐인데, 그때 인간이란 존재의 철저한 잔인성에 새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집으로 가는 길>도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무대는 아프리카 서부의 자그만 나라, 시에라리온. 영화 <블러드 다이아모드>가 되는 국가이며, 영화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다만 차이는 기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 자신의 증언이라는 점. 그리고 그 당사자는 당시 10대 초반의 어린이라는 것이다.

내전의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정치체제가 불안한 신생 독립국에게는 군부의 쿠데타 위험이 항시 존재한다는 것. 어떤 계기가 생기면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소위 국가체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의 결단'을 내린다. 이때 칼은 붓보다 힘의 우위를 가진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던 흑인 소년.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미국 흑인음악인 랩을 가지고 장기자랑에 춤추려고 이웃마을에 간 동안,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이어지는 생사의 고비를 무수히 넘기는 처절한 피란길. 때로는 흥미진진함을 자아내지만 순간 정신을 차린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임을.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이 물 마시는 것보다 쉽다는 한 마디. 사람 목숨값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천양지차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첫 번째 살인을 하면서 내 마음은 찰깍하고 문이 닫히듯 잠겨버렸다. 양심을 괴롭힐 만한 기억도 머릿속에 남기지 않게 되었다." (P.178)

어쩔수 없이 소년병이 되어 인명살상의 도구로 이용된다. 그에게는 부모형제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살아가자면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도구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도 안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자연스레 마약이 주어지고, 학살과 마약은 일상 생활이 된다.

"나는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그 포로는 내 부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반군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나는 그 남자의 목을 꽉 움켜쥐고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으로 목을 베었다." (P.182)

수 년이 경과했지만, 소년병 시절의 체험은 그로서도 상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전체 분량 중에서 피란 장면이 길게 등장하는 반면, 약 2년간의 소년병 시절은 비교적 축소되어 서술하고 있다. 하긴 폭력과 학살의 연속이니 무얼 자세히 묘사하겠는가.

운좋게 목숨을 유지한 이스마엘이 유니세프를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고통스러운 재활과정은 한번 어린이를 타락시켰을 때 그 내상의 정도를 뼈저리게 각성하게끔 한다.

"순진한 외국인들은 우리를 전쟁터에서 떨어뜨려놓으면 RUF에 대한 증오가 식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환경이 바뀐다고 그 즉시 우리가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우리는 사람을 죽이도록 세뇌된 위험천만한 아이들이었다." (P.197)

그리고 유엔 대표로 출국했던 일-여기서 시골뜨기의 뉴욕 방문기가 재밌다-과 돌아와서 다시금 내전의 재개와 재회.

그는 선택의 처지에 놓였다. 소년병이 되어 죽이든가 민간인으로 남아 죽임을 당하든가. 그의 선택은 조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적 끝에 옆나라 기니에 도착한다. 어릴때 들었던 원숭이 사냥꾼의 딜레마 이야기의 회상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2002년에 공식적으로 종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이 전쟁의 여파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된다. 극심한 경제적 궁핍과 팔 다리의 훼손 후유증, 정신적 충격. 여기에 언제 재발될 지 모르는 불안한 평화체제 등.

누구도 이스마엘을 비롯한 소년병들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유네스코의 직원들이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입에 달고 지낸 것은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이제 에스더가 이스마엘에게 한 말을 나도 해주고 싶다.

"그 어떤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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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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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니니 - 세기의 마에스트로 현대 예술의 거장
이덕희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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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감상 심화학습 제2편이다. 글렌 굴드에 이은 토스카니니.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 한 시대를 호령한 거인이다. 이런 유형의 저작은 위인전기와는 읽는 포인트가 다르다. 여기에서 거창하고 위대한 업적을 찾아내거나 본받을저믈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감상에 조금 더 깊숙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음악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연주가나 작곡가나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토스카니니의 개인적 삶의 이력은 흥미롭지만 신변잡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가 무척이나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정의 가치에 대한 숭고한 믿음을 지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이혼한 친구 및 사별했으나 곧 재혼한 친구와는 절교를 했다는 점도.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 아직까지 지휘계의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양대 산맥이다. 요즘와서는 후자에 대한 인기가 더 높지만 말이다.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감상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나 기계적 현대사회의 반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낭만적 풍조가 지배하던 시절, 토스카니니는 이성에 바탕을 둔 음악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이었으며 그는 한치의 주저와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고 평생을 진력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중후반기에 이르러 비합리적 음악 관행이 일소되었던 것이다. 조지 셀, 카라얀 등의 후배 지휘자와 카를로스 클라이버,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은 물론 최근의 대세인 시대악기 해석의 선구자는 바로 토스카니니이다.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라이벌이 될 수 없는 관계다. 토스카니니의 최전성기인 1930년대, 그는 60대에 접어든 노거장이었고, 푸르트벵글러는 이제 전성기의 길에 들어선 40대의 장년이었다. 게다가 푸르트벵글러의 명성은 독일내에 국한되었지만, 토스카니니는 유럽은 물론 미국마저 휩쓴 말할나위없는 최고의 거장이었다. 이는 이 책의 2부 '토스카니니와 빈필'을 보면 알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와 나치의 관계를 보면서 새삼 토스카니니에 대한 외경심이 우러나온다. 그의 철저한 반파시즘적 태도는 음악가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사표가 될 만하다.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할 정도였고 별도 파일로 관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토스카니니는 음악 그 자체만을 지향하였다. 그 점에서 이른바 대중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주의를 쏟았던 일부 지휘자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에 얽힌 수많은 일화는 대부분 순수한 음악정신의 옹호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토록 그는 순수했는데, 후인들은 그의 진면모를 알지 못하니 슬프기조차하다.

오늘날 그의 자취는 주로 만년에 NBC 교향악단과 남긴 음반을 통해 접하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최고가 아니었고, 녹음은 너무 메마르고 각박하였다. 토스카니니는 자신의 음반을 싫어했다고 한다. 또 공연장에서 토스카니니 지휘를 들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늘날 전하는 음반의 사운드는 실연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악곡에서 그의 연주는 가히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이니 그의 대단함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의 음반이 조금만 더 좋은 녹음으로 남아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그저 허망한 바램에 그칠뿐.

* 토스카니니 지휘의 개인적 선호음반 (오페라는 빼고, 잘 모르니까)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레스피기의 로마삼부작
베르디의 레퀴엠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w/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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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 / 정원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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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내가 경애하여 마지않는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다. 그동안 음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를 접했다면, 이제야 비로소 그의 육성을 듣는다.

리흐테르는 가까이하기 녹록치않은 인물이다. 그는 청자에게 바싹 의자를 당기지 않는다. 연주자를 화려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음악의 참모습을 보여주는게 연주자의 진정한 자세라고 믿었다. 그런 면에서 그보다 더 개성적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서고 싶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반쯤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깊은 맛을 느끼게 주었던 리흐테르. 글렌 굴드 못지 않은 독특하지만 또다른 깊이를 보여준 바흐의 평균율. 무엇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비슬로키가 아니라 잔데를링 협연)에서 보여준 선입관을 깨뜨린 중후하며 강단있는 해석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주력이었던 슈베르트, 슈만 등은 여전히 귀에 설다.

인간 리흐테르가 어떤지는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의 연주력과 해석의 배경에 대해서도. 그의 기이한 교육시절은 어떠한지도. 이제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전반부는 그가 몽생종에게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죽기 몇 해 전, 그는 뭔가를 예감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자신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견딜 수 없어했는지도.

"내가 연주를 하는 것은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내가 내 연주에 만족하면, 청중 역시 만족한다. 연주를 하는 동안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건 작품과 관련된 것이지 청중이나 성공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내가 청중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않을수록, 나는 더욱더 연주를 잘 한다." (P.126)

그의 연주 자세를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는 인기에 무덤덤했고, 자신의 연주에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타인의 연주에 대해서도 엄격함은 여전했다. 글렌 굴드, 미켈란젤리, 가브릴로프, 콜라르, 데즈 랑키 등등.

그는 연주자의 화려한 쇼맨십도 혐오하였다.

"연주자란 하나의 거울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233)

"무릇 연주가란 하나의 실행자다. 작곡가의 의지를 정확하게 실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 이미 있는 것만 들려줄 뿐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그는 음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나는 스스로를 안에 가둠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P.245)

표피적 아름다움을 버렸기에 그의 음악은 성실하며 진실하다. 스스로를 안에 가두어 내적 충만을 얻었으므로 그의 터치는 대체로 화려하지않고 소박하며 묵직하다.

회고담을 통해서 그는 공연 취소를 자주 한다는 세간의 편견을 불식시키려 하였다. 그는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누구처럼 전용 피아노와 전속 조율사, 또는 요리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소련시절 연주 활동을 보면 조그만 시골동네 마을 회관이나 학교에서도 즐겨 연주하였다. 다만 그는 몇 년 후의 스케줄을 예약하거나 꽉짜인 틀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자유로움에서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특히 흥마로운 점 중의 하나는 그와 프로코피에프, 그와 쇼스타코비치의 관계다. 프로코피에프와는 깊은 정신적 유대관계를 맺었는데, 쇼스타코비치와는 그러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그건 두 사람의 성격에도 연유한다. 외향적인 프로코피에프와 내성적인 쇼스타코비치. 요즘 연주자들은 프로코피에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의 독자는 리흐테르가 얼마나 인간적인 사람인가 놀라게 된다. 스스럼없이 동료 후배 연주가들과 어울려 즐겁게 보내는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후반부는 그가 반평생에 걸쳐 적어두었던 음악 수첩이다. 연주자는 대개 타인의 연주회 또는 음반을 잘 듣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는 틈만 나며 음악을 가까이 하였다. 여기서 나와 같은 일반 음악감상자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들었는데 그는 또 다르구나 하는 차이점과 아울러 공감대도.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몇 부분을 발췌한다.

먼저 말러의 6번 교향곡의 수첩을 들여다본다. "다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 제발 1악장 다음에는 스케르초가 아니라 안단테로 연주해 주면 좋겠다! 그 편이 훨씬 낫다!" (P.292)

"나는 이 오페라를 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외우고 있다. 만일 이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P.459)

프란츠 슈레커의 <아득한 울림>이라는 낯선 작품이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다. 아울러 강렬한 호기심이 생긴다. 도대체 어떤 음악일까? 나도 한번 들어봐야지.

마지막으로 원본에 없는 서울 공연(1994.4.15/4.18) 감상평을 번역본에서 실어놓았다. 리흐테르가 방한 공연도 했던 모양이다. 정명훈 지휘의 오페라 살로메와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을 평하였는데, 오페라는 그다지 호의적인 평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휘자는 높게 평가했는데 괜시리 내 기분도 흐뭇해진다.

"하지만 지휘자가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과 매우 의지가 강하고 열정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P.499)
 
"지휘자는 갖가지 훌륭한 자질과 진정한 열정을 겸비하고 있다...이 지휘자가 한국의 청중을 상대로 대성공을 거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500)

이제 리흐테르의 연주를 듣는 내 마음가짐은 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높이 평가했던 작곡가(림스키-코르사코프, 브리튼 등)나 연주자(올레그 카간, 나타샤 구트만, 갈리나 피사렌코! 등)의 음악에도 관심을 더 기울여 볼 생각이다.

이렇게 짤막하게 촌평을 남기지만 이 책은 일회성이 아닌 재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아울러 몽생종의 영상물도 꼭 찾아 보려고 한다. 비바 리흐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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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2.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